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사진잔치 엽서

 


 2011년 12월 1일부터 2012년 1월 29일까지 인천 남구 도화동에 자리한 수봉도서관에서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이라는 이름으로 조그맣게 사진잔치를 열었다. 내 인천 골목 사진으로 인천 공공기관 한 곳에서 사진잔치를 열었기에 참 기뻤다. 사진잔치를 마친 사진들은 도서관 한쪽에 남겠지. 마음에 드는 사진을 누군가 챙길는지 모르고, 어쩌면 창고에 쌓여 먼지를 먹을는지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골목동네 이야기 한 자락 남을 수 있다고 느껴 고맙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인 인천이지만, 옆지기가 태어나 자란 고향은 광명이다. 옆지기가 태어나 자란 광명은 들판이 있고 흙길이 있던 아스라한 골목동네였으나, 이제 광명은 온통 아파트누리로 탈바꿈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인천에는 골목동네가 곳곳에 많이 남기는 했어도, 온통 아파트누리로 한창 바뀐다. 갯벌을 메워 공항을 짓고 발전소를 지으며 새도시를 짓는다. 호젓한 골목동네에서 어여쁜 꽃송이 피어나기 너무 벅차다.

 

 나랑 옆지기가 나고 자란 터하고는 사뭇 멀디먼 전라남도 고흥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살아간다. 우리 네 식구는 이곳 고흥에서 뿌리를 박으며 살아갈 꿈을 키운다. 어디 멀리 나갈 일 없도록 살아가고, 애써 도시로 마실을 나가지도 않는다. 이리하여, 내 사진으로 사진잔치가 고향에서 열렸으나, 나랑 옆지기랑 아이들은 찾아가서 구경을 하지 못한다. 사진잔치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사진잔치 때에 쓴 엽서를 받아서 구경한다.

 

 인천 골목길 사진을 찍어 사진잔치를 열고 사진책도 하나 내놓았는데, 나는 막상 ‘골목길’이라는 낱말은 잘 안 쓴다. 틀림없이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내가 골목길에서 바라보고 느끼며 함께 살아내던 이야기는 ‘골목꽃’이기 때문이다. 곧, 내 사진은 ‘골목길 사진’이 아니라 ‘골목꽃 사진’이다. 나는 골목길에서 ‘길’도 ‘풍경’도 ‘어린이’도 ‘할머니’도 ‘집’도 보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골목동네 보금자리를 환하게 밝히며 싱그러이 보듬는 꽃송이 하나만 보고 느끼며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꽃이 있어 골목길이 환하다. 꽃이 있어 시골마을이 훤하다. 꽃이 피어 골목동네에 열매와 새로운 씨앗이 맺는다. 꽃이 피어 시골자락에 열매랑 새로운 씨앗이 흐드러진다. (4345.2.23.나무.ㅎㄲㅅㄱ)

 

 

 

 

(골목꽃 이야기 궁금하시다면

 이 책을 들여다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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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23 17:24   좋아요 0 | URL
정겨운 골목길 풍경이네요!
우리 대구엔 아주 꼬불꼬불하고 좁다란, 일제시대 때 지은 집들도 있는 그런 골목들이 있어요. 갑자기 그런 골목이 그립네요.

파란놀 2012-02-23 19:01   좋아요 0 | URL
아, 대구에 계시군요.
대구에는 시청역과 동대구역 사이던가,
그쪽에 <대륙서점>이라고 하는 훌륭한 헌책방이 있어요.
경북대 뒷문에도 무시무시하게 책이 쌓인 헌책방이 있고요.

대구 골목길도 어여쁘다고 생각해요~

2012-02-25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2-02-24 21:31   좋아요 0 | URL
인천은 뭐랄까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같아요.송도 신도시같은 경우는 정말 테크노밸리같단 생각이 드는 반면 옛 공단 지역은 과거 70년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것 같더군요.

파란놀 2012-02-25 22:05   좋아요 0 | URL
어디나 옛날과 오늘날이 함께 있는데,
인천은 좀 이런 편차가 되게 커요..
 


