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순이


 보금자리를 새터로 옮길 무렵 자그마한 디지털사진기 하나 새로 장만했다. 작은 디지털사진기는 오직 우리 네 살 아이가 신나게 갖고 놀도록 마련한 선물이었다. 새 보금자리 찾으러 집을 비우는 날이 잦을밖에 없는 아버지인 터라, 아버지가 집을 비우면 아버지는 아버지 사진기를 갖고 나가니까, 집에 있는 동안 동생 모습을 예쁘게 찍으며 놀기를 바랐다.

 네 살 아이는 제 사진기보다는 아버지 사진기를 더 좋아한다. 아버지 사진기 못지않게 어머니 손전화랑 아버지 손전화로 사진찍기를 더 즐긴다. 아이 둘레에 이들 사진기나 손전화가 보이기 때문에, 아이로서는 더 손을 뻗고 더 만지작거리며 더 마음을 쏟겠지.

 밥쓰레기를 묻으러 땅에 구덩이를 판다든지, 무너진 돌울타리 쌓으려고 흙을 파서 큰돌을 캐낸다든지 할 때면, 아이는 어느새 아버지 곁으로 다가와 노래부르면서 논다. 놀며 제가 들 만한 돌을 들어 날라 오기도 한다.

 한 달을 지나 2012년이 되면 다섯 살이 될 아이를 놓고 곰곰이 생각한다. 이 아이는 새해에 말을 더 잘할 테며 더 신나게 뛰어놀고플 테지. 이 아이하고 새해에는 어떤 놀이 어떤 일 어떤 심부름 어떤 삶을 일구어야 즐거울까.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마당을 아이랑 함께 거닐었다. 음성 할머니가 우리 마당가 꽃밭에 돋은 가느다란 풀줄기를 바라보며 “달래도 있네. 달래 알아?” 하고 말씀하신다. 저녁에는 설렁하지만 낮에는 포근한 우리 시골마을이기 때문에 벌써 달래가 돋을까. 달래줄기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무 씨앗을 이 꽃밭자락에 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지난가을 주워서 그러모았던 도토리 몇 알 이 둘레에 심으면 씩씩하게 뿌리내리면서 아름드리 참나무로 자라 주려나. 우리 사진순이랑 나무씨를 심고 싶다. (4344.11.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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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1-27 21:40   좋아요 0 | URL
어이쿠. 저어기 방문..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요. 흐흐흐

파란놀 2011-11-28 06:45   좋아요 0 | URL
힘들다는 핑계로 새로 바르지 못한 문이에요 ^^;;;;
 
유리가면 47
미우치 스즈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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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이루는 어여쁜 빛
 [만화책 즐겨읽기 88] 미우치 스즈에, 《유리가면 (47)》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충청북도 음성에서 전라남도 고흥까지 멀디먼 길을 찾아와 주었습니다. 자그마치 다섯 시간을 달려 찾아와 주셨는데, 하룻밤 묵지 않고 다시 길을 돌려 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작은 시골집은 어른들 모시기 힘들다 할 만할 수 있지만, 작은 집 작은 방은 오붓하게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기에는 참 알맞춤합니다.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이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제대로 붙잡지 못해서 바로 돌아가셨을 수 있지만, 두 분은 오늘 아침 일찍 길을 떠나 들른 다음, 늦지 않게 댁으로 돌아갈 일을 헤아리며 찾아오셨지 싶어요. 남녘땅은 따순 바람 부는 날이지만, 내 어버이 살아가는 충청도 음성은 벌써 영 도 밑으로 육 도라 하니까, 집살림을 걱정하실 수 있겠다 싶어요.

 곧장 돌아가시려는 분들한테 부랴부랴 밥상을 차립니다. 밥을 뜨고 국을 뜨며 수저 놓고 김치를 올리면, 아무리 바삐 돌아가시려 하더라도 한 술쯤 뜨시겠거니 생각했습니다. 1995년에 제금난 뒤 2003년 즈음 한 번 밥을 차린 적 있을 뿐, 이제껏 두 분한테 밥을 차려서 드린 적이 없기에, 오늘은 꼭 밥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두 분이 밥상에 앉습니다. 함께 밥술을 뜹니다. 네 살 첫째 아이는 밥을 안 먹고 딴짓만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찾아와서 기쁜 나머지 밥을 못 먹습니다. 할아버지는 네 살 아이를 보며 “밥 안 먹고 딴짓하는 건 옛날하고 똑같구나.” 하고 이야기합니다. 문득, 이 말은 아이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아이 아버지인 내가 어린 나날 이러한 모습이었다고 들려주는 말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내 네 살 무렵 어린 나날, 나는 밥먹기보다 딴짓하기에 더 빠졌는지 몰라요.

