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장 마이노리티 시선 5
이한주 지음 / 갈무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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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동무하는 내 이웃
[시를 노래하는 시 35] 이한주, 《평화시장》

 


- 책이름 : 평화시장
- 글 : 이한주
- 펴낸곳 : 갈무리 (2000.3.10.)
- 책값 : 5000원

 


  장모님과 옆지기는 김치를 담그느라 부산하고, 아이들은 뛰노느라 바쁩니다. 장모님과 옆지기는 김치를 담그면서 김치내음이 온몸에 흠뻑 배고, 아이들은 뛰놀면서 땀내음이 온몸에 물씬 뱁니다.


  나한테는 어떤 내음이 날까 생각해 봅니다. 밥을 먹으면 밥내음이 날 테고, 술을 마시면 술내음이 날 테지요. 떡을 먹으면 떡내음이 날 테며, 두부를 먹으면 두부내음이 나겠지요.


  풀을 즐겨먹는 사람한테서는 풀내음이 납니다. 고기를 즐겨먹는 사람한테서는 고기내음이 납니다. 흔히, 세겹살 구워먹은 다음 옷에 고기내음이 밴다고들 말하지만, 옷에만 고기내음이 배지 않아요. 온몸에 고기내음이 배어요. 왜냐하면, 내가 먹은 세겹살은 내 뱃속을 거쳐 내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거든요. 세겹살은 내가 되고, 나는 세겹살이 돼요. 그러니까 스스로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아무것이나 먹을 수 없어요. 화학조미료를 먹는 사람은 스스로 화학조미료가 됩니다. 자동차 배기가스를 먹는 사람은 스스로 자동차 배기가스가 됩니다. 발전소 매캐한 매연을 먹는 사람은 매캐한 매연이 되고 말아요.


  먹는 대로 내가 그 모습이 되듯, 보는 대로 내가 그 모습이 됩니다. 듣는 대로 내가 그 모습이 되고, 생각하는 대로 내가 그 모습이 돼요.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바란다면, 스스로 ‘어떤 모습인 삶일 때에 아름다운가’ 하고 생각해야 해요.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생각한 다음, 이 아름다운 모습을 누리고 돌보며 가꿀 수 있을 만한 보금자리를 찾아 즐겁게 일구어야 합니다.


.. 아침 아홉시에 출근하면 / 다음날 아홉시에 퇴근하고 / 아침 아홉시에 퇴근하면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 일요일이나 빨간날이나 / 또 그 다음날 아홉시에 출근해야 하는 / 똑딱똑딱 / 스물네 시간 맞교대 / 내가 일하는 날은 / 비가 오지 말아야 하고 / 너무 춥거나 덥지도 말아야 하고 / 가을, 단풍이 너무 흐드러지지 말아야 한다 / 이틀 중 하루는 / 친구나 선배나 후배나 친척들 누구라도 / 아프지도 말며 결혼도 하지 말고 / 그 하찮은 모임도 하지 말아야 한다 ..  (스물네 시간 맞교대 나는)


  의사 집안에서는 의사가 나옵니다. 공장 노동자 집안에서는 공장 노동자가 태어납니다. 농사꾼 집안에서는 농사꾼이 태어납니다. 정치꾼 집안에서는 정치꾼이 태어납니다. 늘 보고 자란 대로 배웁니다. 언제나 마주하며 살아온 대로 젖어듭니다.


  의사 집안이 더 거룩하지 않고, 공장 노동자 집안은 덜 떨어지지 않습니다. 높고 낮은 직업이나 신분이나 계급이 없다고 말하는 민주주의 사회라 한다면,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든, 공장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공장 노동자가 되든 대수롭지 않아요. 이 나라가 참말 민주주의 사회가 맞아, 평화와 평등이 꽃피우는 아름다운 삶터라 한다면, 농사꾼 집안에서 자라며 농사꾼 일을 하든, 정치꾼 집안에서 자라며 정치꾼 일을 하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길을 걸어가면서 제 넋과 사랑과 꿈을 보듬으면 넉넉합니다.