 짝양말 책읽기

 


 짝양말을 신은 아이가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아이는 한동안 조용하다. 나도 이때에는 숨을 살며시 돌리며 책장 조금 넘길 만하다. 밀린 다른 집일을 할 수 있지만, 이때에는 나도 조금은 쉬고 싶다.

 

 나도 한 차례 쉬며 방바닥에 모로 누워 책을 읽는다. 그러나 자꾸 짝양말에 눈이 간다. 아이가 예쁘게 놀 때에는 예쁘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느라 내 종이책을 읽지 못하고야 만다. 사진기를 손에 쥔다. 사진기를 내려놓고 말끄러미 바라본다. 곰곰이 돌이킨다. 나도 어린 날 짝양말 신기를 즐겼을까. 내가 짝양말을 신으려 하면 내 어머니는 어떤 낯빛이었을까. 빨래거리 늘어난다고 싫어하셨을까. 보기 안 좋으니 얼른 벗으라 하셨을까. 재미나다며 웃으셨을까. (4345.2.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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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23 17:32   좋아요 0 | URL
저도 저렇게 신었는데, 문제는,
다 큰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러고 싶었다는 거 아닙니까 ㅠㅠ
오래토록 짝짝이 양말을 신고 싶었던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엄격한 부모님과 언니'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된다,라면서 자꾸 못하게 야단치니까
일찍감치 졸업할 일을 오래 질질 끓었던 거 같아요.
(중딩 때는 어쩔 수 없이 양말은 짝으로 반듯하게 신고
운동화 끈을 연두와 초록, 노랑과 연두 이런 식으로 다르게 꿰 신었지요.
학교 갈 적엔 흰색으로요 ㅋㅋ)

저는 애들이 자라면서 하는 행동은 웬만한 건 그냥 둬요.
손가락 빨기 같은거요. 이것도 성장하면서 거치는 과정이니까요.
애들이 하고 싶은 만큼 하고 나면 안 하게 되더라구요.


파란놀 2012-02-23 18:48   좋아요 0 | URL
잘 맞추어도 좋으나
잘 맞춘다는 일이란
틀에 박히는 일이
아닌 줄을
사람들 스스로 잊도록
내몰리지 않느냐 싶어요.

곰곰이 생각하면
짝양말이란
아이들일 때부터 누구나 좋아하는 멋이라 할 테고,
이 멋은
'삐삐'가 그야말로 아름답게 보여주었어요~

아이들 어머니가 되어
짝양말을 신어도 좋지요~
 


 느끼는 글쓰기

 


 봄에 새로 돋는 잎사귀는 아주 반딱반딱합니다. 얼마나 반드르르한지 빗물 한 방울 톡 떨어지면 또르르 굴러 땅으로 떨어질 만합니다. 아주 조그마한 물방울 하나 새 잎사귀에 남지 않을 만합니다.

 

 아이들 볼을 만지면 내 손이 부끄럽습니다. 거칠고 투박하며 못생긴 내 손이 이 곱고 보드라운 아이들 볼을 만지다니, 하며 내 나이와 삶을 헤아립니다. 아이들은 사랑어린 말 한 마디에 사랑을 느끼며 자라고, 아이들은 미움박힌 말 한 마디에 미움을 느끼며 웁니다.

 

 겨울을 견디는 잎사귀를 가리켜 ‘늘푸른잎’이라 할 텐데, 늘푸른잎도 푸른 빛깔이지만, 새봄에 돋는 잎사귀처럼 싱그러이 옅은 풀빛이 아닙니다. 추위와 눈과 바람을 견딘 거칠고 투박한 풀빛이에요.

 

 요즈음 도시 아이들한테 읽히려고 나오는 자연 그림책을 장만해서 읽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자연 그림책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되지만, 자연 그림책을 읽을 도시 아이들이 자연을 얼마나 잘 사귈 수 있도록 만드는가 궁금해서 꾸준히 장만합니다.

