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없는 방 -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평화 발자국 10
김성희 글.그림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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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 없는 나라
 [만화책 즐겨읽기 173] 김성희, 《먼지 없는 방》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사람 가운데 ‘백혈병’에 걸려 죽은 이들 이야기를 다룬 만화책 《먼지 없는 방》(보리,2012)을 읽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백혈병’에 걸렸다고 말하는데, 만화를 읽는 동안 자꾸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느끼기로는 백혈병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 미나마타에서 몸이 아파 죽은 사람들은 ‘미나마타병’에 걸렸다고 이름을 붙여요. 다른 어느 이름으로도 이들 죽음을 가리키지 못해요. 그러니까,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사람들이 아프다 할 때에는 ‘백혈병’이 아니라 ‘삼성병’이라 하거나 ‘삼성반도체병’이라 이름을 붙여야 올바르리라 느껴요.


- “너희가 들어온 회사는 삼성이다. 그동안 산 것은 다 잊어라. 삼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다시 살아가도록!” (14쪽)
- “안녕하세요, 부장님.” “흠! 단정히 다녀야지. 라인에서 그래 봐. 파티클 생기고 말이야.” “네. 지가 학생주임인 줄 알아? 재수 없어.” (47쪽)


  김성희 님이 그린 만화책 《먼지 없는 방》에 나오는 이들은 슬프게 죽습니다. 아프게 살다가 슬프게 죽고 맙니다. 삼성 회사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혼자 앓다 죽은’ 일이라 여기고, 곁에서 아픔과 슬픔을 지켜본 이들은 ‘산업재해’나 ‘직업병’이라 일컫습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산업재해나 직업병이라고만 가리킬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산업재해가 아닌 ‘환경재해’요, 직업병이 아닌 ‘환경병’이로구나 싶어요.


- ‘똑같은 사람인데, 저 사람도 말을 할까. 나도 그 옷 입고 들어가고 그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나는 내 모습을 못 보니까 그 사람들은 로봇 같고. 이런 게 라인이구나. 이런 게 클린룸이구나.’ (27쪽)
- “우리도 생산 시간 단축하느라 만날 수동으로 해서 피곤해.” (51쪽)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차츰차츰 앓다가 죽습니다. 그러면, 이 공장에서 바깥으로 흘려보냈을 쓰레기물(폐수)은 어떻게 되는가 궁금합니다. 공장 바깥으로 흘러나온 쓰레기물은 어디로 흘러들까요. 땅속으로 스며드나요? 정화시설로 가나요? 사람을 죽이는 화학물질이 깃든 쓰레기물이 여느 생활하수하고 섞이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물은 사람이 마실 수 있을까요? 사람 아닌 땅은 어떻게 되나요? 풀과 꽃과 나무는 어떠할까요?


  반도체를 만드는 공장에서 버리는 쓰레기물만 냇물과 흙과 푸나무를 더럽히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식품을 만드는 공장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겠지요. 식품공장이라 하지만, 식품공장에서 만드는 ‘가공식품’에는 갖가지 화학약품과 화학조미료와 화학첨가물이 들어가요. 반도체 만드는 공장 아닌 ‘화학공장’이라 할 만하다는 이야기가 만화책에 나오듯, 식품 만드는 공장이라기보다는 ‘화학공장’이라 할 만하겠지요.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도, 플라스틱 바가지를 만드는 공장도, 치약이나 치솔을 만드는 공장도 이와 비슷하리라 느껴요. 컴퓨터 만드는 공장이나 책을 만드는 공장은 어떠할까요.


  여느 사람들은 책을 찍는 인쇄소나 제본소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인쇄소나 제본소 또한 화학약품을 씁니다. 그림이나 사진에 빛깔을 입히면서, 책 겉장에 코팅을 하면서, 또 이런저런 손질을 하고 본드나 풀을 바르면서 화학약품을 써요. 책이 되는 종이를 만드는 공장은 어떠할까요. 종이공장에서는 화학약품이나 화학물질을 하나도 안 쓰면서 종이를 다룰까요.