.. 자르고 깁고 다리고 / 누이들의 눈물로 흐르던 / 복개천의 폐수를 알기에는 / 호기심보다 키가 작았을 무렵 / 발 밑에 돌을 얹어 놓고 / 까치발하며 몰래 넘겨보던 평화시장은 / 빨강 초록 옷가지보다 / 구경거리가 더 많이 널린 / 온통 내 희망이었습니다 ..  (사랑법 8―청계천 평화시장)


  나는 고운 이웃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나 스스로 이녁한테 고운 이웃이 되고 싶거든요. 나는 착한 동무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나 스스로 당신한테 착한 동무가 되고 싶어요. 나는 참된 살붙이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나 스스로 우리 살붙이하고 오순도순 얼크러지는 참된 삶을 누리고 싶어요.


  빛을 바라보는 사람은 빛을 바라봅니다. 어둠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둠을 바라봅니다. 꿈을 바라보는 사람은 꿈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오늘날 도시 물질문명 사회처럼, 모두들 돈을 바라보도록 내모는 곳에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돈만 바라보면서 막상 스스로 어떤 모습인지를 돌아보지 못해요.


  돈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돈은, 그예 돈입니다. 돈은, 물건을 사거나 팔 때에 주고받는 이음고리입니다. 책 한 권을 장만할 적에 돈을 치릅니다. 책 한 권을 만들 적에 돈을 치릅니다. 스스로 돈을 좋다고 여기거나 나쁘다고 여기면, 그만 ‘돈수렁’에 빠집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돈이기에, 꾸밈없이 돈을 돈대로 바라보며 마주하기만 하면 돼요.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시골숲을 바라보면서 늘 똑같이 여깁니다. 시골숲이라서 더 좋지 않고 굳이 나쁘지 않습니다. 좋거나 나쁘다는 말마디로 시골숲을 금그을 수 없어요. 시골숲은 시골숲이에요. 풀이 자라고 나무가 크며 새들이 둥지를 트는 시골숲입니다. 하늘빛 파란 무늬를 눈부시게 올려다보는 시골숲입니다. 냇물이 쪼르르 흐르며 맑은 기운 뽐내는 시골숲입니다. 기름진 흙에 온갖 풀이 마음껏 자랍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갖은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개구리도 뱀도 시골숲에 구멍을 파고 들어가 겨울잠을 잡니다. 시골숲은 사람이 먹고사는 밑바탕이 됩니다. 시골숲은 모든 짐승을 살찌우는 밑터가 됩니다. 시골숲은 어떤 풀이나 나무라 하더라도 넉넉히 껴안아 품에 보듬는 밑자리가 됩니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울타리를 씌울 수 없는 시골숲은 바다와 같습니다. 바다는 너른 멧골과 같습니다. 너른 멧골은 푸른 들판과 같습니다. 푸른 들판은 파랗게 빛나는 하늘과 같습니다.


.. 동대문 지하철역 다번 출구 계단을 오르다 보면 수원행 막차가 지날 때까지 개떡쑥떡팥떡을 풍채만큼 넉넉하게 팔고 계시는 아주머니가 계실 거예요 오실 때쯤이면 누런 변또에 김치뿐인 점심을 드실 시간이겠군요 살짝 목례라도 하고 계단을 마저 오르면 한일은행이 보이지요 은행 옆길, 언제나 개나리처럼 노오랗게 웃어주시는 김씨 아주머니의 꽃집을 따라 고사리 손등처럼 오막조막 시장이 펼쳐지지요. 과일가게 대원식당 구두가게 옷가게 창신이발관 떡볶이집이 숨차게 놓여 있고요 마주보는 떡집과 옷가게 사이 파도 팔고 고등어도 팔고 떨이 사과도 파는 손수레들이 노란색 중앙선으로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들고 있지요 ..  (창신동―평화의 집)


  나와 어깨동무하는 이웃은 누구인지 헤아려 봅니다. 나를 둘러싼 이웃은 누구일까 생각해 봅니다. 내 이웃은 어떤 숨결일까요. 내 이웃과 이웃한 다른 이웃은 어떤 꿈결일까요. 저마다 어떠한 마음 되어 어떠한 노래를 부르는 하루를 누릴까요.


  도시는 나쁘고 시골은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거꾸로, 도시는 좋고 시골은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도시는 도시일 뿐이요, 시골은 시골일 뿐입니다. 그저,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도시는 어떤 곳이며 시골은 어떤 곳인가를 제대로 알아야 할 뿐입니다.


  도시는 시골을 빨아먹으며 목숨을 잇습니다. 도시는 모든 땅뙈기를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습니다. 도시에는 발전소나 공장 같은 위해·위험시설을 들이지 않습니다. 발전소나 공장 같은 위해·위험시설은 몽땅 도시 바깥이나 시골에 세웁니다.


