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면 46
미우치 스즈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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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
 [만화책 즐겨읽기 81] 미우치 스즈에, 《유리가면 (46)》



 아이하고 살아가는 어버이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데 웃는 척하는 얼굴로 아이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절로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꾸밀 수 없는 웃음이요 꾸미지 않는 사랑이며 꾸밈없는 하루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밥을 하고 밥상을 차리며 설거지를 합니다. 아이들하고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를 헤아립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한테 인사를 하고, 잠자리를 갭니다.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합니다. 하루 더 자란 아이하고 무슨 일과 놀이를 누릴까 생각합니다. 어제와는 다른 날씨를 받아들이고, 밤새 방에서 마른 옷을 갭니다. 밤새 나온 오줌기저귀를 빨고는 살짝 기지개를 켭니다.

 날마다 같다 싶은 일을 되풀이한다 여길 수 있지만, 날마다 새롭게 하는 일입니다. 날마다 똑같은 밥을 먹는다 여길는지 모르나, 날마다 새롭게 먹는 밥입니다. 날마다 새로 얼굴을 마주하고 새로 말을 섞으며 새로 생각합니다. 새로 바라보는 하늘이요 새로 들여다보는 밭자락 풀이고 새로 살피는 얼굴입니다.

 오랫동안 쓴 칼이 날이 무디기에 숫돌 하나 장만하고 새 칼을 하나 마련합니다. 새 칼을 마련해서 능금을 깎다가 엄지손가락 벱니다. 커다란 부엌칼 아닌 작은 과일칼을 써야 하지만 으레 커다란 부엌칼로 능금을 깎아 버릇했는데, 잘 드는 새 칼인 줄 까맣게 잊고 무딘 칼 쓰듯 새 칼을 쓰다 손가락을 벱니다.

 손가락을 베니 손에 물 닿는 일을 하기 까다롭습니다. 그렇다고 손에 물 닿는 일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밥을 안 하거나 걸레질을 안 하거나 빨래를 안 하거나 아이들 안 씻길 수 없어요. 띠종이 하나 붙이며 물 만지는 일을 합니다. 벤 자리 뜨끔뜨끔하지만 바쁜 일손을 놀립니다.

 금세 아물겠거니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른 아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어쩌면 손가락을 베거나 팔꿈치가 시큰하거나 어디가 어떠하다는 느낌을 잊습니다. 돌아볼 겨를을 내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갑니다. 이렇게 며칠을 보내는데 어느새 손가락 벤 자리가 아뭅니다. 아차 여기 베었잖아 함부로 물 만지면 안 되는데 하고 깨닫다가 물이 닿아도 쓰라리지 않다고 느껴 슬며시 들여다봅니다. 살점 깎인 곳에 새살 돋고, 허옇게 덜렁거리는 살은 조금 커다란 거스러미 같습니다.


- “그래! 아유미. 네 눈이 소리 나는 쪽을 보고 있어! 시선이 맞는다고! 그 눈빛이야! 그렇게 소리를 봐! 소리를 보라고!” (11쪽)
- ‘이 소리는? 머리핀이 공기를 가르고 날아가는 소리! 지금까진, 머리핀이 물건에 부딪치는 소리밖에 듣지 못했는데! 하지만 느껴져! 공기를 가르는 소리! 난 그동안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지극히 일부의 소리만 듣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세상엔 분명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수많은 소리가 있을 거야.’ (18쪽)
- “내버려 둬! 사쿠라 코지!” “예?” “지금은 혼자인 게 나아! 괜히 동정했다간 더 상처만 받을 거야! 배우에겐 어떤 경험이든 헛된 건 없어. 언젠가 자기 안에 묻어 뒀던 경험도 잘 숙성되어 발효되는 경우가 있지.” (106쪽)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을 기울여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생각을 돌이키며 글을 씁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생각을 쏟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연극을 하거나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껏 살아온 나날을 곰곰이 되씹으면서 꿈을 펼칩니다.

