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그림책을 헤아린다
 그림책이란
 그림책을 누가 읽을까
 그림책을 누가 만들까
 그림책을 읽는 어른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린이
 그림책에 담는 이야기
 그림책이 태어나는 밑바탕

 

ㄴ. 어린이 삶을 생각한다

ㄷ. 그림쟁이 넋을 돌아본다

ㄹ. 옛날 한국 그림책

 

그림책을 헤아린다
― 그림책이란

 


  그림책은 그림으로 이룬 책입니다. 오늘날 ‘그림책’이라 말하면, 으레 어린이한테 읽히려고 빚은 책으로 여깁니다. 2000년대로 접어들기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그림책’이라는 낱말을 꺼내기 수월하지 않았고, 이러한 낱말을 받아들이는 어른이 썩 많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에도 그림책이 나왔고, 한국에서도 그림책을 그리는 어른이 있었지만 아직 몇 분 되지 않았으며, 제대로 읽히기 몹시 힘들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으레 ‘글로만 엮고 그림은 사이사이 곁들이는’ 동화책만 읽히면 된다고 여겨 버릇했거든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이들한테 동화책 읽히는 일도 아이들로서는 고맙게 여길 만했습니다. 1980년대나 1970년대에는 아이들 책이라 하면 흔히 ‘전집’만 생각했으니까요. 더욱이, 1970년대나 1960년대를 헤아리자면, 집안에 전집을 들여놓을 만한 살림이 되는 아이가 매우 적었어요. 돌이키면, 1960년대나 1950년대에는 아이들한테 ‘책을 읽힌다’는 일부터 꿈꾸기 어려웠구나 싶어요. 이무렵에는 ‘교과서 한 권 사 주기’조차 만만하지 않다고 여기던 살림이기 일쑤였어요.


  곧, 한국땅에서 아이들이 그림책을 누린 때는 2000년대부터라 할 만합니다. 1980년대까지는 거의 아무런 싹이 없었고, 1990년대에 비로소 싹이 조금씩 움트며 2000년대에 줄기가 부쩍 올랐다 할 만합니다.


  오늘날 둘레를 살피면 큰 책방에서 가장 널따랗게 자리를 얻는 데는 ‘교과서·참고서’ 다음으로 ‘어린이책’ 칸입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교과서와 참고서 자리가 가장 널따랗기 때문에 무척 슬프지만, 입시지옥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어찌할 길 없으리라 느낍니다. 아무튼, 어린이책 칸 가운데에서는 그림책이 가장 널따랗게 자리를 얻습니다. 그림책이 싹을 트고 줄기를 높이 올린 지 고작 스무 해가 안 된 한국 책마을이라 할 만한데, 그림책 마당은 아주 빨리 매우 넓게 퍼집니다.


  한국과 이웃한 일본은 그림책 마당이 꽤 일찍부터 열렸고, 몹시 넓고 깊게 뿌리내렸습니다. 일본만 돌아보더라도 ‘어린이책 전문서점’이 튼튼할 뿐 아니라, 어린이책을 빚는 크고작은 출판사가 아주 많습니다. 한국 출판사에서 내놓는 그림책 가운데 적잖은 부피를 일본 그림책이 차지합니다. 이와 함께 미국과 유럽 같은 서양 또한 그림책 뿌리가 깊으며 그림책 마당이 넓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해마다 ‘좋은 그림책’을 뽑아서 상을 주기도 하며, 이렇게 상을 받는 그림책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고 읽혀요.


  한국에서도 여러 해 앞서부터 ‘좋은 그림책’을 뽑아서 상을 주는 제도가 생깁니다. 아쉽다면 출판사마다 제가끔 마련한 상이기에 더 넓고 깊게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출판사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못해요. 어린이책을 아끼고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어른과 어린이 모두)이 모여 해마다 새로 나오는 그림책 가운데 몇 가지를 손꼽으면서 북돋우는 자리가 있으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하지만, 한국에서 이만 한 밑바탕이 서자면 더 기다려야 걸맞다 싶기도 합니다. 너무 일찍, 또는 섣불리, ‘좋은 그림책 북돋우는 자리’만 마련할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어른과 어린이 스스로 ‘그림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짚고 살펴야 한다고 느껴요.


