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햇살 책시렁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4.4.

 


  봄햇살이 책시렁으로 스며든다. 겨울에는 골마루 쪽으로는 햇살이 들지 않았다고 느꼈는데, 아마 봄부터 가을까지는 골마루 쪽으로도 햇살이 드는구나 싶다. 옛 초등학교 건물이기 때문일까. 햇살이 아주 포근하게 스며든다. 옆지기가 보던 책을 골마루에 새로 세운 커다란 책꽂이에 꽂자고 생각하며 하나하나 꽂는데, 곱게 스며드는 저녁햇살을 느낀다. 하루에 한두 시간 바지런히 꽂는다. 한두 시간쯤 책을 꽂노라면,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생각이 들지만, 날마다 조금씩 하노라면 어느새 일을 마무리짓겠지.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천천히 오래도록 할 뿐이다. 100쪽짜리 책이든 300쪽짜리 책이든 날마다 조금씩 읽으며 한 권을 마무리짓는다. 한꺼번에 읽는 책이 아니라 차근차근 읽는 책이요, 차근차근 되새기면서 차근차근 삶을 일구는 밑거름으로 삼는 책이다.


  좋은 봄햇살을 받는 책들마다 좋은 기운이 찬찬히 아로새겨질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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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4-0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우라 아야꼬는 지금의 60~70대 여성들이 젊은 시절 좋아한 작가죠.빙점!
김남주, 프란츠 파농 책도 눈에 들어오네요.

파란놀 2012-04-08 06:25   좋아요 0 | URL
아직 책을 제대로 끌르지도 못했어요.
차근차근 잘 갈무리해야지요~

진주 2012-04-09 00:06   좋아요 0 | URL
괜시리 노이에자이트님 꼬리잡기를 합니다^^

미우라 아야꼬-제가 참 좋아하는 작가인데...
('길은 여기에'자서전을 보면서 비로소 일본나라 사람을
일본놈이 아닌 일본인으로 인정하게 된 책이죠ㅋㅋ
애국심 충만하던 여고시절에 그 책을 만났거든요)

노이에자이트 말씀대로라면
저는 너무나 조숙했어요. 60~70대 여성들이라닠ㅋㅋ
조숙해도 너무 조숙했었군요, 제가 ㅎㅎㅎ

카스피 2012-04-1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넘 많으시네요.책장은 직접 다 만드셨는지....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저 책들을 보니 인천에 있었던 된장님 책방은 이제 완전히 문을 닫으셨겠지요?
 
나츠코의 술 애장판 6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누구를 사랑하면서 일을 하나요
 [만화책 즐겨읽기 111] 오제 아키라, 《나츠코의 술 (6)》

 


  무엇을 남기는 삶일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옆지기를 만나고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날을 누리면서, 내가 남길 가장 아름다운 한 가지라면, 돈도 책도 집도 아닌 사랑과 꿈과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내가 옆지기와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을 때에도 이 한 가지를 깨달았을까 하고 돌아보면, 절로 고개를 젓습니다. 어쩌면 숱한 갈림길과 가시밭길과 에움길을 거치며 깨달았을는지 몰라요. 오래 걸리거나 더디 걸리더라도 이 길로 왔을는지 모릅니다.


  사랑이 없는 돈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책은 읽을 값어치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집은 메마르며 재미없습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나는 사랑을 담아 돈을 벌고 나누며 누리는 길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나부터 꿈을 아끼고 북돋우며 책 하나 예쁘게 빚는 길을 좀처럼 살피지 못했습니다. 나 스스로 좋은 이야기 알뜰살뜰 꾸리며 집살림 돌보는 길을 아직 살가이 느끼지 못합니다.


- “잊을 수 없어요. 공중살포가 있던 그날 아침. 길가에 널려 있던 죽은 나비며 곤충들, 나무에서 떨어져 버둥거리던 작은 새. 농약을 뒤집어쓰고는 눈 통증이며 구역질, 두통을 호소하던 아이들.” (17쪽)
- “논의 턱도 없애고 좁은 논두렁을 넓혀 트랙터나 콤바인을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거야. 벼농사에 있어서 에너지 절약, 생산 단가 절감 사업이랄까.” “그, 그럼 이거, 좋은 건가?” “좋긴 개뿔! 보고도 모르겠냐, 나츠코! 저 기계가 논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저건 비옥한 흙이고 메마른 흙이고 가리지 않아!” (23쪽)


  글을 쓸 때이든 흙을 만질 때이든 자전거를 탈 때이든 길을 걸을 때이든 늘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를 사랑하면서 글을 쓰나. 나는 누구를 생각하며 흙을 만지나. 나는 누구와 살아가며 자전거를 타나. 나는 누구와 꿈을 나누며 길을 걷나.


