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판으로는 집에 있으나, 집을 옮기며 도서관 어느 자리에 묶였는지 알 길이 없다 ㅋㅋㅋ ㅠ.ㅜ 태혜숙 님 새 번역이니 어떻게 나왔을는지 궁금하다. 천천히 기다리며 장만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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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딸- 아그네스 스메들리의 자전적 소설
아그네스 스메들리 지음, 태혜숙 옮김 / 이후 / 2011년 11월
16,800원 → 15,120원(10%할인) / 마일리지 8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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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일생 2
니시 케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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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누릴 기쁨
 [만화책 즐겨읽기 91] 니시 케이코, 《남자의 일생 (2)》



 날마다 첫째 아이가 아버지를 깨웁니다. 요즈음 들어 아버지 몸이 영 개운하지 않아 새벽녘 홀로 씩씩하게 일어나지 못합니다. 아이가 아버지를 깨워야 비로소 새벽에 부시시 일어납니다.

 아이가 아버지를 깨우면, 아버지는 아이 쉬를 누입니다. 쉬를 다 눈 아이를 슬쩍 안아 자리에 눕힙니다. 이불을 여미고 가슴을 토닥입니다. 이 다음에는 지난밤 잠자리 들기 앞서 한 빨래를 걷어 방바닥에 깔고는 방에 불을 넣습니다. 방바닥에 따뜻하게 불이 들어오면 거의 다 마르던 빨래는 보송보송해집니다. 기저귀천이 잘 말랐는지 손바닥과 얼굴로 비벼 보고는 차곡차곡 갭니다. 식구들이 아침에 일어날 무렵이면 지난 빨래는 모두 개서 한쪽에 쌓고, 밤새 나온 새 빨래를 해서 다시 방에 옷걸이에 꿰어 넙니다. 오늘은 비가 멎고 날이 맑으면 마당에 빨래를 널어야지요.

 어제는 낮과 저녁에 고구마튀김을 합니다. 이웃집에서 받은 고구마가 두 상자입니다. 고구마는 날로 먹기도 하고, 밥에 함께 넣어 먹기도 합니다. 어떻게 먹어도 좋은데, 불판을 미리 달구고 기름을 살짝 둘러 골고루 볶으면 또 새로운 맛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낮에는 두툼하게 썰고, 저녁에는 가늘게 썹니다. 오늘은 가늘면서 길쭉하게 썰까 싶습니다.

 여태 감자볶음을 기름 아닌 물을 살짝 붓고 했습니다. 스텐냄비를 쓰면 기름 없이 볶을 수 있으니까요. 딱히 기름을 안 쓰자는 삶은 아니니까, 누런쌀기름을 조금 둘러 바닥에 들러붙지 않을 만큼만 하고, 감자이든 고구마이든 앞으로는 이렇게 할까 생각합니다. 기름 두른 볶음만 하자면 좀 재미없으니 때때로 물을 살짝 부은 볶음을 하고요. 여느 집에서는 볶음밥을 할 때에 기름을 꽤 쓸 텐데, 나는 몇 해 앞서부터 기름을 한 방울 안 쓰고 물을 부어 볶음밥을 합니다. 모두 옆지기한테서 배워 이렇게 합니다. 두 아이를 함께 낳은 옆지기가 아니었으면, 나는 스텐냄비 쓸 일 없이, 겉이 시나브로 벗겨지는 법랑냄비를 그냥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홀살이 하며 용케 스텐냄비 여러 벌 모았으면서 정작 이 냄비를 제대로 쓸 줄 몰랐거든요.


- “다 했어요. 사실 나 손으로 직접 빨래해 본 건 난생 처음이에요. 본가엔 도우미가 있는데다 지금은 세탁소에 다 맡기고 있어서.” “그러세요, 네네.” (15쪽)
- “이 피망, 벌레가 붙어 있잖아!” “농약을 안 쳐서 그래. 맛있는 거야.” “우와, 이거 진짜 오이 맞아? 왜 이렇게 구부러진 거야? 징그러워!” “원래 오이는 내버려 두면 구부러져.” (84∼85쪽)


