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
호원숙 지음 / 샘터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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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은 삶에서 태어납니다
 [책읽기 삶읽기 99] 호원숙,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샘터,2006)

 


 나는 두 아이한테 어버이입니다. 나는 두 어버이한테 아이입니다. 나는 두 아이가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나서 착하고 어여삐 살아가기를 꿈꿉니다. 내 어버이 또한 나한테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나서 착하고 어여삐 살아가기를 빌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걷습니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걷습니다. 맑은 날은 햇살을 받으며 걷습니다. 바람 부는 날은 바람을 맞으며 걷습니다.

 

 자가용이 없는 우리 살림이기에 으레 걷습니다. 때로는 자전거를 함께 타고, 때로는 버스를 얻어 탑니다. 같은 빠르기로 걷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습니다. 같은 느낌과 생각까지는 아닐 테지만, 같은 하늘과 들판과 새들을 바라보며 걷습니다.


.. 해가 떠오르기 전 아침노을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 나는 단풍나무 숲을 걷는다. 이파리 하나하나 말을 거는 듯 음악이 들리는 듯하다 ..  (10, 11쪽)


 해가 기울어 어두운 때, 아이를 데리고 마당이나 뒤꼍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합니다.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시골이 좋습니다. 밤에 별을 볼 수 없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따분한 터전이 될까요. 전기가 없으면 반짝거리지 못하는 데라면 얼마나 메마르고 허전한 터전이 될까요.

 

 아침과 낮과 저녁으로 바깥바람을 쐽니다. 때마다 바람이 다릅니다. 날에 따라 바람이 다르고, 철에 따라 바람이 다릅니다. 나는 나대로 바람을 맞아들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바람을 맞아들일 테지요.

 

 어버이가 살아가는 터전이란 어버이부터 즐거이 누리는 사랑이면서, 아이들한테 곱게 물려주는 사랑입니다. 어버이부터 더 좋은 꿈을 북돋우는 사랑을 누릴 수 있고, 아이들한테 더 기쁜 사랑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버이부터 하루하루 가까스로 견디거나 힘겨이 버티기도 합니다. 사랑하고 동떨어진 채 지낼 수 있습니다. 이동안 아이들은 고되거나 슬픈 아픔을 나날이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좋은 삶을 누리지 않으면, 아이들 또한 좋은 삶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 시골 출신인 남편이 건네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서울 아이는 이런 건 모른다. 자연에서 놀지 않았기에 무얼 먹어야 할지 잘 모른다. 연두색의 꼼밥(소나부 꽃은 약간은 새큼하고 약간은 달큼하고 약간은 떫다 … 나는 좋은 부모 밑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고 젊어서 원 없이 사랑도 했고 좋은 직장에서 월급도 받아 보았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내 젖으로 키웠고 좋은 학교에 보냈다 ..  (23, 66쪽)


 소설쓰는 박완서 님 딸로 태어나 살아온 호원숙 님이 내놓은 수필책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샘터,2006)를 읽습니다. 박완서는 박완서이고 호원숙은 호원숙일 텐데, 수필책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는 어머니 박완서를 ‘큰 나무’로 삼고 맙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어찌할 길 없는 셈이라 할 만할까요.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간대서 내 키가 커질 일이 없습니다. 나무가 크다면 얼마나 크고, 나무가 작다면 얼마나 작을까요. 나무는 그저 나무입니다. 나무 사이를 걸어가는 나는 그저 나 하나입니다. 내가 나무 사이를 걸어갔기에 나무들마다 키가 한껏 자라날는지 모르고, 내가 나무 사이를 걸어간 탓에 나무들마다 키가 한 뼘씩 줄어들는지 모릅니다만, 나 스스로 키가 커지겠다고 꿈꾸지 않는다면, 큰 나무들 사이를 걷는대서 내 키가 커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더라도 나는 얼마든지 키를 키울 수 있어요. 아무 나무 사이를 안 지나더라도 나는 나대로 내 키를 키울 만합니다.


.. 쓸 수 있다는 것, 써진다는 것 모두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다고 이런 책을 단숨에 읽을 필요는 없으리라. 하루에 한 편이라도 읽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착해질 것 같다 … 그래도 아이들 어릴 때 쓴 일기 공책은 버리지 못한다. 그걸 버리는 건 그들의 몫이니까 … 어머니의 데뷔작 《나목》을 읽던 날을 잊지 못한다. 단숨에 읽어 버렸지만 읽고 난 후 여태껏의 우리 집의 분위기와 빛깔이 바뀌어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  (48, 57, 167, 213쪽)


 소설쓰는 박완서 님은 소설쓰는 박완서 님대로 당신 삶을 사랑하면서 일구었습니다. 호원숙 님은 호원숙 님대로 당신 삶을 사랑하면서 일구면 됩니다. 굳이 큰 나무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작은 나무라고 낮출 까닭이 없습니다.

