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꽃

 


하늘에 피는 꽃
파르스름하게 밝고
하야스름하게 빛나
따스하게
들판 보듬는다.

 

하늘에 피는 꽃
노오랗게 밝다가
불그스름하게 지며
포근하게
마을 어루만진다.

 

하늘에 피는 꽃
색색 잠들 때

하늘에 돋는 열매
총총 돋아나
개구리
풀무치
귀뚜라미
여치
다 같이
노래빛 흩뿌린다.

 

밤새 이어지던 노래잔치
하나둘 스러질 무렵
처마 밑 제비 둥지
째째째째 부산하니
이윽고
하늘꽃 새로 피어난다.

 


4346.4.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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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어떻게 꽂는가

 


  도서관에서는 도서관분류법에 따라서 책을 꽂는다. 새책방에서도 도서관분류법을 얼추 따르면서 책을 꽂는다. 그러나, 헌책방에서는 도서관분류법을 쓰지 않는다. 헌책방마다 책을 꽂는 매무새 모두 다르다.


  도서관이나 새책방을 다니면서 ‘책 꽂는 매무새’나 ‘책 갖춘 모양새’ 다른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모두들 거의 똑같은 나눔법에 따라 책을 나누어 꽂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는 만화책이나 사진책이나 그림책을 잘 안 갖추기 마련이고, 새책방에서는 비매품이나 공공기관 자료를 못 갖추기 마련이다. 도서관에서는 사람들이 자주 빌려서 보는 책을 으레 갖추고, 새책방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사들이는 책을 으레 갖춘다.


  헌책방에서는 비매품이나 공공기관 자료도 갖춘다. 헌책방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도 갖추고, 사람들이 거의 안 찾지만 누군가 꼭 찾을 법한 책이면 으레 갖춘다.


  헌책방 책꽂이는 헌책방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서울과 인천과 부산과 광주와 대구와 순천과 춘천과 강릉과 통영과 청주와 전주와 수원과 의정부와 여수에 있는 헌책방은 저마다 다른 삶자락에 맞추어 서로서로 다른 책꼴을 갖춘다. 고을마다 공공기관이 다르다. 고을마다 사람들 삶이 다르다. 고을마다 지역 문인이 다르고, 고을마다 학교와 시설과 모임이 다르다. 그러니, 고을마다 드나드는 책이 다르고, 어느 헌책방이건 저마다 뿌리를 내린 곳 빛깔과 무늬를 살피며 책꽂이를 보듬는다.


  개인 서재를 도서관분류법에 따라 갈무리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그러나 개인 서재를 도서관분류법에 따라 갈무리하면 좀 재미없으리라 느낀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책멋에 맞추어 이녁 깜냥껏 책꽂이를 돌볼 때에 한결 재미있고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이 헌책방을 다니고 저 헌책방을 다니면서, 이곳에서는 이런 멋을 만나고 저곳에서는 저런 맛을 누린다. 다 다른 헌책방에서 다 다른 책내음을 맡는다. 4346.5.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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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놀이 3

 


  꽃삽으로 흙을 그러모으더니 작은 옷걸이를 가운데에 쏙 심는다. 어라, 꽃을 심었니? 그래, 작은 옷걸이가 꽃 모양이라 그렇게 해 놓으면 꽃 심은 모양이 되는구나. 4346.5.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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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써는 손도마

 


  아이들 아침밥 차리려고 찌개를 끓이며 두부를 송송 썬다. 이제 두부는 사지 않으려 했는데, 가게에서 두부를 지지며 파는 아주머니를 보고는, 한 번만 더 사야겠다고 느낀다. 어느 가게에서나 으레 ‘국산 콩’으로 두부를 빚는다고 말하지만, ‘유전자 건드린 콩’인지 아닌지까지 말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러한 두부를 굳이 먹어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가게에서 사들인 두부는 맛나게 먹자 생각하며 두부를 송송 썰다가 문득 생각한다. 찌개에 넣는 두부를 썰 때에 나무도마에 대고 썬 일이 거의 없다. 언제나 손바닥을 도마로 삼아 송송 썰어서 곧바로 냄비에 넣는다. 도마에 얹어 썰면 더 모양 나게 썰는지 모르지만, 두부는 손바닥에 올려서 썰어도 모양이 잘 난다. 손바닥에 얹어서 냄비에 넣을 때에 냄비물이 덜 튄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논다. 밥과 찌개와 이런저런 반찬들 다 차렸다. 아이들을 부른다. 여섯 살 큰아이더러 수저를 놓으라 시킨다. 아이들은 조잘조잘 떠들면서 밥상 앞에 앉는다. 얘들아,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자. 싹싹 비우고 개구지게 뛰어놀자. 4346.5.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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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68) 나중의 1 : 나중의 일

 

그가 장례식의 슬픔과 고통을 한층 더해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괴롭게 들리는 곡소리들을 개발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자케스 음다/윤철희 옮김-곡쟁이 톨로키》(검둥소,2008) 182쪽

 

  “장례식의 슬픔과 고통(苦痛)”은 “장례식을 치르는 슬픔과 괴로움”이나 “장례식을 감도는 슬픔과 괴로움”으로 손질합니다. “충분(充分)할 정도(程度)로”는 “넉넉할 만큼”으로 손보고, “개발(開發)한 것은”은 “만든 때는”이나 “지어낸 때는”으로 손봅니다.