  낮나절, 나를 뺀 세 식구가 고요히 잠든 모습을 십 분 남짓 바라보았습니다. 네 식구 가운데 세 식구가 고요히 잠드니 이 집안이 이렇게 고요하구나, 그야말로 고요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홀가분하고 고요할 때에 그동안 미룬 내 글쓰기를 다스려 볼까, 그동안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내 사진을 갈무리해 볼까 싶었는데, 막상 글을 쓰거나 사진을 갈무리하려다 보니 금세 졸음이 쏟아집니다. 옆지기와 두 아이가 잠을 즐기기까지 이래저래 복닥이며 치다꺼리하느라 힘을 많이 쏟았으니, 나 또한 곁에 나란히 드러눕고 싶더군요.


  그러면 아예 네 식구 다 드러누워 더없이 조용한 집안이 되도록 할까 생각하며 나도 둘째 곁에 누워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누운 지 일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첫째 아이가 칭얼거리며 깹니다. 아이고, 이 녀석, 쉬 마려우면 그냥 일어나서 예쁘게 쉬를 하면 좋으련만, 꼭 그렇게 징징거려야 하니. 그러나, 참말 첫째 아이는 모처럼 낮잠을 자며 고단함을 씻는데, 어째 쉬가 마려워 꿈과 잠을 모두 깨고 일어나야 하니 이렇게 눈물나도록 징징거려야 할밖에 없는지 몰라요. 아쉬우니까, 서운하니까. 그래, 슬프니까.


  둘째 아이는 누나가 징징거리는 소리를 내니 눈을 번쩍 뜹니다. 누나 따라 동생도 징징거립니다. 쉬를 다 눈 첫째를 누여 이불을 여밉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달래고는 곧장 둘째한테 달려가서 품에 안고 어릅니다. 토닥토닥 두들기고 나즈막하게 자장노래 부릅니다. 첫째 아이 징징거림은 이내 잦아듭니다. 둘째 아이도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아주 곯아떨어졌다 싶을 무렵 비로소 방바닥 이부자리에 내려놓습니다. 이제 나도 겨우 방바닥에 등을 댑니다.


- “게다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포장 정비로) 길을 넓히는 만큼 논의 면적은 작아졌어. 손해를 본 건지 이득을 본 건지.” “아무도 기뻐하지 않는 일에 나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일이 30년 가깝게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어.” “물론 좋아라 기뻐하는 녀석도 있지. 농기구 메이커와 토목업자들.” (28∼29쪽)
- “난 모르겠어, 진키치. 정말 모르겠어. 고다 씨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작물을 짓는 사람이, 왜 외톨이 섬처럼 고립되어야 하는 거지? 공중살포만 해도 그래. 매년 몇 번씩은 꼭 일어나는 헬리콥터 추락사고. 몇 명은 꼭 농약을 뒤집어쓰고 병에 걸리거나 죽거나 하는데, 어째서.” “쌀의 연간 생산량 3조 8천억 엔. 그리고 농기계 값이 8천 억! 농약 값 천 8백 억! 비료 등 그 외 비용을 전부 합치면 1조 엔 이상! 알겠냐, 나츠코? 쌀은 생산량의 1/4이 기업의 먹잇감이 되는 거야!” (35∼36쪽)


  한갓지게 쉬자 생각하면서도 한갓지게 쉬지 못합니다. 이틀째 고뿔에 시달리는 둘째 곁에 누워 가만히 지켜보며 누웠다 싶더니, 마당에 널어 놓은 빨랫대가 갑자기 분 바람에 쿵 넘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한 번 일으켜 바로 세우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이윽고 또다시 바람이 휭 불며 쿵.


  시계를 봅니다. 멧등성이 너머 해가 어느 만큼 걸렸는가 올려다봅니다. 히유 한숨을 쉬고는 빨래를 걷습니다. 더 두어 햇살 더 먹도록 할 수 있지만, 아이 곁에서 자칫 잠들다가는 지는 햇살 차가운 기운을 받을까 싶습니다. 기저귀를 걷고 옷가지를 걷습니다. 오늘 빨래한 이불도 걷어서 갭니다.


  문득 울타리 너머 마늘밭을 바라봅니다. 이웃 할머니는 김매기를 하십니다. 아침에 나오셔서 여태 김매기를 하십니다. 쉬엄쉬엄 하신다지만 김매기를 하느라 하루 예닐곱 시간 밭뙈기에서 지내십니다. 할머니가 젊은 아주머니라면 더 일찍 김매기를 마무리지었을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같은 사회 흐름이라면, 굳이 김매기를 안 하고 풀약을 칠 수 있겠지요. 나라에서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이니 한중자유무역협정이니 맺으면서 농사짓기마저 국가경쟁력을 들먹이고 더 값싼 공산품 수출을 들먹이잖아요.