 곰곰이 헤아립니다.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네 살 무렵, 다섯 살 언저리, 여섯 살 즈음이라 하지만, 내 몸에는 내가 살아낸 한 살 두 살 세 살 이야기가 차곡차곡 아로새겨졌으리라 믿습니다. 내가 밥자리에서 딴짓을 한다고 아버지한테서 꾸지람을 듣거나 형한테서 꿀밤을 얻어먹지 않았던가, 하고 돌아봅니다.


- “사람들이 자꾸 쳐다봐요. 우리를.” “난 전혀 상관없는데. 신경 쓰이나?” “아니, 전 괜찮지만, 약혼녀 분이 아시면.” (8쪽)
- ‘우와! 나, 마스미 씨랑 춤을 추고 있어! 이렇게 가볍게 나는 듯이! 처음인데! 믿어지지가 않아! 꿈만 같아!’ (23쪽)
- ‘뭐지? 난 지금 마스미 씨랑 즐겁게 얘길하고 있어. 이렇게 자연스럽게. 전엔 그토록 미운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곁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 그저 기쁠 뿐!’ (46쪽)



 내 마음은 내 고향인 인천을 비롯해, 서울이든 충청도이든 부산이든 어디이든, 크고작은 모든 도시하고 멀찍이 떨어진 시골마을에서 살아가고픕니다. 고향 인천에서 살아가며 골목마실을 날마다 몇 시간씩 아이를 안고 업고 하며 할 때에도, 이 아름다운 골목이웃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는 기쁨보다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살붙이들과 살아가는 나날을 꿈꾸었습니다. 다만, 어떤 모습 어떤 그림이 될 때에 아름다울까 하는 대목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내가 도시로 찾아가기에 빠듯하고, 도시에서 우리한테 찾아오기 벅찬 외진 시골에서 사랑스레 살아가면 참 즐겁겠다고 여겼습니다.

 크고작은 도시에서, 또 내 어버이 살아가는 충청북도 음성에서 바라보자면, 전라남도 고흥은 참 멉니다. 그러나, 고흥군 테두리에서 헤아리자면, 이곳 사람은 이곳 삶자락 결과 무늬대로 예쁘며 아름답습니다.

 나는 아직 스스로 흙을 일구거나 돌보거나 사랑하면서 밥·옷·집을 마련하는 삶을 붙잡지 못합니다. 흙일을 옳게 할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할 텐데, 이보다는 흙을 어떻게 만지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껴안을까 하는 삶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내 삶을 먼저 예쁘게 그려야 합니다. 흙에 터 내리려는 우리 집을 어떻게 꾸미고, 어떻게 다스리며, 어떻게 돌보면서 네 식구 오순도순 지내야 좋을까 하는 그림부터 찬찬히 그려야 해요.


- “(1천만 엔짜리 수표를 찢으면서) 이게 내 마음이야. 그녀(약혼녀)에겐 내가 직접 전해 주지. 뒷일은 신경 쓰지 마.” (13쪽)
-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 그 말은…….’ (84쪽)
- ‘이제 곧 꿈같은 시간이 끝난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느낌이니까.’ (100쪽)


 날마다 아이들 사진을 쉰 장이나 예순 장 남짓 찍습니다. 날마다 새롭고, 언제나 싱그럽구나 싶어, 이 아이들 사진을 날마다 쉬지 않고 찍습니다.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누군가 내 곁에서 내 모습을 사진으로 담거나 내 삶을 글로 싣지 않아요. 나는 시골살이를 내가 느끼거나 받아들이는 대로 사진과 글로 옮긴다 할 텐데, 내 살붙이가 이 시골살이를 내 살붙이대로 느끼거나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살짝 궁금하면서 여러모로 떨립니다. 내 눈길만으로는 막상 내 삶길조차 슬기로이 여미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모자람과 못남이, 내 살붙이 눈길로 바라볼 때에 훤히 드러나겠구나 싶어 부끄럽고 낯이 벌개집니다.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1) 47권을 읽습니다. 47권째에 이르러 마사미 씨는 당신 마음을 더는 숨기지 못하겠다고 털어놓습니다. 47권째에 이르러 마야 또한 제 마음을 꾸밈없이 밝힙니다. 이제껏 빙빙 맴돌거나 겉돌면서 ‘껍데기·이름·돈·힘줄·얼굴·나이·신분’ 들에 얽매였으나, 47권에서는 가까스로 이러한 굴레가 얼마나 덧없는가를 드러냅니다.