- ‘첫 월급 같은 것보다 도시에 나왔다는 게 설레는 거죠. 그것도 삼성에 취업했다는 게 설렜던 거죠. 독립해서 일은 하고 있지만, 시골 엄마 품에서 떨어져 나온 그때 그대로인 거예요. 나이를 더 먹어도 독립하던 그때로 멈춰 있는 거 같은.’ (53쪽)

 

 


  우리 집 두 아이는 종이기저귀를 쓰지 않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아버지가 천기저귀를 대고 손빨래를 하며 키웁니다. 큰아이는 세 살 막바지에 밤오줌을 가려 기저귀를 떼었고, 작은아이는 아직 열다섯 달째 살아가기에 기저귀를 대는데, 낮에는 기저귀를 풀며 지냅니다. 어디를 다니든 천기저귀 가득 든 가방을 짊어집니다. 내 사진기 가방보다 아이들 기저귀랑 옷가지 담은 가방이 더 큽니다. 하루 내내 빨래를 하느라 부산히 움직입니다.


  천기저귀를 쓰는 까닭은 천기저귀가 아이한테 좋기 때문입니다. 천기저귀를 쓰는 어버이도 좋은 마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종이기저귀는 화학물질 덩어리예요. 종이기저귀는 몽땅 쓰레기가 돼요. 종이기저귀를 만드는 흐름을 헤아려 보셔요. 얼마나 많은 공장과 짐차와 가게가 움직여야 하나요. 원료를 처음 캐고, 원료를 공장으로 옮기고, 공장에서 가공하고, 가공해서 만든 제품을 비닐에 싸서 종이상자에 담아 물류회사 도매상으로 보내고, 도매상에서 소매상으로 가고, 소매상이라는 여느 가게에서는 형광등을 밝힌 채 손님을 기다리고 …… 이 사이사이 석유 먹는 짐차가 물건을 실어날라요. 얼마나 많은 화학물질이 이 땅에 넘치고, 얼마나 많은 배기가스가 이 땅에 쏟아질까요. 한 가지 흐름만 헤아리더라도 아무것이나 쓰지 못해요. 기저귀뿐 아니라 먹을거리에서도 이와 같아요. 옷 한 벌도, 과자 한 봉지도 허투루 따질 수 없어요. 자가용이 구르는 찻길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없어요.


  나라에서 밀어붙인 ‘4대강 사업’을 가리켜 환경재앙이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참말 환경재앙이에요. 그런데, 나라에서만 환경재앙을 일으키지는 않아요. 바보스러운 마음이라는 몇몇 정치꾼뿐 아니라, 여느 마을에서 여느 살림을 꾸린다는 여느 사람인 우리 스스로 바보스러운 굴레에 갇혀요.


  삼성이든 엘지이든 에스케이이든, 이런저런 커다란 회사에 월급쟁이로 들어가는 일을 ‘축복’이나 ‘명예’나 ‘성공’처럼 여기잖아요. 끔찍하게 앓다가 목숨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산업재해’라거나 ‘직업병’이라거나 깨닫잖아요. 왜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왜 처음부터 ‘삼성이라는 회사에는 안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외치지 못할까요. 참다운 평화를 바라면서 ‘군대에 안 가겠습니다!’ 하고 외치는 사람이 더러 있고, 참다운 배움을 꿈꾸면서 ‘대학교에 안 가겠습니다!’ 하고 밝히는 사람이 가끔 있어요. 그러나, 참말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은 그냥 군대에 가고 그냥 대학교에 가요. 그냥 대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넣어 면접을 보고, 그냥 대기업 회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돼요.


  그냥 도시에서 월급쟁이가 되는 우리들이에요. 도시 월급쟁이가 좋은 삶이라고 그냥저냥 여기고 마는 우리들이에요.


  참다이 살아갈 길을 생각하지 않아요. 착하게 사랑할 길을 살피지 않아요. 아름답게 꿈꾸는 길을 찾지 않아요.

 

 


- “마스크 쓰면 뭐해. 다 젖는데.” “그래도 써라. 화학약품인데 좋을 게 뭐야.” (71쪽)
-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가지 화학약품 쓰는데, 눈에는 안 보여. 어찌 보면 공사장이 덜 위험해요. 말하면서, 내가 아는 거예요.” (111쪽)
- “한번은 가스 교체를 할 때, 겨우 한 방울 떨어졌는데 냄새가 너무 역하고 순식간에 심하게 퍼져서 모두 라인 밖으로 대피했대요. 그렇다고 방독면을 쓴 적은 없었대요.” (117쪽)


