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책읽기

 


  집에 있어도, 바깥에 있어도, 아이들은 춤을 추며 논다. 아이들 움직임은 언제나 춤과 같다. 할머니들은 우리 아이들을 보며 늘 웃는다. 잘 놀고 잘 뛰고 잘 웃는 이 아이들은 새 숨결을 불어넣는 하느님이라 할 만하다.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가만 있지 않는다. 그저 혼자 좋아서 춤을 춘다. 마늘잎 돋는 밭뙈기 앞에서 춤을 추고 마을회관을 바라보며 춤을 춘다. 그러고 보면, 춤을 추지 않으면 아이들답지 않달 수 있을까. 노래를 하지 않으면 아이들다움이 사라졌달 수 있을까. 까르르 웃고, 개구지게 뒹굴지 못한다면 아이들다움을 누군가 빼앗았달 수 있을까. 춤을 추는 사람이 웃고, 웃는 사람이 즐거우며, 즐거운 사람이 사랑을 나눈다. 4346.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76) 천하의 1 : 천하의 남사고도

 

천하의 남사고도 어쩔 수 없죠? 다른 사람의 묏자리는 잘 보면서 정작 자신의 아버지 묏자리는 제대로 보지를 못하니 말예요
《강난숙-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지혜롭게 살았을까?》(청년사,2008) 23쪽

 

  “다른 사람의 묏자리”는 “다른 사람 묏자리”로 다듬습니다. “자신(自身)의 아버지 묏자리”는 “제 아버지 묏자리”로 다듬어 줍니다.


  한자말 ‘천하(天下)’는 “(1) 하늘 아래 온 세상 (2) 한 나라 전체 (3) 온 세상 또는 한 나라가 그 정권 밑에 속하는 일 (4) (일부 명사 앞에 쓰이거나 ‘천하의’ 꼴로 쓰여) 매우 드물거나 뛰어나서 세상에서 비길 데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뜻한다고 합니다. 토씨 ‘-의’를 붙이는 말꼴은 넷째 뜻으로 쓰는 셈입니다.


  그런데, “천하를 다스리다”라 해도 나쁘지 않지만, “온누리를 다스리다”라 하면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공산당 천하”라면 “공산당 판”이나 “공산당 누리”나 “공산당 나라”처럼 적을 수 있겠지요.

 

 천하의 남사고도
→ 내로라하는 남사고도
→ 온누리에 비길 바 없는 남사고도
→ 묏자리 잘 보는 남사고도
→ 그 잘난 남사고도
→ 그 똑똑한 남사고도
 …

 

  온누리에 비길 데가 없는 사람이라면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둘도 없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놓고 “그 잘난”이라든지 “그 똑똑한”이라든지 “그 대단한”을 꾸밈말로 넣어도 어울립니다. 보기글에서는 묏자리를 잘 보는 사람을 이야기하니, “묏자리 잘 보는 아무개”라고 적어도 됩니다.

 

 천하 갑부 → 알아주는 갑부
 천하 절경 → 끝내주는 모습
 천하의 명기 → 아주 훌륭한 기생
 천하의 못된 놈 → 더없이 못된 놈

 

  한자말이건 한국말이건, 쓰는 만큼 더 익숙하게 쓸 수 있습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대로 더 잘 쓸 수 있습니다. 한자말 ‘천하’를 써 버릇하면 토씨 ‘-의’가 자꾸 달라붙습니다. 어떤 말씨로 생각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삶이 차츰 달라지는 줄 느낄 수 있기를 빌어요. 4341.3.21.쇠./4346.1.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 똑똑한 남사고도 어쩔 수 없죠? 다른 사람 묏자리는 잘 보면서 정작 제 아버지 묏자리를 제대로 보지를 못하니 말예요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305) 천하의 2 : 천하의 파인만 씨에게도

 

천하의 파인만 씨에게도 중년의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북새통》 67호(2008.4.) 28쪽

 

