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조선인님의 "옥주현이 맞은 돌은 몇 개인가"

텔레비전이 없기에 나가수가 무언지 모르지만,
옥주현 님이 옥타브는 잘 올라가지만,
노래는 옥타브로 부르지 않아요.

임재범 님도 노래를 잘 부르고,
저도 임재범 님을 좋아하지만,
나가수라 하는 데에, 임재범 님하고 조덕배 님이 함께 나온다면
어떻게 될는지는 모를 일이에요.

옥주현 님하고
민해경 님이 함께 나온다면...
'노래를 성적표처럼 성적 매기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쉽게 알겠지요.

똑같은 노래 하나를 놓고,
가수마다 어떠한 개성과 결로 즐기는가를 보여주도록 한다면,
방송을 보는 사람들도 '생각이 조금은 바뀌'면서
노래를 즐기거나 받아들이는 새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누구를 더 좋아하거나 팬이거나 하는 일보다,
노래가 가수 삶과 내 삶에서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방송이니 언론이니 뭐이니에 휘둘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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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62] 우리들 친구

 혀가 짧아도 애쓰다 보면 혀짤배기 소리를 안 낼 수 있는지 모릅니다. 혀가 짧기에 더 힘쓰면서 혀짤배기 소리에서 벗어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혀가 짧기에 혀짤배기로도 낼 수 있는 소리를 찾아 나한테 걸맞거나 즐거울 말마디를 찾기도 합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린 날, 국어를 배우는 때에 으레 책에 적힌 글을 읽도록 시키는데, 나로서는 “우리의 무엇무엇” 하고 나오는 대목이 읽기 힘들었습니다. 천천히 똑똑 끊어 읽으면 읽을 만하지만, 어느 교사이든 이렇게 읽지 못하도록 했고, 동무들은 깔깔거리며 놀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웃음소리와 꾸지람을 무릅쓰고 빨리 읽을라치면 소리가 새거나 혀가 꼬였어요. 이때에 내가 했던 생각은 ‘책에 적힌 글을 그대로 읽으라면 어찌할 수 없지만, 내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에는 이렇게 안 하겠어.’였어요. 어린 날 동무들이 많이 듣고 부르던 노래 〈빨간머리 앤〉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대목을 나는 혼자서 조용히 “우리들 친구”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이제 네 살 된 딸아이한테도 아버지는 〈빨간머리 앤〉 노래 끝자락을 “우리들 친구”로 고쳐서 부릅니다. 아이 어머니는 “우리의 친구”로 똑똑히 부를 줄 알고, 아이도 이렇게 배우지만, 아버지가 “우리들 친구”라 하니, 요새는 아이도 이렇게 부릅니다. (4344.7.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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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삶은 어디에서든 삶
 [책읽기 삶읽기 65] 제레미 머서,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시공사,2008)


 프랑스 파리에 있다고 하는 헌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보낸 나날을 돌이키면서 적바림한 이야기책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시공사,2008)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고서점’이라는 낱말을 쓰지만, ‘고서(古書)’와 ‘헌책’은 다르지 않습니다. ‘헌책’을 한자말로 옮기면 ‘古書’가 될 뿐입니다. 때로는 ‘옛책’이라 할 만할 텐데, 수백 해를 묵은 오래된 책, 말 그대로 옛책을 사고파는 일은 퍽 드물고, 퍽 가까운 요즈음 책을 사고팔 터이니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써야 걸맞습니다.

 한국사람은 헌책방을 헌책방이라는 이름 그대로 쓸 줄 모릅니다. ‘헌-’이라는 앞가지를 붙이면 어딘가 께름하다고 여깁니다. ‘헌것’이나 ‘헌옷’이라 할 때에는 이제 못 입을 만큼 지저분한 옷이라고 여기고 맙니다. ‘헌-’이라는 낱말은 “오래되어 처음 모습 같지 않은”을 가리킬 뿐이지, “오래되었기에 너덜너덜하거나 못 쓰게 된”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낱말뜻부터 올바르게 헤아리지 않아요.

 생각해 보면, 오래된 책이 아니더라도 한 번 사람 손길을 타면 “처음 모습 같지 않”습니다. 손자국이 묻거나 손때를 타니까요. 모든 책은 헌책이 돼요.

 옷은 ‘헌옷’입니다. 굳이 한자말로 ‘구제(舊製)’라 적거나 영어로 ‘빈티지(vintage)’라 적어야 멋이 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빈티지’는 포도술을 가리키는 영어입니다. 껍데기를 씌운대서 빛이 나지 않는 말이요 옷이며 책입니다. 겉치레를 해야 남다르거나 돋보이거나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스러울 속살이거나 알맹이여야 합니다. 꾸밈없이 아름다운 넋이거나 얼이어야 해요.