 곧, 마사미 씨는 삶을 일구는 보람이 무엇인가를 온마음으로 깨닫는 새날을 맞이합니다. 마야는 삶을 아끼는 빛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느끼는 새날을 맞이합니다. 사업을 벌여 회사를 꾸리는 일이든, 연극을 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펼치는 일이든, 집에서 살림하는 일이든, 가게에서 장사하는 일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서 밑바탕이 되면서 든든한 뿌리가 되는 대목이 무엇인가를 두 사람은 비로소 알아차립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텐데, 시오리 씨나 아유미는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을 깨닫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두 사람은 무엇 하나를 거머쥐려는 뜻은 있으나, 무엇 하나를 거머쥐어서 당신 삶이 얼마나 즐겁거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헤아리지 못해요. 아니, 생각하지 못합니다. 시오리 씨가 마사미 씨와 혼인한대서 즐거운 나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아유미가 홍천녀 배역을 따낸다 해서 즐거운 나날을 누릴 수 있는가요.

 사랑이 없는 혼인은 죽음입니다. 사랑이 없는 연극은 빈틈없는 재주놀음입니다. 사랑이 없는 혼인으로는 사랑을 낳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이 빈틈없는 재주놀음을 선보이는 연극으로는 사랑을 들려주지 못합니다.


- “맙소사! 하늘이 온통 장밋빛이야! 그쵸?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은 태어나 처음 봐요! 크고 힘차고 아름다운 태양이 서서히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어요. 다행이다! 마스미 씨도 볼 수 있어서!” (50쪽)
- “사쿠라코지. 저 아일 연습장까지 무사히 좀 데려다 줘.” “예? 아, 네!” “너흰 아주 소중한 배우야. 시연이 얼마 안 남았으니 모쪼록 운전 조심하고.” (117쪽)



 홍천녀를 연극하는 일이란 더 놀랍고 더 빼어나며 더 돋보이는 주인공이 되는 길하고는 동떨어집니다. 더 예뻐야 배역을 얻지 않습니다. 연기를 더 잘해야 주인공이 되지 않아요. 홍천녀가 살아가는 터에서 무엇을 사랑하면서 아끼는 나날인가를 깨달아야 비로소 홍천녀를 연기할 수 있습니다. 홍천녀와 마주하는 아츠신 또한 이와 마찬가지예요. 돈이 많아야 아츠신이 아니에요. 얼굴이 잘생기거나 어떤 재주가 대단해야 아츠신이지 않아요. 아츠신과 홍천녀는 ‘처음부터 한몸 한마음’이던 두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한몸 한마음이던 사랑이란 아츠신이요 홍천녀이면서, 바로 여느 삶터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넋이에요.

 마야는 어릴 적부터 마야네 어머님을 비롯해 마야네 동무한테서 따사로이 사랑받았고, 마야도 따사로이 사랑을 나누는 길을 걷습니다. 아유미는 어릴 적부터 아유미네 어버이를 비롯해 마유미네 극단 사람들한테서 따사로이 사랑받은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아유미 스스로도 사랑을 나누는 길하고는 멀찍이 떨어집니다.

 마야는 사랑이 감도는 사랑빛을 내뿜습니다. 아유미는 빈틈이 보이지 않는 놀라운 바람을 일으킵니다. 아마 적잖은 사람들은 사랑빛을 못 느끼고, 놀라운 바람에 휩쓸릴는지 몰라요. 사랑을 담은 노래보다는 놀랍게 부르는 노래에 더 이끌리는 사람이 많기도 하듯, 사랑을 담은 조그맣고 조촐한 일자리보다 돈을 더 주는 일자리에 이끌리는 사람이 많기도 하듯, 어쩌면 홍천녀 배역은 마야 아닌 아유미한테 갈는지 모릅니다.


- ‘아아, 이제 더는 안 돼! 완벽하게 졌다! 이 이상 내 마음을 속일 수가 없어!’ (74∼75쪽)
- ‘해내라, 사쿠라코지! 몸도 마음도 온통 상처투성이인 이츠신을! 네가 이제부터 만들어 낼 이츠신은, 어쩌면 천하의 아카메 케이를 넘을 수 있을지도 몰라!’ (171쪽)



 미야는 홍천녀를 연기할 수 있어도 기쁘지만, 홍천녀를 연기할 수 없어도 기쁠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야한테는 홍천녀가 처음이자 끝이 아닙니다. 마야한테는 날마다 새날입니다. 마야는 홍천녀를 연기할 수 있으면, 나중에는 홍천녀와 새롭게 어깨를 견주거나 홍천녀에서 새로 거듭나는 또다른 연극을 선보이는 길을 걸으리라 봅니다. 홍천녀에서 누리는 사랑과 홍천녀에서 누리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나날을 새롭게 느끼거나 깨닫는 사랑을 싣는 또다른 연극이 태어나도록 이끌 수 있어요.

