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빛깔있는책들 - 한국의 자연 174
박기성 지음, 심병우 사진 / 대원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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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랑스러운 삶터를 사진으로
 [찾아 읽는 사진책 90] 심병우·박기성, 《울릉도》(대원사,1995)

 


  우리 집 둘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날마다 빌면서 생각합니다. 둘째 아이가 아버지 자전거수레에 탈 수 있으면 언제라도 네 식구 즐겁게 자전거마실을 다닐 수 있으리라고. 이제 둘째는 첫째와 함께 자전거수레에 앉습니다. 처음에는 퍽 못마땅해 했지만, 요사이는 자전거수레에 앉히면 몹시 좋아합니다. 꼭 첫째 때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첫째는 자전거수레에 처음 타던 날 대단히 무서워 했어요. 그러더니 이내 더 태워 달라 보챘고, 이제는 자전거수레에 타고 함께 마실 다니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옆지기 자전거 뒷바퀴에 자꾸 실바람이 생겨 튜브를 통째로 갈아야겠다고 느낍니다. 마침 따사로운 봄날씨인데 뒷바퀴 때문에 네 식구 나란히 자전거마실 다니기를 못합니다. 읍내에 나가 자전거집에 튜브를 알아보지만 시골 읍내에는 마땅한 튜브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큰도시로 가거나 인터넷으로 물건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기로 했으면, 이런저런 물건을 스스로 손질하거나 짓거나 다듬을 수 있도록 몸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나날을 문득 떠올립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도시를 벗어나 여러 날 자전거마실을 해야 할 때에는 자전거 손질하는 연장을 한 꾸러미 챙깁니다. 언제 어디에서 못을 밟아 바퀴나 튜브가 찢어질는지 몰라요. 언제 어디에서 브레이크슈가 다 닳거나 망가질는지 모르며, 체인이 끊어지거나, 건전지가 다 닳거나, 어떤 일이 생길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갑작스레 비를 만날 수 있고, 돌을 밟고 넘어져 뒹굴 수 있어요. 시골 두메나 멧길에서 자전거집을 들를 수 없을 뿐더러, 찬찬히 갖춘 연장을 만나기 어려운 줄 미리 헤아립니다.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제대로 즐기지 못합니다. 제대로 돌아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여태껏 제대로 살피지 못하거나 돌아보지 않았다면, 오늘부터 제대로 살피거나 돌아볼 노릇입니다. 찬찬히 살피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찬찬히 아끼고 가만히 사랑합니다. 나는 내 가장 가까운 곳 사람들, 곧 살붙이부터 살피고 돌아볼 노릇입니다. 내 옆지기와 아이들부터 아끼고 사랑할 노릇입니다. 네 식구 살아가는 우리 시골마을을 아끼고 사랑할 노릇입니다. 머나먼 좋은 나라나 멀디먼 예쁜 나라를 바라기 앞서, 네 식구 오래오래 살아가고 싶어 뿌리내리는 시골마을 둘레를 즐겁게 나들이할 노릇이에요.


  사진을 찍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늘 내 삶터부터 사진으로 찍거나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릴 때에 가장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사람한테는 서울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인천사람한테는 인천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고흥사람한테는 고흥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서울사람한테 제주섬이 가장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제주섬이 가장 아름답다 여기는 서울사람이라면, 서울을 떠나 제주섬에서 살아야 합니다. 울릉섬을 가장 아름답다 여기는 부산사람이라면, 부산을 떠나 울릉섬에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 여기는 터전에서 삶자리를 꾸려야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 느낄 만한 나날을 누리거든요.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 여기지 못하는 곳에서는 스스로 썩 내키지 않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망가뜨리거나 덧없이 보냅니다. 돈을 벌든, 사랑짝을 찾든, 학교를 다니든, 무엇을 하든,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곧,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어떠한 일이든 돈을 많이 벌 만한 곳으로 가면 됩니다. 마음이 느긋하면서 기쁜 채 돈을 벌고 싶으면 돈크기를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좋은 일터를 찾으면 됩니다. 얼굴 예쁜 색시를 만나고 싶으면 사람들을 얼굴로만 따지면 됩니다. 마음 착한 동무를 사귀고 싶으면 사람들을 마음씨로 어깨동무하면 돼요.


