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신문 책읽기 2 (고흥 나로호 어민 피해)

 


  2012년 10월 26일에 전남 고흥 봉래면 나로도에 있는 우주기지에서 우주선을 쏜다고 한다. 신문이나 방송마다 그날 우주선을 제대로 쏠 수 있는지를 다룬다. 그러나 나는 처음 고흥에 들어와 살려고 할 적부터 우주기지에는 눈길을 안 두었다. 아니, 눈길을 안 두지 않았다. 고흥에서 살아가려 한다면, 우주기지하고는 적어도 20킬로미터쯤은 떨어진 데에 살아야 한다고 여겼다. 더없이 마땅하지만, 우주선을 쏘려고 하면 방사능이라든지 먼지라든지 매연이 얼마나 많이 생길까. 우주기지를 전남 고흥과 같은 외진 시골에 짓는 까닭이 있고, 전남 고흥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있는 봉래면 나로도 맨 끝자락에 세운 까닭이 있다. 그만큼 우주기지는 ‘사람이 살아가는 터’에 나쁘기 때문이다. 우주기지를 일찍부터 세운 나라들은 우주기지를 으레 사막에 세운다. 그만큼 환경피해가 크니까. 그런데, 한국은 우주기지를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으로 둘러싸인 봉래면 나로도에다 세웠다. 이렇게 되면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은 어떻게 될까. 이 국립공원 바다에서 마을 고기잡이(어부)들이 낚아올릴 물고기는 어떠할까. 국립공원으로 둘러싸인 갯벌에서 얻을 갯것은 얼마나 싱싱하거나 푸르다 할 만할까.


  중앙 언론매체뿐 아니라 전라도 언론매체에서는 ‘우주선을 잘 쏠 수 있기를 바라는’ 이야기만 다룬다. 어느 언론매체도 ‘우주선을 쏠 때에 일어나는 환경피해’를 다루지 않는다. 더군다나, ‘우주선을 쏘며 고흥 나로도 어민이 입는 피해’는 밝히지 않는다. 나로도 어민은 ‘우주선을 쏘면 여러 날 진동 피해’가 있어, 물고기가 모조리 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진동 피해도 있지만, 우주선을 쏘기 앞서 ‘어업 통제’를 하느라 일을 못한단다(아직 바닷사람들은 ‘진동 피해’만 따질 뿐, 다른 피해는 따지지 않는다). 나라에서는 고기잡이배 한 척마다 하루 30만 원 보상을 해 주겠다 하고, 바닷사람은 고기잡이배 한 척마다 하루 100만 원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밝힌단다는데, 정부 보상규정은 2011년에야 겨우 마련했단다. 고흥군청이든 교육과학기술부이든 누구이든 모두 ‘잔치판’을 벌이려 하지만, 고흥 바닷사람은 나로도 둘레에서 ‘해상시위’를 벌인다.


  시골마을 인터넷신문을 읽는다. 시골신문 가운데서도 시골마을 인터넷신문에서만 ‘고흥 나로호 어민 피해’ 이야기를 다룬다. 아무래도 시골마을 이야기는 시골신문이 아니고서야 안 다루겠지. 서울 이야기는 서울신문이 아니고서야 안 다루겠지. 도시 이야기라든지 정치 이야기 또한 도시신문이 아니고서야 안 다루겠지. 그러나, 가을철 시골마을 사람들 일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시골신문에서조차 다루지 않는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여느 어버이가 아이들 낳고 돌보며 살아가는 이야기 또한 도시신문이든 시골신문이든 다루는 일이 없다. 시골하고는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펴내는 신문은 ‘새로 나오는 책’을 어떤 눈썰미로 바라보면서 다룰까.


  밤바람이 스산하게 분다. 초승달은 차츰 반달로 바뀐다. 별을 노래하던 시인을 우러르지 않을 지식인도 비평가도 기자도 없을 테지만, 정작 지식인이나 비평가나 기자는 스스로 별을 노래하지 않는다. 전남 고흥은 밤별이 아름다운 시골이다. 다만, 고흥 읍내나 면내에서는 밤별을 보지 못한다. 시골 군에서도 읍내나 면내를 벗어나야 비로소 밤별을 누린다. (4345.10.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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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뽑고
지심 매는
이웃 할머니
열 손톱
흙알갱이 곱게
물들인다.

