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
우어줄라 쇼이 지음, 전옥례 옮김 / 현실문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에는 자유도 민주도 없다
 [책읽기 삶읽기 71] 우어줄라 쇼이 엮음,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현실문화연구,2003)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이 나라에는 헌법이 있지만, 헌법을 아랑곳하지 않는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때때로 특별법이 생기면서 헌법을 뛰어넘습니다. 인권을 비롯한 기본권보다 권위와 권력이 앞섭니다. 자연과 삶보다 개발과 경제가 앞섭니다. 평등과 평화보다 안보와 군대가 앞섭니다. 자유와 민주는 언제나 뒷전이 됩니다. 사랑과 믿음을 지키는 나라정책이나 나라살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나라정책만 자유와 민주하고 동떨어지지 않습니다. 나라살림만 사랑과 믿음하고 등지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삶부터 자유와 민주랑 사귀지 못합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삶터부터 사랑과 믿음이 깃들기 어렵습니다.

 나라정책에 앞서 여느 사람들부터 자유와 민주를 먼저 살피지 않습니다. 누구나 언제나 돈벌이를 먼저 살핍니다. 나라살림에 앞서 여느 삶터부터 사랑과 믿음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누구나 언제나 이름값을 먼저 헤아립니다. 입시지옥은 나라정책이 만들고 제도권학교가 함께 만들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느 어버이 또한 함께 만듭니다. 비정규직이나 푸대접이나 따돌림은 나라정책이 만들고 회사가 함께 만들지만, 어른이 된 여느 사람들 또한 함께 만듭니다.

 내가 살아가는 자리부터 자유와 민주가 가장 앞설 수 있도록 해야, 내 삶터가 달라지고 내 마을이 달라집니다. 내가 꿈꾸는 마음밭부터 사랑과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해야, 내 나날이 바뀌고 내 이웃이랑 동무가 바뀝니다.


- 남녀의 동등한 권리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종이 위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게 전부다. (12쪽/리다 구스타파 하이만)
- 나와 결혼할 남자는 내 예술과도 결혼해야 한다. 내 예술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관용을 베푸는 게 아니라! (33쪽/조지 엘리엇)
-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도 남자고, 진실에 반대하는 자들 역시 남자다. (53쪽/메리 아스텔)
- 남자들은 여자를 껴안는 대신에 덮친다. 남자들은 여자를 얻는 대신에 산다. 남자들은 뭔가 이문을 남겨야 하는 사업을 하듯 여자를 다룬다. (80쪽/루트 베를라우)



 우어줄라 쇼이 님이 엮은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현실문화연구,2003)라는 작고 도톰한 책을 읽습니다. 여자로 살아가며 여성으로 말하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 보여줍니다. 숱한 서양사람이 어떠한 말을 길어올려 참삶과 참자유와 참민주를 바랐는가를 보여줍니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어여쁜 사람인 줄 느끼며 살아갈 참평화와 참평등과 참사랑이 어떠해야 좋을까를 가만히 들려줍니다.

 종이에 적힌 권리는 권리가 아닙니다. 삶으로 함께 누릴 때에 비로소 권리입니다. 전쟁무기를 만들고 군대를 키우는 일은 평화하고 동떨어집니다. 무기와 군대가 더 많고 더 세다 해서 지키는 평화가 아니라, 무기와 군대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전쟁이요 푸대접이며 따돌림입니다.

 여자 군인이 드물게 있으나, 군대는 남자가 만들어 남자로 이루며 남자가 꾸립니다. 여자 정치꾼과 경제꾼이 더러 있으나, 정치이든 경제이든 남자가 만들어 남자가 이루며 남자가 꾸립니다. 우리 사회와 교육과 문화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같이 남자가 만들어 남자가 이루며 남자가 꾸립니다.

 남자들은 한결같이 집을 떠납니다. 남자들은 저를 낳아 키운 어버이 곁을 금세 떠나 홀로 살아갑니다. 어른이 되어 짝을 만나 아이를 낳았어도, 저(남자)를 키운 어버이처럼 제 아이를 키울 생각을 않고, 아이를 키울 몫은 오직 여자한테 떠넘기고는 집 바깥에서 무언가 ‘큰 일’을 벌입니다. 돌이키면, 저(남자)를 키운 어버이도 으레 어머니(여자)였지, 아버지(남자)는 아니라 할 만합니다.


