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동엽
김응교 지음, 인병선 유물 보존.공개.고증 / 현암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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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사람과 삶터를 읽는 책이라면
 [책읽기 삶읽기 66] 김응교, 《시인 신동엽》(현암사,2005)


 이야기책 《시인 신동엽》(현암사,2005)은 지난 2005년 12월 30일에 나왔습니다. 나는 이 책을 2006년 앞겨울에 서울 명륜동에 자리한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에서 장만했습니다. 시인 신동엽을 좋아하며 아끼기 때문에, 누군가 당신을 이야기하는 책을 내놓을 때에 곧바로 눈길이 갔고, 이 책에는 당신이 손수 적바림한 글이며 편지가 알알이 깃들어 더 애틋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선뜻 다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처음 장만해서 읽던 2006년부터 마지막 쪽을 덮은 여러 달 앞서인 2011년 봄까지 내내 더부룩합니다.


.. 이 사진을 보고 신동엽이 친일을 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몰역사적이고 무분별한 태도다. 오히려 우리는 이 사진에서 군국주의가 한 아이에게 강요한 ‘국가의 폭력’을 볼 수 있다 . “우리도 자라서 어서 자라서 / 소원의 군인이 되겠습니다 / 굳센 일본 병정이 되겠습니다(이원수-지원병을 보내며,1942.8.)”라는 동시처럼, 당시 제국주의 일본은 군대식 놀이를 통해 아이들을 병정으로 의식화시켰다 ..  (24쪽)


 글쓴이 김응교 님은 시인 신동엽 님이 ‘친일을 한 사람이 아님’을 잘 헤아려야 한다면서, 역사와 사회와 삶과 사람을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먹이면서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일제강점기에 쓴 시를 ‘보기’로 듭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왜 이렇게 해야 했을까요.

 시인 신동엽 님이 태어나서 어린 나날을 보낸 일제강점기에 시인 신동엽 님을 둘러싼 여러 삶과 사회와 터전을 읽어야 한다면,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을 둘러싼 온갖 삶과 사회와 터전 또한 읽어야 할 텐데요.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은 왜 〈지원병을 보내며〉처럼 슬픈 시를 써야 했을까요. 슬픈 시를 쓴 이원수 님 삶은 해방 앞뒤로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 신동엽이 민족적 주체성을 탐구하고, 나아가 동학을 연구하며, 민족서사시 〈금강〉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상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어떤 이들은 이 시를 퇴행적 복고주의니 배타적 민족주의라는 말로 비판한다. 김수영도 신동엽이 “쇼비니즘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고 염려했다. 하지만 그의 시를 논할 때는 지금의 잣대로 비판하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 시인이 왜 이러한 정언적 호명을 남겼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시를 이방인에 대한 배타주의로만 읽는 것은 지나친 오해이다 ..  (25, 154쪽)


 《시인 신동엽》을 내놓은 김응교 님은 “이러한 (일제강점기)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민족적 주체성”을 살찌우면서 “민족서사시”를 쓸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마땅한 말입니다.

 그러면,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은 어떠한가요. 독재자 이원수와 박정희를 나무라면서 전태일을 노래하고 참다운 민주와 평화와 통일과 평등과 해방을 바라는 넋을 어린이문학에 담은 이원수 님은 어떠한가요.

 그지없이 아름다운 글꽃을 앞에 두고도 정작 신동엽 문학에 얽힌 빛과 그림자를 살가이 풀어내지 못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깝습니다. 아니, 안쓰럽습니다. 빛이 있기에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림자가 지기에, 이 그림자를 돌아보면서 따사로운 빛을 품에 안습니다. 그림자라 하지만, 나무 그림자는 좋은 그늘이 됩니다. 그늘이 있어 더위를 식히고 땀을 훔칩니다. 꽃잎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있어 무당벌레와 지렁이와 여치가 한여름을 이겨냅니다.

 편가르기를 하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편가르기를 하면서 뭇칼질을 하는 사람들이 무시무시합니다.

 삶을 읽어야 시요, 사람을 읽어야 문학이며, 사랑을 읽어야 넋입니다. 시인 신동엽 님은 어떠한 삶을 일구면서 어떠한 사람을 사귀면서 어떠한 사랑을 나눈 분이었을까요. 《시인 신동엽》을 읽는 내내, ‘신동엽 시인 삶·사람·사랑’을 제대로 헤아리기 어려웠습니다. 부디, 앞으로 더 곰삭이거나 아로새기면서 시인 신동엽 님 꿈과 넋과 빛을 오롯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글꾼 하나 태어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4344.9.9.쇠.ㅎㄲㅅㄱ)


― 시인 신동엽 (김응교 씀,현암사 펴냄,2005.12.30./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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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1-09-09 17:51   좋아요 0 | URL
달덩이 같은 사진이라면 더 좋지요 ^^;;;;;

올 여름에는 끝없는 비가 쏟아졌는데
한가위 때에는 달을 못 보더라도
구월 들어 비가 없는 일만으로도
고맙다고 느껴요.