 

 나중의 일이었다
→ 나중 일이었다
→ 나중이었다
 …

 

  오늘 일어난 일이라면 “오늘 일”입니다. 어제 일어난 일은 “어제 일”입니다. 지난해 겪은 일은 “지난해 일”이에요.

 

 지금 일 / 나중 일 / 지난해 일 / 이듬해 일 (o)
 지금의 일 / 나중의 일 / 지난해의 일 / 이듬해의 일 (x)

 

  올바르며 알맞춤하게 적을 우리 말씨와 말투를 찬찬히 헤아려 주면 좋겠습니다. 낱말과 낱말을 이어서 글월을 이룰 때에 어떤 토씨를 넣어야 올바른지를 살피고, 군더더기가 될 대목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면서 글을 잘 여미어 주면 좋겠습니다.

 

 곡소리들을 개발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 곡소리들은 나중에야 만들었다
→ 곡소리들은 나중에 가서야 만들었다
→ 곡소리들을 지은 때는 나중이었다
 …

 

 사람마다 말버릇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다른 말씨로 이야기합니다. 이렁저렁 쓰는 사이에 익숙해진 말투가 있습니다. 내 말버릇과 말씨와 말투는 잘 살리거나 지켜 주어야 할 노릇입니다. 그러나, 내 말버릇과 말씨와 말투를 살린다고 하면서, 우리 말법을 흐트리거나 깨뜨리거나 흔들게 된다면 어찌하겠는가를 생각해 볼 일입니다. 4341.7.13.해/4346.5.4.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는 장례식 치르는 슬픔과 괴로움을 한층 더해 주기에 넉넉하도록 괴롭게 들리는 곡소리들을 나중에 지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69) 나중의 2 : 나중의 문제

 

이 순간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계산서는 맨 나중의 문제였다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김성민 옮김-뱅뱅클럽》(월간사진,2013) 233쪽

 

  “이 순간(瞬間)”은 “이때에”로 손봅니다. 글흐름에서 ‘그녀(-女)’는 ‘옆지기’로 손볼 수 있고, 덜어내어 “이때에 생각할 수 있는”처럼 적을 수 있어요. ‘중(中)에서’는 ‘가운데’로 손질하고, “맨 나중의 문제(問題)였다”는 “맨 나중 일이었다”나 “맨 나중이었다”로 손질하면 ‘문제’라는 한자말을 덜 수 있어요.

 

 맨 나중의 문제였다
→ 맨 나중 일이었다
→ 맨 나중이었다
→ 맨 나중에 따질 일이었다
→ 맨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

 

  한 번 손이나 귀나 입이나 눈에 익은 말투는 오래오래 갑니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책이나 만화영화에서 “잘 가”나 “잘 있어”나 “다음에 또 봐” 같은 인사말을 들려주지 않고 “바이바이(byebye)”나 “안녕(安寧)” 같은 인사말만 들려주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이 같은 인사말만 익숙해요. 어른들이 “살펴 가”나 “살펴 가셔요”처럼 인사하지 않고 “조심해”나 “조심해서 가”처럼 인사한다면, 아이들은 어린 나날부터 ‘조심(操心)’이라는 한자말에만 익숙할 뿐, ‘살피다’라는 한국말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써야 알맞을까 하는 대목을 짚지 못합니다.


  이 보기글을 살피면, 한국사람은 예부터 “맨 나중이었다”처럼 말했고, 한자말 ‘문제’를 쓰더라도 “맨 나중 문제였다”처럼 말했어요. 토씨 ‘-의’를 붙이지 않았어요. 그러나, 어른들이 자꾸 이러한 말투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글을 쓰면, 아이들은 이런 말투에 익숙해집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이런 말투를 못 듣더라도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간 뒤, 또 대학생이 되거나 어른이 된 다음 이런 말투를 둘레에서 자꾸 들으면, 시나브로 이 같은 말투에 젖어들어요.


  우리가 늘 쓰는 말투는 어릴 적부터 들은 말투이면서, 어른이 된 뒤에도 늘 듣는 말투입니다. 내가 쓰는 말투가 내 살붙이와 동무와 이웃한테 스며들고, 내 살붙이와 동무와 이웃이 쓰는 말투가 나한테 스며들어요. 서로 사랑스럽게 쓰는 말투라면 서로서로 날마다 사랑스러운 말투로 아름답습니다. 서로 얄궂게 쓰는 말투라면 서로서로 자꾸자꾸 얄궂게 쓰는 말투가 퍼집니다. 4346.5.4.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때에 생각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계산서는 맨 나중이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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