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김수남 사진굿
김수남 사진, 고운기.양진.백지순 글과 사진 정리 / 현암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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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삶을 걸쳐 사랑하기에 사진으로 찍는다
 [찾아 읽는 사진책 75] 김수남, 《魂, 김수남 사진굿》(현암사,2007)

 


 고등학생이던 때 《한국의 굿》(열화당)이라는 사진책 스무 가지를 처음 보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러한 책이 있는 줄 이야기하지 않았고, 읽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이 나라에서는 굿을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더러, 벌써 사라지고 없는 푸닥거리로 여길 뿐입니다.

 

 그무렵 인천에서는 황해도 굿을 해마다 벌이는 자리가 있었다고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든 동네에서든 굿구경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한국 문화를 가르치든 한국 사회를 들려주든, 우리 겨레 굿이 무엇이고 어떻게 펼쳐지며 왜 하는가를 밝히거나 알려주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1992∼1993년, 나한테는 고등학교 2∼3학년이던 때에 인천에 있는 일곱 군데 도서관을 요일에 맞추어 찾아가며 열람실을 뒤집니다. 《한국의 굿》이라는 책이 있나 헤아립니다. 스무 권을 다 갖춘 도서관은 아예 없고, 그나마 한두 권조차 없는 데마저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찾아서 읽지 못하는데, 부평에 있던 헌책방에서 《한국의 굿》을 대여섯 권쯤 만납니다. 나중에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에서도 여러 권 만납니다. 동인천에 있는 새책방 대한서림과 동인서관에서 이 책을 한 권이라도 보았던가 가물가물합니다. 부평에 있던 새책방 한겨레문고에는 이 책이 있었는지 갸웃갸웃 잘 모르겠습니다. 고등학생은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없고 새책방에서 찾을 수 없는 책은 헌책방에서 살펴야 하는구나.’

 

 대학생이 되어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갑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장 많이 들어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가운데 굿을 알거나 보거나 생각하거나 들은 동무는 없습니다. 선배도 후배도 똑같습니다. 나는 내 고등학생 때 하나둘 그러모은 《한국의 굿》을 가방에 짊어지고 대학교로 가서 동무와 선후배한테 이 책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대학생쯤 된다면 한국 문화 한 가지쯤 옳게 알아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말을 붙이며 책을 빌려줍니다.

 

 책을 빌려준다기보다 읽으라고 밀어붙이는 셈이었구나 싶은데, 옳게 다 읽고 돌려준 사람은 드뭅니다. 사진만 스윽 넘기고는 뒤에 붙은 글은 읽지 않기 일쑤입니다.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 나 혼자 멀디먼 전철길에 책을 되읽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철을 타고 자가용을 타며 비행기를 타는 오늘날 한국사람한테는 《한국의 굿》은 영문을 알 수 없고 뜻을 짚을 수 없는 머나먼 ‘미개 나라’ 이야기입니다. ‘문명 나라’ 사람으로서는 가끔 방송을 타는 다큐멘터리 흉내를 낸 모습을 들여다보면 되지, 굳이 책으로까지 읽으며 머리에 담을 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쟁이 김수남 님이 흙으로 돌아간 다음 나온 사진책 《魂, 김수남 사진굿》(현암사,2007)을 읽습니다. 여러모로 마음을 많이 써서 엮은 책이로구나 싶지만, 글이나 사진이 좀처럼 환하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편집이 퍽 어수선합니다. 글도 사진도 한눈에 확 사로잡도록 엮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이래 가지고 한국 문화와 사회에는 거의 눈길을 안 두는 오늘날 사람들을 이 책에 어떻게 끌어들일까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김수남 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 무당이 놀라운 춤사위를 벌이는 그림도 많으나, 애틋하게 눈물겨운 그림도 많습니다. 어여삐 빛나는 그림도 많으며, 눈부신 무지개 그림도 많아요. 김수남 님 사진책은 으레 겉그림이나 대표작으로 흑백사진만 내세우곤 하는데, 《魂, 김수남 사진굿》에도 실린 어여삐 빛나는 무지개빛 사진을 겉에 곱게 깔면서 보드랍고 따사로이 이야기를 펼치는 엮음새로 책을 냈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김수남 님 사진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은 좀 덜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호감을 가진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13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김수남 님 스스로 좋아해서 사진을 찍고, 김수남 님한테 사진을 찍힌 이들 또한 스스로 좋아서 사진으로 찍힙니다.