  “중년(中年)의 위기(危機)는”은 “아찔한 중년”이나 “아슬아슬한 중년”이나 “흔들리는 중년”으로 다듬으면 어떠할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썩 내키지 않습니다. ‘중년’이 한 사람한테 어느 나이 때인가를 헤아려 봅니다. 나이 마흔을 넘기는 때부터 쉰 살 언저리입니다. 흔한 말로 “꺾이는 나이”가 한자말 ‘중년’으로 가리키는 때입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는 “파인만 씨도 나이가 꺾이니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나 “파인만 씨한테도 꺾이는 나이에는 위기가 어김없이 찾아왔다”로 손보면 어떨까 싶군요.

 

 천하의 파인만 씨에게도
→ 한결같던 파인만 씨한테도
→ 거침없던 파인만 씨한테도
→ 잘나가던 파인만 씨한테도
→ 훌륭한 파인만 씨한테도
 …

 

  보기글에 나오는 ‘천하의’는 거침이 없거나 씩씩하거나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키지 싶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뜻과 느낌 그대로 적을 때에 가장 알맞습니다. 통째로 고쳐쓸 수 있겠지요. “한결같던 파인만 씨한테도 중년이라는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나 “거침없던 파인만 씨한테도 꺾이는 나이에는 위기가 어김없이 찾아왔다”로. 4341.4.11.쇠./4346.1.3.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거침없던 파인만 씨도 꺾이는 나이는 어김없이 위기였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57) 천하의 3 : 천하의 나쁜 놈

 

혹시 누군가 내 머릿속을 열고 들여다보면 천하의 나쁜 놈이라고 욕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죠
《노을이-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철수와영희,2012) 59쪽

 

  ‘혹시(或是)’는 ‘아마’나 ‘어쩌면’이나 ‘문득’이나 ‘이를테면’으로 손볼 수 있어요. 이야기 나누는 흐름을 살펴 알맞게 손봅니다. “욕(辱)할 것 같아”는 흔히 쓰는 말투로 여겨 그대로 둘 수 있지만, “나무랄 듯해서”나 “꾸짖을까 봐”나 “손가락질하겠다 싶어”로 손질하면 한결 나아요. 국어사전 말뜻을 살피면 ‘욕’은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음”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한국말로 쉽고 알맞게 하면 됩니다. “마음이 불편(不便)하죠”는 “마음이 안 좋지요”나 “거북하지요”나 “꺼림칙하지요”로 다듬습니다.

 

 천하의 나쁜 놈이라고
→ 천하에 몹쓸 놈이라고
→ 이 나쁜 놈이라고
→ 이런 나쁜 놈이라고
→ 몹시 나쁜 놈이라고
→ 대단히 나쁜 놈이라고
 …

 

  이 보기글은 겉으로는 한국말처럼 보이지만, 조금도 한국말이 아닙니다. “천하의 나쁜 놈” 같은 말투는 일본 말투입니다. 일본사람이 쓰는 말투를 껍데기만 한글로 적은 모습입니다. 토씨 ‘-의’ 넣은 자리를 고쳐 “천하에 나쁜 놈”처럼 적으면 그나마 한국말 맛이 살짝 난다 할 텐데, 이나마 헤아릴 수 있는 한국사람은 차츰 줄어듭니다.


  “세상에 이런 나쁜 놈이 다 있나”처럼 말하고, “이 벌건 대낮에 무슨 짓이람”처럼 말합니다. 이 보기글처럼 쓰는 자리에 한국사람은 ‘-에’를 넣습니다. ‘-의’를 넣지 않아요.


  글흐름을 더 헤아리면, ‘천하의’는 꾸밈말 구실을 합니다. 나쁜 놈을 말하는데, 어떻게 나쁘다 하는 뜻을 북돋우는 구실입니다. 그래서 ‘몹시’나 ‘매우’나 ‘아주’나 ‘참말’이나 ‘대단히’나 ‘무던히’ 같은 낱말을 넣으면 잘 어울립니다. ‘이’나 ‘이런’이나 ‘이렇게’나 ‘이다지도’나 ‘이 따위로’ 같은 말마디를 넣어도 썩 어울려요.


