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글 읽기
2013.1.20. 작은아이―죽죽 긋기 (2)


  작은아이가 아버지 공책에 죽죽 긋는 놀이를 한다. 아버지는 늘 공책을 펼쳐 무언가 적고, 누나도 아버지 흉내를 낸다며 종이에 무언가 쓰는 놀이를 하니, 작은아이 또한 아버지하고 누나를 바라보며 연필이나 볼펜 쥐는 놀이를 즐긴다. 작은아이 놀이짓을 바라보며, 이 아이가 ‘연필 아닌 호미 쥐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연필을 쥘 적에는 함께 쥐고, 부엌칼 쥘 적에도 함께 쥐며, 호미를 쥘 적에도 함께 쥐면 되니까. 아무튼 네 아귀힘 바지런히 길러야, 앞으로는 네 수저로 네 밥을 네 배 부르도록 먹을 수 있으리라. 4346.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재미난 읽기

 


  큰아이가 어머니하고 어떤 만화영화를 보았나 보다. 아버지가 혼자 읍내 저잣거리 마실을 다녀온다든지, 우체국에 가서 띄울 짐꾸러미를 수레 가득 싣고 면내에 홀로 다녀올 적에,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어머니하고 만화영화를 보곤 한다. 또는 영화를 보는데, 엊그제부터 양말을 한쪽만 꿰고 다른 한쪽은 양말목에 꽂는다. 너 뭐니? 한쪽은 맨발이면서 양말 두 쪽을 한쪽으로 몰아서 꿰는 모양새가 예쁘거나 재미있다고 생각하니?


  아이로서는 재미있으니 따라할 테지. 아이로서는 즐겁거나 반가우니 이내 배워서 받아들일 테지. 텔레비전이라든지 영화라든지 만화라든지 그림이라든지, 참말 쉬 파고들면서 곧장 스며든다. 좋고 나쁘고를 가릴 수 없다. 아주 쉽게 파고들며 몹시 빠르게 스며든다.


  생각해 보면, 나도 곧장 물들곤 한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든 귀로 듣든 하면, 나 또한 아름다운 삶을 누리고 싶어 곧장 물든다.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든 귀로 듣든 하면, 나 또한 사랑스러운 생각을 빛내고 싶어 곧바로 젖어든다.


  책읽기란 삶읽기이니까 그렇겠지. 아이로서는 만화영화를 보든 무엇을 보든, 고스란히 제 삶으로 받아들이니까 그렇겠지. 글을 써서 책을 엮는 이라면, 곁에 아이들을 두고서, 아이들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으면, 글쓰기가 얼마나 놀라우며 즐겁고 멋스러운가를 깨달으리라. 또, 글쓰기나 그림그리기가 얼마나 무서우며 슬프고 고단한가 또한 느끼리라. 좋거나 나쁘다고 가릴 수 없이 스며드는 이야기이다. 재미나게 읽지 않는다면 재미없는 삶이 된다. 재미나게 읽을 때에는 얄궂거나 짓궂은 이야기마저 슬기롭게 삭힐 수 있다. 4346.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머리끈 공놀이 어린이

 


  한창 놀던 큰아이가 갑자기 긴 끈을 머리에 빙 두른다. 어라, 뭐니? 옳거니, 네 아버지가 머리카락 흘러내리지 말라며 늘 머리띠를 두르며 지내니, 너도 아버지 흉내를 낸 셈이로구나. 그런데, 네 머리띠, 또는 머리끈이라 해야 할는지, 아버지보다 한결 어여쁘구나. 네 아버지도 앞으로 너처럼 머리카락을 여며 볼까. 4346.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60) -의 : 빛의 향연

 

특히 도심의 뒷골목은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빛의 향연’이다
《진동선-사진가의 여행법》(북스코프,2008) 109쪽

 

  ‘특(特)히’는 ‘더욱이’나 ‘게다가’로 다듬습니다. “도심(都心)의 뒷골목”은 “도심 뒷골목”이나 “도시 한복판에 있는 뒷골목”이나 “도시 한복판 뒷골목”으로 손볼 수 있고, ‘공존(共存)하는’은 ‘어우러지는’이나 ‘얼크러지는’이나 ‘함께 있는’으로 손보며, ‘향연(饗宴)’은 ‘잔치’로 손봅니다.