 

 뭐 대단하다 싶은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 아니에요. 한국 문화와 사회 가운데 한 가지를 붙잡아 담은 사진이에요. 한국 문화와 사회 가운데 김수남 님이 좋아하며 사랑할 만한 이야기 하나를 바라본 사진이에요.

 

 김수남 님은 한국 굿에서 외국 굿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1980년대에 굿 사진을 찍고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어찌할 수 없는 모습이었을 텐데요, 김수남 님이 사진으로 담는 한국 문화를 ‘굿’ 다음으로 ‘밥’이나 ‘밭’이나 ‘길’이나 ‘옷’으로 삼았다면, 아마 이때에는 밥굶기 딱 좋았으리라 봅니다. 요즈음도 한국 굿뿐 아니라 한국 밥과 한국 밭과 한국 길과 한국 옷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는 누군가 있다면, 그야말로 밥굶기를 다짐하면서 사진길을 걷겠지요. 그래서 오늘날 사진쟁이 가운데 어느 누구도 여느 사람들 밥먹기와 밭일과 길(골목길·고샅길·논둑길·멧길·바닷길·들길)과 옷차림을 찬찬히 담아내지 않아요. 모두들 그럴듯한 그림이나 돈벌이 되는 사진으로만 흘러요.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다행히 내 카메라는 의식들을 안 하는 편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미리 가는 것이다. 한 지역에 뭔가가 있다고 하면 미리 간다(46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함께 어우러질 만큼 좋아하는 사람하고 부대끼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행사가 펼쳐진 때’에만 뚝딱 사진을 찍고 떠나지 않습니다. 일찌감치 찾아와서 노닥거립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퍼질러 앉아서 노래하며 놉니다.

 

 혼인잔치 사진을 찍는 사람은 20분쯤 앞서부터 신부대기실을 찍고 신랑신부 행진과 주례 같은 모습을 찍겠지요. 그러나 짧은 행사를 마치고 밥을 먹을 즈음 장비를 챙겨 돌아갑니다. 혼인잔치 ‘행사’를 찍는 사진관 일꾼이 아닌, 혼인잔치 ‘잔칫날 좋은 일’을 기리려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혼인잔치를 앞두고도 찾아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잔칫날에는 일찍부터 자리를 잡을 테며, 잔치가 다 끝나고 나서도 오래도록 머물며 서로 기뻐해 주겠지요.

 

 사진만 따로 있는 일은 없습니다. 삶과 함께 사진입니다. 사진만 동떨어져 작품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삶과 함께 얼크러지면서 사진이야기 일굽니다.

 

 “외국 작가는 돈 주고 데려오면서 왜 한국 작가들에게는 그저 개인의 희생만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52∼53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전국에 있는 문화재단이라든지 문화체육관광부라든지 공공기관이라든지 대학교라든지 기업이라든지, 바로 오늘 우리 삶을 아끼며 사랑하는 손길로 우리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글·그림·만화·사진·춤·노래·연극·영화 들로 담아낼 수 있으며 즐겁습니다.

 

 볍씨 한 알에 싹을 틔워 싱그러이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운 다음 이삭이 패는 흐름을 곱게 사진으로 담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담는 사람을 뒷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수수한 여느 일을 사진으로 담는 눈물과 웃음이 얼마나 보람차면서 사랑스러운가를 느끼는 뒷배를 해야 합니다. 바느질과 뜨개질을 비롯해 재봉틀질을 하는 모든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야 해요. 밥하기와 설거지를 사진으로 빚을 수 있어야 해요. 손빨래이든 기계빨래이든 사진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해요.

