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이야
리쯔룽 글, 쉬원치 그림, 김은신 옮김 / 키득키득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예쁜 동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6] 쉬원치·리쯔룽, 《나는 바람이야》(키득키득,2011)



 2층 햇살 잘 들어오는 방에서 지내는 아이한테는 무엇 하나 모자라지 않습니다. 집이 있고 어버이가 있습니다. 맛난 밥이 있으며, 예쁜 옷이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놀 동무가 없고, 같이 노는 어머니나 아버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늘 홀로 말없이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바람한테는 무엇 하나 넉넉하지 않습니다. 바람한테는 얼굴이 없고 소리가 없으며 몸이 없습니다. 빛깔이 없고 냄새가 없으며 무늬가 없습니다. 그러나, 홀가분함이 있고 시원함이 있으며 따스함이 있습니다.


.. 나(바람)는 풀잎이랑 장난을 치며 놀아. 풀잎 사이를 내 멋대로 뒹굴면 빨간 꽃, 노란 꽃, 하얀 꽃이 휘휘 흔들려 ..  (4쪽)


 바람한테는 집이 없습니다. 바람한테는 돈이 없습니다. 바람한테는 자가용이 없습니다. 바람한테는 옷이 없고, 바람한테는 졸업장도 자격증도 없습니다.

 바람은 그저 풀잎이랑 놀고 나뭇잎이랑 놉니다. 새하고 놀며 여우랑 사슴이랑 놉니다.


.. 내가 창문 밖 그네를 밀었어. 아이는 그네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지만 내 모습은 보지 못했을 거야. 내가 유리창을 두드렸어. 아이는 유리창이 덜커덩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내 속삭임은 듣지 못했을 거야. 내가 아이에게 꽃향기를 보냈어. 아이는 꽃향기를 맡았지만 내 향기는 맡지 못했을 거야 ..  (17쪽)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좋을까요. 아이들은 어디에서 살아야 좋은가요. 아이들은 무엇을 할 때에 좋다고 하는가요.

 더 좋다 싶은 밥을 차려 줄 때에 아이들이 좋아할까 궁금합니다. 더 예쁘다 싶은 옷을 입힐 때에 아이들이 반길까 궁금합니다. 더 크다 싶은 방을 따로 마련해 줄 때에 아이들이 기뻐할까 궁금합니다.

 고무줄놀이를 할 수 없는데, 금긋기놀이를 하지 못하는데,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을 할 수 없는데, 닭싸움이나 가위바위보를 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살아야 하는 아이들은 무슨 재미와 보람과 신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하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칠까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한자를 가르치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이 서너 살밖에 안 되었는데 한글을 가르치지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하고 빨래를 하지 않을까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하고 밥하는 보람을 나누지 않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하고 이야기꽃을 피우지 않는가요.

 바람처럼 그네를 밀어도 좋고, 바람처럼 풀밭에 드러누워 구름이 흐르는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좋습니다. 바람처럼 꽃내음을 맡다가는 꽃잎을 만지작거려도 좋습니다. 바람처럼 들판을 내달려도 좋고, 바람처럼 냇가나 바닷가에서 헤엄치기를 즐겨도 좋습니다.

 텃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다가 시원한 바람을 쐬어도 좋습니다. 살랑이는 봄바람을 따숩게 맞아들이며 봄꽃을 곱게 맞이해도 좋습니다. 차디찬 겨울바람과 함께 눈덩이를 굴려도 기쁩니다. 서늘한 바람에 살을 비비면서 밤하늘 별빛을 좇아도 기뻐요.


.. “바람아! 바람아, 안녕! 가지 말고 기다려 줘! 나는 너랑 같이 놀고 싶어!” ..  (20쪽)


 그림책 《나는 바람이야》(키득키득,2011)를 읽습니다. 홀로 조용히 지내던 아이는 바람을 처음 만나고는 함께 놀자고 부릅니다. 바람한테는 얼굴도 몸뚱이도 아무것도 없지만, 홀로 조용히 지내던 아이한테는 딱히 아랑곳할 까닭이 없습니다. 얼굴이 없어도 좋은 동무입니다. 몸뚱이가 없어도 살가운 동무입니다. 아무것조차 없어도 반가운 동무예요.