  도시에는 논밭을 두지 않습니다. 도시는 논밭을 파헤쳐 아파트나 건물로 바꿉니다. 도시는 시골 논밭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나 기찻길이나 공항을 자꾸자꾸 새로 짓습니다. 도시는 도시를 키우려고 시골을 망가뜨리고, 도시와 도시를 잇는다며 시골을 허물어뜨립니다.


  도시는 스스로 먹을거리를 빚지 못해요. 시골에서 먹을거리를 사다가 실어 날라야 합니다. 한국땅에서는 한국 시골에서든 아니면 중국이나 칠레나 필리핀 시골에서든, 먹을거리를 돈을 치러 사다가 실어 날라야 합니다.


  도시는 학교를 짓습니다. 도시에 지은 학교는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도시에 남아 도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장사꾼이 되도록 길들입니다. 도시에 지은 학교 가운데 아이들이 시골숲으로 깃들며 흙을 일구거나 나무를 아끼라고 가르치는 데는 없습니다. 대학교에서도 중·고등학교에서도 초등학교에서도, 시골 어린이집에서까지도, 아이들한테 농사짓기를 가르치는 데는 없어요.


  시골은 햇살이 있고 바람이 있으며 풀과 나무가 있는 데입니다. 시골은 무지개가 뜨고 뭉게구름이 피어나며 미리내가 노래하는 데입니다. 시골은 냇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시는 데요, 맨발로 흙을 밟으며 새 숨결을 빛내는 데입니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틀로 도시와 시골을 바라볼 까닭이 없습니다. 도시 속살과 시골 속내를 꾸밈없이 올바로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어떤 이웃과 어깨동무하며 살아가고 싶은가’를 슬기롭게 깨달아야 할 뿐입니다.


.. 팽이처럼 / 밖으로 밖으로만 나돌다가 / 두루루 / 앞치마를 두르고 / 저녁밥을 짓는다 / 감자도 볶고 / 시금치도 무치고 / 국만 끓으면 / 밥상 가득 들어찰 / 모처럼만의 안식에 / 진득허니 끓어야 한다던 / 콩나물국을 / 몇 번이고 엿보다 ..  (신혼일기 3―일요일)


  이한주 님 시를 갈무리한 《평화시장》(갈무리,2000)을 읽습니다. 이한주 님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서울에서 노동시를 쓰는 길을 걷습니다. 서울사람으로서 바라보고 느끼며 생각하는 이야기를 시 하나로 갈무리합니다.


  이한주 님 시는 ‘좋거나 나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한주 님 삶을 드러냅니다. 이한주 님 시는 ‘아름답거나 안 아름답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예 이한주 님 넋을 나타냅니다. 이한주 님 시는 ‘읽을 만하거나 안 읽을 만하거나’ 하지 않아요. 온삶 그대로 이한주 님 꿈을 보여줘요.


.. 가난보다 / 서너 발짝 앞서 오는 겨울이 / 발을 뻗어 / 창신동 아랫목에 / 잠시 머무는 사이 / 동화처럼 / 눈이 내리고 / 비탈길, / 아이들은 / 햇살을 주워 봄이 된다 ..  (겨울)


  우리 집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들며 노래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집에서건, 도시로 마실 나온 뒤 찾아가는 아파트나 여러 층짜리 건물에서건 신나게 쿵쿵쾅쾅 뛰고 놉니다. 아래층에 발소리를 내건 위층에 노랫소리를 내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소리를 신나게 터뜨립니다. 아이들은 저희 가슴속에서 샘솟는 몸짓을 흐드러지게 뽑아냅니다.


  우리 이웃 아이들도 개구지게 뛰놀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이웃 아이들 누구나 목청껏 소리질러 노래를 부르고, 온몸이 부서져라 뜀박질을 하면서 들과 멧골과 숲과 바다에서 흙투성이 개구쟁이가 되기를 빕니다.


  재미나게 놀며 자란 아이들은 재미나게 일하며 어깨동무하는 어른이 돼요. 신나게 놀며 큰 아이들은 신나게 일하며 어깨동무하는 어른이 돼요. 사랑스레 놀며 손을 맞잡는 아이들은 사랑스레 일하며 어깨동무하는 살가운 어른이 돼요.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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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갖춰서 즐길 책

 


  언제나 웃음짓는 꿈 솟아오르는 이야기 느끼도록 이끄는 책일 때에 즐겁게 갖춰서 읽는 책이 된다고 느낀다. 웃음짓는 꿈이 언제나 샘솟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다루지 못하거나 건드리지 못한다면, 굳이 돈을 들여 살 까닭이 없는데다가, 애써 펼쳐서 살피거나 훑을 값어치조차 없다고 느낀다.