언제나 즐거우며 좋은 한가위가 되면 좋겠어요~
 

 

 그림책 위에 만화책 놓기


 무릎에 그림책을 얹고 넘기던 아이가 아톰 만화책을 집어들어 넘긴다. 다 본 책은 옆에 놓고 보면 되련만, 책 위에 책을 얹고 보는구나. 아버지가 책을 읽을 때에 곧잘 이렇게 하는데, 아버지가 하는 양을 보고 배웠니? (4344.9.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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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외버스 책읽기 3


 시외버스를 타고 바깥으로 볼일을 보러 움직이는 길이기에, 퍽 느긋하게 책을 펼칠 만합니다. 집에서는 온갖 집일을 하면서 아이랑 부대껴야 하니, 어느 한때조차 느긋하게 책을 펼치지 못합니다. 첫째 아이가 얌전하고 조용하게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동안 둘째 아이가 새근새근 잠자면, 아버지도 가까스로 한숨을 돌리면서 몇 쪽이나마 펼칩니다. 아버지가 그림책을 읽으면 첫째 아이는 뽀로롱 달려와서 아버지 무릎에 앉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서 가방에서 책을 꺼냅니다. 시외버스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선 채로 책을 읽었습니다. 멧골집에서 나와 시골버스 타는 데로 걸어오는 동안, 또 시골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긋나긋 울려퍼지는 가을날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노랫소리는 시골버스를 탈 때부터 더는 들을 수 없고, 읍내에 닿은 다음부터는 꿈꿀 수 없습니다. 서울로 달리는 시외버스는 살가운 흙내음하고는 동떨어진 차가운 시멘트내음하고 가까워집니다.

 바람을 가르는 큼지막한 버스가 내는 소리가 귀에 울립니다. 맞은편 찻길을 내달리는 수많은 자동차가 바람을 가르는 무서운 소리가 귀를 때립니다. 에어컨 소리가 들리고, 버스 일꾼이 켠 라디오 소리가 들립니다. 빠르게 달리는 버스가 덜덜 내는 소리가 들리며, 바퀴가 아스팔트를 찍는 소리랑 엔진이 부릉부릉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가용 있는 집 아이들은 늘 이런 소리를 끼고 살아야겠지요.

 온누리는 온통 수많은 기계와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내는 소리들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피면 커다란 도시 한복판을 둘러싼 곳에서만 이러한 소리일 뿐, 아직 훨씬 더 넓은 들판과 멧자락에서는 흙내음 소리랑 햇살 소리랑 바람결 소리와 푸나무 소리입니다. 나는 나부터 내 몸에 걸맞지 않을 뿐더러, 내 몸을 힘들게 하는 소리를 즐기고 싶지 않으며, 이 소리를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골이 띵하지만 시외버스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한손으로 이마와 뒷통수를 꾹꾹 누르면서 책읽기를 합니다. (4344.9.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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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조복성 님 책


 나는 조복성 님 책을 2001년에 처음 만났다. 2001년 가을, 서울 명지대학교 옆 헌책방 〈문우당〉에서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고려대출판부,1975,비매품)를 처음으로 보았다. 이때 나는 출판사에서 국어사전을 기획하는 일을 했고, 함께 국어사전을 만들던 윤구병 님을 비롯해 여러 출판사 사람들한테 보여주면서 이만 한 책을 하루 빨리 되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모두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이태가 지난 2003년 7월 9일, 서울 성신여대역 둘레 헌책방 〈이오서점〉에서 《곤충기》(을유문화사,1948)를 만났다. 이무렵 나는 하루에 두어 군데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책을 사서 읽었다. 하루에 두어 군데였기에 한 해라면 800 군데쯤 되는 헌책방을 다니는 셈이요, 이태 만에 조복성 님 다른 책을 만났으니까, 헌책방을 1600 군데쯤 다닌 끝에 비로소 다른 책 하나를 만났다 하겠다.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에 이어 《곤충기》를 만났기 때문에, 이제는 더 아쉬울 대목이 없다고 느꼈다. 1948년에 나온 《곤충기》이지만, 2003년까지 나온 한국땅 곤충학자 곤충책하고 견주어 줄거리가 알차고 글투가 단출하면서 쉬웠다. 이무렵 더 알아보니 조복성 님은 1968년이던가, 아무튼 1960년대에 금성출판사였는지 민중서관이었는지, 어린이 과학백과 같은 묶음책 가운데 곤충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여태껏 찾아내지 못했다. 어린이 과학백과 뒤쪽에 적힌 광고글에서만 이러한 책이 있는 줄 읽었을 뿐, 도무지 이 책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나 《곤충기》라면, 어른들이 사서(또는 얻어서) 읽는 책이요, 어른들이 사서 읽는 책은 ‘전쟁이나 이사나 이민이나 무슨무슨 일 때문에 사라지는 일’이 있어도, 어른들 스스로 버리지 않는다. 여느 잡지책이나 소설책이라면 가볍게 버리기도 하지만, 인문책이나 전문학술책은 이 책을 갖춘 사람이 숨을 거두기까지 버려지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책을 갖춘 사람이 숨을 거둘 때에는 이 책들이 비로소 헌책방으로 나온다.

