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 동물농장.1984년 e시대의 절대문학 6
조지 오웰 원작, 박경서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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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을 읽으면서 즐거운 까닭
 [책읽기 삶읽기 67] 박경서, 《조지 오웰 (읽기의 즐거움)》(살림,2005)



 조지 오웰 님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판으로 나옵니다. 예전에도 이러했고 오늘날에도 이러합니다. 조지 오웰 님 책 가운데 《동물농장》과 《1984》가 여러 사람 번역으로 나올 뿐 아니라, 《위건부두로 가는 길》처럼 당신 스스로 밑바닥 삶을 몸소 겪으며 적바림한 이야기도 여러 사람 번역으로 나옵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일찍부터 추천·명작도서로 손꼽히는 조지 오웰 님 책입니다. 논술을 헤아리든 독후감 숙제를 써야 하든, 이 나라 푸름이라면 조지 오웰 님 책 한 권쯤 읽고 느낌글을 써 본 적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거의 모든 푸름이라 할 만한 이 땅 아이들이 조지 오웰을 읽기는 읽는데, 조지 오웰이 왜 글을 썼고 무슨 글을 썼으며 어떻게 글을 썼는지를 함께 느끼거나 받아들이려나요.

 곰곰이 돌이키면, 조지 오웰뿐 아니라 김동인이든 이효석이든 김유정이든 황순원이든 서정주이든 윤동주이든 한용운이든 이육사이든 신경림이든, 학교에서 읽으라 시키면 읽고, 논술시험 공부를 하라 하면 공부를 하곤 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푸름이 스스로 조지 오웰을 알아채거나 김유정을 알아내는 일이란 없겠지요. 푸름이 스스로 책방마실을 하며 여러 가지 책을 찬찬히 돌아보다가 조지 오웰에 흠뻑 젖어든다든지, 신동엽이나 김수영한테 살며시 녹아든다든지 하는 일이란 있을까요.


.. 독자들은 작품을 직접 읽어 보지 않고 그런 식으로 내용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내용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그 소설을 읽어 보았다는 착각에 빠진다 … 오웰은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이데올로기나 사회를 거부하고 거기에 과감히 맞선 작가이다 ..  (10∼11쪽)


 번역을 하는 박경서 님은 《조지 오웰 (읽기의 즐거움)》(살림,2005)을 내놓습니다. 조지 오웰 님 책을 한글로 옮기면서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깨달은 이야기를 곰곰이 적바림합니다. 조지 오웰을 더 잘 읽거나 제대로 알아채자는 이야기보다는, 조지 오웰이 어떠한 나라에서 어떻게 살면서 어떠한 글을 어떻게 써서 어떠한 사람한테 어떻게 읽히고 싶었는가를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예전에 나온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든, 요즈음 다시 나오는 책을 새책방에서 마주하며 읽든, 조지 오웰 님 글자락을 하나하나 더듬으면, 박경서 님이 《조지 오웰 (읽기의 즐거움)》에서 적바림하듯이 “하층민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영혼까지 침투해 그들의 삶을 느끼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 예나 이제나 이렇게 밑바닥 사람들하고 뒤엉킨 채 지낸 삶을 글로 쓴 이는 몹시 드물거나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으레 ‘밑바닥 사람은 이렇게 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대로 쓰거나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를 쓰거나 ‘나도 예전에 이처럼 가난해 보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쓰기 일쑤예요. ‘바로 오늘 가난하게 살아가며 힘들게 글을 쓰는’ 오늘날 글쟁이는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묻겠지요. 요즈음 글을 쓴다는 사람치고 돈을 많이 버는 이가 몇이나 되느냐고, 요즈음 글을 쓰는 사람이야말로 몸소 가난한 채 글을 쓰는 셈이 아니냐고.

 그렇지만 스스로 얼마나 어떻게 가난한가를 찬찬히 밝히는 ‘글을 쓰는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가난이 왜 가난이며, 가난한 삶이란 어떠한 삶이요, 이 가난한 삶을 누리는 내 나날이 얼마나 빛나는가를 곰곰이 돌아보며 글을 쓰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집에서 일하고 살림하는 나날을 가만히 옮겨적거나 찬찬히 되살리도록 글을 쓰는 사람도 거의 찾아볼 길이 없어요.