 

 “사진 하면 아트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지만, 사실은 기록성이 사진의 본질 아니겠습니까. 나는 사진이 예술뿐 아니라 역사라든가 사회 가운데에 무언가를 남겨야 하고, 그렇게 해서 자기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104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사진기로 예술을 하는 사람은 ‘사진기로 적바림(기록)’하면서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니 무어니 하기 앞서 예술작품으로 선보이는 사진작품은 ‘적바림하는 사진’이어야 해요. 적바림하지 않고서는 예술도 문화도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적바림하지 않을 때에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적바림하는 대목’만 뽑아내어 예술작품으로 빚는다 하면, 그야말로 예술일 뿐 사진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연필이나 붓을 놀려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라 하지 글이라 하지 않아요. 글자를 그리더라도 그림이 되지 이야기 담긴 글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기로 무언가를 찍었대서 모두 사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연필로 만화를 그리며 풍선에 말을 적었어도 그저 만화이지 글이라 하지 않아요. 오늘날 숱한 만듦사진은 예술 테두리에 넣어야지, 만듦사진을 사진으로 다룰 수 없어요.

 

 “20년 전의 사진을 들고 간 나에게 그리 오래 자신을 찍은 사진을 소중히 생각해 줘서 고맙고 또 고맙다고 눈물을 흘린다(201쪽).”고 말하는 이야기를 곱씹습니다. “먼 훗날 자신들의 문화를 얘기해야 할 때 나의 사진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말을 현지 지식인들로부터 들을 때마다 나는 슬픔을 느낀다. 우리들의 옛 모습을 서양사람들이 찍은 것이 많아서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문화를 사랑하고 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가슴, 남의 것이 훌륭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그 가슴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277쪽).”고 말하는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안타깝다 할 수 있고 슬프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김수남 님은 사진으로 담았는걸요. 나라밖 누군가는 김수남 님이 애써 사진으로 찍어 주어 고마운걸요. 우리도 이 나라로 찾아온 누군가 찍어 준 사진이 있어 고마워요.

 

 어떤 외국사람은 한국 삶자락 담은 사진을 비싼값에 팔 테지만, 퍽 많은 외국사람은 돈 한 푼 안 받고 당신이 찍은 사진을 모두 선물합니다.

 

 외국사람이 바라보는 한국 모습이라 해서 ‘한국 모습이 아니’지 않아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 모습이라 해서 ‘한국 모습을 옳고 바르며 참답고 착하게 담았’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사랑하는 사람이 글을 쓰며, 사랑하는 사람이 그림을 그려요.

 

 굿을 사랑할 수 있던 사람이 굿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흙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흙일꾼 한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패션모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패션사진을 빚겠지요.

 

 다만, 요사이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한동안 붙잡는 ‘사진 찍힐 대상’으로만 바라보면서 지나가고 마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한 번 사랑하고 끝날’ 이음고리가 아닌데, 온삶을 걸쳐 고이 만남끈을 잇지 않곤 해요. 새로운 소재나 새로운 주제는 없어도 돼요. 사진길을 걷는 사람한테는 오직 온마음 바쳐 사랑할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면 넉넉하면서 따뜻해요. (4345.1.3.불.ㅎㄲㅅㄱ)


― 魂, 김수남 사진굿 (김수남 글·사진,고운기·양진·백지순 풀이글·정리,현암사 펴냄,2007.2.5./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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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아옌데 새책이라니. 이 놀라운 책이 있구나. 그러나, 언제나처럼 번역은 믿을 수 없어. 책을 아직 사지도 않았으면서 번역은 안 믿으며 내 마음으로 그곳 그때 그 사람 말씨와 넋을 돌아보며 읽으려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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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이 기적이다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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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똥빨래

 


 새벽 세 시 이십 분. 둘째 갓난쟁이가 똥을 푸지게 눈다. 밤 새벽 내내 칭얼거리며 옳게 잠을 못 드는 아이가 똥을 오지게 눈다. 밤 열두 시 조금 넘어 일어나 엊저녁 밀린 오줌기저귀 빨래 석 장이랑 똥기저귀 빨래 석 장을 해치운 아버지는 새벽 세 시에 똥기저귀 한 벌(기저귀 하나, 기저귀싸개 하나, 바지 하나)을 다시금 해치운다. 새해 첫날 엊저녁 일찌감치 몸이 힘들어 자리에 누운 보람인가. 일찍 잠자리에 들어 밤 열두 시에 깨어났기에 이렇게 밀린 빨래를 하고 밤에 똥을 실컷 눈 아이 뒤치닥거리를 할 수 있는가.