  가장 바라는 꿈대로 가장 즐거운 삶을 누립니다. 가장 아끼는 모습대로 가장 빛나는 사진을 빚습니다.


  심병우 님 사진과 박기성 님 글이 어우러진 《울릉도》(대원사,1995)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발을 묶는 바다는 섬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살진 오징어와 명태, 방어가 무궁무진하고 기른 것 아닌 천연 미역과 돌김은 인건비가 안 빠져 못 딴다(13쪽).”고 하는데, 두 분은 울릉섬을 몇 차례쯤 마실해 보았을까요. 울릉섬 마실을 하는 몇 차례에 걸쳐 며칠쯤 묵어 보았을까요. 얼마나 울릉섬에서 살고 나서 이와 같이 글을 쓰고, 이러한 책에 사진을 담을 수 있을까요.

 


  고작 열흘이나 기껏 두어 달쯤 살아내고서 어느 한 마을을 들려주거나 보여준다 하는 사진책이나 이야기책을 낸다면, 이런 책은 빈 껍데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흘이나 두어 달을 살아낸 사랑을 속속들이 일구어 아름다이 엮을 줄 안다면, 이런 책은 넉넉하고 따스한 알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말 누군가는 딱 한 번 스치듯 지나가며 담은 사진으로도 ‘사진여행’을 풀어놓습니다. 참말 누군가는 태어나서 자라거나 여러 해 살더라도 ‘사진여행’뿐 아니라 ‘사진삶’조차 풀어놓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 마음 때문입니다.


  《울릉도》를 읽습니다. “신천지인 까닭에 유물·유적이 거의 없지만 볼거리는 많다. 역사가 보잘것없는 미국사람들이 1872년에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이라는 것을 만들어 자랑거리로 삼았듯, (울릉도는) 곳곳에 천연기념물 지역을 두었다(19쪽).” 하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이것(울릉 9경)을 모두 보려면 아무래도 섬을 한 바퀴는 돌아야 한다. 배나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그리고 성인봉을 오르고 나리분지에도 가 봐야 한다(24쪽).” 하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진쟁이 심병우 님이나 글쟁이 박기성 님은 울릉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손님입니다. 그렇다고 뻔질나게 드나드는 손님도 아닙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땀방울을 영글어 《울릉도》를 내놓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사랑이 아리땁게 모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더 멋스럽다 싶은 사진을 찍을 테고, 누군가는 더 놀랍다 싶은 이야기를 글로 옮길 테지요. 그런데, 더 멋스럽다 싶은 사진이나 더 놀랍다 싶은 글이 꼭 있어야 되지는 않아요. 스스로 좋아하고 즐길 줄 아는 사진이나 글이면 돼요. 스스로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사진이나 글이면 넉넉해요.


  내 사랑스러운 삶터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덧붙여, 내 사랑스러운 꿈터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 어여쁩니다. 그리고, 내 사랑스러운 이야기터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 아리땁습니다.


  로버트 프랭크 님이 미국땅을 자동차를 몰아 두루 돌며 담은 《미국사람들》이라는 사진책은, ‘자동차를 몰아 넓고 큰 미국땅을 두루 도는’ 느낌을 담습니다. 더 돋보이거나 더 멋스러운 모습이나 느낌을 담지 않습니다. 그저 ‘넓고 큰 미국땅 온갖 모습과 느낌’을 담습니다. 사진책 《울릉도》는 자동차나 버스나 헬리콥터나 배에 기대지 않고 두 다리로 즐기거나 누린 울릉섬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보여줍니다. 어느 쪽이 더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 더 거룩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 더 멋스럽지 않습니다. 그저 저마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른 눈길로 담습니다. 세계사진역사에 이름을 올린다 해서 더 돋보일 까닭이 없고, 한국사진역사에조차 이름을 못 올린다 해서 덜 떨어질 까닭이 없습니다.