.. 그의 이런 행동은 문학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실제 삶 속에 들어가 봄으로써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진정 알고 싶었으며, 그들의 고통과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그는 그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었고, 또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 제국주의가 식민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가 배운 더 큰 교훈은 그 제도가 주인들마저도 끝없이 노예화시킨다는 사실이었다 … 그는 중산층으로서 어떤 우월감을 지니고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층민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영혼까지 침투해 그들의 삶을 느끼고 싶어했고, 나아가 그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  (29∼30, 40, 44쪽)


 조지 오웰 님은 ‘밑바닥으로 몸소 내려가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조지 오웰 님 책을 한글로 옮기는 분들도 조지 오웰 님처럼 ‘밑바닥으로 몸소 내려가서’ 번역 일을 할까요. 조지 오웰 님 책을 읽는 사람도 조지 오웰 님처럼 ‘밑바닥으로 몸소 내려가서’ 책을 읽을는지요.

 밑바닥 사람들 밑바닥 삶자락 이야기를 책으로 읽는다면서 정작 나 스스로 밑바닥 아닌 하늘 높은 구름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듯하는 매무새는 아닐까 궁금합니다. 삶과 책과 앎과 함이 한동아리로 이어지는 일이란 거의 없는 오늘날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책은 많이 읽고 책을 즐겁게 읽는다지만, ‘읽기로 끝’이고 ‘읽은 책을 곰삭여 내 삶을 거듭나도록 이끄는 길 찾기’는 안 하는 노릇 아닌가 궁금합니다.

 조지 오웰 님한테는 ‘내려가야 할 밑바닥’이 있습니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한테도 ‘더 내려갈 밑바닥’이 있을는지 모르나, 밑바닥에 있는 사람한테 조지 오웰 님은 ‘위에서 살짝 찾아와 한동안 머물다가 다시 위로 올라갈’ 사람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처음부터 밑바닥이면서 앞으로도 밑바닥이요 언제까지나 밑바닥인 채 살림을 꾸리고 글을 쓰며 사람을 사귀는 글쟁이나 지식인은 얼마쯤 될까요.


.. 오웰을 제외한 20세기 전반기의 영국 소설가들은 대부분은 인간의 소외와 내면세계의 탐구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았을 뿐, 당대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 오웰이 그의 정치적 글쓰기에서 보여준 중심 사상은 ‘문학이란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인간의 역사적 발전에 한몫을 하고, 진리는 반드시 믿어져야 하며, 작가는 진리인 것을 신뢰성·정확성 및 신념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 특혀 현대 전쟁의 본질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는데, 현대 전쟁이란 영토의 정복이나 그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체의 사회구조를 공고하게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  (70, 77, 124쪽)


 조지 오웰을 좋아하면 조지 오웰을 읽으면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읽기에 읽을 까닭은 없습니다. 노신이든 루쉰이든 좋아한다면 노신이든 루쉰을 읽으면 됩니다. 사람들이 널리 사랑하니까 읽을 까닭은 없어요. 서정주를 읽든 한비야를 읽든 법정을 읽든 박완서를 읽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원수를 읽든 권정생을 읽든 이오덕을 읽든 임길택을 읽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느 분 어느 책을 읽더라도 내 삶으로 파고드는 이야기 속살을 잡아채어 내 삶이 아름다이 꽃피울 참답고 착한 길을 잘 느끼며 몸소 슬기롭게 일굴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조지 오웰을 읽으며 즐겁다면, 조지 오웰이 살아가며 글을 쓰던 매무새가 무엇을 하려는 몸짓이었나를 깨달으면서 내 하루를 더 알차게 사랑하는 길을 찾겠다는 뜻입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가슴이 벅찼으면 벅찬 가슴 그대로 내 삶길을 사랑하면 돼요.