 스스로 사랑받은 삶을 돌이키며 글을 쓸 때와 ‘사랑받을 때에는 이러한 느낌 이러한 이야기가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글을 쓸 때에는 다릅니다. 스스로 이웃이나 동무나 자연을 사랑하며 글을 쓸 때하고 ‘사랑할 때에는 이러한 모습 이러한 꿈이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글을 쓸 때에는 달라요. 몸소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아이와 살아내는 나날로 어린이책을 쓸 때랑 아이들한테 예쁘거나 좋다 싶은 어린이책을 선물하고 싶다며 글을 쓸 때에는 다릅니다.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몸짓은 스스로 살아낸 나날을 녹여낸 몸짓하고 사뭇 다릅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목소리는 스스로 살아낸 나날을 곰삭인 목소리하고 아주 다릅니다.


- “알아요.” “예?” “알고 있다고요. 저도!” (34쪽)
- ‘마스미 씨. 보라색 장미의 사람! 당신한테서 미움받는 게 이토록 아프고 힘들고 슬픈 일일 줄이야!’ (70쪽)
- ‘앞으로 난 뭘 의지해 연기를 해야 하나요? 그 사람한테 ‘홍천녀’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마스미 씨, 당신을 좋아해요! 이토록 좋아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하지만 이제 포기해야만 하겠죠? 이번에야말로. 마스미 씨에게는 내 마음 따위 귀찮기만 할 테니까, 폐가 될 뿐이니까! 나 같은 건! 하지만, 당신을 좋아해요! 마스미 씨!’ (112∼113쪽)


 맑은 날이 이어지다가 궂은 날이 이어집니다. 바람 자는 날이 이어지다가 바람 드센 날이 이어집니다. 포근한 날에 이어 쌀쌀한 날이 찾아옵니다. 스산한 날에 이어 따사로운 날이 찾아듭니다.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과 새벽이 되풀이됩니다.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잠을 잡니다. 웃고 떠들다가 슬프며 시무룩합니다. 너른 땅에 새싹이 돋고 줄기가 오르며 흐드러지게 꽃이 핍니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고 씨앗을 냅니다. 커다란 나무는 커다란 열매를 맺고 작은 풀은 작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나무이든 작은 풀이든 모두 참으로 작은 씨앗 하나에서 비롯합니다. 씨앗 하나에는 온 목숨이 서리고 뭇 삶이 스밉니다.

 쌀알 하나가 볏짚을 남기면서 수백 쌀알로 다시 태어나고, 옥수수알 하나는 커다란 수숫대를 남기면서 수백 옥수수알로 새로 태어납니다. 볏짚이랑 수숫대는 사람들이 달리 쓰기도 하고, 그대로 땅에 놓으면 쌀알과 옥수수알을 낳은 흙이 새 기운을 얻는 거름으로 바뀝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으로 돌아가서 흙에서 태어납니다. 사람들 삶은 사랑으로 태어나고, 사랑은 사람들 삶에서 무르익습니다. 사람들 삶에서 무르익으며 새로 태어나는 사랑이요, 이 사랑은 다시금 사람들 삶을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 “당연하지. 약혼녀니까. 왜 그런 걸 묻지?” “훗. 약혼녀라 사랑한다, 그렇군요. 하긴 사랑해야 할 사람이긴 하죠.” “뭐?” “죄송해요. 솔직히 제 눈에 사장님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거든요!” (73쪽)
- ‘믿고 있단 말인가. 그런 일을 당하고도.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을 수가 있지? 그런 눈으로 똑바로 바라본다면, 분명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거야. 마음을 빼앗기고 말겠지. 마스미 님, 당신의 마음을 이젠 알 것 같습니다.’ (168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1) 46권을 읽습니다. 살림집 옮기느라 부산을 떠는 바람에 한국말로 옮겨진 지 다섯 달이 지나고서야 새책 소식을 알아채고는 겨우겨우 장만해서 읽습니다. 한 권 두 권 새로 나올수록 ‘홍천녀 배역’을 맡고 싶은 마야와 아유미 두 사람이 벌이는 연기 솜씨 겨루기는 깊어집니다. 그런데, 두 아이 마야와 아유미는 연기 솜씨 겨루기만 깊어지지 않습니다. 삶이 함께 깊어집니다. 어느덧 두 아이 마야와 아유미는 《유리가면》 1권에 나올 적 모습하고 크게 다를 뿐 아니라, 생각도 몸짓도 꿈도 사랑도 이야기도 크게 다릅니다.