  《울릉도》에 실린 “천부에서 한 시간 반쯤 걸려 올라선 고개는 세상 모를 딴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사방이 험상궂은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거짓말처럼 설원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여남은 채의 집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다(85쪽).” 하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추운 겨울날 한 시간 반쯤 눈밭을 헤치며 멧자락을 누빈 이야기입니다. 삶을 담고 사랑을 들려주고 꿈을 보여줍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이 아름답다고 느낄 사진을 빚습니다. (4345.4.25.물.ㅎㄲㅅㄱ)


― 울릉도 (심병우 사진,박기성 글,대원사 펴냄,1995.9.5./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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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없는 글쓰기 (익명 글쓰기)

 


  국어사전에서 ‘익명(匿名)’이라는 낱말을 찾아본다. “이름을 숨김”을 뜻한다 한다. 문득 생각한다. 한자말로 ‘익명’이라 적는 일이 나쁘다 느끼지 않으나, 새로운 한국말로 ‘이름숨김’이나 ‘숨긴이름’처럼 빚을 수 있으리라고. 또는 ‘이름감춤’이나 ‘감춘이름’처럼 새 낱말 빚을 수 있겠지.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예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한글’이라 하는 좋은 그릇이 있다 하더라도 이 그릇에 담을 어여쁜 낱말을 빚지 못한다. 한글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낱말이란 으레 한자말이거나 영어가 되기 일쑤이다. 요사이는 아예 한자로 적거나 알파벳으로 적을 뿐 아니라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로까지 적기도 한다.


  쉽게 헤아려 보고 싶다. ‘익명’이라 하는 한 번 감춘 낱말이 아닌, 말뜻 그대로 생각을 나타내는 ‘이름을 숨긴’이나 ‘이름을 감춘’이라는 쉽고 또렷한 한국말로 곰곰이 헤아려 보고 싶다.


  사람들은 제 이름을 숨기거나 감춘 채 글을 쓰기도 한다. 지난날에는 문학을 하는 이들이 제 이름을 숨기거나 감추었다. 스스로 알쏭달쏭하게 보이려 하는 뜻이 있었을는지 모르나, 이름을 숨기거나 감추면, 글쓴이가 ‘몇 살이요, 남자냐 여자냐, 학교는 어디를 얼마나 다녔나, 어느 마을에 사는가, 한국사람인가 외국사람인가, 재일조선인인가 연길사람인가, 어린이인가 푸름이인가, 밥벌이로 삼는 일거리는 무엇인가’ 같은 모든 그림자가 사라진다. 문학을 읽을 사람은 이 모든 껍데기나 허울을 생각하지 않고 글만 읽는다. 곧, 문학을 문학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며 제 이름을 숨기거나 감추며 문학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누군가는 이름을 숨기며 인터넷에 글을 쓸 때에 남을 해코지하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들볶는다. 모진 말이나 거친 말을 일삼기도 한다.


  왜 남을 해코지해야 하나. 왜 모진 말을 일삼아야 하나.


  이름을 숨긴 채 글을 써도 된다. 이름을 밝히며 글을 써도 된다. 어떻게 하든 내 글이다. 이름을 숨겨서 다른 사람이 ‘누가 썼는가’ 알아보지 못한대서 내 글 아닌 다른 사람 글이 될까. 내 글 아닌 다른 사람 글처럼 보일까.


  어느 인터넷 어느 게시판에 이름을 숨겨도 누구나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는 소리란, 모든 마음을 활짝 열고 즐겁게 생각을 나누자는 이야기라고 느낀다. ‘익명’이라는 그늘에 스스로 갇히면서 슬프며 억지스러운 논리라는 틀에 사로잡히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을 숨기며 글을 쓸 적에는 사람들 참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 뒷모습이 드러난다. 이뿐 아니다. 뭇사람 앞에서 제 이름을 숨긴 채 뭇칼질 같은 글을 함부로 쓰는 일이란, 누군가를 비아냥거리거나 헐뜯거나 깎아내리는 일이 아니다. 바로 ‘이름 숨긴 채 글을 쓰는 나’를 비아냥거리거나 헐뜯거나 깎아내리는 일이 된다.