 바람을 안고, 바람을 잡고, 바람하고 달리고, 바람하고 뛰고, 바람하고 서고, 바람하고 웃습니다.

 사랑하는 내 벗님이나 이웃이나 살붙이하고 나눌 가장 아름다운 삶이란, 서로 마주보고 웃거나 울면서 어깨동무하는 나날입니다. 값진 밥이 없어도 되고, 값진 자가용이 없어도 되며, 값진 아파트가 없어도 됩니다. 값나가는 보배나 높디높은 이름쪽이 없어도 돼요. 1등이어야 할 까닭이 없고, 2등이나 3등이나 10등조차 될 까닭이 없습니다. 등수나 점수나 돈푼이 아닌 사랑과 믿음과 나눔입니다. 손을 맞잡으면서 속삭입니다. 어깨를 겯고 거닐며 웃음을 터뜨립니다.

 업은 아기는 동쪽도 서쪽도 남쪽도 북쪽도 아닌 내 등에 있습니다. 즐거움과 보람과 기쁨과 재미와 신과 아름다움은 바로 내 삶에 있고 내 살붙이와 동무한테 있습니다. (4344.8.10.물.ㅎㄲㅅㄱ)


― 나는 바람이야 (쉬원치 그림, 리쯔룽 글,김은신 옮김,키득키득 펴냄,2011.5.6./95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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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10 09:36   좋아요 0 | URL
아흑,,,,,,,,,
주식 폭락에 댕댕거리는 제가 영, 시원찮게 느껴집니다.

된장님, 건강 좀 나아지셨어요?

파란놀 2011-08-11 06:34   좋아요 0 | URL
주식이 있으시면 걱정스럽겠네요..

몸은 이래저래 안 좋습니다 ^^;;;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배우는’ 책과 ‘시험문제’ 교재
 [책읽기 삶읽기 70] 장정일,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2006)



 소설쓰는 장정일 님이 쓴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2006)를 읽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힘들어 집일을 옆지기한테 맡긴 채, 자리에 드러누워 책을 읽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힘들면 책이든 뭐든 읽지 말고 가만히 쉬어야 할 텐데, 끙끙 앓며 누워 지내기만 하자니 무언가 허전하다고 느껴, 책 하나를 손에 쥡니다.

 장만하기는 일찌감치 장만했으나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여러 해를 보낸 《장정일의 공부》를 펼칩니다. 다섯 해 앞서 이 책을 읽었으면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세 해 앞서 읽었다면, 또 지난해에 읽었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앞으로 세 해나 다섯 해나 열 해쯤 뒤에 이 책을 읽는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할 만할까요.

 《장정일의 공부》에 나오는 사회 이야기나 정치 이야기에는 눈길이 쏠리지 않습니다. 사회 이야기를 깊이 파헤치고 싶어 하는 대목에만 눈길이 쏠립니다. 정치를 다루는 이야기 말고 정치에 깃든 장정일 님 삶을 밝히는 대목에만 눈길이 갑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신문에 실리는 머릿기사를 모릅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고, 아홉 시 새소식을 볼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떠한 새소식도 찾아서 듣거나 보지 않습니다. 거의 모두라 할 만큼, 신문 머릿기사나 방송 새소식은 ‘하루 지나면 부질없는 옛이야기’로 쌓이거나 묻히거든요.


.. 한 번도 살상 거부를 위한 종교적 정언 명령을 고민한 적이 없었던 이들이 ‘대체 복무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특혜’라는 시비를 걸고 나온 것이다. 일부 거대 개신교 목사들이 주장하는 특혜와 형평성 시비는 그들이 한 번도 대체 복무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신념으로 여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스개일 수밖에 없다 ..  (19쪽)


