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씨 심고


 

바람 찰랑찰랑
후박나무 겨울 난 잎
건드리며 붑니다.

 

광대나물 돋고
별꽃나물 자라며
유채잎 퍼질 때에

 

지난해 걷은
콩씨 심고
지난해 얻은
호박씨 심으며

 

햇볕 먹고
바람 마시면서
마당에서 웃습니다.

 


4346.3.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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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백 살 될 느티나무 (13.4.27.)
고흥 길타래 9―고흥에서 내로라 할 문화재

 


  우리 식구 고흥에 보금자리 마련해 처음 깃든 뒤, 고흥에서 가장 즐겁게 누릴 한 가지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보면, 꼭 하나 다른 어느 것보다, 고흥읍 느티나무 한 그루 꼽을 수 있습니다. 처음 이 느티나무를 보고는, 또 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아이들과 쉬면서, 참말 이렇게 우람한 느티나무를 곁에서 바라볼 수 있는 한편, 느티나무 굵다란 줄기를 두 팔 벌려 안을 수 있는 곳이 한국에서 어디에 있느냐 싶더군요.


  누구라도 가만히 생각을 기울이면 잘 알 수 있어요. 천 살 넘은 나무 가운데, 여느 사람이 손으로 줄기나 가지나 잎을 만질 만한 나무는 이 나라에 한 그루도 없어요. 천 살 넘은 나무는 ‘지킴나무(보호수)’로 삼아, 나무 둘레에 울타리를 촘촘히 박고는, 나무 곁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저 멀거니 눈으로 쳐다보거나 사진만 찍으라 하지요. 천 살 가까운 구백 살이나 팔백 살 나무들도 으레 ‘울타리 안쪽에서 외롭게’ 있기 마련이에요.


  고흥군 고흥읍 한쪽에 깃든 느티나무는 곧 구백 살이 될 텐데, 다른 어느 고을에서처럼 높다란 울타리를 둘레에 빙 세우며 못 들어가게 막지 않습니다. 울타리 없는 느티나무인 만큼, 우리 아이들도 나무에 올라타며 놀고, 읍내 아이들도 곧잘 나무타기를 하며 놉니다. 지난해에는 태풍이 찾아들어 아주 굵은 가지 하나 우지끈 부러졌지요. 이때 고흥군에서는 부러진 굵은 가지 오래도록 내팽개쳤다가, 두 달 즈음 지나고서야 누군가 짐차에 실어 땔감으로 쓰려고 가져갑디다(가지 부러져서 팽개쳐진 때부터 어른 두 사람이 끌고 가서 짐차에 실어 가져가는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를 타며 놀 수 있다는 대목은 아주 놀랍고 반가우며 기쁩니다. 어른도 나무타기를 하면 더 좋겠지만, 어른은 좀 참으라 하고, 아이들은 나무 숨결 살가이 느끼도록 살짝살짝 나무타기를 하면서, 나무 한 그루 구백 해 가까이 살아온 지난날 돌이켜보는 좋은 이웃으로 여기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2013년 오늘날에서 구백 해를 덜면, 1113년 즈음 됩니다. 역사로 치면 고려 무렵이라 하겠지요. 그러니까 고려 무렵 누군가 심었을, 또는 느티나무 씨앗 한 톨 바람에 날려 씩씩하게 뿌리내리고는 어린 느티나무 한 그루 자라서 오늘날까지 고이 이은 셈입니다.


  숱한 전쟁을 치르고도, 온갖 아픔과 생채기를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또 웃음과 기쁨과 노래와 두레와 품앗이를 두루 옆에서 바라보면서도, 이렇게 오랜 나날 살아온 나무 한 그루예요.

  가을날 느티나무 곁에 서 보셨나요? 봄날 느티나무 옆에서 하늘바라기 해 보셨나요?


  고흥읍 느티나무는 해마다 사월 십일 언저리에 조그맣고 푸르게 빛나는 느티꽃 피웁니다. 느티나무이니까 느티꽃을 피우지요. 은행나무는 은행꽃 피우고, 단풍나무는 단풍꽃 피워요.


