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의 뉴욕 프러포즈 - 뉴요커 100명과 함께한 아주 특별한 결혼 선물
정상구 사진, 박평종 글 / 포토넷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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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로 사진을 나누는 기쁨
 [찾아 읽는 사진책 88] 정상구, 《100번의 뉴욕 프러포즈》(포토넷,2011)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이 사진을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진을 처음 배워 처음 찍던 때부터, 내가 찍은 사진은 나한테 사진으로 찍힌 사람들한테 고스란히 선물로 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부러 선물하려고 사진을 찍지 않았으나, 사진기를 쥐고 사진기에 눈을 박아 사진기 단추를 누를 때면, 내가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으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선물이 사진 한 장으로 태어날 수 있기를 빌었습니다.


  내 곁 좋은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든, 헌책방 마실을 하며 헌책방 일꾼을 담거나 헌책방 책시렁을 사진으로 담든, 골목동네 나들이를 하며 골목이웃과 골목꽃과 골목집을 마주하며 사진으로 담든, 옆지기를 만나고 두 아이를 낳으며 살아가는 나날을 사진으로 담든, 나로서는 언제나 내 사진감한테 선물로 돌려주고픈 사진입니다.


  내 곁 좋은 님과 벗은 모두 ‘오늘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곧바로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싱그러이 마시고 고마이 내쉬는 숨결 하나가 고마운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목숨 한 자락이 가장 커다랗다 할 만하고 가장 놀랍다 할 만하며 가장 거룩하다 할 만한 선물이라고 느껴요.


  선물을 누리는 삶이기에 선물을 돌려주는 사진을 찍습니다. 선물을 받는 삶이기에 기쁘게 선물을 바치는 사진을 찍습니다.

 

 

 


  내 눈을 사진기에 박아 들여다봅니다. 나를 마주하는 사람이 웃습니다. 나도 웃으면서 단추를 살짝 누릅니다. 내 눈을 사진기에 박고 바라봅니다. 나와 마주한 헌책방 책시렁과 골목집 꽃그릇이 환하게 빛납니다. 나도 환하게 빛나는 넋이 되어 단추를 살며시 누릅니다.


  서로서로 좋은 꿈과 마음과 사랑이 되기에 사진 하나 곱게 태어납니다. 다 함께 기쁜 뜻과 얼과 이야기가 되기에 사진 하나 즐거이 태어납니다.


  정상구 님이 빚은 사진책 《100번의 뉴욕 프러포즈》(포토넷,2011)를 읽습니다. 정상구 님은 미국 뉴욕으로 여러 날 마실을 떠나 사진을 찍었습니다. 무언가 남달리 선물하고 싶은 사진을 찍고픈 마음이었기에, 비행기를 타고 멀리멀리 뉴욕까지 찾아갔습니다. 정상구 님은 지구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행 글’과 ‘여행 사진’을 빚는 일을 한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정상구 님 삶에 걸맞게 뉴욕 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을 만해요. 내가 무언가 남다르다 싶은 사진을 얻고 싶다면, 나로서는 한국땅 곳곳에 자리한 헌책방을 샅샅이 돌며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골목동네를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온 나라 골목동네 곳곳을 찬찬히 누비미 사진을 찍을 만합니다.


  곧, 누군가는 미국 뉴욕에서 마주한 백 사람한테서 들은 좋은 말마디를 엮어 ‘한 사람한테 바치는 사진잔치’를 열 수 있고, 누군가는 인천이나 춘천이나 목포 골목동네를 돌며 마주한 백 사람한테서 들은 예쁜 말마디를 그러모아 ‘한 사람한테 드리는 사진잔치’를 열 수 있어요. 온 나라 백 군데 헌책방 일꾼한테서 들은 사랑스러운 말마디를 갈무리해서 ‘한 사람한테 올리는 사진잔치’를 열 만합니다. 이 나라 백 군데 시골마을 흙일꾼 할머니한테서 들은 고운 말마디를 추슬러 ‘한 사람한테 베푸는 사진잔치’를 열어도 즐거워요.

 

 

 

 


  뉴욕으로 날아가서 사진을 찍던 정상구 님은 “경험이 쌓이자 이제는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순간들이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습니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나와 함께 살아요.’ 하고 말하는 일도 설레며 기쁠 테지만, 이렇게 말하기 앞서 여러 가지 잔치를 꾀하면서 겪는 일도 기쁘리라 생각합니다. 오래오래 함께 살아갈 옆지기를 헤아리는 꿈도 기쁠 테고, 옆지기한테 줄 선물을 생각하는 마음도 기쁠 테지요.


