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03) 우리 나라의 1 : 우리 나라의 여러 학자들

 

갑오경장 이후 근 100년 동안 우리 나라의 여러 학자들이 우리 말과 글을 살리려고 그처럼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면서 중국글인 한문과 한자말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지만
《이오덕-우리 문장 쓰기》(한길사,1992) 45쪽

 

  “갑오경장 이후(以後) 근(近) 100년(年) 동안”은 “갑오경장 뒤로 거의 백 해 동안”이나 “갑오경장부터 얼추 백 해 동안”으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以後)을 하면서”는 “뼈를 깎듯 애쓰면서”나 “뼈를 깎듯 힘쓰면서”로 다듬어 봅니다.

 

 우리 나라의 여러 학자들
→ 우리 나라 여러 학자들

 

  “우리 나라 여러 학자들”이라 할 때하고 “우리 나라의 여러 학자들”이라 할 때에는 서로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 나라 축구 선수들”이나 “우리 나라의 축구 선수들”이라 할 때에는 서로 어떻게 다르다 할까요. “이것은 어느 나라 물건인가요?” 하고 물으면 “우리 나라 물건입니다.” 하고 말할 텐데, 누군가는 “우리 나라의 물건입니다.” 하고 말할 수 있겠지요.


  사이에 토씨 ‘-의’를 왜 붙일까 궁금합니다. 사이에 ‘-의’를 넣어야 글이나 말이 부드럽게 이어질는지 궁금합니다. 사이에 ‘-의’를 안 넣으면 허전하다 여길는지 궁금합니다. (4339.5.19.쇠./4345.9.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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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경장부터 얼추 100해 동안 우리 나라 여러 학자들이 우리 말과 글을 살리려고 그처럼 뼈를 깎듯 애쓰면서 중국글인 한문과 한자말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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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5) 우리 나라의 2 : 우리 나라의 경제성장

 

우리 나라의 소위 경제성장이라는 게 있기 전, 우리 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이면 으레 당했을, 우리의 하늘 빛깔을 극찬해 주길 바라며 퍼붓던 촌스러운 질문 공세를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박완서-잃어버린 여행가방》(실천문학사,2005) 134쪽

 

  ‘소위(所謂)’는 ‘이른바’로 다듬고, “있기 전(前)”은 “있기 앞서”로 다듬습니다. ‘방문(訪問)하는’은 ‘찾아오는’으로 손보고, ‘외국인(-人)’은 ‘외국사람’으로 손보며, “으레 당(當)했을”은 “으레 받았을”이나 “으레 들었을”로 손봅니다. “우리의 하늘 빛깔을”은 “우리 하늘 빛깔을”로 손질하고, ‘극찬(極讚)해’는 ‘매우 칭찬해’나 ‘아낌없이 손뼉쳐’나 ‘더없이 사랑해’나 ‘아주 좋아해’로 손질할 수 있어요. “촌(村)스러운 질문(質問) 공세(攻勢)를”은 “어리숙한 소나기 물음을”이나 “바보스러운 물음 꾸러미를”로 고쳐쓰고, “기억(記憶)하고 있다”는 “떠올린다”로 고쳐쓰면 한결 나아요.

 

 우리 나라의 소위 경제성장이라는 게 있기 전
→ 우리 나라에 이른바 경제성장이라는 게 있기 앞서

 

  이 자리에서는 토씨를 잘못 넣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국립공원” 같은 자리에서는 군더더기로 붙여서 잘못이고, 이 자리에서는 토씨 ‘-에’를 넣어야 알맞을 텐데, ‘-의’를 넣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살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5.9.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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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 이른바 경제성장이라고 있기 앞서, 우리 나라를 찾아오는 외국사람이면 으레 들었을, 우리 하늘 빛깔을 더없이 사랑해 주길 바라며 소나기처럼 퍼붓던 어리숙한 물음들을 우리는 아직도 떠올린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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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함께 그리기

 


  그림을 그리며 노는 누나 곁에서 알짱거리던 작은아이는 저도 그림을 함께 그리고 싶은데, 누나는 그림종이에 마구 금을 긋지 말라며 이리 가고 저리 숨는다. 작은아이한테 다른 그림종이를 하나 준다. 작은아이는 제 그림종이를 따로 받아 거기에 금을 죽죽 긋는다. 그러나 자꾸 누나 그림종이를 넘본다. 이윽고 누나는 저쪽으로 멀리 가서 등을 돌리고 엎드린다. 작은아이는 문득 새 놀이가 떠올랐는지 밥상이자 책상에 올라선다. 너는 밥상이든 어머니 등이든 걸상이든 사다리이든, 뭐든 다 타고 올라야 재미나겠지. (4345.9.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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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서 해 보기

 


  아이가 스스로 무엇이든 해 보는 일이란 참 좋다고 느낀다. 나부터 내가 아이였을 적에 참말 무엇이든 다 해 보았을 테니까. 나는 입술과 혀를 불판에 대 보는 일까지 했다. 얼마나 뜨거운가를 손으로 만지기만 해서는 잘 모른다고 느껴 입술로 대 보고는 이레쯤 입술이 부어 애먹은 적 있는데, 어찌 보면 어리석지만 어찌 보면 어린이인 까닭에 스스로 하거나 겪고 싶은 일이 많았다.