 

고부장하면서
굵은 손가락마다
튼튼하고 씩씩한
숨결 빛나
한여름 땡볕에
풀바람 쐬며
아이들 생각한다.

 

할머니 먹고
손자 손녀 먹는
노랗게 빛나는
열매.


4345.8.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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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여우비

 


  한가을로 접어든 뒤 처음으로 비가 내린다. 가을비가 찾아온다. 그런데, 하늘 저쪽과 이쪽은 해가 환하게 비춘다. 아침햇살 노랗게 빛나는데, 요 한쪽에서는 빗줄기 쏴아 퍼붓는다.


  뭔 일이니. 봄도 여름도 아닌 가을에 여우비라니. 그러나 겨울에도 여우비는 올 수 있겠지. 때로는 여우눈도 있는걸. 틀림없이 하늘에서는 밝게 따순 햇살이 노래하더라도 한쪽에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기도 하잖아.


  엊저녁 자정이 되도록 마을 한켠에서 벼베는 기계 구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오늘 가을비 쏟아질 줄 알고 밤새도록 벼를 베었구나 싶다. 가을걷이 바쁜 일손 하루쯤 쉬라는 비일까. 아무리 가을이라 하더라도 너무 가물지 말라며 살그마니 숲과 들을 적시는 비일까. 아이들은 빗소리를 듣고는 마당에서 긴신 신고 우산 들며 논다. (4345.10.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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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11] 맛있는 밥상

 


  ㅇ시에 있는 고등학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퍽 머나먼 길을 고속버스를 타고 찾아갔습니다. 네 시간에 걸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를 타는데, 버스에 타기 앞서 밥 먹을 데를 살핍니다. 길가에서 맨 먼저 보이는 밥집으로 들어갑니다. 무엇을 시킬까 따로 생각하지 않고 ‘맛있는 밥상’이라고 적힌 밥이 무엇인가 여쭈어 두 그릇 시킵니다. 이른바 여느 밥집에서 ‘백반(白飯)’이라 이름을 붙여 내놓는 밥이 이곳에서는 ‘맛있는 밥상’입니다. 조금 기다리니 국과 반찬 몇 가지를 내옵니다. 살짝 허술하구나 느끼면서도 이름은 ‘맛있는 밥상’인 만큼 맛있게 먹자고 생각하며 맛있게 먹습니다. 어찌 되든 고맙게 받아서 먹는 밥이기에, ‘고마운 밥상’이 될 수 있습니다. 맛은 있지 않더라도 ‘즐거운 밥상’이나 ‘반가운 밥상’이 될 수 있겠지요. 밥집마다 그날그날 새 국과 반찬을 내놓기도 하니까, 이때에는 ‘오늘 밥상’이나 ‘오늘밥’처럼 이름을 붙여도 어울려요. 때로는 가장 수수하면서 투박하게 ‘밥 한 그릇’이라 이름을 붙일 수 있고, 더 단출하게 ‘밥’이라고만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4345.10.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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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er Evans: American Photographs (Hardcover)
Evans, Walker / Distributed Art Pub Inc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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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이 사진책은 다시 살 수 없겠지만, 새로 나온 이 워커 에반스 책이면 넉넉히 즐길 만하리라 느낍니다.

 

..

 

 

 

 

 


 사진이야기를 연 밑바탕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3]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Photographs for the Farm Security Administration 1935-1938》(Da Capo press,1973)

 


  한국 사진밭에도 두루 알려진 ‘워커 에반스’나 ‘도로디어 랭’ 같은 사진쟁이는 미국에서 ‘농업안정국(FSA,Farm Security Administration)’ 사진을 찍으면서 ‘다큐사진 새길을 열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해 봅니다. 먼저, 1930년대 미국에서 워커 에반스 님이나 도로디어 랭 님 같은 이들이 ‘농업안정국한테서 돈을 받으며 일감을 얻지 않’았더라도, ‘대공황이며 여러 가지 어려운 가시밭길 한복판에서 고단하게 지내는 시골사람 모습과 이야기’를 이녁 스스로 사진으로 옮기려 했을까요. 다음으로는, 농업안정국이 생기고 농업안정국에서 미국 시골마을 삶자락을 낱낱이 살피며 어떤 정책을 꾀할 뜻이 있었기에, 농업정책을 꾀할 공무원부터 시골마을 삶자락을 제대로 살피거나 알아보고자 여러 사진쟁이를 불러 ‘기록사진을 찍도록 일을 맡겼’기에, 비로소 ‘워커 에반스’라는 이름이나 ‘도로디어 랭’ 같은 이름이 사진밭에 태어날 수 있었다고 할까요.