 책은 어디에서든 책이고, 꿈은 어디에서도 꿈입니다. 내가 발을 디딘 터전을 옳게 읽으면서 내 이웃과 동무가 몸을 바치는 보금자리를 바르게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책을 읽는 까닭은 나와 이웃을 참답게 사랑할 길을 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동무를 사귀며 날마다 밥을 먹고 똥을 누는 까닭은 한 번 선물받은 고마운 목숨을 착하게 사랑하면서 누리는 길을 서로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삶은 없고, 더 나은 책 또한 없습니다. 내 좋은 삶이 있고, 내 좋은 이웃과 동무가 있습니다. (4344.7.13.물.ㅎㄲㅅㄱ)


― 조지 오웰 (박경서 글,살림 펴냄,2005.6.30./7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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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불말리기 지킴이


 군대에 있던 지난날, 몸이 아프다거나 고참이라거나 한다면, 날이 퍽 좋을 때에 훈련에 나가지 않고 내무반을 지키는 사람이 어김없이 하나쯤 있었다. 내가 있던 군부대는 한 해 내내 햇볕 드는 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었기 때문에, 볕이 아주 모처럼 들며 쨍쨍 눈부실 때에는 내무반마다 모포며 침낭이며 군인신이며 옷가지이며 깔개이며 잔뜩 풀밭에 내놓아 볕바라기를 시킨다. 훈련을 나가지 않고 내무반을 지키는 사람은 풀밭에서 나란히 볕바라기를 하면서 모포며 침낭이며 군인신이며 옷가지이며 깔개를 틈틈이 뒤집는다. 넌 채 가만히 두기만 한대서 보송보송 잘 마르지 않으니까. 한 사람 아닌 두 사람이 남아서 지키면, 둘은 모포를 서로 끝에서 맞잡고 탕탕 턴다.

 기나긴 장마가 되고부터 새벽·아침·낮·저녁·밤으로 끝없이 빨래를 하고 또 해야 한다. 앞서 한 빨래가 다 마르지 않아도 새 빨래를 해야 하고, 새 빨래를 할 때면 보일러 불을 넣어 방바닥을 덥힌다. 집안 물기를 말리기도 하지만, 덜 마른 빨래가 방바닥 따스한 기운을 받아 얼른 마르기를 바란다.

 방바닥에 펼쳐서 말리는 빨래는 틈틈이 들어서 살며시 흔든 다음 뒤집어서 펼쳐 놓는다. 가만히 두기만 하면 제대로 마르지 않는다. 가만히 두기만 한대서 말릴 수 없다.

 사내들은 군대를 다녀오며 누구나 집일을 스스로 해내야 하는데, 막상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집일을 오래오래 스스로 해내면서 집식구나 어머니 어깨를 가벼이 하는 사람은 뜻밖에 몹시 드물다. 사내들은 군대를 다녀오며 말투와 몸짓이 거칠어지기만 할 뿐, 집일을 알뜰히 하는 따스하고 너른 마음과 몸가짐을 보여주지 못한다. (4344.7.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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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한테 책 읽히는 누나


 어머니가 저한테 했듯이, 아버지가 저한테 하듯이, 첫째 아이는 둘째 아이 곁에 누워서 조그마한 책을 위로 척 올린다. 석 돌을 앞둔 첫째는 한글은커녕 알파벳 하나 모른다. 한글책인지 영어책인지 모르면서 영어 그림책을 어떻게 골라내어 펼쳐 들고는 제 동생한테 읽어 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쫑알쫑알 말마디를 쉴새없이 읊는다. 펼친 쪽에서 웬만큼 쫑알쫑알 했다 싶으면 가슴에 책을 대고 다음 쪽으로 넘겨 다시 쫑알쫑알 노래를 한다.

 요즈음 들어 집일에 너무 치이면서 첫째한테 그림책 읽히기를 거의 못하며 지나간다고 새삼 깨닫는다. 어머니는 몸이 아프고, 아버지는 집일에 허덕이느라, 첫째랑 살가이 어깨동무하면서 그림책을 읽지 못하는데, 첫째 아이는 제 갓난쟁이 동생한테 어여쁜 짓을 하는구나. (4344.7.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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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도서관 책읽기


 책을 좋아하면서 살아오던 서른네 살에 도서관을 차렸다. 섣부른 일이 아닐까 싶기도 했으나, 좋아하는 일에는 이르거나 늦거나 할 까닭이 없다고 여겼다. 좋아하니까 훨씬 일찍 글쓰기를 할 수 있고, 좋아하기에 늦깎이에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좋아하니까 너덧 살 나이에 텃밭을 일굴 수 있으며, 좋아하는 만큼 일흔이나 여든에 시골에 땅을 얻거나 빌어 논밭을 보살필 수 있다.

