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주문할 때에 주문하자 생각하면서도, 으레 주문하는 자리에서는 잊는다. 부디 잊지 말자. 이러다가 이 책도 판이 끊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니. 1998년 책이 아직 살아남은 일만 해도 대단하다.... ㅠ.ㅜ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탐라기행
시바 료타로 / 학고재 / 1998년 2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2011년 12월 01일에 저장
품절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누나랑 책놀이를


 옆에 앉은 누나가 저를 쳐다보지 않는다. 한참 엎드려 아버지를 보고 놀다가, 옆에 앉은 누나가 보는 책을 턱 하고 잡는다. 누나는 곧 몸을 옆으로 슬슬 돌린다. 책을 들어 동생이 잡은 손을 떨친다. 동생이 누나를 바라보며 끙끙 하지만 누나는 “싫어, 내가 보잖아.” 하고 말한다. 동생하고 나란히 누워 책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동생이 보던 책을 슬쩍 빼앗아 혼자 보며 놀기도 하는 누나. (4344.12.1.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침 동백꽃 낮 동백꽃


 아침에 꽃망울 연 동백꽃이 낮에는 활짝 피어난다. 이 작은 봉우리가 이렇게 커다랗게 벌어지기까지 몇 시간이 들었을까. 이렇게 흐드러진 동백꽃은 앞으로 며칠쯤 고운 내음 퍼뜨리는 잎사귀를 벌린 채 살아갈까.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가르치던 얘기 가운데 ‘동물은 움직이고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대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깜빡 잠이 든 다음 깨어나면 꽃잎이 달라지는걸. 아침에 바라보고 밖에 나가 신나게 뛰놀고 집으로 돌아올 무렵 바라보면 또 잎사귀랑 줄기가 달라지는걸.

 꽃은 꽃삶대로 꽃결을 느껴야 한다. 나무는 나무삶대로 나무빛을 헤아려야 한다. 지식에 갇히면 꽃을 꽃눈이 아닌 사람눈으로 바라보고 만다. 지식에 얽매이면 나무를 나무넋이 아닌 사람넋으로 따지고 만다. 사람은 사람살이 흐름조차 옳게 읽지 못하는 나머지, 꽃과 나무가 어떻게 흐르며 싱싱하게 살아숨쉬는가를 깨닫지 못한다. (4344.12.1.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신문 책읽기


 지난 월요일 면사무소 다녀오는 길에 면사무소 일꾼한테 한 마디 여쭈었다. ‘이면지 상자’에 담긴 철지난 신문 가져가도 되느냐고. 얼마든지 가져가서 보시라 하기에, 전라남도에서 나오는 일간지와 주간지에다가 농어민신문까지 열 몇 가지를 챙긴다. 집으로 돌아와 하나씩 펼친다. 한두 가지 지역신문은 이름을 들었으나 다른 열 가지에 이르는 신문은 이름을 처음 듣는다. 인천에서 살던 때에도 ‘나고 자란 인천’이라지만 이름 낯선 지역신문이 제법 많았다. 충청북도 음성 멧골집에서 지내던 지난 한 해에도 이름이 도무지 가까워지지 못한 지역신문이 참 많았다. 그렇다고 이들 지역신문에 광고라도 많이 실리지 않는다. 참말 누가 이 지역신문을 읽을까.

 30분이 채 안 되어 지역신문을 다 넘긴다. 넘기기는 하지만 읽을 만한 글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문득 깨닫는다. 광고 얼마 없는 지역신문이기는 한데, 마치 ‘관보’와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구나. 이렇게 지역 군·읍·면 행사와 소식은 빼곡하게 실으니까, 지역 군청·읍사무소·면사무소에서는 신문값 내면서 받겠구나. 그렇지만 정작 면사무소에서조차 겉봉투를 안 뜯은 채 이면지 상자에 차곡차곡 쌓겠구나. 시골 면에까지 헌 종이 모으러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한데, 그야말로 ‘읽으라’ 하는 신문이 아니라 ‘돈을 버는 구멍을 찾으려’ 하는 신문이구나.

 그나마 농어민신문은 조금 읽을거리가 보인다. 농민신문은 조금 찬찬히 읽는다. 이 두 가지 신문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과 얽혀 시골마을에 어떤 피해가 오는가를 표를 그려 밝혀 준다. 곡식과 푸성귀와 뭍고기와 물고기와 얽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시골마을은 어떻게 되는가를 어림할 수 있는 자료가 실린다.