  예부터 ‘때린 사람은 잠 못 이룬다’고 했다. 왜냐하면, 때린 사람은 ‘때린 느낌’이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지기 때문이다. 때린 느낌이 때린 사람한테서 지워질 수 없다. 이름을 숨긴 채 뭇칼질 하듯 글을 쓰면, 이 글은 ‘이름 숨긴 채 글을 쓰는 내’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지워지지 않는다. 곧, 이름을 숨기든 이름을 드러내든, 나 스스로 쓰는 모든 글은 내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지면서 ‘내 생각’과 ‘내 삶’이 된다.


  입에 발린 고운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이는 참말 ‘입에 발린 고운 듯 보이는 삶’에서 허덕인다. 속알맹이까지 알차도록 어여삐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이는 참말 ‘속알맹이까지 알차도록 어여삐 삶’을 일군다. 막말을 일삼는 사람이라면, 막삶을 보내고 만다. 거친 말이란 거친 삶이다.


  사랑을 꽃피우는 삶을 바란다면, 내 이름을 숨기거나 드러내거나 내 사랑을 흐드러지게 꽃피우도록 글을 쓸 노릇이다. 이 땅에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가 자리잡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스스로 언제나 평화로운 넋과 평등한 꿈과 자유로운 사랑과 민주다운 얼을 빛내는 글을 쓸 일이다.


  평화롭지 않은 말이라면 평화롭지 않은 넋이며 평화롭지 못한 삶이다. 자유롭지 못한 글이라면 자유롭지 않은 마음이며 자유롭지 못한 삶이다.


  이름을 숨기며 쓰는 글은 ‘딴 사람이 안 본다’고 여기며 용두질을 하는 모습과 같다. 딴 사람이 보든 안 보든, 풀숲이나 길바닥에 쓰레기가 떨어졌으면 아무렇지 않게 주워 치우거나 쓰레기통으로 옮길 노릇이다. 누가 ‘당신은 참 착한 일을 했소’ 하는 말을 하건 말건 아랑곳하지 말고, 나 스스로 마땅히 할 몫을 하면 된다. 스스로 착하게 살고 스스로 참답게 생각하며 스스로 아름답게 꿈꾸면 된다.


  이름은 한낱 허울이기만 하지 않다. 이름은 사람 몸뚱이처럼 대수롭다. 다만, 이름과 몸뚱이가 아무리 대수롭다 하더라도 알맹이와 마음에 앞설 수 없다. 이름으로 누리는 삶이 아니라 알맹이로 누리는 삶이요, 겉치레로 꾸미는 삶이 아니라 온마음 기쁘게 누리는 삶일 테니까.


  이름을 사람들 앞에서 숨긴들, 누구보다 나 스스로 내 글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글을 안다. 나는 내 글을 알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짓을 고스란히 바라본다. 내가 내 짓이 미운 줄 느끼며 바라본다면 나는 나 스스로를 갉아먹거나 깎아내리는 꼴이다. 한자말로 일컫자면, ‘자위’란 ‘자해’일 뿐이다. ‘자위’하듯 ‘익명’으로 글을 쓰는 일은 스스로를 ‘자해’하는 글이 될 뿐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글을 쓰면, 언제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삶이 된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글을 쓰면, 이름을 숨기건 밝히건 늘 내 마음 따사롭게 돌보며 어여삐 빛난다고 느낀다. (4345.4.25.물.ㅎㄲㅅㄱ)

 

 

***

 

알라딘서재 논쟁에서 더없이 부질없구나 싶은 '익명 글'로 스스로 갉아먹으려는 분이 곧잘 보여, 이 같은 글을 한 자락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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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171 : 정밀(靜密)

 


조릿대 숲을 지나 동백나무와 섬개야광나무의 터널을 통과하는데 햇빛 미끄러지는 그 두꺼운 청록 이파리 아래는 없는 시심(詩心)이 일어날 만큼 정밀(靜密)하다
《박기성·심병우-울릉도》(대원사,1995) 56쪽

