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쫑을 뽑은 손으로

 


  마늘쫑을 뽑는다. 마늘쫑은 마늘잎 사이에 굵게 비죽 솟은 줄기이다. 나는 아직 마늘을 심어 기르지 않았으니 모르지만, 마늘쫑을 안 뽑으면, 이 끝에서 꽃봉우리가 피어나지 않으랴 싶다. 배추도 배추포기 한복판에 굵다랗고 길게 줄기가 올라오며 꽃이 핀다.


  이웃 할머니가 마늘밭을 돌며 마늘쫑을 뽑는다. 당신 드실 만큼만 뽑으며 우리더러 얼마든지 뽑아 가라 말씀한다. 아마 다른 마늘밭에서도 이와 비슷비슷하리라 느낀다.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들은 일이 많고 힘들며 손이 모자라니, 마늘쫑을 하나하나 다 뽑지 못한다. 마늘쫑이 남은 채 밭뙈기로 마늘을 팔 테고, 마늘쫑이 뽑히든 안 뽑히든, 마늘을 밭째 사들이는 이들은 마늘을 주렁주렁 엮어 다시 내다 팔겠지.


  그런데, 나는 마늘을 심은 적이 없을 뿐더러 마늘쫑을 뽑아 본 일이 없다. 어떡해야 할까. 이웃 할머니가 밭 사이 누비며 한손으로 톡톡 잰 손놀림으로 마늘쫑 잡아빼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늘쫑이 어떤 줄기인가 곰곰이 들여다본다. 이 녀석인가. 한손으로 잡는다. 얼마나 세게 잡아당겨야 할까. 마늘이 뽑히지는 않을까. 자칫 마늘쫑이 끊어지지는 않을까.


  살며시 그러쥐어 살짝 당긴다. 뽕 뽕 아주 조그맣게 소리 난다. 천천히 천천히 뽑는다. 마늘쫑을 뽑을 때마다 마늘내음과 풀내음과 물내음이 얼크러져 퍼진다. 마늘밭에서 김을 매고, 마늘쫑을 뽑으며, 마늘을 캐는 할머니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 헤아려 본다. 할머니들은 마늘밭에 폭 주저앉아 두 손으로 척척 마늘을 잡아뽑는다. 따로 호미로 ‘캔다’기보다, 그냥 손으로 ‘뽑는다’고 해야 옳은데, 모두들 ‘마늘을 캔다’고 말씀하신다. 마늘을 밭에서 뽑노라면 허리가 끊어질듯 아플 테니까, 모두들 밭자락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잡아뽑으시는구나 싶다. 이렇게 주저앉아 마늘을 잡아뽑더라도 허리는 끊어질듯 아프겠지.


  “힘들어서 이걸 어떻게 도와?” 하고 말씀하시는데, 할머니들 스스로 힘들다 여기는 밭일을 예순 해이고 일흔 해이고 여든 해이고 내처 하셨다. 이른새벽부터 늦은저녁까지, 밭자락에서 흙이랑 뒹굴며 기나긴 나날이 흘렀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해마다 감꽃은 새로 피고 감알은 새로 맺는다. 제비는 새봄에 다시 찾아들고, 재비집은 봄이 되면 다시금 튼튼하게 빛난다.


  내가 처음으로 뽑은 마늘쫑을 한손에 쥔다. 가게에서 파는 마늘쫑 값은 되게 싸다. 저잣거리에서도 마늘쫑 값은 참 싸다. 마늘쫑을 날로 먹든 삶아 먹든 데쳐 먹든, 아주 금세 훌러덩 먹을 수 있다. 마늘쫑을 먹는 이들이 스스로 씨마늘을 흙에 심고 김을 매다가는 마늘쫑을 뽑고 마늘을 하나하나 캐며 풀벌레랑 들새랑 하루 내내 어우러진다면, 지구별은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마늘쫑을 뽑은 손으로 아이들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기저귀를 빨며, 연필을 쥐어 글을 끄적인다. (4345.5.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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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책읽기