  이런 말투 저런 말씨 그런 낱말을 찬찬히 헤아리지 않으면 ‘-의’ 말씀씀이는 단단히 들러붙어요. 스스로 아름답게 쓰려고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 말투는 아름답게 거듭나지 못해요. 스스로 곱게 추스르려고 힘쓰지 않으면, 우리 말씨는 곱게 빛나지 못해요. 4346.1.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마 누군가 내 머릿속을 열고 들여다보면 아주 나쁜 놈이라고 나무랄 듯해서 거북하지요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로 기대는 마음

 


  힘든 누군가 등을 기댑니다. 힘이 없는 누군가 팔이나 어깨를 잡고 기댑니다. 힘이 들고 힘이 빠지니 그예 기댑니다. 기댈 만한 등이나 팔이나 어깨가 되어 주는 이가 고맙습니다. 그런데, 기댄다고 할 때에는 힘이 없거나 적거나 모자라거나 빠진 쪽만 기대지는 않는구나 싶어요. 힘이 있거나 많거나 넉넉하거나 넘치는 쪽도 나란히 기대는구나 싶어요. 둘이 서로 만나기에 서로 기대겠지요. 한쪽은 받으면서 기대고, 한쪽은 주면서 기대요. 한쪽은 받으면서 새 기운을 돋우고, 한쪽은 주면서 새 기운을 차려요.


  물이 흐릅니다. 판판한 곳에서는 물이 고이지만, 조금 기울어진 데에서는 물이 흐릅니다. 물은 땅밑에서 천천히 솟아서 높은 곳에서 터지고, 높은 곳부터 낮은 자리까지 다시금 천천히 흐릅니다.
  물은 흐르기에 맑습니다. 물은 고이기에 썩습니다. 사람은 서로 기대어 기운을 나누기에 맑습니다. 사람은 서로 기대지 않거나 기운을 주고받지 못할 적에는 스스로 어두워집니다.


  나는 누군가한테 기댈 수 있어 즐겁습니다. 누군가 나한테 좋은 ‘비빌 언덕’ 되어 주니, 이녁한테도 새 기운 샘솟도록 북돋우는 구실을 하리라 느낍니다. 거꾸로, 나는 글 한 꼭지 쓰면서 누군가한테 ‘비빌 언덕’이 됩니다. 집에서 살림 꾸리고 밥을 차리면서, 아이들한테 ‘비빌 언덕’이 되고, 나는 내 지친 마음을 아이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 들으며 달래니까, 아이들은 나한테 새삼스러운 ‘비빌 언덕’입니다. 4346.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버스에서 함께 앉는 어린이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에서, 사름벼리는 혼자 앉아 가겠다 한다. 저녁이라 사람이 북적일 듯한데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가지? 읍내 벗어나기 앞서 버스는 꽉 차고, 사름벼리더러 엉덩이 나누어 함께 앉자 말하는 분이 있다. 사름벼리는 엉덩이를 창가로 붙이며 함께 앉아 준다. 그래, 너는 너답게 살면서 네 마음을 나누면 되겠지. 그런데 말야,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 무릎을 마치 네 걸상처럼 여기면서, 버스에서는 왜 아버지 무릎을 걸상으로 안 삼는데? 434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분꽃 2013-01-03 15:08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아이들도 한자리 차지하고픈 마음이 있나봅니다. 저희딸애도 어릴때 곧잘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파란놀 2013-01-04 05:35   좋아요 0 | URL
네, 그런가 봐요~
 
스시 걸 1
야스다 히로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03

 


마음을 기울여서
― 스시 걸 1
 야스다 히로유키 글·그림,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2013.1.15./7500원

 