  백혈병이든 환경병이든 사람들이 아픕니다. 사람들이 슬픕니다. 사람을 둘러싼 숲이 아픕니다. 날마다 숲이 무너지거나 망가지면서 슬프게 웁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숲울음을 듣는 이가 더러 있으나, 웬만한 도시사람은 숲울음을 듣지 않습니다. 듣지 못하기도 하지만 아예 생각조차 안 합니다. 그렇다고 시골사람이 숲울음을 잘 새겨듣는지는 모르겠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이들 또한 들판과 숲에 농약이나 풀약을 잔뜩 뿌리면서 ‘잡풀 죽이기’를 하거든요. 들판과 숲에 뿌린 농약이나 풀약이 고스란히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로 스밀 뿐 아니라, 우리가 마시는 물에 스미고, 우리가 숨쉬는 바람에까지 깃드는 줄 헤아리지 못해요.


  그렇지만, 한국은 먼지 없는 나라로 나아갑니다. 도시마다 청소부가 있습니다. 도시 언저리마다 쓰레기 묻는 땅이 있고, 도시 둘레마다 쓰레기 태우는 데가 있습니다.


  묻히거나 불타는 쓰레기는 처음부터 쓰레기가 아니었습니다. 모두 공산품이었습니다. 공산품은 석유를 쓰는 기계로 만들고, 공산품은 돈으로 사고팝니다. 곧, 쓰레기로 버려지는 모든 공산품은 돈이요 자원이며 화학물질입니다.


  오늘날에는 음식물쓰레기를 말하기도 하지만, 밥을 먹고 남은 찌꺼기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이 밥찌꺼기는 잘 삭혀 흙으로 돌아가는 거름입니다. 거름을 거름으로 삼지 못하고, 똥오줌을 똥오줌답게 거름으로 빚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이 나라에는 ‘먼지는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정작 쓰레기가 더미더미 이룹니다.


  먼지 없는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먼지가 안 보이도록 없애는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흙먼지도 풀먼지도 사라지는 대한민국입니다. 흙먼지 사라진 곳에 시멘트 건물이 들어서고, 풀먼지 없어진 곳에 아스팔트 찻길이 깔립니다. 대한민국은 삼백예순닷새 내내 어디라도 ‘공사판’인 곳이지만, 그야말로 먼지나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말끔한 나라입니다. 먼지 없이, 곧 B나 C나 D 같은 학점은 없이 오직 A학점만 있는 나라입니다. 먼지 없이, 그러니까 곱상한 얼굴이나 몸매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고, 자가용이나 자격증 없이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며, 도시 아닌 시골에서 흙이랑 벗삼으며 살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나라예요. 기계를 부리는 사람과 톱니바퀴가 되는 사람이 있는 나라예요. 청소부를 부리는 사람과 청소부가 되는 사람이 있는 나라예요. 스스로 꿈꾸기를 잊고, 스스로 사랑하기를 멀리하며, 스스로 생각을 내려놓고 마는, 먼지 없이 희멀건 나라입니다. (4345.8.17.쇠.ㅎㄲㅅㄱ)

 


― 먼지 없는 방 (김성희 글·그림,보리 펴냄,2012.4.2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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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비 책읽기

 


  뭉게구름 가득하던 파란 하늘에 매지구름이 조금씩 생긴다. 이윽고 해가 자취를 감추고 빗방울이 하나둘 듣는다. 무더운 날을 식히는 소나기 쏴아아 내린다. 마실을 나온 우리 식구는 아직 집에 닿지 않았다. 따사로운 여름 햇살 받으며 바짝바짝 마르길 바라던 깔개며 이불이며 빨래며 몽땅 젖는다. 매지구름이랑 뭉게구름 모두 지나가고 하늘은 파란 빛깔로 돌아온다. 그러나 빗방울은 멎지 않는다. 빗방울이 멎어야 소나기에 젖은 빨래를 다시 마당으로 내놓을 텐데, 빗줄기는 가늘어져도 그예 흩뿌린다.


  한여름 후끈후끈 타오르던 날씨를 얼마쯤 식혀 줄까. 들판과 숲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는 단물을 받아마셨을까.


  비를 맞은 이불은 저녁이 되어도 마르지 않는다. 솜방석도 폭삭 젖어 마르지 않는다. 하늘에 대고 골을 부린들 젖은 옷가지가 다시 마르자면 따사로운 햇살이 오래오래 비춰야 한다. 하루를 보내고 이듬날 말려야겠지. 이듬날 찾아올 햇살을 기다려야겠지.