  다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느티꽃도 은행꽃도 단풍꽃도 눈여겨보지 못해요. 장미꽃이나 동백꽃은 바라볼 줄 알아도, 깨알만큼 아주 작고 갸날픈 느티꽃 알아보거나 즐기려 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느티꽃 피기 앞서 느티잎 푸르고 싱그럽게 돋습니다. 느티잎은 ‘풀빛’이라고만 하기에는 어딘가 아쉬운, 그렇다고 ‘나뭇잎빛’이라고만 뭉뚱그리기에는 더없이 모자란, 이리하여 느티나무 잎사귀이니까 ‘느티잎빛’이라는 ‘새로운 풀빛 이름’ 하나 지어야 어울린다고 하는 생각을 일깨웁니다.


  마늘잎빛과 파잎빛은 다릅니다. 유채잎빛과 배추잎빛은 다릅니다. 민들레잎빛과 소리쟁이잎빛은 다릅니다. 토끼풀잎빛과 괭이밥잎빛은 다르지요. 풀잎 가운데 똑같은 풀빛은 하나도 없어요. 모두 다른 빛깔이요 저마다 다른 무늬입니다. 똑같은 뽕나무 한 그루에서도 잎사귀 모두 잎빛 달라요. 밤나무에서도 감나무에서도, 잎사귀를 찬찬히 들여다볼 때에 ‘같은 빛이나 무늬나 크기’인 잎사귀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느티나무를 올려다봐요. 느티나무 느티잎 가운데 똑같은 잎사귀는 하나라도 있을까요. 구백 살 가까운 고흥읍 느티나무 곁에서 자라는 무척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 함께 살펴보셔요. 세 그루 느티나무 모두 잎빛 다르고, 꽃빛 달라요. 세 그루 느티나무가 나란히 느티꽃 피울 적에 곁에 서 봐요. 바람 쏴아 불면 꽃술 촤르르 나부끼는 소리를 듣고, 느티잎에 서린 푸른 냄새를 맡아요. 마음을 맑게 트고 생각을 환히 열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고흥군에서는 지난해부터 올봄까지 느티나무 둘레 둑방길 가장자리 따라 거님길을 마련했어요. 퍽 오랫동안 거님길 공사를 하더군요. 눈에 잘 뜨이라는 뜻으로 파랗고 붉게 빛깔 입히며 거님길을 지었구나 싶은데, 이 빛깔은 느티나무하고 조금도 안 어울립니다. 애써 거님길 마련한다 한다면, 거님길 따라 사람들이 거닐 때에 바라볼 느티나무와 냇물을 살펴야지요. 차분한 빛깔, 포근한 빛깔, 부드러운 빛깔, 옅은 빛깔, 맑은 빛깔, 밝은 빛깔을 입혀서 거님길을 꾸며야지요.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갑니다. 나무는 하늘을 바라며 자랍니다. 곧, 거님길 바닥은 흙빛일 때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둑방길에서 떨어지지 말라며 세우는 울타리라면 나무 줄기 빛깔이라든지 하얀 빛깔로 입혔으면 한결 잘 어울리겠지요.


  사월 이십일 즈음 넘어서면 고흥읍 느티나무 느티꽃 하나둘 떨어지고, 사월 이십오일 즈음 되면 느티꽃은 거의 다 집니다. 느티꽃을 보고 싶다면 한 해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고흥군에서는 느티나무 옆에 있던 평상을 치우고 정자를 돈 들여 지으면서, 아직까지 마무리 손질을 안 해요. 정자짓기 마친 지 벌써 여섯 달 넘었지만, 정자를 드나들 계단이나 발판 하나 마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자 안쪽 나무바닥을 말끔히 치우지도 않아요. 게다가, 평상 있던 자리에 있던 커다란 대리석을 느티나무 옆에 아슬아슬하게 쌓았어요.

 

 

 

 


  나무는 나무대로 고달픕니다. 사람은 사람대로 느티나무 곁에서 쉴 쪽틈마저 없습니다. 고흥군에서 느티나무 둘레로 제대로 된 쉼터(공원)를 마련하고자 한다면, 느티나무 앞에 선 자동차부터 치워야 합니다. 이곳에는 자동차가 서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느티나무 바로 옆에는 주차장 있으니, 주차장에만 차를 세우도록 하고, 느티나무 곁에는 아이들과 할매 할배 다리쉼 하면서 나무그늘 누리도록, 아늑하고 좋은 나무걸상 마련해서 놓아야 합니다. 예전처럼 평상을 다시 두어도 좋아요. 평상이 있으면 마을사람들 호젓하게 쉬고 어울리는 이야기마당 되고, 고흥으로 나들이(여행) 오는 사람들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울 자리가 됩니다.