  언제나 오늘 하루 살아가며 기쁩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보낼 수 있기에 기쁩니다. 글피나 모레는 글피나 모레를 맞이할 수 있어 기뻐요.


  사진은 어제도 모레도 글피도 아닌 오늘을 찍습니다. 오늘 바로 이곳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누리는 삶이 즐거워서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누리는 삶이 괴롭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누리는 삶이 기쁜 만큼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누리는 삶이 슬픈 만큼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으로 담는 이야기는 환할 수 있으나 어두울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엮는 이야기는 아플 수 있으나 산뜻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모두는 이야기는 놀라울 수 있으나 수수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흘러야 멋진 사진이 아닙니다. 어느 쪽으로 흐르든 내가 살아가며 사랑한 이야기라면 즐겁고 좋으며 반가운 사진입니다.

 

 

 

 


  정상구 님은 “사흘 동안 뉴욕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메시지를 받던 그 순간들이 제게는 진심이 가득 담겼던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충실한 시간이었습니다(머리말).” 하고 이야기합니다. 정상구 님이 사랑하는 분한테 바치려는 사진과 사진잔치와 사진책은 모두 어여쁩니다. 두 사람이 앞으로 일굴 나날도 어여쁠 테지만, 바로 오늘 이곳에서 서로 누리는 이야기잔치가 어여쁩니다.


  오늘을 사랑하기에 어제를 사랑합니다. 오늘을 사랑하기에 모레와 글피를 사랑으로 맞이합니다. 오늘 땀을 흘리면서 어제 흘린 땀을 즐거이 되새깁니다. 오늘 땀을 흘리면서 모레와 글피에 흘릴 내 좋은 땀을 곰곰이 꿈꿉니다.


  선물로 사진을 나누는 기쁨이란, 오늘 내 삶을 더없이 아름다이 누리면서 그지없이 즐거이 빛내고픈 사랑을 빚는 속삭임입니다. (4345.4.4.물.ㅎㄲㅅㄱ)


― 100번의 뉴욕 프러포즈 (정상구 사진·글,포토넷 펴냄,2011.4.11./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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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을 쓴다

 


  바람이 고요한 날 햇살이 따사로우면 한겨울에도 한겨울 아닌 봄과 같구나 하고 느낀다. 바람이 매서운 날 햇볕마저 구름에 가리고 빗방울까지 들으면 한봄에도 한봄 아닌 겨울과 같구나 하고 느낀다.


  며칠 동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세차게 부는 바람은 우리 마당가 후박나무 가지를 뒤흔들 뿐 아니라 동백나무 새 꽃봉우리까지 뒤흔든다. 이 바람에 꽤 많은 꽃봉우리가 떨어진다. 활짝 피어난 꽃봉우리가 떨어지고, 이제 막 터지려던 꽃봉우리가 떨어진다. 퍽 일찍 꽃봉우리 터뜨리고 나서 시든 녀석도 떨어진다.


  우리 집 뒤꼍에서 자라는 매화나무는 다른 집보다 훨씬 늦게 꽃봉우리를 터뜨린다. 가지마다 촘촘하게 피어난 꽃송이를 올려다보면서, 우리 집에서 매실을 잔뜩 얻을 수 있겠네 하고 생각했는데, 이 된바람을 여러 날 겪고 보니, 매실로 달리려 하다가 그만 여물지 못한 채 바람에 떨어지는 알맹이도 꽤 되겠다고 느낀다. 매실을 얻는다면, 바람을 견딘 매실을 얻는 셈이요, 매실을 누린다면,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들인 매실을 누리는 셈이다.


  논둑을 걷는 내 몸을 휘감아 나를 멀리 날려 보내려 하던 바람을 떠올린다. 작은 아이들은 논둑을 걷다가 이 바람을 맞았다면 그만 논바닥으로 폴싹 자빠졌을까.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 모진 바람에도 마늘밭 김매기를 하다가 그만 아이구야 하면서 옆으로 풀썩 넘어지기도 할까. 드센 바람이 온 마을을 휩쓰는 동안 들새와 멧새 지저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새들은 대단한 바람이 감돌 적에는 잔뜩 웅크리고 서로서로 기대면서 포근한 햇살과 살가운 바람이 되기를 기다릴까. 새들은 대단한 바람이 휘몰아칠 적에 이 바람을 따라 하늘 높이 휘휘 돌면서, 가벼운 몸뚱이를 바람한테 맡기며 너른 마음이 될까.