 내가 처음으로 책이 많다고 느낀 곳은 도서관이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던 2학년 때에 헌책방을 처음 찾아가고 나서는 도서관보다 헌책방이 책이 훨씬 넓고 깊다고 느꼈다. 나라밖 도서관은 모른다. 나라밖 헌책방도 모른다. 나라안 도서관과 헌책방을 다녔을 때에, 나라안 도서관에서는 너무 너덜거리는 흔한 소설책이 지나치게 넓은 자리를 차지해서 못마땅했다. 따지고 보면, 헌책방에서도 ‘팔리는 책’을 더 많이 갖출 수밖에 없으니까, 참고서나 가벼운 소설붙이가 꽤 넓게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도서관에 없거나 도서관에 들이지 않는 수많은 책이 들고 나는 헌책방이다. 이 나라 도서관은 ‘도서관 품위’와 ‘도서관 얼굴’과 ‘도서관 크기’와 ‘도서관 책 숫자’ 같은 데에 지나치게 마음을 빼앗긴다. 정작 ‘새로운 책을 꾸준히 사들여 누구라도 손으로 만지며 읽고 정갈히 갈무리하도록 이끄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한다.

 헌책방에서도 책을 함부로 다루는 책손이 꽤 많다. 헌책방이니까 헌책을 아무렇게나 다뤄도 되는 줄 아는 교수님이나 지식인이 뜻밖에 참 많다. 그렇지만, 헌책방 헌책은 헌책방 일꾼이 ‘팔릴 만하다 싶은 책’을 ‘헌책방 일꾼 돈을 들여 하나씩 고르고 사서 모아 갖춘 책’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이 나라 도서관이 이 나라 헌책방을 따라갈 수 없겠다고 깨달았다.

 나는 서른넷 나이에 내 이름을 걸고 도서관을 열었다. 누구보다 나부터 내가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날까지 기쁘게 누리며 즐거이 맞아들일 책으로 가득한 사랑스러운 책터를 일구고 싶기 때문이다. 더 늦기 앞서, 아니 늦는다 생각하기 앞서, 내가 조금이라도 몸에 기운이 있고, 내 주머니에 조금밖에 안 되더라도 책을 사는 데에 들일 돈이 얼마쯤 있을 때에, 씩씩하고 당차게 도서관을 마련해서 내 고맙고 좋은 책벗하고 책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이 도서관은 2007년 4월 15일에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켠에 처음 열었다. 헌책방거리 한켠에 열었대서 ‘도서관’ 아닌 ‘헌책방’이라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2010년 9월 첫머리에 인천에서 충북 충주 멧골자락으로 도서관을 옮겼다. 이제 2011년에 멧골자락에서 다른 시골자락을 찾아본다. 몸이 아픈 옆지기하고 한창 자랄 첫째를 생각하며 멧골자락으로 들어왔는데, 이 멧골자락으로 사람들이 ‘도서관 책마실’을 나오기 몹시 어려울 뿐더러, 멧골자락답지 않게 자동차가 너무 많이 드나들어 집식구한테 썩 좋지 못한 터전인 줄 나중에서야 알아챘다. 우리 도서관과 우리 집식구는 새로운 자리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새 터와 새 자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저 믿는다. 나 스스로 내가 서른일곱 해 동안 그러모아 알뜰히 아낀 이 책들을 사랑스레 품으면서 살가운 책벗하고 책삶을 나눌 만한 아름다운 시골자락이 한국땅에 아예 없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걱정거리라면, 우리 식구한테는 돈이 거의 없다. 다달이 먹고사는 데에 쓸 돈으로도 허덕이며 지낸다. 그런데 이렇게 지내면서도 책은 참 부지런히 사들인다. 어쩌면, 우리 식구는 자가용을 안 몰고 수많은 기계나 전자제품을 셈틀과 다른 한두 가지를 빼고는 하나도 안 쓰니까 이럭저럭 버티듯 이냥저냥 살림을 꾸린다 할는지 모른다. 살림돈이 빠듯할 때에 몹시 고맙게 푼푼이 보태는 벗바리가 있기도 하다. 벗바리는 어쩌면 살림돈이 바닥을 치며 해롱거릴 때에 용케 알아채어 뒷배를 해 주는지 놀랍기만 하다.