 

 박완서 님은 호원숙 님을 비롯한 여러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을 일구었기에 소설을 쓰는 기운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소설쟁이 한길을 못 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호원숙 님한테 어머니 박완서 님이 큰 나무가 아니라, 박완서 님한테 호원숙 님이 큰 나무였을 수 있어요.


.. 아이는 그동안 무얼 공부했는지 이상의 수필 〈권태〉는 알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시험 전날 갑자기 무얼 어떻게 하겠는가. 미리 알려준 게 무슨 독과도 같았다. 나는 서재에서 낡은 이상 문학 전집을 꺼내 들고 아이 방으로 갔다. 그 애한테 세로로 조판된, 그것도 오래되어 잉크가 다 날아가 버린 책을 읽으라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이상의 수필집을 읽어 준다. 어린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듯이 ..  (170쪽)


 수필이란 내 삶을 드러내며 내 꿈을 나누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삶이란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습니다. 내 삶이란 작지도 크지도 않습니다. 내 삶은 오로지 내 사랑대로 흐릅니다. 내 삶은 오직 내 사랑을 나 스스로 어떻게 보살피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수필책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는 처음부터 ‘호원숙 수필’로 썼어야 아름답습니다. 어머니 그늘자리에서 쓰는 수필이 아니라, ‘내 삶자리’에서 쓰는 글이었어야 예쁘게 빛납니다.

 

 차라리, ‘어머니 박완서를 떠올리거나 그리는 이야기’로만 가득 채웠으면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어머니 박완서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이야기’로 알알이 누볐으면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라면, 그저 큰 나무에 기대어 열매 얻어먹는 셈일 뿐입니다.

 

 살아가노라면, 큰 나무에 기댄대서 잘못일 수 없고, 열매 몇 알 얻어먹는 일이 나쁠 까닭이 없어요. 다만, 호원숙 님으로서는 호원숙 님 한 사람한테만 서린 고운 빛줄기가 있습니다. 이 빛줄기를 곱게 사랑하며 북돋우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아줌마이면 어떻고, 숲길 걷기를 좋아하는 도시내기이면 어떤가요. 오늘 내 삶을 꾸밈없이 맞아들여 스스럼없이 아낄 때에 가장 빛나는 하루이고, 이 가장 빛나는 하루를 수수하게 글로 여밀 때에 수필이 태어나요.

 

 문학은 삶에서 태어납니다. 문학은 생각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문학은 삶을 아끼는 생각으로 일굽니다. 문학은 삶을 사랑하는 생각으로 빚습니다. (4345.2.22.물.ㅎㄲㅅㄱ)


―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 (호원숙 글,샘터 펴냄,2006.4.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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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44) 외현적 1 : 외현적인 몸을 기준으로

 

.. 이분법적인 성 구조의 사회에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은 둘 중 하나로 강요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그것도 외현적인 몸을 기준으로 사람의 성별을 판단할 줄밖에 몰랐던 그 시기에는 ..  《김비-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삼인,2011) 22쪽

 

 “이분법적(二分法的)인 성 구조(構造)의 사회(社會)에서”는 “이분법으로 성을 나누는 사회에서”나 “성을 둘로 가르는 사회에서”나 “남성과 여성으로 쪼개진 사회에서”로 다듬습니다. “속(屬)하지 못한”은 “들지 못한”이나 “깃들지 못한”으로 손보고, “둘 중(中) 하나”는 “둘 가운데 하나”로 손보며, “강요(强要)되는 것이 당연시(當然視)되었고”는 “밀어넣어져야만 했고”나 “못박혀야만 했고”로 손봅니다. ‘그것도’는 ‘게다가’나 ‘더욱이’로 손질하고, ‘기준(基準)으로’는 ‘잣대로’로 손질하며, “사람의 성별(性別)을 판단(判斷)할”은 “사람 성을 나눌”이나 “사람들 성이 무엇인가를 가릴”로 손질해 줍니다. “그 시기(時期)”는 “그때”나 “그무렵”으로 고쳐씁니다.