  다시 이야기하지만, 그림책은 그림으로 이룬 책입니다. 만화책은 만화로 이룬 책일 테고, 글책은 글로 이룬 책일 테지요. 사진은 사진으로 이룬 책이 될 테고요. 그런데 그림책이든 만화책이든 글책이든 사진책이든, 이 가운데 ‘어린이부터 즐겁게 보도록’ 헤아리며 엮는 책은 오직 그림책 하나입니다.


  그림책 가운데에는 ‘어른이 함께 읽는’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그림책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를 뺀 어른만 읽는’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그림책은 따로 없어요. ‘푸름이(청소년)가 읽는’ 그림책 또한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아니, 아직 한국에는 ‘푸름이 그림책’은 없다 할 수 있겠지요. 푸름이 문학조차 제대로 서지 못하거든요.


  만화책은 아이들도 즐겨 읽는다지만, 푸름이 즈음부터 읽을 수 있는 만화가 따로 있고, 어린이부터 읽을 만한 만화가 따로 있으며, 열아홉 살 넘은 나이부터 읽는 만화가 따로 있어요. 만화책은 금이 아주 또렷합니다. 글책과 사진책도 엇비슷해요. 읽히는 나이를 또렷하게 갈라 내놓습니다.


  그림책은 오직 어린이를 헤아리며 빚습니다. 더군다나, 그림책은 어린이를 ‘갓난쟁이’부터 열서너 살 나이까지 촘촘히 살피며 빚습니다. 세 살 아이까지 즐길 그림책, 다섯 살 아이까지 즐길 그림책, 일고여덟 살까지 즐길 그림책, 열 살까지 즐길 그림책, 열두어 살까지 즐길 그림책, 으레 이처럼 눈높이를 가누면서 엮어요. 그림책 겉이나 간기 자리를 살피면, 어느 나이 아이들한테 읽히면 좋은가 하고 밝히곤 해요.


  저도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에 그림책을 참 많이 장만해서 읽히고 읽습니다만, 아이들과 살아가며 그림책을 읽히고 읽다 보면, ‘아이 나이에 따라 가른 눈높이’는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갓난쟁이부터 세 살 아이한테까지 읽힐 만한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다섯 살 어린이한테도 즐겁기 마련이고, 열 살 어린이나 스무 살 젊은이도 즐겁게 읽을 수 있어요. 일고여덟 살이나 열두어 살 어린이한테 걸맞도록 엮었다는 그림책이라지만, 두 살이나 세 살 아이가 재미나게 읽기도 합니다. 다만, 두어 살 아이가 그림책을 읽는다 할 때에는 ‘글을 읽지’는 않아요. ‘그림을 읽’어요.


  그러니까, 그림책이란 “그림을 읽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글책은 글을 읽는 책이고, 사진은 사진을 읽는 책입니다.


  그림책은 그림을 읽는 책인데, 그림책에서 읽는 ‘그림’이란, 사람이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갈무리해서 나누려 하는 넋입니다.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는 책인 만큼, 열 살이든 서른 살이든 쉰 살이든 쉽고 즐거이 읽을 수 있는데, 누구보다 가장 어린 나이일 어린이가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쉽고 즐거이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책인 셈입니다.