- 남자가 권력과 어리석음 대신 영혼과 인간성을 채워 넣는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86쪽/리다 구스타파 하이만)
- 남자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모든 남자가 독재자가 될 것이다. (96쪽/애비게일 애덤스)
- 어른들은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들이 놀 때 각기 다른 운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들이 배우는 종목이 각각 다르다. (163쪽/게르트루드 피스터)
- 아름다운 여자는 이중으로 보복 조치를 당한다. 몸은 묶이고, 남자의 소유물인 자신의 모습은 길들여지고 다듬어진다. (182쪽/수잔 팰루디)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를 버려야 나라살림이 살아납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에 들일 돈을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에 들여야 합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를 단단히 움켜쥐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를 없애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듭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를 없애면 남북이 하나되는 마당에 든다 하는 돈이 걱정스럽지 않습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가 무섭게 버티는데 대학등록금이 이토록 비쌀밖에 없습니다.

 장난감 칼이나 총을 아이한테 선물하는 일부터 잘못인 줄 느끼지 못하기에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는 더 커지기만 합니다. 전투기나 군함이나 탱크나 잠수함이나 미사일을 만들 돈으로 햇볕힘을 알뜰히 쓰도록 애쓸 노릇이요, 지구별 자원을 걱정할 일입니다. 아이들은 장난감 칼이 아닌 호미나 낫이나 쟁기를 손에 쥐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장난감 총이 아닌 빨래비누와 걸레와 수세미를 손에 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흙을 일구며 땀을 흘리는 나날을 어릴 적부터 맞아들여야 합니다. 아이들은 집일을 거들며 찬찬히 배우는 삶을 어린 날부터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이들은 입으로 넣는 밥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흙으로 돌아가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한글은 나중에 깨치더라도 흙살림을 먼저 옳게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느긋하게 잠자리에 들며 즐거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어떻게 돌보며 아끼는가를 익혀야 합니다. 영어나 한자는 모르더라도 집살림을 제대로 알뜰살뜰 느껴야 합니다.


- 나는 내 의지대로 살고 싶다. 그게 예절에 맞는지 어떤지 묻고 싶지도 않다. 나는 더 이상 세상의 판단에 따라 흔들리고 싶지 않다! … 나는 진리에 도움이 되고 싶다. (218쪽/루이제 뮐바흐)
- 여자답다는 말은 남자들에게 욕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최선의 형용사다. (233쪽/헤드비히 돔)
- 사회 모든 분야의 원칙은 남자가 정한다. (274쪽/앙엘리카 메르켈)
- 여자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가 곁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그토록 난폭하게 구는 것이다. (279쪽/조앤 콜린스)



 이 나라에서 사내다움이나 가시내다움이란 무엇인지 아리송합니다. 아니, 이 나라에는 사내다움이나 가시내다움이란 아예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다움조차 쉬 찾아보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사람다움이란 밥·옷·집을 스스로 마련하며 건사하는 삶입니다. 사내다움이나 가시내다움이란 사람다이 살아가면서 둘로 나뉜 성별에 걸맞게 착하면서 참답고 아름다운 나날을 일구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밥·옷·집을 스스로 마련하거나 건사할 생각부터 하지 않는데다가, 밥·옷·집을 스스로 마련하거나 건사할 줄 모릅니다. 내 삶은커녕 동무 삶과 이웃 삶을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이 보듬을 줄 모릅니다.