 아유미는 홍천녀를 연기하면 더는 연기할 길이 없습니다. 막다른 길에서 꼭대기까지 오른들, 더 오를 꼭대기가 없다 한다면 무슨 힘과 무슨 꿈과 무슨 보람과 무슨 땀으로 연기를 할 수 있으려나요.

 삶을 이루는 어여쁜 빛을 보아야 합니다. 삶을 일구는 아름다운 빛을 누려야 합니다. (4344.11.27.해.ㅎㄲㅅㄱ)


― 유리가면 47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1.12.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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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1-27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아아아아아! 유리가면!
유리가면은 멋지군요. 여전히.

파란놀 2011-11-28 06:44   좋아요 0 | URL
좀 길게 늘어뜨려서
적잖은 분들이 따분하다고 느끼는데,
머잖아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마 52권이나 54권으로 끝맺고
외전을 서너 권쯤 그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

분꽃 2011-11-2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는 50권쯤으로 마무리하지 않을까 했는데...
종규님 글을 보니 아직 더 기다려야...==;;;;;

파란놀 2011-11-28 15:25   좋아요 0 | URL
어쩌면 49권으로 끝낼 수도 있겠지요 @.@
그나저나 60권까지 갈는지도 몰라요 @.@
어쩌면 더 더...
 



 다시 사는 책


 만화책 《여자의 식탁》 7권째를 사서 읽었다. 7권을 펼쳐 읽다가 ‘6권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헷갈려 그만 6권은 나중에 사기로 했는데, 그냥 사야 했는걸’ 하고 느낀다. 《여자의 식탁》 6권이 나올 무렵 우리 시골살림을 새터로 옮기려고 부산히 떠도느라 새로 나온 만화책이 무엇인지를 헤아릴 길이 없었다. 그러니, 이무렵 나온 《여자의 식탁》 6권을 샀는지 안 샀는지 떠오르지 않고, 아직 풀지 못한 책짐에 갇힌 만화책들을 언제 풀어 살필는지 또한 모르니, ‘틀림없이 안 봤구나’ 싶은 7권만 먼저 사서 읽었다.

 만화책 《여자의 식탁》은 1권만 읽든 5권만 읽든 7권만 읽든, 이야기가 서로 얽히거나 이어지기도 하지만, 따로따로 홀로서기를 하기에, 차례대로 읽거나 거꾸로 읽거나 괜찮다.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이 이야기를 먼저 읽든 저 이야기를 먼저 읽든 즐겁다.

 늦은 밤 아이들 잠든 다음 조용히 읽고 덮은 《여자의 식탁》 7권 빈자리 한쪽에 몇 마디 끄적인다. “겹칠 듯하면 좋은 이웃한테 선물해도 되지요.” 그렇다. 깜빡 잊고 다시 산 책은 내가 좋아하는 책인 만큼, 내가 좋아하는 이웃이나 동무한테 두꺼운종이로 예쁘게 싸서 슬그머니 선물로 부치면 된다. (4344.11.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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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순이


 네 살 딸아이는 저 혼자만 어버이랑 살아가던 나날에는 인형 콩순이를 아주 드물게 업었다. 제 어머니가 저를 업어 주던 일을 돌이키면서 아주 가끔 인형 콩순이를 업곤 했다. 한 살 갓난쟁이를 날마다 마주하는 네 살 딸아이는 제 어머니가 제 동생을 으레 업어서 달래거나 재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어머니가 동생을 업듯, 저는 인형 콩순이를 업는다. 동생을 무릎에 누여 달래면서 뜨개질하는 어머니한테 인형 콩순이를 업어 달라고 인형 포대기를 들고 흔든다.