  산들바람도 좋고, 칼바람도 좋다. 한들바람도 좋고, 마파람과 하늬바람도 좋다. 바람이 뚝 그친 아침녘 노랗게 빛나는 해를 바라본다. 이른아침부터 새들 노랫소리 가득하다. (4345.4.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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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눈은 엄마한테

 


  면소재지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놀이터가 있다. 아이들과 이곳에서 다리쉼을 하며 한숨을 돌린다. 아이 어머니가 쇠막대를 밟고 올라가는 놀이기구를 탄다. 둘째가 어머니를 올려다본다. 땅으로 태어난 지 열 달째 되면서 무언가 붙잡고 꽤 씩씩하게 설 수 있는 아이는, 쇠막대 가장 낮은 자리를 붙잡고 홀로 서서 어머니가 왜 저기에 있는가 하고 올려다본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이 아이들이 스스로 우뚝 서는 때까지 곁에서 조금도 떨어질 수 없이 살아가리라. (4345.4.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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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드롭스 2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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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는 밖에 못 나가지 싶다
 [만화책 즐겨읽기 136] 우니타 유미, 《토끼 드롭스 (2)》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온누리 모든 어른은 모두 어린이로 지낸 나날을 거쳐 어른이 되지만, 막상 어른이 된 뒤에 어린이 삶을 아끼거나 헤아리는 마음을 건사하는 사람은 뜻밖에 몹시 적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오늘날 초·중·고등학교에서 어린이 삶을 지키는 일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초·중·고등학교 교사뿐 아니라,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어버이 또한 어린이 삶을 지키자고 생각하지 못하기 일쑤라고 느낍니다.


  아이가 시험성적 잘 나오도록 이끄는 일은 교육이 아니고 양육도 아닙니다. 아이가 더 높은 학교에 더 높은 성적으로 들어가도록 이끄는 일은 사랑도 아니고 믿음도 아닙니다. 아이한테 시험공부 익히도록 하는 일은 ‘시험공부 길들이기’입니다. 아이한테 삶을 가르칠 때에 비로소 ‘가르침’입니다. 아이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함께 살아갈 때에 비로소 ‘사랑’입니다.


- “저기, 나 부엌칼 갖고 싶어.” “뭐? 아직 이른데.” “안 일러! 텔레비전 보면 애들도 요리한단 말이야! 어린이 용도 팔아.” “진짜? ……. 넌 요리하는 게 재밌냐?” “응!” “생각해 볼게.” “뭐야∼.” (45∼46쪽)
- “안아 주기 정도야 앞으로도 얼마든지 해 줄게.” (204쪽)

 

 


  면소재지나 읍내에 마실을 나가고 보면, 고작 초등학생밖에 안 된 아이들이 과자나 빵을 먹고는 비닐 껍데기를 뒤에 톡 던집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도 초콜릿 껍데기이든 무어든 아무렇지 않게 버립니다. 골목이나 빈터에서 몰래 담배를 태우는 푸름이 또한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립니다. 어쩜, 이 아이들이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는가 슬프지만, 이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가르친다 하는 어른 모두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겠지요.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부터 말과 넋과 삶 모두 아름다이 여미지 못하겠지요.


  아이들이 사투리, 곧 고장말을 쓰는 까닭은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이 고장말, 곧 사투리를 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사투리(고장말)를 쓰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아요. 둘레 어른들이 말씨를 이끕니다. 아이들이 서울말을 쓰는 까닭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둘레에서 마주하는 어른이 서울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거칠게 말하거나 마구잡이로 말하는 까닭은, 아이들 어버이와 둘레 어른과 학교 교사 모두 거칠게 말하거나 마구잡이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사랑스레 말하거나 곱게 말할 줄 안다면, 아이들 어버이와 둘레 어른과 학교 교사 모두 사랑스레 말하거나 곱게 말할 줄 알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는 딱히 교과서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교과서 없어도 되는 배움터입니다. 교사 모습이 곧바로 교과서이니까요. 어버이 삶이 고스란히 교과서 구실을 하니까요.