 

  “동백나무와 섬개야광나무의 터널(tunnel)을 통과(通過)하는데”는 “동백나무와 섬개야광나무 사이를 지나가는데”나 “동백나무와 섬개야광나무 사잇길을 지나가는데”로 다듬습니다. “청록(靑綠) 이파리”는 “푸른 이파리”나 “싯푸른 이파리”나 “짙푸른 이파리”로 손보고, “없는 시심(詩心)이 일어날”은 “없는 시마음이 일어날”이나 “없는 마음이 일어나 시를 쓸”이나 “절로 우러나 시를 쓸”로 손볼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한자말 ‘정밀(靜密)’은 “아주 정교하고 치밀하여 빈틈이 없고 자세함”을 뜻한다 합니다. 국어사전 뜻풀이가 흐리멍덩해 다시 ‘정교(精巧)’를 찾으니 “솜씨나 기술 따위가 정밀하고 교묘하다”를 뜻한다 하고, ‘치밀(緻密)’을 찾으니 “(1) 자세하고 꼼꼼하다 (2) 아주 곱고 촘촘하다”를 뜻한다 합니다. ‘정밀’을 풀이하며 ‘정교’라 말하고, ‘정교’를 풀이하며 ‘정밀’이라 말합니다. 이래서야 낱말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치밀’에 이르니 ‘꼼꼼함-촘촘함’이라 일컫습니다. 곧, ‘정밀-정교’는 나란히 ‘빈틈없음’을 가리키는 셈이요, ‘치밀’은 ‘꼼꼼함-촘촘함’을 나타내는 셈이로구나 싶어요. 한자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거나 써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말뜻과 말쓰임을 옳게 살피자면, ‘정밀-정교-치밀’은 그닥 쓸 만하지 않으며, 이 세 가지 한자말은 ‘빈틈없다-꼼꼼하다-촘촘하다’를 밀어내며 쓰인다 하겠습니다.

 

 없는 시심(詩心)이 일어날 만큼 정밀(靜密)하다
→ 없는 시마음이 일어날 만큼 놀랍게 빽빽하다
→ 없는 마음이 일어나 시를 쓸 만큼 매우 촘촘하다
→ 절로 우러나 시를 쓸 만큼 대단하다
 …

 

  깊은 숲으로 들어가니 짙푸르거나 싯푸른 잎사귀가 흐드러지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 합니다. 참 대단한 숲이니 ‘대단하다’ 말할 만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참 놀라운 숲이니 ‘놀랍다’ 말할 수 있습니다. 푸른 잎사귀가 우거진 모습일 테니 ‘정밀하다’가 아닌 ‘우거지다’ 같은 낱말이 어울립니다. “나무가 빽빽하다”라든지 “푸른 빛(잎사귀)으로 촘촘하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을 살피면서 헤아리기도 하지만, 한자말 ‘정밀’을 넣는대서 얼마나 빈틈이 없도록 잎이 들어찼는지 밝힐 만하지 않습니다.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밝힌대서 얼마나 촘촘하거나 빽빽한가를 나타낼 만하지 않아요.


  꾸밈없이 글을 쓰면 됩니다. 수수하게 느낌을 적바림하면 넉넉합니다. 내 느낌을 나 스스로 가장 알맞거나 가장 사랑스럽다 여길 만한 쉽고 또렷한 낱말로 즐거이 풀어낼 때에 더없이 싱그럽게 빛납니다. (4345.4.25.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조릿대 숲을 지나 동백나무와 섬개야광나무 사잇길을 지나가는데, 햇빛 미끄러지는 그 두꺼운 짙푸른 이파리 아래는 시가 절로 우러날 만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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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한사람님의 "...알라딘 서재에서 논쟁의 진짜 이유..."