 갈 데는 마땅히 없고, 오라고 부르는 데는 아직 없지만, 방바닥에 큼지막한 길그림 종이를 척 펼친다. 여기도 참 좋은 시골이고 …… 둘레에 좋은 멧자락이 둘러쌌고 …… 금강이 흐르고 …… 가까이에 소양호가 있고 …… 외져서 호젓할 만한 시골이고 …… 뭐, 이런 생각 저런 말을 혼자 주절주절댄다. (4344.7.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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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7-12 09:08   좋아요 0 | URL
좋은 새터를 꼭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도 책마실을 가고 싶네요.
첫아이가 벌써 저리 컸네요. 귀해라.

파란놀 2011-07-12 16:43   좋아요 0 | URL
혼자서 저 책더미에 기어 올라간답니다 @.@

마녀고양이 2011-07-12 15:04   좋아요 0 | URL
멋진 도서관 자리를 찾으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원하시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사시는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파란놀 2011-07-12 16:43   좋아요 0 | URL
앞으로는 몇 만 권 책을 묶는 데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몇 만 권 책을 천천히 즐기며 나눌 만한 좋은 시골자락을 찾고 싶어요... ㅠ.ㅜ
 
일본 만화현대사
요시히로 코스케 지음 / 우용출판사 / 1998년 7월
평점 :
절판




 일본만화는 일본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꽃
 [만화책 즐겨읽기 27] 요시히로 코스케, 《일본 만화 현대사》



 일본사람은 한국사람하고 견주어 만화책을 훨씬 많이 읽습니다. 일본사람은 한국사람하고 대면 여느 책 또한 더욱 많이 읽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대서 더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책을 많이 알기에 더 똑똑하다거나 더 슬기롭다거나 더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책이란 온누리에서 가장 빛나는 열매가 아닐 뿐더러, 책을 읽는 사람은 나날이 더욱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길을 배우는 사람이니까요.

 일본사람은 만화이고 책이고 참 많이 읽으면서, 만화이고 책이고 참 많이 내놓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많고, 책이 될 글을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책으로 묶는 사진도 많이 찍습니다.

 꼭 책으로 묶으려고 만화를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지는 않겠지요. 널리 팔리거나 읽히려는 뜻으로 그리는 만화라거나 쓰는 글이라거나 찍는 사진이라 할 수 없겠지요. 어찌 보면 어슷비슷한 만화나 글이나 사진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피면 모두 다르며 저마다 다른 만화요 글이요 사진입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처세나 경영이나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을 다는 ‘책 아닌 책’이 꽤나 많으나, 삶과 죽음과 사랑과 믿음을 다룬 ‘책다운 책’ 또한 무척 많아요. 이와 달리, 이 나라 한국에서는 삶과 죽음과 사랑과 믿음을 다루는 ‘책다운 책’이 뜻밖에 몹시 적습니다. 처세나 경영이나 자기계발을 밝히는 책은 이러한 책대로 외곬로 흘러 한때 반짝하는 종이뭉치에 그치고, 인문학과 사회학과 과학을 다루는 책은 이와 같은 책대로 앎조각을 만지작거리는 데에 그치기 일쑤입니다. 꾸준히 되읽히면서 오래도록 곰삭여 마음밥이나 마음동무로 둘 만한 책은 좀처럼 태어나지 못합니다.


.. 이러한 신인 기용의 성공은 다른 잡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는 거의 모든 잡지들이 신인 발굴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이 잡지만큼 성공한 예는 별로 없는 것 같다 … 만화의 융성은 데쓰카 오사무라는 천재의 수법을 많은 작가들이 모방하고 계승함에 따라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창조해 내며 발전해 온 결과이다. 그렇지만 리바이벌된 작품은 결국 반복이라는 것일 수밖에 없으며,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 데쓰카의 만화는 작품 안에 테마성이나 주장을 명확히 내세운 최초의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16, 48∼50, 85쪽)


 한국말로 옮겨지는 일본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팔릴 만하니까 옮기는 책일 테고, 읽을 만하니까 옮기는 책이겠지요. 그러면, 일본사람은 한국책 가운데 어느 책을 골라서 일본사람한테 팔 만하다고 여기거나 읽힐 만하다고 생각할까요. 한국사람이 내놓은 책 가운데 어떠한 책을 일본사람한테 기꺼이 선보이거나 드러내거나 나눌 만한가요.