  집에서 어버이가 꾸리는 여느 살림이 아이들한테 교과서입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여느 때에 내뱉는 말마디가 아이들한테 교과서예요. 아이들이 멋을 부리려 한다면, 어버이와 교사가 멋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돈에 눈이 돌아간다거나, 동무를 괴롭힌다거나, 슬프거나 못난 짓을 한다면, 어버이와 교사부터 돈에 눈이 돌아가거나 이웃을 괴롭히거나 슬프거나 못난 짓을 하기 때문이에요.

 

 


- “고맙지만 이거, 나 아무래도 밤에는 밖에 못 나가지 싶다. 아직 여섯 살이거든. 우리 집 애.” “카, 카와치 선배, 혹시 그 후로 한 번도 술자리 못 갔어요?” “응. 아예 밖에 못 나간다니까. 가끔 집에서 혼자 찔끔 마시는 게 다야.” (54쪽)
- ‘또 혼자 낑낑대면서 준비해야 하나. 그나저나 초등학교는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지? 동사무소 같은 데 가 봐야 하나? 책상은 또 어디서 산담? 초등학생 정도 되면 여자애들은 자기 방 따로 쓰고 그러지 않나?’ (76쪽)
- ‘그러니까 어른이 지켜봐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혹시 어린애니까 안 좋은 기억도 언젠가 잊어버릴 거라 생각하고 린을 버리고 간 거라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사코 씨 당신을 미워할 겁니다. 최소한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었다면 좋겠는데, 하지만 자기 자식을 버릴 만한 사정이란 게 대체 뭐지?’ (122∼123쪽)


  아무리 우악스럽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갈 때부터 몸가짐을 고치기 마련입니다. 제아무리 집 바깥에서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 앞에 마주설 때에는 한껏 따사로운 얼굴과 말씨와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기 마련입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보여주는 모습이 아이한테 낱낱이 스며드니까요. 아이는 제 어버이 사랑부터 받아먹으니까요. 아이는 어버이 사랑과 둘레 이웃 사랑을 나란히 받아먹을 때에 무럭무럭 자라니까요.


  사랑을 못 받아먹는 아이는 다른 모습을 받아먹습니다. 이를테면, 미움을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괴롭힘이나 슬픔을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짜증이나 골부림을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등치기나 시샘을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받아먹으며 살아가도록 하는가는, 오로지 어버이한테 달립니다. 여기에, 학교 교사한테 달립니다. 어버이가 슬기롭지 못하다면 학교 교사가 슬기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 교사가 슬기롭지 못하다면 어버이가 슬기롭게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합니다.


  둘 모두 어긋날 때에 아이들은 고단합니다. 둘 모두 어긋나기 일쑤인 터라, 오늘날 이 땅 아이들이 자꾸 엇나거나 슬픈 짓을 일삼습니다.


- “뭐? 영어학원? 그런 델 다녀? 니네 애 아직 우리 말도 제대로 못 하잖아. 두 살이라고 했었지?” “네, 전혀 못 하죠. 뭐, 저도 마찬가지지만. 마누라가 이상하게 삘 받아서요. 무서울 정도라니깐요. 자기는 우리 나라 책도 매끄럽게 못 읽으면서.” (59쪽)
- “지금은 코우키한테 제 입장만 강요하고 있는 셈이니까, 쉬는 날만큼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우선은 장래보다 코우키의 현재를 지켜봐 주고 싶어요.” (65쪽)
- ‘지금의 린과의 시간, 지금 린이 좋아하는 일, 이라. 그래, 장래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그 녀석에게는 나밖에 없으니까, 그 사실만은 잊지 말자.’ (68∼69쪽)

 

 


  아이들은 모두 하느님으로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모두 하느님이란 셈입니다. 게다가, 나 또한 하느님으로 태어났어요. 내 옆지기도, 내 이웃도, 내 동무도, 한 마을 누구나, 이 나라 누구라도 하느님으로 태어났어요. 끔찍하다 싶은 정책을 마구 밀어붙이는 정치꾼이라 하더라도 맨 처음에는 하느님으로 태어났습니다. 전쟁무기 끝없이 만들 뿐 아니라 군부대를 더 늘리려 하는 사람 또한 꽃등에는 하느님으로 태어났어요.


  착한 일을 즐기며 참다운 삶을 누리는 어른만 하느님으로 태어나지 않아요. 궂은 일에 허덕이며 미운 짓으로 제 살 갉아먹는 어른 또한 하느님으로 태어났어요.