- “나, 꼭 공중살포를 중지시킬 거예요! 아이들을 위해, 벼를 위해, 흙을 위해. 이것만은 꼭.” (42쪽)
- “그렇지. 나도 농약을 많이 뿌릴수록 부지런하고 훌륭한 농사꾼이라고 믿었었네. 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됐지? 난 내 동생을 죽게 했어. 그게 벌써 5년도 더 된 일이지. 동생이 죽은 후로 전국 각지에서 농약 중독 사고가 줄을 이었어.” (57쪽)


  할머니들은 먼먼 옛날부터 풀약 없이 두 손으로 김을 잡았습니다. 할머니들이 풀약이나 비료를 쓴 나날은 아주 짧습니다. 1960년대에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이 나라 시골마을에 비로소 풀약이랑 비료가 들어왔습니다. ㅂ씨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ㅈ씨 군사정권과 ㄴ씨 군사정권이 이어지는 동안 온 나라 시골마을은 아주 풀약이랑 비료로 망가졌습니다. 이동안 푸성귀 값이랑 곡식 값은 꽁꽁 묶입니다. 시골사람 땀방울 밴 푸성귀와 곡식 값은 하나도 못 오르면서 공산품과 공공요금 값은 끝없이 치솟습니다.


  마늘밭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우리 집 마당 가장자리 꽃밭에서 새잎을 돋우는 산초나무를 바라봅니다. 산초나무도 겨울을 견디고는 새잎을 내려 합니다. 온 들판 풀과 나무는 새잎 푸르게 내놓으며 봄누리 빛깔을 알록달록 가꿉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ㅂ씨와 ㅈ씨와 ㄴ씨 군사정권을 지나 민주정권이라 하는 나날을 보내는 요즈음까지, 이 나라 푸성귀 값이랑 곡식 값이 ‘공산품과 공공요금 값’과 어깨동무하며 올랐을 때에, 이 나라 사람들은 밥을 굶어야 했을까요. 쌀값이 너무 비싸 끼니를 걸러야 했을까요.


  아직까지 쌀 10킬로그램에 2만 원이 채 안 되기까지 합니다. 농약을 안 친 쌀이라 하면 10킬로그램이 4만 원쯤 합니다. 유기농으로 거둔 쌀이라 하면 10킬로그램이 5만 원 남짓 받겠지요. 그런데, 참말 얼마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농약 안 친 쌀’이든 ‘똥오줌 거름(유기농)으로 거둔 쌀’이든 값을 더 받아야 한다고 여긴 한국사람이 대단히 적었어요. 아직까지도 무농약 유기농 쌀이 농약 왕창 뿌리고 비료 가득 먹인 쌀보다 값을 더 받아야 하는 대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도시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냥 값싸게 먹을 만한 쌀’을 사다 먹으려 할 뿐입니다.


  스스로 갉아먹는 셈이에요. 스스로 깎아내리는 셈이에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똑같은 땀방울(노동력)이라고 하지요? 한 사람 목숨값은 숫자나 돈으로 따질 수 없다지요? 그러면, 도시 노동자와 공장 노동자만 제 대접과 제 값어치를 받아야 할까요? 오늘날 우리 겨레는 무언가 크게 잊거나 잃지 않나요?


  스스로 사랑할 삶을 잊거나 잃은 나머지, 한국땅 이웃을 사랑하지 못해요. 한국땅 이웃부터 옳게 바라보며 착하게 사랑하지 못하니, 한국땅으로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를 옳게 바라보며 착하게 사랑하지 못해요. 한국땅 이웃뿐 아니라 내 보금자리 내 아이들 또한 옳게 바라보지 못하잖아요. 내 아이들부터 입시지옥이 될 제도권학교에 밀어넣을 뿐이잖아요. 내 아이들부터 착한 삶과 참다운 슬기와 고운 넋을 보듬으면서 즐거이 살아가도록 이끌 어버이로 튼튼히 우뚝 서야 올바르잖아요.


- “저뿐인가요? 아무도 느끼지 못한 거예요? 하늘에서 농약을 뿌리고, 무차별적으로 벌레들을 죽이고, 공중살포가 안전하니 편리하니 말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될 일이 아닐까,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렇게 감상에 젖어선 벼농사를 지을 수 없어.” “감상이 없다면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죠? 이 손으로 흙을 갈고, 모를 키우고, 논에 심고, 뜨거운 여름, 땀을 흘리며 그 성장을 확인하고, 가을, 황금빛으로 익은 벼이삭을 보는 기쁨! 그리고 그 벼를 베는 흥분!” (62∼63쪽)


  모든 시골마을 할머니들이 손으로 예닐곱 시간 김매기를 하지는 않아요. 훨씬 더 많은 여느 시골마을 할머니들은 할아버지와 둘이서 풀약을 쳐요. 젊은이들은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서로 툭탁툭탁 치고받으며 돈을 더 벌려고 악다구니예요. 젊은이들은 ‘무농약 유기농’ 푸성귀와 곡식을 일구려고 일흔이나 여든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허리 구부정해지며 흙을 일구는지 헤아리지 않아요. 초등학교에서 흙일을 가르치나요? 중학교에서 무농약 흙일을 가르치나요? 고등학교에서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는 흙일을 가르치나요?