 새로우며 아름다운 꿈을 찾던 삶은 참말 새로우며 아름다운 꿈을 이루는 길을 걷습니다. 이제껏 걸어온 길을 따사로이 돌아보면서 앞으로 꽃피울 사랑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사랑이란 이름도 돈도 힘도 아닙니다. 사랑이란 오직 사랑입니다. 참다우며 착하고 고운 빛이 사랑입니다.

 힘들고 괴로운 나날을 딛고 일어설 때에는 그동안 못 보고 못 느끼며 못 듣던 새로운 누리를 엽니다. 새로운 누리를 열어젖히며 한 걸음 내딛으며 올라선 자리에는 이제 환한 빛살이 내리쬡니다.


- ‘그게 당신의 진심! 가면 아래 숨겨진 당신의 진짜 얼굴!’ (137쪽)
- “버려요. 이름도 과거도. 돌고 돌아 이렇게 여기 있잖아요. 그것만으로 족한 거 아닌가요? 아코야만의 것이 되어 줘요. 당신은 또 하나의 나, 나는 또 하나의 당신. 사랑스러운 당신.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 (139쪽)


 마야는 마야답게 마야 삶을 누리면서 ‘홍천녀 배역’에 다가섭니다. 아유미는 아유미답게 아유미 삶을 갈고닦으면서 ‘홍천녀 배역’하고 가까워집니다. 어느 쪽이 되든 홍천녀는 홍천녀가 됩니다. 처음 홍천녀를 선보인 츠기카게 선생님은 츠기카게 선생님 삶결에 따라 홍천녀가 되었고, 새로운 홍천녀가 되고픈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삶길을 걸으며 홍천녀가 되려 해요.

 그러면, 두 아이는 왜 홍천녀가 되려고 할까요. 두 아이는 왜 홍천녀가 되어야 하나요. 홍천녀는 어떤 목숨인가요. 홍천녀는 어떤 사람인가요. 홍천녀는 어떤 사랑인가요.

 홍천녀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요. 홍천녀는 무엇을 하며 사랑하는가요. 홍천녀는 무엇을 하며 사람들한테 ‘무엇’을 나눌는지요. 마야는 ‘보라빛 장미 사람’이 스스로 덮어쓴 허물을 거의 다 씻습니다. 아유미는 스스로 누리던 가멸찬 삶에 깃든 껍데기를 비로소 알아차립니다.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아코야’는 곧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4344.11.20.해.ㅎㄲㅅㄱ)


― 유리가면 46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1.6.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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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1-11-2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유리가면> 샀어요~~ 벼르고 벼르다가 마흔여섯권 질렀네요 ==;; 바라만봐도 흐뭇~~흐뭇~~ㅋㅋㅋ

파란놀 2011-11-24 18:29   좋아요 0 | URL
오... 마흔여섯 권을 한꺼번에... @.@
47권도 얼마 앞서 따끈따끈하게 나왔답니다~
 

<네에게 닿기를> 1권부터 4권까지 먼저 샀고, 1권과 2권을 읽는다. 느낌글을 쓰기까지 3권 읽기는 멈추어야겠다. 13권까지 나왔구나. @.@ 아아... 13권이라! 멀고도 멀구나! 그러나 연재가 이렇게 더 남았으니 볼 이야기는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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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닿기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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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63) 네코무라이스 에그


.. “아, 그럼, 오늘은 ‘네코무라이스 에그’를 해 볼까? 여자니까 깜찍하게 에그로 장식하면 좋아하실지도 몰라.” ..  《호시 요리코/박보영 옮김-오늘의 네코무라 씨 (하나)》(조은세상,2008) 107쪽

