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12.1.
 : 추워도 잘 자는 아이

 


- 새로 받은 수레를 자전거에 달았다. 새 수레를 단 느낌을 기쁘게 맛보고 싶어 자전거를 달린다. 늘 따스하다가 모처럼 찬바람이 분다. 아이는 수레에서 춥지 않을까 걱정스럽지만, 충청북도 멧골집에서는 훨씬 추울 때에도 장보기 하러 다니곤 했으니, 이만 한 추위라면 뭐.

 

- 자전거수레를 바깥으로 빼려고 대문을 연다. 대문은 다 안 열린다. 마당에 시멘트로 북돋우면서 대문이 다 안 열리게 된 듯하다. 내가 마당 시멘트를 바르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 시멘트를 다 까야 하나. 아이가 대문을 잡아 준다. 고맙다.

 

- 면내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무렵, 아이가 크게 하품을 한다. 뒷거울로 하품 하는 모습을 보다가는 까무룩 잠드는 모습을 본다. 집에서 놀 때에는 낮잠을 안 자더니, 이렇게 자전거마실을 하면 어김없이 낮잠을 자는구나.

 

- 낮잠을 자는 아이가 스르르 미끄러진다. 자리끈을 살짝 느슨하게 했더니, 코코 자는 아이가 스르르 미끄러지며 아이한테 씌운 옷 속으로 파묻힌다. 어쩌면 잘 된 셈이지. 바람을 덜 쐬며 집으로 돌아오니까. 마당으로 자전거를 들이며 돌아보니 아예 보이지 않는다. 사진 한 장을 더 찍는다.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인다. 신을 벗기고 이불을 여민다. 아이는 한참 달게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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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11.27.
 : 부탄가스 사러 가기

 


- 집에서 쓰는 가스가 다 떨어진다. 일요일 아침. 면내 가스집에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부탄가스로 국을 마저 끓이기로 한다. 그나마 밥을 다 할 때까지 가스가 나왔다. 해가 질 무렵 면내에 다녀오기로 한다. 남은 부탄가스가 얼마나 될는지 모르니까 미리 사 놓기로 한다. 아이는 집에 있으라 하고, 나 혼자 수레를 뗀 홀가분한 자전거로 달린다. 2.1킬로미터를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나 싱싱 발판을 밟는다. 딱 4분. 쉬잖고 발판을 힘껏 밟으니 4분 만에 닿는다. 참 가깝기도 해라. 가게에서 부탄가스를 산다. 가스집에 들러 이듬날 아침에 가스통 하나 갖다 달라 이야기한다. 전화는 안 받지만 마을 구멍가게 노릇을 함께하는 가스집은 문이 열렸다. 문은 열면서 일부러 전화만 안 받으셨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천천히 달린다. 따스한 저녁바람을 쐰다. 남녘땅 시골마을 저녁바람은 차갑지 않다. 천천히 저녁바람 느끼면서 달리며 여러 마을에서 피어나는 불줄기를 바라본다. 아, 저녁이라 쓰레기 태우느라 불을 피우는구나. 어둠은 까맣게 내리고, 별빛이 차츰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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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11.25.
 : 바지끈 묶기

 


- 찬바람이 부는 날에는 긴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몬다. 대문을 활짝 열고 자전거수레를 밖에 두고 자전거에 올라탈 무렵, 아차 하고 깨닫는다. 바지 다리끈을 묶어야지. 집으로 들어와 끈으로 한쪽 다리를 묶는다. 우체국에 보낼 소포꾸러미는 아이가 앉은 수레 앞쪽에 놓는다. 아이는 두 발을 쭉 뻗고 앉는다.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이지만, 이 바람이 좋다. 이 바람을 아이와 함께 쐴 수 있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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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 목소리 담은 책은 늘 너무 자그마한 목소리인 이 나라에서, 이러한 책을 꾸준히 내는 삶이보이는창 출판사가 대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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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그러나 남아 있는 Camera Work 16
강운구 사진 / 한미사진미술관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사라지지 않을 사진이란
 [찾아 읽는 사진책 72] 강운구·김기찬·이갑철, 《사라진 그러나 남아 있는》(한미사진미술관,2011)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반화와 빈번한 국제교류전은 한국사진의 패러다임을 다양하게 변모시켰고, 30∼40대 작가들로 하여금 사진의 세계적 추세들을 재빨리 수용케 했다. 특히 영화적 연출 혹은 설치작업에 기반을 둔 사진작업은 그들의 지속적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리고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작가들이 디지털 사진의 열기에 동참하며 창조적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그 결과 미술과 사진의 경계는 사라지고, 조작된 허구와 사진의 실재론은 그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희미해졌다(머리말).”는 이야기로 머리말을 여는 《사라진 그러나 남아 있는》(한미사진미술관,2011)이라는 얇은 사진책을 읽습니다. 머리말은 “사진예술의 세계적 추세에 합류하는 한국사진의 열기 속에서 흑백 은염사진, 다큐멘터리에 기반을 둔 한국 모더니즘 사진의 위상은 양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사진적 성과는 전혀 빛을 잃지 않았다(머리말).”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머리말이 아니라 하더라도 2010년대로 넘어서는 한국땅 사진은 하나같이 ‘설치예술’ 모습을 보여줍니다. ‘연출사진’이나 ‘설치사진’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아요. ‘연출예술’이나 ‘설치예술’이라는 이름이 걸맞습니다.