..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탐으로써 신체적인 위협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풀어야 할 매듭들이 남은 채였다. 우선 돈이었다. 신문사의 급여는 후했고 부수입으로 범죄 실화 책을 써서 들어오는 인세도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그 돈을 다 써 버렸다. 매일 밤 술과 음식으로 흥청거렸고, 햇살 좋은 섬으로 겨울 휴가를 갔으며, 꼭 필요하지도 않은 독일산 자동차를 몰았고, 전자 제품을 말도 안 되게 사들였다. 거의 틀지 않는 CD가 장식장 몇 개를 차지했다. 어느 해에는 설거지하는 게 귀찮아서 일회용 접시와 포크, 컵을 잔뜩 사들이기도 했다 ..  (22쪽)


 이야기책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을 쓴 제레미 머서 님은 캐나다에서 신문기자로 일할 때에는 한껏 껍데기와 겉치레로 둘러싸인 채 지냈습니다. 아니, 껍데기만 볼 줄 알고 겉치레만 할 줄 알았습니다. 글쓴이 둘레에는 글쓴이와 매한가지라 할 만한 사람들만 있었고, 서로서로 얼마나 껍데기요 겉치레인가를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아주 마땅하며 즐겁고 넉넉한 삶이라고 여기기까지 합니다.

 잘 된 일인지 안 된 일인지 알 수 없으나, 글쓴이는 캐나다에서 흥청망청 누리던 삶을 더 이을 수 없습니다. 얼른 몸을 빼내어 멀리멀리 내빼야 합니다.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빈털터리인 채 비행기에 올라타고 프랑스 파리로 갑니다. (그런데 빈털터리가 되었다면서 어떻게 프랑스 파리로 가서 떨꺼둥이가 될 생각을 했다지?) 스스로 겉멋을 버리지 못했으니 프랑스 파리로 갔을 테지요. 스스로 겉멋이나 껍데기를 벗을 줄 알았다면, 글쓴이는 캐나다 깊은 숲속이나 두메나 멧골로 들어갔으리라 생각합니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서 센 강가를 거닐다가 헌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만났기에, 이곳에서 여러 해 지낸 삶을 돌이키면서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을 씁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캐나다 깊은 숲속에 깃들면서 너른 자연이 베푸는 따사로운 품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새로운 윌든’이나 ‘새로운 초원의 집’을 썼을 수 있겠지요.


.. 열심히 공부하는 아블리미트가 사라지자 서점은 더욱 가벼워진 듯했다. 그리고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서점이 정말 확실히 가벼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럽과 북미의 대학에서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열차를 가득 메운 배낭 여행객들이 파리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여행 안내서마다 실려 있었으므로, 필히 보아야 할 관광 목록에 서점을 넣고 30초 만에 서점을 휙 둘러보는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았다 ..  (284∼285쪽)


 삶은 어디에서든 삶입니다. 역사가 깊은 책방 한 곳에서도 삶이고, 역사가 짧은 책방 한 곳에서도 삶입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다는 이름난 헌책방도 삶이며, 제주섬이나 춘천히 한켠에 곱게 자리한 헌책방도 삶이에요. 제레미 머서 님이라면, 프랑스 파리에서뿐 아니라 진주시나 청주시에 깃든 헌책방에서 일꾼으로 여러 해를 보냈더라도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을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하루하루 살아숨쉬는 헌책방”을 썼을는지 모릅니다.

 시간은 멈출 수 없거든요. 시간은 고일 수 없거든요. 시간은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거든요.

 시간은 흘러요. 시간은 달라져요. 시간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백 해 앞서 누군가 만든 책이라 하더라도 백 해 앞선 때를 살던 사람이 이 책을 읽을 때하고, 백 해가 흐른 오늘날 내가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맛과 멋과 깊이와 느낌이 아주 다릅니다. 책이 책 그대로가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 지난 1월 비 오는 일요일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발견한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조지는 내가 더는 말을 못하게 막았다. “있잖은가, 내가 항상 이곳에 대해 꿈꾸는 게 있어. 저 건너 노트르담을 보면, 이 서점이 저 교회의 별관이라는 생각이 들곤 하거든. 저곳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별관.” ..  (313쪽)


 헌책방이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이라서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새책방도 좋고 책쉼터도 좋으며 북카페도 좋습니다. 책으로 삶을 꾸리는 책삶인 책꾼이라면 어떠한 책터가 되더라도 좋아요.