 

 둘째 밤똥빨래는 오랜만이라고 느낀다. 둘째며 첫째며, 여기에 옆지기에다가 나까지, 네 식구가 몸이 영 시원찮다. 나는 시원찮은 몸으로 집일 이것저것 돌본다. 이것저것 돌보다 보면 이내 지쳐, 밥을 먹고 나서 곧바로 드러눕고야 만다. 드러누워 한 시간쯤 허리를 펴면 다시금 이것저것 일손을 붙잡는다. 그런데, 몸이 힘들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꾸 골을 부린다. 아이한테 골을 낸다. 내 몸이 아이들 칭얼거림이나 투정을 받아주기 어렵다 할 만큼 참으로 삐걱거리기 때문일까. 삐걱거리는 몸뚱이로도 얼마든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아니, 삐걱거리는 몸뚱이인 만큼 한결 따사로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둘째가 왕창 눈 똥에는 땅콩 반 알이 섞인다. 너 언제 땅콩을 주워먹었니. 용하게 이 녀석이 똥과 함께 나와 주었구나. 이제 속이 조금 시원하니. 네 똥기저귀를 빨며, 네 아버지가 이틀째 똥을 못 눈 채 보냈다고 느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침에 네 손발톱을 깎으면서 아버지 손발톱은 아직 몇 주째 못 깎는구나. (4345.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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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인사 글쓰기

 


 이웃과 동무가 손전화 쪽글로 새해인사를 띄운다. 나는 어느 누구한테도 먼저 새해인사를 띄우지 못했다. 아니, 새해라고 느낄 겨를이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 내 어버이한테도 옆지기 어버이한테도 전화를 걸지 못했다. 이곳저곳 인사할 어른이 있으나 아무한테도 인사를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마을 어른한테조차 인사를 다니지 못하고, 오늘은 아침과 낮에 서너 시간 즈음 자리에 드러누워 보냈다.

 

 날마다 어김없이 맞이하는 삶이라고 여기기에 딱히 새해 첫날이든 태어난 날이든 무슨무슨 날이든 더 기리거나 헤아리지 않으며 살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퍽 어린 나날부터 나 태어난 날이든 무슨무슨 날이든 그닥 기리거나 헤아리지 않았다고 느낀다.

 

 내 어버이 두 분부터 무슨무슨 날이라 해서 옳게 기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명절이나 제사가 닥치면 여러 날 설밥이며 한가위밥이며 제사밥이며 장만하느라 허리가 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고 심부름을 했기 때문일까.

 

 살아가는 즐거움이나 보람 하나를 오래도록 놓거나 놓친 채 한 해 두 해 보내며 서른여덟을 맞이했는지 모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들한테 살아가는 즐거움이나 보람을 옳게 물려주지 못하는지 모른다. 아버지 몸이 고단하다는 빌미를 들어, 이 아이들이 조금 더 넓거나 깊게 이웃과 동무를 사귀면서 인사하는 매무새를 들이도록 이끌지 못한다 할 수 있다.

 

 새해인사를 하자면 몸부터 튼튼하고 씩씩해야 하는구나. 새해인사를 하자면 하루하루 새롭게 되새기며 고마이 여길 줄 알아야 하는구나. 새해인사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날마다 기쁜 빛과 사랑을 한가득 누리는 사람이구나. (4345.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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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1-05 03:24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바람입니다.
된장님 글 보다보면, 너무 짜안할 때가 많단 말이예요.
제발 건강하시고,,, 손빨래도 좋지만, 너무 고되어 보이신단 말이예요.
그러니 털털이 세탁기라도 좀 장만하셔요.
문풍지랑 창호지 붙이다 몸살나시고, 지난번에는 집보러 다니시고 몸살나시고. ㅠㅠ

저두 걱정하는데, 옆지기님과 어린 딸은 얼마나 앞으로 걱정하시겠어요!
새해에는 된장님 가족 모두 슈퍼맨처럼 튼튼하시기 바랍니다. ^^

파란놀 2012-01-05 08:22   좋아요 0 | URL
튼튼하고 씩씩하며 즐거이 잘 살아야지요.
ㅜ.ㅡ

고맙습니다~~
 
너에게 닿기를 3
시이나 카루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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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빛날 나날
 [만화책 즐겨읽기 93] 시이나 카루호, 《너에게 닿기를 (3)》

 


 아이들은 앞으로 빛날 목숨이겠지요. 나 또한 어린 나날을 보낼 때에 내 어버이가 나를 바라보며 앞으로 빛날 목숨으로 여겨 곱게 보살피셨기에 두 아이를 함께 낳아 살아갈 수 있겠지요.

