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남기는 어린이

 


  가을햇살 곱게 받으며 마당에서 노는 사름벼리는 그림자 곱게 뒤로 남기면서 달린다. 빨간 꽃 한 송이 핀 자리로 공을 주으러 간다. 공을 줍고는 즐겁게 휙 던지며 논다. (4345.1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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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빨래가 힘들다는 거짓말

 


  손빨래를 늘 하면서 손빨래가 힘들다고 생각하거나 느낀 적은 없다. 그런데, 둘레 사람들은 마치 손빨래가 힘든데 굳이 그 짓을 왜 하느냐고 말하기 일쑤이다. 몸소 손빨래를 해 본 적 없기 때문일까. 손수 손빨래를 한 적은 있으나, 누가 시켜서 억지로 했기 때문일까.


  기계한테 빨래를 맡기면, 기계는 속옷이든 양말이든 겉옷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기저귀이든 아이 바지이든 아이 웃옷이든 달리 주무르지 않는다. 빨래하는 기계는 모든 옷가지를 똑같이 흔들고 섞으면서 빨고 짠다. 이와 달리, 사람은 모든 옷가지를 다르게 비비고 헹구고 짠다. 사람이 손빨래를 할 적에는 기저귀는 기저귀대로, 겉옷은 겉옷대로, 속옷은 속옷대로 찬찬히 주무르고 비비며 헹군다.


  식구들 옷가지를 날마다 여러 차례 만지작거리며 생각한다. 손빨래란, 손으로 밥을 짓는 일하고 같다. 손으로 밥을 짓는 일이란, 손으로 씨앗을 심어 흙을 돌보는 일하고 같다. 손으로 흙을 돌보는 일이란, 손으로 아이들을 살살 어루만지며 아끼는 일하고 같다.


  나이 스물이 되도록 손빨래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나이 서른이 된대서 손빨래를 할 수 있으리라 느끼지 않는다. 손빨래를 하지 않던 아이들이 걸레를 빨아서 방바닥 훔칠 줄 알리라 느끼지 않는다. 손빨래 한 적 없는 아이들이 혼인을 해서 갓난쟁이를 낳은 다음, 똥기저귀나 똥바지를 어떻게 빨래할까 하고 걱정하거나 갈팡질팡할밖에 없으리라 느낀다.


  식구들 옷가지를 기계한테만 맡겨 빨래할 적에는, 스스로 즐거운 삶을 놓칠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아무런 삶을 못 보여주고 못 가르치며 못 물려주리라 느낀다. 손으로 씨앗을 흙에 심어 먹을거리를 거둔 다음, 손으로 밥을 지어 함께 먹듯이, 손으로 옷가지를 건사한다. 손으로 바느질을 한다. 손으로 빨래를 하고, 손으로 갠다. 손으로 옷을 꺼내어 입는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비질하고, 손으로 서로를 따사로이 어루만지며 사랑한다. (4345.1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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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없이 아버지하고만 엿새

 


  이제 아이들 어머니가 ‘람타’ 공부를 마치고 오늘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몇 시쯤 시골집에 닿을까. 저녁에 아이들 잠들고서 닿을까. 아무튼 아이들은 어머니 없이 닷새 밤을 자고 엿새째 맞이한다. 어머니 없는 허전함은 두 아이 모두 느끼지만, 작은아이가 훨씬 크게 느끼는구나 싶다. 이럴 때일수록 더 따스하고 살가이 맞이해야 하는데, 아버지 되는 사람은 아이들 칭얼거림을 조금 더 따스하거나 살가이 맞이해 주지 못한다.


  문득문득 내 말투에서 나 스스로 ‘훈육’과 같은 기운을 느낀다. 이런 기운을 느끼면서 생각을 다스린다. 나는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잖니. 그래, 아직 나는 나 스스로 사랑하지 못해서 아이들한테까지 어머니 없는 엿새 동안 ‘훈육’ 같은 말을 쏟아내지 않는가.