- 여자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사내 아이를 재봉학원과 부엌으로 보내라. 그렇게 3세대가 흐르면 여러분도 남자가 바느질과 요리를 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인지, 억압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될 날이 오리라. (340쪽/이다 한-한)
- 여자는 과거에 대체로 정치와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전해 내려온 나쁜 정치 습관과 전통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생각해 낼 수가 있다. (385쪽/에밀리 그린볼치)
- 집안일은 사람의 일이지 여자의 일이 아니다. (418쪽/알리스 슈바르처)
- 전쟁은 경악스러운 강간을 동반한다. (464쪽/리다 구스타파 하이만)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라는 책은 아픈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엉터리로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라는 책은 우리가 예쁘게 살아갈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떻게 해야 즐거우며 반가운 나날을 맞이할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모든 아이들은 오직 대학에 보내는 틀에 짜맞추어집니다. 아이들은 오직 대학에 가는 틀에만 짜맞추어지면서, 스무 살이 되건 스물다섯 살이 되건 스스로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집안을 건사하거나 하는 일을 겪지 않고 배우지 않으며 대물림하지 않습니다. 그예 돈을 더 많이 더 빨리 벌어들이는 일자리 얻는 틀에 갇힙니다. 대학이라는 곳은 학문하는 데가 아니라, 돈을 잘 버는 일자리에 들어갈 자격증인 졸업장을 따는 곳일 뿐입니다. 대학등록금이 비싼 까닭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들일 일자리를 얻도록 내밀 자격증인 졸업장을 받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삶을 보아야 하고, 사람을 느껴야 하며,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착하게 살아야 하고, 참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며, 아름다이 사랑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아직 자유도 민주도 없습니다. (4344.8.13.흙.ㅎㄲㅅㄱ)


―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 (우어줄라 쇼이 엮음,전옥례 옮김,현실문화연구 펴냄,2003.12.2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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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채 살아가기


 나하고 살아가는 옆지기는 내 몸이 얼마나 안 튼튼한지를 어느 만큼 안다. 옆지기 말고 내 몸이 얼마나 안 튼튼한지를 아는 사람은 아마 내 어머니하고 우리 형에다가 오랜 내 술동무 두엇이 있으리라. 몸이 워낙 여리기는 한데, 코와 이 때문에 병원을 오래도록 드나들어야 했던 일을 빼고는 따로 병원 문턱을 드나들지 않았다. 어찌 보면 용하다 할 만하고, 어찌 보면 고마운 노릇이라 여길 만하다. 여린 몸이지만 사나흘 앓아눕거나 너덧새 끙끙 앓은 일은 없다. 어쩌면 여린 몸으로 타고났기 때문에 내 몸속에서는 늘 나를 지키려 애쓰고, 늘 애쓰다 보니 때때로 크게 앓을 때에 그리 오래 앓아눕지 않고 탈탈 털며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른다.

 서른일곱인 오늘, 어제를 돌아본다. 앞으로 내가 꾸릴 수 있는 삶은 얼마나 될까. 나는 내 몸뚱이가 얼마나 오래도록 살아숨쉬도록 이끌 수 있을까. 누구처럼 병원 문턱을 드나들거나 자리에 앓아누운 몸은 아니나, 참 오랜 옛날부터 내 목숨이 얼마나 이어갈까 하고 생각하며 살았다. 스물을 살 수 있을는지, 스물다섯을 넘길 수 있을는지, 서른을 지날 수 있을는지, 서른셋이나 서른다섯을 보낼 수 있을는지 모르는 채 하루하루 살았다. 두 아이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 삶을 꾸리는 오늘, 머잖아 마흔이 되고 쉰도 된다지만, 내가 이 아이들하고 마흔을 맞이하거나 쉰을 맞이할 수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내 몸이 버틴다 하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 자연 터전이 못 버티고 왕창 무너질는지 모른다. 나는 일본 후쿠시마 일이 이웃나라 일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이 나라 웬만한 사람들은 축구 경기에서 한국이 일본한테 진 일을 놓고 서운해 하거나 슬퍼 하거나 짜증스레 여기거나 안타깝게 생각할는지 모르나, 나는 후쿠시마 일을 어제나 그제 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일처럼 돌이킨다. 후쿠시마 마을 사람들은 삶인지 죽음인지 모르면서 하루아침에 없던 사람들처럼 깡그리 사라졌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거나 않으면서 송두리째 없어졌다.