  아이들 머리에 집어넣는 지식은 화학비료랑 똑같다고 느껴요. 아이들 몸에 집어넣는 예방주사는 화학농약이랑 똑같다고 느껴요. 아이들 마음에 집어넣는 도시 물질문명은 화학항생제랑 똑같다고 느껴요.


  나부터 아직 참답고 착하며 곱게 추스르지 못하지만, 아이들하고는 사랑스럽고 즐거우며 애틋한 이야기꽃 피우는 나날을 누리고 싶어요. 우리 스스로 곱게 살아가는 나날을 빚고 싶어요. 우리 스스로 흙에서 먹을거리 한 줌 일구고 싶어요. 차근차근 흙을 살리고, 집을 살리며 몸과 마음을 살리고 싶어요. 한두 해 사이에 뚝딱 해치우는 흙일이 아닌, 두고두고 가꾸면서 사랑하는 흙일을 익히고 싶어요. 아이들이 물려받을 사랑이란 어버이인 나부터 날마다 기쁘게 맞아들이는 사랑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 “그렇지 않아! 2만 8천 엔이면 다들 의욕을 불태우고 공중살포도 반대해. 그 어려운 유기농 재배도 하겠다고 나서고. 농약 문제니 농사짓는 기쁨 따윈 관심도 없이 모든 것이 후다닥 결정되고 말았어. 농사도, 술을 빚는 것도, 마을을 일으켜세우는 것도, 돈만 있으면 아무 문제없이 다 해결되는 거야. 공중살포가 중지된 건 기쁘지만, 조금도 이겼다는 느낌이 안 들어. 다들 돈을 좇아 움직이는 것뿐. 무엇 하나 달라진 건 없어.” (215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1) 여섯 권째를 읽습니다. 만화책 《나츠코의 술》은 책이름처럼 ‘술’을 이야기하는 만화인데, 여섯 권째가 되도록 술 이야기보다 흙일 이야기가 훨씬 자주 더 많이 나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만화는 ‘놀랍고 아름다운 일본술’ 이야기는 거의 들려주지 않고 ‘수수하고 투박한 흙일’ 이야기만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게다가, 여섯 권째에 이르니, 흙일을 하는 사람 스스로 누구를 사랑하며 흙을 아끼려 하느냐 하는 대목을 짚어요.


  좋은 술은 좋은 쌀에서 나오니까요. 좋은 쌀은 좋은 흙에서 나오니까요. 좋은 흙은 좋은 땀에서 나오니까요. 좋은 땀은 좋은 삶에서 나오니까요. 좋은 삶은 좋은 사랑에서 나오니까요. 아, 그러면 좋은 사랑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4345.4.6.쇠.ㅎㄲㅅㄱ)


― 나츠코의 술 6 (오제 아키라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10.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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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71) 직관적 1 :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그 영혼이 태아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 단지 우연이 아니라 엄청난 치유와 은혜를 지닌 의도와 목적이 있는 것이라는 직관적 지식이 깔려 있었다
《조안 엘리자베스 록/조응주 옮김-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민들레,2004) 64쪽

 

  “그 영혼(靈魂)”은 “그 넋”으로 손보고, “연결(連結)되어 있다는 말을 전(傳)하기 위(爲)해”는 “이어졌다는 말을 들려주려고”나 “이어졌다는 말을 하려고”로 손보며, “나타났다는 것을”은 “나타났음을”이나 “나타났다고”나 “나타난 줄을”로 손봅니다. ‘단지(但只)’는 ‘다만’이나 ‘그저’로 다듬고, “엄청난 치유(治癒)와 은혜(恩惠)를 지닌 의도(意圖)와 목적(目的)이 있는 것이라는”은 “널리 달래고 사랑하려는 뜻과 생각이 있다는”으로 다듬으며, “깔려 있었다”는 “깔렸다“로 다듬어 봅니다.