 이와 달리, 어린이책은 아이들이 중학생이 될 때부터 함부로 버려진다. 우리네 1950년대 어린이책은 거의 찾을 길이 없다. 1960년대 위인전조차 대단히 드문 옛책이 된다. 1970년대 어린이책마저 아주 드물다. 이제는 1980년대 어린이책이 차츰 드문 책이 되려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린이책을 사서 읽힌다지만, 쉽게 사서 읽히고 쉽게 버리고 만다.

 조복성 님 책 두 가지를 찾은 기쁨을 누리면서, 자연책이나 생태책이나 환경책을 내는 출판사 사람들한테 책 실물을 보여주면서 되살리는 길을 여쭈었다. 책을 살핀 출판사 사장이나 편집자들은 하나같이 “조복성이라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 이러한 책이 나오면 이 나라 학문과 출판에 크게 이바지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막상 책으로 되살리려고 애쓴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가 어느 출판사 편집자가 책으로 낼 기획을 하겠다며 책을 빌려갔는데,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를 그만 잃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다고 했다.

 잃어버렸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닭 목아지를 비튼다고 동이 틀 수 없듯, 잃어버렸다는 사람 손목아지를 비튼다고 책이 나올 수 없다. 다시금 여러 해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겨우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 한 권을 새로 장만했다.

 얼마 앞서 조복성 님 책 두 가지(《곤충기》와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를 한데 묶어 말끔하며 번듯한 책으로 되살려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뜨인돌’ 출판사에서 《조복성 곤충기》(황의웅 엮음,2011)라는 이름으로 펴냈다. 나 말고 조복성 님 책을 되살리려고 애쓴 분이 있는 줄 처음 알았고, 이분 또한 참 힘들게 ‘손사래질’을 겪으면서 힘들었구나 싶다. 그런데, 이분이 조복성 님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다니는 이야기 가운데 어딘가 아리송한 대목이 있다.


.. 2004년 가을 고서적이 많기로 유명한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앞 헌책방 이오서점에도 그 책은 없었다. 먼지 쌓인 서고를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조복성 곤충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동아일보〉 2011.9.8.


 나는 《곤충기》를 2003년 7월 9일에 찾았다. 2003년 7월 9일에 이 책을 찾은 이야기를 2003년 7월 24일에 갈무리해서 내 누리집에 글로 썼고, 이 이야기를 2003년 7월 29일에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띄웠다. 이때에 〈오마이뉴스〉는 내가 쓴 글에 내가 붙인 이름(제목)을 엉뚱하게 고쳐서 몹시 짜증스러웠는데, 어찌 되었든, 이때에 올린 글이 퍽 알려지고 읽혀서 조복성 님 이름과 《곤충기》라는 책이 오랜만에 햇볕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 성신여대 옆 헌책방 〈이오서점〉은 내가 이 글을 쓴 지 이레 만에 문을 닫았다. 왜냐하면, 2003년 7월 20일 즈음(날짜가 언제였는지는 모른다)에 〈이오서점〉 사장님이 돌아가셨기 때문.