 스텐냄비를 처음 선물로 받으며 한 벌 두 벌 늘 때에, 참말 이 스텐냄비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조차 몰랐습니다. 가만히 돌이키면, 스텐냄비를 선물한 동무들도 맨 처음 끓는 물에 소다를 부어 문지르고 헹구어야 하는 줄 모르기 일쑤였습니다.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바깥일(회사일)을 줄여 아이들 천기저귀 빨래를 하는 아버지나 어머니는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아이들 천기저귀를 빨래기계로 돌리는 어머니는 더러 있을 테지만, 천기저귀를 손빨래하는 아버지는 몇이나 될까 궁금합니다. 틈틈이 기저귀삶이를 하고, 보송보송 말려 예쁘게 개는 어버이는 얼마나 될는지 궁금해요.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고 나서 돈벌이를 줄이고는 아이한테 삶을 맞추는 어버이는 어느 만큼 있을는지 궁금해요.

 누구나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할 텐데, 입으로 외치는 사랑이 아닌 ‘사랑이란 어떤 삶인가’ 하고 돌아볼 줄 아는 사랑으로 아이를 맞이하거나 바라보는 어른은 얼마나 되나요. 참사랑으로 아이하고 살아가는 길을 가르치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인가요. 참사랑으로 이웃이랑 동무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보여주거나 나누는 회사나 공공기관인가요.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가를 밝히는 인문책인가요. 어떻게 사랑해야 즐거운가를 몸소 보여주는 문학책인가요.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책이나 이야기책이나 동화책을 읽히는 일은 썩 좋다 할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예전부터 이렇게 느낍니다. 좋다는 그림책을 보여준들, 초등학교 들기 앞서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학원에 집어넣는다면, 좋다는 그림책은 아이들 마음자리에서 어떻게 싹틀 수 있으려나요. 좋다는 이야기책을 사서 읽힌들, 이 이야기책으로 독후감이나 독서감상문을 쓰도록 내몬다면, 이런 이야기책은 왜 사서 읽히는가요. 좋다는 동화책으로 맑거나 착한 마음을 일구려 했다면, 왜 아이들을 입시지옥에서 헤매도록 몰아세우는가요.

 어쩌면, 좋다는 어린이책을 빚는다는 출판사부터 돈장사를 하는지 모릅니다. 아이들한테는 좋다는 어린이책으로 모든 사랑과 꿈과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으니까요. 아이들은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제 어버이와 둘레 어른한테서 받아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지식이나 돈이나 권력이나 자가용이나 아파트를 받아먹을 수 없어요. 어버이와 어른이 태우니 타는 자가용입니다. 아이들은 자가용을 몰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두 다리로 걷거나 달립니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요. 어른이라면 이 아이들 몸과 마음과 삶에 걸맞게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함께 손을 잡고 걷거나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야 합니다.


- “그녀는 파더 콤플렉스야. 자기가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상대라면 사실 누구든 상관없지. 그 사실을 본인이 깨닫지 못하는 한, 그 아이는 행복해질 수 없어.” (27쪽)
- ‘날 좋아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하지만, 난 이제 더 이상 뭔가를 잃는 걸 견딜 수 없어. 그래서 이곳에 와 혼자가 되고 싶었던 거야. 이젠 아무도 좋아하고 싶지 않았어. 일을, 도쿄를 떠나, 혼자 살아갈 길을 찾고 싶었어. 그런데.’ (68쪽)
- ‘헤어진다. 잃는다. 그렇다면 사람이 만나는 건 왜일까. 이젠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아.’ (122∼123쪽)


 우리 집 마당 꽃밭에 달래싹이 나왔습니다. 내 어머니가 먼길을 찾아와 살짝 들렀다 돌아가는 길에 알려주었습니다. 달래싹이구나, 하고 깨닫다가는, 이 달래싹은 아주 자그마한 달래씨에서 돋은 풀줄기이겠지 하고 느낍니다. 달래씨는 예전에도 이 자리에 살며시 떨어져 달래싹을 돋았기에, 올겨울에도 새롭게 달래싹을 틔울 수 있구나 싶습니다. 흙에는 흙 품에는 흙밭에는 달래씨 말고도 숱한 풀씨가 고요히 잠들어 저마다 깨어날 때를 기다리겠군요. 먼저 피었다 지는 풀이 있고, 뒤따라 피어서 지는 풀이 있으며, 느즈막히 피어서 지는 풀이 있겠지요. 우리 집 마당 동백꽃이랑 후박꽃은 십이월로 접어들면서 곱게 피어납니다. 새해 새봄에는 다른 풀꽃이 필 테지요. 새봄이 지나 새여름이 찾아오면 모과꽃이나 뽕꽃이나 감꽃이나 석류꽃이 필는지 모릅니다. 꽃이 하나하나 피면 그제서야, 아하 이 앙상한 나무는 무슨 나무였구나 하고 깨달을는지 몰라요.

