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09] 달걀밥

 

  한가위를 맞이해서 네 식구 길을 나섭니다. 아침 열한 시 십오 분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와서는, 시외버스로 갈아타서 순천 기차역에서 낮 두 시 기차를 타려 하는데, 어린 아이들이랑 짐을 꾸려 길을 나서자니 집밥을 먹기도 빠듯합니다. 기차 타기 앞서 기차역 앞 분식집에 들릅니다. 큰아이 몫으로 돼지고기튀김을 시키고, 옆지기는 찬국수를 시킵니다. 나는 ‘차림판에 적힌 오므라이스’를 시킵니다. 세 사람 밥이 나옵니다. 아버지 몫 ‘오므라이스’를 본 다섯 살 큰아이가 문득 “달걀밥이다! 나 달걀밥 먹고 싶어!” 하고 말합니다. 참말, 밥 위에 달걀을 지져서 얹으니 달걀밥이에요. 아마, 달걀을 삶아서 밥 사이에 심어도 ‘달걀밥’이라 할 테지요. 달걀을 으깨어 밥에 섞어도 ‘달걀밥’이라 할 테고요. 다 같은 달걀밥이면서 다 다른 달걀밥입니다. 달걀볶음밥이 있고 삶은달걀밥이 있어요. 달걀부침밥이 있을 테며, 달걀비빔밥이나 달걀말이밥이 있겠지요. 그러고 보면, 여느 밥집에서 일본말 ‘오므라이스(오믈렛라이스를 일본사람이 간추려 일컫는 이름)’를 씻어내고 ‘달걀밥’이라고 예쁘게 쓸 만한데, 아직 이런 밥이름을 쓰기는 힘든지 모릅니다. 어른들은 앞으로도 오므라이스라고만 말하지 않겠느냐 싶은데, 그래도 우리 아이는 이 밥을 바라보며 새삼스레 “달걀밥이다!” 하고 외치겠지요. (4345.9.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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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별자리 찾기 - 과학 그림동화 12 사이언스 일공일삼 7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 글 그림, 이현주 옮김 / 비룡소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지구별은 어떤 빛깔일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97]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 《숨은 별자리 찾기》(비룡소,2002)

 


  지구는 아주 조그마한 별입니다. 지구에서 한국은 아주 조그마한 나라입니다. 우주를 헤아릴 때에 지구라는 별은 점 하나로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작겠지요. 지구를 돌아볼 때에 한국이라는 나라는 점 하나로 겨우 찍을 만큼 작을 테고, 한국에서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라 하더라도 참으로 작은 점 하나가 돼요.


  그런데 참말 작은 점과 같은 한국땅이라 하더라도, 서울에서 올려다보는 하늘과 부산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다릅니다. 서울과 가까운 포천이나 파주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이랑, 휴전선 너머 개성이나 해주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사뭇 달라요. 양구나 홍천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어떠할까요. 울릉이나 고흥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어떠할까요. 신의주나 백두산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또 어떠할까요.


  자그마한 나라에서 살지만, 우리 집 네 식구 깃든 전남 고흥에서는 밤마다 별을 숱하게 만납니다. 자그마한 나라에서 살지만, 고흥을 떠나 할머니 할아버지 계신 충북 음성이나 경기 일산으로 찾아가고 보면, 밤하늘 별이 그리 많지 않아요. 때때로 서울이나 인천이나 부산에 볼일 있어 찾아가면, 밤하늘에 별을 아예 못 볼 적마저 있어요.


  밤이 깊어도 할머니하고 놀겠다며 잠을 안 자려 하던 아이들을 재웁니다. 아침에 큰아이가 아주 일찍 일어납니다. 다섯 살 큰아이는 “나, 할머니한테 가서 ‘잘 주무셨어요.’ 하고 인사하고 싶어요.” 하며 말합니다. 아직 이른 새벽입니다. 새날 새롭게 놀 생각에, 늦게 잠들고서 되게 일찍 일어납니다. 하기는. 나도 이 아이들만 한 어린 날 되게 일찍 일어났는걸요. 아니, 나는 더 일찍 잠에서 깨었는걸요. 이른새벽부터 부산하게 아침을 마련하고 아침일을 하시던 외가 할머니를 보았고, 외가 친척들을 보았는걸요.


  일찌감치 일어나서 새벽하늘을 보았어요. 천천히 동이 트는 하늘을 보았어요. 차츰 달라지는 하늘빛을 느꼈어요. 바야흐로 온 들판과 멧골이 푸르게 빛나도록 하는 햇살이 얼마나 밝은가를 느꼈어요.