  다만, 스스로 하느님으로 태어난 줄 잊습니다. 스스로 하느님으로 태어난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스스로 하느님으로 태어났으나, 막상 하느님답게 사랑을 꽃피우는 길을 어버이와 교사와 이웃 누구도 열거나 베풀지 못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기까지 내 가슴속 하느님 넋이 살아나지 못했다 하기에, 내 아이 또한 이 아이 가슴속 하느님 넋이 살아나지 못하게끔, 어버이로서 바보짓을 하는 일이란 아름답지 않아요. 내가 어른이 된 오늘날까지 사랑보다 미움을 더 받았다 하더라도, 사랑보다 슬픔을 더 많이 받아먹었다 하더라도, 나는 내 아이한테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어요. 나는 내 아이가 사랑을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기를 빌어요. 내가 틀림없이 받았을 테지만 제대로 되새기지 못하는 사랑도 내 아이가 물려받고, 내가 어렴풋하게 떠올리는 고마운 사랑도 내 아이가 이어받기를 빌어요.

 

 


- “저기, 린 얘기로는 밤에는 당신 집에서 둘이 같이 있었다던데요.” “네.” “그런데 당신은 밤에 외출을 했었다고요?” “아, 제가 말한 밤이란 건 한밤중이에요. 린이 잠들고 난 후에. 그것도 아주 가끔. 소이치 씨가 봐줄 때도 있었고.” “아이만 집에 남겨 놓고 외출하면 법에 저촉되는 나라가 있다는 건 아십니까?” “그, 그건 외국 얘기고, 여긴 일본이잖아요?” “저는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게 아닙니다. 린은 아직도 한밤중에 종종 깨곤 해요.” (160∼161쪽)
- “제 생각에는 남이 멋대로 정해 버리는 게 더 잔인해요. 우선 린 생각을 자세히 들어 보고, 그 다음에 둘이 함께 결정할 겁니다.” (172쪽)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08) 둘째 권을 읽습니다. 커다란 도시에서 돈을 더 벌어들이는 일에 빠지기만 했을 뿐, 정작 삶도 사랑도 사람도 헤아리지 않고 지내던 서른 살 가까운 사내가 갑작스레 어린이를 하나 떠맡은 나날을 보내며, 참 여러모로 갈팡질팡합니다. 첫째 권 못지않게 이래저래 부딪히고 깨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갈팡질팡하면서 그리 버거워 하지 않아요. 갈팡질팡하는 나날이지만 날마다 새롭게 거듭납니다. 늘 갈팡질팡하면서 이제껏 이녁이 제 어버이한테서 얼마나 깊고 너르며 좋은 사랑을 물려받았는가를 깨닫습니다. 이제껏 받은 사랑뿐 아니라, 앞으로 누리고픈 사랑을 ‘갑작스레 떠맡은 아이’가 앞으로 오래오래 누리면서 어여삐 자랄 수 있기를 꿈꿉니다.


  참 좋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내 자리를 돌아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서른 살 가까운 사내가 보여주는 삶이 좋다고 여긴다면, 나부터 내 삶자리에서 우리 살붙이들하고 어울리는 하루하루를 참말 좋게 여기며 기쁘게 누릴 노릇이로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받아먹을 가장 좋은 밥이 무엇인가를 날마다 새로 돌아보고 찬찬히 되새겨야겠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받아먹을 가장 좋은 밥이라면, 어버이 또한 즐겁게 받아먹을 좋은 밥이 되겠지요. 아이들이 누릴 가장 좋은 삶이라면, 어버이부터 스스로 누릴 가장 좋은 삶이 될 테지요.


  좋은 길을 걷고 좋은 생각을 하며 좋은 날을 누릴 사람입니다. 좋은 터를 닦고 좋은 마을을 이루며 좋은 살림을 꾸릴 사람입니다.


- ‘이때 이미 난, 린이 독립하고 나면 외로워지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72쪽)
- ‘요 몇 달 간, 내 안에서 소중한 것들의 비율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 같다. 단지 그것뿐이다.’ (82쪽)

 


  어린이와 함께 지내는 나날을 보내야 하는 어른은 이제부터 ‘밤마실’을 못합니다. 동무들과 얼크러져 푹 빠지던 술마시기도 못합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회사일도 줄입니다. 집안일에 더 마음을 쏟습니다. 아이하고 나눌 이야기를 생각하고, 아이가 기쁘게 여길 꿈을 그립니다.


