보리 국어사전 - 남녘과 북녘의 초.중등 학생들이 함께 보는
토박이 사전 편찬실 엮음, 윤구병 감수 / 보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 국어사전


 나는 지난 2001년부터 두 해하고 여덟 달 동안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했다. 내가 함께 만들던 어린이 국어사전은 내 손을 거쳐 태어나지 못했다. 나는 밑일만 하다가 그만두어야 했다. 내 손을 거쳐 태어나지 못한 어린이 국어사전이 책으로 나온 모습을 책방에서 보고는 더없이 슬퍼서 눈물이 났다. 내 손으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슬프지 않았다. 사전이 너무 엉터리여서 눈물이 났다.

 아니, 제대로 말해야겠다. 말풀이가 엉터리여서 눈물이 났다. 짜임새와 엮음새는 훌륭했다. 책은 참 예쁘장했다. 꾸밈새도 뛰어났다. 곧, 짜임새와 엮음새와 꾸밈새는 좋다. 겉으로 보기에 참 괜찮다 싶은 사전이다.

 그러나, 사전은 속을 읽는 책이지, 겉을 살피는 책이 아니다. 아무리 잘 엮거나 짜서 낱말을 찾거나 살피기에 좋은들 무엇하랴. 사전은 말풀이를 옳고 바르게 하지 않으면 사전이라 이름붙일 수 없다. 사전은 말풀이 때문에 사전이 되지, 짜임새와 엮음새와 꾸밈새 때문에 사전이 되지 않는다.

 오늘 돌이키면, 지난날 그 어린이 국어사전 한 권이 내 손을 거쳐 태어났다면 나로서는 덜 슬퍼 했을는지 모르겠지만, 덜 슬퍼 하는 만큼 왜 슬퍼 하지 않아도 되는가를 몰랐으리라 생각한다. 지난날 그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일에서 손을 떼고 다른 길을 걸어서 오늘에 이르렀기에, 비로소 지난날 그 국어사전을 안 만들어서 어쩌면 잘된 일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나는 아직 가장 옳고 바른 말을 쓰지 못한다. 나는 아직 가장 옳고 바른 말을 배우는 사람이다. 아마, 죽는 날까지 가장 옳고 바른 말만 배우다가 조용히 흙으로 돌아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 스스로 가장 옳고 바른 말을 쓰지 못하면서 국어사전을 만든다 한다면 얼마나 슬프며 안타까운 노릇일까.

 국어학자가 우리 말을 가장 옳고 바르게 쓰지 않는다. 국어학자란, 한 가지를 파고들어 논문을 쓴 다음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지, 우리 말을 가장 옳고 바르게 쓰는 사람은 아니다. 한자말이나 영어 같은 외국말을 안 써야 우리 말을 가장 옳고 바르게 쓰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한자말이나 영어 같은 외국말을 안 쓰려 한다면, 왜 이러한 외국말을 안 써야 하는가를 살뜰히 깨달으면서, 알맞으면서 즐거이 쓸 우리 말이 무엇인가를 또렷하면서 살가이 느껴야 하고, 우리 말을 재미나며 알차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여섯 살 어린이부터 열네 살 푸름이가 모인 자리에서 ‘어린이 국어사전’을 함께 펼친다. 국어사전 읽기와 찾기를 함께 한다. 아이들은 국어사전이 참 따분하다 이야기한다. 국어사전을 읽어도 ‘내가 찾으려는 낱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 다다르다 : 목적한 곳에 가서 닿다. 어떤 곳에 이르다
 ├ 닿다 : 목적지에 다다르다
 └ 이르다 : 어떤 곳에 다다르다


 두 가지 어린이 국어사전을 펼친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 두 가지 어린이 국어사전 모두 돌림풀이를 한다. 나는 국어사전을 만들 때에 이런 돌림풀이가 나오지 않도록 하려고 말풀이를 모두 새롭게 지었다. 열 가지가 넘는 국어사전을 나란히 펼치고 말풀이를 다 달리 붙이면서 돌림풀이가 아닌 참풀이가 되도록 땀을 흘렸다. 그렇지만, 내가 그만둔 다음 나온 어린이 국어사전조차 돌림풀이만 판친다. ‘다다르다’하고 ‘이르다’ 말풀이를 어떻게 붙여야 할까. 말풀이는 어떻게 새겨야 하는가.