 〈이오서점〉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서둘러 〈이오서점〉 사진을 뽑아서 찾아갔다. 헌책방지기가 흙으로 돌아간 헌책방은 더없이 쓸쓸했고, 이 책들을 건사할 마땅한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2003년 7월 9일에는 책방 얼거리만 사진으로 담았고, 〈이오서점〉 사장님은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사진으로 담기로 했다. 이리하여, 사장님 얼굴이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고, 애써 〈이오서점〉을 담은 사진조차 사장님은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동아일보〉에 난 기사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2003년 7월 끝무렵에 문을 닫아 2003년 8월에는 책이 모두 빠졌는데, 2003년 가을조차 아닌 2004년 가을에 〈이오서점〉을 찾아갔다고 하니, 뭔가 잘못 안 셈 아닌지? 아니면, 내가 〈이오서점〉에서 《곤충기》를 찾아내어 〈오마이뉴스〉에 알린 글 이야기를 잘못 이야기하고 다닌 셈 아닌지? 또는, 〈동아일보〉 기자가 기사를 엉터리로 썼을까?

 내가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을 읽은 사람들한테서 《곤충기》를 ‘팔라’는 물음글을 참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수집가’도 ‘장사꾼’도 아닌 ‘책마을 일꾼’이기 때문에 아무한테도 팔지 않았다. 또한, 내 책시렁에 이 책들을 ‘꽁꽁 감추지’도 않았다. 나는 이 책을 내가 2007년에 인천 배다리에서 연 개인도서관 책꽂이에 잘 보이도록 놓고는 누구한테나 보여주었으며, 두 손으로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구경한 사람이 꽤 많다. 그런데, 《조복성 곤충기》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온 책 ‘엮은이 말’에조차 좀 엉뚱하다 싶은 이야기까지 적혔다.


.. 을유문화사에서 1948년에 출간되었던 조복성 선생의 『곤충기』 원본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1990년대 말, 나는 이 책의 존재를 뒤늦게 알고 고서점과 헌책방 등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서에 눈독 들인 도서관이나 전문 수집가들의 서고 속으로 숨어 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별다른 기대 없이 들른 어느 고서점에서 『곤충기』와 만났다. 분명 우연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곤충을 유난히 좋아했을 뿐 아니라 몇 년 동안이나 이 책을 애타게 찾아 헤매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운명처럼 느껴졌다. 금세라도 바스러질 듯한 누런 책장을 한장 한장 조심스레 넘기면서 그런 생각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 책을 어두운 서재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하자!’ ..  (《조복성 곤충기》 엮은이 말)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책을 되살리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 몫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넋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고 느낀다. 부디, 서로서로 아름다운 빛줄기를 일구면서 아름다운 꿈을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말로 아름다운 책을 기릴 수 있도록 아름다운 손길을 베풀면 그지없이 기쁘겠다. (4344.9.9.쇠.ㅎㄲㅅㄱ)
 

 

(곤충기는 여행기보다 책이 작다. 실물을 놓고 보면 이만 한 비율이 된다) 

 

내가 2003년 7월 9일에 찾은 책 모습. 이 모습 그대로 있던 책이었다. 

 

내가 책을 사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슬프게도 가게문을 닫고 말았다. 책이 다 빠진 뒤, 셔터에 쪽지만 덩그러니 붙었다. 2004년에는 이 책방이 남지도 않았다. 

 

아름다운 책을 되살리면서 왜 이런 말을 썼을까? 부끄럽다고 느끼기를 바란다. 

 

내 예전 싸이월드 누리집에 올린 <이오서점> 글 목록. 

 

나는 2003년 7월 24일에 내 누리집에 첫 글을 띄웠고, 이 글을 띄운 날 저녁, 이오서점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03년 7월에 쓴 글 가운데. 

 

오마이뉴스에 띄웠던 기사 한 토막. 오마이뉴스는 기사 제목을 저희들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바꾸어 달기 때문에 몹시 짜증스럽다. '콕 찍어 이오'가 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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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ye for Iran (Hardcover)
Kazem Hakimi / Garnet Pub Ltd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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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7] 카젬 하키미(Kazem Hakimi), 《an Eye for Iran》(Garnet,2009)


 사진기를 든 사람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찍습니다. 작품을 찍건 예술을 찍건 늘 무엇인가를 찍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 선보일 사진을 찍든 내 살붙이 몇몇만 볼 사진을 찍든 노상 무엇인가를 찍습니다.

 돈이 넉넉해서 값진 장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마련하는 값나가는 사진기이든, 돈이 얼마 없어서 값싼 장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장만하는 가벼운 사진기이든, 어떤 사진기를 손에 들든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찍어 사진을 이룹니다.