 


  지난주쯤부터 손톱보다 조금 크다 싶은 하얀 꽃송이 달린 자그마한 찔레나무를 보았다. 하얀 꽃송이가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찔레나무로구나 하고 알아채는 셈이지만, 하얀 꽃송이가 달린 모습을 보면서도 ‘응, 찔레 같은데?’ 하고 생각할 뿐, ‘이야, 찔레로구나!’ 하고 깨닫지 못한다. 네 식구 나란히 들길 마실을 다니면서 이 꽃송이를 바라보며 선뜻 ‘저기 보렴, 찔레꽃이란다!’ 하고 말하지 못한다. 요즈음 시골은 길이든 들이든 이웃을 만나기 어려우니, 막상 ‘찔레로구나 싶은 꽃을 보더라도 여쭈지 못한’다.


  어제 낮, 충북 음성에서 아이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두 분이 하룻밤 주무시고 돌아가시기를 바라며 집 안팎을 며칠에 걸쳐 바지런히 치우고 쓸고닦았다. 그러나 두 분은 안 주무시고 바로 돌아가신다. 얼마나 서운하고 기운이 빠지는지 온 하루가 고단하고 슬프다. 그래도, 아이들 할머니한테 몇 가지 여쭈었다. 찔레꽃이 크기가 얼마만 하느냐 여쭙고, 요즈막 길에서 흔히 보는 하얀 꽃송이가 무슨 꽃이냐 여쭙는다. 아이들 할머니는 “아니, 찔레도 몰라?” 하면서 “바로 여기에도 있네. 저기에도 가득 폈네.” 하고 말씀하신다.


  어머니, 그럼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에서 찔레꽃을 구경했던 적이 떠오르지 않는걸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 골목동네에도 틀림없이 곳곳에 찔레꽃이 흐드러졌을 테지만, 찔레꽃이라 알려준 이웃 어른은 없었거든요.


  아이들 재우며 자장노래로 이원수 님 동시에 가락을 붙인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남모르게 하나둘 따먹었다오.” 하는 노래를 날마다 불렀다. 정작 아이들 어버이로서 ‘얘들아, 우리 찔레잎 따먹을까?’ 하고는 얘기하지 못했지만, 새해에는 찔레꽃을 제대로 알아보아야지 하고 다짐하며 이 노래를 늘 불렀다.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금세 돌아가셔서 못내 서운했지만, 이제부터 아이들하고 찔레꽃잎 같이 따먹고, 밥에도 찔레꽃잎 얹어서 먹으려 한다.

 

 ..


  요즈음 사람들은 봄을 맞이하며 봄꽃을 기다린다 하지만, 막상 벚꽃이니 진달래이니 개나리이니 하고 말하는 데에서 그친다. 먼먼 옛날부터 여느 시골 사람들하고 살가운 벗이던 찔레꽃 구경하거나 즐기는 일은 거의 생각하지 못하거나 않는다. 아무래도, 요즈음 사람들은 몽땅 도시사람이기 때문일까. 요즈음 사람들은 고작 쉰 해쯤 앞서만 하더라도 이 나라 거의 모두 시골 흙일꾼 딸아들로 태어나 살아온 줄 잊기 때문일까.