  아이 손길은 많이 서툴기에 어른 눈길로는 조마조마해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무언가를 하거나 겪을 때에는 ‘모자람’도 ‘서툼’도 ‘어설픔’도 없다. 늘 새로운 삶이며 손길이요 이야기가 된다.


  때때로 거꾸로 펼쳐 넘기기도 하는 작은아이 ‘그림책 읽기’는 놀이와 같다고 느낀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모두 곧잘 책을 펼쳐 읽으니, 저도 시늉을 내며 논다. 차근차근 혼자서 해 보렴. 그러면 너도 예쁜 손으로 예쁜 책을 넘기며 예쁜 이야기 한 자락 얻을 수 있을 테지. (4345.9.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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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9.8.
 : 한복 입은 자전거

 


- 큰아이가 갑작스레 한복이 입고 싶다 말한다. 따로 명절에만 입을 옷이 아니기에 꺼내 준다. 예쁜 치마를 입었다며 좋아하는 아이는 홀가분히 뛰어놀기에는 그닥 안 좋은 치마저고리를 입고도 잘 논다. 우체국을 들러야 하기에 자전거를 마당에 꺼낸다. 두 아이 모두 수레에 타려고 수레 앞에 선다. 내가 태우지 않아도 작은아이조차 스스로 수레에 잘 올라탄다. 바람이 쌀쌀하기에 담요 한 장씩 건넨다. 집을 나서니 들판마다 참새가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천천히 익는 곡식을 요리조리 콕콕 쪼아서 먹을까. 아직 덜 여물었어도 참새한테는 맛난 밥이 될까. 몇 백인지 모를 만큼 많은 참새들이 한꺼번에 파르르 날아오르니 두 아이 모두 입을 벌리며 바라본다. 면내 가는 길에 마을 어르신들이 길바닥에 깔아 놓고 경운기로 밟으며 털던 콩이 조금 흩어졌다. 몇 알을 주워 아이들 손에 얹는다. 자, 콩이야, 너희가 잘 만지며 콩을 느껴 봐. “이거 집에 가져가서 밥할 때에 넣으면 맛있게 먹어요.” 하고 말한다.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치고서 가게에 들른다. 가게에 어떤 외국사람 부부가 들르는데, 큰아이 입은 한복이 예뻐 보이는지 자꾸자꾸 사진을 찍는다. 이 시골 깊디깊은 마을 가게에 어인 외국사람일까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러시아 기술자 부부’이다. 고흥 나로섬에 있는 우주기지에서 또 우주선을 쏘느니 마느니 한다면서 러시아 기술자들이 잔뜩 왔단다. 러시아 기술자 부부는 읍내 여관이나 면내 여관 같은 데에서 머문다고 한다. 저녁에 일을 마치면 시골마을을 두루 돌아다닌단다. 그렇구나. 생각해 보면, 외국사람한테도 한국땅에서 한복 입은 아이나 어른을 보기 힘든 노릇이요, 한국사람 스스로도 한복 입은 아이나 어른을 보기 힘든 노릇이리라.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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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놀이터 (도서관일기 2012.9.1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이란 책을 갖추는 곳이다.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 어느 사람은 가벼운 읽을거리를 바라고, 어느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는 읽을거리를 바란다. 어느 사람은 돈벌이에 도움이 될 무언가를 바라고, 어느 사람은 지식이나 정보를 쌓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삶에 따라 책을 마주한다. 스스로 생각한 대로 살아가기에, 스스로 살아가는 결에 맞추어 책을 손에 쥔다. 스스로 생각하는 삶결이 오직 돈벌이라면, 굳이 책이 찾아들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을 기울이는 삶자리가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면, 애써 책이 스며들지 않는다.


  흔히들 사람 있고 아이들 있는 데에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내가 느끼기로는 무엇보다 숲이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숲이 없으면서 도서관만 있다면, 이러한 곳은 책읽기를 못하고 삶읽기도 못하는 데라고 느낀다.


  도서관을 세우려 한다면, 책을 갖출 건물만 지어서는 안 된다. 책을 둔 건물을 둘러싸고 조그맣게라도 숲을 마련해서, 사람들이 책을 숲 한복판에 앉아서 읽도록 이끌어야지 싶다. 사람들한테 가장 모자란 한 가지라면, 도시나 시골이나 바로 숲이라고 느낀다. 숲다운 숲이 있어야 한다. 나무가 자라고 풀이 돋으며 짐승과 벌레가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숲이 있어야 한다. 도토리가 뿌리를 내리고 풀씨가 흩날리는 숲이 있어야 한다.


  숲은 사람들 삶터를 살찌운다. 숲은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놀이터가 된다. 숲에서 살고 숲에서 놀며 숲에서 일하는 사이, 시나브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적에, 비로소 사람들은 스스로 글을 쓰고 책을 빚을 수 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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