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받은 책읽기

 


 책을 선물받는다. 책 두 권 선물해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이내 잊었는데 저녁나절 땅거미 진 으슥한 때에 택배 일꾼이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크기는 커다랗고 무게는 가벼운 상자를 받는다. 무엇일까. 선물인 줄 모르고 받아서 상자를 연다. 상자를 여니 과자꾸러미가 먼저 보인다. 어, 무슨 과자일까. 내가 과자를 사지 않아도 이래저래 과자 선물이 들어온다. 달고 짠 과자를 보면 금세 뽀르르 달려드는 아이한테는 반가운 선물이 될까. 과자꾸러미 밑에 책이 보인다. 무슨 책인가 하고 들여다보다가는, 아하, 이 책을 선물해 주신다는 분이 있었지, 하고 떠올린다.

 

 책을 꺼내어 읽다가 생각한다. 나 태어난 날에 맞추어 손전화 쪽글로 축하한다는 말을 보낸 이들이 있는데, 고맙다는 쪽글을 제대로 돌려보내지 못했구나 싶다. 벌써 한 주가 지나도록 대꾸를 못하는 나를 어떻게 헤아리려나. 두 아이와 복닥이며 살아가다 보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감싸려나. 두 아이와 복닥이며 살아가면서 용케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주제에 쪽글 한 줄 못 띄우느냐고 탓하려나.

 

 책을 선물받지만, 내가 받은 선물은 책보다 책읽기라고 느낀다. 우리 집 책시렁을 거쳐 우리 식구가 꾸리는 시골도서관 책꽂이에 자리잡을 책을 선물받았다기보다, 마음으로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사랑을 아로새길 책읽기를 선물받았다고 느낀다.

 

 나는 누군가한테 책을 선물하는 사람일까, 책읽기를 선물하는 사람일까. 나는 값진 책을 선물하는 사람일까, 사랑스러운 이야기 담아 책읽기를 선물하는 사람일까. (4344.12.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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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기 사는 마음

 


 추운 겨울날 비닐집에서 딸기를 기르는 흙일꾼이 있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딸기를 사다 먹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따뜻한 집안에서 딸기씨나 딸기모를 심어 기르면 집에서 기르는 딸기를 먹을 수 있겠지요. 배불리 먹을 만큼 기르지는 못하더라도 집에서 길러 겨울날 먹는 겨울딸기는 남다르리라 느낍니다.

 

 서울마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읍내 가게에 들르는데 딸기 한 소쿠리 보입니다. 값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오늘(12월 7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니, 집에서 꾸릴 밥상에 딸기를 올릴까?’ 하고 생각합니다. 딸기 한 소쿠리를 장만하면서 얼마 앞서 면내 빵집 아주머니가 들려준 말을 떠올립니다. 곧 봄을 맞이하면 온 들판에 멧딸기가 가득해서 마을 할머니들이 딸기잼을 만들어 먹는다고.

 

 네 식구 살아가는 우리 마을 언저리 들판이나 멧자락에도 멧딸기가 나겠지요. 네 식구 봄맞이를 할 때에 이곳저곳에서 스스로 나서 스스로 해바라기를 하는 고운 멧딸기를 신나게 맛볼 수 있겠지요. 아마 우리 네 식구는 딸기잼을 만들 수 없을 테고, 왜냐하면 입에 넣느라 바쁠 테니까요, 둘째도 그무렵에는 딸기맛을 보리라 생각합니다.

 

 따스한 봄바람을 기다리는 겨울입니다. 따뜻한 봄햇살을 꿈꾸는 겨울입니다. 봄은 여름을 기다리고, 여름은 가을을 꿈꾸며, 가을은 겨울을 손꼽다가는, 겨울은 봄을 이야기합니다. (4344.12.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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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64) 블루버드(bluebird)

 

.. 케럴과 그녀의 남편은 블루버드를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  《커트 보네커트/김한영 옮김-나라 없는 사람》(문학동네,2007) 63쪽

 

 “캐럴과 그녀의 남편은”은 “캐럴과 그 사람 남편은”이나 “캐럴과 그이 남편은”이나 “캐럴네 부부는”이나 “캐럴과 옆지기는”이나 “캐럴네 집은”이나 “캐럴네 식구는”으로 다듬습니다. ‘노력(努力)했다’는 ‘애썼다’로 손질합니다.