  그림으로 담는 이야기는 모두 “지구별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수학 원리를 알려주든, 과학 지식을 보여주든, 이웃사랑이나 꿈나라를 들려주든, 모든 이야기는 “사람 삶”이라는 데에 눈길을 맞춥니다. 어린이가 어버이 사랑을 차근차근 받으면서 아름다운 넋으로 씩씩하고 착하게 설 수 있도록 “사람 삶”을 슬기롭고 예쁘게 보여주는 그림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삶”을 생각하도록 이끄는 그림책이란 ‘현실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늘 바라보는 이곳 모습을 고스란히 담는 그림책이 아니라, 어린이가 하루하루 새롭게 자라나면서 누리는 한삶을 언제나 즐겁고 아리땁게 스스로 사랑하도록 돕는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에서 대수롭게 살필 대목은 ‘현실이냐 판타지이냐’가 아닙니다. ‘교훈이냐 재미이냐’가 아닙니다. ‘철학이냐 과학이냐’가 아닙니다. ‘정보냐 지식이냐’가 아닙니다. ‘예쁜 그림이냐 멋진 그림이냐’가 아닙니다. 그림책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며 맺는 아름다운 삶을 사랑스레 보여줄 수 있을 때에 그림책이라는 이름이 걸맞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사랑스레 보여주는 그림책”은 어느 한 갈래에 따로 매이지 않습니다. 그림책은 아이들한테 좋은 가르침이 될 수 있고, 신나는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깊은 생각이나 슬기로운 꿈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일구거나 빚는 힘을 북돋울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림 솜씨를 뽐낸 작품이라 해서 아이들이 즐겁게 맞아들일 그림책이 되지 않아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대단한 밥 솜씨를 뽐내어 밥을 차려 준다고 아이들이 맛나게 먹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버이 사랑이 담긴 밥을 맛나게 먹어요. 아이들은 비싸게 치른 밥이라서 더 맛나게 먹지 않아요. 아이들은 값싸게 차린 밥이라서 더 맛없게 여기지 않아요. 아이들은 사랑 담은 좋은 밥을 맛나게 먹어요. 아이들은 사랑 담은 좋은 그림책을 오래도록 수없이 되풀이해서 읽으며 “사람이 살아가는 사랑”을 시나브로 익혀요.


  또 한 번 이야기하지만, 그림책은 그림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림 하나로 온 넋과 꿈과 사랑과 믿음과 삶과 말을 보여줍니다. 쪽수가 제법 되는 그림책이 더러 있으나, 웬만한 그림책은 쪽수가 퍽 적습니다. 그림 한 장에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담거든요. 그림 하나에 짙고 깊은 이야기를 알알이 싣거든요.


  훌렁훌렁 넘길 때에는 그림책을 읽지 못합니다. 꽃 한 송이를 오래도록 들여다볼 줄 알고, 풀 한 포기를 날마다 새롭게 들여다볼 줄 아는 어린이 매무새처럼, 그림책 그림 한 칸은 오래오래 차근차근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맛과 멋을 알아챈다 할 만합니다.
 (4345.4.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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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마땅히

알라딘서재에는 '노래 듣기'가 없으니... -_-;;;

제 네이버블로그로 나들이 오시면

아바 노래 셋을 600원씩 주고 걸쳤으니

심심하실 때에 들어 보셔요..

 

http://blog.naver.com/hbooklove (여기로 꾸욱)

 

오늘 둘째(열 달)가 자꾸 '아바 아바' 하기에

"아바가 아니고 아빠야" 하니까,

옆에서 옆지기가 "아바 있잖아. 나도 아바 알아요." 하기에,

문득 아바 노래가 떠올려

하나하나 찾아서 들어 보았어요.

 

1980년대에 국민학생으로 보내면서

동네 롤러장에서

귀에 아로새겨지도록 듣던

아바 노래인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되새길까 궁금하군요.

 

(네이버블로그 노래듣기는, 뭔가 설치하라고 뜰는지 모르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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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생각"이라는 새 자리를 마련합니다.

몇 해 앞서부터 생각하는 이야기인데

오늘 밤

둘째를 무릎에 누여 재우는

깊고깊은 때에

비로소 글문이 열리는군요.

 

2013년에 책으로 빚는 꿈을 꾸면서

오늘부터 차근차근

천천히 적어 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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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목숨 살리는 봄볕
고을마다 골고루
내리쬐는데,

 

어느 고을에서는
매화꽃 하얗게 눈내리고,

 

어느 고을에서는
보리싹 푸르게 빛나고,

 

어느 고을에서는
아파트 유리창 빛살 눈부셔.