익명으로도 말해도 된다고 하는 이야기란, 모든 마음을 활짝 열고 즐겁게 생각을 나누자는 소리예요. 익명이라는 그늘에 스스로 갇히면서 슬프며 억지스러운 논리라는 틀에 사로잡히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참모습(진면목)'을 본다기보다 스스로 사람들 앞에서 감추던 '뒷모습'을 볼 테지요. 그만큼, 사람들 앞에서는 겉치레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익명'으로 '아무 의견'이라는 핑계를 내걸며 자위행위와 똑같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댓글을 붙이는구나 싶군요.

 

..

 

[붙임말]

익명으로 글을 쓰는 일은 재미있지 않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서 이름을 숨긴 채 글을 써 보았자, 하늘은 다 알고, 땅 또한 다 알기 때문이다. 어떤 글이 누군가한테는 이름이 보여지지 않는다지만, 마음을 열면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슬픈 삶인가를 읽어낼 수 있다. '이름'이 얼마나 대단한가. 껍데기 아닌가. 껍데기도 사람 삶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지만, 껍데기에 얽매여 알맹이인 삶을 내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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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후루 1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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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좋은 벗들
 [만화책 즐겨읽기 144] 스에츠구 유키, 《치하야후루 (1)》

 


  봄날 아침 하얀 안개가 온 들판을 덮습니다. 하얀 안개 덮인 들판은 잘디잔 이슬방울을 촘촘히 매답니다. 흙은 촉촉하게 젖습니다. 풀잎은 싱그러운 아침을 먹습니다. 이윽고 해가 멧등성이 위로 올라서면 맑게 따사로운 기운을 골고루 나누어 받습니다.


  꽃잎 떨군 매화나무는 열매를 도톰히 맺으려고 부산합니다. 꽃잎 보얗게 피우는 모과나무는 한창 가루받이를 할 때일 테지요. 새잎 싯푸르게 내놓는 감나무는 나뭇가지마다 몽우리를 맺으려고 애쓰겠지요.


  봄에 일찌감치 찾아드는 꽃잎이 있고, 풀잎조차 천천히 맺는 나뭇가지 있습니다. 아직 땅에서 돋지 않은 풀이 있습니다. 이제 막 첫 싹을 틔우는 풀이 있어요. 모두들 제 삶에 맞추어 기지개를 켭니다. 서로서로 가장 좋아하는 삶을 누리려 제때와 제철을 기다립니다.


  제비는 먼먼 나라에서 따스한 날씨를 누리려 이곳까지 찾아듭니다. 참새와 노랑할미새와 멧비둘기와 까마귀와 직박구리와 소쩍새와 동박새 들은 추운 날씨는 추위대로 견디며 따순 봄을 맞이합니다. 온통 얼어붙다가 눈으로 소복히 덮인 때에도 저마다 제 먹이를 찾고 제 삶을 누립니다.

 


- “내가 와타야라면, 놀리려고 메모까지 하는 사람이랑은 말하기 싫을 거야.” (13쪽)
- “왜 때려, 치하야! 너, 지금 촌닭 편드는 거냐?” “타이치, 네가 이렇게 소갈머리 좁아터진 자식인 줄은 몰랐다!” (17쪽)
- “부모님 월급날 돌아오기 전까진 새 안경을 살 돈이 없대.” “아, 응. 대체 얼마나 가난하면 그래? 너도 그 촌닭 좀 그만 싸고돌아라.” (66쪽)


  온몸 뜨거운 아이를 가슴에 얹히고 재웠다가는 팔베개를 했다가는 끝없이 오락가락하며 밤을 지새웁니다. 조금도 느긋하게 잠들지 않는 아이를 보듬으며 생각합니다. 이 아이가 몸이 힘드니 이렇게 꼼지락꿈지럭하면서 뒤채겠지요. 몸이 힘드니 끙끙 소리만 낼 뿐 달리 칭얼거리지도 못하겠지요.


  내 몸이 힘들거나 아플 때에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아주 어린 날 몸이 힘들거나 아프면 내 어버이는 어떤 삶을 보냈을까 헤아립니다. 힘들거나 아픈 아이를 밤새 끌어안고서는 곱게 토닥토닥 달래겠지요. 힘든 기운과 아픈 기운 말끔히 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살살 등판을 쓰다듬고 가만가만 머리를 어루만지겠지요.