 내가 쉬고 내가 살며 내가 일할 곳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보면 됩니다. 내가 놀며 내가 어울리고 내가 발을 디딘 곳에 무엇을 놓을는지 생각하면 됩니다. (4344.7.4.달.ㅎㄲㅅㄱ)


―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제레미 머서 글,조동섭 옮김,시공사 펴냄,2008.1.2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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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바라본 기자 - 전민조 포토 에세이
전민조 지음 / 대가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사진이 사진으로 되는 길을 찾기
 [찾아 읽는 사진책 39] 전민조, 《기자가 바라본 기자》(대가,2008)


 사진기를 손에 쥐고 사진을 찍지만, 막상 사진길을 걷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연필이나 자판을 손에 쥐고 글을 쓰지만, 정작 글길을 걷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 또한 무척 많아요.

 사진길이란 돈을 버는 길, 곧 돈길이 아닙니다. 글길이란 돈을 벌어들이는 길, 그러니까 돈길이 아니에요.

 어쩌면 누구나 다 알 만한 이야기라 할 테지만, 가만히 보면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란, 다른 한 사람한테 있는 돈을 보는 길이 아니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돈이 있느냐 없느냐는 대수롭지 않아요.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인지, 내 사랑을 듬뿍 쏟거나 바치거나 나눌 사람인지, 나와 함께 사랑꽃을 피우려는 사람인지를 바라볼 뿐입니다. 어느 한 사람을 만나서 함께 살아간다 할 때에는, 이이가 돈을 잘 벌든 못 벌든 그닥 대수롭지 않아요. 돈을 잘 벌면 잘 버는 대로 알뜰히 갈무리해서 내 둘레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하고 예쁘게 쓰면 됩니다. 돈을 못 벌면 못 버는 대로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나 스스로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살림돈을 벌면 돼요. 사랑길이란 사랑을 보며 사랑을 믿는 길이에요.

 사진길이란 사진을 바라보며 사진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사진을 찍어 돈을 번다거나 사진으로 예술작품을 만든다거나 사진으로 이름을 날리는 길이 아닙니다. 사진 강의를 한다든지, 사진학과 교수가 된다든지, 사진학 논문을 쓰는 길이 사진길이 될 수 없습니다. 사진기자가 되거나 사진작가가 되는 길 또한 사진길이지 않아요. 사진은 오직 사진과 내 삶을 하나로 그러모으면서 나와 이웃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기자가 아니어도 찍는 사진이고 작가가 아니라도 찍는 사진이니까요.

 요리사가 아니어도 누구나 밥을 합니다. 요리사가 아니라지만 사랑스러운 손길로 사랑스러운 밥을 차려서 사랑스러운 살붙이하고 먹습니다.

 교사자격증이 있어야 내 아이를 잘 가르치거나 키우지 않습니다. 한국어능력시험 몇 급 자격증이 있어야 내 아이가 한국에서 살아가며 이웃 한국사람과 주고받을 한국말을 알뜰살뜰 가르치거나 물려주지 않아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얼마나 사랑하며, 어떻게 아끼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삶을 사랑하듯이 내 말을 사랑하고, 내 말을 사랑하는 만큼 내 삶을 사랑해요.

 사진기자로서 이웃 사진기자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은 전민조 님은 신문사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기자가 바라본 기자》(대가,2008)라는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전민조 님이 몸담은 신문사에서 마주한 숱한 기자들 모습과 삶과 이야기를 사진 하나에 글 하나를 엮어 사진책으로 내놓습니다.

 이 가운데 “최일남 기자는 전두환 정권 때 특별한 이유 없이 해직된 기자였다 … 필자는 슬쩍 그의 인터뷰 노트를 보았다. 질문할 사항이 대학노트 한 권에 꽉 차 있었다. 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기사 한 줄 한 줄에 목숨을 걸 듯 피로 글을 쓰는 것 같았다. 저렇게 지독하게 인터뷰 자료를 준비해서 글을 쓰는데 사진도 셔터만 눌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196쪽).” 하는 이야기를 곰곰이 되씹습니다. 사진기자였던 전민조 님은 이웃 기자를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살가웁거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기자한테서는 살가웁거나 아름다운 모습을 배웁니다. 어딘가 아쉽거나 어수룩한 기자한테서는 나 스스로 얼마나 아쉽거나 어수룩한가를 뒤돌아보며 배웁니다. 수없이 취재를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내 삶과 사진이 어느 만큼 내 삶과 사진을 빛낼 만큼 튼튼한가를 되짚습니다.