 곰곰이 생각한다. ‘다다르다’라 한다면, “가려고 하는 곳에 다 가다”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르다’라 한다면, “어떤 곳으로 가서 있다”라 해야 한다고 느낀다. ‘다다르다’라 할 때에는 처음부터 어떤 곳으로 “가려고 하는 마음”으로 가서 “다 갔다”고 하는 느낌이고, ‘닿다’라 할 때에는 ‘다다르다’하고 같은 마음으로 가되, “다 가서 그곳에 있다”나 “다 가서 그곳에 있게 되다”라는 느낌이며, ‘이르다’는 딱히 “가려고 하는 마음”이라기보다 어떤 곳으로 “가서 있”기만 하는 느낌이라고 본다.

 ┌ 가늠 : 형편이 어떤지 짐작하는 것
 ├ 짐작(斟酌) : 사정이나 형편 같은 것을 어림잡아 헤아리는 것
 ├ 어림 : 짐작으로 대충 헤아리는 것
 └ 헤아리다 : 어떤 일을 미루어 짐작하거나 살피다


 어린이 국어사전 일러두기에 나온 ‘가늠’이라는 낱말에 달린 풀이를 아이들한테 읽어 준다. 아이들은 ‘가늠하다’라는 낱말을 어느 자리에 써야 할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왜 ‘생각하다’라고만 쓰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

 ‘가늠하다’는 ‘재다’와 ‘따지다’와 ‘살피다’와 ‘헤아리다’와 ‘생각하다’를 모두 한 자리에 놓고 견주어야 말뜻을 알 수 있다. 이 낱말 하나만 똑 떨어뜨린 채 알도록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형편이 어떤지 짐작하는 것” 같은 말풀이를 달면 이 낱말을 알 수 있도록 이끌지 못한다.

 “될까 안 될까, 또는 어떻게 될까 하고 품는 마음”쯤으로는 적어야 ‘가늠’이라는 낱말뜻을 어렴풋이나마 알도록 하리라 본다. 아이들이 “품는 마음”이라 할 때에 ‘품다’를 어떻게 느끼느냐가 걱정스러운데, 그러면 “될까 안 될까, 또는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이라고 하면 되리라. ‘어림’은 쉽다. “잘 모르지만 어느 만큼 될는지, 또는 어떻게 될는지 하는 마음”이라 하면 된다. ‘가늠’과 ‘어림’은 “잘 모르지만”이라는 꾸밈말이 붙고 안 붙고에서 갈린다고 여길 수 있다. ‘가늠’은 “잘 모르지만”을 따지지 않는다. 그냥 “될까 안 될까” 하는 마음이 ‘가늠’이다.

 말풀이를 꼭 어찌저찌 해야 잘 된 국어사전이라 할 수 있다. 돌림풀이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사전을 읽어서 환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야 잘 된 국어사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낱말을 싣거나 저런 낱말을 실었대서 알찬 사전이 되지 않는다. 어느 사전이든 모든 낱말을 낱낱이 싣지 못한다. 모든 낱말을 싣지 못하는 사전이지만, 사전에 싣는 낱말만큼은 제대로 풀이해야 하고, 살뜰히 읽으며 말을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말풀이가 엉터리라 해서 사전이 엉터리라 말할 수 없다. 짜임새는 훌륭한 사전이 있고, 엮음새는 빼어난 사전이 있다. 우리 나라에는 짜임새가 훌륭하거나 엮음새가 빼어난 사전조차 드물다. 어린이 국어사전 가운데에는 짜임새와 엮음새가 괜찮은 사전이 있다. 다만, 말풀이를 제대로 다룬 사전은 없다. 말풀이에 넣는 낱말을 옳으면서 바르게 가다듬은 사전 또한 없다.

 나는 이 때문에 슬프다. 말풀이가 제대로 된 사전이 없을 뿐 아니라, 말풀이에 넣는 낱말이 옳으면서 바른 사전이 없기 때문에 몹시 슬프다.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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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든 사람


 오늘도 어김없이 이오덕학교 책이야기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 오늘은 어인 일인지 빨랫감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 몹시 홀가분하다. 지난밤 아이는 오줌을 누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 어머니 곁에서 변기에 앉아 쉬를 누었다. 모처럼 밤새 오줌기저귀가 나오지 않았고, 아이 웃옷이나 바지는 어제 빨았기에 오늘 할 빨래가 없다. 행주와 수건 한 장만 단출하게 빨래하면 끝.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따순 햇살을 받으며 집으로 내려온다. 풀어놓고 키우는 까만염소 다섯 마리가 나를 보더니 길 한켠에 붙어 쪼르르 내뺀다. 지난해에는 후다닥 내달리며 내뺐지만, 이제는 내 걸음 빠르기하고 똑같이 걸어서 물러선다. 날마다 보는 사람이니까 나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풀을 뜯어도 될 테지만, 짐승답자면 이렇게 사람을 꺼리며 내뺄 줄 알아야겠지. 그러나 내가 무청이나 배추꼭지 따위를 염소한테 내밀면 어김없이 가만히 있거나 가까이 다가온다. 먹이를 손에 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집에 닿는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쬔다. 새벽에 민방위훈련 다녀올 때에만 해도 꽤나 추운 날씨였는데 한낮에는 퍽 따스하구나. 다만, 이런 햇살에도 우리 집 물은 아직 안 녹으니, 참.

