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웃음 시와시학사 시인선 18
박상률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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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서) 시만 쓰는 사람은 배고픕니다
 [책읽기 삶읽기 88] 박상률, 《배고픈 웃음》(시와시학사,2002)



 그제 낮 봉우리가 터질 듯 말 듯하던 동백꽃인데, 어제 아침에는 봉우리가 살며시 벌어지더니, 낮에는 봉우리가 활짝 열립니다. 이제부터 날마다 새 꽃봉우리가 발그스름잔치를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집 네 식구는 12월을 맞이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동백꽃이랑, 이 동백꽃 곁에서 함께 피어날 후박꽃을 누릴 수 있어요.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이웃집 너머로 바라보던 ‘마당 안쪽 꽃’을 처음으로 ‘내 집 마당 꽃’으로 맞이합니다. 이웃집 꽃이었을 때에도 ‘너 참 곱다’ 하고 말하면서 쓰다듬었고, 내 집 꽃일 때에도 ‘너 참 어여쁘다’ 하고 말하면서 쓰다듬습니다. 흰눈 함초롬히 쌓일 때에도 동백꽃 핀다는 말을 비로소 느낄 수 있구나 싶습니다.


.. 나를 바라보자. 지독한 도시의 먼지가 나의 얼굴과 두 눈의 안경에 가득 묻어 저물도록 나를 대신한다. 별 탈 없이 내리 십 년을 이 도시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 도시의 속살과는 거리가 멀어 ..  (방생)


 날마다 고이 여기며 바라보거나 쓰다듬으니까, 날마다 고이 여기며 바라보거나 쓰다듬는 사랑 살며시 피어납니다. 저절로 동백 이야기와 후박 이야기를 글로 적습니다. 시나브로 동백꽃 시와 후박꽃 시를 씁니다. 동백꽃잎 스치는 바람 내음과 후박꽃잎 감도는 바람 빛깔을 온몸으로 누리면서 시 한 줄 적바림합니다. 공책을 펼쳐 “따순 햇살 먹으며 자라는 동백꽃은 따순 사랑을 나누어 주는구나.” 하고 끄적입니다. 내가 나한테 선물하는 글줄입니다. 내가 내 하루를 좋아하면서 내 마음껏 즐기는 글월입니다.

 겨울에 곱게 피는 꽃을 바라보다가는 이 꽃나무 처음 심은 사람 손길과 넋을 헤아립니다. 맨 처음에는 어떻게 이 꽃나무를 심었을까요. 어린나무를 얻거나 사들여 심었을까요. 동백씨를 받아 한 알 알뜰히 심고 한 땀 알뜰히 흘리면서 돌보아 이렇게 어른나무로 키웠을까요.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하고 어떤 씨앗 심어 어떤 나무를 키우면서 내 아이들과 이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한테 고운 꽃잎 물려줄 수 있을까 꿈을 꿉니다.


.. 되는 대로 석사흘쯤 쏟아지는 저 말들 / 저 웃음들 ..  (환절기)


 네 살 딸아이는 밤오줌이건 낮오줌이건 아주 잘 가립니다. 똥을 예쁘게 누고 웬만한 심부름 척척 해냅니다. 동생이 태어나고 한동안 밤에 이불에 쉬를 했지만, 이제 이런 일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밤에 쉬를 누이고 나서 좀처럼 다시 잠이 들지 않아 애먹이곤 했으나, 이제는 쉬를 누고 나서 곧바로 꿈나라를 찾아갑니다.

 이 착한 아이는 어디에서 착한 싹이 움트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랑 아버지한테 있을 착한 씨앗이 아이한테 옮아갔을까요. 어머니랑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랑 아버지한테서 천천히 물림하면서 아이한테까지 옮겼을까요. 아이가 곧잘 부리는 억지와 땡깡이라면, 이 또한 이 아이를 낳은 어머니랑 아버지, 또 이 아이를 낳은 어머니랑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랑 아버지한테서 찬찬히 이어온 억지와 땡깡일까요.