 

갓난쟁이는 마당을 기며
등판이 따뜻하고,

 

다섯 살박이는 흙밭에서
흙투성이 손발 따뜻하며,

 

빨래 너는 어버이는
후박나무 그늘에서 살짝 쉰다.

 


4345.3.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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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볼 42 - 무삭제 오리지널판, 완결
토리야마 아키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다운 마음을 품기
 [만화책 즐겨읽기 138] 토리야마 아키라, 《드래곤볼 (42)》

 


  모든 사람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사람인 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닥 안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스스로 사람인 줄 느끼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퍽 많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짐승이라고 합니다. 생각을 하기에 사람이라 할 만하고, 생각을 찬찬히 하면서 이 생각을 하나하나 이루기 때문에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생각은 사람만 하지 않습니다. 나무도 생각하고 여우도 생각합니다. 풀이든 나무이든 짐승이든 벌레이든, 저마다 생각하는 대로 삶을 이룹니다. 저마다 생각하는 길에 걸맞게 삶을 꾸립니다. 사람이 여느 푸나무라든지 짐승이라든지 벌레하고 다르다 한다면, 사람은 더 넓게 생각하고 더 깊게 생각하며 더 사랑스레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 “중요한 것은 기의 강도와 움직임을 파악하는 거다. 넌 눈으로 쫓기 때문에 내 동작을 따라오지 못하는 거야.” (33쪽)
- “옛날엔 네게 뭔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지키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정체불명의 힘을 탄생시키고 있다고, 분명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건 나도 지금 상황에선 마찬가지다. 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기 위해, 즐거움을 위해, 적을 죽이기 위해, 그리고 자존심을 위해 싸워 왔다. 그러나 저 녀석은 달라.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지 않기 위해 한계를 계속 깨면서 싸우는 거야! 그래서 상대의 목숨을 끊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저 녀석은 끝내 날 죽이지 않았다. 마치 지금의 내가 아주 약간이지만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듯이.” (112∼113쪽)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좋은 생각을 좋은 삶으로 이룹니다.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쁜 생각을 나쁜 삶으로 이룹니다. 생각을 슬기롭게 가다듬으면 슬기롭구나 싶은 삶을 이루고, 생각을 바보스레 내팽개치면 참말 바보스럽다 싶은 삶을 이루어요.


  누군가한테는 이웃을 돕느라 백만 원이나 천만 원을 선뜻 쓰는 일이 바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누군가는 이웃을 돕느라 돈을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군가한테는 이웃을 돕느라 일억 원이나 십억 원을 쉬 쓰는 일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서른 해를 갈무리해서 일억을 모으든, 어찌저찌 금세 십억을 모으든, 이렇게 모은 돈을 아주 홀가분하게 이웃돕기에 씁니다.


  누군가는 바다를 좋아하며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꿈을 꿉니다. 하루아침에 이 꿈을 이룰 수도 있을 테지만, 열 해나 서른 해를 두고 천천히 이 꿈을 이루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소설 하나 아름다이 쓰고프다고 꿈을 꿉니다. 하루아침에 소설 하나 아름다이 써낼 수 있을 테지만, 스무 해나 마흔 해를 두고 찬찬히 이 꿈을 이루기도 해요.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할 때에는, 이처럼 여러 갈래 온갖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저 사람 생각은 바보스럽거나 어리석다 나무라거나 비웃는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즐거이 여긴다면 내 생각은 조금도 바보스럽지 않고 어리석지 않아요. 나 스스로 내 생각을 예쁘게 보살핀다면 내 생각은 더없이 아름다우면서 참으로 빛납니다.