 아이를 수레에 앉혀 자전거를 끌며 읍내를 다녀올 때마다 길바닥에 널린 수많은 주검을 바라본다. 차마 아이한테 이 많은 주검을 보여주지 못한다. 여기에도 주검 저기에도 주검이다. 뱀이 깔려 죽고 사마귀가 밟혀 죽으며 나비가 치여 죽는다. 그러나, 까만 길바닥이 놓이는 동안 아주 많다 할 목숨이 소리도 못 내고 죽어 사라졌겠지.

 사람 목숨하고 지렁이 목숨이 무엇이 다를까. 사람 목숨값하고 강아지풀 목숨값하고 무엇이 다르려나.

 우리 옆지기 나이가 서른둘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놀란다. 참 오래도록 아픈 채 살아온 옆지기는 어느새 서른둘이라는 나이까지 살아냈다. 옆지기는 이녁이 서른둘까지 살아낼 줄을 알았을까. 앞으로 서른다섯이나 마흔을 살아낼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얼마까지 살아낼 만할까. 옆지기가 먼저 흙으로 가든, 내가 먼저 흙으로 가든, 둘 가운데 한 사람이 먼저 흙으로 가면, 남은 살붙이 세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까.

 돈을 남기는 삶만큼 덧없는 삶이 없다고 몸과 마음으로 느껴, 나는 내 삶을 글을 써서 남기는 삶으로 보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써서 남기는 삶이란, 돈을 벌어 남기는 삶하고 어느 하나 다르지 않다. 왜 남기려 하는가.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산 사람은 옛이야기(추억)로 먹고살 수 없다. 산 사람은 돈(재산)으로 살림을 일구지 않는다. 가멸차건 가난하건, 서로 얼굴을 마주하면서 웃거나 웃는 낯으로 먹고살며 살림을 일군다.

 둘째가 태어난 뒤로 아파도 아픈 줄 잊거나 넘기면서 두 달을 살았다. 새 보금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깨달아, 둘째가 태어나고 두 달이 지난 다음 첫째를 데리고 며칠 동안 남도를 돌아다녔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몸이 무너졌다. 무너진 몸은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골이 너무 아프다. 잠이 자꾸 쏟아진다. 이러면서도 글 한 조각 더 끄적이고 싶다며 애를 쓰지만, 글을 쓸 틈이 나지 않는다.

 아픈 채 살아가는 사람들 나날을 헤아린다. 아픈 채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돈 몇 푼 더 벌어 남기는 일이라든지, 글 몇 조각 더 끄적여 남기는 일이란 얼마나 뜻있거나 보람이 있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휘둘리며 힘들게 지낼까.

 책으로 살아왔다면, 아이를 무릎에 앉히든 같이 드러눕든 하면서 책을 읽으면 된다. 너른 종이를 펼쳐 함께 그림을 그리면 된다. 나중에 더 남겨 줄 만한 무언가를 찾기 앞서, 오늘 함께 복닥일 무언가를 바라보아야 할 텐데.

 잠자리에서 아이는 소근소근 어여쁜 목소리로 어머니를 부르고 아버지를 부른다. 얼른 잠들고 아침에 새롭게 일어나 놀면 좋으련만, 깊어 가는 밤에도 아이는 더 놀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아이는 더 놀려고 한달 수 있으나, 오늘을 더 좋아한달 수 있겠지.

 몸이 무겁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마음이 짓눌린 나머지, 이레 동안 밥을 못 차리고 빨래를 거의 옆지기한테 맡기면서 보냈다. 한숨을 쉬며 모로 드러누운 채 책을 몇 권 읽기도 한다. 아파서 마냥 지켜보기만 하는 삶이란, 아파서 내 몸을 쓰지 못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몸을 쓰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삶이란, 아파서 아픈 채 살아가는 사람들 삶이란, 아프기에 숨죽이면서 조용히 숨어드는 사람들 삶이란, 사랑스럽다. 아프게 사랑스럽다. (4344.8.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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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8-12 15:43   좋아요 0 | URL
아프다는 것은, 아픈 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또 다른 증거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아프지 않고 살아가는 거랑 삶의 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어서 나으세요~
아니, 많이 아프진 마세요~^^

파란놀 2011-08-13 05:13   좋아요 0 | URL
아프지 않고 살아가기란 참 어려운 일이에요.
낫기를 바랄 수 없어요.
아픔을 잘 받아들이면서 살아야지요...
 