.. 그가 죽어 그의 꽃 망태기도 같이 묻혔다. 그의 무덤에 꽃이 피어났다 ..  (꽃 동냥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이 어리는 빛을 담는 씨앗을 빚습니다. 미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슬픔이 감도는 눈물이 깃든 씨앗을 일굽니다. 흙을 만지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흙기운 서린 땀방울을 흘립니다. 기계를 만지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기름내 풍기는 땀방울을 흘립니다. 사무실에서 펜대나 셈틀을 만지작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시멘트와 플라스틱 내음 짙게 밴 땀방울을 흘립니다.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터전에서 꿈을 꿉니다. 사랑스러운 꿈이건 돈내 나는 꿈이건, 저마다 제 삶자리에 알맞게 꿈을 꿉니다. 아름다이 어깨동무하는 꿈이건 홀로 밥그릇 차지하며 떵떵거리려는 꿈이건, 저마다 제 일자리에 걸맞게 꿈을 꿉니다. 살가이 이야기꽃 피우는 이웃이 되어 오순도순 북돋우는 마을살이 꿈이건, 빽빽한 시멘트 층집 귀퉁이에서 위아래층 소리에 시달리다가는 나 또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서로 악다구니가 되는 도시살이 꿈이건,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 마땅하게 꿈을 꿔요.


.. 등에 업은 것 하나 보고 살아온 당신은 ..  (어머니)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누구랑 무슨 꿈을 어떻게 꾸나요. 우리 아이들은 늘 곁에서 바라보며 살을 부비는 어버이한테서 어떤 꿈을 읽나요. 우리 아이들은 이웃집 동무나 오빠 누나 언니 동생한테서 어떤 꿈을 듣나요. 우리 아이들은 이웃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어떤 꿈을 보나요.

 난 어린이집이 아주 무섭습니다. 노란버스에 아이들 태우며 집집을 돌며 태우거나 데려다주는 어린이집이 몹시 무섭습니다.

 왜 어린이집에 버스가 있어야 하나요. 왜 학원에 버스가 있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은 저희 두 발로 이 땅을 거닐거나 박차거나 뛰놀 수 없나요. 왜 아이들은 저희 두 손으로 이 땅을 만지거나 부비거나 껴안을 수 없는가요.

 어린이집은 아이들한테 무슨 꿈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궁금합니다. 어린이집은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느끼도록 이끄는지 궁금합니다. 어린이집 교사가 되기까지 어린이집 어른들은 어디에서 무얼 배우며 어떤 꿈을 키웠는지 궁금합니다.


.. 꼭 그 시간이면 나타나 새벽을 내려놓고 대신 내 어두운 찌꺼기는 남김없이 치워 가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 ..  (청소원 아무개 씨)


 노란버스 한 대 굴리지 않는 어린이집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학원버스 없는 학원이 있을는지, 자가용을 타지 않는 원장이나 교사가 꾸리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학교가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버이가 아이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서 찾아가는 어린이집이 있는지, 어버이가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함께 찾아오는 어린이집이 있는지, 원장과 교사 모두 자전거로 일터를 오가는 어린이집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우는 일은 끔찍합니다. 아니, 아이들이 아파트에 살도록 하는 일부터 끔찍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들이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일이란 참 끔찍합니다. 보금자리가 될 수 없는 데에서 살아가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보금자리를 보여주거나 느끼도록 하거나 깨닫도록 하지 못합니다. 보금자리는 쉽게 허물고 쉽게 다시 세우는 부동산이 아닙니다. 보금자리는 값이 껑충 뛰거나 폭삭 주저앉는 부동산이 아닙니다. 보금자리는 어버이와 아이 모두 느긋하게 쉬면서 삶을 예쁘게 일구는 곳입니다. 보금자리는 나무를 심어 땅을 살리는 곳이요, 보금자리는 흙을 어루만지며 숨을 돌보는 곳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어떤 사람이 되어 무슨 꿈을 누리는가를 잊는 어른이라면, 아이를 둘 셋 넷 다섯을 낳는대서 어버이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돈이 넉넉하거나 가방끈이 기니까 어버이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얼굴이 예쁘거나 힘줄 끗발이 있기에 어버이 자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씨앗이 자랄 수 있는 터에서 나무를 보듬는 손길일 때에 바야흐로 어버이요 어른입니다.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자리에서 풀꽃을 사랑하는 마음길일 때에 비로소 사람이며 목숨입니다.