 니시 케이코 님 만화책 《남자의 일생》(시리얼,2011) 2권을 읽습니다. 2권째에는 한 달째 한 집에서 방을 나누어 함께 살아가는 두 사람이 조금씩 마음울타리를 낮춥니다. 아니, 두 사람이 마음울타리를 낮춘다기보다 한쪽에서 마음울타리를 낮춘다고 해야지 싶습니다. 한 사람은 처음부터 마음울타리를 세우지 않았고, 한 사람은 처음부터 높직한 마음울타리가 우람하게 섰으니까요.

 마음울타리가 너무 높던 한 사람 마음밭에도 어김없이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며 새가 찾아듭니다. 고운 내음 넘실거리고 예쁜 노래 춤을 춰요. 그러나 둘레에서는 이 마음울타리를 옳게 깨닫는 이가 드물었고, 이 마음울타리가 있건 없건 고운 내음과 예쁜 노래는 이웃으로 솔솔 퍼지는 줄 알아채는 이 또한 드물었어요.


- “저 기차 타면 ‘요코스카나카마치’가?” “음, 갈 순 있지만, 시간이 엄청 걸릴 거야. 너 혼자서는 돌아갈 수 없어. 너니까 분명히 말하지. 너 혼자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네 엄마는 널 여기 두고 간 거야.” (105쪽)


 밥과 빨래와 청소, 고작 세 가지 집일을 아이들과 복닥이며 하느라 허덕이는 하루를 보내며 생각합니다. 고작 세 가지라 할 만하니, 이 세 가지를 건사하면서 집살림을 알뜰히 엮어야 합니다. 고작 세 가지라지만 이 세 가지부터 더 싱그럽고 해맑게 북돋울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밥을 좋은 손길로 차려 좋은 웃음꽃 피우면서 즐겨야지요. 좋은 밥을 즐겼으면 좋은 살림을 꾸리고 좋은 보금자리로 돌보면서 좋은 마을살이를 누려야지요.


- “그만 됐어, 자네 과거 얘기 따위. 관심 없어. 행복 얘길 하면서 자네는 꼭 고개를 숙이는군.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는데, 어째서 눈앞에 있는 날 보지 않는 거지?” (29쪽)
- ‘내 행복이란 게 뭐지? 매일 즐겁게 지내는 걸까? 하지만 크게 즐겁지 않아도 불행하다 생각하진 않는데. 굳이 말하자면 일이 잘 풀릴 때 난 참 행복하던데 그걸로는 안 되나?’ (132쪽)



 창호종이 하얀 문으로 동트는 아침을 느낍니다. 언제나 새롭게 찾아오는 아침은 언제나 꼭 같은 때에 하얗게 빛납니다. 날은 궂기도 하고 맑기도 합니다. 바람은 차기도 하고 따스하기도 합니다. 어떠한 날이든 아이들은 곧 깨어날 테고, 아이들은 또 배가 고플 테며, 아이들 옷가지는 또 때가 타겠지요. 저녁에 아이들 씻기며 살을 복복 문지르면 앙증맞은 때가 벗겨질 테고, 아이들은 하루치 새로운 말을 배워 종알종알 노래하겠지요.

 어버이가 노래하며 즐기는 삶이라면 아이들 또한 노래하며 즐기는 사랑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어버이가 슬프며 고단한 삶이라면 아이들 또한 주눅들며 시무룩한 어둠을 먹으면서 자라요. 나도 이제 슬슬 아침을 차려야 하고, 아침을 차리기 앞서 아침 빨래를 해야겠습니다. 보일러 기름을 들여다보고, 오늘은 무엇 한 가지 정갈히 갈무리하자고 다짐합니다.