  이 땅 모든 어른이 어린이였다면, 곧 이 땅 모든 어른이 ‘하느님으로 태어난 어린이’였다면, 어른들 둘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하느님으로 태어난 어린이’가 어떤 나라를 누리고 어떤 터전에서 어떤 사랑을 받아먹을 때에 참으로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기를 빕니다. 아이들이 누릴 좋은 삶과 마찬가지로, 어른들부터 누릴 좋은 삶이란 어떤 모습인가 하고 꿈으로 그릴 수 있기를 빕니다.


  꿈을 꾸지 않으면 삶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꿈을 꾸는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내 하루가 즐겁지 않습니다. (4345.4.3.불.ㅎㄲㅅㄱ)


― 토끼 드롭스 2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애니북스 펴냄,2008.3.28./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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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0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딸아이 입에서 제 말투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움찔 놀라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큰일났다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된장님의 글 중간에,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이 아름다와보입니다.
모두 동일하게 살 수는 없지만, 된장님의 강한 의지와 신념이 저는 항상 존경스럽습니다.
건강 챙기셔요, 환절기 감기 무섭다고 하네요.

파란놀 2012-04-04 07:06   좋아요 0 | URL
모두들 좋은 삶 누리면 기쁘겠고,
저도 하루하루 좋은 나날 누려야지요~
 


 논둑꽃 글쓰기

 


  논둑에 덩그러니 한 송이 노랗게 꽃송이 터뜨린 꽃은 유채꽃일까. 또는 갓꽃일까. 한 송이 또는 두어 송이 때로는 여러 송이가 한 곳에 무리지어 노랗게 꽃봉우리 터뜨린다. 줄지어 피어나는 꽃송이가 아니라 한다면, 씨앗 한 알이 바람을 타고 날다가 이리로 떨어졌으리라. 또는 작은 들새 깃털에 유채씨가 묻어 곳곳에 퍼졌을는지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바람결에 실려 곳곳에 한두 씨앗 퍼지며 노랗게 피어나는 유채꽃이나 갓꽃은 어떠한 꿈을 안았을까. 작은 들새 깃털에 살짝 묻어 멀리멀리 날아가다가 톡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는 노랗게 꽃봉우리 터뜨리는 유채꽃이나 갓꽃은 어떠한 사랑을 나눌까.


  아스팔트 덮인 시골길 끝자락에 용케 뿌리를 내린 숱한 들꽃과 들풀을 본다. 시멘트로 덮은 논도랑 구석 미처 시멘트로 덮지 않은 자리에 용하게 뿌리를 뻗은 숱한 들꽃과 들풀을 본다. 시멘트 도랑이라 하더라도 흙 몇 줌 들러붙은 데 있으면, 이런 자리에까지 들꽃과 들풀이 깃든다.


  흙은 어디에서고 수많은 목숨한테 좋은 보금자리 노릇을 한다. 흙은 어디에서나 수많은 목숨이 새로 숨을 이을 수 있도록 좋은 밥을 내어준다. 둘째를 품에 안고 논둑을 걷다가 살짝 논둑에 앉아서 함께 노란 꽃을 바라본다. 보송보송한 흙을 밟을 수 있는 논둑이 고맙다. 흙논둑에서 노란 꽃송이 아이하고 나란히 바라볼 수 있는 나날이 즐겁다. 예쁜 아이들과 살아가며 예쁜 꿈을 꾼다. 예쁜 살붙이와 얼크러지며 예쁜 사랑을 빚는다. (4345.4.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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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4-03 06:06   좋아요 0 | URL
애기똥풀 아닌가요??

파란놀 2012-04-03 07:31   좋아요 0 | URL
애기똥풀은 꽃이 저렇게 모여 나지 않아요 ^^;;;
꽃 모양도 살짝 다르고, 무엇보다 잎사귀가 달라요~~

hnine 2012-04-03 17:54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
저도 유채꽃인가 봤더니 꽃봉오리 모양이 유채꽃과 다르네요. 잎 모양을 보면 갓꽃 같기도 하고, 아이쿠, 궁금해라. 알아내셔서 저 가르쳐주세요~

파란놀 2012-04-05 02:02   좋아요 0 | URL
애기똥풀은 워낙 꽃잎과 풀잎과 줄기가 남달리 생겨서
한 번 보면 척 알아챌 수 있어요.
그리고 키가 곧게 크지는 않고 옆으로 퍼지곤 해요.

이른봄 부르는 들꽃은 생김새가 엇비슷하며
이름 다른 풀이 많아
잘 모르겠지만,
저희도 한 해 두 해 살아가며
익숙해지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