  밤이 된다. 더위는 가시지 않는다. 아이들을 여러 차례 되씻긴다. 옷을 자꾸 갈아입히고 새 빨래는 꾸준히 나온다. 나도 새로 씻으며 새 빨래를 한다. 낮에 말리지 못한 빨래는 부엌 창가로 들인다. 새로 한 빨래는 부엌으로 들인 빨래대에 걸친다.


  내 어린 날 소나기는 으레 찾아왔고, 여우비는 흔히 내렸다. 해마다 여름이면 소나기와 여우비를 만났다. 소나기를 만나 길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쫄딱 젖기 일쑤였지만, 무더운 여름 날씨는 젖은 옷과 몸과 머리를 곧 말려 주었다. 여우비를 올려다보며 공놀이를 했고, 운동회 연습을 했다. (4345.8.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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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에 주문할 생각으로 미리 담는다. 이러한 사진책이 나올 수 있으니 반갑고, 사람들이 예쁘게 찾아들면서 좋은 이야기를 누릴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아름다이 사랑받으면서, 오늘날 우리 모습을 가만히 돌아보는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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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터- 발로 뛰며 기록한 전국의 오일장
정영신 글.사진 / 눈빛 / 2012년 8월
29,000원 → 27,550원(5%할인) / 마일리지 830원(3% 적립)
2012년 08월 1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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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숲 스물첫째 권이 나왔다. 이제 좀 막바지로 나아가려나. 알맞게 마무리를 지으려나. 한 30권이나 40권까지 가려나. 콩쿨 이야기가 길게 나올밖에 없는지 모르나, 피아노와 얽힌 삶이란 사람이란 사랑이란, 콩쿨을 넘은 다른 곳에서 숱하게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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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21-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손희정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2년 8월
4,800원 → 4,320원(10%할인) / 마일리지 2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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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 4월에서 8월까지 모든 진보에게 묻는다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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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 아닌 평화를 이룰 삶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1] 손석춘,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 책이름 :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 글 : 손석춘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2.8.15.)
- 책값 : 1만 원

 


  방바닥을 걸레질합니다. 하루에 몇 차례씩 걸레질을 하거나 비질을 하곤 합니다. 어린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그야말로 쉴 겨를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어버이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하는 보금자리에서 숱한 일을 쉴 틈 없이 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걸레질이 지겹거나 비질이 귀찮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지르거나 작은아이가 똥오줌을 눈다 하더라도, 닦거나 치울 만하니까 닦거나 치웁니다. 어지른 것을 치우고 똥오줌 또한 치우면서 집안을 한 번 더 쓸거나 닦는 셈이리라 느낍니다.


  집 안팎에서 놀며 땀에 젖거나 지저분해진 옷을 벗겨 씻깁니다. 새 옷을 입힙니다. 아이들 옷가지 빨래는 날마다 수북하게 나옵니다. 한 살을 더 먹으면 빨래가 줄까, 두 살을 더 먹으면 빨래가 가뿐할까, 하고 생각한 지 다섯 해가 흐릅니다. 앞으로 해는 흐르고 흘러 또 다섯 해가 흐를 테고, 거듭 다섯 해가 흐르겠지요. 이동안 아이들마다 팔힘이나 다리힘이 부쩍 붙는다면, 바야흐로 아이들은 저희 옷을 저희가 빨래하거나 건사하거나 보듬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갖은 집일과 빨래와 밥하기에 얽히며 살아가지만, 이처럼 보낼 나날은 아주 짧으리라 느껴요. 무럭무럭 큰 아이들이 저희 삶을 저희 깜냥껏 빛내는 모습을 마주하면서 활짝 웃을 날이 아주 길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 대한민국 찬가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 가운데는 4월혁명 세대도 있고 가까이는 한총련 세대도 있다. 그들의 찬가는 사뭇 객관적 통계로 뒷받침된다. 헐벗고 굶주린 나라가 산업화에 성공했고 민주화도 이뤘으며 마침내 선진화에 이르고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일까. 진보 일각에서도 마치 박정희를 비판만 하면 낡은 진보, ‘꼴통 진보’ 따위로 매도하는 윤똑똑이들이 나타났다. 박정희가 이룬 경제성장을 인정해야 새로운 진보이고 수구좌파가 아니라는 논리는 사뭇 학문의 옷까지 걸치고 등장했다. 박정희가 일본제국주의에 혈서를 써 가며 충성을 맹세할 만큼 출세를 위해서라면 민족을 배신하길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도, 쿠테타 직후 〈민족일보〉 발행인 처형을 비롯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숱한 민주 인사들의 생명을 앗아간 살인범이었다는 사실도, 민주공화국 헌법을 유린하고 사실상 총통으로 군림하며 정수장학회니 육영재단, 영남대 재단 따위로 다른 사람 재산을 빼앗거나 축적한 사실도, 국가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에 ‘채홍사’를 둘 만큼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다는 증언도 죄다 중요하지 않다 ..  (9∼10쪽)