.. 율곡 할아버지와 퇴계 할아버지 초상화도 있지만 품격은 역시 왕이 높으시다. (거참 희한하지? 왕조 시대도 아닌데) ..  (세종대왕 초상화 1)


 박상률 님이 지은 시를 그러모은 《배고픈 웃음》(시와시학사,2002)을 읽습니다. 박상률 님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결을 보듬으며 시를 꽃피웁니다. 박상률 님이 서울 아닌 진도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삶을 보듬었으면, 또다른 이야기 피어나는 말꽃을 돌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박상률 님을 비롯해, 글깨나 쓸 줄 아는 사람은 하나하나 서울로 몰립니다. 글줄 읽고 글월 아낄 만한 사람은 하나둘 서울로 끌립니다.

 시골집에서 동백나무 동백꽃 누리면서 시를 쓰는 사람은 아주 줄어듭니다. 도시에서라도 오동나무 오동꽃 느끼면서 시를 쓰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동백꽃하고 멀어지면서 오동꽃이든 장미꽃이든 풀꽃이든 바라볼 겨를을 잃습니다. 동백꽃하고 등지면서 할미꽃이든 참꽃이든 머위꽃이든 들여다볼 틈을 잊습니다.

 시집 《배고픈 웃음》에서 샘솟는 웃음이 풀씨 하나 만날 수 있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꿈꿉니다. 시집 《배고픈 웃음》에서 꼬르륵거리는 몸이 흙을 일구어 푸성귀랑 곡식이랑 열매를 거둔다면 어떠했을는지 꿈꿉니다.

 (도시에서) 시만 쓰는 사람은 배고픕니다. (시골에서) 시를 쓰는 사람은 배부릅니다. (4344.12.1.나무.ㅎㄲㅅㄱ)


― 배고픈 웃음 (박상률 글,시와시학사 펴냄,2002.11.10./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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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고 생각하며 담는다. 몸이 힘들어 드러누워서 박상률 님 시집 <배고픈 웃음>을 읽고 나서 문득 생각나서 살펴보니 여러 가지 못 읽은 책이 보인다. <배고픈 웃음>은 2002년에 나왔는데 2011년에서야 읽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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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낱권책, 또는 새 잡지로 《헌책방 아벨서점 단골 스무 해》를 만들기로 한다. 오늘부터 글을 모아 엮는다. 지난 하루 몸살이 났는지 여러 시간 끙끙 앓고 나면서, 이대로 쓰러져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내가 할 일을 가다듬는다.


 2011년 12월에 될 수 있나 모르겠지만, 2012년 1월까지 《헌책방 아벨서점 단골 스무 해》를 만들기로 한다. 그동안 찍은 필름을 찾아서 새로 긁어야겠다. 힘을 내자.
 

(책 편집 어느 만큼 되면 예약주문을 받아 볼까? ^^;;;;; 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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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 글쓰기


 이웃집에는 동백꽃이 소담스레 피었다. 마을 앞 큰길 버스타는곳 둘레에도 동백꽃이 예쁘게 피었다. 우리 집이라고 볕이 잘 안 드는 데가 아닌데 좀처럼 동백꽃 봉우리가 열리지 않더니, 이제 슬슬 필 낌새이다. 하루나 이틀쯤 뒤면 흐드러지게 피어날 동백꽃 봉우리 하나를 본다. 다른 봉우리도 첫 봉우리에 이어 활짝 피어나겠구나 싶다.

 동백나무 곁 후박나무를 올려다본다. 제법 높이 자라 마당에 조그맣게 그늘을 드리우는 후박나무도 동백나무처럼 어여쁜 꽃을 피우려 애쓴다. 동백꽃 봉우리는 꼭 쥔 주먹처럼 단단하고 야무져 보인다면, 후박꽃 봉우리는 두 손을 반듯이 모은 듯 살짝 길쭉하면서 단단하고 야무져 보인다. 다가오는 십이월에는 동백꽃과 후박꽃이 빛나는 햇살그늘에 기저귀 빨래를 널 수 있겠구나 싶다.