 때때로 한국 만화가 일본으로 옮겨지기도 합니다. 드문드문 한국 문학이 일본으로 옮겨지곤 합니다. 그렇지만, 일본책을 한국책으로 옮기듯, 온갖 갈래 온갖 사람들 온갖 이야기를 골고루 일본책으로 옮기는 일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다 여길는지 모르지만, 한국사람 삶과 눈썰미와 넋은 너무 뻔하거나 지나치게 틀에 박히거든요. 한국사람은 스스로 제 삶을 너무 좁게 가둘 뿐 아니라, 너무 메마르게 내팽개칩니다.

 삶이 따분한데 책이 따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삶이 따분하기에 책을 따분하게 받아들일밖에 없습니다. 삶이 빛날 때에 책이 빛날 수 있습니다. 삶이 즐거울 때에 책을 즐거이 맞아들일 수 있어요.

 이 나라에서는 온통 대학입시를 둘러싼 말과 일과 돈이 흘러넘칩니다. 이 나라에서는 오직 막춤을 추는 정치 이야기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무엇이든 서울로만 몰리거나 쏠립니다. 어느 일이건 더 커다랗거나 굵직한 데에만 기울어집니다.

 대학교 아닌 고등학교나 중학교나 초등학교조차 집어치우면서 이 나라 구석구석을 두 발로 밟으며 삶을 배우는 어린이나 푸름이나 어른이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대학교 등록금이 지나치게 비싼 만큼 이 잘잘못을 푸는 일은 맞습니다만, 대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서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가를 깊이 들여다본다면, 기나긴 나날과 어마어마한 돈을 나 스스로 어디에 들여 내 삶을 어떻게 일구어야 아름다우면서 즐겁고 착하면서 참될까 하는 길을 찾을 만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네 해 사천만 원’을 대학교에 바치기만 할 뿐, ‘네 해 사천만 원’으로 내 길을 내 나름대로 어떻게 밝히거나 돌보아야 할까를 생각하는 젊거나 푸르거나 밝거나 맑은 얼이 너무 드물어요.


.. 테마는 달라도 주의깊게 살펴보면 스토리의 클라이막스에 이르게 되면 격투 장면을 등장시키는 것이 20편의 작품 중 3분의 1 이상이나 되고, 더 나아가 스포츠 분야의 만화에서도 승패를 겨루는 일이 일종의 투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작품들이 ‘투쟁’을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잡지들에서도 이런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도대체 이렇듯 폭이 좁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인기만화를 본따서 만화를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한 가지 색깔로 물들어 버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 것인가? … 다른 일면을 살펴보자. 소년만화 부분에서 확실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SF만화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 최근에는 만화가 지망생들이 공부도 안 할 뿐만 아니라, 만화가 여러 장르로 확산·침투되어 일종의 폐쇄 상태에 빠져 버렸기 때문에 ..  (28, 52쪽)


 《일본 만화 현대사》(우용출판사,1998)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1998년에 나온 ‘현대사’이니까 2011년에 헤아린다면 ‘좀 낡은’ 이야기로 여길 만합니다. 참말 좀 낡습니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를 빛내는 숱한 ‘일본 만화’ 이야기가 깃들지 못하니까요. 더군다나, 이 책을 쓴 요시히로 코스케 님은 ‘당신 스스로 좋아하는 만화밭이 그리 안 넓어’서, 글쓴이 스스로 다룰 줄 아는 만화누리는 그닥 깊거나 너르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일본 만화 현대사”라는 이름보다는 “일본 소년만화 현대사”쯤으로 붙여야 걸맞다 싶은 책입니다.

 다만, 일본 만화가 흘러온 길을 돌아본다 할 때에, 소년만화만 바라보며 읽든 소녀만화만 바라보며 읽든 어른만화만 바라보며 읽든, ‘만화란 내 삶과 우리 삶에서 어떠한 자리를 어떻게 차지하는가’를 살필 줄 안다면, 소년만화만 다루거나 살핀다 하더라도 “일본 만화 현대 역사”를 찬찬히 훑거나 읽을 수 있어요.