 신문과 방송은 등지면서 책을 읽는 까닭은 한 가지인지 모릅니다. 책은 언제라도 되넘길 수 있습니다. 참책인가 거짓책인가는, 장만해서 책꽂이에 꽂은 책을 한참 뒤에 펼치건 곧바로 펼치건 금세 드러납니다. 아니, 책꽂이에 꽂은 책을 얼마나 나중에 꺼내어 펼치느냐에 따라 참값과 거짓값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1회용품이 아닌 책이라 할 때에는 대물림을 해서 여럿이 돌려 읽어야 뜻이 있다고 느낍니다. 애써 종이에 책을 찍을 때에는 한 번 읽고 지나치거나 잊어도 되기 때문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삶을 이야기하고, 삶을 파헤치며, 삶을 나누는 책이어야 비로소 책답다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이덕일은 “앞의 대동법 논쟁에서 보았듯이 당시 백성들의 가장 큰 괴로움은 양반 사대부들의 가렴주구였지 국왕의 군사력 강화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 박정희의 일성 앞에 ‘입이라도 벙끗’ 하는 국민은 곧바로 ‘빨갱이’가 될 각오를 해야 했고, 빨갱이로 찍히는 것은 곧바로 죽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현대사는 박정희를 말하기에 앞서, 이승만 체제의 전체주의적인 요소를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한다 ..  (38, 370쪽)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합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시험문제 외우기’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한국사람은 공부를 안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한국사람은 노상 ‘시험문제 외우기’만 합니다. 공무원시험이건 자격증시험이건 영어시험이건, 으레 시험을 치를 때에 더 점수를 잘 받게끔 문제를 외우는 데에만 마음을 바칩니다.

 참으로 많다 싶은 한국사람이 도서관에 갑니다. 그러나 공부하러 도서관에 가지 않습니다. 시험문제를 달달 외우려고 도서관에 갑니다. 도서관에 책이 많이 있다지만, 정작 ‘배우는(공부하는) 책’이라기보다 ‘시험을 잘 푸는 데에 도움이 될 교재’가 꽤나 많은 셈 아닌가 싶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붙잡고는 ‘공부 시킨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배움’도 ‘공부’도 없습니다. 오직 ‘시험’만 있습니다. 대학교라고 그닥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나는 반값등록금을 옳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대학등록금은 반토막으로 깎아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등록금은 사라져야 합니다. 대학등록금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대학교에는 오직 참배움만 있어야 합니다. 아무나 대학교에 못 들어가게끔 제대로 ‘공부하는 길을 가르쳐’서, ‘참다이 공부하지 않는 젊은 넋은 곧장 대학교 바깥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대학교는 ‘공부하지 않는 젊은 넋’을 쫓아내지 않아요. 대학교는 ‘공부 안 하는 대학생한테서 등록금을 받아 장사하는 곳’이 되었으니까요. 이런 대학교를 구태여 다니면서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일은 걸맞지 않아요. 대학교가 ‘공부하기’하고 동떨어졌는데, 이런 대학교를 얼른 그만두든지 아니면 뜯어고치든지 해야지, 그저 반값등록금 노래만 붙잡아서는 샛길에서 이리저리 헤맬 뿐입니다.


.. 민족주의라는 잣대만으로 저항운동을 투시해 온 한국사는 근대사회 이행 과정 중에 불거져 나온 여러 가지 부문 운동을 모조리 억압하거나 민족주의 투쟁 속에 귀속시켜 버렸다 … 황국신민화 교육을 담당하면서 황국신민을 양성하고 민족성 말살에 참여했던 초등학교 교사들과, 일본군 내의 한국인 장교들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 다카키 마사오는 물론이고 태평양전쟁에 참여하기를 호소했던 수많은 문인들과 언론들을 더 이상 친일파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전범이라고 일컬어야 한다) ..  (207, 210∼211쪽)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도서관에 갑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공부를 하려고 도서관에 갑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돈을 치러 살 만한 책은 돈을 치러 사고, 그저 읽을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고 도서관에 갑니다. 이제껏 책을 꽤 많이 읽었을 텐데, 언제나 더 새롭게 생각하고 더 새롭게 바라보며 더 새롭게 배우려고 책을 읽으며 도서관에 갑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도서관에서 시험문제 외우기 같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아마, 집에서도 시험문제 외우기는 안 하겠지요. 아름다운 당신 한삶을 배움이 아닌 시험에 허덕이도록 내동댕이치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사람이 되고 싶기에 책을 읽으며 배웁니다. 사랑을 이루고 싶기에 사람을 사귀며 배웁니다. 삶을 일구고 싶기에 보금자리를 아끼며 배웁니다.