 

 요즈음 자연 그림책은 그야말로 번쩍번쩍 무지개 같습니다. 빛깔이 초롱초롱합니다. 그림 그리는 솜씨가 빼어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오는 자연 그림책을 우리 아이들한테 읽히고 싶다는 생각은 좀처럼 안 듭니다. 나라밖 자연 그림책도 그리 다르지는 않아요. 나 혼자 넘기다가는 조용히 덮고 아이한테 안 보여주기 일쑤입니다. 이웃한 일본에서 나오는 몇 가지 자연 그림책은 아주 훌륭해서 늘 곁에 두기는 하지만, 일본 자연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어딘가 어설프거나 서글픈 모습이 있기는 비슷비슷합니다.

 

 봄잎은 여름잎이랑 다릅니다. 여름잎은 가을잎이랑 다릅니다. 가을잎은 겨울잎이랑 다릅니다. 이 다 다른 잎빛과 잎결과 잎무늬는 눈으로 바라본대서 그림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이 다 다른 잎빛이랑 잎결이랑 잎무늬는 눈으로 쳐다본대서 사진으로 찍지 못합니다.

 

 손으로 만지며 느껴야 합니다. 입으로 씹으며 냄새를 느껴야 합니다. 늘 곁에서 지켜보며 느껴야 합니다. 가만히 볼따구니로 쓰다듬으며 느껴야 합니다.

 

 반딱반딱한 봄잎을 봄잎대로 그리는 한국 그림쟁이로 누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린 겨울 이긴 겨울잎을 겨울잎대로 그리는 한국 그림쟁이로 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잎마다 다 다른 빠르기로 다 달리 물들며 가랑잎으로 바뀌는 잎사귀를 찬찬히 살펴 가을잎 빛깔을 살릴 줄 아는 한국 그림쟁이로 누가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른 여름잎을 눈이 부실 뿐 아니라 마음을 환히 틔우도록 담을 줄 아는 한국 그림쟁이로 누가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림으로뿐 아니라, 사진으로도, 글로도, 잎사귀 한삶 고이 그려 이야기꽃 피우는 사람은 매우 드물어요. (4345.2.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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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눈이 들려주는 학교 숲 이야기 - 겨울철 학교에서 만난 나무의 한살이와 생태 철수와영희 그림책 4
노정임 지음, 안경자 그림, 구자춘 감수 / 철수와영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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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푸른 숨결은 나무가 되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3] 안경자·노정임, 《겨울눈이 들려주는 학교 숲 이야기》(철수와영희,2012)

 


 학교는 겨울을 맞이해서 방학으로 접어듭니다. 겨울날 학교는 조용히 텅 빕니다. 운동장에 눈이 그득그득 쌓여도 뛰어노는 아이가 없습니다. 날이 환히 개어 눈부시더라도 흙을 박차는 아이가 없습니다. 참으로 조용한 겨울 학교인데, 이 조용한 겨울 학교를 빙 둘러싸며 자라는 나무는 새봄을 맞이하려고 부산합니다. 한편으로는 추위를 견디고, 한편으로는 새숨을 키웁니다. 한편으로는 겨울철 따스한 살결로 고이 잠을 자고, 한편으로는 머잖아 찾아올 따순 바람에 따라 맑고 밝은 꽃을 피우며 푸른 잎사귀 틔울 꿈을 꿉니다.


.. 나무는 여러 해를 살아. 그러려면 추운 겨울을 견뎌내야 하지. 겨울을 끄떡없이 보내는 나무들에게는 지혜로운 방법이 있어. 바로 ‘겨울눈’이야 ..  (8쪽)


 아이들은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나무를 쉽게 만납니다. 시골에서는 어디에나 자라는 나무이고, 도시에서도 길가나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심는 나무입니다. 도시는 시골처럼 숲이나 멧자락이 없다 하더라도 나무만큼은 곳곳에서 자랍니다. 비록 시골처럼 파란 빛깔 하늘이랑 시원히 흐르는 바람이 없다 하더라도, 나무들은 저마다 뿌리내린 터에서 기운차게 살아갑니다. 예삐 바라보는 사람이 없어도, 고이 돌보는 사람이 없어도, 나무는 꿋꿋하며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로서는 둘레에 나무가 흔히 있더라도 쉬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들부터 둘레 나무랑 가까이 사귀지 않거든요.

