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유치원 - 설립에서 프로그램까지
장희정 지음 / 호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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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는 밤하늘을 볼까
[시골사람 책읽기 002] 장희정, 《숲 유치원》(호미,2011)

 


  고흥 도화 동백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 네 식구는 가끔 읍내로 마실을 다녀옵니다. 시골마을에서 지내며 딱히 읍내에 볼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면내 가게에서는 안 파는 곤약을 사거나, 안경을 바꾸거나, 고무신 한 켤레를 사거나(플라스틱신 아닌 고무신으로), 갑오징어를 먹고 싶거나, 순천에 있는 헌책방을 다녀오려고 하면 읍내에 찾아갑니다.


  때때로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를 태우고 읍내마실을 하곤 합니다. 한창 봄이 흐드러지고 여름 더위가 조금 누그러질 때에는 아이들과 자전거마실로 읍내를 다녀와도 즐겁습니다. 쌀쌀한 바람 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읍내로 자전거마실을 하지는 않습니다. 식구들 다 같이 군내버스를 탑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동백을 지나 봉서와 봉동과 고당을 지날 무렵, 이웃마을 들판과 멧자락도 동백 못지않게 예쁘다고 느낍니다. 철마다 다른 모습으로 푸르고 싱그럽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세동세거리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마복산 모습을 보면서 푸른 숨결을 헤아립니다. 포두로 접어들 무렵 바라보는 팔영산을 구경하고, 늦가을인데 아직 거두지 않은 수숫대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을 살펴봅니다.


  이제 고흥 가을들은 거의 모두 텅 빕니다. 빈들 가운데에는 관청에서 ‘경관사업’으로 꾀하는 ‘유채씨 뿌리기’를 하는 데가 있고, 빈논을 갈아엎은 다음 비닐을 씌우고 마늘 심는 부산한 데가 있습니다. 보기 좋으라며 유채씨를 뿌린다고 하지만, 봄철을 맞이하면 유채씨를 안 뿌린 자리도 무척 보기 좋습니다. 노란 꽃송이가 흐드러지는 유채밭만 예쁘지 않아요. 온갖 풀꽃이 알록달록 피고 지는 빈논도 예뻐요. 호덕마을 어느 논에는 자운영씨를 잔뜩 뿌려 자운영 꽃빛이 흐드러지기도 해요. 시골에서는 굳이 경관사업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만, 구태여 하자면 유채씨 한 가지만 뿌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여쁜 풀씨와 꽃씨는 사람 눈에는 안 보인다 하더라도 시골 들판 곳곳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여기저기 깃드는걸요.


  냉이씨가 날고 부추씨가 날아요. 산초씨도 날고 느티씨도 날아요. 솔씨도 날고 후박씨도 납니다. 모시옷 지어 입는 모시풀 모시씨도 들판마다 한들한들 날아다니며 곳곳에서 줄기를 올려요. 들과 멧기슭으로 딸기풀이 이어지며 봄이면 들딸이 소담스럽습니다. 국화잔치를 따로 벌이지 않아도 시골마을 가을들마다 노랗고 하얀 꽃송이가 활짝 웃습니다.


.. 숲에 가서 활동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육 장소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교사와 부모의 생활 습관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실마리가 된다. 부모는 아이의 숲 활동을 돕기 위해 날씨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흙이 더러운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  (26쪽)


  읍내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에 곧잘 ‘읍내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함께 타곤 합니다. 퍽 먼 시골에서 읍내까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입니다. 가까운 면에도 중·고등학교가 있으나 이 아이들은 애써 읍내까지 학교를 다녀요. 교육청에서 중·고등학교 통폐합을 하는 바람에 고흥에서는 앞으로 금산고등학교와 나로고등학교마저 문을 닫는다지요? 면내 고등학교가 문을 닫는 일이란, 면내 아이들이 몽땅 읍내나 이웃 도시로 빠져나가며 시골을 무너뜨리는 일인 줄 깨닫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그나저나, 읍내까지 학교를 다니는 ‘더 깊은’ 시골 아이들은 군내버스에서 창밖 가을 모습을 구경하지 않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더러 바깥 들과 메와 바다와 내를 구경하지만, 거의 다 손과 손에 전화기 붙들고 들여다보느라 바쁩니다.