  이 책 저 책 몽땅 읽어야 하지 않는다. 온누리에 새로 쏟아지는 숱한 책을 낱낱이 훑어야 하지 않는다. 새로 나오는 책을 널리 알려야 하지 않는다. 서로 즐겁게 나누면서 다 함께 아름다운 꿈 길어올릴 만한 책을 골고루 살펴서 ‘알맞다 싶은 때’에 두루 나누면 즐거우리라 느낀다.


  때로는 책 하나를 여러 차례 이야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나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는 삶이 되도록 이끄는 살가운 길벗 같은 책이라 한다면, 이러한 책을 열 차례 읽고는 느낌글을 열 꼭지 다 다르게 쓸 만하다. 아름다운 이야기 물씬 흐르니까. 아름답지 못하고 사랑스럽지 못하다면, 다문 한 쪽조차 읽을 까닭이 없다. 어여쁘지 못하고 살갑지 못하다면, 애써 쳐다보아야 할 까닭조차 없다.


  책값을 살펴 책을 사지 않는다. 책을 살펴 책을 산다. 읽을 만한 책을 살필 뿐, 주머니를 살피지 않는다. 즐거이 누릴 삶으로 이끄는 아리따운 책을 돌아볼 뿐, 살림돈이 얼마쯤 되기에 책 몇 권 살 만한가를 따지지 않는다.


  내가 갖춰서 즐기는 책은 내 삶을 빛내는 책이 된다. 이 책들은 먼 뒷날 우리 아이들 삶을 빛내는 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이요, 나는 나인 만큼, 나는 내 삶을 북돋울 책을 장만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녁 어버이인 나와 옆지기가 장만해서 읽은 책을 찬찬히 살피다가 저희 마음을 사로잡는 책이 있으면 기쁘게 뽑아서 읽을 테고, 우리 두 사람 책시렁에서 저희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책을 찾지 못하면 기쁜 넋으로 새롭게 책방마실을 다니며 아름다운 책을 찾아나서겠지.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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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바나나

 


  어디를 가더라도 바나나값이 매우 싸다. 한국에서는 바나나나무를 심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는데, 나라밖에서 사들이는 바나나값이 몹시 싸다.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감알 하나 값이 무척 싼데, 감알 싼 값을 헤아리고 보면, 바나나값이 훨씬 싼 셈 아닌가 싶다.


  한국사람은 바나나를 얼마나 많이 자주 사다가 먹을까. 한국사람이 먹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은 바나나는 참으로 어느 나라에서 얼마나 커다란 바나나밭을 일구어서 거두어야 할까. 바나나 한 송이 값이 천 원짜리 종이돈 한두 닢으로도 넉넉하다면, 이 바나나를 사들이는 회사와 이 바나나를 파는 과일집과 이 바나나를 내다 파는 이웃나라 회사는 ‘돈을 얼마나 버는’ 셈일까. 이리하여, 바나나밭을 일구는 나라에서 바나나를 돌보고 따며 갈무리하는 ‘시골 흙일꾼’은 일삯을 얼마나 받을까.


  아이들과 읍내 저잣거리 나오는 길에 이웃마을 할배가 시금치 잔뜩 담은 큼지막한 꾸러미 셋을 낑낑 짊어지고 군내버스에 실어 읍내에 내다 파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읍내 나물집에서는 큼지막한 시금치보따리 하나를 고작 7000원에 사들인다. 그나마 두 꾸러미만 사 주었기에 시골 할배는 버스삯 4000원을 들여 1만 원을 버는 셈인데, 나물집이든 하나로마트이든 면소재지 가게이든 시금치를 참 싸게 파는 까닭을 알 만하다. 시골 흙일꾼이 씨앗을 뿌려 돌보아 거둔 시금치를 잘 손질하기까지 해서 도매상이나 읍내 가게에 내다 팔아도 아주 푼돈을 쥐어 주니, 여느 사람들은 시금치를 더없이 싼값에 사다 먹을 수 있는 셈이다.