 날마다 누릴 기쁨을 이야기하는 《남자의 일생》 둘째 권인데, 마무리 셋째 권에서는 어떤 삶을 이야기할까 곰곰이 기다려 봅니다. (4344.12.2.쇠.ㅎㄲㅅㄱ)


― 남자의 일생 2 (니시 케이코 글·그림,최윤정 옮김,시리얼,2011.6.2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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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코입 담은 그림


 네 살 첫째 아이 그림에 처음으로 ‘눈코입 담은 얼굴’이 나타납니다. 아이는 제 얼굴이랑 동생 얼굴이랑 어머니 얼굴이랑 아버지 얼굴을 그립니다. 아이가 바라보며 느끼는 삶결 그대로 그림에 담습니다.

 누가 시킨들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누가 느끼라 한들 느낄 수 없습니다. 아이가 느끼는 결 그대로 아이가 그리고 싶을 때에 그립니다. 아이한테 아버지인 나는 아이가 무엇을 보고 느끼며 살아가도록 길을 천천히 열면서 나란히 손을 잡는 길동무인가 헤아려 봅니다. 나다운 삶, 아버지다운 삶, 사람다운 삶, 목숨다운 삶, 곰곰이 돌이킵니다.

 아이가 담은 그림 아래쪽에 날짜를 적습니다. 아이가 앞으로 스무 살이 되어 이 그림을 본다면,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이 되어 아이 어린 나날 그림을 본다면, 아이가 어버이 되어 제 아이를 낳고 제 아이랑 함께 이 그림을 본다면, 그때에 어떤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4344.1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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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2-02 14:21   좋아요 0 | URL
하하... 아빠 얼굴을 제일 크게 그렸나요?
저도 이번에 이사하면서 짐 정리하다 보니 아이가 저 맘 때 그린 것으로 보이는, 무엇을 그렸는지도 모르는 그림이 나오더군요. 그런 것들은 안 버리고 잘 모셔두기로 했답니다.
12월 겨울에 딸기가 가득, 분홍 반지도 여전, 둘째는 아빠 책에 한 다리를 올려놓고 있군요. ^^

파란놀 2011-12-02 15:51   좋아요 0 | URL
아이한테 아빠가 좀 크게 보이나 봐요 ㅜ.ㅠ
이 그림 뒤로는 영 그림이 재미없네요... 에궁...

hnine 님 아이 그림 나중에 슬쩍 선물로 주셔요~ ㅋㅋ
 



 책이야기 글쓰기


 이명박 대통령을 비꼬거나 손가락질한대서 달라질 일이 없습니다. 이모저모 크게 잘못하니 비꼴 만하고 손가락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을 비꼬거나 손가락질한대서 내 속이 후련해지지 않으며, 내 삶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입시지옥이 어떻게 말썽거리요, 한미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우리 터전이 어떻게 되겠다며 걱정하는 일은 옳습니다. 다만, 근심과 걱정으로는 내 삶을 일구지 못합니다.

 내 하루를 어떻게 돌보아야 좋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 삶을 아름다이 여미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내 사랑을 착하게 다스리면서 나누는 꿈을 키워야 합니다.

 나는 나부터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면서, 내 둘레 사람들한테 생각하는 길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비아냥과 비꼬기를 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근심과 걱정을 접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사랑을 생각하고 삶을 살필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꿈을 북돋우고 웃음이랑 눈물을 서로 나눌 수 있으면 반갑겠습니다.