 ‘장식(裝飾)하면’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꾸미면’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글흐름을 살피면, 집살림 맡은 네코무라 씨가 ‘오무라이스’를 하는데, 밥을 볶아서 밥그릇에 담은 다음 접시에 뒤집어 놓고, 달걀을 노른자 터지지 않게 부쳐서 밥 위쪽에 예쁘게 얹습니다. 달걀을 얇게 부쳐서 볶음밥에 얹지 않아요. 그래서 여느 ‘오무라이스’가 아닌 ‘네코무라이스 에그’라는 새 이름을 붙여서 이야기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쓰는 ‘장식하면’이니, “여자니까 깜짝하게 달걀(부침)을 얹으면”처럼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오무라이스(オムライス)’는 일본사람이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오믈렛(omelet)’ + ‘라이스(rice)’가 ‘오무라이스’가 되었어요. 그러나 이 일본말(일본 영어)을 거리끼지 않고 쓰는 한국사람이에요. 한국에 있는 밥집 어디에서나 ‘오무라이스’나 ‘오므라이스’라 적을 뿐, 이 밥을 우리 말글에 걸맞게 풀어내어 적지 않습니다.

 오믈렛 → 달걀 얇게 부침
 라이스 → 밥
 오믈렛 + 라이스 → 밥을 볶은 다음 달걀 얇게 부쳐 얹음


 달걀을 부친다 할 때에 두껍게 부치기도 할 테고 얇게 부치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일본말 ‘오무라이스’는 ‘얇은달걀부침볶음밥’으로 적어야 가장 올바릅니다.

 이렇게 적자니 너무 길다면 ‘달걀부침볶음밥’이나 ‘달걀부침밥’처럼 적을 수 있어요. 어떻게 마련해서 먹는 밥인가를 살핀다면 가장 알맞으면서 올바르고 쉬운 이름 하나 얻습니다.

 아이들한테 물어도 됩니다. 아이한테 ‘오무라이스’를 마련해 준 다음, “자, 오늘은 무슨 밥일까?” 하고 물어 보셔요. 아이들이 아직 ‘오무라이스’라는 일본말을 모를 때 물어야 하는데, 오무라이스를 모르는 아이들은 달걀을 얇게 부쳐서 볶음밥에 얹을 때에 무어라 이야기를 할까요. 아이들한테 묻듯 나 스스로한테 차분하게 물어도 돼요. 나는 이 밥을 바라보면서 어떤 밥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네코무라이스 에그 : 네코무라 씨가 만든 달걀부침 얹는 볶음밥
→ 네코무라 달걀밥
→ 네코무라 달걀부침밥
→ 네코무라 달걀부침볶음밥
 …


 여느 달걀부침밥(오무라이스)하고는 좀 다르게 마련하는 밥인 만큼 ‘부침’이라는 낱말을 덜어 ‘달걀밥’이라고만 할 때에 더 알맞을 수 있습니다. 또는 “네코무라볶음밥 달걀얹기”처럼 조금 길더라도 새 이름을 붙일 만해요.

 스스로 예쁘게 꾸미려 하는 맛난 밥인 만큼, 스스로 예쁘게 돌보려 하는 살가운 말이요 이름이라면 한결 반갑습니다.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려는 나날이라면, 스스로 아름다이 보살피는 말이며 글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인다면 몹시 즐겁습니다. (4344.11.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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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기에 어느 책이든 선뜻 장만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이런저런 읽을거리를 꾸준하게 장만하곤 한다. 한 번 읽으면 좋을 책하고, 집식구 모두 갈마들며 읽으면 좋을 책하고, 아이들이 오래오래 아끼며 읽으면 좋을 책은 다르니까. 책을 말하는 책이 하나둘 늘면서 베스트셀러에 들지 않는 아름다운 책이 하나둘 사랑받기도 한다고 느낀다. 다만, 조금 더 몸과 눈을 낮추고, 글 또한 삶하고 어울려 놓으면 좋으리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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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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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눈아 봄꽃들아 과학은 내친구 23
이제호 글.그림 / 한림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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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도 꽃도 자연도 ‘과학’이 아니에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9] 이제호, 《겨울눈아 봄꽃들아》(한림출판사,2008)



 겨울눈과 봄꽃을 찬찬히 살피며 꼼꼼하게 담은 그림책 《겨울눈아 봄꽃들아》(한림출판사,2008)를 바라봅니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 집 네 살 딸아이가 이 그림책을 즐길 만할까 어림해 봅니다. 갓난쟁이 둘째 아이는 이 그림책을 앞으로 좋아할 만할까 갸웃해 봅니다.