  시금치 한 묶음 제값을 치르려면 얼마쯤 되어야 할까. 배추 한 포기 제값을 치르려면 얼마쯤 되어야 할까. 100만 원짜리 손전화 기계나 1000만 원짜리 사진 기계나 1억 원짜리 자가용은 얼마나 제값을 한달 수 있을까.


  비정규직 노동자한테 제몫을 찾아 주려고 힘쓰는 사람들 가운데 다문 한 사람이라도 시골로 와서 시골 흙일꾼하고 어깨동무할 날은 언제쯤 될까. 정치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다며 떠드는 지식인과 평론가와 교수 가운데 다문 한 사람이라도 시골로 와서 시골 흙일꾼 삶자락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눈여겨 바라보는 이가 있을 날은 언제쯤 될까.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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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92 : 한 줄에서 읽는 넋

 


  우리는 굳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은, 읽고 싶은 사람이 읽을 노릇이지만, 읽고 싶은 사람이 읽고 싶은 대로 읽되, 스스로 넋과 삶과 말을 아름답게 북돋우려는 마음이 있을 때에 비로소 즐거이 읽을 수 있습니다. 아무나 아무 책을 골라 아무렇게나 읽는대서 책읽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글쓰기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아무나 아무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쓴대서 글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밥하기도, 빨래하기도, 아이돌보기도 늘 이와 같습니다. 아무나 아무 아이를 골라서 아무렇게나 돌본대서 아이돌보기라 하지 않아요. 스스로 가장 깊이 우러나오는 따순 사랑으로 돌볼 때에 비로소 아이돌보기예요. 값진 먹을거리를 손질해서 차려야 멋스럽거나 맛난 밥하기라 하지 않아요. 값싼 먹을거리이든 아니든, 스스로 가장 너른 사랑과 꿈결을 담는 가장 따사로운 손길로 먹을거리를 다루며 밥 한 그릇 차릴 때에, 비로소 밥하기라는 이름이 걸맞습니다.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들이 말놀이 삼아 “너, 야구의 ‘야’가 무언지 아느냐?” 하고 묻곤 했습니다. 비슷한 말꼴로 “너, 공부의 ‘공’아 무언지 아느냐?” 하고도 물으며, “너, 학교의 ‘학’이 무언지 아느냐?” 하고 묻기도 했어요. 동무들하고 ‘아무 생각 없이’ 야구를 하다가, 시험을 앞두고 ‘아무 생각 없이’ 시험점수 따는 공부를 하다가,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니다가 이 물음을 곰곰이 되뇝니다. 그래, 참말 야구란 뭐지? 참말 공부란 뭐지? 참말 학교란 뭐지?

 

  이 물음은 가지를 뻗습니다. 삶은 무엇일까? 사람은 무엇일까? 사랑은 무엇일까? 밥은 무엇일까? 흙은 무엇일까? 온누리는 무엇일까? 달과 별과 해는 무엇일까?


  나는 어느 한 가지조차 대꾸하지 못합니다. 아직도 어느 한 가지 이야기를 짓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어느 한 가지조차 풀이말을 달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언가 한 가지를 느낍니다. 나 스스로 ‘아무 생각 없이’ 휩쓸리거나 이끌린다면, 나는 무엇 하나라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자장노래를 부를 수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오랜 동무를 불러 이야기꽃 피울 수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 수 없어요.


  언제나 생각해야 해요. 언제나 내 삶을 돌아봐야 해요. 언제나 내 사랑이 얼마나 따뜻하거나 너른가 생각해야 해요. ‘반드시 무얼 해야 한다’라는 굴레가 아니라, ‘즐기는 삶은 어떤 빛일까’라는 꿈을 품는 길이로구나 싶어요.


  야마오 산세이 님 이야기를 갈무리한 《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이라는 두툼한 책을 읽다가 “배운다고 하면 무슨 대단한 공부라도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게 아니라 감동을 받는다는 말입니다(225쪽).”라 나오는 한 줄에 밑줄을 반듯하게 긋습니다. 나는 시골마을 시골숲을 바라보며 예쁜 삶을 배웁니다. 나는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면소재지 우체국을 다녀오면서 고운 삶을 누립니다. 나는 날마다 밥짓고 빨래하면서 멋진 삶을 나눕니다. 나는 아름다운 책 하나에 깃든 어여쁜 글 한 줄을 읽으며 환한 꿈을 꿉니다.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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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기
― 보고 싶은 사진이란

 