 

 외현적 : x
 외현(外現) : 겉으로 나타남

 

 외현적인 몸을 기준으로
→ 밖으로 드러나는 몸을 잣대로
→ 겉으로 보이는 몸으로
→ 눈으로 보이는 몸으로
 …

 

 ‘외현’이라는 낱말을 쓴다면 이와 짝을 이루는 ‘내현’이라는 낱말도 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자로 적는 낱말을 꼭 써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외현’은 “겉으로 나타남”을 뜻한다 하고, ‘내현’은 “속으로 나타남”을 뜻한다 할 텐데, 처음부터 누구나 알기 좋도록 “겉으로 나타남”과 “속으로 나타남”이라 말하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알기 좋도록 말을 한다면, 따로 ‘외현적’이나 ‘내현적’이라는 새 한자말까지 쓸 일은 없습니다. ‘-的’을 붙이며 내 넋이나 뜻을 새롭게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이나 “눈에 보이는”이라 말하면 됩니다. “널리 드러나는”이나 “환히 나타나는”이라 말하면 돼요.

 

 보기글에서는 “겉모습으로 성별을 나눌”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몸뚱이로만 성별을 나눌”처럼 적어도 됩니다. 사람 몸이란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손으로 만지기도 합니다. 눈으로 볼 때에만 이런 몸이구나 하고 알지 않습니다. 손으로 만질 때에도 이런 몸이구나 하고 알아요.

 

 글쓴이로서는 이모저모 많이 생각하면서 ‘외현적’이라는 낱말까지 끄집어 냈으리라 봅니다. 이와 같은 낱말로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 했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더 생각해 봅니다. 더 쉽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한 말투를 생각해 봅니다. 누구나 더 살가이 돌아보고 저마다 더 따사로이 껴안도록 돕는 말씨를 헤아려 봅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도 살피고, 속으로 보듬는 모습도 돌아봅니다. 아름다이 나눌 말을 톺아보고, 기쁘게 북돋울 말을 꿈꿉니다. 수월하면서 알찬 말무늬를 빚습니다. 어여쁘면서 착한 말결을 일굽니다. (4345.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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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 끝에 나왔으니 곧장 장만한다. 그러나 내 주머니에 살림돈이 빠듯하다면, 아무리 기다리던 책이라 하더라도 장만하지 못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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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는 아버지한테 기어오는 둘째

 


 둘째 아이는 어느덧 꽤 재게 길 줄 알면서 혼자 이곳저곳 누비고 다닌다. 겨울날 방에만 있으면 그닥 누빌 만하지 않기 때문인지, 자꾸 방문을 밀치고 마루로 나갔다가 부엌에 갔다가 끝방에 갔다가 한다. 아버지는 아침 낮 저녁으로 세 차례 남짓 빨래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며칠 앞서부터 둘째는 아버지가 빨래하는 곳으로 볼볼 기어 찾아온다.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때리면서 기는 소리가 들릴라치면, 어느새 내 뒤에서 기웃기웃하며 들여다본다. 한 이십 분쯤은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린다. 자칫 떨어질까 싶어 문턱에 엉덩이를 디밀고 복복 비빔질 헹굼질 하다 보면, 둘째는 내 엉덩이와 등허리를 턱턱 잡으며 일어서며 들여다보곤 한다. 가만히 보니, 둘째는 문턱이나 문간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다. 스스로 제 몸을 잘 간수하는구나 싶다. 이렇게 한참 들여다보다가 다 보았다 싶으면 또 방바닥을 철썩철썩 때리는 소리를 내며 마루로 간다.

 

 더 갓난쟁이였을 때에는 그냥 손으로 콱 쥐었으나, 이제는 손가락 하나를 뻗어 살 대 보곤 한다. 둘째를 안고 뒤꼍이나 마을 나무 가까이 다가서면서 ‘자, 여기 봄을 기다리는 새눈을 좀 보렴.’ 하고 이야기할 때에도 손가락 하나를 먼저 뻗어 살 댄다. 동백꽃 봉오리한테도 손가락 하나를 뻗어 살 댄다. 어머니가 숟가락에 떠서 내미는 젖떼기밥에도 손가락 하나를 뻗어 살 대기도 한다. 아버지가 빨래하는 씻는방에서도 손가락을 뻗어 빨랫물 흐르는 바닥에 손가락 하나를 살 대곤 한다. 둘째가 똥을 눈 다음 똥기저귀를 빨 때에도, 둘째는 아버지 허벅지에 안긴 채 몸을 뒤로 돌려 똥물 빠지는 기저귀 빨래를 들여다보다가는 손가락을 뻗어 똥물을 만지려 한다.