  ‘직관(直觀)’은 “(1) 감관의 작용으로 직접 외계의 사물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을 얻음 (2)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을 뜻하고, ‘직관적(直觀的)’은 “판단이나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을 뜻한다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직접적으로 파악하는”이 ‘직관적’인 셈입니다. 그러면 ‘직접적(直接的)’이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을 다시 들춥니다. 이 한자말은 “중간에 제삼자나 매개물이 없이 바로 연결되는”을 뜻한다 해요. 그러니까, ‘직관적 = 바로 연결하여 파악하는’을 뜻하는 한자말이요, 한국말로 더 쉽게 풀이하면 ‘직관적 = 바로 이어서 헤아리는’인 셈이고, 간추리자면 ‘직관적 = 곧바로 보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직관적 판단을 하다
→ 곧바로 생각하다 . 곧장 생각하다 . 막바로 생각하다
 직관적인 인식
→ 곧바로 깨닫기 . 곧장 느끼기 . 막바로 알아차리기

 

  찬찬히 생각합니다. 어떤 낱말을 골라서 써야 알맞고, 어떤 낱말을 가려서 이야기를 빛내야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을 곧바로 드러내기 좋은 낱말을 돌아봅니다. 내 넋을 누구나 금세 알아차리도록 이끄는 말마디는 어떠한가 헤아립니다.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 곧바로 알아차렸다 . 금세 알아차렸다 . 바로 알아차렸다

 

  더 쉽게 써야 하는 글이라기보다 한결 알아차리기 좋게 쓸 글이면 즐겁다고 느낍니다. 여러모로 꾸미는 글보다 살가이 보듬거나 보살피는 손길로 추스르는 글이면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한자말 ‘직관’이 쓸 만하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말 ‘바로보기’를 쓸 수 있어요. ‘바로생각’처럼 새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로 생각하는 힘을 스스로 끌어올리는 일이 훨씬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4337.11.13.흙./4345.4.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그 넋이 태아와 이어졌다는 말을 들려주려고 나타난 줄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 그저 우연이 아니라 널리 달래고 사랑하려는 뜻과 생각이 있다고 알아보는 지식이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736) 직관적 2 : 직관적으로 느꼈다

 

나는, 아아,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걸 직관적으로 느꼈다
《엔도 슈사쿠/김석중 옮김-유모아 극장》(서커스,2006) 136쪽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걸”은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나 “좋은 사람이라고”로 다듬어 봅니다. 앞에 ‘아아’ 하는 느낌말이 있으니, “이 사람은 좋네, 하고”나 “이 사람은 좋구나, 하고”처럼 다듬어도 괜찮아요.

 

 좋은 사람이라고 직관적으로 느꼈다
→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 좋은 사람이라고 곧바로 느꼈다
→ 좋은 사람이라고 그대로 느꼈다
→ 좋은 사람이라고 문득 느꼈다
 …

 

  보기글에서는 ‘느끼다’라는 말마디를 뒤에서 바로 쓰니까, 굳이 ‘직관적’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있는 그대로 쓰기만 하면 넉넉합니다. 한편, ‘어떻게 느꼈는지’ 힘주어 말하고 싶다면 여러모로 풀어 볼 수 있어요. 곧바로 느꼈다고, 또는 그대로 느꼈다고, 또는 문득 느꼈다고, 또는 불현듯이 느꼈다고, 또는 어렴풋이 느꼈다고, 또는 ……. 사람마다 누군가를 만날 때 받는 느낌이란 다 다르기 마련이니, 이 다 다른 느낌을 ‘느꼈다’ 앞에 살짝 넣어 봅니다.
 (4339.12.4.달./4345.4.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나는, 아아, 이 사람은 좋구나 하고 금세 느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47) 직관적 3 : 직관적으로 작업한다

 

그의 영화들은 늘 어떤 유형성을 보이며 세심하게 조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계획 없이 직관적으로 작업한다고 한다
《박태희-사진과 책》(안목,2011) 158쪽

 

  “그의 영화들은”은 “그가 찍은 영화들은”으로 다듬고, “어떤 유형성(類型性)을 보이며”는 “어떤 틀을 보이며”나 “비슷한 틀을 보이며”로 다듬습니다. “세심(細心)하게 조작(造作)된 것처럼”은 “하나하나 빈틈없이 짠 듯이”나 “꼼꼼하게 짜거나 엮은 듯이”로 손보고, ‘대부분(大部分)’은 ‘거의 모두’로 손봅니다. “계획(計劃) 없이”는 “미리 짜지 않고”나 “미리 생각하지 않고”나 “어떤 틀을 먼저 세우지 않고”로 손질하고, “작업(作業)한다고”는 “영화를 찍는다고”로 손질합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추스른 다음, “그가 찍은 영화들은 늘 비슷한 틀이 보이며 빈틈없이 짠 듯이 보이지만 거의 모두 어떤 틀을 미리 짜 놓지 않고 그때그때 느끼는 대로 찍는다고 한다”처럼 보기글을 통째로 다시 적어 봅니다. 말뜻과 말마디를 한결 또렷하게 밝히면서, 어느 대목을 어떻게 더 추슬러야 좋은지는,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느끼리라 생각해요.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글도 말도 넋도 삶도 한결 넉넉하거나 따사로이 보듬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쏟는 만큼 글이나 말이나 넋이나 삶 또한 더 알차거나 싱그러이 북돋울 수 있어요.

