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 더글러스 러미스의 평화론
C. 더글러스 러미스.쓰지 신이치 지음, 김경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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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석 장 느낌글 002]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은 C.더글러스 러미스 님과 쓰지 신이치 님이 나눈 이야기를 그러모읍니다. 두 사람이 따로 글을 쓰기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로 우리 삶터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어, 이 이야기를 통째로 책 한 권으로 갈무리합니다. 좋은 넋으로 살아가고픈 꿈을 이야기하고, 저마다 생태와 환경 이야기에 어떻게 처음으로 눈길을 두었는가를 밝히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곁에서 듣는 사람들이 시나브로 ‘삶과 사람을 읽는 눈’을 깨닫도록 돕습니다. 누군가는 “아무리 경제발전이 잘된 사회라도 인간은 먹을 것을 먹어야 살 수 있고, 그 먹을 것을 계속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187쪽).” 같은 이야기에 밑줄을 긋겠지요. 내가 흙을 일구어야 내 살림을 꾸리는데, 내가 흙을 일구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내 몫까지 흙을 일구어야 합니다. 내가 배를 타고 물고기를 낚지 않으면 누군가는 내 몫으로 물고기를 잡아야 하고, 내가 짐승을 길러 목을 따지 않으면 누군가는 내 몫으로 뭍고기 목을 따서 살점을 도려야 합니다. 몸소 살림을 꾸리며 밥거리를 얻을 때에 참다이 평화와 기쁨과 사랑과 아름다움이 자리잡습니다. 나 스스로 내 밥그릇을 착하게 마련하지 않으니 전쟁과 경제개발이 불거집니다. (4344.3.20.해.ㅎㄲㅅㄱ)

― C.더글러스 러미스·쓰지 신이치 씀/김경인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201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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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서랍에서 튀어나온 묵은 40만 원


 책상서랍을 갈무리한다. 여러 해 동안 거의 돌보지 않고 이것저것 집어넣기만 한 책상서랍을 갈무리한다. 책상서랍을 쓸 일이 없는 나는 자잘한 물건을 끊임없이 집어넣기만 하니까, 나한테는 튼튼한 종이상자만 있으면 된다. 굳이 책상서랍에 자질구레한 물건을 처박을 까닭이 없다. 서랍 하나는 내 몫으로 남기고 다른 칸은 차근차근 비운다. 옆지기가 책상서랍을 쓸 수 있게끔 비운다.

 책상서랍을 비우다가 돈을 찾는다. 두 가지 돈을 찾는다. 흰봉투에 담긴 돈은 봉투마다 20만 원에서 2∼3만 원쯤 모자란다. 거의 40만 원이 되는 돈이 불쑥 튀어나온다.

 40만 원 가까운 이 돈은 나로서는 허리띠 조르는 살림이면서 뒷날을 손꼽으며 아낀 돈이었을 테지. 돈 만 원이 아쉬운 살림을 벌써 몇 해째 꾸리는가. 돈 만 원이 아니라 돈 천 원 없어 숨막히던 날이 꽤 길었으니까, 이렇게 큰 돈이 책상서랍에서 잠자던 일이란 참 딱하고 안쓰럽다.

 그런데 이 돈이 그때그때 내 손에 쥐어졌더라도 내 살림은 넉넉했을까. 이 돈이 그때그때 내 손에 쥐어졌다면, 며칠 지나지 않아 책값으로 모조리 날아가지 않았을까. 어려운 살림이면서도 책상서랍에 고이 묻었으니까 오늘까지 남을 수 있지 않았는가.

 이 돈을 언제 얻었는가 곱씹는다. 먼저, 봉투 하나. 이 봉투는 지난해 여름에 우리 살림집을 인천에서 시골로 옮길 때에 받은 돈. 돈도 마땅히 없으며 도서관 책짐을 옮기느라 짐차며 사다리차며 일꾼이며 이백만 원 즈음 써야 했으니, 이 돈 걱정으로 참 빠듯했는데, 우리 식구를 걱정해 준 고마운 이웃 아주머님이 봉투에 이십만 원이나 넣어 주셨다. 이 가운데 이만 원만 빼서 쓰고는 책상서랍에 넣었나 보다.