 

 도시 어른들은 나무를 보러 자가용을 몰거나 기차나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시골로 갑니다. 도시 어른들은 동네 나무를 살펴보지 않습니다. 도시 어른들은 동네 나무를 아끼지 않습니다. 도시 아이들은 도시 어른들 매무새를 고스란히 물려받아요.

 

 도시 아이들 또한 동네에서 흔히 마주할 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아요. 나무를 보려면 멀리 시골로 가야 하는 줄 생각합니다. 곁에서 자라는 어여쁜 나무를 어여쁜 손길로 보듬는 꿈을 키우지 못합니다. 동네 나무 한 그루에 내 사랑을 고이 나누어 서로서로 싱그러이 웃음꽃 피우는 길을 찾지 못해요.

 

 단풍나무는 도시에서도 붉게 물듭니다. 은행나무는 도시에서도 노랗게 물듭니다. 도시 한복판 단풍나무나 은행나무보다는 설악산이나 오대산이나 지리산이나 가야산 단풍나무랑 은행나무가 한결 보기 좋거나 곱다면, 설악산이나 가야산은 도시 한복판보다 물과 바람과 햇살이 맑고 흙이 기름지기 때문이에요.

 

 옳게 바라보고 제대로 헤아릴 노릇입니다. 도시에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요. 도시에는 흙이 몽땅 시멘트랑 아스팔트한테 깔려서 앓아요. 도시에는 나무가 느긋하게 숨을 쉴 터가 모자라요. 도시에는 밤에도 불을 환하게 켜서 나무들이 새근새근 잠을 잘 수 없어요.

 

 나무한테 너무 괴로운 터전입니다. 나무한테 너무 모진 터전입니다. 나무한테 너무 힘든 터전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나무가 단풍빛이나 은행빛을 더 곱게 물들일 수 없어요. 살기 괴로운 데에서 나무더러 단풍빛이 왜 해맑지 못하느냐고 나무랄 수 없어요.

 

 


.. 화려한 꽃을 보려고 심어 길러. 백 일 동안 핀다고 ‘백일홍나무’라고도 해. 따뜻한 남부 지방에서 많이 심어 길러 ..  (25쪽)


 나무가 괴롭게 살아가는 터에서는 아이들도 괴롭게 살아가고야 맙니다. 아이들이 괴롭게 살아가는 터라면 어른들이라 해서 즐거이 살아갈까 궁금합니다.

 

 나무가 힘겨워 헉헉거리거나 앓는다면 아이들 또한 힘겨워 헉헉거리거나 앓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무가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널찍하게 퍼뜨리기 힘든 도시에서는 아이들 또한 즐거이 뛰놀 빈터나 흙땅이 없는 셈입니다.

 

 곧, 나무한테 좋은 삶터는 아이들한테 좋은 삶터입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삶터는 어른들한테도 좋아, 서로서로 환하게 웃으면서 어깨동무할 만한 삶터예요.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을 씨앗으로 심고 사랑으로 열매를 맺을 때에 보람차며 기쁜 나날일 테니까요.

 

 


.. 잎이 넓은 나무 가운데에 대표적인 늘푸른나무야. 한겨울에 탐스러운 붉은 꽃을 피우지. 동백나무는 제주도나 여수 같은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만 스스로 자라 ..  (30쪽)


 안경자 님이 그리고 노정임 님이 글을 쓴 그림책 《겨울눈이 들려주는 학교 숲 이야기》(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겨울을 맞이해 새눈을 다부지게 북돋우는 나무들 이야기를 다루는데, 학교 언저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들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감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는 학교에서 쉽게 보기 어려울 텐데요. 호두나무를 학교에 심는 곳이 있을까요. 아파트나 동네에서도 찾아보는 나무를 담았다고 합니다만, 앵두나무 잣나무 보리수나무 탱자나무 포도나무를 심는 학교는 거의 없지 않으랴 싶어요. 곰곰이 돌이키면, 도시에서도 이 같은 나무를 쉽게 찾아볼 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탱자나무를 좋아해서 마당에 기르기도 하겠지요. 누군가 배씨를 받아 마당 한쪽에 배나무를 기르기도 할 테지요.