 

 참말, 만지고 입에 넣고 생각하면서 둘레를 헤아리는 어린이로구나 싶다. 첫째 또한 이렇게 자랐겠지. 첫째 때에는 내가 너무 모르는 한편, 어린이 넋과 꿈을 살피지 못해서 이 같은 모습을 꾸밈없이 바라보지 못하기 일쑤였다. 아이를 여럿 키우는 어버이라면, 밑으로 새롭게 태어나 크는 목숨하고 복닥이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다 다르면서 다 같이 깃든 아름다운 사랑과 삶을 읽으리라. 옆지기랑 아이와 함께 내 하루를 고맙게 여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4345.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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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 미래그림책 24
고바야시 유타카 글 그림, 길지연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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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아무도 없는 어여쁜 마을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2] 고바야시 유타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미래M&B,2003)

 


 봄맞이 흰눈이 소리없이 내리는 시골길을 아이와 나란히 걷습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새로운 봄이 찾아와 온누리에 푸른 빛깔 새옷을 선물하겠지요.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 가을을 거쳐 겨울이 오듯, 겨울이 지나 새봄을 맞이합니다. 봄은 시골자락에도 찾아오고 도시 한복판에도 찾아옵니다. 시골자락에서는 곳곳에 돋는 푸른 잎사귀로 봄내음을 알리고, 도시 한복판에서는 가게와 백화점 에누리 광고판이랑 사람들 밝은 빛깔 옷차림으로 봄빛을 알립니다.


.. 봄입니다. 자두나무, 벚나무, 배나무, 피스타치오 나무, 파구만 마을은 꽃동산이 되었습니다 ..  (3쪽)

 


 따스한 바람은 어느 곳에나 붑니다. 마을이 통째로 가라앉아 못물이 된 곳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구비구비 시원히 흐르는 물줄기 마을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삽차와 밀차가 끊임없이 오가며 시멘트를 퍼붓는 공사터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높디높은 건물로 숲을 이루는 도시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고막을 찢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전투기에서 톡 하고 떨구는 폭탄에도 봄바람이 묻습니다. 온 나라 멧자락을 두루 날아다니는 헬리콥터가 나무에 벌레 먹지 말라면서 뿌리는 농약에도 봄바람이 묻습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헐뜯는 이야기를 퍼붓는 대남방송과 대북방송 스피커에도 봄바람이 묻습니다.

 

 봄바람은 눈 덮이는 마늘밭을 살짝 스치듯 지나갑니다. 봄바람은 기저귀 넌 후박나무 빨래줄을 살짝 스치듯 지나갑니다. 봄바람은 고속도로 많디많은 자동차 틈바구니를 살짝 스치듯 지나갑니다. 봄바람은 여학생 짧은치마와 남학생 쫄바지를 살짝 스치듯 지나갑니다.


.. 오늘 야모는 처음으로 당나귀 뽐빠와 함께 읍내로 과일을 팔러 갑니다. 형 대신 아빠를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  (6쪽)

 


 아이와 둘이서 눈밭을 누비며 생각합니다. 아이와 둘이서 눈발을 맞으며 인천 골목길을 누비던 때에도 우리 둘은 호젓하게 눈길을 걸었습니다. 아이와 둘이서 눈발을 맞는 고흥 고샅길에서도 우리 둘은 한갓지게 눈길을 걷습니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모두 회사나 공장이나 학교로 갑니다. 시골에는 할머니랑 할아버지만 남고 젊은이와 어린이는 거의 다 도시로 떠납니다.

 

 도시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람들 스스로 숨을 느긋하게 쉴 틈이 모자랍니다. 시골에서는 사람이 너무 적어 사람들 스스로 품앗이를 하며 오순도순 어깨동무할 꿈을 꾸기 벅찹니다.

 

 사람이 너무 많은 곳에서는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거나 가꾸기 버겁습니다. 아니, 바쁜 나머지 아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너무 적은 곳에서는 아름다운 마을이 꾸밈없이 지켜질는지 모르나, 늙은 흙일꾼이 농약과 비료를 안 쓰며 흙을 아끼거나 사랑하기란 너무 고단하고 벅찹니다. 아니, 오랜 새마을운동과 농협 정책 때문에 그만 수수한 흙사랑과 삶사랑과 하늘사랑을 잊어버리고야 맙니다.


.. “파구만 버찌 주세요!” 작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부터 야모의 버찌는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얘야, 나도 다오. 나도 한때 파구만 가까이에서 과수원을 했었단다. 그 시절이 그립구나.” “아저씨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셨나요?” “그래. 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단다.” 야모의 가슴속에서 쿵 소리가 났습니다. 할룬 형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  (20∼21쪽)

 

 


 이제 아무도 없는 어여쁜 마을일까요.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어여쁜 마을인가요.