 

 아이들은 틀림없이 앞으로 빛날 목숨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앞으로뿐 아니라 바로 오늘도 빛나는 목숨입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빛나면서 앞으로 새롭게 빛날 목숨이에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은 한창 빛나는 목숨입니다. 그리고, 한 살 열 살 나이를 먹어 늙은 몸이 될 때에는, 이처럼 늙은 몸뚱이가 되면서 빛나는 목숨이에요. 어느 누구도 섣불리 겪거나 누릴 수 없는 늙은 빛줄기를 뽐내는 목숨이 돼요.


- “난 형제가 없는데, 부럽다.” “넌, 그 말이 걸려?” ‘웃음소리. 복닥복닥한 방. 너무 좋아하는 친구들. 내가, 같이 있어도 되는 거지?’ (14∼15쪽)
- “모, 모두 같이 웃고 떠들고 엄청 재밌거든. 너도 있으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자전거 타고 날아갈게. 기다려!” (19쪽)


 아이들한테 어린 나날은 한 번뿐입니다. 푸름이한테 푸른 나날은 한 번뿐입니다. 젊은이한테 젊은 나날이란 한 번뿐입니다. 여기에, 나이든 사람들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이라는 나이 또한 한 번뿐이에요.

 

 열다섯 살 아름다운 나이가 되듯 스물다섯과 마흔다섯과 일흔다섯은 참으로 아름다운 오직 한 번 있는 나이입니다. 언제나 한 번 누릴 수 있는 나이요, 한 번 보내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날이에요.


- ‘내가 모르는 카제하야다. 어떤 중학생이었을까? 연습 많이 하는 연습벌레였을까?’ “한번 보고 싶다.” “아, 이제 곧 체육대회잖아! 아마 카제하야 소프트볼 경깅 나갈걸?” “아 맞다.” ‘그렇구나. 난, 앞으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야! 이제부턴. 모두와 사진을 찍어서 남기기도 하고 수많은 일을 함께할 수 있어!’ (21∼22쪽)
- “오늘 정말 재밌었어.” “그래, 재밌었어.” “앞으로도 이런 날은 아주아주 많을 거야!” “응!” ‘친구들과 함께한 토요일 밤은 내 자신이 거기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모두가 함께 웃는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37∼38쪽)


 나는 언제부터 내 나이를 느꼈는지 잘 모릅니다. 아주 어린 나날부터 내 나이를 생각하며 살았는지, 나이를 제법 먹은 뒤 내 나이를 곱씹었는지 잘 모릅니다.

 

 그저 내가 떠올리기로는, 퍽 어리던 국민학생 때에도 ‘내 올해는 오직 한 번’이라고 여겼어요. 아쉬울 일을 남기지 말자고 여겼어요. 마음껏 놀고 신나게 뛰며 즐거이 어울렸어요.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요. 어디에서 읽었을까요. 집에서 보던 텔레비전으로 듣고 알았을까요.

 

 아마 나는 무척 신나게 뛰노는 한편 홀로 고요히 생각에 잠기던 때도 꽤 있었으리라 느낍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건 학교로 가는 길이건 으레 혼자서 걸었어요. 우리 동네에는 우리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참 많았으나 다들 두 정류장 길을 버스 타며 다녔어요. 나는 두 정류장 길을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덥건 춥건 그냥 걸었어요. 날씨를 느끼고 철을 받아들이면서 걸었어요.

 

 안개 낀 날은 안개가 끼어 좋습니다. 바람이 몰아치는 날은 바람이 몰아쳐서 좋아요. 햇볕 쨍쨍 쬐는 날에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니 좋아요.

 

 거의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혼자 걸으며 내 하루를 돌아봅니다. 거의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길을 홀로 거닐며 내 오늘을 되새깁니다. 집이나 학교나 동네에서는 개구쟁이 노릇이지만, 이렇게 하루에 두 차례 혼자 보내는 겨를을 누리면서 내 나이 내 삶 내 길 내 앞날 내 꿈 내 사랑을 돌아볼 수 있었구나 싶어요.