 

 블루버드 : x
 bluebird : 파랑새

 

 미국문학을 한국말로 옮긴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랍니다. 따로 묶음표를 치지 않고 ‘블루버드’라고 적은 대목이 나왔거든요.

 

 곰곰이 생각에 젖습니다. ‘블루버드’라는 이름이 붙는 새가 따로 있으니 이렇게 옮겼을 수 있지만, 번역다운 번역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옮겼나 궁금합니다.

 

 미국사람한테는 틀림없이 ‘블루버드’입니다. 이 새는 미국에서만 살아갈는지 모르니, 미국말 그대로 ‘블루버드’로 적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문득 또 한 가지 궁금합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문학에 ‘파랑새’라는 이름을 적으면, 이 한국문학을 미국말로 옮길 때에 어떤 낱말로 옮겨야 할까요. ‘parangsae’로 옮겨야 할까요, ‘bluebird’로 옮겨야 할까요. (4344.12.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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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24) 다종의 1 : 다종의 책

 

.. 그 후 나는 다종의 책을 출간하였다 ..  《윤형두-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범우사,1997) 24쪽

 

 “그 후(後)”는 “그 뒤”나 “그 다음”이나 “그러고 난 뒤”로 다듬습니다. ‘출간(出刊)하였다’는 ‘펴냈다’나 ‘내놓았다’로 손봅니다.

 

 다종(多種) : 종류가 많음
   - 한라산에는 다종의 식물이 자생한다 / 다종의 일용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다종의 책을 출간하였다
→ 여러 가지 책을 내놓았다
→ 여러 갈래 책을 냈다
→ 온갖 책을 펴냈다
 …

 

 “종류(種類)가 많음”을 뜻하는 한자말 ‘다종’이라 하는데, ‘종류’란 한국말로 ‘갈래’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한국말로 이야기한다면 ‘종류’이든 ‘다종’이든 애써 쓸 까닭이 없지만, 예나 오늘날이나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한국말을 글에 담지 않습니다.

 

 “갈래가 많음”이란 “여러 갈래”라는 뜻입니다. 여러 갈래 책이라 한다면 “온갖 책”이거나 “여러 책”이라는 뜻이에요. 글뜻 그대로 “여러 갈래 책”이라 할 수 있고 “온갖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온갖 갈래 책”이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다종의 식물이 자생한다
→ 온갖 식물이 자란다
→ 갖가지 풀과 꽃이 산다
 다종의 일용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 온갖 일용품을 생산합니다
→ 갖가지 일용품을 만듭니다
 …

 

 한 가지 한자말은 다른 한자말을 불러들입니다. 한 가지 한국말은 다른 한국말하고 사이좋게 이어집니다. 한 가지 한자말이 불러들이는 한자말은 새로운 한자말하고 잇닿습니다. 한 가지 한국말과 사이좋게 이어지는 한국말은 차근차근 온갖 한국말하고 알뜰살뜰 어깨동무합니다.