 집 문을 열고 들어선다. 집이 조용하다. 문을 열고 들어설 즈음 아이는 늘 “아빠 왔어? 왔네.” 하고 인사하는데, 오늘은 말이 없다. 영화라도 보나? 아닌데. 어, 아이하고 어머니하고 나란히 누워서 자는구나.

 요사이 늘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던 아이였던 만큼 몸이 힘들었겠지. 이렇게 낮잠을 좀 자야지. 낮잠을 한두 시간쯤 자야 더 씩씩하고 신나게 놀지. 아이야, 네 어머니하고 포근하고 달콤하게 잤다가 해가 기울기 앞서 일어나렴. 아버지가 자전거 태워 줄 테니까.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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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42] 푸른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들어서는 길목, 멧자락마다 푸른 풀싹이 돋습니다. 아직 눈이 안 녹은 자리에도 새 풀이 납니다. 푸릇푸릇한 빛깔로 바뀌는 들판을 바라봅니다. 머잖아 이 멧자락이며 들판이며 푸른빛이 가득하겠지요. ‘푸른들’이 될 테지요. 겨울이 지나가는 들머리에서 비가 내리니 하늘은 더욱 새파랗습니다. 파랗디파란 시골자락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합니다. 밤과 새벽에는 까맣디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헤아립니다. 낮하늘은 파란하늘이고 밤하늘은 까만하늘이구나. 이 넓은 파란하늘이 끝나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아마 땅끝하고 만날 테고, 저기 끝에는 바다하고 만나겠지요. 바다는 사람들이 어지럽히는 쓰레기가 아니라면 파란 빛깔로 눈부시도록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그러니까, 하늘도 파랗고 바닷물도 파랗습니다. 파란하늘이고 파란바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하늘도 바다도 들판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아무래도 도시가 커지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들어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만, 우리 푸른들을 모르니 ‘綠色’ 같은 일본말에 ‘풀 草’라는 한자를 덧단 ‘草綠’에 얽매인다든지 영어로 ‘green’을 말하기도 하지만, ‘파란들’이라는 엉뚱한 이름을 쓰기까지 합니다.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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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민방위훈련


 내가 살아가는 리하고 이웃마을 리 두 군데를 통틀어 민방위훈련에 와야 하는 사람은 모두 여덟. 이 가운데 다섯 사람이 나왔다. 새벽 여섯 시 비상소집이라 하는데, 시골자락에서 무슨 민방위훈련을 하나. 마을 이장 아저씨는 여섯 시 비상소집이라 하지만 여섯 시 십이 분이 되어서야 슬금슬금 나타난다. 새벽 다섯 시 오십육 분에 마을회관에 나온 나랑 다른 세 사람은 텔레비전을 켜 놓고 멀뚱멀뚱 기다린다. 생각해 보면, 민방위훈련이랍시고 무슨 관제행사를 하니까 마을 남자 어른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기라도 한다. 세 리를 통틀어 고작 여덟 사람밖에 안 된다는 ‘민방위훈련 받을 만한 남자 어른’은 요만큼밖에 안 되지만, 아무튼 이런 관제행사가 있으니 서로 얼굴이라도 들여다본다. 이 관제행사가 없다면 서로서로 한 해에 한 차례라도 얼굴 볼 일이 있을까.

 마을에서 예비군훈련을 받을 만한 더 젊은 남자 어른은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아니, 마을에서 예비군훈련을 받을 만한 남자 어른이 있기나 할까. 마을 젊은이가 있다면 누가 있고, 시골마을에서 이들은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까.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여자 어른은 있으려나. 여자 어른은 시골마을에서 무엇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을까.

 시골 초등학교라 해서 시골 아이한테 농사짓기를 가르치지 않는다. 시골 초등학교 가운데 시골 어린이한테 앞으로 농사꾼이 되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사일을 맡는 어른은 자가용을 타고 일터로 온다. 학교가 아닌 일터를 오가는 교사들이다. 시골 중·고등학교 또한 교육공무원 일터이지, 배우는 터전은 아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든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든 누구나 어디에서나 ‘도시에서 돈을 버는 일자리를 얻어 살아가는 꿈’만 배운다. 시골 중·고등학교 여자 아이들 치마는 도시 여자 아이들 치마보다 훨씬 짧다.