 네 살 아이와 한 살 아이한테 동백꽃 봉우리를 보여준다. 아마, 두 아이한테는 봉우리부터 꽃이 피기까지를 보는 일이 처음이리라. 우리가 얻은 새 보금자리에서 살던 분이 심어 기르던 동백과 후박이 우리한테 선물을 베푼다. 나와 옆지기는 앞으로 언제 흙으로 돌아갈까 모른다만, 우리 두 사람은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선물을 베풀 수 있을까. 우리 두 사람은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한테 어떤 선물을 물려줄 수 있을까.

 나무 한 그루로 받는 작은 사랑을 생각하자. 나무 한 그루로 건네는 작은 빛줄기를 헤아리자. 나무 한 그루로 오늘 누리는 꿈을 어루만지자. (4344.11.3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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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상 - 사진시대총서 1
임응식 지음 / 해뜸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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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삶과 사진꿈 읽기
 [찾아 읽는 사진책 70] 임응식, 《사진사상》(해뜸,1986)



 사진책을 힘껏 펴내려 하던 ‘해뜸’ 출판사가 처음 내놓은 책은 임응식 님이 쓴 글을 엮은 《대표작으로 보는 세계 사진가들의 사진사상》(해뜸,1986)입니다. 사진쟁이 임응식 님은 머리말에서 “본래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오랫동안 대학에서 사진학 강의를 하면서 제일 답답하게 느낀 것이 외국 사진가들의 경력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우리 나라 말로 소개던 것이 전혀 없다시피 한 점을 아쉽게 생각하고, 사진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쓰게 된 것이다.” 하고 밝힙니다. 2011년이라는 해에 생각한다면, 2011년이라 해서 나라밖 사진쟁이나 사진밭이나 사진책을 알뜰히 들려주는 마땅한 책이 제대로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럭저럭 살피거나 돌아보도록 돕는 책은 제법 있어요.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을 그러모은 책이라든지, 매그넘 사진책이라든지, 드문드문 태어나곤 합니다. 나라밖에서 사진을 가르치며 쓰는 여러 가지 교재가 한국말로 옮겨지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직 한국사람 눈썰미로 바라보거나 살피면서 적바림하는 ‘사진으로 세계 흐름을 읽고 세계 문화를 돌아보는 이야기책’은 없어요. 임응식 님이 내놓은 ‘서양 사진쟁이 소개하는 책’은 “사진사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이 이름 말마따나 ‘사진 넋’이나 ‘사진 생각’이나 ‘사진 얼’을 밝히는 사진비평이나 사진이론을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임응식 님은 《사진사상》에서 모두 쉰 사람에 이르는 서양 사진쟁이를 소개합니다. 얼마 앞서 전민조 님이 내놓은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포토넷,2011)라는 책은 사진쟁이뿐 아니라 사진과 얽힌 688 사람이 사진을 바라보며 들려준 이야기를 담아요. 숫자만 헤아려도 놀랍지만, 숫자에 담은 알맹이를 돌아보면 훨씬 놀랍습니다. 아무래도 1986년과 2011년 사이에는 새로운 사진쟁이도 많이 태어났고, 자료를 모으기에도 한결 나았을 테며, 인터넷이 있기에 조금 더 널리 돌아볼 만했으리라 봅니다. 그나저나, 1986년이라는 해, 한국땅 사진밭을 살필 때에, 서양 사진쟁이 쉰 사람 삶과 넋과 사진을 간추려 들려주는 《사진사상》은 한국에서 무척 앞선 책이요 돋보이는 책이며 값진 책입니다. 이 같은 책이 있어 이 나라 사진문화를 북돋우는 밑힘이 더욱 단단해졌으리라 생각해요.

 다만, 《사진사상》은 ‘세계 사진쟁이’를 다루지 않습니다. 《사진사상》이 다루는 사진쟁이는 모두 ‘서양 사진쟁이’입니다. 일본 사진쟁이나 아시아 사진쟁이나 중남미 사진쟁이나 아프리카 사진쟁이는 다루지 않습니다. ‘서양에서 엮고 서양에서 내놓는 사진역사책’에 으레 이름이 적히는 서양 사진쟁이만 다룹니다.