 

 올바로 말할 때에 올바른 낱말을 하나둘 엮습니다. 예쁘게 글을 쓸 때에 예쁜 낱말을 하나둘 맺습니다. 마음을 쓰는 만큼 말마디가 거듭나고, 사랑을 기울이는 만큼 글줄이 피어납니다. 좋은 말과 글이란 따로 없으나, 좋은 얼과 넋으로 좋은 말과 글이 새록새록 싱그러이 숨을 쉽니다. (4344.12.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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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 범우문고 163
윤형두 지음 / 범우사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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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란
 [책읽기 삶읽기 91] 윤형두,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범우사,1997)

 


 책을 말하는 책이 나날이 쏟아집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 첫무렵을 헤아리면, 이때에는 책을 말하는 책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는 책읽기를 그닥 즐기지 않았으니 이무렵에 책을 말하는 책이 얼마나 있었는가 알 수 없으나, 1992년부터 헌책방마실을 하며 예전 책을 더듬어 본다면, 1980년대나 1970년대에는 책을 말하는 책이 몹시 드뭅니다. 책을 소개하는 책이든 책 발자취를 다루는 책이든 책문화나 책역사 톺아보는 책이든 좀처럼 찾아볼 수 없어요.

 

 2000년대로 접어들 무렵부터 한국에도 책을 말하는 책이 제법 나타납니다. 2010년대에 가까워지고 2010년대를 넘어서면 책을 말하는 책 가운데 어린이책을 말하는 책이 퍽 늘어납니다. 가만히 보면, 어른문학을 놓고 비평하는 책은 곧잘 나왔지만, 어린이문학을 놓고 비평하는 책은 《시정신과 유희정신》(이오덕 씀)이 첫끈이라 할 만하고, 아직 이만 한 높이와 깊이를 보여주는 어린이문학 비평은 없다 할 만합니다. 어린이책을 말하는 책이라면, 《어린이와 그림책》(마츠이 다다시 씀)만 한 책이 없는데, 어린이문학을 두루 살피는 아름다운 책으로 《현대 어린이문학》(우에노 료 씀) 하나 더 있어요. 다만, 이 두 가지 책은 번역책이요, 한국사람이 읽은 한국책을 놓고 한국 어린이와 어버이한테 읽히도록 내놓은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말하는 책’은 마땅히 없구나 싶어 아쉬워요.


.. 대학에 와서는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재미도 없는 책들을 골라 읽었다. 남들이 다 사 보는 월간 《사상계》란 잡지는 거의 빠뜨리지 않고 읽었다. 또 해석할 수도 없는 《타임》, 《뉴스위크》도 사 보았다 … 그 후 나는 다종의 책을 출간하였다. 주부들이 가족의 육체를 위하여 식탁에 반찬을 갖추어 놓는다면, 나는 정신적인 식탁에 반찬을 마련해 주기 위해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  (17, 24쪽)


 출판사 범우사 큰일꾼 윤형두 님이 내놓은 조그마한 책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범우사,1997)를 읽습니다. 윤형두 님은 커다란 책도 내놓으나,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처럼 자그마한 책도 함께 내놓습니다. 출판사 큰일꾼이 당신 책삶을 다루는 책을 내놓는다 할 때에, 이렇게 조그마하고 값싼 책을 내놓은 적이 또 있을까 싶도록, 윤형두 님이 내놓는 책은 남다릅니다.

 

 윤형두 님은 당신 책에서, 책을 만들면서 느끼는 책마을 이야기를 다루고,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책삶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린 날부터 책을 가까이하며 당신 넋을 일군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이들어서까지 책을 가까이하며 책으로 얻은 열매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조금 더 홀가분하게 ‘책과 삶’, ‘책과 사람’, ‘책과 사랑’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대목은 아쉽다 할 만하지만, 이렇게 느낄 아쉬움은 젊은 뒷사람이 쓰다듬으면서 북돋우면 됩니다. 윤형두 님은 당신과 같은 나이인 어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갈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줘요. 주절주절 푸념을 늘어놓는 늙은이가 될는지, 서울 탑골공원 같은 데에 주루루 앉아 해바라기하면서 옛날이야기에 젖는 늙은이가 될는지, 관제데모행사에 경품 받으러 몰려다니는 늙은이가 될는지, 아니면 언제나 젊은 늙은이가 될는지, 언제나 일하는 늙은이가 될는지, 언제나 흙을 만지는 시골 늙은이가 될는지를 보여줍니다.