  새벽 세 시, 작은아이가 끄응 소리를 내며 엎드리다가는 슬며시 눈을 뜹니다. 무언가 말이 안 된다 싶은 꿈을 꾸며 허덕이다가, 작은아이 잠 깬 소리를 듣고는 나도 게슴츠레 눈을 뜹니다. 눈을 뜨면서 작은아이 바지를 만집니다. 안 젖었습니다. 작은아이를 일으켜서 품에 안습니다. 마루에 놓은 오줌그릇에 앉힙니다. 작은아이 밤오줌을 누입니다. 밤에 오줌이 마려울 적에 그냥 기저귀에 싸기도 하지만, 바지나 기저귀에 오줌을 싸기 앞서 으레 한두 차례 ‘오줌 마려운 티’를 냅니다. 이때 잘 알아채면서 쉬를 누이면 바지도 기저귀도 버리지 않고, 작은아이도 오줌을 잘 가릴 수 있습니다. 이때를 놓치면 작은아이는 바지나 기저귀에 오줌을 싸고는, 축축한 아랫도리가 못마땅해 밤에 으앵 하고 웁니다.


  쉬를 눈 작은아이는 이제 개운한지 다시 새근새근 잠듭니다. 고맙네, 잘 되었네, 하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나도 더 잘까, 새벽 글쓰기를 할까,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눈꺼풀이 무거우니 다시 잠자리에 들까 싶지만, 작은아이 밤오줌 누이기 앞서까지 꾼 꿈이 뒤숭숭해서 다시 눕고 싶지 않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뒤숭숭한 꿈이 찾아왔을까 곰곰이 돌아봅니다.


  자꾸 이불 걷어차며 뒹구는 큰아이를 바르게 눕힙니다. 이불을 여밉니다. 큰아이는 자꾸 이불 걷어차며 이리저리 뒹굽니다. 잠든 작은아이도 작은아이대로 이쪽저쪽 뒹굽니다. 두 아이를 옆에 나란히 누여 잠자리에 들면, 둘 모두 착 달라붙는다든지, 둘 모두 저리 구른다든지, 둘 모두 이불 걷어찬다든지, 여러모로 마음을 쓰도록 합니다. 잠을 못 자게 한다기보다, 잠자는 동안에도 여러모로 마음을 쓰게 합니다.


- “으음, 아무래도 임신한 것 같아. 잠깐 잠깐, 손뼉 치지 마. 낳으려면 일도 그만둬야 하고, 돈도 없고, 술이랑 담배를 끊을 자신도 없는데다, 아마 그 녀석도 엄청 화낼 거야. 뭐? 얼굴이 웃고 있다고?” (16∼17쪽)
- “결국 끝까지 함께해 줬구나. 5년이었나?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는데. 왠지 즐거웠던 건 어째서일까.” (21∼22쪽)


  밥을 끓이고 나물을 헹구며 찬거리를 마련합니다. 밥상을 차리며 아이들을 부릅니다. 아직 두 아이 모두 밥상 앞에 얌전히 앉아 밥그릇 말끔히 비우지 않습니다. 밥 한두 술 뜨고는 딴짓을 하고, 또 한두 술 뜨고는 딴 놀이를 합니다. 밥 한 끼니 차려서 먹자면 온몸 기운을 쪽 빼야 합니다.


  이 아이들은 무엇을 먹으며 자랄까요. 이 아이들은 어떤 기운으로 하루를 맞아들이면서 놀까요. 이 아이들은 몸으로는 밥을 먹고, 마음으로는 사랑을 먹을까요. 밥 한 그릇만 먹을 아이들이 아니라 사랑을 함께 먹을 아이들이라, 내 기운을 몽땅 쓰도록 하는 셈일까요.


  아침에든 저녁에든, 밥을 차려서 다 먹이기까지 기운을 많이 쓰다 보니, 밥을 다 먹이고 나면 살짝 방바닥에 드러눕습니다. 허리를 펴고 한숨을 돌립니다. 아이들은 둘이 이런 놀이 저런 놀이를 합니다. 밥을 먹은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한테 달라붙지 않고 이모저모 저희끼리 잘 놀아서 고맙기도 합니다. 마당에서도 뒹굴고, 마루나 방에서도 뒹굽니다.