 언제나 새로운 사진입니다. 오늘날 숱한 예술쟁이가 빚는 예술사진을 들여다보면 으레 지난날 누군가 해 보았던 예술이거나 사진이기 일쑤이지만,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새로운 사진입니다. 한 자리에서 수십 수백 장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이지만, 사진기를 쥔 사람마다 다 다른 삶이기 때문에 다 다른 사진이 태어나 다 다른 예술을 빚거나 다 다른 사랑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대형사진기를 다루며 귀뚜라미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귀뚜라미 코앞까지 다가서며 사진을 찍을 수 있고, 크게 잡아당기는 렌즈를 써서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귀뚜라미가 깃든 자리를 넓게 보여주는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귀뚜라미 인형을 손에 든 사람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요. 호르스트 바커바르트 님이 《붉은 소파》(눈빛,2010)를 빚듯, 누군가는 ‘푸른 귀뚜라미’를 빚을 만합니다.

 카젬 하키미(Kazem Hakimi) 님은 이란사람일까요. 《an Eye for Iran》(Garnet,2009)은 “이란을 바라본 눈길”을 보여주는 사진책일까요. 이란에서 태어났으나 1974년에 영국으로 건너가서 여러 일을 하다가 사진을 배운 뒤, 2004년에 이란으로 돌아와서 찍은 사진으로 엮었다는 《an Eye for Iran》은 어떠한 삶과 사람과 사랑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책이 될까요.

 이란에서 태어나 내내 이란에서 자라고, 이란에서 일자리를 얻어 이란에서 동무를 사귀며 짝꿍을 만나 혼인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이랑, 어린 나날이나 젊은 나날에 이란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지내다가 이란으로 돌아온 사람이랑, 이란을 바라보는 눈길은 서로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를까 궁금합니다. 이란에서 태어났던 사람은 이란으로 돌아가서 ‘이란’ 사진을 찍는데, 이란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이가 이란 큰도시로 옮겨 지내다가 이란 시골마을로 돌아가서 사진을 찍는다면, 이 이란사람이 담은 ‘이란’이란 어떤 이야기가 깃든 모습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내내 이란에서 머문 사람이 바라보는 이란 모습은 늘 익숙하기에 굳이 사진으로 담을 까닭을 못 느낄 수 있습니다. 내내 이란에서 지낸 사람이 바라보는 이란 모습이야말로 늘 익숙한 만큼 애써 사진으로 담아야 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란 바깥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이란으로 돌아온 사람이 바라보는 이란 모습은 어린 나날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이런저런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란 바깥에서 오랫동안 지내다가 이란으로 돌아온 사람이 바라보는 이란 모습은 아주 낯설거나 새롭다고 느껴서 이와 같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야겠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이란다운 이란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될까요. 어느 쪽이 사진다운 사진을 찍는 길이 될까요.

 사진기를 쥔 사람이 남자라면 어떤 이란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어떻게 담아낼는지요. 사진기를 쥔 사람이 여자라면 어떤 이란을 어떻게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실어낼는지요. 사진기를 쥔 사람이 할머니라면 어떤 이란을 어떻게 헤아리면서 어떻게 옮길는지요. 사진기를 쥔 사람이 어린이라면 어떤 이란을 어떻게 즐기면서 어떻게 아로새길는지요.

 사진으로 나아가는 길은 따로 없습니다. 사진이 되는 길은 딱히 없습니다. 내가 내 삶을 사랑하면서 내 사진을 좋아하면 내 손에 쥔 사진기로 수많은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사진 역사에 이름난 사람들 발자국이나 손길을 떠올리면서 ‘내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 예술에 돋보이는 사람들 강의나 책을 살피면서 ‘내 사진 느낌을 다스릴’ 까닭 또한 없습니다.

 ‘연필 쥐기’를 누구한테서 배울 수 있겠지요. 붓글씨를 하듯 글을 쓸 수 있겠지요. ‘사진기 쥐기’를 누구한테서 배울 수 있습니다. 문화나 예술을 하듯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커피를 끓이거나 빵을 굽거나 김치를 담는 솜씨를 누구한테서 배워 고스란히 따를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이든 “나한테 알맞춤할 사진기를 골라 손에 쥐며 느낄 마음”이든 얼마든지 누구한테서 배울 만합니다.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 짝꿍을 어떻게 아끼거나 사랑해야 하는가 하는 대목을 누구한테서 배울 수 있을는지요. 내 아이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삶길을 누구한테서 배울 만한지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깜냥껏 내 옆지기를 사랑하며 아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내 슬기를 빛내어 내 아이를 사랑하며 아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내 사진기가 가볍든 값싸든 대수로운 일이 아닌 만큼, 내 사진기를 알뜰히 사랑하며 아끼는 몸짓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삶자락을 내 사진으로 일구도록 땀흘리며 어깨동무하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an Eye for Iran》은 딱 “이란을 바라본 눈길”만큼 사진을 담아서 보여줍니다. (4344.9.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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