 

 관광명소가 되지 않으면 찾아오지 않습니다. 관광명소가 되어야 발길이 머뭅니다. 관광명소가 되면 어여쁜 빛깔은 바래고 맙니다. 관광명소로 꾸미며 어여쁜 풀 꽃 나무 새 멧등성이 고샅 밭뙈기는 제 내음과 결을 잃고 맙니다.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를 낼 때에만 어여쁜 마을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도시 한복판에는 아파트 올릴 땅이 모자라 얕은 멧자락을 끼고 촘촘히 들어서던 도시 바깥쪽 자그마한 골목동네를 싸그리 밀어내며 어여쁜 터가 사라집니다. 시골을 뒤집어엎거나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를 내거나 공장을 짓느라 논밭을 없앴으면서, 논밭이 모자라다는 핑계로, 그러니까 땅을 넓힌다면서 갯벌을 메워 새 논밭을 만듭니다. 어여쁜 갯벌 어여쁜 바닷가 어여쁜 마을이 하루아침에 깡그리 사라집니다.

 

 지도는 해마다 달라집니다. 길찾이 기계는 해마다 새 줄거리를 넣어도 빠뜨리는 새 길이 있다고 합니다. 지도는 해마다 달라집니다. 흙땅이 줄어들고 가게가 늘어납니다. 흙이 파묻히며 시멘트랑 아스팔트가 늘어납니다. 나무가 줄어들고 아파트가 늘어납니다. 풀밭과 꽃밭은 공원으로 탈바꿈합니다.

 

 눈으로 바라볼 어여쁜 마을도 없지만, 마음으로 꿈꿀 만한 어여쁜 마을이 무엇인지조차 그리지 못합니다.


.. 드디어 마을에 다 왔습니다. 그리운 고향 냄새가 풍겨 옵니다. 겨우 하루였는데도 아주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  (36쪽)

 

 


 고바야시 유타카 님이 빚은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미래M&B,2003)을 읽습니다. 고바야시 유타카 님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이 나라 어여쁜 마을을 만났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 자그마한 마을에서 웃음 맑은 어여쁜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자그마한 마을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해요. 폭탄으로. 폭탄이 터지며.

 

 왜 누군가 전투기나 전폭기에 올라타고는 아프가니스탄 자그마한 마을에 폭탄을 퍼부어야 했을까요. 왜 누군가 전투기나 전폭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해야 했을까요. 왜 누군가 전투기나 전폭기를 아프가니스탄 자그마한 마을로 띄워 보내야 했을까요. 왜 누군가 자그마한 마을 웃음 맑은 사람들을 감쪽같이 없애야 돈과 힘을 거머쥘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전쟁은 군인이 일으키지 않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군인이 죽지 않습니다. 아니, 전쟁은 군인을 부리는 사람이 일으킵니다. 전쟁은 민간인이라는 사람을 죽입니다. 아니, 군인이란 여느 때에는 민간인이었으나 나라가 불러서 군인이라는 옷으로 갈아입은 사람입니다. 민간인을 불러 군인으로 바꿔치기한 사람은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가 민간인이 군인으로 바뀌도록 몰아세웁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는 어여쁜 마을을 생각하거나 좋아하거나 아끼지 않아요. 오로지 돈을 더 많이 벌거나 힘을 더 드높이는 데에만 마음을 씁니다.

 

 나라와 경제를 살찌운다면서 댐을 짓고 발전소를 짓습니다. 나라와 경제를 생각한다면서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4대강사업을 벌입니다. 나라와 경제를 걱정한다면서 도시를 더 키우고 공장을 더 늘립니다.

 

 이리하여, 나와 옆지기와 두 아이가 살아가는 이 나라는 조용하며 어여쁜 나라가 되지 못합니다. 나와 옆지기와 두 아이와 이웃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마을이 조용하며 어여쁜 보금자리가 되기 힘듭니다. 전쟁을 부르는 권력자가 있고,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느 사람들이 있으며, 권력자가 부르는 말 한 마디에 금세 군인으로 옷을 갈아입는 민간인이라는 여느 이웃들이 있는 동안, 이 나라 이 마을에는 어여쁜 꿈이나 사랑이 깃들지 못합니다. (4345.2.21.불.ㅎㄲㅅㄱ)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 (고바야시 유타카 글·그림,길지연 옮김,미래M&B 펴냄,2003.6.30./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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