..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밤하늘의 별들을 서로 구별할 줄 알아요. 그보다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참나무와 단풍나무를 구별할 줄 알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딱따구리를 본 적이 없어도 딱따구리와 까치를 구별할 줄 알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밤이 되면 항상 볼 수 있는 별들을 그저 신비롭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에요 ..  (3쪽)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국민학교 삼학년 무렵이었지 싶으니, 1984년일 텐데, 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하룻밤 묵은 적 있습니다. 무슨무슨 수련회 같은 자리였어요. 같은 학년 아이들 모두 운동장에 천막을 쳤어요. 그러고는 깊은 밤에 모두들 깨워 일어나도록 했어요. 그러고는 교장 선생님이 우리더러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이렇게 가게와 집마다 불이 꺼진 깊은 밤, 학교 운동장에서 별이 아주 잘 보인다고, 하늘에 별이 얼마나 많은지 보라 했어요.


  바다와 가까운 곳에 있던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별을 꽤 많이 보았습니다. 돌아보면 어느덧 서른 해나 지난 일이니 그러할 텐데, 요즈막 충북 음성에서 밤하늘 올려다보면 내 어릴 적 인천에서 보던 밤하늘하고 엇비슷해요. 그리고, 어린 날 충남 당진에서 올려다보며 놀라던 밤하늘은 오늘날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전남 고흥에서 올려다보며 누리는 밤하늘하고 엇비슷해요.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큰아이는 걸리며, 밤하늘 누리는 저녁나절 마을 한 바퀴를 돌 적, 곰곰이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고흥 시골마을에 전기가 아직 안 들어오던 서른 해쯤 앞서 이곳 밤하늘은 어떤 빛깔이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오가는 자동차 없고 드나드는 자동차 또한 없었을 조금 더 먼 지난날에는 이곳 고흥 밤하늘이 어떤 무늬였을까 헤아려 봅니다.


  요즈음 한국사람은 네팔이나 티벳이나 몽골로 찾아가서 ‘놀라운 밤하늘’과 ‘눈부신 낮하늘’을 보며 놀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놀랍거나 눈부신 하늘이 한국에는 없었을까요. 한국사람 스스로 놀랍거나 눈부신 하늘을 내동댕이치고는, 이제 나라밖으로 나가 입을 헤 벌리는 셈 아닐는지요. 한국사람 스스로 너무 바쁘게 살아가겠다고 나서면서, 한국에서 올려다보던 너른 하늘을 스스로 잃거나 잊으면서, 나라밖으로 비행기를 타고 나가야 비로소 놀랍거나 눈부신 하늘을 볼밖에 없는 나날이 아닌가 싶어요.


  내 작은 집에서도 언제나 보던 하늘을 스스로 잃어요. 내 작은 마을에서도 늘 보던 하늘을 스스로 버려요. 이동안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얻어요. 이러는 사이 사람들은 자가용을 마련해요. 이 틈바구니에서 아파트를 짓고 고속도로를 놓으며 공장을 세워요.


..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밤이면 하늘은 갑자기 거대한 그림책으로 변해요 ..  (5쪽)


  지구별에서 다른 별을 바라봅니다. 지구별 사람으로서 다른 별 빛살과 빛깔과 빛결을 바라봅니다. 다른 별에서 지구별을 바라볼 때에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지구별은 푸르게 보일까요. 지구별은 파랗게 보일까요. 아니면, 온갖 배기가스와 공해로 더러워진 탓에 까맣게 보일까요. 어쩌면, 온갖 쓰레기와 찌꺼기로 뒤덮이면서 숲이 사라지고 잿빛 도시만 늘어나는 바람에, 다른 별에서 지구별은 아예 안 보이는 별이 되었을까요.


  자가용을 몰면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기 좋다고 합니다. 자가용을 몰면, 또는 택시나 버스나 기차를 타면, 이곳에서 저곳으로 퍽 빠르게 수월하게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움직이는 만큼 숲을 없애고 찻길을 닦아야 해요. 숲을 없애고 공장을 세워 자동차를 만들어야 해요. 숲을 없애고 석유를 뽑아올린 다음 석유를 다루는 공장을 지어야 해요. 커다란 짐차가 기름을 실어 날라 기름집을 만듭니다. 기름집도 숲을 민 자리에 짓습니다. 지구별 모든 도시는 숲을 밀어내고 닦습니다. 지구별 사람들이 도시에서 누리는 일이나 놀이는 모두 숲을 밀어 없애고 나서 누립니다.


  그러고 보면, 서울사람은 밤하늘을 누리려 하지 않아요. 도쿄사람도, 뉴욕사람도, 파리사람도, 런던사람도, 북경사람도, 모두들 밤하늘 누릴 생각이 없어요. 밤하늘 누릴 생각이 있던 사람은 일찌감치 서울도 도쿄도 뉴욕도 파리도 런던도 북경도 떠났겠지요. 밤하늘 예쁘던 시골에서 살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고 돈벌이를 얻으려고 밤하늘 하나도 없는 도시로 나아가서 시멘트집에 깃들려 하겠지요.