- “카, 카카로트, 너, 임마. 왜 트랭크스 애들 놔두고 이런 놈과 강아지 따위를 먼저 구한 거야! … 카카로트, 넌 겨우 저런 띨띨이 대신 모처럼 도움을 준 친구들을 죽게 내버려둔 거야.” (89, 93쪽)
- “앗! 베지터 머리 위의 동그라미도 사라졌네! 다시 살아난 거야! 그러고 보니 넌 아주 극악무도한 녀석은 아닌가 보다!” (164쪽)

 

 


  열예닐곱 푸름이로 보내던 내 지난날을 헤아립니다. 그무렵 나는 늘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참말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머리로만 이야기를 짓고 몸으로는 안 움직인다면 이때에는 생각이 생각 아니라 덧없는 딴소리일 수 있으리라 느꼈어요. 내가 품는 생각이라 한다면 나 스스로 즐거이 몸으로 옮기는 삶이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다섯 학기를 다니는 동안 지옥철을 타며 생각했습니다. 그야말로 지옥철이로구나 하고. 지옥철을 아침저녁으로 겪으며, 이 지옥철에 탄 다른 사람들은 어떤 느낌 어떤 마음 어떤 몸일까를 생각했습니다. 모두들 얼마나 힘겹고 고단하며 짜증을 내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머리로 어떤 이야기를 빚으면, 내 몸은 어느새 나 아닌 다른 사람한테 살며시 깃듭니다. 나는 내 눈이 아닌 다른 사람 눈으로 바라봅니다. 아이하고 마주하면서 때때로 아이 눈이 되어 어버이인 나를 바라봅니다. 아이 키높이라면 어떻게 비칠까 하고 생각하며 아이 눈으로 마당을 뛰고 아이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몸이 아플 적마다 이렇게 몸이 아프다 한다면, 나보다 훨씬 몸이며 마음이 아프다 하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내 아픔에 빗대어 다른 이 아픔을 생각한달 수 있으나, 다른 이 아픔을 생각한다기보다 다른 이들 삶과 이야기를 내 삶과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싶은 셈입니다.


  아이를 안을 때에는 ‘안긴 아이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안긴 아이가 느긋해 하도록 안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늘 이와 같겠지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 마음이 되어야 해요. 밥을 짓는 사람은 밥을 먹을 사람 마음이 되어야 해요. 사랑을 속삭이려 하는 사람은 사랑을 듣는 사람 마음이 되어야 해요. 어른은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하느님과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숨 한 번 들이마시면서 바람하고 같은 마음이 되어 봅니다. 햇살 한 번 올려다보면서 해와 같은 마음이 되어 봅니다. 풀잎을 쓰다듬으며 풀잎하고 같은 마음이 되어 봅니다. 물을 마시며 물방울과 같은 마음이 되어 봅니다.

 

 


- “아냐! 이건 필요없어. 돌려줄게!” “엑?” “역시 이런 건 우리 취향이 아냐. 성능은 좋지만. 이런 위급한 때에 미안하지만, 우리 자신의 힘으로만 싸우고 싶다. 이미 부우도 합체를 풀고 있으니.” (96쪽)
- “사실 지금이니까 고백하는 건데, 뚱보 마인 부우라면 초사이어인3로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되도록 아이들의 힘을 믿고 싶었어. 앞으로의 지구 운명을 위해서도.” (101쪽)
- “가끔은, 지구 놈들 스스로도 책임을 지게 하란 말이다!” (151쪽)


  나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는 내 목숨대로 좋으며 고맙다고 여깁니다. 나 스스로 대단한 힘을 낼 수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며 기뻐하고 사랑하는 힘을 내며 살아간다고 여깁니다.


  둘째 아이는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함께 해바라기를 하다가 스르르 잠듭니다. 무릎에 누여 조금 토닥이다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힙니다. 첫째 아이는 햇살 고운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놉니다. 혼자 재잘재잘 떠듭니다. 대문 앞 논자락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리기에, “저기, 개구리 소리.” 하고 나지막히 이야기합니다. 소리를 죽이고 봄개구리 우는 소리를 같이 듣습니다. 아이는 아직 개구리 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듯합니다. 이제 수많은 개구리가 한꺼번에 깨어나거나 새로 태어나면, 그야말로 온 들판에 왁왁 소리 울려퍼질 테지요. 이런 소리를 자주 들으면서 아이 스스로 개구리 소리를 익숙하게 맞아들이겠지요.