 

 인천 골목동네에서 아이들과 나들이를 즐기던 지난날, 곳곳에서 호두나무 앵두나무 탱자나무 포도나무 밤나무를 만났습니다. 골목집은 그리 크거나 넓지 않아 온갖 나무를 두루 심는 집은 드물지만, 한두 나무를 오래오래 아끼며 돌보는 집은 쉬 만날 수 있었어요. 석류나무를 예닐 곱 그루나 돌보는 집을 보았고, 이웃 여러 골목집이 저마다 석류나무를 심은 동네를 보았어요. 도시에서도 감나무를 알뜰히 심고 알차게 돌보아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를 함께 살아가는 어르신을 어렵잖이 만났어요. 굵직한 대추나무에 굵게 달린 대추알을 호젓한 골목길에서 흔히 마주치곤 했어요.

 

 그러고 보면, 《겨울눈이 들려주는 학교 숲 이야기》는 “학교 숲 이야기”라기보다는 “마을 숲 이야기”나 “동네 숲 이야기”라고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느티나무나 벚나무나 버드나무나 소나무나 향나무를 흔히 심잖아요. 열매나무는 좀처럼 안 심어요. 좀 따분하다 싶지만, 열매나무를 심으면 아이들 손을 너무 타니 잘 안 심을는지 모르지요.

 

 그런데, 아이들 많은 학교일수록 열매나무를 심어, 아이들이 열매 한 알 어떻게 맺는가를 찬찬히 지켜보도록 이끌면 훨씬 즐거우며 뜻있으리라 생각해요. 겨울 새눈부터 봄 새잎을 거쳐 꽃이랑 열매 무르익는 모습을 날마다 들여다보도록 이끄는 일만큼 좋은 가르침은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열매를 맺으면 이 열매에서 씨를 갈무리해 아이들이 집이나 마을에서 씨앗을 심도록 하지요. 이듬해부터 아이들 스스로 새 열매나무를 천천히 보살피며 지켜보도록 하면 되지요.

 


.. (회양목은)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늘푸른나무야. 촘촘히 심어 울타리를 만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듬어서 가꾸기도 해. 그늘이나 공해가 심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산에서도 잘 자라 ..  (55쪽)


 아이들은 저마다 어여쁜 꽃입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추운 겨울을 즐거이 누리며 새봄을 맞이해 활짝 피어나는 어여쁜 꽃입니다. 식물원이나 비닐집에서 바람 한 점 맞지 않으며 크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너른 흙땅에 맨 처음 씨앗으로서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틔워 씩씩하게 줄기를 뻗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푸른 숨을 쉽니다. 아이들은 푸른 숨을 마을 곳곳에 흩뿌립니다. 아이들은 푸른 숨결로 푸른 꿈이랑 사랑을 키웁니다.

 

 아이들 푸른 숨소리 귀기울여 들을 수 있도록 자동차가 줄어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푸른 바람이 시원히 불 수 있도록 찻길이 줄고 거님길이랑 흙길이 되살아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푸른 눈빛 반짝이도록 높직높직 아파트와 건물 줄어들고 너른 들판이랑 멧자락이 곳곳에 넘실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4345.2.23.나무.ㅎㄲㅅㄱ)


― 겨울눈이 들려주는 학교 숲 이야기 (바람하늘지기 기획,안경자 그림,노정임 글,철수와영희 펴냄,2012.2.19./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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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사진으로 걷는 길
 ― 사진을 만든 사람

 


 사진을 만든 사람은 역사에 이름이 남습니다. 이이는 프랑스에서 특허권을 냈고, 이 특허권은 프랑스 정부에서 사들인 다음, 누구나 이 ‘새로운 재주’를 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글은 누가 맨 처음 만들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림은 누가 맨 처음 만들었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글이나 그림도 어떤 특허가 있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돌로 된 벽이나 나무판이나 종이에 아로새겨 오래도록 남도록 하던 글이나 그림은 누가 맨 처음 만들었을까 궁금합니다.