  낮을 잊으면서 밤을 잊어요. 아침을 잃으면서 저녁을 잃어요. 별을 잊으면서 달을 잊고, 해를 잊으면서 구름을 잊어요. 숲을 잊으면서 마을을 잊어요. 숲을 잃으면서 지구별을 잃어요.


  이제, 지구별 잃은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요. 지구별을 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꿈이나 사랑은 무엇일까요.


.. 우리는 계절마다 각각 다른 모습의 밤하늘을 볼 수 있어요. 만약 여러분이 도시에 살아서 별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면 각 계절과 시각에 따라 밤하늘의 모습이 변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거예요 ..  (24쪽)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 님이 빚은 그림책 《숨은 별자리 찾기》(비룡소,2002)를 읽습니다.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읽도록 돕는 길잡이책입니다. 참 재미나게 엮었기에 재미나게 읽을 만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을 읽을 아이들은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으레 도시 아이들이겠지요. 밤하늘에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별보다 가게 등불이 훠린 많을 도시 아이들이에요.


  서울에서 그림책 《숨은 별자리 찾기》를 펼칠 아이들은 별자리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북극성이나 국자별 하나라도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별자리뿐 아니라 별 하나라도 보려고 엄마 아빠랑 자가용 타고 서울 밖으로 빠져나와야 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시골에 남은 어린이가 매우 적습니다. 시골이라고 아이들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시골 어린이는 나날이 아주 빠르게 줄어요. 모든 시골 아이는 똑같은 도시 아이가 되도록 유치원과 어린이집부터 길들여집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라 하더라도 밤하늘이나 낮하늘을 누리지 못해요. 시골 유치원도 영어를 가르치고, 시골 어린이집도 영어 노래를 가르쳐요. 시골 초등학교도 영어교실을 마련해요. 시골에서 마음껏 누릴 별자리 이야기를 나누려는 시골 교사가 아주 드물어요. 시골에서 실컷 누릴 파란 빛깔 하늘과 하얀 빛깔 구름을 노래하려는 시골 교사가 얼마 없어요.


  예쁜 그림책에 깃든 예쁜 이야기는 누구한테 이바지를 할까 궁금합니다. 예쁜 그림책을 애써 펴내는 어른이나, 예쁜 그림책을 힘써 읽히려는 어버이는 어디에서 어떤 삶을 일구려 하는가 궁금합니다. 별빛이 스러지며 삶빛이 함께 스러집니다. 별빛이 사라지며 사랑빛이 나란히 사라집니다. (4345.9.29.흙.ㅎㄲㅅㄱ)

 


― 숨은 별자리 찾기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 글·그림,이현주 옮김,비룡소 펴냄,2002.10.17./8500원)

 

(최종규 . 2012)

 

..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와서 글을 올리느라 사진은 하나도 못 걸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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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 책읽기

 


  새벽 일찍 마을 청소를 한다. 한가위 맞이 큰청소이다. 청소를 마치고 바지런히 짐을 꾸린다. 11시 15분 군내버스를 탄다. 읍내로 나아간다. 읍내에서 순천역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순천역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기차에 탄다. 자리 넉 칸을 붙인다. 조치원역까지 기차가 신나게 달리고, 조치원역에서 다시 음성역으로 신나게 달린다. 음성역에서 내린 네 식구는 택시를 잡아타고 음성 읍내에 들렀다가 생극면 도신리로 달린다. 이제, 아이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집에 닿는다.


  아침 11시에 길을 떠나서 저녁 20시 무렵에 닿는다. 전남 고흥을 떠나 충북 음성으로 가는 네 식구는, 버스길과 기차길과 택시길에서 숱한 사람들을 만난다. 무뚝뚝한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아이들 바라보며 싱긋 웃는 사람들을 보며, 기차에 딸린 뒷간에서 담배를 피우며 연기 가득 채워 놓은 누군가를 본다. 고단함에 쩔디쩐 사람들을 보고, 맑게 웃거나 홀가분하게 이야기꽃 피우는 사람들을 본다. 옷차림이 눈부시거나 해사한 사람들이 있다. 옷차림이 우중충하거나 무거운 사람들이 있다. 짐이 많은 사람이 있고, 빈손인 사람이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이는 아주머니가 있고, 혼자 다니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있다.


  우리 곁을 스치는 숱한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 사람들한테 우리 네 식구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보이겠지. 이 사람들은 우리 네 식구를 비롯해 숱한 사람들을 어떤 이웃이나 동무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이 숱한 사람들을 어떤 이웃이나 동무로 여기면서 바라볼까.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품에 안는다. 스스로 떠올리는 지난날이든, 스스로 생각하는 오늘날이든, 스스로 꿈꾸는 앞날이든, 사람들 누구나 가슴속에 이야기 한 자락 품는다. 돈을 버느라 바쁘든, 무언가에 쫓기느라 힘겹든, 이것저것 하느라 슬프거나 외롭든, 이렇거나 저렇게 기쁘거나 홀가분하든, 스스로 느끼건 안 느끼건 사람들 누구나 이야기를 빚으면서 살아간다.