  봄에 새 잎과 꽃이 돋으며 봄빛이 흐드러지든, 여름에 잎사귀 푸르게 빛나고 논마다 싱그러운 사름빛이 물들든, 가을에 누렇게 무르익는 들판이 차츰 비면서 새 이야기를 들려주든, 겨울에 조용히 잠들며 포근히 쉬는 숲바람이 흐르든, 시골아이가 시골사람답게 시골내음 느끼는 일이 퍽 드물구나 싶어요.


  그러고 보면, 읍내에서 지내는 분들이 우리 식구 지내는 동백마을에 찾아왔다가 저녁에 댁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보고는 ‘고흥에 별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말씀하기도 해요. 고흥은 틀림없이 시골이지만, 읍내에서도 별바라기 하기란 만만하지 않아요. 읍내도 면내도 ‘도시를 닮’으니까요. 한국에서 그 어느 곳보다 미리내를 또렷하게 보고 밤하늘 별잔치를 실컷 누릴 수 있는 고흥인데, 고흥 어른들은 스스로 별과 달을 얼마나 누리고, 고흥 아이들은 스스로 해와 들과 메와 바다를 얼마나 즐길까요.


.. 요즘 아이들에게 자연은, 이미 우리 일상생활과 멀어져 있어서, 자동차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비해 흥미나 가치 측면에서 뒤떨어진 듯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연의 가치는 물론이고, 자연이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는지 찬찬히 보여준 적이 없다 … 숲은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하고,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놀이를 끝없이 제공한다 ..  (70, 233쪽)


  물질문명이 앞선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숲 유치원’을 마련해서 엽니다. 도시는 ‘길’도 ‘살 길’도 ‘참 살 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날이 자연그림책이나 생태환경책이 쏟아집니다. 도시물질문명으로는 사람이 버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시 어버이들은 한 달에 다문 한 번이라도 아이들이 숲을 느끼도록 하려고 발버둥입니다. 이와 달리 시골 어버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시골을 벗어나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려고 발버둥입니다.


  어른 스스로 숲을 모르면 아이 또한 숲을 모릅니다. 어른 스스로 숲을 안 즐기면 아이 또한 숲을 안 즐깁니다. 아름다운 숲과 들과 바다가 있어도, 이 아름다운 숲과 들과 바다를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는 어른들만 고흥에 있으면, 이곳에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는 하나도 안 남겠지요. 모두 도시 학교와 도시 회사와 도시 공장으로 떠나겠지요. (4345.11.12.달.ㅎㄲㅅㄱ)

 


― 숲 유치원 (장희정 씀,호미 펴냄,2011.12.1./18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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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44) 있다 12 : 앉아 계시다

 

이사하고 / 첫손님인 낙엽 한 장이 / 싱크대 앞에 초라하게 / 앉아 계시다
《서수찬-시금치 학교》(삶이보이는창,2007) 46쪽

 

  ‘이사(移徙)하고’ 같은 한자말은 굳이 한자말로 여기지 않아도 되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집을 옮기고’나 ‘집 옮기고’나 ‘새 집 들고’나 ‘새 집에서’로 손질하면 한결 나아요. ‘낙엽(落葉)’은 ‘가랑잎’으로 손봅니다. ‘싱크대(sink臺)’는 ‘개수대’나 ‘설거지대’로 다듬으면 돼요.

 

 앉아 계시다
→ 앉으셨다
→ 앉으신다
→ 앉는다
 …

 

  앉으면 앉을 뿐 “앉아 있지” 않습니다. 서면 설 뿐 “서 있지” 않아요. 한국 말투는 이와 같습니다. “누워 있지” 않고 “누워”요. 보기글에서는 높임말로 적으려고 “앉아 있다”도 아닌 “앉아 계시다”로 적는데, 이 또한 올바르지 않아요. 높임말로 적자면 ‘-시-’를 넣어 “앉으시다”나 “앉으셨다”로 적어야 해요.