  느티나무 둘레는 아예 아무 자동차도 못 들어오게 하면 훨씬 좋아요. 자동차 못 들어오면 이 둑방길에 있는 식당들 영업이 힘들지 않느냐 걱정하실 분 있을까 모르겠는데, 자동차 없이 걸어서 오가는 짤막한 100미터 남짓 한 길이 되면, 오히려 식당 손님 더 늘어나지요. 하염없이 잠자는 자동차한테 가로막혀 제대로 안 보이던 느티나무 우람한 나뭇잎춤 바라보면서 이곳이 참 예쁘고 좋은 줄 느낄 수 있습니다. 느티나무 둘레에서 다리쉼을 하던 사람들이 홀가분하게 느티나무 둑방길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밥 한 그릇 즐기겠지요.


  느티나무 둘레에 있는 아스팔트까지 걷어내어 흙길 풀밭길 만든다면 더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고흥군에서 힘써 알리려 하는 ‘고흥 영화잔치’를 느티나무 둑방길에서 열 수 있어요. 굳이 고흥만에다가 멍석 깔고 잔치판 벌여야 하지 않아요. 고흥 읍내에 아주 좋은 마당이 있어요.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 둘레를 널따란 쉼터(공원)로 삼아서, 이곳에서 ‘느티나무 영화잔치’를 하면 돼요. 냇물 사이 가로지르는 다리 한둘 놓아, 느티나무 보러 이곳으로 걸어오기 좋도록 하고, 느티나무 둘레에서 어떤 공연이나 행사를 할 적에는 주차장까지 넓게 쓰면 더 좋겠지요.


  ‘경관’은 돈을 들여서 꾸미지 못해요. ‘경치’는 돈을 쏟아부어도 만들지 못해요. 오랜 나날 천천히 이루어지는 ‘경관’이고 ‘경치’예요. 느티나무 한 그루 구백 해 가까이 고흥 읍내에서 살아낸 아름다운 푸른 숨결 헤아리기를 빌어요. 고흥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 따위 끌어들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문화재와 자연유산 많아요.

 


  사랑스러운 손길을 조금만 뻗으면 돼요. 따사로운 마음길로 조금만 애쓰면 돼요. 서울에도 부산에도, 제주에도 울릉에도, 광주에도 순천에도, 해남에도 강진에도, 이처럼 훌륭하고 놀라운 ‘구백 살 느티나무 문화유산’은 없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곁에서 쓰다듬고 어루만지면서 누릴 ‘구백 살 느티나무 자연유산’ 있는 다른 고을은 한 군데라도 있을까요?


  이제껏 못 알아보았으면 이제부터 알아보면 됩니다. 이제까지 돌보지 못했으면 이제부터 살뜰히 보살피면 됩니다. 고흥읍 느티나무 한 그루부터, 고흥군 골골샅샅 깃든 우람하고 아름다운 나무들 곱게 아낄 수 있기를 빕니다. 우람한 나무 곁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어린나무도 곱다시 아끼면서 이 나무들 앞으로 삼백 해나 오백 해 뒤에 우리 뒷사람 고흥에서 좋은 숲 누리도록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땀흘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4.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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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7 11:30   좋아요 0 | URL
곧 구백살이 될, 느티나무와 함께살기님의 좋은 글 덕분에
마음과 눈이 푸르디 푸른 토요일입니다.^^
벼리가 올라가 있고 보라가 앉아 있는 느티나무의 사진이 정말 좋습니다.
느티나무 옆에는 역시 평상이 제격이겠지요..

파란놀 2013-04-28 08:50   좋아요 0 | URL
네, 평상 치우고 정자를 돈 들여 세웠는데...
외려 고흥에서 이곳이 '우범지대'처럼 되고 말더군요...
참 쓸쓸합니다...
 