  아침놀을 바라본다. 저녁놀을 바라본다. 밤별을 보고 새벽별을 본다. 작은아이는 스물네 시간 아버지 바짓자락 붙잡고 달라붙는다. 똥을 누러 갈 수도 없고, 빨래를 널러 나올 수도 없다. 밥도 겨우겨우 짓는다. 밥하는 곁에서 구경하는 일은 좋으나, 불 옆에서 자꾸 손잡이를 돌리려 하니 쫓고야 만다. 불 곁에서 알짱거리는 작은아이 큰아이한테 마음쓰다가 커다란 냄비 뚜껑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아이들 어머니가 돌아오는 오늘, 옆지기가 오는 때에 맞추어 읍내에 나가 마중을 할까 싶기도 하고, 그냥 마을 언저리에서 마실을 다닐까 싶기도 하다. 밤새 잠을 이루지 않고 아버지 곁에 붙어 아버지도 잠을 못 이루게 하던 작은아이는 새벽 여섯 시 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잠이 든다. 아침 일곱 시를 넘기니 큰아이가 일어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지.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놀아야 할밖에 없고,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밤새 못 이룬 잠을 달게 자도록 곁에서 토닥여야 할 테지. 이번 엿새 동안 작은아이가 젖을 뗄 수 있을까. 어머니가 다시 와도 젖을 안 물고 밥만 먹을 수 있을까. 젖이 없으니 물을 많이 마시고 밥도 바지런히 먹던데, 어찌 보면, 아이들은 개구지게 놀도록 지켜보다가 꽤 배가 고프다 싶을 때에 짠 하고 밥상을 차려야지 싶기도 하다. 스스로 배가 고파 노래노래 부를 때에 마지못해 주는 척하며 밥을 내주어야 다들 맛나게 밥그릇을 비우리라 본다. (4345.1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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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놀

 


아침놀을 바라보면
알아요.

 

하루가
얼마나
맑게 빛나고

 

내 삶이
어느 만큼
아름다운가를.

 


4345.10.2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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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값등록금 아닌

 


  반값등록금이야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 다만, 반값등록금 아닌 한 해 천만 원 등록금으로 돈을 버는 이들이 당신 돈벌이를 반토막으로 쉽게 줄이겠다고 나설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런데,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자꾸 놓치는데, 당신(젊은이)들이 대학생이 되기까지 당신 어버이는 해마다 오백만 원∼천만 원에 이르는 돈을 교육비로 썼다. 유치원부터 고3까지 해마다 이만 한 돈을 썼다. 대학등록금은 고작 네 해에 내는 돈일 뿐이지만, 유치원부터 고3까지 해마다 오백만 원∼천만 원에 이르는 돈이 나간 줄 얼마나 알아챌까 궁금하다.


  나는 대학교를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두었는데, 내가 처음 대학교에 발을 디딘 1994년만 하더라도, 내 선배들은 나한테 으레 “너희가 대학생이 되기까지 너희 부모는 1억 원 넘게 썼다.”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런 말을 하는 대학교 선배가 없는 듯하다. 대학생이 되기까지 여느 어버이가 써야 하는 어마어마한 사교육비 생각은 뒤로 한참 젖히고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 써야 하는 고작 사천만 원밖에 안 되는(?) 돈 이야기만 울부짖는다.


  곰곰이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대학생이라 해서 생각이 열린 사람이 아니다. 그저 대학생일 뿐이다. 대학생이 되기까지 입시공부만 했지 사회공부마 삶공부나 사랑공부를 한 이가 누가 있을까. 갓난쟁이 적부터 스무 살이 되기까지 제도권학교에 얽매인 채 대학바라기만 하던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연애도 자유’요 ‘섹스도 자유’라 하는데, 참말 사랑을 배운 적 없고 사랑을 생각한 일 또한 없이 이렇게 놀아나면서 대학등록금만 반값으로 깎자고 외치는 일이란 무엇일까.


  시골에서는 유치원 삯을 지자체에서 낸다. 시골에서는 중·고등학생이 되어도 사교육비는 퍽 적게 든다. 그러나 이웃 작은도시만 하더라도 유치원 삯부터 다달이 적어도 50만 원은 들여야 하고, 이밖에 이래저래 자질구레하게 나가야 하는 교육비를 더하면 고작 일고여덟 살짜리 아이 하나한테조차 다달이 백만 원이 나간단다. 대학등록금 천만 원 시대라고 하지만, 정작 이 말 뒤에 감추어진 ‘유치원 사교육비 천이백만 원 시대’인 줄 드러나지 않는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이 대목을 잘 느끼고 알리라. 그런데, 막상 도시에서 살아가며 아이 낳아 돌보는 어른들이 이런 말을 외치지 않는다. 스스로 못 느낄까. 스스로 안 느낄까. 스스로 생각을 안 할까.


  아직 철부지인 갓 스무 살 젊은이가 ‘반값등록금’을 외친다 하면, ‘어른이라 하는 이’들은 곁에서 똑같이 목청 높여 외칠 일이 아니다. 이 젊은이들한테 이제껏 너희가 너희 어버이 살림돈을 얼마나 바닥내면서 유치원·초·중·고등학교를 다녔는가를 일깨워야 한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반값등록금’이 아니다. (4345.1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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