 

 직관적으로
→ 생각나는 대로
→ 떠오르는 대로
→ 느끼는 대로
 …

 

  느낌을 잘 살리면서 넋과 말을 살리면 좋겠습니다. 생각을 잘 추스르면서 꿈과 사랑을 빛내면 기쁘겠습니다. 마음을 잘 가꾸면서 삶과 이야기 또한 아름다이 일구면 고맙겠습니다.


  생각으로 빛내는 말이고, 생각으로 살찌우는 글입니다. 마음이 있을 때에 살리는 말이요, 마음을 활짝 열면서 갈고닦는 글입니다.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그가 찍은 영화들은 어떤 틀을 보이며 빈틈없이 엮은 듯 보이지만, 으레 그 자리에서 느낌을 살려 찍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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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4-06 09:44   좋아요 0 | URL
음...직관적이라는 말은 저도 자주 쓰는 말인데 우리말로 어떻게 쓰면 좋을지, 쉽지 않군요. 말씀하신대로'곧바로 알아차렸다, 금세 알아차렸다, 바로 알아차렸다' 도 좋지만 이말은 알아차린 '시간'이 무척 짧았다는 쪽에 집중되지 않았나 싶어요. '직관'이라는 말에는 그 이상의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파란놀 2012-04-06 12:52   좋아요 0 | URL
'바로'나 '곧'은 시간만 가리키지 않아요.
시간과 장소를 아우르는 낱말이에요.

잘 생각하고 헤아려 보시면
좋은 길을 찾으시리라 믿어요.

hnine 2012-04-07 06:39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바로는 직관적이라는 말은 시간, 장소, 그 외에도 다른 의미가 더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파란놀 2012-04-07 10:48   좋아요 0 | URL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생각하며 쓰지 못해서 그렇지,
'직관적'이라는 낱말에만 여러 가지 뜻이 더 담기지 않아요.
한국사람 스스로 '직관적'을 여러 곳에 쓰기 때문에
여러 가지 뜻이 담기게 돼요.

이와 마찬가지예요.
한국말 '곧'과 '바로' 또한 뜻 테두리가 아주 넓어요.
국어사전을 한 번 살펴보시면,
이 낱말 뜻과 쓰임을 한국사람 스스로 얼마나 모르고
얼마나 못 살리는가를 깨달을 수 있어요.

곧, '곧'과 '바로'가 가리키거나 나타내는 넓고 깊은 테두리를 살피면
'직관적' 같은 말은 아주 쉽게 스스로 풀어낼 수 있어요.
 

묶음표 한자말 168 : 말(言)


여기서 나의 말(言)은 풀 한 포기 흔들지 못한다
《박영근-솔아 푸른 솔아》(강,2009) 126쪽

 

  ‘나의’는 ‘나 + 의’ 꼴입니다. 이 말투는 일본 말투 ‘私 + の’를 한글로 옮겨 적은 꼴입니다. 겉으로 보는 생김새는 한글이지만, 말씨로 헤아리면 한국말이 아닙니다. ‘blue’를 ‘블루’로 적는다 해서 한국말이 되지 않아요. ‘블루’로 적으면 한글로 적었을 뿐입니다. 옳고 바르게 한국말로 하자면 “나의 말”은 “내 말”이라 적어야 합니다.

 

 나의 말(言)은
→ 내가 읊는 말은
→ 내가 외는 말은
→ 내 말마디는
→ 내 말소리는
 …

 

  글쓴이는 ‘말’이라는 낱말을 꾸밈없이 적바림하지 못합니다. ‘말’이라고만 적으면 입으로 읊는 말이랑 들짐승 말이랑 헷갈릴까 싶어서 이처럼 적었는지 모릅니다. ‘言’이라는 한자를 나란히 적을 때에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며 헷갈리지 않을 만하다고 여겼구나 싶습니다. 어떤 이는 ‘눈’이라는 낱말을 사람들이 헷갈려 할까 봐 ‘눈(目)’과 ‘눈(雪)’으로 적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눈’이 되든 ‘말’이 되든, 한국말은 길고 짧은 소리로 둘을 가릅니다. 또한, 글흐름과 말흐름에 따라 두 낱말을 갈라요. 따로 한자를 밝힌대서 낱말을 한결 또렷이 헤아리도록 돕지 않습니다. 힘들여 한자를 넣어야 글흐름이나 말흐름이 환히 살아나지 않아요.