  아이가 제대로 잠들지 못하니 어버이도 제대로 잠들지 못합니다. 아이가 이럭저럭 아침에 깨어나 이리 기고 저리 앉으며 놀면,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하루를 열 생각을 합니다. 간밤에 아이들 갈아입힌 옷과 기저귀는 대야에 담급니다. 환한 아침햇살을 느낍니다. 이른아침에는 개구리 우는 소리가 안 들리네, 밤새 그렇게 울었으니 개구리는 이른아침에는 고요히 잠드나, 아무래도 이른아침부터 뭇새가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닐 테니까 모두들 어딘가 깊이 숨었을까나.

 

 


- “이것 봐 봐!” “아니, 내 거랑 똑같은데, 뭐.” “난 상장 받아 보는 건 이게 처음이야! 너무 좋아! 신난다!” (55쪽)
- “선생님, 죄송해요. 아프셨어요?” “아, 아니.” “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카루타답게 카드를 잡아 봤어요! 처음이에요!” (113쪽)


  둘째 아이를 가까스로 재운 지난저녁, 첫째 아이가 뒤따라 깨며 쉬를 누다가는 안아 달라 보챕니다. 아이를 무릎에 누여 토닥입니다. 한동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가 두 팔에 힘이 폭 빠지며 곯아떨어집니다. 이대로 누인 채 한손으로 만화책 하나 집습니다. 나도 아이들 곁에 곯아떨어져야겠다 싶으면서, 드러눕기 앞서 무언가 하나 새기며 잠들자 생각합니다.


  손에 쥔 만화책은 스에츠구 유키 님 《치하야후루》(학산문화사,2009) 첫째 권. 만화책 주인공이라 할 ‘치하야’라는 아이가 시골에서 도시 학교로 온 아이를 따스히 감싸는 첫 모습을 곰곰이 바라봅니다. 어떤 올바른 넋이나 착한 얼일 수 있지만, 내 좋은 벗들을 생각한다면 더없이 마땅한 모습입니다. 내 좋은 벗을 어떻게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들볶을 수 있나요. 내 사랑스러운 벗을 어떻게 등치거나 못살게 굴거나 다그칠 수 있나요.


  그러고 보면, 내 좋은 옆지기와 아이들과 따사로이 말을 나눌 삶입니다. 내 사랑스러운 옆지기와 아이들이랑 날마다 새 웃음과 맑은 눈빛으로 즐거이 누릴 삶입니다. 딱히 ‘감싼다’고 하기보다는 그예 ‘어깨동무’하듯 살가이 느끼는 모습입니다. 좋은 느낌 그대로 살피고, 사랑스러운 마음 고스란히 들여다봅니다.

 

 


-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진 게 창피할 게 뭐 있어!” (65쪽)
- ‘오호라! 깔끔하게 감쌌구나! 하지만 저 안경 쓴 아이가 뛰어나간 것은, 저 눈초롱이가 맞는 카드를 잡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겠지!’ (108쪽)


  흙 한 줌은 좋은 벗입니다. 물 한 방울은 좋은 벗입니다. 햇살 한 자락은 좋은 벗입니다. 새 한 마리는 좋은 벗입니다.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 모두 좋은 벗입니다. 옆지기와 아이들 모두 좋은 벗입니다. 나는 흙과 물과 햇살과 새와 풀과 꽃 모두한테 좋은 벗이 되어 살아갈 좋은 목숨입니다. 나는 옆지기와 아이들 모두한테 좋은 웃음 주고받는 좋은 목숨입니다.


  아침마다 기쁘게 일어나고, 저녁마다 즐거이 잠듭니다. 햇살을 나란히 느끼고, 바람을 함께 맞습니다.


  내 좋은 벗님과 무얼 하며 하루를 누릴 때에 가장 빛날까요. 내 좋은 이웃과 어떤 생각을 속삭이며 하루를 맞이할 때에 가장 어여쁠까요. 나는 어떤 말과 넋과 삶으로 내 꿈을 가장 따사로이 북돋울까요.