 책이야기를 느낌글로 쓰면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이만 한 책 하나 차근차근 살필 줄 알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사람들이 이만 한 책을 이녁 보금자리와 가까운 책방으로 몸소 마실을 하며 들여다보기를 꿈꾸며 글을 씁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아끼는 책을 읽는 동안 참다움·참함·아름다움을 헤아리면 좋겠다고 여기며 글을 씁니다. 앎조각에 얽매이지 말며, 글쓴이 이름값이나 출판사 힘줄에 붙잡히지 않기를 비손하면서 글을 씁니다. 좋은 삶을 생각하면서 좋은 넋을 돌보는 사람이 되면 좋은 말이 솔솔 피어날 테니, 좋은 책으로 좋은 뜻 가꾸자는 좋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신간소개·서평·독후감·독서감상문·추천글·추천목록 모두 부질없습니다. 이원수 님과 권정생 님 어린이문학을 간추려 추천목록을 뽑는다 한들 부질없습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도 대수로우나, 이보다 어떻게 읽어 어떤 내 삶을 일구느냐가 훨씬 대수롭습니다. 추천목록도 서평도 독후감도 아닌 느낌글이어야 합니다. 느낌을 담는 삶글로 거듭나야 합니다. 느낌을 담는 삶글은 사랑글이어야 하고, 느낌을 담는 삶글은 사랑글로 빛나면서 꿈글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더 좋다는 책이 더 좋을 수 있겠지요. 더 낫다는 책이 더 나을는지 모르지요. 더 좋은 국어사전을 찾거나 더 낫다는 인문책을 읽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더 나은 사랑이나 사람이나 삶이란 없습니다. 오직 나한테 하나뿐인 사랑과 사람과 삶이 있습니다. 내 사랑을 아끼고 내 사람을 얼싸안으며 내 삶을 보듬으면 됩니다. 내 사랑을 느끼고 내 사람을 생각하며 내 삶을 헤아리면 됩니다. (4344.1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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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차로에서
김달수, 진순신, 시바 료타로 지음, 이근우 옮김 / 책과함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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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읽기’는 어떻게 스며들어야 좋을까
 [책읽기 삶읽기 89]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역사의 교차로에서》(책과함께,2004)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시바 료타로 같은 사람이 있어 문학과 문화가 한껏 발돋움할 수 있구나 싶습니다. 거꾸로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시바 료타로 같은 사람이 문학과 문화를 한껏 일구도록 뒷받침이 될 만하구나 싶어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김달수와 진순신 같은 사람이 문학과 문화를 마음껏 즐기며 나눌 수 있구나 싶습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김달수와 진순신 같은 사람이 문학과 문화를 마음껏 즐기며 나눌 수 있을까요. 글쎄, 모를 노릇이지만, 고개를 갸웃갸웃 젓습니다.

 그런데, 일본이라는 나라는 재일조선인한테 손그림을 억지로 찍도록 내몹니다. 일본 정부는 내놓고 재일조선인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합니다. 아니, 내놓지는 않으나 여느 일본사람한테는 잘 보이지 않는 뒷자리에 앉아 아주 단단한 틀과 굴레로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해요. 곰곰이 돌이키면, 일본 정부는 재일조선인한테만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하지 않습니다. 일본사람 가운데 부락민이라 하는 사람을 따로 갈라 계급과 신분에 따라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하는 흐름이 아직 남았습니다. 이와 함께,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손그림 안 찍기 운동을 벌일 때에 자그마치 8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서명운동을 함께했습니다. 이러한 ‘재일조선인 손그림 안 찍기 운동’을 한국에서는 거의 모르쇠로 여기거나 아예 모르기 일쑤입니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책을 놓고 불온도서이니 무어니 하고 딱지를 붙이는 한국 정부입니다. 그리 대단할 일 없는 불온도서 목록을 보며 성을 내는 한국사람입니다.

 하나하나 살피자면, 나라에서는 불온도서를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제도권 교육을 합니다.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배우면서 꿈나래를 즐거이 펼치도록 돕지 않아요. 입시지옥입니다. 대학졸업장 없으면 바보로 삼는 수렁입니다. 아이들한테 참고서와 교과서 말고는 쥐어 주지 않도록 내모는 나라에서 불온도서 목록이 없다면 외려 아리송한 셈입니다.

 곧, 이 나라 여느 사람은 정부나 국방부나 이런저런 곳에서 불온도서를 뽑든 말든 아랑곳할 일이 아닙니다. 한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을 맺든 말든 마음쓸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삶을 참다이 아끼고 싶다면, 신문을 놓고 텔레비전을 놓으며 인터넷까지 놓아야 해요. 내 삶을 착하게 사랑하고 싶다면, 제도권 학교를 떠나고 대학졸업장 아닌 낫·호미·쟁기를 쥐어야 해요. 내 삶을 곱게 북돋우고 싶다면, 자가용을 버리고 아파트에서 떠나야 해요. 하늘에서 책을 읽고 햇볕에서 책을 읽으며 흙에서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해요.