 햇살 책읽기


 해가 났다가 구름이 가득하고, 빗줄기가 퍼부었다가 어느새 그치는 날씨.

 가끔 이러한 날씨를 맞이한다면 그러려니 하면서 여우비라느니 범이 장가를 가느니 하고 생각합니다. 날씨가 구지레한 채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이 되면, 도무지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공장은 더 늘고 자동차는 끝없이 늘며 아파트는 자꾸 늡니다.

 엉망진창이 되는 날씨를 한 사람 힘으로 돌이킬 수 있을까요. 착하며 고운 날씨로 돌이킬 수 있을까요. 엉망진창으로 흐르는 정치나 사회나 문화나 교육을 한 사람 힘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맑으며 아리따운 모습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비가 멎고 구름이 걷혀 해가 나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후끈후끈한 기운이 서렸기에 섣불리 빨래를 내걸지 못합니다. 십 분 이십 분 지난 다음 빨래를 내겁니다. 조금 더 지난 뒤, 곰팡이가 피는 사진틀을 잘 닦아 해바라기를 시킵니다. 조금 더 지난 다음, 나무로 된 평상을 뒤집어 말립니다. 조금 더 지나고 나서, 이불을 빨랫줄에 차곡차곡 넙니다.

 다문 한 시간이라도 이 따사로운 햇살을 맞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따사로운 햇살은 기저귀 한 장에도 내려앉고 손닦개 석 점에도 내려앉습니다. 빨래를 잔뜩 했건 조금 했건 다르지 않습니다. 햇살은 모든 빨래에 골고루 내려앉습니다. 햇살은 텃밭에건 무논에건 멧자락에건 들판에건 골고루 내려앉습니다. 어느 쪽에는 더 내려앉고 어느 쪽에는 덜 내려앉지 않습니다. 땅이 기울었어도 골고루 내려앉습니다.

 목덜미로 땀이 흐릅니다. 빨래를 너는 동안에도 목덜미로 땀이 흐릅니다. 보송보송해지면서 햇살 냄새 듬뿍 받아들인 이불을 걷어 터는 동안에는 등줄기로 땀이 흐릅니다. 햇살은 빨래와 이불뿐 아니라, 빨래랑 이불을 널고 걷는 사람 등짝과 얼굴과 손등과 허벅지에도 내려앉습니다. 누구를 미워하지 않는 햇살이면서, 누구를 딱히 더 좋아하지 않는 햇살입니다. 아니, 미움과 좋아함을 넘어, 고운 품으로 따사로이 부둥켜안는 너른 햇살입니다.

 내가 책을 왜 가까이했는가 생각합니다. 내가 책을 왜 이렇게 갈무리하면서 살아가는가 헤아립니다. 모든 책이 햇살처럼 너르면서 고운 따순 품은 아니었지만, 틀림없이 햇살처럼 너르면서 곱고 따순 책이 있습니다. 백 권 가운데 하나이든 만 권 가운데 하나이든, 내 마음밭을 너르면서 곱고 따순 헷살로 스며든 책이 있습니다. 백 권이나 만 권이 아니라 한 권을 믿으면서 책을 만났고, 사귀었으며, 함께 살아갑니다.

 모두를 바치는 사랑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모두를 누리는 사랑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햇살 한 조각으로 즐거운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햇살 한 조각을 누리거나 나누면서 웃거나 우는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4344.8.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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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 권혁도 세밀화 그림책 시리즈 2
권혁도 글 그림 / 길벗어린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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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땅에서 나비를 만나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8] 권혁도,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길벗어린이,2010)