 다음 봉투 하나. 다음 봉투는 세뱃돈으로 받았던 봉투. 셋째 작은아버지가 몇 해 앞서 설날에 세뱃돈으로 건넨 봉투이다. 언제였을까. 만 원짜리가 새돈으로 바뀌던 해에 받은 봉투인데, 이 봉투에는 만 원짜리 석 장이 빈다. 아마 이십만 원을 주셨을 텐데 3만 원만 빼내어 쓴 듯하다. 만 원짜리 새돈이 갓 나오며 반닥반닥할 뿐더러 돈 번호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열일곱 장이다.

 새돈이 들어오면 손이 떨려 못 쓰는 내 삶을 돌아본다. 내 삶이 이러다 보니, 이 엄청난 세뱃돈을 못 쓰고 서랍에 고이 모셨나 보다. 옆지기하고 함께 살기 앞서부터 책상서랍에서 잠든 돈이다. 앞으로는 이 돈을 쓸 수 있을까. 앞으로는 이 묵은 새돈을 깰 수 있을까.

 나는 책방에서 책을 사며 책값을 치를 때에는 가장 깨끗한 돈을 내민다. 다른 가게에서는 덜 깨끗한 돈을 내민다. 지갑에 만 원짜리이든 오천 원짜리이든 천 원짜리이든 빳빳한 차례에 따라 넣는다. 책값을 치를 때에는 맨 뒤에 놓은 가장 빳빳한 종이돈부터 골라서 내민다. 똑같은 돈이라 하더라도 나로서는 헌책방이건 새책방이건, 내 마음밭을 살찌울 고마운 책을 장만하는 마당인 만큼, 책값보다 넘치는 돈을 낼 주머니는 못 되고, 모자라나마 가장 깨끗한 돈을 내밀기만 한다.

 그나저나 40만 원에서 5만 원이 빠지는 돈이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나는 틀림없이 책을 사려 하겠지. 그동안 침만 바르던 나라밖 훌륭한 사진책을 사려 할 테지.

 그러나, 이러면 안 된다. 이 돈만큼은 내 책을 사는 데에 쓰지 말자. 우리 옆지기가 서너 해 앞서부터 노래를 부르던 리코오더를 사자. 내 국민학교 적 학교 앞 문방구에서 천 원인가 이천 원인가에 팔던 싸구려 플라스틱 리코오더가 아니라, 음계와 화음을 또박또박 잘 잡으며 고즈넉한 소리꽃을 피우는 좋은 리코오더를 장만하자. 그러고 나서 아이 몫으로 조금 남겨야지. 나중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저 하고픈 무언가 있을 때에 쓰라며 얼마쯤 빼서 따로 모아야지. (4344.3.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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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춘천에 자리한 〈경춘서점〉은 한 곳에서 참으로 오래도록 뿌리를 박았습니다. 마흔 해 넘게 한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러다가 2010년 여름날 새 자리로 옮깁니다. 새 자리로 옮긴 줄 아는 사람은 이 헌책방을 드나드는 사람뿐일 테지요. 춘천시장이든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이든 간행물윤리위원회 일꾼이든 헌책방 한 곳이 옮기거나 말거나 알 턱이 없습니다. 예전 자리 사진이든 새 자리 사진이든 찍는 사람이란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헌책방처럼 한 자리에 오래도록 뿌리박아 장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잘 못 알아채는 가게는 참 드뭅니다.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모르는 채 잘 살아갑니다. 책이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기 때문일까요. 우리 삶이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기 때문인가요. 책손 한 사람 고맙게 여기며 책 한 권 고마이 다루는 헌책방이 춘천에는 두 군데 있습니다. (4344.3.19.흙.ㅎㄲㅅㄱ)


- 2009.9.7. 강원도 춘천시 경춘서점

 