 《장정일의 공부》라는 책 앞자락에는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덧이름이 붙습니다만, 글쎄요, 소설쓰는 장정일 님이 ‘인문학 되살리기’를 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참말 옳게 배우고 옳게 살고 싶기에 책을 읽으며 글을 쓴 한 사람 마음밭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느낍니다. (4344.8.10.물.ㅎㄲㅅㄱ)


― 장정일의 공부 (장정일 씀,랜덤하우스 펴냄,2006.11.13./120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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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66] 집짓기

 집을 짓는 일이 ‘집짓기’가 아니게 된 지 하루하루 흐릅니다. 오늘날에는 집짓기를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이제는 어디에서나 ‘건축’을 하고 ‘건설’을 하며 ‘리빌딩’을 합니다. 집이 집이 아니며, 집을 짓는 삶이 집을 짓는 삶이 아닙니다. 집을 짓지 않기 때문에, 이 땅에서 오래오래 이루어지던 집삶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볼 만하도록 짓는 집조차 아닙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달리 아름다운 삶을 일구는 집은 처음부터 없습니다. 쓰레기가 될 집만 짓는 요즈음 흐름입니다. 집 한 채를 지어 즈믄 해를 버텨야 하지는 않으나, 백 해 뒤에 헐든 이백 해 뒤에 허물든, 집을 허물며 나오는 조각조각으로 새 집을 지을 수 없다면, 이 모든 건축과 건설과 리빌딩은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백 해 뒤까지 헤아리며 짓는 집이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집을 얻어 살아가는 우리들부터 집을 짓지 않고 돈을 들여 부동산을 장만합니다. 집 아닌 부동산이고, 보금자리 아닌 재산이 되고 맙니다. 한 땀씩 품을 들여 가꾸는 살림살이요, 하나씩 마음을 들여 다스리는 삶터입니다. 학문에 앞서 삶이어야 하고, 돈벌이보다 삶을 살펴야 합니다. 건축학을 배우는 젊은 넋이 아닌 보금자리에 깃들 따순 사람들 고운 사랑을 얼싸안아야 할 푸른 넋이어야 합니다. (4344.8.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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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과 글쓰기 2


 바람 소리에 모든 숲 소리가 잦아든다. 물결치듯 바람이 불고, 소나기 몰아치듯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태풍 끝자락이 일으키는 바람일까. 모기장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땀이 식는다. 등줄기가 시원하다. 새 보금자리 알아본다며 엿새 동안 시외버스와 자가용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맡겼더니 몸이 아주 무너져내렸다. 나는 시골집에서 받아들이는 이 바람이 좋다. 기름을 태워 돌리는 에어컨 바람이 아닌, 멧자락을 타고 부는 이 바람이 좋다. 비가 오더라도 바람을 안은 비가 좋고, 더위를 가시며 잎사귀 나부끼는 소리를 머금는 바람이 좋다. 바람은 눈에 안 보인다고 하지만, 눈으로 보지 않는 사람한테는 먼 옛날부터 살결로 느끼며 마음으로 마주하던 벗님이다. 온누리를 눈으로만 보거나 느낄 수 없다. 코로 맡으며 느낀다. 귀로 들으며 느낀다. 혀로 맛보며 느낀다. 살로 부비며 느낀다. 마음으로 헤아리며 느낀다. 바람은 잘 보인다. 바람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고 느낀다. 찬바람하고도 살고, 더운바람하고도 산다. 산들바람도 맞고, 회오리바람도 맞는다. (4344.8.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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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의 밤 - 푸른문고 14 푸른문고 34
미야자와 겐지 지음, 김유영 옮김, 김주형 그림 / 푸른나무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아픈 눈길로 바라보며 껴안는 동무
 [어린이책 읽는 삶 4]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푸른나무,1997)



- 책이름 : 은하철도의 밤
- 글 : 미야자와 겐지
- 옮긴이 : 김유영
- 그림 : 김주형
- 펴낸곳 : 푸른나무 (1997.5.1.)
- 책값 : 판 끊어짐