 꼼꼼그림으로 호랑나비를 어여삐 담은 그림책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길벗어린이,2010)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은 이토록 어여쁜데, 이 그림책을 장만하여 읽을 어른이나 어린이 가운데 ‘나비가 알을 낳아 살아갈 만한 터전’에서 ‘나비가 사랑하는 흙과 풀을 아끼며’ 일거리를 찾거나 보금자리를 돌보는 이는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살며 첫째를 낳았을 때이든, 시골로 옮겨 둘째를 낳았을 때이든, 나비는 늘 우리 식구 둘레에서 날갯짓을 했습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숲이 아닌 골목숲에서 살았습니다. 골목숲 골목이웃은 흙 한 줌 없는 도시에서도 흙을 알뜰히 건사하면서 텃밭을 일구었고, 이 텃밭에서 피고 지는 숱한 꽃이나 푸성귀 내음을 좇아 온갖 나비가 찾아들었고, 알을 깠으며, 목숨을 이었습니다. 이제 시골에도 자동차 많고 공장 많으며 시끄럽습니다. 그래도, 이 시끄럽고 어수선한 시골은 도시와 견주어 숱한 나비와 잠자리와 풀벌레가 깃들기에 훨씬 나은 터전입니다.

 아이가 마당에서 뛰놀든 멧자락을 오르내리든, 또 아버지가 자전거수레에 태워 읍내로 마실을 다녀올 때이든, 언제 어디에서나 쉽게 나비를 만납니다. 풀이 자라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나비가 깃들 쉼터가 생깁니다. 풀꽃이든 멧꽃이든 사람들이 뿌린 씨앗 때문에 피지 않습니다. 풀밭에서건 멧자락에서든 들풀이나 멧풀은 저희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며 씨앗을 냅니다. 나비 또한 사람이 들여다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나비는 나비대로 저희 삶을 알뜰히 꾸립니다.

 식구들이 두 다리로 움직이는 자리에서는 팔랑거리는 나비를 만납니다. 아이를 태운 자전거를 몰며 읍내를 다녀올 때에는 자동차에 치이거나 밟혀서 죽은 나비를 길바닥에서 끝없이 만납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는 사람은 하루에 몇일까요. 자동차에 치여 죽는 나비는 하루에 몇일까요.

 어느 누구도 자동차에 치여 죽는 나비나 잠자리나 참새나 비둘기나 삵이나 고라니나 뱀이나 개구리나 사마귀나 메뚜기나 너구리나 고양이나 다람쥐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자동차에 밟혀 죽은 개미가 얼마나 된다든지, 자동차에 밟혀 그예 떡이 되어 사라진 지렁이가 얼마나 되는가를 살피는 통계는 없습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슬퍼 하거나 아파 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느끼지 않고,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랑 자전거를 타고 읍내 장마당에 다녀올 때마다 숱한 죽음을 마주합니다. 너무도 많은 목숨이 새까만 아스팔트길에서 너무도 쉽게 너무도 가벼이 너무도 끔찍하게 사그라듭니다. 너무도 빨리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너무도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너무도 앞만 바라볼 뿐인 자동차 때문에, 사람 아닌 목숨은 이 땅 이 나라 이 터에 섣불리 깃들이지 못합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은 나비가 길바닥에서 자동차 바람에 휩쓸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굽니다. 몸뚱이는 벌써 사라졌고, 날개만 가까스로 남아 파닥거리는 나비가 곳곳에 널립니다. 장마가 지났어도 그치지 않는 빗줄기에 까만 아스팔트길이 날마다 씻긴다지만, 이렇게 씻기고 나서도 수많은 목숨들이 또 새롭게 이곳 까만 길바닥을 저승길로 삼습니다. 자동차에 탄 사람들만 못 느끼는 무덤길인 찻길입니다.


.. 호랑나비는 진달래꽃을 좋아해요. 작은 낱눈이 모인 겹눈으로 쉽게 진달래꽃을 찾아내지요 ..  (4쪽)


 그림책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는 어여쁩니다. 호랑나비 한살이를 살피는 권혁도 님 눈길부터 어여쁩니다. 호랑나비 한 마리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손길이기에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을 일구어 이 나라 아이들하고 나눌 수 있다고 느낍니다. 꼼꼼하게 그린 그림으로 이루어진 그림책은 으레 일본 그림책으로만 만나야 하는 판인데,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는 한국땅 한국 목숨붙이를 한국사람 눈길대로 살가이 보여줍니다. 이 그림책 하나를 펼치면서, ‘일본땅 일본 목숨붙이를 일본사람 눈길대로 사랑스레 담은 그림책’이 아닌 한국 그림책으로도 아이하고 나비 한살이를 예쁘게 나눌 수 있으니 더없이 고맙습니다.