 아버지는 곁에서 빨래를 갠다. 어머니 손을 빌어 인형 콩순이를 업은 딸아이는 아버지 곁에 아버지처럼 앉는다. 아버지가 개는 빨래를 낚아채어 제가 갠단다. 빨래를 곧잘 개는 아이가 영 밉게 갠다. 아이가 건넨 빨래를 풀며 말한다. “애써 빨래했는데 옷이 구겨지면 안 돼. 예쁘게 개야지.” 아이가 갠 빨래를 풀어서 다시 갠다. 아이는 “내가 갈래.” 하고 말하지만, “자, 어떻게 개는지 잘 보고 해야지. 먼저 다 보고 나서 해.” 하고 대꾸하면서 말린다. 아버지가 개는 양을 지켜본 아이는 아버지가 갠 빨래를 풀어 제가 다시 갠다. 이제 예쁘게 갠다. (4344.11.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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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24) 얄궂은 말투 90 : 휴먼 스케일의 개념


.. 평범한 단어들이지만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물리적 관점에서 ‘아늑함’은 휴먼 스케일의 개념을 내포한다. 즉, 높이, 형상 등이 일정 범위를 넘지 않아야 한다 ..  《임석재-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2006) 7쪽

 “평범(平凡)한 단어(單語)들이지만”은 “흔한 말이지만”이나 “수수한 낱말이지만”으로 다듬고, “중요(重要)한 의미(意味)가”는 “큰 뜻이”나 “깊은 뜻이”로 다듬으며, “담겨 있다”는 “담겼다”로 다듬습니다. 통째로 다듬어 “흔한 말이지만 뜻은 깊다”처럼 적을 수 있어요.

 “물리적(物理的) 관점(觀點)에서”는 “집으로 볼 때에”를 가리킬까요. “집을 살피면”을 뜻하려나요. ‘즉(卽)’은 ‘곧’으로 손질하고, ‘형상(形象)’은 ‘모습’이나 ‘모양’으로 손질하며, ‘등(等)’은 ‘들’로 손질합니다. “일정(一定) 범위(範圍)를 넘지 않아야”는 “어느 테두리를 넘지 않아야”나 “지나치지 않아야”나 “너무 크지 않아야”로 손봅니다.

 휴먼(human) : 인간의, 인간적인, 인간미가 있는
 스케일(scale) : 일이나 계획 따위의 틀이나 범위. ‘규모’, ‘축척’, ‘크기’, ‘통’으로 순화
 내포(內包) : 어떤 성질이나 뜻 따위를 속에 품음


 책을 읽으면서 낱말 하나하나 따지지 못합니다. 잘못 쓰거나 얄궂게 쓴다 싶은 대목을 모두 헤아리면서 바로잡으려고 하다 보면 책을 못 읽습니다. 우리 말글을 바르게 쓰자고 외치는 줄거리를 담은 책조차 낱말과 말투를 옹글게 가다듬지 못하기 일쑤예요. 한국에서 나오는 책은 백 가지면 백 가지 모두 어수룩합니다. 한국말을 옳게 사랑하지 못해요. 한국글로 알맞게 추스르지 않아요.

 이른바 전문 갈래를 다룬다는 건축책이나 과학책이나 요리책은 말씀씀이가 더 모납니다. 문학책이기에 말빛을 한껏 뽐내지 못합니다. 어린이책인 만큼 말매무새 곱게 여미지 않아요.

 아무래도 이렇게 쓰든 저렇게 쓰든 ‘뜻만 알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지 싶어요. 이렇게 적든 저렇게 적든 ‘모르는 사람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바보’인 듯 생각하기 때문이지 싶어요. 무엇보다 생각하면서 말하거나 글쓰는 사람이 매우 적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아늑함’은 휴먼 스케일의 개념을 내포한다
→ ‘아늑함’은 사람이 살아가는 크기를 나타낸다
→ ‘아늑함’은 살아갈 만한 크기를 보여준다
→ ‘아늑함’은 사람이 살기 좋은 크기를 뜻한다
→ ‘아늑함’은 사람이 살기 알맞은 크기를 가리킨다
 …


 ‘휴먼 스케일’이란 무엇을 가리킬는지 아리송합니다. 영어사전과 국어사전을 뒤적이면서 뜻을 풀이하며 겨우 어림합니다. ‘휴먼’은 사람을 가리킬 테고, ‘스케일’은 ‘크기’를 가리킬 테며, ‘내포’는 ‘담다/나타내다’를 가리킬 테지요. 이러한 말뜻대로 풀이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크기가 얼마쯤 되는가를 뜻한다”로 적바림한 다음, 차근차근 다듬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집 크기가 얼마쯤 되는가를 따지는 일이란 ‘사람이 살기 좋은 크기’를 이야기하는 셈이니, 이러한 줄거리대로 글월을 추스릅니다.

 곧, 사람들 살림집은 살림집대로 알맞아야 합니다. 사람들 말글은 말글대로 알맞아야 합니다. 알맞게 일구는 살림살이요, 알맞게 일구는 말글입니다. 알맞게 사랑하고 알맞게 보살피며 알맞게 북돋우는 살림이면서 말글입니다. (4344.11.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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