- ‘긴장했다! 방금 진짜로 긴장했었어! 그나저나 요즘 계속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 (111쪽)
- ‘쿠루미가 너무 예뻐서 부러웠고, 그래서 나도 예뻐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120쪽)


 나는 중학생이던 나날 세 해를 거의 떠올리지 못합니다. 나는 중학생이던 나날을 내 머리와 마음에서 지우기로 생각하며 세 해를 보냈습니다. 너무 끔찍하고 모질며 슬픈 나이가 중학생이라고 느껴, 이러한 곳에서 세 해를 썩힌다는 일이 괴롭고 아팠습니다. 열넷 열다섯 열여섯이라는 나이라지만, 나한테 열넷도 열다섯도 열여섯도 거의 어떠한 일도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드문드문 떠올리는 일은 있으나, 나한테 중학생은 ‘예비 입시 고등학생’으로 이름표가 붙는 나이였어요. 내 둘레 어디에서도 예쁜 열네 살이라든지 어여쁜 열다섯 살이라든지 아름다운 열여섯 살이라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어요.

 

 상업잡지라 하지만, 《하이틴》이라든지 《주니어》라든지 하는 잡지에서 열넷∼열여섯을 살짝살짝 곱다시 보여주곤 했어요. 김수정 님이 빚은 만화 《홍실이》나 《자투리반의 덧니들》이나 《소금자 블루스》나 《오달자의 봄》에서 겨우겨우 빛나는 푸른 이야기를 살필 수 있었어요.

 

 우리 집 두 아이가 열네 살이 되면, 열다섯 살을 보내면, 열여섯 살을 맞이하면, 이때에도 우리 아이들은 아무런 빛도 꿈도 사랑도 이야기도 실타래도 이루지 못하면서 제 푸른 나날을 잊으려 해야 할까요. 우리 아이들 또래 동무들은 중학교라는 데에서 무슨 빛을 볼 수 있고 무슨 빛을 누릴 수 있으며 무슨 빛을 펼칠 수 있나요.


- ‘그렇구나. 카제하야도 긴장을 하는구나. 카제하야도 똑같은 생각을 하기도 하나 봐.’ (162∼163쪽)
- ‘카제하야한테 특별한 사람이 생긴다고? 그걸 내가 돕는 거야?’ “윽, 미안해. 아무래도 난 안 될 것 같아! 나한텐 도저히 무리야!” (176∼180쪽)


 시이나 카루호 님 만화책 《너에게 닿기를》(대원씨아이,2007) 3권을 읽습니다. 바로 어제까지, 아니 바로 오늘까지도 빛날 일이 없던 아이들이라 하지만, 이제부터 예쁘게 빛나면 되는 나날이라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래요. 중학교를 다니며 빛을 보지 못했다면, 중학교를 마치면서 빛을 보면 돼요. 고등학교를 마치는 때까지 또 빛을 못 보고 만다면,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빛을 보면 돼요. 대학교에 간다든지 회사살이를 해야 한다든지, 또 뭐를 해야 한다면서 빛을 보기 힘들다면, 이러저러한 굴레와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나서 빛을 보면 되겠지요.

 

 앞으로 빛날 삶이니까요. 가만히 보면, 이제까지 곱게 빛나는 삶이었으나 둘레에서 어느 누구도 이 빛을 느끼거나 깨닫거나 아끼지 못했을 뿐이니까요. 맑게 빛나는 푸른 꿈이지만, 이토록 빛나는 푸른 꿈을 둘레에서 감추거나 숨기거나 가린 나머지, 나 스스로 못 느끼거나 못 깨달았을 뿐이니까요.

 

 아이들은 누구나 예쁘기 때문에, 아이들이 빚는 사랑은 예쁩니다. 어른이 된 사람도 누구나 예쁘니, 어른이 된 사람들이 이루려는 사랑 또한 예쁩니다. 예쁘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요. 예쁘지 않은 꽃이나 예쁘지 않은 나무나 예쁘지 않은 풀이나 예쁘지 않은 햇살이 있던가요. (4345.1.2.달.ㅎㄲㅅㄱ)


― 너에게 닿기를 3 (시이나 카루호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7.11.1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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