산들보라 아버지 배웅

 


  녹동초등학교로 이야기마당 베풀러 집을 나서는 길, 산들보라 사름벼리 아버지 배웅을 한다. 두 녀석 모두 맨발로 나오는데, 한손에 달걀을 쥔다. 큰아이는 스스로 달걀을 까고, 작은아이는 어머니가 까 준 달걀을 입에 잔뜩 베어문다. 4346.4.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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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까먹는 어린이

 


  여섯 살 아이한테 달걀 까먹기란 아주 쉬운 일. 마당에서 맨발로 이곳저곳 걸어다니면서 조금씩 껍데기를 뜯어 아무 데나 톡톡 떨군다. 그래, 시골집 땅바닥이니 아무 데나 떨구어도 되기는 하다만, 시멘트바닥 말고 흙바닥에 떨구어 주면 더 좋겠네. 4346.4.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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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바위 시작시인선 94
이은봉 지음 / 천년의시작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시와 수다
[시를 말하는 시 19] 이은봉, 《책바위》

 


- 책이름 : 책바위
- 글 : 이은봉
- 펴낸곳 : 천년의시작 (2008.2.25.)
- 책값 : 7000원

 


  큰아이가 조잘조잘 이야기합니다. 동생을 곁에 앉히고는 이 얘기 저 얘기 끝없이 잇습니다.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보면서 제 깜냥껏 생각한 얘기, 만화영화에서 들은 얘기, 어머니나 아버지가 들려준 얘기, 할머니나 이모한테서 들은 얘기 들을 골고루 섞으며 동생한테 이야기를 새로 풀어놓습니다.


  작은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들려주는 얘기를 듣는 한편, 누나가 들려주는 얘기를 참 자주 많이 듣습니다. 작은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말을 배우는 한편, 누나한테서도 말을 배웁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큰아이를 돌보면서 가르칩니다. 큰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랍니다. 큰아이는 어머니 말과 아버지 삶을 찬찬히 물려받습니다. 작은아이도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을 받아먹지요. 그런데, 작은아이한테는 큰아이, 곧 누나가 있어요. 작은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에다가 누나(큰아이) 사랑까지 받습니다. 작은아이는 어머니 말과 어머니 삶을 받아먹는 한편, 누나가 나누어 주는 말과 삶을 나란히 받아요.


.. 바위는 제 몸에 낡고 오래된 책을 숨기고 있다 ..  (책바위)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았습니다. 여기에 우리 형 사랑을 함께 받았습니다. 내가 쓰는 말은 내 어머니 말이자 내 아버지 말이고 우리 형 말입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 말이란,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쓴 말이요, 내 어머니와 아버지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 말이란, 또 이분들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쓰던 말이지요.


  이야기가 흘러 삶이 됩니다. 이야기가 모여 사랑이 됩니다. 이야기가 쌓여 꿈이 됩니다.


  내가 배운 말은 내 어버이가 누리던 삶을 담은 말입니다. 내가 물려받은 말은 내 어버이가 일군 사랑을 실은 말입니다. 내가 쓰는 말은 내 어버이가 차근차근 갈고닦아 품에 안은 꿈을 이루는 말입니다.


.. 옛날 짚신은 온종일 걸었다 ..  (바퀴 달린 구두)


  이은봉 님 시집 《책바위》(천년의시작,2008)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은봉 님은 바위 하나 바라보면서 책을 떠올립니다. 바위 하나에 아로새긴 삶을 돌아봅니다. 바위 하나 살아낸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바위를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으면, 구름을 올려다보며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위를 마주하며 책을 읽는 몸가짐이면, 풀포기를 쓰다듬으며 책을 읽어요. 바위를 곁에 두며 책을 읽을 때에는, 아이 눈빛 들여다보며 책을 읽습니다.


  어느 학자가 바위 하나 샅샅이 파헤쳐서 책을 펴내야 ‘바위책’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이야기꾼이 바위와 얽힌 옛이야기 캐내어 소설이나 동화를 써내야 ‘바위 이야기책’이 되지 않습니다.


  바위 곁에서 노는 아이들이 자라고 자라서 어른이 되어, 지난날 삶을 되짚으면 얼마든지 ‘바위책’이 됩니다. 바위를 바라보며 살던 사람들이 바위를 바라보던 넋을 곰곰이 돌아보면, 언제나 ‘바위 이야기책’을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 돈은 처음 자신을 배춧잎으로 알았다 / 시장통의 사람들이 걸핏하면 저를 배춧잎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 돈은 저를 배춧잎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았다 / 평생을 고향집 텃밭에 앉아 / 싱싱한 배춧잎으로 너풀거리며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마냥 가슴 벅찼다 ..  (돈은 처음 자신을 배춧잎으로 알았다)


  시 하나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시인이나 평론가나 전문가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쓸 수 있는 시가 아니기에 대단하지 않습니다.