- “언니가 언젠가 일본 최고가 되는 게 내 꿈이야!” “니 그거 꿈 아이다.” “뭐?” “남 하는 일 가지고 저그 꿈이라 카믄 안 되는기라.” (19쪽)
- “하하, 하하하! 그래, 그렇구나! 그래도 확실하게 외우는 것도 있지? 바닥에 놓인 카드만 봐도 앞 구절이 딱 떠오르는 시가 말이다.” (121쪽)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딛습니다. 한 마디씩 차근차근 읊습니다. 한 가지씩 알뜰히 주고받습니다. 한 가락씩 나긋나긋 노래합니다.


  좋은 생각을 익히고 배울 뿐 아니라, 좋은 벗들과 기쁘게 익히고 배우고 싶은 학교입니다.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면서 킬킬거리고픈 학교일 수 없습니다. 좋은 벗과 어깨동무하며 서로 즐겁게 익히고 배워 다 함께 좋은 삶을 누리고 싶은 학교입니다. 누군가를 젖히거나 밟으면서 혼자 으스대고픈 학교일 수 없습니다.


  학교는 지식을 물려주는 데가 아닐 테지요. 학교는 시험성적에 따라 아이들을 줄세우는 데가 아닐 테지요. 학교는 회사에 들어가기 앞서 잔재주를 가르치는 데가 아닐 테지요.


  좋은 앎을 좋은 삶에 바탕을 두어 찬찬히 그립니다. 좋은 꿈을 좋은 사랑에 발맞추어 살뜰히 빚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좋은 눈짓 손짓 몸짓으로 시나브로 이룹니다.


- “자기와 관계 깊은 시는 누구보다도 빨리 집을 수 있게 되지. 백인일수는 모두 100수다. 100명의 친구가 생겼다고 여기고 사이좋게 지내거라.” (123쪽)
- “치하야, 너는 모르는지 몰라도, 안경이의 할아버지는 영세 명인이라고, 굉장한 분이란다.” “네? 명인?” “척 보면 알지. 안경이는, 할아버지한테서 배워서 카루타를 그렇게 잘하게 됐을 거야. 그런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데, 얼마나 걱정되겠니?” (155∼156쪽)


  ‘치하야’를 비롯한 아이들은 재주나 솜씨를 바라지 않습니다. 어떤 점수나 시험이나 등급이나 이름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아끼며 좋아할 삶을 바랍니다. 아이들은 오래오래 웃으며 누릴 맑고 밝은 터를 바랍니다.


  ‘일본에서 첫손 꼽는 솜씨’란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지구별에서 가장 뛰어난 재주’란 조금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도 지구별에서도, 또 온누리에서도 뭇누리에서도, 서로 좋아하며 아낄 수 있는 맑은 꿈과 밝은 사랑이면 됩니다. 왜냐하면, 내 좋은 벗들이거든요. (4345.4.24.불.ㅎㄲㅅㄱ)


― 치하야후루 1 (스에츠구 유키 글·그림,서현아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9.11.2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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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2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라가 아프군요... 요즘 감기가 유행이라던데...
조금 나아졌을까요?

벚꽃이 얼마나 만발한지요. 참 아름다와요.
거기엔 매화나무와 모과나무가 있나봐요.... 꽃 예쁘겠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사는 삶, 네.

파란놀 2012-04-24 14:10   좋아요 0 | URL
벚꽃은 산에만 산벚나무로 있어요~
마을은 온통 매화가 지고 감잎이 돋아요.
들판에는 자운영과 유채와 갓으로 가득하고요~ ^^

보라는, 여러 날 바깥 들마실 많이 했더니
바람 쐬어 고단한가 봐요 @.@

류연 2012-04-24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그림이 꽤나 예쁘네요 ㅎㅎ 학교다닐때는 만화책도 참 많이 봤는데, 요즘은 손이 잘 안가더라구요 ㅋ

파란놀 2012-04-24 14:10   좋아요 0 | URL
그림이 참 예쁘장해요.
그냥 예쁘기만 하지는 않고
줄거리가 탄탄하며 예쁘게 그려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