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책읽기


 나라밖으로 나가서 여러 겨레 여러 사람을 만나면 온누리를 바라보는 눈이 넓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넓은 곳을 둘러본 사람치고 눈이 넓어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조그마한 시골자락에서 살면서도 이 시골자락 구석구석 못 밟은 곳이 많습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에도 날마다 몇 시간씩 온갖 골목을 두 다리로 누비면서도 미처 밟지 못한 길이 있습니다. 게다가 날마다 같은 멧길이나 골목을 다니더라도 날마다 새롭게 마주하거나 느끼는 이야기가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나라밖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을 언저리에 머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익힐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씩 날아도 배우고, 배를 타고 몇 시간씩 물살을 갈라도 배우며,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몇 시간씩 달려도 배웁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몇 시간을 다닌다든지 두 다리로 등성이 하나 골짜기 하나 가로지르면서도 배웁니다.

 집에서 아픈 옆지기와 함께 살아가면서 어린 아이를 돌보다 보면 읍내마실조차 버겁습니다. 읍내마실조차 버거운 만큼 하는 수 없이 누리책방에서 책을 사곤 합니다. 그렇다고 자주 사지는 못하고 한 달에 서너 번쯤 삽니다. 그동안 사서 그러모은 책을 다시 읽기도 하고, 아이 보랴 살림 하랴 밥 하랴 빨래 하랴 바쁜 겨를에 치여 책줄 하나 못 읽기도 합니다.

 홀로 살아가며 책줄을 뒤적일 때에는 책줄을 뒤적이면서 배웠습니다. 둘이 살아가며 나 혼자 좋을 대로 살아갈 수 없을 때에는 나와 다르면서 같이 지내는 한 사람 눈썰미와 눈높이를 돌아보면서 배웠습니다. 셋이 작은 집에서 아옹다옹 살아가는 오늘날은 셋이 얼크러지거나 복닥이는 고단하며 지치는 나날을 그대로 배웁니다. 시나브로 네 사람이 이 멧골자락 작은 집에서 부대낄 때에는 또 이대로 무언가를 배우겠지요.

 사람은 나라밖마실에서도 배우고, 헌책방마실에서도 배우며, 대학교에서도 배웁니다. 초등학교만 다녀도 배우고, 학교를 안 다녀도 배우는 한편, 흙을 일구며 살아도 넉넉히 배웁니다. 군대처럼 끔찍한 죽임터에서도 배울 테고, 회사나 공공기관처럼 틀에 박힌 데에서도 배울 테지만, 집에서도 배우겠지요. 나랑 같이 놀자며 눈빛을 말똥말똥 빛내는 아이와 마주하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비행기를 타고 핀란드에 가든 백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든 하버드대학교를 1등으로 마치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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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바닥 방바닥


 날이 갈수록 등바닥이 방바닥하고 찰싹 달라붙는다. 한 번 자리에 누우면 몸을 옆으로 굴리지 못한다. 그저 등바닥을 방바닥에 댄 채 가만히 있는다. 아이가 안아 달라 부르지만 몸을 아이 쪽으로 돌리지 못한다. 팔만 뻗어 아이 손을 잡는다. 아이야, 네 아버지는 네가 이른아침부터 말 안 듣고 속을 썩이기만 하니까 너무도 힘든 나머지 이제 너를 안기도 힘들 만큼 지쳤구나. 이렇게 팔만 뻗어서 네 손을 잡기만 할 테니까 새근새근 잘 자렴. 부디 좋은 꿈길을 누비면서 아침에 즐거이 일어나려무나.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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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51] Office Alpha

 한글로는 ‘알파문구’라 적지만, 정작 이 회사가 쓰는 이름은 우리 말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한글일 뿐입니다. 문방구에 가서 볼펜이나 종이나 붓을 사는 사람은 볼펜이나 종이나 붓을 사지만, 이 물건에 붙는 이름은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이름이 아닙니다. 물건을 만드는 회사에서 더 돋보이고 싶어서 붙이는 이름이요, 여느 사람들이 더 멋스러이 여기거나 좋아할 만한 이름입니다. 우리 스스로 이 땅에서 수수한 삶을 사랑하면서 아끼는 사람이라 한다면, ‘알파문구’이든 ‘Office Alpha’이든 태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속삶과 속마음과 속알맹이를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하면서 겉치레와 겉옷과 겉차림에 마음을 빼앗기니까, ‘Penast’이니 ‘Artmate’이니 ‘SOMA’이니 ‘FABER CASTELL’이니 ‘PRISMACOLOR’이니 ‘DERWENT’이니 하는 이름이 춤을 춥니다. ‘COCA COLA’는 ‘코카콜라’일 수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왜 우리 스스로 ‘hite’나 ‘CASS’여야 할까요. 왜 우리 스스로 ‘Office Alpha’여야 할까요.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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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3 : 사람을 쓰는 책