 (1) 가난한 삶


 아이들한테 만화영화를 보여주면서 한국말로 나오는 일이 영 달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밖 만화영화에 한국말을 넣을 때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거나 살갑거나 곱거나 깨끗하다 싶은 한국말로 가다듬거나 추스르는 일은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네 살 아이가 한국말을 익히자면, 함께 만화영화를 볼 때에 한국말로 들어야 더 낫다 여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네 살 아이일 때부터 엉터리 한국말을 자꾸 들어야 한다면, 제아무리 아름답다 싶은 만화영화라 할지라도, 이를테면 〈이웃집 토토로〉 같은 만화영화라 하더라도 한국말로는 들려주기 싫습니다. 그냥 일본말로 듣고 느낌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읽도록 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아무나 만나지는 않습니다. 온갖 사람을 스친다 하더라도 아무하고나 사귀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 아이를 바라보며 귀엽다며 ‘엉터리 말투’로 이야기를 걸곤 합니다. 이럴 때 아버지는 곁에서 아이한테 사잇말을 건넵니다. ‘엉터리 말투’를 걸러서 아이한테 들려줍니다.

 시골집으로 찾아온 택배회사 일꾼이 아이보고 ‘바이바이’라 하건 ‘안녕’이라 하건, 아버지는 아이 곁에 서서 “‘잘 가셔요’라 해야지.” 하고 말합니다. 어른들은 으레 아버지가 이렇게 이르는 말마디가 ‘어른한테 높임말을 쓰도록 하는’ 줄 여기지만, 높임말에 앞서 옳게 말을 해야 하기에 옳게 말하도록 이끌 뿐입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하는 인사라면 “살펴 가셔요.”라 말하도록 합니다.

 우리 두 아이는 아무런 보육시설을 다니지 않습니다. 아무런 보육시설을 다니지 않으니 나라에서 두 아이한테 ‘보육시설 미이용 가구 지원’ 정책에 따라 다달이 십만 원 남짓 줍니다. 두 아이가 보육시설을 다닌다면, 두 아이는 보육시설에 들여야 하는 돈을 몽땅 받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두 아이를 보육시설에 넣는다 할 때에는 돈이 한푼조차 안 들 뿐 아니라, 집에서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힘들이지 않아도 돼요.

 다만, 두 아이를 보육시설에 넣는다면, 두 아이가 날마다 새롭게 크는 모습을 마주할 수 없습니다. 두 아이가 어떤 말을 들으면서 배우는지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두 아이가 어떤 모습과 삶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모습과 삶에 길들거나 익숙해지는가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보육시설에 넣을 두 아이는 어버이가 자가용을 몰고 데려다주고 데리러와야 합니다.


.. 죠바니는 조금 더 먹고 싶었지만 사양했습니다. 언젠가 제과점 유리창에서 과자를 바라보며 침을 삼키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자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 ‘빙산이 흐르는 북쪽 바다에서 자그마한 배를 타고서, 바람이랑 얼어붙는 바다랑 혹독한 추위랑 누군가 열심히 싸우고 있었구나.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 사람들이 정말로 불쌍하구나.’ ..  (106, 127쪽)


 자가용 없는 우리 살림에 읍내나 면내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주었다가 데리러올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러고 싶지 않습니다. 보육시설이라는 데에서는 아이들 오줌가리기를 하지 않으며,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뛰도록 하기보다는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니까 달갑지 않습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어린 나날부터 영어에 익숙하도록 내몹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시골 아이라 하든 도시 아이라 하든 도시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젖어들도록 이끕니다. 시골 어린이집이라서 논밭에서 일한다거나 멧골짜기를 탄다든지 하지 않아요. 숲을 쏘다닌다든지 나무랑 사귀지 않습니다. 목돈 들여 지은 시설에 갖춘 플라스틱이나 쇠붙이 놀잇감을 갖고 놀 뿐입니다. 여느 보육시설에 아이를 넣는다면, 이때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아이들은 호미이든 낫이든 쟁기이든 손에 쥘 일이 무척 드뭅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치고 흙하고 가까워지기란 참으로 힘듭니다.