  빨래를 날마다 너덧 차례나 예닐곱 차례까지 합니다. 겨울철에는 하루 서너 차례 빨래로 마무리지었으나, 여름철에는 예닐곱 차례뿐 아니라 여덟아홉 차례 빨래를 할 때가 있습니다. 후끈후끈 무더운 날에는 아이도 어른도 옷을 자주 갈아입고 자주 씻기고 씻으면서 새삼스레 빨래를 합니다. 무더운 날에는 빨래도 잘 마르니 자주 빨아 바지런히 말립니다.


  때로는 빨래만 바지런히 하고, 옷 개기는 미적미적 미룹니다. 예쁘게 개어 옷장에 넣어도 워낙 빨리 옷을 버리고 갈아입으니 다른 일을 할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다른 집일에 마음을 쓰느라 그만 깜빡 잊곤 합니다. 요즈음에는 마당에서 빨래를 걷을 적에 아예 마당에서 선 채 빨래를 갭니다. 이렇게 개지 않으면 옷가지를 집안으로 들이고서 옷을 못 개리라 느껴요. 옷가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오면 다른 집일이 나를 부르는 바람에 옷은 나중에 개도 되지, 하고 여기고 맙니다.


  바로 옆에 수북하게 쌓인 옷가지는 어서 개 달라고 부릅니다. 부러 못 본 척하지는 않으나 가만히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잠을 자 주는구나 싶습니다. 밤새 틈틈이 비가 오더니 아침 일곱 시 즈음에는 햇살이 노오랗게 비치고, 뒤꼍에서 매미가 노래합니다. 아침햇살은 나뭇잎과 풀잎 사이에 곱게 드리웁니다. 물기 머금은 흙은 보들보들 빛납니다. 더위는 한풀 꺾인 듯하다가도 쉬 물러서지 않습니다. 아직 팔월 한복판인걸요.


  어느 논자락에는 벌써 이삭이 맺히고 열매가 익습니다. 이삭 맺힌 논은 얼마 없지만, 남녘나라에서 많이 따사로운 전남 고흥 시골마을 논자락은 조금 더 일찍 노오란 들판으로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나뭇잎은 푸르고, 들판은 노오라며, 하늘은 파랗게 눈부실 때에, 이 빛깔 사이사이 하얗게 흐르는 구름이 있을 적에, 네 식구 천천히 들길을 거닐면서 두 팔을 스르르 듭니다. 맑은 빛을 맞아들입니다. 밝은 볕을 받아들입니다. 고운 숨결을 끌어안습니다.


  걸을 수 있어 들길을 걷습니다. 누울 수 있어 풀숲에 눕습니다. 달릴 수 있어 멧길을 낑낑거리며 달립니다.


  바람은 산들산들 붑니다. 빛살은 골고루 퍼집니다. 풀벌레는 곳곳에서 노래합니다. 이 모든 목숨붙이 사이에서 사람은 예쁜 생각을 틔웁니다.