  저 사람 저 이야기는 어떤 삶이요 어떤 빛일까. 나와 옆지기와 두 아이는 어떤 삶이면서 어떤 빛인가. 우리들은 어떤 삶으로 어떤 꽃을 피우면서 어떤 빛을 이루려 하는가. 나는 어떤 일을 꾀하고 어떤 생각을 돌보면서 어떤 사랑을 나누려 하는가.


  나는 내 모습을 찬찬히 짚으면서 내 몸과 마음을 헤아리고, 내 가슴속에 깃든 이야기가 무엇인지 읽는다. 나는 누구보다 ‘나라고 하는 사람 책’을 읽는다. 내가 나를 읽을 수 있을 때에, 나는 내 옆지기를 읽을 수 있겠지. 내가 나를 읽지 못할 때에, 내 두 아이가 어떤 빛이면서 숨결인가를 읽지 못하겠지.


  나를 사랑하는 내 삶일 때에 나를 둘러싼 이웃과 동무를 따사롭게 바라볼 수 있으리라 느낀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내 삶일 적에 내 둘레에 흐르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느끼는 허여멀건 나날이 되리라 느낀다. 사람을 읽기는 아주 쉽다. 내가 나를 읽는 데에서 사람읽기가 열리니까. 사람을 읽기는 아주 즐겁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데에서 사람읽기 첫끈을 여니까.


  같은 하늘 아래이지만, 들판과 멧자락과 물과 바람이 다른 곳에서,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삶을 꾸리며 사랑을 일군다. (4345.9.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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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이 넘어간 새벽하늘 별빛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부터 달빛이 밝다. 한가위를 앞둔 달이로구나 싶도록, 보름달이 아니어도 참 환하다. 그런데 이 달빛이란 달이 내는 빛이 아니라, 해가 빚어 내보내는 빛을 받아 지구별로 되비치면서 이루는 빛이겠지. 환하게 비추는 달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달에 아로새겨진 무늬를 찬찬히 읽어 본다. 망원경이 없어도 이럭저럭 볼 수 있는 만큼 달무늬를 읽는다.


  아이들 잠들고 나도 잠든다. 새벽녘에 깬다. 작은아이 바지와 기저귀를 간다. 나도 오줌이 마렵다. 마당으로 나온다. 풀숲이 된 빈터에 쉬를 눈다. 그동안 달은 넘어갔고, 아직 깜깜한 새벽하늘은 온통 별빛이다.


  별이 참 많구나. 아니, 별이 참 많이 보이는구나. 달이 넘어가고 나니 별이 훨씬 많이 보이는구나. 누군가는 이 별 저 별 엮어 별자리를 그리기도 하는데, 별자리로 그리는 별 말고도 훨씬 더 많은 별이 하늘에 있지 않을까. 왜 어느 별은 별자리에 들어가고, 왜 어느 별은 별자리에 안 들어갈까.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별이 아주 많을 텐데, 이들 별은 어떤 별일까.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지구라는 별은 어떤 별자리처럼 보일까. 다른 별에서 살아가는 목숨은 지구를 어떤 별자리로 그릴까. 어쩌면 다른 별 목숨은 지구라는 별을 굳이 별자리에 안 넣을는지 모른다. 지구별 사람이 어느 별은 별자리에 넣고 어느 별은 별자리에 안 넣듯, 지구라는 별도 똑같이 대접을 받을 수 있겠지.


  저 먼 별에는 어떤 삶이 이루어질까. 내가 발을 디딘 이 지구별에는 저마다 어떤 삶을 이룰까. 저 먼 별빛은 지구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내가 발을 디딘 이 지구별에서 일구는 내 삶은 저 먼 별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4345.9.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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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외버스 글쓰기

 


  들판 사이를 천천히 달리는 시외버스. 멧골 사이로 천천히 달리고, 냇물 곁도 천천히 달려, 사람들만 아스팔트 딛고 사는 큰 도시로 나아간다. 이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을 떠나 도시로 깃드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도시 품에 안겼을까. 그동안 들판과 멧골과 냇물이랑 어깨동무하던 사람들은 아스팔트 도시에서 무엇을 얻고 누리면서 나누는 삶일까.


  시외버스를 타고 나가며 사랑을 얻었을까.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꿈을 건사할까. 시외버스를 타고 나가며 믿음을 얻었을까.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생각을 스스로 빚을 수 있는가. (4345.9.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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