  내가 보고 싶은 사진이란, 내가 찍고 싶은 사진입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좋거나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기쁘거나 신나거나 보람차거나 멋지다고 느낄 적에 비로소 ‘사진으로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진이 없던 지난날에는 어떠했을까요. 사진이 있는 오늘날에는 기계를 빌려 종이에 앉히거나 파일에 담아 셈틀이나 손전화를 켜서 들여다봅니다. 사진을 누구나 흔히 즐기는 오늘날 흐름에서는 ‘사진이 없던 때’를 떠올리기 쉽지 않을는지 모릅니다만, 1980년대를 살거나 1950년대를 살거나 1910년대를 살거나 1700년대를 살아갈 내 모습을 헤아려 보셔요. 500년대나 기원전 어느 한때를 그려 보셔요. 그 옛날 내 삶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느낄 적, 나는 어떻게 할까요.


  사진이 태어나기 앞서 그림이 있었겠지요. 그림을 빌어 내가 느낀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담았겠지요. 그러면 글은? 말은? 글이나 말은 언제 왜 태어났을까요. 서로 생각을 나누거나 이야기를 꽃피우려고 글이나 말이 태어났달 수 있습니다만, 글도 말도 없을지라도 생각을 나눌 수 있고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우리한테는 마음이 있거든요. 마음으로 얼마든지 생각을 나눌 수 있어요.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이야기꽃은 언제라도 흐드러지게 누릴 수 있어요.


  깊고 깊은 바다에서 고래들이 서로 이야기 주고받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고래들은 바닷속에서 ‘고래끼리 주고받는 결’을 빌어 수백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도 생각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요. 사람은 이 결을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때때로 ‘고래 노랫소리’를 듣기도 한대요. 바닷속에서 ‘고래 노랫소리’를 들어 본 사람은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는 이 지구별에 없다고까지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타내기에 ‘고래 노랫소리’이지, 고래는 소리가 아닌 어떤 ‘결’로 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해야 옳지 싶어요. 이른바 ‘텔레파시’이든 무엇이든 말예요.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에서 코난과 라나는 마음으로 생각을 주고받아요. 가장 맑고 밝은 마음을 열면 아무리 멀리 떨어진 데에 있더라도 마음읽기를 해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이 아이들은 어버이인 나한테 늘 마음으로 이야기를 건넨다고 생각합니다. 참말 언제나 ‘마음말’을 느껴요. 입술을 달싹여 낱말을 내뱉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눈빛으로 어깻짓으로 몸빛으로 손짓으로 저희 느낌과 생각을 드러내요. 이러한 ‘마음말’을 어버이인 내가 읽거나 느끼거나 받아들일 때가 있으나, 못 읽거나 안 느끼거나 미처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어요.


  먼먼 옛날, 사진도 그림도 글도 말까지도 없던 옛날을 그려 봅니다. 아마 그무렵에는 어느 사람한테도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이나 말은 부질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구태여 사진으로 찍지 않아도 ‘남기고 싶은 모습’을 얼마든지 마음밭에 남길 테니까요. ‘아로새기고 싶은 이야기’라면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마음밭에 아로새길 테니까요.


  나는 가끔 내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사진기이건 그림종이이건 하나도 없지만, 동무들과 신나게 뛰놀던 모습을 아주 환하게 마음속으로 떠올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 내 마음을 읽는다면 ‘아하, 그러게요. 그때 당신은 이렇게 웃으며 뛰놀았네요.’ 하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기뻤던 일 슬펐던 일 고마웠던 일 반갑던 일 괴롭던 일 모두 하나하나 환하게 떠올릴 수 있어요. 따로 사진을 안 보더라도 떠올릴 수 있어요. 사진을 찍었기에 ‘그래, 그렇지. 그때에는 그랬어.’ 하고 되새길 때가 있습니다. 사진을 안 찍더라도 지난 한때 내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기는 고운 이야기를 되새기곤 해요.


  보고 싶은 사진이란, 참말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이 되겠지요. 그리고, 보고 싶은 사진이라 한다면 굳이 사진기를 들어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된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보고 싶은 모습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아로새겨졌으니까요. 내가 떠올리려고만 하면 그 예쁘고 멋지며 신나는 모습을 실컷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사진을 즐겁게 찍으려 하는 분들은 이 마음결을 잘 건사하기를 빌어요. 사진은 없어도 되며, 사진이 있기에 한결 즐거운 삶인 줄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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