 문득 궁금하지만 애써 찾아볼 마음은 없다. 서울에서 나오는 중앙일간지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과 얽혀 어떤 글이 실릴까. 자동차라든지 공산품을 미국에 더 많이 팔아 나라살림 북돋울 수 있다는 글이 실릴까. 시골마을 사람들 삶이 어떻게 되는가를 낱낱이 파헤치거나 살피는 글이 실릴까. 서울이나 크고작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중앙일간지라는 신문을 읽으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참말 이 나라에 어떻게 파고들거나 이 나라 삶자락을 어느 만큼 뒤집는가를 헤아릴 수 있는가.

 지난 한 주, 우리 시골마을 면사무소 일꾼들 책상맡에 인문책이 잔뜩 놓였다. 갑작스레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데, 면사무소 일꾼 가운데 어느 분이 ‘창고 갈무리를 하다가 몇 해 앞서 문화부에서 받은 우수교양도서를 꺼내어 올려놓았다’고 한다. 곧, 서울(중앙 행정기관)에서 뽑은 우수교양도서가 시골마을 면사무소로 들어올 때에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셈이다. 서울(중앙)에서는 온 나라에 문화와 복지와 예술을 퍼뜨린다(보급)고 하면서 목돈 들여 우수교양도서를 뽑아 장만해서 이렇게 두루 보낼 텐데, 책을 둘 자리부터 없고, 책을 읽을 사람 또한 없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도록 하는 나라정책이요 나라살림인데, 우수교양도서를 뽑아 장만해서 시골로 보낸들 누가 읽을 수 있을까. 그냥 서울에서 책 신나게 만들고, 그냥 서울과 큰도시 학교로 책을 보내며, 그냥 서울과 큰도시에 도서관 수십 군데 더 짓는 일이 낫겠다. (4344.12.1.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68) 간결


..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까? 한마디로 쉽고 간결하게, 이것이 동화 문장의 요체다 ..  《이오덕-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삼인,2011) 33쪽

 “동화 문장(文章)의 요체(要諦)다” 같은 글월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그저 이대로 두어야 할는지요, 한국말 흐름과 결과 무늬에 맞게 걸러야 할는지요. 예전 분들이 쓰던 말투이니 그대로 둘 때가 나을까요, 오늘을 살아가는 새 사람들 말투로 가다듬을 수 있어야 나을까요.

 보기글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文章)을 어떻게 써야” 또한 곰곰이 살필 대목입니다. 이대로 두어야 좋을는지요, 아니면 “글을 어떻게 써야”로 손볼 때에 좋을는지요. ‘글’이랑 ‘문장’은 어떻게 다르다 할 만한가요. 아니, 서로 다른 구석이 있을는지요.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쓰는 ‘글’은 깊이와 너비와 무게를 알뜰히 다질 수 없는 노릇인가요.

 ‘문장(文章)’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고 느낍니다만, ‘글’로 손볼 수 있어요. “동화 문장의 요체(要諦)다”는 “동화 문장을 쓰는 길이다”나 “동화를 쓰는 길이다”나 “동화 글을 쓰는 알맹이이다”로 다듬습니다. 또는, 글월을 통째로 다듬어서 “동화는 이와 같이 써야 한다”나 “동화를 쓰려면 글을 이렇게 가다듬어야 한다”처럼 적을 수 있어요.

 간결(慳結) : [불교] 자기의 신명과 재물을 아끼는 마음
 간결(簡潔)
  (1) 간단하고 깔끔하다
   - 간결한 복장 / 그녀는 매우 검소하고 간결하게 살고 있다
  (2) 간단하면서도 짜임새가 있다
   - 간결한 문체 / 그의 글은 간결하고 명료했다 / 매우 간결하게 표현했다

 쉽고 간결하게
→ 쉽고 깔끔하게
→ 쉽고 정갈하게
→ 쉽고 깨끗하게
 …


 국어사전에는 두 가지 한자말 ‘간결’이 실립니다. 하나는 불교 낱말이라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불교 낱말이라기보다, 먼 옛날 이 나라에 불교가 들어올 때에 중국사람이 적바림한 낱말이라고 해야 할 테지요. 아직 한국말로 옮기지 못한 낱말이요, 중국말 그대로 내버리고 만 낱말입니다.

 한국땅에는 불교와 함께 천주교와 개신교가 들어왔습니다. 오늘날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쓰는 낱말은 ‘영어’나 ‘라틴말’이나 ‘프랑스말’이 아닙니다. 한국땅에서 천주교나 개신교를 믿는 이들은 한국말로 옮긴 믿음말을 나눕니다.