 

 오늘날 한국사진이라는 이름이 붙는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사진기를 쓰고 사진으로 뽑는다 해서 모두 사진이라 할 만한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연필을 손에 쥐어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내가 연필을 손에 쥐어 쓰는 글은 말 그대로 글입니다. 이 글은 제품설명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문학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사진비평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사진을 빛내는 사진말이 될 수 있어요.

 

 나는 연필을 손에 쥐었기에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내가 연필을 손에 쥐어 그리는 그름은 말 그대로 그림입니다. 가벼운 밑그림이 될 수 있습니다. 신나는 만화가 될 수 있습니다. 살가운 얼굴그림이 될 수 있습니다. 투박하지만,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가 그리듯 연필 하나로 이루는 무지개빛 그림이 될 수 있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디수많은 온누리 사진쟁이는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어 말 그대로 사진을 하는 사람이 있고, 사진기를 빌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으며, 사진기를 써서 예술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필을 손에 들고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사진을 빚듯, 사진기를 손에 들고는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며 글도 씁니다. 사진 한 장은 글이 되기도 합니다.

 

 조그마한 사진책 《사라진 그러나 남아 있는》을 읽습니다. 강운구, 김기찬, 이갑철 세 분 사진을 몇 장씩 그러모은 자그마한 사진책을 읽습니다. 이 사진책에 깃든 사진은 앞으로 사라지지 않을 모습이 될까요. 이 사진책에 담긴 사진은 앞으로 잊히지 않을 이야기가 될까요.

 

 사라지지 않을 이야기가 되면 값지다 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사라지는 이야기가 되면 값없다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사라진다 할 때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사라지는 이야기라 할까요. 사라지지 않는다 할 때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안 사라지는 이야기라 하나요.

 

 평론가가 잊으면 사라지나요. 대중이나 군중이 잊으면 사라지나요. 사진역사에 아로새기지 못하고, 사진문화를 들먹일 때에 나타나지 못하면 사라지나요.

 

 갤러리나 전시관이나 박물관에 걸리면 사라지지 않을 사진이라 할까 모르겠습니다. 시골마을 작은 집 작은 방에 걸리면 사라지는 사진이라 할까 모르겠습니다.

 

 필름으로 찍었든 디지털로 찍었든, 꼭 한 장만 종이로 뽑아 방문 위쪽에 붙인 ‘내 아이 돌 사진’은 처음부터 드러나지 못하거나 알려지지 못했기에 사진이라 하기 어려운지 궁금합니다. 다큐멘터리라 해서 필름으로 찍으란 법이 없을 뿐 아니라, 흑백필름으로 쓰라는 법이 없습니다. 패션사진이라 해서 값비싼 중형디지털사진기를 써야 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입니다. 그림은 그예 그림입니다. 글은 그대로 글입니다. 백만 사람이 읽어야 잊히지 않는 글이 아닙니다. 십만 사람이 보아야 잊히지 않는 그림이 아니에요. 만도 천도 아닌 백 사람이 보았대서, 아니 열이나 한두 사람이 보았대서 잊힐 만한 사진이지 않아요.

 

 가슴으로 읽히기에 오래도록 건사하는 글입니다. 300권 가까스로 찍어 50권 겨우 팔았다지만, 이 가운데 꼭 열 사람 가슴에 아로새겼다면, 이만 한 글이라 하더라도 사람들 가슴에 언제까지나 곱게 이어집니다.

 

 강운구, 김기찬, 이갑철 세 분이 빚은 사진으로 엮은 《사라진 그러나 남아 있는》은 사라진 모습을 담지 않습니다. 남은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모습이 남고 이야기가 사라졌을는지 모릅니다. 모습도 이야기도 자취를 감추었는지 모릅니다. 모습이랑 이야기랑 싱그러이 살아숨쉴는지 몰라요.

 

 어느 쪽이든 좋아요. 이 사진을 두루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흐뭇합니다. 이 사진을 오래 아끼는 사람들이 있으면 기쁩니다. 사진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찍고,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4344.12.13.불.ㅎㄲㅅㄱ)


― 사라진 그러나 남아 있는 (강운구·김기찬·이갑철 사진,한미사진미술관 펴냄,2011.7.28./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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