.. 풀숲에는 많은 애벌레들이 자라고 있어요. 생김새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달라요. 나비 애벌레는 대개 정해진 먹이 식물을 먹어요 ..  (14쪽)


 그렇지만, 그림책을 덮고 나면 온통 슬픈 빛깔인 삶터입니다. 도시에서는 도시대로 나비하고 사귀기 어렵습니다. 시골에서는 시골대로 나비가 죽어납니다. 곡식과 푸성귀를 거두려고 풀약을 뿌리기에 풀약을 함께 맞아 죽을 뿐 아니라, 자동차에 치여 죽는 나비입니다. 아이들이 어여쁜 그림을 바라보며 어여쁜 호랑나비 모습을 머리에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만, 정작 호랑나비 한 마리 어여삐 한살이를 보낼 만한 터전을 좀처럼 지킬 수 없는 이 나라입니다. 물길을 파헤치고 멧자락을 무너뜨립니다. 새로운 겨울올림픽을 한국땅에서 치른다고 하니까, 조용하고 정갈하던 멧자락을 또 얼마나 넓게 파헤치거나 무너뜨려야 할까요. 경기장을 새로 짓느라, 아파트와 숙소를 새로 세우느라, 찻길을 새로 닦느라, 무얼 또 새로 만드느라 …… 나비 한 마리 깃들 조용하고 정갈한 보금자리는 얼마나 슬프게 사라져야 할까요.

 그런데, 나비가 깃들 터전은 운동장 하나만 하지 않습니다. 나비는 자동차 한 대 세울 만한 자리만 곱게 지키면 얼마든지 알을 깰 수 있습니다. 지렁이는 한 사람 누울 땅뙈기면 얼마든지 예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 나날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를 보고 자라는 어린이가 앞으로 어른이 되어 정치를 맡거나 행정을 맡거나 교육을 맡는다 할 때에, 이 어린이는 호랑나비를 어여삐 사랑할 만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라는 그림책을 보고 자란 어린이만큼은 호랑나비를 비롯한 작디작고 여리디여린 이웃 목숨붙이를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믿거나 보듬는 착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어여쁜 그림책을 보는 사람이라면, 어린이가 되든 어른이 되든, 어여쁜 한 사람으로서 씩씩한 몸짓과 맑은 눈빛으로 착한 삶을 일굴 때에 어여쁜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4.8.12.쇠.ㅎㄲㅅㄱ)


―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 (권혁도 글·그림,길벗어린이 펴냄,2010.1.25./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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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Frank: Peru (Hardcover)
Frank, Robert / Steidl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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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하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4]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PERU》(STEIDL,2008)


 페루에는 페루사람이 살아갑니다. 페루사람은 페루사람답게 살아갑니다.

 한국에는 한국사람이 살아갑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답게 살아갑니다.

 페루사람보다 한국사람이 낫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한국사람보다 페루사람이 나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널따란 아파트에서 자주 씻을 수 있으면 더 낫다 싶은 삶이 될까 궁금합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서 두 다리로 오래도록 힘겹게 걸어야 하지 않다면, 까맣고 커다란 자가용 짐칸에 짐을 싣고 다닐 수 있으면, 아니 까맣고 커다란 자가용조차 심부름을 해 주는 누군가 몰아 준다면, 이때에 한결 낫다 싶은 삶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책 《PERU》(STEIDL,2008)를 읽습니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님이 1948년에 빚은 사진책입니다. 사진책은 참 얇습니다. 페루땅에서 살아가는 페루사람 사진을 고작 서른아홉 장 담습니다.

 서른아홉 장이라 한다면 필름 한 통보다 석 장 많습니다. 설마 필름 두 통만 찍었겠느냐만, 또 1948년이면 요즈음 같은 필름이 아닌 다른 필름이라 할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웬만한 여느 사진책을 돌아본다면, 서른아홉 장 사진으로 빚은 《페루》는 참 얄팍한 녀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책을 가만히 되넘깁니다. 사진 서른아홉 장이면 참말 적은 숫자인가 되뇝니다. 서른아홉 장이 아닌 삼백여든 장을 담아야 비로소 잘 엮은 사진책이라 할 만할는지 곱씹습니다. 서른아홉 장조차 아닌 서너 장으로 페루사람들 삶을 보여주려 했다면 바보짓이라 할 만한가 되뇝니다.