  글쓴이는 여러 한자말을 쓰는데, 이 같은 낱말은 스스로 쓰고프면 쓸 만하지만, 곰곰이 따지면 굳이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한국말이 버젓이 있을 뿐 아니라, 오래도록 한겨레가 주고받던 가장 쉽고 수수하며 고운 말이 어엿하게 있어요. 글을 쓰는 분이라면 무엇보다 이 대목을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스스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스스로 어떤 넋으로 이야기꽃 피우며, 스스로 어떤 꿈과 사랑을 말로 담느냐 하는 대목을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빛의 향연
→ 빛으로 이루는 잔치
→ 빛으로 벌이는 잔치마당
→ 빛으로 얼크러진 잔치터
→ 빛잔치
→ 빛놀이
 …

 

  함께 있기에 ‘함께 있기’입니다. ‘공존’이 아닙니다. 이 대목도 생각을 기울이면 ‘함께있기’나 ‘함께있다’를 새 한국말로 빚을 만합니다. 이와 같은 얼거리로 ‘함께쓰다’라든지 ‘함께살다’라든지 ‘함께찾다’라든지 ‘함께보다’ 같은 낱말을 빚을 수 있어요.


  잔치를 벌이기에 ‘잔치’입니다. 예순잔치나 일흔잔치를 합니다. 백날잔치나 돌잔치를 합니다. 혼인잔치나 이웃잔치, 또 마을잔치나 나라잔치를 해요. 사진을 즐기는 이는 사진잔치를 하고, 그림을 즐기는 이는 그림잔치를 합니다. 글을 쓴다면 글잔치이고, 노래를 부른다면 노래잔치가 될 테지요.


  빛으로 이루는 잔치라면 ‘빛잔치’입니다. 빛잔치는 ‘빛마당’이나 ‘빛놀이’라 할 만하고, ‘빛그림마당’이라든지 ‘빛놀이판’처럼 새롭게 생각을 이을 수 있습니다. ‘빛놀이터’라든지 ‘빛잔치놀이’처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4346.1.2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더욱이 도심 뒷골목은 밝음과 어둠이 어우러지는 ‘빛잔치’이다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신발구이

 


  큰아이가 개구지게 놀다가 그만 신 두 짝 흠씬 적신다. 돌절구에 얼음이 동글게 끼었는데, 밟고 놀려 하다가 그만, 얼음 아래쪽은 얼지 않고 물이 있어 신이며 양말이 옴팡 젖는다. 쳇, 그러게, 거기서 놀지 말랬잖니. 큰아이가 신 젖었다고 울먹이지만, 괜찮아 그렇게 놀아도 돼, 하고 말하면서 대숲마실을 했고, 대숲마실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신과 양말을 벗으라 이른다. 그러고는 양말은 빨고 신은 흙을 떨군 다음 난로에 척 걸친다. 장작으로 난로를 때는 곳에 머물면 이렇게 신도 양말도 바로 말릴 수 있어 좋구나. 우리 집 아닌 바깥마실 나온 길이라 신을 바싹 말려야 한다. 큰아이는 맨발로 뛰놀고, 작은아이는 저도 양말 벗겠다고 보챈다. 작은아이야, 네 누나는 신이랑 양말 몽땅 적셔서 벗었고, 너는 그대로 신어야지. 난로에 큰아이 신 두 짝 올려놓고 보니, 꼭 ‘신발구이’ 같다. 이 신발구이 먹을 사람? 4346.1.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울보 2013-01-22 16:17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저런 아련나 추억, 눈밭에서 놀다가 달랑 한컬레 있는 신발이 젖어 아궁이에 생선굽듯이 바싹 놓았다가 어디서 발꼬랑내 난다는 엄마 말에 ㅋㅋ웃었지요 부엌에 내 발꼬랑내 난다고 ,,,ㅎㅎ

파란놀 2013-01-22 18:29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그런데 아이들 발꼬랑내는
귀여운 오징어 냄새쯤 된달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