  나는 봄을 맞이하며 다른 어느 꽃보다 살구꽃을 기다린다. 살구꽃이 질 무렵이면 딸기꽃을 기다린다. 딸기꽃이 저물 무렵이면 찔레꽃을 기다린다. 찔레꽃이 저물 무렵에는 감꽃을 기다릴까. 감꽃이 저물 무렵이면 어느 꽃을 기다리려나. 들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씨앗을 틔우며 씩씩하게 자라나는 찔레나무가 우리 집 뒤꼍으로도 날아들 수 있기를 빈다. (4345.5.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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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맞이 바쁜 날 (도서관일기 2012.5.1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5월 19일 손님맞이를 앞두고 여러 날 아주 바쁘게 책을 치운다. 2012년 5월 21일은 둘째 아이 첫돌. 돌날이 낀 토요일, 충북 음성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찾아오시기로 해서, 찾아오시는 김에 도서관에도 들르실 테니, 도서관을 이모저모 바쁘게 치운다. 그러나 도서관만 치울 수 있나. 집안도 치우고 쓸고닦아야지. 아이 돌보랴, 아이 밥해 먹이랴, 아이들 옷가지 빨래하랴, 빨래한 옷 걷어서 개랴, 아이들 놀자고 달라붙을 때 놀랴, 나는 나대로 나한테 주어진 몫 일을 하랴, 여러모로 눈코 빠지고 등허리가 휜다.


  그러나, 이렇게 손님맞이를 헤아리며 바지런히 손을 놀렸기에, 도서관 모양새가 한결 깔끔하게 모양이 잡힌다.


  어르신들은 어떻게 여기실까. 아직 제대로 치우며 활짝 문열고 손님을 널리 받기까지는 먼 듯하지만, 그럭저럭 볼 만하다고 여기실까. 아직 갈무리를 마치자면 멀었지만, 이제부터 손님을 받을 만하다고 여기실까. 다음주에는 바깥에 이동화장실 하나를 들이려 한다. 이 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우리가 통째로 쓸 수 있을 때에 전기와 물 시설을 들이고 싶다. 아직 반쪽도 아닌 반반쪽이거나 반반반쪽짜리 도서관이지만, 좁다랗고 찻길과 건물에만 둘러싸이던 인천에서 도서관을 하던 때하고 느낌이 사뭇 다르다. 흙이 있고 풀이 자라며 나무가 선 곳에 책터를 꾸리니 나부터 한결 맑아진다고 느끼며, 우리 책들도 더는 곰팡이가 피지 않으면서 맑은 숨을 마음껏 들이마시는구나 싶다. 참말, 도서관은 도시 아닌 시골에 있어야 한다. 참말, 사람은 도시 아닌 시골에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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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5-1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멋지네요.
사진을 볼 때마다 수많은 책에 감탄하기도 하고..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보라의 수레가 정말 멋진걸요.

파란놀 2012-05-20 00:43   좋아요 0 | URL
보라에 앞서 벼리가 탔고, 벼리에 앞서 수천 권 넘는 책을 실어나른 수레랍니다~
 


 뛰어라 어린이

 


  네 마음껏 뛰어라. 네 재주껏 뛰어라. 네 몸을 사랑하며 뛰어라. 네 다리로 이 별을 좋아하며 뛰어라. 네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을 나란히 어깨동무하며 뛰어라. 좋은 걸음으로, 좋은 꿈으로, 좋은 이야기로, 실컷 뛰고 놀며 살아라. (4345.5.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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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손가락은 다시

 


  해가 뉘엿뉘엿 기운 봄날 저녁, 멧등성이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실을 나온다. 둘째는 수레에 태우고 민다. 자전거수레를 밀수레로 쓸 줄은 몰랐다. 이 자전거수레는 나하고 둘이서 다섯 해 동안 멀디먼 길을 씩씩하게 달려 주었다. 이제는 두 아이를 태우며 마실을 다녀 주니, 새롭게 고마운 밀수레요 아기수레 구실을 한다. 돌돌돌 구르는 수레에 탄 둘째는 이웃마을 돌울타리 장미나무 앞에서 장미잎을 손가락 하나 뻗쳐 만지며 좋아한다. 손가락을 쫙 펼쳐 만질 만한데, 왜 한 손가락만 뻗어 만질까. 아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여러 손가락으로 만질 때보다 한 손가락에 마음을 더 가다듬으며 만질 때에 한결 깊이 느낀다고 떠올린다. (4345.5.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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