 사랑이 좋으니 사랑을 합니다. 내 살붙이가 좋으니 내 살붙이가 먹을 밥을 차리고 입을 옷을 빨아서 개며 함께 지내는 집을 건사합니다. 사진이 좋으니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찍습니다. 더 낫다는 솜씨를 자랑하는 사진기를 장만해서 찍을 수 있고, 내 주머니에 걸맞게 값싼 사진기를 마련해서 찍을 수 있습니다. 값싼 사진기라서 사진이 더 돋보이지 않고, 값비싼 사진기라서 사진이 더 모자라지 않습니다. 필름이라서 더 훌륭하거나 디지털이라서 더 못나지 않습니다. ㄱ신문 기자이니까 보도사진이 더 알차지 않고, ㄴ잡지 기자이니까 패션사진이 더 예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쥐는 사람 매무새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목숨을 걸 듯 피로 글을 쓰는” 취재기자는 목숨을 걸 듯 피로 글을 쓰는 느낌과 빛이 서립니다. 그때그때 마감에 쫓기어 턱걸이로 글을 채우는 취재기자는 마감에 쫓기어 턱걸이로 글을 채운 느낌과 결이 깃듭니다.

 요즈음 수없이 떠도는 ‘서평단’ 사람들처럼 ‘주례사 서평을 쓰는 사람’은 주례사 서평 느낌과 무늬가 감도는 글을 쓸 뿐입니다. 학자가 되고자 글을 쓰는 사람은 학자 티가 물씬 나는 글을 쓰겠지요. 대중성을 바란다는 글쟁이나 지식인은 요즈막 이 나라 사람들 흐름 그대로 영어를 곧잘 섞으며 지식 자랑이 살며시 묻어나는 글을 쓸 테고요.

 사진기자이기 때문에 로모사진기를 안 써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기자이면서 파노라마사진기를 쓸 수 있습니다. 집에서 내 아이를 사진으로 담으니 똑딱이로 쓸 수 있고, 손전화로 써도 즐겁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삶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는 내 삶을 아름답게 빛내고 싶어서 내가 사랑하는 살붙이하고 날마다 살을 부빕니다. 내 보금자리가 십 억 부동산 아파트이건 오천만 원 전세 아파트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달삯 삼십오만 원을 치르는 골목집 2층 벽돌집이건 한 해에 오십만 원을 내며 살아가는 시골마을 외딴집이건 대단하지 않습니다. 내 사랑이 깃들고 내 사랑을 나누는 고운 짝꿍하고 어깨동무하면 즐겁습니다.

 사진이 사진으로 되는 길은 사진으로 한몸이 되는 사랑길입니다. 사진으로 담을 이야깃거리를 멀디먼 나라밖이나 두메자락에서 찾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을 이야깃거리는 커다란 도시 밤하늘을 빛내는 불빛에 있지 않고, 깊디깊은 숲속 높직한 늙은나무에 있지 않아요.

 모두 사진이 됩니다. 내 삶을 함께하는 내 사랑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입니다. 사랑을 함께하는 사진인 줄 생각하며 느끼고 싱긋 웃을 수 있을 때에, 또 사랑을 나누는 삶이라고 헤아리고 느끼는 한편 가슴 에며 울 수 있을 때에, 바야흐로 사진 하나 씩씩하게 뜀박질을 하면서 태어납니다. (4344.7.3.해.ㅎㄲㅅㄱ)


― 기자가 바라본 기자 (전민조 사진·글,대가 펴냄,2008.8.25./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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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팽이 책읽기


 나는 내가 읽고 나서 좋았다고 느낀 책을 덮으면, 나 스스로 참 좋구나 하고 느낀 넋으로 좋은 사랑을 담는 느낌글을 씁니다. 이와 함께, 내가 읽으며 참 얄궂구나 싶은 책이 있을 때에는, 이 얄궂구나 싶은 책을 바라보는 슬프며 괴로운 느낌글을 쓰고야 맙니다.

 달팽이는 빨간 열매를 먹으면 빨간 똥을 눕니다. 달팽이는 푸른 잎사귀를 먹으면 푸른 똥을 눕니다. 달팽이는 노란 꽃을 먹으면 노란 똥을 눕니다. 사람도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똥빛과 똥내와 똥꼴이 달라집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누구랑 이웃으로 지내느냐에 따라 말과 글과 넋과 꿈이 달라지겠지요.

 빨간 열매를 먹고 나서 하얀 똥을 누기를 바랄 수 없고 바라서도 안 되는데, 어떠한 책을 읽더라도 어떠한 사람을 마주하더라도 어떠한 일을 겪더라도, 내 몸에서 샘솟는 웃음과 눈물을 사랑말과 믿음글로 가다듬을 수 있는 삶이 되자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내 책읽기가 사랑읽기로 거듭나고, 내 글쓰기가 사랑쓰기로 새로워질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4.7.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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