.. 한국인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으로 한글이 있습니다. 대단히 훌륭한 문자죠 … 농업 제국이 되면, 즉 중국화하면, 한문이라는 문장이 따라옵니다. 한문은 중국 문명 자체였으므로 한문에 능숙해지는 일에, 즉 중국 문명화하는 데 열중하게 되고요. 그래서 정복 왕조이면서도 종국에는 한족화하는 것이죠 … 한국의 성(성씨)이 더욱 복잡한 이유는 천한 성 일곱 개 혹은 다섯 개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좁은 사회에서 서로 차별하고, 그것으로 질서를 지켜온 것이죠 ..  (시바 료타로/22, 51∼52, 74쪽)


 제사나 차례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성황당이나 장승은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모시는 넋이 대수롭습니다. 섬기는 얼이 대단합니다.

 죽은 사람 앞이든 산 사람 앞이든, 이러한 틀에 따라 이런저런 말씀을 올리면서 이런저런 몸짓을 보여야 섬기거나 모시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이어야 하고, 사랑에서 샘솟는 몸짓이어야 해요.

 자가용 몰아 어디론가 마실을 다녀야 즐거운 만남이 아닙니다. 물·바람·햇살 좋은 데로 놀러다녀야 무언가 ‘주말·휴일·휴가를 즐겼다’고 할 만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살아가는 곳이 좋은 물·바람·햇살일 수 있어야 해요. 날마다 지내는 터에서 좋은 물·바람·햇살을 누리면서 내 먹을거리를 내 흙땅에서 일굴 수 있어야 해요.


.. 한국은 이 가족주의 탓에 복잡하게 뒤얽히게 되었지요. 문명주의가 될 수 없었던 것은 가족주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아직도 강하게 살아 있다는 데에 놀랐어요. 우선은 친척, 그 다음은 지연입니다. 같은 경상도 출신이라거나 전라도 출신이라는 식이죠. 일본에도 동향 의식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만큼 번거롭지요. 한국은 유교가 매우 번성했고, 또 그 때문에 사회가 정체되었다고 해요. 우리는 그것에 반발을 느끼지만, 실제로 조선은 유교에 사로잡혀 있는 면도 있어요. 유교는 정체 철학이기 때문에 시바 선생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교에서는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러나 호기심을 갖지 않으면 진보할 수가 없습니다 … 중국이라는 나라는 다양성이 너무 많아서 이른바 단일한 가치관 따위는 없는 나라입니다 … 조선에서는 유교를 통해서 오직 한 가지의 절대적인 가치관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더구나 제자인 주제에 본가인 체하고, 어쨌든 융통성 없이 꽉 막혀 버렸어요 … 한국에서는 일원적인 가치관만 있었기 때문에 약할 수밖에요 … 한국의 경우에는 부임해 온 관료가 착취를 조금만 덜 해도 선정으로 여겼지요 ..  (김달수/64∼65, 82, 91쪽)


 우리 아이들은 제 아버지처럼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책을 건사할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은 시골마을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갈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은 큰도시를 찾아 시골마을을 떠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나무 만지는 일을 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배 타는 일을 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사랑하는 짝을 만나 시골마을에서 아이들 낳아 조용하면서 조촐히 꾸리는 살림을 이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서고 나면, 이런 꿈 저런 길 모두 사라집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아이들한테는 대학바라기 한 가지만 남습니다. 대학바라기 한 가지만 남을 때에 이 아이들로서는 돈을 더 많이 받는 쇠밥그릇 구멍을 찾는 데로 몰릴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아이들 저희 삶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로 걸어가도록 하자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부터 어버이 삶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을 걸어야 해요. 돈벌이 하느라 집 바깥에서 오래도록 많은 나날을 보내야 하는 어버이라면, 아이들 또한 집 바깥에서 떠돌며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삶에 젖어들 뿐이에요.

 사랑이 낳는 사랑이거든요. 돈이 낳는 돈이거든요. 꿈이 낳는 꿈입니다. 기계가 낳는 기계예요.

 손을 써서 살아가면 크든 작든 내 손을 써서 일굽니다. 기계를 쓰며 살아가면 크든 작든 기계를 장만해서 전기나 기름 먹이는 쪽으로 흐릅니다.