 


- “자, 덴데! 소원을 말해라. 나메크어는 아직 기억하고 있지?” (157쪽)
- “넌 정말 대단한 놈이야. 그동안 혼자서 수고 많았다. 다음번엔 착하게 환생해라. 그럼 1대1의 승부를 해 주마. 기다리겠다. 나도 더욱 실력을 키우면서.” (197쪽)


  토리야마 아키라 님 만화책 《드래곤볼》(서울문화사,2002) 마흔둘째 권을 읽습니다. 영어 쓰기 좋아하는 일본사람이니 책이름을 ‘드래곤볼’로 붙였는데, 한국말로 옮기자면 ‘미르구슬’ 또는 ‘용구슬’입니다. 만화책 《드래곤볼》은 미르구슬을 찾아나서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권법만화라고도 여길 수 있지만, 줄거리와 사람들 매무새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모험만화도 권법만화도 무협만화도 판타지만화도 우주만화도 격투만화도 …… 아니라고 느낍니다. 《드래곤볼》은 사람으로 태어나 한삶을 누리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느냐를 찬찬히 짚는 만화라고 느껴요.


  곧,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이룹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루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면서 이 생각을 가장 아름답게 가다듬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면서 이 생각을 가장 사랑스럽게 돌봅니다.


  그저 생각만 해서는 이루지 못합니다. 생각이 살찌울 수 있게끔 북돋웁니다. 생각이 꽃피울 수 있도록 보살핍니다. 착한 넋과 고운 몸가짐으로 생각을 일으켜세웁니다. 기쁜 웃음과 맑은 눈빛으로 생각을 갈고닦아요.

 


- “그렇군. 넌 아직 하늘을 나는 방법도 모르는구나. 하긴, 무리도 아니지. 스승도 없을 테고, 그런 걸 생각한 적도 없을 테니. 좀 전에 욕해서 미안하다. 용서해라. 네 실력이 어떤지 알고 싶었던 거야.” “엑?” “역시 넌 내 예상대로 정말 대단한 놈이었어. 하지만 파워를 잘 이용 못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싸워 보는 것도 이게 처음이지? 내가 이제부터 네 집에 함께 살면서 가르쳐 주마! 알았지?” “예? 하지만. 우, 우리 집은 가난해서 안 돼요. 그, 그래서 상금이 필요해 무리해 가며 온 건데.” “괜찮아. 걱정 마! 돈 걱정은 안 해도 돼! 내가 미스터 사탄한테서 받아 줄게. 저 녀석은 영웅이란 핑계로 엄청난 돈을 모으고 있거든.” (240∼241쪽)


  《드래곤볼》 이야기를 이끄는 ‘손오공’은 마흔둘째 권을 마무리하면서 ‘우부’라는 아이한테 이 실마리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우부라는 아이는 아직 맑고 착한 넋이기 때문에 손오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곧바로 깨닫습니다. “생각한 적도 없을” 테니 하늘을 날지 못해요. “생각을 끌어올리도록 돕는 벗이나 스승이 없”으니 제 몸과 마음에 깃든 놀라운 힘을 아직 끄집어내지 못해요.


  사람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꿈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꿈을 이루도록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손오공이 쓰는 가장 빼어나며 멋지고 아름다운 ‘싸움솜씨’는 ‘원기옥’입니다. 모든 사람들 넋을 하나로 모두어 빚는 가장 커다란 꿈이자 생각이라 할 원기옥이에요.


  손오공은 손오공이기 때문에 원기옥을 쓰거나 하늘을 날지 않아요. 손오공은 손오공이기 때문에 ‘에네르기파’를 금세 익히지 않았어요.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았고,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사랑했어요. 착한 넋으로 생각하고 고운 얼로 사랑할 때에 삶이 아름다이 빛납니다. (4345.4.6.쇠.ㅎㄲㅅㄱ)


― 드래곤볼 42 (토리야마 아키라 글·그림,조대웅 옮김,서울문화사 펴냄,2002.9.26./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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