 아이들하고 책을 읽습니다. 집에서는 어린 딸아이하고 책을 읽고, 집 바깥으로 나오면 멧골학교 아이들하고 책을 읽습니다. 우리 살림집 위쪽으로 멧길을 따라 올라가면 멧기슭에 이오덕학교가 있고, 이곳에서 어린이랑 푸름이하고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하고 읽는 책은 어른인 제가 고릅니다. 어른인 제가 아이들하고 읽는 책을 고른다고는 하지만, 저 스스로 읽으며 참으로 좋다고 느낀 책이기에 아이들하고 함께 읽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저부터 찬찬히 읽으면서 마음이 넉넉해지거나 따스해진다고 느끼는 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아이들 나이를 헤아리니, 아이들은 저보다 서른 살쯤 어립니다. 나이가 조금 많은 푸름이는 저보다 스물세 살쯤 어립니다. 스물세 해 앞서나 서른 해 앞서를 돌아봅니다. 그무렵 나한테 책을 읽어 준 어른이 있었나 궁금합니다. 아주 없지는 않으나 아주 드물었습니다. 어린 나한테 책을 읽어 주려는 여느 어른이나 학교 교사는 몹시 드물었습니다. 아니, 나한테뿐 아니라 내 동무한테도 책을 읽어 주는 어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우리한테 하는 일이라고는 교과서와 참고서와 자습서와 문제집을 던지는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교과서부터 문제집까지 우리 머리에 쑤셔박습니다. 때때로 처넣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서울에 있으며 손꼽힌다는 대학교에 우리들을 더 몰아넣어야 학교이름이 한결 빛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몽둥이를 옆에 끼든 주먹이나 손바닥이나 군화발로 우리를 꾸욱꾸욱 누르든 하면서 시험성적 잘 나오는 시험기계로 우리들을 길들였습니다. 이러니, 책 읽어 주는 어른은 없었어요.

 그런데, 멧골학교 아이들한테 《얘들아 내 얘기를》(새벗,1986)이라는 이원수 님 수필책을 한 꼭지씩 읽히다 보니, 이 책에 실린 이야기를 내 국민학생 때 곧잘 들었다고 떠오릅니다. 어느 분인지 떠오르지 않으나, 공부 때에 우리가 졸립다 하거나 힘들어 하면 으레 이 책에 실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그무렵에는 《얘들아 내 얘기를》에 실린 이야기인 줄 몰랐고,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 글을 어린이를 가르치는 어른이 맑으면서 힘찬 목소리로 들려줄 때에 졸음이 싹 가셨습니다. 그래서 멧골학교 어린이한테 이원수 님 동화도 함께 읽힙니다. 요사이에는 《골목대장》(한겨레아이들,2002)을 조금씩 읽힙니다. 어제 함께 읽은 동화에는 “아! 자유를 좋아할 줄 알고 독립을 좋아할 줄 아는 우리 앵문조는 훌륭한 새가 아닙니까? 갇힌 몸으로 아무리 잘 먹고 지낸들 그게 행복한 생활은 아니겠지요(96쪽)!”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1961년에 일제강점기를 되새기며 쓴 동화를 2011년을 살아가는 어린이가 깊이 받아들이리라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어린이들이 마음밭에 ‘착한 꿈을 키우고픈 어른이 뿌린 사랑씨’ 하나를 심을 수 있으면, 차츰차츰 자라며 나중에 알차며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으리라 믿어요. 책은 한 사람이 참말 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북돋우고자 한 사람이 기쁘게(또는 슬프게) 살아온 땀방울을 담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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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하고 책읽기


 아침마다 밥을 해서 차리고, 밥을 먹인 뒤 치우며, 밥그릇을 설거지한 다음, 비로소 한숨을 돌리면 어느덧 한낮입니다. 하루란 참 빨리도 흐르는군요. 이렇게 흐르는 나날이 쌓이거나 모이면서 아이하고 함께 살아온 지 세 해가 꽉 차는 올해입니다. 올해에는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가 태어납니다. 둘째가 태어나 두 아이와 한 어른한테 밥을 먹이는 살림을 꾸리자면, 아마 겨우 기지개를 켤 만큼 숨돌릴 때란 한낮이 아닌 저녁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기지개를 켤 말미란 한 차례도 없을는지 몰라요.

 두 아이를 보듬는 동안 글조각을 만질 틈이란 하나도 없을는지 모릅니다. 아마, 글조각은커녕 책줄 하나 읽지 못할 수 있겠지요.

 예부터 어르신들은 젊은이한테 말씀했습니다. ‘젊은이들아(또는 아이들아), 눈이 밝을 때에 책을 읽어라.’

 나는 생각합니다. ‘아아아, 아이가 잠들었을 때에 두 눈 부릅뜨고 한 줄이라도 읽어라. 아이가 아직 하나일 때에 두 줄쯤은 읽어라. 아이가 아직 없으면 석 줄은 읽어라. 짝꿍하고 살아가는 살림집이 아니라면 넉 줄은 읽어라. 홀로 바지런히 배우는 나날이라면 백만 줄은 읽어라.’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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