 아이들하고 손을 맞잡고 거니는 어버이는 아이들하고 노래하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우고 다니는 어버이는 아이들하고 눈 한 번 살가이 마주칠 겨를조차 없습니다.


..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들이 급성장하여 권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에 장군은 한족 이외의 인물이 좋습니다. 그래서 위구르나 티베트, 고구려 출신들을 등용하게 되었죠 … 중국에서는 재산을 거의 똑같이 나누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점점 가난해집니다 … 유교는 역시 근대화의 장애물입니다. 윤리적인 측면뿐이라면 문제가 적겠지만, 질서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운신하기 힘들 정도로 체제를 고정시키는 경향이 있어요. 중국에서도 태평천국의 난은 반유교 투쟁입니다 ..  (진순신/72, 96, 156쪽)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꽃을 갈무리한 《역사의 교차로에서》(책과함께,2004)를 읽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일찌감치 일본판으로 장만했습니다. 일본말로 읽을 줄은 몰랐으나 헌책방마실을 하다가 이 책 일본판을 장만하며 참 기뻤습니다. 이러다가 2004년에 비로소 한국말로 옮겨질 때에 더 기뻤습니다. 무척 늦었으나, 한국에서도 이만 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문화가 알려지는구나 생각했어요. 이제라도 한국땅에서 홀가분하면서 넉넉한 삶꽃 삶열매를 바라보는 눈길이 트이는 길잡이가 마련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교차로에서》를 한국말로 옮긴 이근우 교수는 세 사람 이야기꽃이 썩 마땅하지 않다고 옮긴이 말에 밝힙니다. 해묵은 이야기에다가 잘못된 이야기까지 많다고 붙입니다. 보탬말(각주)을 잔뜩 달아 이런저런 역사를 제대로 밝히려 했다는데, 글쎄,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은 역사 공부를 하자면서 이야기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 뿌리인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저마다 어떠한 삶바탕에서 삶꽃을 피우는 길을 걸었는가를 돌아보면서, 세 나라 젊은이가 부디 슬기로우면서 아름다운 삶길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왜 이 대목은 짚지 않을까요. 왜 이 대목을 짚으려 하지 않나요.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은 ‘유교’라 하는 종교 아닌 종교가 세 나라를 얼마나 옭죄는가를 거듭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근우 교수는 유교라 하는 종교 아닌 종교를 종교로 여기는구나 싶어요. 아무래도 이 대목에서 참 마땅하지 않다고 느끼는구나 싶어요. 그러면, 옮긴이부터 해묵고 부질없으며 뒤틀렸다고 여긴 이 책을 한국말로 옮기지 말아야지요. 출판사에서는 다른 사람한테 이 책을 옮기도록 맡겼어야지요.

 “침략(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에 맞서서 이쪽에서는 저항하고 싸웠다,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웅주의적인 발상이죠. 그래서는 상대를 제대로 볼 수가 없어요. 그것만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아요(김달수/190쪽).”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읽으며 삭여야 합니다. “전쟁(태평양전쟁)이라는 괴물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보여주는 작은 예는, 나처럼 자전거도 겨우 타는 덜 떨어진 사람에게 탱크에 대해서 가르친 일이다(시바 료타로/205쪽).” 하는 이야기를 곰곰이 읽으며 가누어야 합니다.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은 ‘역사는 이렇다’라든지 ‘역사 참모습은 이렇다’라든지 ‘이 역사는 이렇게 읽어야 맞다’고 내세우지 않습니다. 임금님 삶부터 여느 사람 삶까지 찬찬히 훑으면서 이러한 삶이 오늘 우리한테 어떤 빛이요 꿈이며 사랑인가를 밝히려 애씁니다. 오늘 우리가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여는 데에 ‘역사읽기’는 어떻게 스며들어야 좋을까 하는 대목을 살피려 힘씁니다.

 좋은 책 하나는 좋은 출판사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이야기 하나는 좋은 글쟁이나 번역쟁이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눈길로 좋은 삶을 읽는 좋은 책즐김이는 좋은 꿈과 좋은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좋은 땀방울을 좋은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4344.12.1.나무.ㅎㄲㅅㄱ)


― 역사의 교차로에서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글,이근우 옮김,책과함께 펴냄,2004.7.22./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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