  누워 허리를 펴면서 아이들 노는 양을 바라봅니다. 서로 아끼며 노는 양을 보고, 서로 악악거리며 다투는 양을 봅니다.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은 얼음조각을 주워 오독오독 씹어먹곤 합니다. 눈덩이이건 얼음조각이건 뭔가 주전부리처럼 보이니? 얼음조각 씹으니 맛나니?


  씩씩하달지, 개구지달지, 철없달지, 아이들은 아이들 생각대로 하루를 누립니다. 저희 좋을 대로 생각하고, 저희 좋을 대로 마음을 기울입니다. 저희 하고픈 대로 움직이고 싶으며, 저희 가고픈 대로 가고 싶어요.


- “이 접시 위에 작은 여왕님이 서 있어. 보여?” “…….” “유령 같은 존재네요. 당신도, 나도.” (52쪽)
- “반성할 생각은 없다. 후회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찮은 인생이었다는 생각은 든다.” (75쪽)


  따로 무언가 더 해 주어야 즐거울 아이들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더 예쁘장한 옷을 사다 주어야 즐거워 하지 않습니다. 더 맛나다는 밥을 사다 주어야 즐거워 하지 않습니다. 더 놀랍다는 놀잇감을 사다 주어야 즐거워 하지 않습니다. 택시를 불러 어딘가 나들이를 다녀야 더 즐거워 하지 않습니다.


  작은 조개껍데기 하나로도 즐겁습니다. 작은 돌멩이 하나로도 즐겁습니다. 모래 한 줌으로도 즐겁습니다. 나무막대기 하나로도 즐겁습니다. 빈손으로 손가락 깔딱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해바라기를 하며 노래 한 가락 불러도 즐겁습니다. 놀이노래 하나 부르며 손가락 슥슥 움직여도 즐겁습니다. 서로 두 손을 맞잡고 부웅 하늘을 날아도 즐겁습니다.


  삶이란, 함께 지내는 하루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랑이란, 서로 마주보는 하루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꿈이란, 다 같이 어우러지는 하루인가 하고 되새겨 봅니다.


  이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한다면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나누거나 얻을 수 있을는지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과서에 따라 익히거나 받아들일 지식은 아이들 삶과 사랑과 꿈을 얼마나 북돋울 만한지요. 이런 교과서 지식과 저런 학과목 지식은 아이들 삶과 사랑과 꿈을 어느 만큼 살찌울 만한지요. 시골에서 살아가며 시골사람으로 자라날 아이들한테 아름다울 교과서 지식이 될까요.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가 학교를 다니며 교과서 지식을 얻으면, 시골에서 씩씩하고 튼튼하며 아름다운 어른으로 지낼 만할는지요.


- ‘나를 만들어 준 사람은 아직 신참이었다. 서툴러서 늘 혼나기만 했지만, 소중하게 마음을 담아서 나를 만들어 줬다.’ (91쪽)
- ‘그 여자아이는 가끔 이곳을 찾아온다. 초밥 하나를 사 먹을 수 있는 동전을 움켜쥐고.’ “광어?” “오. 입맛이 어른스럽구나, 꼬마 아가씨. 대장의 출혈 적자 대서비스.” “쉿. 야마이 씨. 맛에 집중하고 있잖아요.” (117쪽)


  먹고 입으며 자기, 사람들은 오래디오랜 나날, 이 세 가지를 하며 살았습니다. 먹으며 몸에 기운을 불어넣고, 입으며 몸을 돌보고, 자거나 쉬면서 몸을 추스릅니다. 먹을거리 찾고 마련하는 데에 온마음 기울이고, 옷 한 벌 짓기까지 옷감 마르고 실 얻는 데에 온넋 쏟으며, 살림집 지어 건사하는 데에 온힘 바칩니다.