 민방위훈련에 온 마을 남자 어른 가운데 나 혼자만 자전거를 타고 왔다. 다른 남자 어른은 모두 자동차(승용차이든 짐차이든)를 몰고 왔다. 걸어서 온 사람조차 하나 없다.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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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항과 진중권


 김규항 님은 진중권 님을 놓고 “‘진보 행세하는 개혁’을 저리 옹호하는 풍경은 참으로 난감하다”고 이야기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 말이 옳다. 진보를 내세우는 ‘진보 아닌 사람’ 쪽에 서서 ‘진보 아닌 사람이 진보를 말하기라도 하는 듯’ 이야기하는 일은 잘못이다. 더군다나, 진보 아닌 사람이 진보를 이루려고 애쓰기라도 하는 듯 이야기한다면 더 크게 잘못이다. 게다가, 몸을 움직이기보다 머리와 말로 ‘나는 진보요!’ 하고 외치기만 한다면 끔찍하게 잘못이다.

 나는 진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수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답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진보이거나 수구이거나 대수롭지 않다. 사람다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좋다. 누군가는 개혁이나 진보를 좋아할 수 있고, 누군가는 보수나 수구를 좋아할 수 있다. 좋아한다는데 어쩌겠는가.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옳고 바르게 즐겨야 한다. 나쁘거나 짓궂게 즐길 노릇이 아니라, 옳고 바르며 착하게 즐겨야 한다.

 나는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낚싯대로 고기를 잡든 그물로 고기를 잡든 누군가 고기잡이를 해 주어야, 등푸른고기이든 속살하얀고기이든 장만해서 먹을 수 있다. 내가 먹는 물고기를 잡아서 팔아 주는 사람이 진보인지 수구인지 개혁인지 보수인지 알 길이 없다. 물고기를 팔아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물고기를 돈 몇 푼으로 사서 먹을 뿐이다. 그저 물고기 한 마리를 사더라도 되도록 생협을 거친 물고기를 사려고 한다. 멸치이든 오징어이든 삼치이든 동태이든, 생협을 거친 물고기를 살 수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

 나는 짐승을 키우지 않는다. 우리 집은 소이든 돼지이든 닭이든 치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소고기이든 돼지고기이든 닭고기이든 먹곤 한다. 시골집에서 살아가며 고기를 먹을 일은 참말 한 차례도 없으나, 도시로 마실을 나가면 언제나 고기를 먹어야 한다. 내가 먹는 소나 돼지나 닭을 키우는 사람이 진보인지 수구인지 개혁인지 보수인지 알 길이 없다. 고기집 일꾼이 진보인지 수구인지 알 노릇이 없다. 그저 고맙게 먹는다.

 내가 읍내나 면내에 마실을 가려고 타는 시골버스를 모는 일꾼이 진보인지 개혁인지 수구인지 보수인지 알 수 없다. 그저 하루에 여섯 대 오가는 시골버스를 때 맞춰 타면서 고맙다고 인사할 뿐이다.

 진중권 님은 “물론 A급 좌파는 존재하지 않거나, 이념형으로만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궁금하다. 사람을 이렇게 등급으로 나눈다고 할 때에 ‘등급으로 나누었’는데에도 스스로 나눈 등급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중권 님은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일까. 진중권 님과 가까이에 있는 동무나 이웃은 누구일까. 진중권 님이 설날이나 한가위 때에 마주하는 살붙이는 어떤 사람들일까. 진중권 님을 낳아 키운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진중권 님이 날마다 먹는 밥은 누가 흙을 일구어 마련했을까. 참말로 이 나라에, 또 이 지구별에 ‘A급 좌파’는 없을까.

 두 사람, 김규항 님과 진중권 님이 불태우는 말나눔은 참으로 부질없다고 느낀다. 아니, 덧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토록 부질없고 덧없는 말나눔이 아니고서는 생각을 나눌 수 없는 이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말나눔으로 서로서로 생각을 펼치거나 생각을 깨우칠밖에 없다고 느낀다.

 나는 딱 한 마디만 하고 싶다. ‘삼월 삼일, 곧 삼짓날인 오늘 자가용 아닌 시외버스를 타고 가까운 시골 아무 데로나 가서 논둑길을 걸어 보셔요. 논둑길에 돋는 새봄 새 풀싹을 들여다보셔요. 이 풀싹 아무 풀이나 톡 뜯어서 옷섶으로 흙을 슥슥 닦은 다음에 입에 넣어 살살 씹어 보셔요. 풀싹이 겨울을 이겨내어 봄맞이 햇살을 받으며 잎을 틔운 맛과 내음을 맞아들여 보셔요. 진보는 바로 논둑길과 들판과 숲속 봄싹에 있습니다.’ 하고.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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