  한자 아닌 영어를 넣는들 글흐름과 말흐름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평화를 ‘평화(peace)’처럼 적거나, 사랑을 ‘사랑(love)’으로 적어야 잘 헤아리거나 옳게 읽을 수 있지 않습니다. 한국말을 한국말다이 가누면서 한국글을 한국글답게 돌보아야 가장 알맞고 아름답습니다.


  보기글에서 ‘말’이라고만 적을 때에 흐름이 엉뚱해질 수 있겠다 싶으면, 한국 말투를 살리도록 사이에 다른 꾸밈말을 넣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나 “내가 읊는 말”이나 “내가 들려주는 말”이나 “내가 쓰는 말”이나 “내가 적은 말”이나 “내가 외치는 말”이나 “내가 품은 말”처럼, ‘나’와 ‘말’ 사이에 알맞게 징검돌을 놓습니다.


  또는 ‘말소리’나 ‘말마디’나 ‘낱말’이나 ‘말투’나 ‘말씨’나 ‘싯말’이나 ‘노랫말’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말삶을 생각하며 길을 살핍니다. 말꿈을 피우며 넋을 북돋웁니다. 말사랑을 보듬으며 빛을 나눕니다. (4345.4.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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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통 털실 네 뭉치 꼬마 그림책방 23
오오시마 타에코 지음, 김정화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봄을 기다리는 착한 사람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53] 오오시마 타에코, 《통통통 털실 네 뭉치》(아이세움,2008)

 


  마당 가장자리에 보라빛 봉우리 작게 맺히기에 가만히 바라봅니다. 우리 집 마당 가장자리 꽃밭에서 무슨 꽃이 피어날까 궁금해 하며 여러 날 기다리니, 이 보라빛 봉우리는 자그마한 제비꽃입니다.


  제비꽃을 우리 집 마당에서도 보네, 하고 살짝 웃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우리 집 아이들 재우며 부르는 자장노래 가운데 “나물 캐러 들에 나온 순이는 나물 캐다 말고 꽃을 땁니다.” 하고 첫머리를 여는 이원수 님 동요가 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 가운데 식구들 곁을 떠나 다른 사람 집에서 밥어미 노릇이나 애보개 노릇을 하는 아이는 거의 없거나 아예 없으리라 보는데, 이원수 님 동요에 나오는 ‘밥어미 애보개’ 아이들은 1970년대까지도 제법 많았다고 해요.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가 부르는 자장노래이니 그러려니 하고 들을 테지만, 뜻과 결을 새기고 보면 하나같이 구슬픈 이야기를 담았어요. 구슬픈 이야기를 담은 노래이기에 가락이 퍽 잔잔합니다. 아이들 재울 때에 부르기에 퍽 알맞구나 싶어요. 그렇다고 구슬프고 잔잔한 가락인 노래만 부르지는 않아요. “봄이 오면 바다는 찰랑찰랑찰랑 모래밭에 게들이 살금살금 나오고.” 하며 첫머리를 여는 동요도 부르는걸요.


  그나저나, 나물 캐는 순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요에서, 순이는 ‘앉은뱅이꽃’을 딴다고 해요. 아이들한테 노래를 불러 주며 앉은뱅이꽃이 무언가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민들레나 제비꽃처럼 흙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서 피어나는 꽃들을 아울러 일컫는 이름이더라고요.


.. “미도리, 조용히 좀 해. 아기가 깼잖아.” 엄마는 잔뜩 화가 났어요. “나가 놀지도 못하잖아요.” “그럼 할머니 방에 가서 놀아!” ..  (2쪽)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 들판과 논둑과 멧자락에는 보름쯤 앞서부터 앉은뱅이꽃이 잔뜩 피어났어요. 생각해 보면, 민들레와 제비꽃만 앉은뱅이꽃이라 할 만하지 않아요. 민들레는 3월 끝무렵에 비로소 노란 꽃송이를 내미는데, 3월 한복판 무렵부터 본 제비꽃도 앉은뱅이꽃이었지만, 이에 앞서 먼저 고개를 내민 봄까지꽃이랑 별꽃도 앉은뱅이꽃이에요. 얼마나 흙바닥에 납작 붙어서 조그맣게 피어나는지, 눈여겨보지 않으면 이 두 가지 들꽃을 알아채기 힘들어요. 우리 식구들 인천 골목동네 작은 집에서 살던 때에도 골목길 한갓진 곳에서 봄까지꽃이 피곤 했는데, 이 조그마한 꽃은 아주 눈여겨보고, 가만히 쪼그려앉아 들여다보아야 보라빛 예쁜 잎사귀를 만질 수 있어요.