  시 하나는 대단합니다. 흙을 만지는 시골사람 누구라도 쓸 수 있기에 시 하나는 대단합니다. 호미를 쥐고 낫을 쥐며 망치나 끌이나 대패나 톱을 쥐는 사람 누구라도 쓸 수 있으니 시 하나는 대단합니다. 시내버스나 택시나 짐차 운전대를 붙잡는 사람도 쓸 수 있어 시 하나는 대단합니다. 도마나 빨래비누나 걸레나 빗자루나 바늘이나 부엌칼 손에 쥐는 살림꾼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만큼 시 하나는 대단합니다.


  살림을 꾸리는 사람이라면 쓰는 시입니다. 삶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나누는 시입니다. 어떤 글솜씨나 글재주로는 못 쓰는 시입니다. 이론이나 원칙이나 틀이나 논리로는 못 쓰는 시입니다.


  시는 유행이나 사조 따라 쓰지 않아요. 시는 문학이나 예술이나 문화 같은 껍데기로는 쓰지 않아요. 시는 오직 하루하루 누리는 삶 그대로 쓰지요. 시는 늘 사랑을 빛내고 꿈을 밝힐 때에 씁니다.


.. 선생님은 언제 시를 쓰죠, 어떤 시간에? 따위를 질문을 받을 때가 있지 열정으로 가득한 젊은 시인한테 ..  (시와 비누)


  이은봉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책바위》는 이은봉 님한테 어떤 삶 드러내는 이야기꾸러미 될까 궁금합니다. 이은봉 님은 스스로 재미나게 살아가기에 재미나다 싶은 시를 쓰는가요. 이은봉 님은 스스로 보람차며 아름다운 하루 누리기에 보람차며 아름답구나 싶은 시를 쓰는가요. 이은봉 님은 이웃과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즐거움 길어올리기에 이야기꽃 흐드러지는구나 싶은 시를 쓰는가요.


.. 내가 흙이었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  (해바라기 꽃관)


  어여쁜 이야기도 시요, 조잘조잘 떠드는 수다도 시입니다. 두런두런 차분하면서 고즈넉한 이야기도 시요, 시끌벅적 왁자지껄 어수선한 북새통도 시입니다. 꾸밈없이 삶을 빛내도 시요, 꾸미는 겉치레도 시입니다. 누군가한테는 이렇게 꾸미고 저렇게 치레해야 시라 느낄 노릇일 테고, 누군가한테는 술술 흘러나오는 모든 말마디가 시라 느낄 일입니다.


  이은봉 님이 바위 하나 마주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줄 조금 더 깊이 깨달아, 다른 사람 눈길이나 손길 아닌 바로 이은봉 님 눈길이나 손길로 바위를 사랑스레 보듬는다면, 더없이 고우며 환한 싯노래 일구리라 느낍니다. 가벼운 수다라 해서 나쁠 일 없습니다만, 또 가벼운 수다로도 얼마든지 시밭 일굴 수 있습니다만, 배추와 상추만 밭에서 거두어 먹는 삶 아니랍니다. 꼭 밭자락에 씨를 뿌려서 거두어야만 맛난 푸성귀 얻지 않아요. 사람들 스스로 씨를 안 뿌려도 냉이를 얻고 꽃다지를 얻어요. 사람들이 뿌리지 않은 씨가 스스로 퍼지고 자라면서 민들레 돋고 꽃마리 돋으며 쑥 돋지요. 사람이 애써 심어서 거둔 푸성귀는 ‘약초’로 못 쓰지만, 풀 스스로 번지며 자라는 들풀은 모두 ‘약초’로 써요.


  시는 늘 마음속에 있어요. 시는 언제나 스스로 자라요. 내 마음밭에서 시밭을 느껴 내 마음씨앗이 사랑씨앗 되도록 북돋우면, 시맛 한결 싱그러이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4346.4.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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