 큰 길에서 작은 길을 보기도 하지만, 작은 길에서 큰 길을 보기도 합니다. 물줄기는 굵직한 물줄기로만 이루어질 수 없어요. 작은 물줄기가 모여 비로소 큰 물줄기가 이루어집니다. 작은 물줄기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작은 물줄기를 알아야 하며, 작은 물줄기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해요. 이러고 나서야 큰 물줄기를 다루든 말든 해야 합니다.

 그리고, 크니 작니 하고 따지기 앞서, 내 삶이 어떠한 물줄기를 이루며 흐르는가를 읽어야 해요. 내 삶부터 읽고, 내 옆지기나 동무나 이웃이나 살붙이 삶을 이루는 물줄기를 읽습니다. 차근차근 눈길을 넓히고 눈썰미를 키우며 눈높이를 다스립니다.


.. 엄밀히 따져 보면 만화 중에는 분명히 수준이 많이 뒤떨어지는 것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본래 그러한 평가는 정부 차원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자·출판사·독자들이 그들 나름대로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소설이나 영상·음악·연주 등 모든 ‘표현’ 역시 그러하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논의가 아니고, 공급하는 측과 제공받는 측이 서로 그 ‘표현’들에 대해 얼마나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 독자가 만화에서 얻으려 하는 것이 단순히 오락이나 위안뿐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공감대를 찾고 교훈 같은 것을 얻고자 하기 시작한 것 같다 … 만화를 문화로서 받아들이는 의식은 일반 일간지에서도 거의 없었던 일이 아닐까? 아니, 그것은 신문뿐만 아니라, 실제로 만화를 만들고 있는 편집장들의 이야기이다 ..  (42, 78, 166쪽)


 《일본 만화 현대사》가 아직 판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께서 곁에 함께 두면서 읽으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만화책을 내놓는 출판사에서는 창작만화책만이 아니라, 이러한 만화비평이나 만화역사를 다루는 책도 틈틈이 한국말로 옮겨서 내놓으면 더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목숨이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있어 삶이 있습니다. 삶이 있기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만큼 글과 그림과 사진과 만화와 춤과 노래와 영화와 연극이 있습니다. 여기에, 집안일이 있고 집안살림이 있어요. 아기는 언제나 새로 태어나고 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하나둘 흙으로 돌아갑니다.

 돌고 도는 목숨이듯이 돌고 도는 사람입니다. 흐르는 삶이고 물려지는 이야기예요. 이 만화가 있기에 저 만화가 태어나고, 저 만화를 즐기면서 그 만화를 키웁니다.


.. 나이를 꽤 먹은 어른부터 유아까지 같은 만화의 독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만화를 큰 미디어로 성장시킨 이유 중의 하나인 것이다 ..  (186쪽)


 일본은 “나이를 꽤 먹은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함께 즐길” 책삶이 무척 깊으면서 너른 나라입니다. 만화책만이 아니라 그림책과 동화책 같은 어린이책도 널리 사랑하고 두루 사랑받는 나라입니다. 일본에서 창작하고 한국에서 옮기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살피면, 글솜씨뿐 아니라 이야기 얼거리가 매우 뛰어나거나 훌륭하기 일쑤입니다. 일본 그림책이라서 ‘일본 문화와 사회’를 구석구석에 담아야 하지 않으나, 애써 덜어야 하지 않아요. 일본 그림책을 읽다 보면, 이 일본 그림책을 읽을 일본 어린이와 어른은 참 즐겁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일본 만화책을 읽을 때에도 그래요. 이와 달리, 한국에서 나온 한국 그림책을 읽으면서 ‘이 한국 그림책은 어느 한국사람이나 어떠한 사람이 읽으라고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한국 만화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일본에서 만화를 그리는 이들은 “나이를 꽤 먹은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함께 즐길” 삶·사랑·사람 이야기를 만화에 담으려고 땀을 흘립니다. 한국 만화쟁이와 글쟁이와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는 이 대목을 잘 헤아리거나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톺아볼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4.7.12.불.ㅎㄲㅅㄱ)


― 일본 만화 현대사 (요시히로 코스케 글,김보선 옮김,우용출판사 펴냄,1998.7.10./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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