 그래도 이만 한 책이 나온 일은 반가우며 고맙습니다. 그저 한 가지 토를 단다면, 1986년에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더라도 2011년에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느냐 싶고, ‘온누리를 대표하는 사진쟁이’를 살피거나 생각하거나 배우려 할 때에도 ‘서양 사진쟁이’만 살피거나 생각하거나 배우는 틀을 살포시 딛고 서야 한다고 느껴요.

 덧보태자면, ‘세계 사진 넋’이나 ‘세계 사진 흐름’을 읽는 한편, ‘한국 사진 넋’과 ‘한국 사진 흐름’을 나란히 읽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전민조 님이 내놓은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는 무척 대단하다 싶은 책이기는 한데, 이 책도 일본 사진쟁이를 옳게 다루지는 못합니다. 퍽 많이 다루기는 했으나, 일본이 사진문화와 사진흐름에 이바지한 수많은 열매를 제대로 싣지는 못했어요. 무엇보다 ‘사진길을 걷는 한국 사진쟁이’ 열매는 한 가지조차 싣지 않았어요.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는 ‘세계 편’이고 ‘한국 편’을 따로 내놓을는지 모르지만, 따로 내놓으려 한다면 책이름부터 나중에 따로 나올 ‘한국 편’ 이야기가 묻어나도록 했겠지요. 곧, 예나 이제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땅에서 한국넋을 북돋우는 한겨레 사진길을 예쁘게 돌아보지는 못합니다. 사진기라는 연장이 처음 서양에서 태어났다지만, 이 연장을 쓰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에요.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를 서양에서 만들었대서 이 탈거리를 즐기는 사람은 서양 넋으로 살아가지 않아요. 연필을 누가 만들었든, 전깃불을 누가 만들었든, 셈틀을 누가 만들었든, 찬찬히 기릴 수 있는 노릇이지만 대단하거나 대수로이 여길 까닭은 없습니다. 이 연장을 쓰는 사람이 알뜰히 잘 써야 해요. 호미나 낫이나 쟁기를 맨 처음 누가 만들었는가를 따지며 기릴 수 있을 테지만, 바로 오늘 내가 밭자락에서 호미나 낫이나 쟁기를 옳게 쓰느냐가 훨씬 대단하고 대수롭습니다.

 나는 내 사진길을 처음 걷던 1998년부터 《사진사상》을 읽었습니다. 일찌감치 판이 끊어진 책이니 헌책방마실을 하며 《사진사상》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읽던 《사진사상》은 겉이 하얀 빛이었는데, 그러께에 겉이 푸르스름한 새로운 판을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 겉이 푸르스름한 판이 처음 나온 판이더군요. 그래서 헌책방에서 새롭게 장만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찬찬히 되읽습니다. 철지났다든지 해묵었다든지 할 수 있는 《사진사상》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국 사진밭을 알뜰히 일구며 한삶을 바친 임응식 님 넋과 숨결과 땀방울’을 느낄 수 있거든요. 참말, 책끝에는 ‘임응식 해적이’와 ‘임응식이 사진과 얽혀 쓴 글 표’가 찬찬히 붙습니다.

 《사진사상》이라는 책은 “대표작으로 보는 세계 사진가들의 사진사상”이라고 합니다만, 책을 몇 차례 찬찬히 읽고 나서 느끼기로는, 아무래도 “임응식이 읽은 서양 사진쟁이들 삶과 꿈과 넋과 길”이로구나 싶어요. 여러모로 이름난 서양 사진쟁이들 삶과 꿈과 넋과 길을 돌아보는 임응식 님은 당신 사진삶과 사진꿈과 사진넋과 사진길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알차거나 사랑스러웠는가 돌이킵니다. 오랜 나날 사진과 함께 살아온 당신 삶과 꿈과 넋과 길은 얼마나 즐거웠는가 되뇝니다.

 한국에서 오래도록 사진길을 걸어간 어르신들이 당신 사진삶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느낍니다. “아무개가 좋아하는 사진”이라는 책이름을 붙여도 되겠지요. “아무개가 사랑하는 사진”이라든지 “아무개가 보고 배운 사진”이라든지 “아무개가 곁에 두는 사진”이라든지, 어느 이름이든 좋습니다. (4344.11.30.물.ㅎㄲㅅㄱ)


― 사진사상 (임응식 글,해뜸 펴냄,1986.5.25./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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