.. 죠바니는 표지판과 지도를 비교해 보고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죠바니는 왠지 모르게 옆에 있는 새 사냥꾼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백로를 잡아 보자기로 둘둘 말아 가지고 와서 기뻐하다가, 이까짓 표 한 장에 깜짝 놀라 곁눈질로 보며 나를 부러워 하다니. 아마 저 사람은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이런 표조차 구할 수 없었던 거야.’ 죠바니는 돌아오시지 않는 아버지와, 집에 누워 계신 어머니,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누나와 자기 자신을 생각하자, 그 새 사냥꾼의 처지가 마치 자기 일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죠바니는 처음 보는 그 새 사냥꾼을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표든, 그 무엇이든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118쪽)


 어버이로서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가 굳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애써 안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난하든 가난하지 않든 늘 세 가지 마음밭을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참답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셋째,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세 가지 마음밭을 일구면서 가난하든 가멸차든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 세 가지 마음밭을 일구지 않는다면, 가난하게 살아도 슬프고 가멸차게 살아도 딱하다고 느껴요.

 새옷을 사입지 못하면 어때요. 좋은 이웃이나 동무한테서 헌옷을 얻어 입히면 즐겁습니다. 바깥밥을 사먹이지 못하면 어때요.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읍내 장마당에 다녀오며 집에서 차리는 밥으로 함께 배부르면 넉넉합니다.

 자가용을 타고 멀리멀리 마실을 못 다니면 어때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 손을 잡으며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멧바람을 시원하게 쐬면 됩니다.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멧풀을 조금 뜯어 밥거리를 삼으면 기쁩니다.

 가난하대서 풀을 뜯어먹지 않습니다. 가멸차기에 풀을 안 뜯어먹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으니까 멧자락 조그마한 집을 찾아들어 네 식구가 아옹다옹거립니다. 참답게 살고 싶기에 좋은 돈벌이라 하는 일자리는 등을 지면서 복닥거립니다. 착하게 살고 싶어 자전거를 아끼며 사랑합니다.


.. 그러다가 이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행복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앞으로 헤쳐 나갔습니다 … 결국 나는 이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단단히 각오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  (126쪽)


 나는 자전거 한 대만 있으면 좋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고픈 데에는 다 갈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기 힘들다면 버스를 얻어탑니다. 도시에서는 전철도 탑니다. 택시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되도록 버스도 전철도 택시도 타고 싶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네 식구가 나란히 걷고 싶습니다. 네 살 딸아이하고 둘이 돌아다닐 때에는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함께 다니면 됩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살림이 가난하기에 이렇게 살아간달 수 있는데, 앞으로 어찌저찌 우리 살림이 가멸차게 되는 날을 맞이하더라도 오늘과 같은 삶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에어컨을 쐬면 몸이 아프지만, 멧바람을 쐬면 몸이 즐겁습니다. 햇볕을 쬘 때에 몸에서 기운이 납니다. 흙을 사랑하는 시골자락에서 흙 밑으로 흐르는 물을 길어올려 마시거나 몸을 씻을 때에 개운합니다. 구름을 이끄는 바람이 고맙습니다. 빗물과 나비와 개구리와 들풀이 반갑습니다.


 (2) 가난한 문학


 미야자와 겐지 님이 쓴 《은하철도의 밤》(푸른나무,1997)을 읽습니다. ‘푸른나무’에서 1997년에 나온 책은 어느새 판이 끊어집니다. 어린이가 함께 읽도록 조금 굵직한 글씨에다가 그림을 곁들인 예쁘장한 《은하철도의 밤》은 헌책방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참 아쉽지만, 이러한 모습이 우리 나라 모습입니다. 숨길 수 없는 모습입니다. 감출 수 없는 삶입니다.