  다른 보기를 들자면 “보고 있으셨다”나 “듣고 있으셨다”도 잘못이에요. “보셨다”나 “들으셨다”로 적어야 알맞습니다. (4345.11.12.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새 집 들고 / 첫손님인 가랑잎 한 장이 / 개수대 앞에 초라하게 / 앉으신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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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에 시집 네 권

 


  저녁에 시집 네 권을 읽는다. 한 권은 즐겁게 읽고, 세 권은 이렁저렁 시큰둥하게 읽는다. 즐겁게 읽은 시집을 쓴 이도 어떤 문학상 하나를 받았다 하는데, 신문배달 하던 어릴 적 이야기부터 방위병으로 지내며 현역병한테 숱하게 얻어맞은 이야기에다가 탄광일과 김일 하는 삶을 시로 알뜰히 적바림했다. 다른 세 권을 쓴 이도 이런 상 저런 상을 받았다 하고, 누군가는 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기도 한단다. 그런데 나는 이들 시집 세 권이 썩 즐겁지 않다. 이들은 시를 왜 썼을까. 이들은 시를 써서 왜 상을 받고 왜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할까.


  시는 헛소리를 담지 않는다. 시는 삶을 담는다. 삶을 담지 않고서는 시가 태어나지 않는다. 주절주절 떠들거나 말놀이를 한대서 시가 될까. 주절주절 떠들면 ‘주절주절 시끄러운 소리’요, 말놀이를 하면 ‘꼬투리 잡는 말놀이’가 될 뿐이다.


  일을 하건 놀이를 하건 아이를 돌보건 살림을 꾸리건 마실을 다니건 숲에 깃들건 무얼 하건, 스스로 살아내는 하루를 노래 하나로 영글 때에 비로소 싯말이 태어난다고 느낀다. 어떤 일을 하건 무슨 대수랴. 어떤 일을 하건 스스로 말꽃을 피울 수 있어야 노래를 불러 시를 짓겠지.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스스로 사랑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지 못할 뿐 아니라 시노래를 짓지 못한다.


  한 달에 걸쳐 읽는 시집이 아니요, 한 해 내내 읽는 시집이 아닌, 저녁나절 휘리릭 훑고는 두 번 다시 펼칠 일이 없으리라 느끼는 시집 세 권이란 무엇일까. 이 시집이 되려고 싹둑싹둑 베이고 만 숲은 무엇이 된 셈일까. 종이 한 장은 나무 한 그루요, 책 한 권은 숲 한 자락이다. 시집 하나는 숱한 숲이 새로 태어난 넋이다. 사람들은 숲에 어떤 이름을 아로새길 생각인가. 사람들은 숲을 밀어 어떤 돈을 벌 생각인가. (4345.1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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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풀

 


  집 뒤꼍 시멘트로 바닥을 바른 틈바구니에서 풀이 돋는다. 척 보기에도 맛난 풀이다. 이 가을에 너희는 우예 이곳에서 이처럼 푸르게 돋을 수 있니. 우리 식구들 맛나게 먹으라는 뜻이니. 너희를 맛있게 먹고 푸른 숨결로 씩씩하게 살아가라는 뜻이니. 반가우며 고맙고 즐겁구나. 푸른 풀잎은 햇살과 바람 머금으며 싱그럽고, 푸른 풀잎 먹는 사람은 햇살과 바람 서린 싱그러운 숨결 먹으면서 기쁜 넋으로 살아갈 힘을 얻겠지. (4345.1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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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11.7.
 : 그렇게 자전거 타고 싶나

 


-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자전거수레에 올라타고 논다. 아직 너희 다리힘으로는 자전거를 굴리지 못해, 이렇게 수레에 탈밖에 없지만, 빈수레에 올라타고 놀기만 해도 재미나니.

 

- 돌이켜보면 나도 어릴 적에 빈수레에 올라타고 싱싱 달린다느니 훨훨 난다느니 하고 꿈꾸며 놀기도 했다. 수레 임자인 어른이 이 꼴을 보면 수레 망가진다고 길길이 뿔을 내며 달려들었는데,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며 빈수레에 올라타고 놀곤 했다. 국민학교에서도 빈수레 있으면 서로 올라타고 서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민다며 놀곤 했다.

 

- 해가 아직 걸린 늦은 낮나절, 서재도서관 나들이도 하면서 마을 한 바퀴 휘 돈다. 바람이 제법 세게 불어 멀리 나가지는 않는다. 이웃마을 살며시 도는 동안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든다. 옆마을 유자밭 지날 무렵 곯아떨어지고, 큰아이는 옆에서 생글생글 웃는다. 큰아이는 제가 동생 재워 주었다고 노래노래 부른다.

 

(최종규 . 2012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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