  두 가지 모두 옳다고 할 수 있고, 두 가지보다 다른 테두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여러 가지가 맞물리면서 ‘다큐사진 새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농업안정국이나 워커 에반스·도로디어 랭이 아닌 ‘세계 사진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은 수많은 이들이 지구별 곳곳에서 그야말로 ‘다큐사진 새길’을 씩씩하게 걸었다고 할 수 있어요.


  나는 어느 쪽을 옳거나 맞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책을 읽을 때에는 사진책에 담긴 사진을 읽고, 사진에 서린 이야기를 읽을 뿐, 이 사진이 찍히도록 이끌거나 돕거나 애쓴 흐름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고 느껴요. 어느 밑바탕이 있으니 이러저러한 사진이 태어날 만하지만, 밑바탕을 캐자고 사진을 읽지는 않아요. 사진을 읽으려고 사진을 바라볼 뿐이에요. 이를테면, 우리 집 아이들이 올해(2012년)에 다섯 살·두 살인데, 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예쁘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낀다면 그야말로 아이들 스스로 맑고 환하게 빛나는 숨결이 있어서 예쁘거나 사랑스럽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이 아이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저귀를 몇 장 빨래하고 밥을 얼마나 지어 먹이며 밤마다 자장노래를 얼마나 애틋하게 불러 주었느니 하는 ‘뒤치다꺼리’는 대수롭지 않아요. 아이들을 보살핀 어버이 손길은 따스하거나 넉넉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아이들을 바라볼 때에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바라볼 뿐이에요.


  사진책 《Photographs for the Farm Security Administration 1935-1938》(Da Capo press,1973)을 읽습니다. 사진책에 붙은 이름을 살피면 ‘사진들’은 사진들이로되, ‘농업안정국에서 1935년부터 1938년 사이에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미국 시골 참모습을 밝힌다거나 가난한 시골사람 삶을 파헤친다거나 ‘새로운 다큐사진 이야기’를 선보인다거나 하는 느낌은 조금도 안 담습니다. 이 사진책을 펼치면,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님이 어떠한 원판(어떤 크기 어떤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느냐를 찬찬히 밝히고, ‘농업안정국에서 바라는 대로 찍은 사진’을 목록처럼 죽 실어 줍니다. 이러면서 ‘농업안정국에서 바라는 대로 찍은 사진 가운데 따로 추린 사진’을 앞자리에서 큼직하게 보여줍니다.


  사진책 앞자리에 실린 ‘추린 사진(Selected Photographs)’을 보면, 세계 사진 역사에 널리 알려진 작품이 파노라마처럼 죽 나옵니다. ‘추린 사진’을 지나 ‘목록 사진’을 보면, 워커 에반스 님이 어떤 흐름으로 ‘기록사진’을 찍었는가를 살필 수 있습니다. ‘목록 사진’은 바깥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할 사진인데, 이 ‘목록 사진’을 보면 워커 에반스 님이 ‘기록사진’만 찍지 않고 이녁 나름대로 ‘빛을 만지’거나 ‘사진틀을 새롭게 엮어’ 보려 한 자국이 드러납니다.

 

 

 

 

 


  미국 농업안정국은 사진예술을 뽐낸다든지 사진문화를 펼친다든지 하는 일을 맡지 않습니다. 1930년대 미국 시골마을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아(기록) 농업정책을 꾀하는 밑자료로 삼으려 했습니다. 농업안정국에서 워커 에반스 님을 비롯한 사진쟁이들한테 일삯을 얼마나 주고 필름값은 얼마나 치러 주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록 사진’이 있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이 사진책에 실린 사진을 모두 농업안정국에 내놓았을 텐데, 농업안정국에서는 이 ‘목록 사진’을 받으면서 어느 한편으로는 썩 달갑지 않았겠다 싶기도 합니다. 워커 에반스 님은 ‘한 곳에서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어요. 아이들 사진이나 한식구 사진에서도 ‘이런 모습으로도 찍고 저런 모습으로도 찍’어요.