 

 사진은 사진기라 하는 연장이 있어야 찍습니다. 글은 연필이라 하는 연장이 있어야 씁니다. 그림은 붓이라 하는 연장이 있어야 그립니다. 사진기랑 연필이랑 붓이랑 연장 쓰임새가 다르다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저마다 연장을 써서 무언가 새로 빚는다는 대목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연장이 없이는 글도 그림도 사진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연필로 빚는 글은 ‘문학’이라는 자리를 마련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붓으로 빚는 그림은 ‘회화’라는 자리를 마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기로 빚는 사진은 어떤 자리를 마련해 온갖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맨 처음 사진기가 태어났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진을 찍는 연장은 값이 그리 싸지 않습니다. 품이 제법 듭니다. 사진기는 1/100초이든 1/1000초이든 붙잡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붙잡은 모습을 종이에 앉히기까지 훨씬 긴 겨를과 많은 품을 들여야 합니다. 종이에 적바림하면 태어나는 글이나 종이에 그리면 나타나는 그림하고는 적잖이 다릅니다.

 

 한겨레 살아가는 이 나라를 생각해 봅니다. 한반도라 하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나, 한반도를 넘어 만주나 일본이나 러시아나 중앙아시아로 나아가 살아가는 사람한테 사진이란 어떤 삶이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돌이켜 봅니다. 여느 터전에서 여느 살림을 꾸리던 여느 사람들은 사진을 얼마나 즐기거나 누렸을까 곱씹어 봅니다. 여느 터전 여느 살림 여느 사람들은 사진뿐 아니라, 글이나 그림은 얼마나 즐기거나 누렸을까 헤아려 봅니다.

 

 사진은 사진기를 장만해야 즐기거나 누린다 할 텐데, 그림이라 해서 누구나 쉬 즐기거나 누리지 않습니다. 글이라 해서 아무나 쉬 즐기거나 누리지 않아요. 지난날 한겨레 거의 모든 사람은 흙을 일구어 살림을 돌보았는데, 이들 가운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 사람조차 매우 드물거나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는 사람뿐 아니라 역사에 이름을 못 남겼다는 사람까지 샅샅이 훑더라도 ‘한겨레 거의 모두를 이루던 흙일꾼’ 가운데 글 문화나 그림 문화를 즐기거나 누린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1950년대에는 어떻다 할 만할까요. 1970년대와 2000년대는 또 어떻다 할 만할까요. 2010년대에는 시골 여느 흙일꾼이 글 문화를 누린다 할 만할까요. 2020년대나 2050년대에는 도시 공장 일꾼이 그림 문화를 누린다 할 수 있을까요.

 

 글도 그림도 사진도 여느 터전 여느 살림 여느 사람한테는 너무 머나먼 이야기라 할는지 모릅니다. 글도 그림도 사진도 여느 터전하고 동떨어지거나 여느 살림하고 등지거나 여느 사람하고는 아득히 먼 이야기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제 사진은 여느 터전 여느 살림 여느 사람까지 그리 어렵지 않게 누리거나 즐깁니다. 아이들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은 드물어도, 아이들 복닥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몇 장 담아 벽에 붙이거나 손전화로 담는 사람은 매우 많습니다. 아이들하고 어우러지는 나날 이야기를 시나 수필로 써서 벽에 붙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사랑스러운 짝꿍을 곱게 그림으로 담아 벽에 붙이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연필만 있으면 글을 쓰고 붓만 있으면 그림을 그린다지만, 막상 글이랑 그림은 여느 자리 여느 삶하고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는지 모릅니다. 작은 손전화로도 사진을 찍어 언제라도 돌아볼 수 있는 오늘날, 외려 사진이야말로 여느 자리 여느 삶하고 가장 가까이 어깨동무한다 할 만합니다.

 

 사진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은 돈을 벌려고 했습니다. 문화나 예술이나 삶 이런저런 대목을 살피지 않습니다. 새로운 길로 사진을 열면서, 이 사진으로 장사를 했습니다. ‘영업 사진관’이 생겼어요. 글을 쓰며 돈벌이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며 장사를 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다. 글도 그림도 돈벌이하고 동떨어진 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영업 문학관’이나 ‘영업 미술관’이란 없어요. 오직 ‘사진찍기’만 대놓고 돈을 법니다.