.. 어릴 때부터 활자매체인 책을 대하지 않은 사람은 커서도 신문을 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찾기보다는 리모콘을 들고 TV 앞에 가 버튼을 누르게 된다. 그런 상황을 상상해 보자. 신문은 휴지가 되고 신문사는 문을 닫게 된다. 그래서 외국 신문사는 독서운동을 끊임없이 전개하고 좋은 지면에 책광고를 할애하고 광고료는 다른 업종보다 싸게 한다. 우리 나라 신문들도 인쇄매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일간 스포츠지가 그렇게 많은데도 종합일간지가 문화 면보다 스포츠 면을 더 할애하고 있으며, 일반 연애기사보다 출판기사가 훨씬 적다는 것은 구독층의 선호에 영합하면서 인쇄매체로서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아닌가 본다 ..  (101쪽)


 인천 배다리에는 여든 넘은 나이로 헌책방 일을 붙잡는 할배가 한 분 있습니다. 한국전쟁 무렵 황해도에서 인천으로 건너와서 헌책방 일을 처음 한 뒤 이제껏 헌책방 일을 놓은 적 없는 할배는, 저녁마다 술 한잔 기울이면서 ‘살아가는 보람’을 누립니다. 다른 여느 할배는 방구석에 갇히거나 늙은이 모아 가두는 건물에 얽매이지만, 인천 배다리 헌책방 할배는 예순 해 넘는 책삶을 일구어요.

 

 다만, 헌책방 할배는 책을 읽지 못합니다. 책을 다루고 책을 팔지만 책읽기로 당신 삶을 보내지는 않습니다. 책을 못 읽기도 하지만 글을 못 쓰기도 합니다. 책을 만지면서 책을 못 읽고, 책을 다루면서 글을 못 써요. 그래서, 윤형두 님 같은 분은 적잖은 책을 써내며 여러모로 이름을 날리지만, 헌책방 할배는 적잖은 사람들한테 씨알 같은 삶말을 들려주면서도 헌책방 할배 이름을 아는 이는 아주 드물어요.

 

 아마 우체국 일꾼은 헌책방 할배 이름을 알겠지요. 이웃 헌책방 일꾼도 헌책방 할배 이름을 알 테지요. 동네에서 오래오래 늙은 이웃도 헌책방 할배 이름을 알 테고요.


.. 그러나 한국에서의 서점들이 출판물 중에서 가장 꺼리는 것이 문고본이다. 진열해 놓은 면적만큼 매상고를 올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행본 한 권을 팔면 6∼7천 원인데, 문고본 한 권에 1∼2천 원이니 문고본 서너 권을 팔아야 단행본 한 권 값인데 손도 많이 가고 한정된 구매자에게 가능하면 고가의 책을 팔아야 경영 합리화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108쪽)


 나는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를 내놓은 윤형두 할배가 좋다고 느낍니다. 나는 인천 배다리 헌책방 할배가 좋다고 느낍니다. 나는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 흙일꾼 할배와 할매 모두 좋다고 느낍니다. 옆지기와 나를 낳은 ‘하루하루 늙는 어버이’,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 할배와 할매가 참 좋다고 느낍니다.

 

 삶을 들려주는 할배는 예쁩니다. 삶을 보여주는 할매는 아름답습니다. 책이란 삶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책은 아름다이 살아온 나날을 찬찬히 그러모으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지식을 담을 때에는 책이 아니라 지식꾸러미입니다. 정보를 실을 때에는 책이 아니라 정보꾸러미입니다.

 

 책은 오직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책은 언제나 삶꾸러미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책은 베스트셀러도 아니요 스테디셀러도 아닙니다. 추천도서나 명작도서 또한 책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아요. 삶을 담은 이야기보따리요, 사랑을 싣는 이야기꾸러미이면서, 사람을 드러내는 이야기꿈만 책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4344.12.13.불.ㅎㄲㅅㄱ)


―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 (윤형두 글,범우사 펴냄,1997.12.20./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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