 어쩌면, 집 안팎과 마을에서 마주하는 나무에 맺히는 눈과 잎과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 그림책 《겨울눈아 봄꽃들아》에 실린 그림을 견줄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바라보며 그린 나무 그림이랑 《겨울눈아 봄꽃들아》에 실린 나무 그림을 나란히 놓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이제호 님이 빚은 그림책 《겨울눈아 봄꽃들아》는 그림이 푼더분합니다. 빛깔이 흐드러집니다. 한 땀 두 땀 얼마나 알뜰히 힘을 쏟았는가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쉽습니다. 이 겨울눈과 봄꽃을 왜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 겨울눈과 봄꽃은 우리 삶하고 어떻게 이어졌을까요.

 이른바 세밀화라는 이름으로 그려서 선보이는 그림책을 들여다볼 때면 으레 이 대목을 떠올립니다. 이들 세밀화 그림책은 왜 읽어야 하나요. 이들 세밀화 그림책은 우리 삶하고 어떻게 맞닿을까요.

 시골사람한테는 세밀화 그림책이 부질없습니다. 늘 보며 언제나 살피니까요. 나무를 늘 보지 못하고 자연을 언제나 벗삼지 못할 도시사람이 아니고서야 세밀화 그림책은 덧없습니다. 살아숨쉬는 자연처럼 아름다운 그림이 없어요. 손가락을 가만히 대며 느끼는 겨울눈 숨결이랑 종이에 아로새겨진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느낄 겨울눈 빛깔은 사뭇 달라요.

 그저 모양만 예쁘장하게 그리는 어수룩한 나무 그림을 떠올린다면, 《겨울눈아 봄꽃들아》는 참 잘 빚은 그림책입니다. 다만, 꼼꼼하며 찬찬히 바라본 그림이기에 어수룩하게 그린 나무 그림보다 더 살갑거나 따사롭지는 않아요. 더욱이, 이 그림책 《겨울눈아 봄꽃들아》에는 “과학은 내 친구”라는 ‘묶음책 이름’이 붙어요. “과학은 내 친구” 스물셋째 그림책이라는 《겨울눈아 봄꽃들아》입니다.

 여러모로 궁금합니다. 겨울나무 겨울눈은 과학인가요. 봄나무 봄꽃은 과학인가요. 아이들한테 나무는 과학인가요. 아이들한테 꽃과 잎사귀와 열매는 과학인가요.

 나는 나무도 열매도 잎도 꽃도 눈도 모두 삶이라고 여깁니다. 내 하루를 북돋우는 삶이요, 나랑 함께 살아가는 집식구 모든 삶이라고 느낍니다. 삶이지 않고서는 나무를 바라보거나 껴안을 수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목숨이 아니라면 나무를 어루만질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아파트로 이루어진 보금자리에서 《겨울눈아 봄꽃들아》를 읽힐 어버이라면 한 번쯤 곰곰이 생각에 잠기면 좋겠습니다. 그림책으로만 겨울눈과 봄꽃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하루 빨리 아파트를 떠나 나무 한 그루 심을 만한 흙땅 있는 조그마한 집을 찾아야 합니다.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심어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랑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해야 합니다.

 나무는 씨앗을 받아 심으면 됩니다. 씨앗을 심을 마땅한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아니 도시에서는 씨앗을 받아 나무를 심으려 한다면 ‘새싹을 몰라볼 사람’들이 마구 짓밟거나 풀약을 쳐서 죽이고 말 테니까, 어린나무를 사서 심을 때가 더 나을 수 있어요. 어린나무 한 그루 값은 5천 원이 안 됩니다. 그림책 한 권 값이 안 돼요. 아이들하고 아름답다 싶을 그림책 하나 더 나누어도 기쁜 나날이요, 아이들하고 아름답다 싶을 어린나무 한 그루 사서 이 나무가 곱게 자랄 흙땅을 튼튼하게 지켜도 기쁜 삶입니다.

 삶을 생각하고 삶을 느끼며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어버이로서 아이하고 손을 맞잡아 주셔요. (4344.11.19.흙.ㅎㄲㅅㄱ)


― 겨울눈아 봄꽃들아 (이제호 글·그림,한림출판사 펴냄,2008.2.27./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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