 

 곰곰이 살피면, 글은 책이나 신문으로 묶으며 돈을 법니다. 그림은 작품으로 돈을 법니다. 글과 그림이라 해서 돈벌이를 안 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진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돈을 버는 모습이 다를 뿐입니다. 글을 쓰더라도 돈을 벌지 못하면 먹고살지 못해요. 그림을 그리더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그림그리기를 더는 하지 못해요. 돈이 없으면 연필과 종이를 장만하지 못합니다. 돈이 없으면 붓과 물감을 장만하지 못합니다. 돈이 있어야 사진기이든 필름이든 메모리카드이든 장만한다지만, 돈이 있지 않고서야 글도 그림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한겨레 발자취와 삶을 돌아볼 때에, 여느 자리 여느 살림 여느 사람이 글이든 그림이든 즐거이 누리지 못한 까닭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한글이 있었어도 지배계급은 한문으로 살아가며 권력을 누렸습니다. 여느 자리 여느 살림 여느 사람이 누구나 쉽게 글을 쓰도록 문을 열지 않았어요. 더욱이, 그림그리기는 여느 자리 여느 살림 여느 사람은 아예 건드리지 못하도록 꽁꽁 닫아 걸었습니다.

 

 사진을 처음 만든 사람은 돈을 버는 길을 찾으려 했다지만, 이 돈벌이는 누구한테나 열린 문이었습니다. 많든 적든 돈 얼마를 치르면 누구나 즐기거나 누릴 수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글이랑 그림은 돈을 얼마를 치르더라도 계급과 권력이라는 높직한 울타리를 세우고는 아무도 못 들어오게 꽁꽁 틀어막았습니다.

 

 오늘날 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글은 못 쓰겠더라’ 하고 말하거나 ‘나는 그림은 못 그리는걸’ 하고 말하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꼭 계급과 권력 때문은 아니지만,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는 울타리가 좀 높기는 높습니다. ‘등단’이나 ‘출판’이나 ‘언론’이나 ‘대학교’라는 울타리가 참 많습니다. 사진 갈래라고 이런 울타리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만, 사진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사진강의를 듣지 않은 사람 누구라도 1회용 사진기이든 값진 사진기이든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사진을 즐기거나 누리면서 마음껏 나눌 수 있어요.

 

 곧, 사진과 사진기라는 새 길을 처음 만든 사람은 어쨌든 ‘돈’이라는 테두리에서 처음 만들었습니다. 이제, 사진을 누구나 마음껏 즐기는 이 자리에서는 저마다 ‘내 마음’을 어떻게 기울이는가에 따라 새 삶을 이룰 만합니다. 어떠한 장비를 갖추더라도 내가 바라보는 삶을 내 눈길로 곱게 담을 수 있습니다. 애써 작품으로 꾸미거나 잔치마당을 마련해야 하지 않습니다. 따로 사진책을 안 묶어도 됩니다. 즐기는 삶처럼 즐기는 사진이면 넉넉합니다. 누리는 삶만큼 누리는 사진이면 흐뭇합니다.

 

 더 헤아릴 수 있으면, 글이랑 그림도 이와 같아요. 즐기는 삶대로 즐기는 글쓰기이면 돼요. 누리는 삶결을 살려 누리는 그림그리기로 나아가면 돼요.

 

 그리고, 연필이든 붓이든 사진기이든 없어도 홀가분합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내 글을 씁니다. 내 가슴속에 곱게 글을 씁니다. 내 사랑을 실어 내 가슴 깊이 그림을 그립니다. 내 꿈을 담아 내 가슴 한 자리에 사진을 찍어요. 살가운 내 살붙이들 이야기를 마음밭에 아로새깁니다. 고마운 내 이웃과 동무 이야기를 마음밭에 씨앗으로 심습니다. 나는 내 슬기를 빛내어 내 사진을 늘 새로 빚으며 누립니다. (4345.2.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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