.. “우리들은 이제 그 어떤 슬픔도 없을 거야.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면서 바로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거야.” … “하지만 우리들은 여기에서 내리지 않으면 안 돼. 여기는 천상으로 가는 곳이니까.” “천상에 가지 않아도 되잖아? 우리들은 이 땅에서 천상보다 더 좋은 곳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 “하지만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하느님이 계시잖아?” “그런 하느님은 가짜 신이야.” 두 아이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고 청년이 타이르듯 가로막았습니다 ..  (123, 157∼158쪽)


 《은하철도의 밤》을 천천히 읽으며 천천히 새깁니다. 내가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깊은 밤 까만 하늘 밝은 별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이렇게 《은하철도의 밤》을 쓸 수 있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이 사람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 헤아립니다. 어떤 목소리로 글을 썼고, 어떤 숨결로 책을 냈으며, 어떤 눈빛으로 이야기를 얻었을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이 커다란 도시에서 살았대도 《은하철도의 밤》을 일굴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이제 거의 모든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은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더군다나 커다란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오늘날 《은하철도의 밤》은 얼마나 읽히고 어떻게 읽힐까 궁금합니다.

 한낱 독서감상문 숙제를 써야 하기에 읽히는 책이 되나요. 손꼽히는 고전 가운데 하나라 일컬으니까 읽는 책이 되나요.

 책이면 책이지, 독서감상문 숙제는 없습니다. 책이면 책일 뿐, 고전이란 없습니다.

 훌륭한 사람도 없고 거룩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 어머니는 그예 내 어머니입니다. 내 아버지는 그저 내 아버지예요. 어머니는 어머니로 사랑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로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로 살포시 껴안고, 옆지기는 옆지기로 따스히 어깨동무합니다. 함께 살아갈 기쁜 길동무입니다. 그러니까, 삶동무입니다.


.. “그렇지만 참다운 행복은 도대체 뭘까?” … “참다운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제 저런 커다란 어둠 속도 무섭지 않아. 어디까지라도 함께 나아가는 거야.” … 두 별님은 떨어지면서도 단단히 서로의 무릎을 꽉 잡았습니다. 이 쌍둥이 별님은 어디까지라도 함께 떨어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  (162∼163, 185쪽)


 두 아이한테 아버지가 되어 살아가는 오늘을 돌이키며 다시금 생각합니다. 그래요. 아버지는 아이한테 얼토당토않은 한국말이 흐르는 만화영화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요 며칠 몸이 너무 아파서 아이한테 그림책 한 번 읽어 주지 못하며 지나가는데, 《은하철도의 밤》 같은 작품을 천천히 조곤조곤 읽히면서 한국말을 한국말다이 느끼도록 하고 싶습니다. 잘 옮긴 대목은 그대로 읽고, 아쉽다 싶은 대목은 죽죽 금을 긋고는 새말을 적으면서 천천히 조곤조곤 읽히고 싶어요.

 문학이란 말꽃이거든요. 문학이란 삶말이거든요.

 살아가는 말이 꽃처럼 피면서 문학이 됩니다. 살아숨쉬는 말이 열매를 맺으며 문학으로 빛납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 문학은 온누리 가난한 어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아이들한테 맑은 빛과 밝은 꿈을 나누고 싶어 《은하철도의 밤》 같은 이야기열매를 빚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두 아이 아버지는 두 아이한테 빛나는 이야기열매를 사랑스레 들려주면서 내 삶과 아이 삶을 가꾸어야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 “저 거친 세상에서 단 하나 있는 참다운 표를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 … 자, 돌아가서 쉬어라. 너는 꿈 속에서 결심한 대로 곧장 나아가는 게 좋겠다.” ..  (169쪽)


 8월에 우는 밤녘 풀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밤녘에는 자동차 소리가 잦아들기에 풀벌레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립니다. 때때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집 앞 두릅나무 잎사귀를 흔듭니다.

 아, 이 소리들과 함께 우리 살붙이하고 고즈넉하게 살아가는 나날이 가없이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도 모르게 몸과 마음으로 스며드는 멧새 소리와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와 도랑물 소리와 벼락 소리와 구름 소리와 뙤약볕 소리를 골고루 맞아들이면서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몸이 튼튼할 때에는 이 모든 소리와 기운에 힘입어 즐거이 사랑을 나누고, 몸이 여리거나 아플 때에는 이 모든 소리와 기운을 떠올리며 즐거이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빕니다. 튼튼한 몸일 때에도 여리거나 아픈 몸일 때에도, 한결같이 사랑스레 손과 눈과 마음과 꿈을 나누는 목숨붙이로 자라기를 빕니다. (4344.8.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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