(옛자리 사진 -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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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은 모두들 비슷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헌책방마다 갖춘 책은 어슷비슷하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비슷비슷하게 생기고 저마다 어슷비슷하달 책을 갖추었다고 합니다만, 어느 헌책방에 가든 똑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똑같은 책을 갖추었다지만 다 다른 헌책방이고, 다 다른 사람이 일구는 헌책방이며, 다 다른 이야기가 서린 헌책방입니다. 다 다른 헌책방에서 똑같은 책을 장만하는 동안 다 다른 이야기를 한결같이 받아들입니다. (4344.3.19.흙.ㅎㄲㅅㄱ)


- 2010.10.14. 서울 강동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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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ゆけば猫―ニッポンの猫寫眞集 (大型本)
이와고 미츠아키 / 日本出版社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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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고 아끼면서 사진을 찍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2] 이와고 미츠아키(岩合光昭), 《旅ゆけば猫》(日本出版社,2005)



 사진이 사람들한테 차츰 퍼지면서 누구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이름나거나 손꼽히는 사진쟁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내 짝꿍’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는 사진찍기에 풋내기나 새내기라 하더라도 전문 사진쟁이보다 훨씬 잘 찍는다고.

 사진 풋내기나 사진 새내기일지라도 내 짝꿍을 사진으로 가장 잘 담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나입니다. 전문 사진쟁이가 제아무리 멋진 솜씨를 뽐내더라도 ‘짝꿍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찍히기 어렵습니다. 우리 집 아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도 다른 사람이 찍을 때하고 내가 찍을 때에는 사뭇 다릅니다. 같은 자리에서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더라도 내 아이를 내가 담을 때랑 내 아이를 다른 사람이 담을 때랑 놀랍도록 다릅니다.

 사랑하는 내 짝꿍은 사진기 다루는 솜씨로 담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내 짝꿍이기 때문에 오로지 사랑하는 마음길과 눈길과 손길로 담을 뿐입니다.

 전문 사진쟁이가 ‘돈을 내어 주문한 사진’을 누구보다 잘 찍는 까닭은 달리 있지 않습니다. ‘돈을 내어 주문한 사람 입맛과 눈맛’에 맞추어서 찍으니까, 돈을 치르며 사진을 사는 사람한테 가장 어울리거나 걸맞거나 쓸모있는 사진을 낳습니다. 사진 풋내기나 사진 새내기는 ‘돈을 내어 주문한 사람 입맛과 눈맛’을 아직 모릅니다. 섣불리 내 목소리나 내 눈길을 집어넣습니다.

 상업사진을 하는 사람은 상업사진밭에서 가장 뛰어나거나 훌륭합니다. 그러나, 상업사진밭에서는 상업사진일 뿐이지, 다른 사진밭에서까지 뛰어나거나 훌륭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진밭에서는 제법 잘 찍는다 할 수 있겠지요. 다큐사진을 하는 사람한테도 다큐사진밭에서 가장 뛰어나거나 훌륭하다 할 테지요. 그러나 다큐사진을 하는 사람이 상업사진밭에서든 다른 사진밭에서든 뛰어나거나 훌륭하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 사진밭에서 내 솜씨를 빛낼 뿐입니다. 내 짝꿍을 사랑하는 사람은 내 짝꿍을 사랑하는 데에서 누구보다 돋보이거나 아름답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자리를 넘보거나 건드리지 못해요.

 사진찍기란 손놀림이나 손맛이나 손재주가 아닙니다. 사진찍기는 저마다 살아가는 자리에 걸맞게 제 삶을 맞추어 사랑하는 손길이자 마음길이자 눈길입니다. 상업사진을 한대서 더 나쁠 까닭이 없고 다큐사진을 한대서 더 좋을 일이 없습니다. 상업사진은 상업사진대로 아름답고, 다큐사진은 다큐사진대로 어여쁘며, 내 짝꿍 찍는 사진은 내 짝꿍 찍는 사진대로 아리땁습니다.