  햇살 좋은 봄날 이불 두 채를 빨아 마당에 예쁘게 널며 헤아립니다. 마당가에 조그맣게 피어나는 제비꽃은 이불 두 채한테도 고운 내음과 이야기를 조그맣게 나누어 주겠지요. 갓 빨아 햇볕을 머금는 이불은 햇살뿐 아니라 바람과 꽃내음과 풀내음 모두 받아먹을 테지요.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놀면, 빨래는 아이들 놀이하며 내지르는 목소리와 노래를 찬찬히 받아먹습니다. 이웃집 할머니가 마늘밭에서 김매는 호미질 소리도 받아먹습니다. 이웃집 할머니 이웃집에서 살아가는 할머니가 봄풀을 캐는 호미질 소리도 나란히 받아먹습니다. 이레쯤 앞서부터 무논마다 한두 마리씩 깨어난 듯한 개구리 울어대는 소리가 조용히 받아먹습니다.


  그래, 개구리라니, 참 반가운 개구리라니, 개구리예요. 이불을 넌 곁에 기저귀를 널면서 개구리 소리를 듣습니다. 왁왁 우는 봄개구리 소리가 반가운 나머지 “어, 개구리가 우네.” 하고 절로 외쳤더니, 방에서 낮잠을 자려고 드러누웠던 첫째 아이가 벌떡 일어나 마루로 나오며 “응? 개구리 울어?” 하고 묻습니다.

 

 


.. 미도리는 할머니 방으로 건너갔어요. 할머니가 털실을 한 아름 안고 싱글벙글 웃고 있어요. “방 청소를 하다가 털실 남은 걸 좀 찾았단다. 이걸로 뭘 떠 볼까.” “우와, 예쁘다…….” ..  (5쪽)


  며칠 드세게 불던 바람이 가라앉은 아침나절, 마루문을 활짝 엽니다. 봄기운과 봄소리가 마루문을 거쳐 온 집안으로 스며듭니다. 봄벌레 깨어나 돌아다니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잦아들며 나뭇가지 또한 가만히 살랑이며 내는 나지막한 소리를 듣습니다. 마을 할머니들은 김을 매랴 나물을 하랴 바쁩니다. 나는 아이를 안고 아이를 재우고 아이를 쓰다듬습니다. 이 봄날, 아이들은 봄기운 마음껏 누리면서 봄 어린이로 살아갈 때에 가장 아름답겠지요. 이 봄날, 어른들은 봄내음 실컷 들이마시면서 봄 어른으로 살아갈 적에 가장 빛나겠지요.


  봄을 누리는 사람은 여름을 누리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여름을 누리는 사람은 가을을 누리는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가을을 누리는 사람은 겨울을 누리는 사람으로 새로워집니다.


  철 따라 고운 꿈을 품습니다. 날 따라 맑은 넋을 북돋웁니다. 좋은 바람이 좋은 햇살 머금으며 흐릅니다. 좋은 소리가 좋은 풀잎 스치며 들립니다.

 


.. 바로 그때, 파랑 털실이 떼구르르 바구니 밖으로 굴러 떨어져 데굴데굴 또르르 데굴데굴 또르르. 그러더니 글쎄, 파랗디파란 바다가 되었어요. 철썩철썩 파도 소리 ..  (17∼18쪽)


  오오시마 타에코 님 그림책 《통통통 털실 네 뭉치》(아이세움,2008)를 읽습니다. 긴긴 겨울 바깥놀이를 즐기지 못하고 집에서 머물러야 하는 아이가 심심한 나머지 온 집안을 어지르다가는 어린 동생이 낮잠을 못 자게 깨운답니다. 아이 어머니는 성을 내고, 아이는 할머니한테 달려갑니다. 할머니는 웃는 낯으로 보드라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털실 네 뭉치를 꺼내어 아이한테 긴긴 이야기를 짓습니다.


.. 미도리는 졸음이 쏟아져요. 눈을 감고 한숨 크게 들이마셔요. “아, 할머니 냄새…… 내가 진짜 좋아하는 냄새다.”  ..  (29쪽)


  할머니한테서 털실 네 뭉치 이야기를 듣던 아이는 마음속으로 꿈을 꿉니다. 바깥은 춥디춥고 하얗디하얀 겨울이지만, 이 하얀 들판에 푸르고 노랗고 파랗다가는 바알간 빛깔로 그림을 그립니다. 하얀 들판을 종이 삼아 예쁘게 봄을 꿈꿉니다. 하얀 마음 되어 울긋불긋 곱디곱게 사랑을 꿈꿉니다.


  봄을 기다리는 착한 사람들입니다. 봄을 바라는 좋은 사람들입니다. 봄을 꿈꾸는 어여쁜 사람들입니다.


  봄은 착한 마음으로 맞아들입니다. 봄은 기쁜 넋으로 맞이합니다. 봄은 살가운 손길로 맞잡습니다. (4345.4.5.나무.ㅎㄲㅅㄱ)


― 통통통 털실 네 뭉치 (오오시마 타에코 글·그림,김정화 옮김,아이세움 펴냄,2008.8.2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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