.. 그들의 반발감은 ‘조중동 프레임’을 남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더 확고해지기도 했다. 자신의 잘못을 생뚱맞게 조중동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적잖게 목격해 왔다 … 조중동 때문만으로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치 세력과 국민 사이에, 좁게는 진보정치 세력 내부에, 더 좁게는 바로 진보 개개인 내부에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 먹통은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다. 적잖은 진보도 먹통이다 … 문제는 아무리 대안 토론회를 열고 책을 출간해도 국민과의 소통이 막히는 데 있다. 대다수 언론이 대안을 담은 신간 소개조차 모르쇠다 … 진보를 내세운 언론도 진보세력이 내놓는 대안 보도에 인색한 데 있다 ..  (17, 30, 106쪽)


  손석춘 님이 쓴 자그마한 책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진보정치나 진보운동이 걸어온 길을 찬찬히 짚으면서, 옳은 넋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만히 그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국땅에서 나고 자란 젊은 넋이 바라던 옳은 길이란 무엇이었나 하고 밝힙니다. 한국땅에서 아이를 낳고 어버이나 어른이 될 젊거나 푸른 넋이 스스로 붙안을 만한 예쁜 길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 한국의 대다수 시민은 ‘노동자’라는 말을 부담스러워 한다. 이해할 수 있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노사 관계를 비롯해 노동 교육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문과 방송에서 노동자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도 아니다 … 한국은 노동자라는 말은 물론, 노동운동이나 임금협상과 단체협상 그 모든 게 시민권조차 확보하지 못한 나라다 … 진보정당의 분열상은 대서특필하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정작 생활 현장에서 실제로 진보 대안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을 이해하기는 난감하다 ..  (22∼23, 25, 110쪽)


  누구한테나 들려줄 만한 말인데, 억척스레 살아갈 까닭이 없습니다. 힘을 내어 살아갈 때에 즐겁지, 억척스레 살며 즐거울 수 없습니다. 악을 쓰며 살아갈 까닭이 없습니다.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때에 기쁘지, 악을 쓰며 사는 동안 기쁠 수 없습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하루만에 훌쩍 다녀올 만한 길이라면, 자전거를 타면 이틀이나 사흘에 걸쳐 천천히 다녀올 만한 길입니다. 두 다리로 걷는다면 열흘이나 보름이 걸릴 만한 길일 수 있습니다.


  꼭 자가용을 몰아야 좋은 삶이 아닙니다. 자전거를 우악스레 빨리 몰아야 좋은 나들이가 아닙니다. 죽을 동 살 동 쉬잖고 걸어야 좋은 마실이 아닙니다.


  자가용 있어도 즐겁고, 자가용 없어도 즐겁습니다. 돈 넉넉히 있어도 즐거우며, 돈 얼마 없어도 즐겁습니다. 즐거움은 자가용이나 돈에 깃들지 않아요. 즐거움은 오직 내 마음에 깃들어요. 너른 마음에 깃드는 즐거움이에요. 착한 마음에 스미는 기쁨이에요. 맑은 마음에 찾아드는 웃음이에요. 고운 마음에 넘치는 사랑이에요.


.. 김대중이 군사독재 아래서 “경제성장의 열매는 이들과 결탁한 소수 특권층에 의해 거의 독점되어 왔으며 노동자·농민들은 성장의 결실 배분에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배제되어 왔다”고 주장했지만, 바로 그 노동자와 농민들이 갈망했던 ‘김대중 대통령’ 아래서도 경제성장의 열매는 소수 특권층이 독점했다 …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국가에서 국민 대다수가 억척스럽게 살아가면서도 얼마 안 되는 여가시간 대부분을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으로 보낸다. 케케묵은 바보상자론을 펴려는 게 아니다. 다만 차분히 토론해 볼 필요는 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드라마를 보았는가를. 드라마에 나오는 대기업 회장과 그 가족들의 모습은 한결같다 ..  (76∼77, 123쪽)


  나는 진보가 더 좋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진보(進步)’를 한국말로 쉽게 풀자면 ‘나아짐’이나 ‘높아짐’이라 하는데, 한 마디로 ‘발돋움’이라 할 테지요. 한결 앞으로 나아가고 한결 슬기롭게 높아진다는 뜻일 테지요. 아무튼, 나아지거나 높아질 때에 아름다울 수 있지만, 나아지거나 높아진다는 뜻을 꼭 발돋움으로 따져야 하지는 않아요. ‘생활 진보’라 말할 것 없이, 오이꽃이나 수박꽃이나 호박꽃이나 수세미꽃을 보는 하루도 아름답고 즐거우며 놀랍습니다. 감꽃이나 벼꽃이나 매화꽃이나 딸기꽃이나 달맞이꽃이나 나팔꽃이나 오얏꽃을 보는 하루도 예쁘며 빛나고 훌륭합니다.