 사진을 보고, 다시 생각하며, 사진을 보다가, 또 생각합니다. 사진잔치를 하는 이들은 으레 ‘사진 한 장만 알림쪽지에 넣’곤 합니다. 사진책을 내놓을 때에 ‘사진책 앞쪽에 사진 한 장만 넣’기 일쑤입니다. 알림쪽지로든 사진책으로든, ‘사진 한 장’으로 사람들한테 느낌과 이야기를 건네지 못한다면, 사진잔치에 내건 다른 사진들이든 사진책에 담긴 다른 사진들이든 부질없다 할 만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사진 백 장이나 천 장으로 보여줄 수 없습니다. 사진 백 장이나 사진 천 장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사진 한 장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다시금 사진책을 들춥니다. 사진책 《페루》에 실린 어느 사진이건 책겉에 넣을 만합니다. 애써 어느 사진 하나를 가려서 겉에 넣을 만하지 않습니다. 페루땅 페루사람 이야기라면 이 사진이든 저 사진이든 잘 어울리는구나, 잘 드러나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찍는다 할 때에는 어느 사진 하나로 ‘한국땅 한국사람’을 보여준다고 내놓을 만할까요.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한 땅인가부터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한국사람 또한 어떠한 몸과 마음으로 어떠한 꿈을 키우면서 어떠한 살림을 일구는 겨레인지 가늠하지 못하겠습니다. 4대강사업을 한다며 연장이나 기계를 다루느라 땀흘리는 사람들 모습이랑 자동차나 배를 만드는 공장에서 연장이나 기계를 다루느라 땀흘리는 사람들 모습이랑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나라밖 노동자가 얼크러진 모습에서 무엇을 한국땅 한국사람 모습이라고 그려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한겨레 어머니와 조선족 어머니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어떤 한국사람 얼굴을 찾아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까만 양복을 입고 까만 자가용을 모는 사람이랑 까맣게 탄 얼굴과 까맣게 얼룩진 손으로 흙을 일구는 사람 사이에서 어떤 한겨레 빛깔을 느껴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피리를 불고, 양을 몰며, 먼지바람이 이는 흙길 뒤로 높디높은 멧자락이 드넓게 펼쳐진 페루땅 한켠 페루사람들 눈빛과 낯빛을 들여다봅니다. 햇살을 듬뿍 받고, 바람을 가득 마시며, 흙하고 한동아리로 뒹구는 페루사람들 몸뚱아리를 바라봅니다.

 사진에 앞서 사람이란 무엇일까 알아야겠습니다. 사진에 앞서 삶이란 무엇일까 찾아야겠습니다. 사진에 앞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느껴야겠습니다.

 한국 사진쟁이 가운데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담는다든지, ‘고향사람’을 사진으로 담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알쏭달쏭합니다. 한국사람과 고향사람을 지나 ‘지구별 이웃’이랑 ‘지구별 목숨’을 곰곰이 살피면서 사진으로 싣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아리송합니다.

 왜 사진을 찍는가요. 왜 사진에 담는가요. 사진기를 쥐고 무엇을 바라보는가요. 사진기를 든 채 어디에 서나요.

 사진을 찍어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요. 사진에 담아 무엇을 보여주려 하나요.

 사진기를 든 나하고 사진기를 바라보는 너 사이에는 어떠한 징검돌이나 걸림돌이 있는가요.

 살아가는 사람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하는 몫을 맡은 사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니,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이든 춤이든 만화이든 영화이든 연극이든 한결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할 때에 빛이 나면서 맛이 납니다. 살아숨쉬도록 하는 기운을 불어넣는 손길로 빚는 사진이요, 살아숨쉬도록 하는 기운을 샘솟게 돕는 눈길로 일구는 사진입니다. (434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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