 이와고 미츠아키(岩合光昭) 님이 고양이 삶자락을 담은 사진책 《旅ゆけば猫》(日本出版社,2005)를 들여다봅니다. “길을 떠나면 고양이”나 “마실을 가면 고양이”나 “나들이길에는 고양이”라 할 만한 이 사진책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아이와 함께 즐겁습니다. 우리 집 아이는 고양이라든지 개라든지 온갖 짐승이 나오는 그림책이나 사진책을 퍽 좋아합니다. 네 살 난 아이한테 이 책을 내밀었더니 “벼리 책이야.” 하면서 제 어머니나 아버지조차 못 보게 가슴으로 꼭 껴안기까지 합니다. “너, 밥 먹던 손으로 책을 만지면 책이 더러워지지.” 하며 수건을 내밉니다. 아이는 옷에다 손을 슥 문지르다가 수건으로 손가락 사이사이 말끔히 닦습니다. 그러고는 제 곁에 이 사진책을 놓습니다. 이러다가다 다른 놀이를 하며 책은 어느새 잊지만.

 고양이 사진으로 가득한 《旅ゆけば猫》를 여러 번 가만히 넘기면서 생각합니다. 이토록 길고양이나 골목고양이나 바다고양이나 시골고양이를 푸근하면서 따사로이 담는 사람은 드물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를 사랑하거나 아끼는 이라면, 누구나 이만큼이든 저만큼이든 그만큼이든 사진으로 담을 수 있겠지요. 고양이를 사랑하거나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사진이든 저런 사진이든 그런 사진이든 꿈조차 꾸지 않을 뿐더러 생각마저 안 할 테고요.

 이와고 미츠아키 님은 고양이를 사랑하거나 아끼는 넋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달리 남다른 장비를 쓴다거나 남다른 솜씨를 부리지 않습니다. 꼭 고양이 눈높이와 삶높이에 걸맞게 마주하면서 사진놀이를 즐깁니다.

 이와고 미츠아키 님은 고양이를 사진으로 ‘잘 찍지’ 않습니다. 이와고 미츠아키 님은 모든 고양이를 고양이 그대로 사랑하며 아낍니다. 모든 고양이를 고양이 그대로 사랑하며 아끼는 마음밭으로 고양이를 당신 ‘사진감으로 고릅’니다.

 오래도록 깊고 넓게 사랑하는 길이기에, 이와고 미츠아키 님 눈에 고양이가 들어오면 고양이를 살가우며 푼더분하게 담습니다. 이와고 미츠아키 님 눈에 여느 일본 살림집이 들어오면 이 여느 일본 살림집을 어여쁘며 빛곱게 담습니다. 이와고 미츠아키 님 눈에 바닷마을 사람들 모습이 들어오면 이 바닷마을 사람들 모습을 애틋하며 곱게 담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길이란 없습니다. 사진기를 잘 다루는 법이란 없습니다. 그저 꾸준히 찾고 돌보는 사람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예 내 사진기를 사랑하며 아끼고 돌볼 줄 알면 됩니다.

 내 사랑하는 짝꿍은 내 사랑하는 짝꿍 그대로 사진으로 옮기면 됩니다. 더 예뻐 보이도록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더 멋져 보이도록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찍는다든지 더 귀엽게 느끼도록 찍을 일이란 없어요. 기쁠 때에는 기쁜 빛을 담고, 슬플 때에는 슬픈 빛을 담으며, 괴로울 때에는 괴로운 빛을 담습니다. 고단할 때에는 고단한 빛을 담고, 좋아할 때에는 좋아한 빛을 담으며, 아플 때에는 아픈 빛을 담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로서 사진을 담습니다. 이와고 미츠아키 님 고양이 사진은 ‘고양이를 잘 찍자’라든지 ‘고양이를 좋아하자’라든지 ‘고양이가 예뻐’라든지 ‘고양이가 으뜸이야’라든지 외치는 사진이 아닙니다. 곁에서 더없이 사랑하면서 아낌없이 어깨동무하는 삶을 나란히 마주하는 이야기를 꽃피우는 사진입니다.

 사랑하면 넉넉합니다. 아끼면 즐겁습니다. 좋아하면 아름답습니다. 믿으면 따사롭습니다. 사진을 찍고픈 분이라면 사진기를 장만하기 앞서, 내 삶을 사랑하고 내 동무를 아끼는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4344.3.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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