  진보정당일 때에 진보가 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삶이 아름다울 때에 ‘환하게 웃는 길로 나아간다’고 느껴요. 내가 웃고 네가 웃는 길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만화책 《도라에몽》에 나오는 ‘이슬이’는 ‘영민이’와 ‘진구’뿐 아니라 ‘퉁퉁이’와 ‘비실이’한테도 손수 구운 과자를 나눕니다. ‘도라에몽’과 ‘진구’는 ‘이슬이’뿐 아니라 ‘퉁퉁이’와 ‘비실이’도 불러 즐겁게 구름을 타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놀이를 즐깁니다.


  함께 나아가는 길이에요. 가을날 누렇게 익은 들판에서 거두는 벼는 이이한테만 먹이고 저이한테는 안 먹여도 되지 않아요. 골고루 나누는 사랑이자 꿈입니다. 다 함께 누리는 밥이자 삶입니다.


  이를테면, 무상급식을 하면 돈있는 집한테든 돈없는 집한테든 골고루 좋겠지요. 무상급식을 할 돈은 세금을 골고루 슬기롭게 거두면 되겠지요. 나는 100원을 벌기에 10원을 세금으로 냅니다. 내 이웃은 10000원을 벌기에 1000원을 세금으로 냅니다. 또는, 나는 10원을 벌기에 세금을 따로 내지 않습니다. 내 동무는 100000원을 벌기에 10000원이나 20000원을 세금으로 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흙을 조금 떠서 나릅니다. 힘센 어른들은 푸대에 흙을 잔뜩 담아 지게로 몇 섬씩 나릅니다. 그런데,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떡을 한 점씩 줍니다.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밥그릇 하나씩 베풉니다. 집에 아이가 있는 어른은 떡을 두 점 받거나 석 점 받습니다. 몸이 아파 드러누운 어른은 흙푸대를 한 섬도 안 날랐으나 떡과 밥을 똑같이 받습니다. 아기를 밴 어머니는 떡과 밥을 둘씩 받기도 합니다. 아기를 밴 어머니 또한 흙푸대는 한 섬도 안 날랐으나 떡과 밥은 외려 더 받는다 할 만합니다.


  너무 마땅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마땅한 이야기는 이쪽 신문을 읽으며 이쪽 생각을 하든 저쪽 신문을 읽으며 저쪽 생각을 하든 누구한테나 마땅하고 옳으며 똑같습니다. 귀여운 손자는 왼쪽 사람한테도 귀엽고 오른쪽 사람한테도 귀엽습니다. 우리 집 아픈 아이는 왼쪽 사람한테도 보살필 애틋한 아이요 오른쪽 사람한테도 보살필 애틋한 아이예요.


.. 무엇보다 진보가 할 일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에게 사람과 사회, 역사의 변화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진보운동을 시작했겠는가. 그 첫 마음을 소통해야 옳다 … 진보 대혁신의 출발점은 개개인의 자기성찰과 학습이다 ..  (97, 113쪽)


  우리 삶은 굳이 ‘진보’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진보’가 굳이 이 땅에 뿌리내리지 않아도 됩니다. 오직 ‘착함·참다움·고움’ 이렇게 세 가지가 이 땅에 뿌리내리면 돼요. 누구한테나 착한 빛과 서로서로 참다운 꿈과 다 함께 고운 사랑이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으면 즐거워요.


  고운 아이한테도 미운 아이한테도 떡 한 점씩 나눕니다. 고운 이웃도 미운 이웃도 따로 없이, 저마다 논밭을 푸르게 일굽니다. 능금나무는 모든 사람한테 달콤한 열매를 나누어 줍니다. 복숭아나무는 모든 아이들한테 달콤한 열매를 베풉니다. 포도나무는 모든 어른들한테 달콤한 열매를 선사합니다.


  정치이든 경제이든 문화이든 교육이든 예술이든, 또 집안일이든 집살림이든, 능금나무 같은 길을 걸어가면 좋으리라 느껴요. 복숭아나무처럼, 포도나무처럼, 또 볏포기처럼 배추처럼 무처럼, 누구한테나 맛나고 달콤하며 배부른 숨결을 불어넣는 예쁜 길을 걸어가면 참말 좋으리라 생각해요.
  삶을 배워야지요. 사랑을 얘기해야지요. 꿈을 이루어야지요. (4345.8.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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