 이와 마찬가지예요. 한국땅에서 불교를 믿으면서 나눈다 할 때에도 중국말을 날것 그대로 쓰지 말고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내 이웃이랑 동무랑 살붙이하고 오순도순 나눌 낱말과 말투로 옮겨야 합니다. 라틴말로 나눌 믿음인 천주교가 아니에요. 영어로 주고받을 믿음인 개신교가 아닙니다. 중국말로 나눌 믿음인 불교일 수 없어요.

 간결한 복장 → 깔끔한 옷차림 / 다소곳한 옷매무새 / 차분한 옷맵시
 그녀는 매우 검소하고 간결하게 살고 있다
→ 그 여자는 매우 수수하고 깔끔하게 산다
→ 그 사람은 매우 알뜰하고 가볍게 산다
→ 그이는 매우 꾸밈없고 정갈하게 산다


 다른 한자말 ‘간결(簡潔)’을 생각해 봅니다. 이 한자말은 “간단하고 깔끔하다”를 뜻한다고 나오는데, ‘간결’과 같은 한자말을 만나면 골부터 아픕니다. 이러한 한자말 풀이를 국어사전에서 뒤적이면 아주 뻔한 돌림풀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간단’도 ‘간략’도 ‘간편’도 모두 매한가지예요. 서로서로 돌림풀이입니다.

 그래도 다시금 골 아플 일을 견디면서 국어사전을 펼칩니다. ‘간단(簡單)’은 “(1) 단순하고 간략하다 (2) 간편하고 단출하다 (3) 단순하고 손쉽다”라 합니다. ‘간략(簡略)’은 “간단하고 짤막하다”라 합니다. ‘간편(簡便)’은 “간단하고 편리하다”라 합니다.

 자, 이 말풀이를 잘 살펴보셔요. 간결은 간단이 되고, 간단은 간략이나 간편이 됩니다. 간략이나 간편은 간단으로 돌아갑니다.

 돌고 도는 낱말풀이를 헤아리면 ‘간결’은 “손쉽고 깔끔하다”인 셈이에요. 다른 한자말들 ‘간단-단순-간략-간편’ 또한 밑바탕은 “쉽다”이고요.

 어쩌란 소리일까요. 어쩌란 한자말들인가요. 사람들은 이 한자말 뜻이나 쓰임이나 느낌을 얼마나 제대로 알면서 쓰는가요. 아니, 말뜻을 한 번이라도 곱씹으면서 이런 말마디를 혀로 굴리거나 손으로 놀릴는지요.

 한편, 조금 생각을 기울일 줄 안다면, 이들 한자말이 얼마나 껍데기요 겉치레인가 깨닫습니다. “간결 = 간단하고 깔끔하다”가 아닙니다. ‘간결’은 ‘깔끔하다’라는 한국말을 밀어낸 중국말입니다. ‘간단’은 ‘단출하다’와 ‘손쉽다’라는 한국말을 밀어낸 중국말이에요. ‘간략’은 ‘짤막하다’라는 한국말을 밀어낸 중국말입니다. ‘간편’은 ‘손쉽다’와 ‘수월하다’와 ‘단출하다’ 모두를 밀어낸 중국말이에요.

 간결한 문체 → 깔끔한 글투 / 단출한 글투
 그의 글은 간결하고 명료했다
→ 그 사람 글은 짧고 또렷했다
→ 그는 단출하고 환하게 글을 썼다
 매우 간결하게 표현했다 → 매우 단출하게 나타냈다 / 매우 정갈하게 드러냈다


 참으로 쉽게 살필 노릇이구나 싶습니다. 더없이 쉽게 돌아볼 노릇이구나 싶어요. 쉽게 생각하고 쉽게 살아가며 쉽게 나누는 말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될 말입니다. 깔끔하게 다스리면 좋을 말입니다. 정갈히 보듬으면 알찬 말입니다. 단출히 아끼면 예쁜 말이에요.

 삶과 넋과 말을 알맞게 다스립니다. 삶과 넋과 말을 어여삐 돌봅니다.

 사랑할 만한 말을 나누면서 사랑할 만한 내 삶으로 일굽니다. 마음을 깊이 기울여 내 삶을 보살피듯, 마음을 고이 기울여 내 말을 어루만집니다.

 굳이 군더더기를 달아야 하지 않습니다. 애써 껍데기를 씌워야 하지 않습니다. 애먼 겉치레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사랑을 담으면 넉넉한 말이요 넋이며 삶입니다. 내 사랑을 담아 내 이웃이랑 동무하고 살가이 어깨동무하는 말이면서 넋이고 삶이면 흐뭇합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올바로 느끼면서 참다이 아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4.12.1.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