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우리 말 95] 엄마가 미(米)는 우리쌀식빵

 

  말로 재미나게 말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말로 엉성하게 말장난을 하면서 스스로 바보스러운 모습이 될 수 있어요. “엄마가 미(米)는 우리쌀식빵”이란 무엇일까요. 그냥 “엄마가 미는 우리쌀식빵”이라 하든지, “엄마가 사랑하는 우리쌀식빵”이라 하면 될 텐데요. 이렇게 말장난을 한대서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어설피 말장난을 할 적에는 이야기도 사랑도 꿈도 깃들지 못합니다.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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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물고기 말리기

 


  한겨울에도 더할 나위 없이 따사롭고 바람이 적은 고흥. 읍내 한켠 가로지르는 조그마한 냇물이 있고, 냇둑에는 읍내에서 물고기를 파는 아주머니 할머니 들이 그물판을 펼쳐 물고기를 말린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한낮이 흐른다. 물고기는 가지런히 누워 해바라기를 하고, 드문드문 천천히 오가는 사람들은 따사로운 바람을 쐬면서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산다.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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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고향인가

 


  읍내 저잣거리로 먹을거리를 사러 나가는 길에, 마을 어귀 버스타는곳에서 이웃 할머님을 뵌다.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마을회관에 선 ‘인천’에서 찾아온 커다란 ‘장례 버스’를 바라보며 말씀을 여쭌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나 봐요?” “어, 저기 (집) 허물고 마늘 심은 데 있잖여, 게서 살던 할머님인데 돌아가셔서 장례 치르러 서울서 내려왔지. 혼자 사셨는데 자식들이 다 서울 있으니께 돌볼 수 없어서 서울로 모셔서 지내다가 돌아가셔서 이렇게 왔지.”


  할머니 혼자 남도록 딸과 아들 모두 서울로 갈밖에 없었을까. 살아가지 않는다면 고향이라 할 수 있을까. 살아가지 않고 늙은 어버이만 남기는 데를 고향으로 여길 수 있을까. 죽어서야 겨우 딸과 아들이 찾아오는 이곳을 당신들로서는 고향이라 할 만한가. 아니, 서울로 간 딸과 아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시골로 돌아와서 당신 어머니나 아버지하고 살아갈 꿈을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인가. 아마, 당신들도 서울에서 살다가 죽어야 비로소 고향이라는 데로 돌아오리라. 죽지 않는다면 고향이라는 데로 돌아올 일이 없으리라. 죽고 나면, 서울에 묻을 자리 없고 뼈조각조차 둘 자리 없으니 그제야 비로소 고향으로 오리라.


  그런데, 서울로 간 사람들한테 시골은 고향이 될 수 있을까. 서울로 간 사람한테는 서울이 고향 아닌가.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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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우 교수 사진책 <또다른 고향>을 이야기하려고 살피다가, 이 사진책 <광경>이 있는 줄 깨닫는다. 이 사진책은 사진비평을 얼마나 받았을까. <또다른 고향>이라고 하는 1988년에 나온 사진책은 얼마나 눈길을 받았을까. 디자인학과 교수로 일하는 이가 '사진'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사람들은 얼마나 살가이 마주하면서 들여다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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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경
유영우 지음 / 푸른세상 / 2008년 3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3년 01월 26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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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살아가는 마음

 


  아이들이 밤잠을 잘 자다가 꼭 깹니다. 밤오줌을 누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꿈을 꾸다가 깹니다. 이때에 가슴을 잘 토닥이면 다시 새근새근 숨을 고르면서 깊이 잠듭니다. 그러나, 그예 깨어 품에 안거나 무릎잠을 재워야 하곤 합니다.


  아이 하나를 무릎에 누입니다. 아이 하나를 옆에 누입니다. 아이들 곁에 누워 아이들을 품에 안습니다. 아이가 아버지 품에 바싹 달라붙습니다. 아이가 손을 뻗어 아버지 얼굴이나 몸이나 팔이나 허리나 가슴이나 이곳저곳 만지다가 스르르 힘이 빠지며 곯아떨어집니다.


  무릎잠 자던 아이를 살며시 안아 잠자리로 옮기면 내 몸은 홀가분한데, 막상 이렇게 홀가분한 몸이 되고 나면, 밤에 하는 글쓰기가 되레 재미없습니다. 왜 그럴까, 왜 이 홀가분한 몸일 때에 더 바지런히 글쓰기를 하지 못할까, 생각하다가, 방문 조용히 열고 마당으로 내려서서 별을 바라봅니다. 아마, 나는 집일 아무것 안 하고 집식구하고 하나도 안 얽히면서, 어떤 글방 하나 얻어 호젓하게 글쓰기에만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 할 적에는 글쓰기를 못하는 사람 아닌가 싶습니다. 복닥복닥 어수선하고 어지러우며 고단한 나날을 잇는다 하더라도, 아이들 노랫소리랑 웃음소리랑 이야깃소리 들으면서 글빛을 북돋우는 사람이지 싶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내 삶일까요. 어떻게 이러한 내 삶이 되었을까요.


  그런데, 아이들과 살아가며 글을 쓰니, 아이들과 함께 읽을 글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며 글을 엮으니, 앞으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이 아이들 스스로 글을 읽을 때에는 저희 아버지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겠구나 싶습니다. 곧, 내 글은 내 글만이 아니라 아이들 글이요, 내 글에 깃드는 넋은 내 넋만이 아닌 아이들 넋입니다. 내 글은 내 이름으로만 쓰는 글이 아니라, 내 옆지기 이름으로도 함께 쓰는 글이요, 내 어버이와 이웃과 동무 이름이 함께 감돌며 쓰는 글입니다.


  내 벗은 누구인가요. 풀이요, 나무요, 새요, 벌레요, 구름이요, 멧자락이요, 숲이요, 논이요, 바다요, 하늘이요, 해요, 별이요, 달이요, …… 모두모두 벗입니다. 고흥 시골마을에도 살아가는 벗이요, 인천이나 서울에도 살아가는 벗입니다. 벗이 누구인가 하고 생각하기에 글을 쓰는 매무새가 달라지고, 내가 누구하고 살아가는 사람인가 하고 돌아보기에 글뿐 아니라 살림 꾸리는 몸가짐이 바뀝니다. 이제 나는 아이들 곁에 누워 내 손으로 아이들 머리카락 살살 쓸어넘기며 새벽을 맞이해야겠습니다.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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