  바구니를 끼고 나물을 캐며 노래를 부릅니다. 들에서 곡식을 거두며 노래를 부릅니다. 밥을 지으며 노래를 부르고, 밥을 먹고 나서 노래를 부릅니다. 쉬거나 놀면서 노래를 부르고, 잠자리에 들며 노래를 부릅니다. 들일을 나서며 해바라기를 하고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흙을 만지고 물을 만지면서 꽃바라기를 하고 나무바라기를 합니다. 쉬거나 놀면서 살붙이를 따사로이 바라봅니다. 잠자리에 들면서 서로서로 살가이 바라봅니다.


  문학이라는 이름은 따로 없더라도, 누구나 문학을 누린 삶이라고 느낍니다. 문화라는 이름은 따로 안 붙이지만, 누구나 문화를 빚은 삶이라고 느낍니다. 오늘날처럼 애써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 책을 엮어야 문학이 되지 않아요. 오늘날처럼 방송을 찍고 영화를 찍어 커다란 화면으로 들여다보아야 문화가 되지 않아요. 어떤 무대공연을 해야 문화가 되지 않아요. 예술학교 같은 데를 세워서 어떤 예술쟁이를 따로 길러야 예술이 피어나지 않아요.


  삶이 바로 문학이고, 삶이 바로 문화이며, 삶이 바로 예술이에요. 삶을 누리는 사람은 문학을 누리는 사람이고, 삶을 즐기는 사람은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며, 삶을 나누는 사람은 예술을 나누는 사람이에요.


- ‘어린아이라고 우습게 보는 건 아니겠지? 맛을 보면 다 들통날걸.’ (127쪽)
- “오, 완전 탱글탱글해졌는걸. 잘됐네.” “네 덕분이야.” “궁녀님이 탱글탱글한 건 좋지만, 내 일정은 엉망진창이라니까!” “탱글탱글하다는 건 네 얘기야.” “뭐?” (148쪽)


  부산스레 집살림 꾸리다가 만화책 《스시 걸》(대원씨아이,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아이들 밥을 먹이며 조금 읽고, 아이들 누여 자장노래 부르다가 조금 읽습니다. 아이들 밥을 다 먹이고 방바닥에 드러누워 허리를 펴면서 조금 읽습니다. 뒷간에서 똥을 누며 조금 읽습니다. 마당에서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 바라보며 조금 읽습니다. 밥물 끓이면서 조금 읽습니다. 밥상 앞에서 아이들 기다리며 조금 읽습니다.


  《스시 걸》을 그린 야스다 히로유키 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을 기울입니다. 이녁은 어떤 사랑을 나누고 싶어 이 만화를 그렸을까 궁금합니다.


  내 이웃과 동무는 저마다 스스로 활짝 웃는 하루를 누릴 때에 가장 빛나는 사랑을 누린다 하겠지요. 나 또한 나 스스로 활짝 웃는 하루를 누려야 비로소 가장 빛나는 사랑을 키운다 하겠지요.


  곁에서 코코 자는 두 아이는 끝없이 이리 구르고 저리 뒹굽니다. 아이들 곁에서 끝없이 바로 누이고 이불깃 여밉니다. 밤새 이렇게 뒤치닥거리를 하니까 늘 잠이 모자란 듯 지내는가 싶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아이들 곁에서 이리 추스르고 저리 보듬으니까 으레 허리 톡톡 두들기며 지내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 삶을 좋아하니 이렇게 지내겠지요. 이 삶을 즐기니 이처럼 아이들 곁에서 하루를 보내겠지요. 네 식구 살을 부비며 잠드는 작은 방이 재미나고, 서로서로 뒤엉키며 까만 밤 호젓하게 보내니, 이 조그마한 기쁨을 언제나 맛보고 싶겠지요. 참말,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할 만한 일이란, 삶을 사랑하는 꿈, 이 한 가지로구나 생각합니다. 434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