  그러니까, 농업안정국 공무원이 바라보자면, 아무리 ‘사진을 찍어 밑자료로 삼는 기록으로 다루려고 사진 일감을 사진쟁이한테 맡겼다’ 하더라도, ‘한 자리에서 한 장’만 찍으면 되지, 왜 이런 얼굴 저런 모습까지 여러 장 찍느냐고 투덜거릴 수 있겠다 싶어요. 건물 하나를 찍어도 ‘이런 빛살 저런 빛느낌’을 달리 하면서 찍기도 했으니, ‘워커 에반스 이놈이 필름을 함부로 쓰지 않나’ 하고 골을 부릴 수 있구나 싶어요. 농업안정국은 사진쟁이한테 ‘사진을 찍어서 달라’고 했지 ‘예술사진을 찍’는다거나 ‘다큐사진을 찍’어 달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농업안정국은 미국 시골이 어떤 모습인가를 낱낱이 담는 사진을 바랐지, ‘다큐사진 새길을 연다 할 만’한 사진을 바라지 않았어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농업안정국은 여러 사진쟁이한테 사진을 맡기며 이곳에서 쓸 사진을 얻습니다. 투덜거리거나 골을 부릴 만하지만, 바라는 사진을 여러모로 얻습니다. 홀가분하게 사진을 찍을 수는 없고, ‘일감 맡긴 이가 바라는 사진’을 찍어야 하던 워커 에반스 님이었을 텐데, 농업안정국이 바라는 대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워커 에반스 님은 당신 나름대로 당신 눈썰미와 눈길과 눈빛이 담기는 사진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아니, 누가 어떤 사진 찍어 달라 바란다 하더라도, 사진기를 농업안정국 공무원 아닌 워커 에반스 님이 쥐었으면 아주 마땅히 ‘워커 에반스 사진’이 나오겠지요. 그리고, 농업안정국이 바라는 대로 미국 여러 시골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워커 에반스 님은 ‘수많은 사람들 다 다른 삶터’에 눈을 뜨고 ‘수많은 사람들 다 다른 삶자락’에 눈을 밝혔으리라 느껴요.


  사진이란 이러하다, 하고 말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사진은 사진을 읽거나 찍는 사람마다 다 다른 삶이에요. ‘사랑이란 이러하다, 삶이란 이러하다, 꿈이란 이러하다.’ 같은 말도 이와 같아요. 함부로 어떻다 하고 말할 수 없어요. 다 다른 사람들마다 다 다른 사랑이요 삶이며 꿈이에요. 워커 에반스 님은 스스로 바랐든 누군가 시켰든, 숱한 사람을 마주하고 온갖 삶터를 돌면서 ‘사진 찍는 길’을 새롭게 헤아릴밖에 없습니다. 이제껏 다른 사진쟁이들 스스로 즐겁고 힘차게 보여주지 못하던 사진길을 살필밖에 없습니다.


  1930년대를 지나 2010년대를 맞이한 오늘날을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고향나라 골골샅샅 누비는 사진쟁이도 많고, 고향나라를 떠나 지구별 여러 나라를 누비는 사진쟁이도 많습니다. 꼭 ‘다큐사진’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갖은 곳을 누빕니다. 광고사진이나 패션사진이라 하더라도 스튜디오에 짱박혀서 찍지는 않아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도 찍고 브라질 정글에서도 찍어요. ‘사진 찍는 길’은 한 갈래가 아니요 ‘사진 읽는 눈’ 또한 한 가지가 아니에요. 워커 에반스 님이 남다르게 ‘다큐사진 새길’을 열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만, 워커 에반스 님은 오직 하나, ‘사진 찍는 길’과 ‘사진 읽는 눈’은 수없이 많구나 하는 이야기를 농업안정국한테서 일감을 받아 찍은 사진으로 찬찬히 보여주는구나 싶습니다.


  사진이야기를 여는 밑바탕은 바로 나한테 있습니다. 누가 일감을 맡긴대서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니에요. 논문이나 보고서로 내는 비평글이라 해서 사진읽기가 새롭게 태어나지 않아요. 스스로 삶을 새롭게 일굴 때에 사진찍기가 새롭게 거듭납니다. 스스로 삶을 새롭게 사랑할 적에 사진읽기가 새삼스레 빛납니다. (4345.10.22.다.ㅎㄲㅅㄱ)

 

(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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