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건널목 달려

 


  많이 어린 산들보라는 도시에서 널따란 건널목을 혼자 건너기 쉽지 않다. 시골에서만 지내느라 건널목 볼 일조차 없기도 하지만, 여섯 살 누나는 건널목쯤이야 척척척 걷거나 달려서 건너는데, 세 살 산들보라는 영차영차 달려야 비로소 다 건넌다. 아버지 손을 잡고 건너면 조금 더 빠를 테지만, 너도 누나처럼 혼잣힘으로 네 두 다리로 건너고 싶지. 4346.5.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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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걷는 책읽기

 


  골목걷기가 좋다고 하더라도 시멘트 바닥이나 아스팔트 찻길만 걸어야 한다면 발바닥이 아프고 다리가 결리며 몸이 고단하다. 그러나, 스스로 좋은 마음 불러일으켜 즐겁게 걸을 수 있다. 스스로 좋은 생각 길어올려 곱게 걸을 수 있다.


  지난날 사람들은 짚신을 신거나 나막신을 신었다. 지난날 사람들은 맨발로 스스럼없이 살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시멘트 바닥이나 아스팔트 찻길을 맨발로 다니기 힘들다. 아니, 도시 한복판에서 맨발로 다녀 보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깔창과 바닥 두껍게 댄 구두나 신을 신을 수밖에 없다. 발바닥이 땅을 느끼지 않고, 발과 손과 몸이 흙을 느끼지 못한다. 길은 걷지만, 발이 숨을 쉬지 못한다. 길을 걷더라도, 몸이 지구별을 널리 품지 못한다.


  높디높은 시멘트 층집이 빽빽이 선 곳은 사람이 걸을 수 없는 데이다. 높디높은 시멘트 층집이 빽빽이 선 곳은 자동차만 싱싱 달리는 곳이다.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동네는, 도시에서 골목동네뿐이다. 지붕 낮은 집들이 앙증맞게 어깨를 겯는 골목동네에도 자동차 오가거나 자동차 서서 사람들 걷기 힘들도록 가로막기는 하지만, 작은 집들이 서로 보듬으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막고 차가운 바람을 가리며 포근한 햇살을 나눈다.


  도시사람이 골목을 걷자면, 맨 먼저 자동차가 사라져야 한다. 자동차가 사라지는 길은 굳이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안 깔아도 되니, 흙땅이나 풀숲이 살아날 수 있다. 흙땅이나 풀숲이 살아나면, 텃밭을 일굴 만하고 들풀 뜯을 만하다. 이런 곳에는 나무씨앗 한 톨 두 톨 드리우며 들나무 한두 그루 씩씩하게 자랄 테지.


  골목이 차츰 숲이 되고 들이 될 때에, 이러한 골목에서 아이들 뛰놀 만하고, 어른들 도란도란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꽃 피울 수 있다. 아이들이 뛰놀면서 어른들이 까르르 웃고 어울리는 골목일 때에, 비로소 누구나 즐겁게 거닐면서 생각을 빛내는 길이 된다. 4346.5.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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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꽃

 


느티나무 까무스름 가지마다
옅푸른 새잎 보드랍게
촘촘촘 맺히면서,

 

새로 돋은 가늘고 여린
나뭇가지에는

 

발그스름하면서 푸른
빛 감돌고,

 

깨알만 한 작은
꽃망울 맺혀

 

더 옅푸른 느티꽃
소복소복 터뜨린다.

 

사월 십육일
봄날,
팔백 살 훌쩍 넘은
느티나무 밑에 서며
느티잎 쏴르르 흐르는
느티바람
느티내음
느티빛
먹으면서 논다.

 


4346.4.1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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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84) 주의

 

하지만 주의 깊게 들어 보면 어른한테 배운 말은 순 엉터리라는 것을 금세 알게 됩니다
《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선생님, 내 부하 해》(양철북,2009) 108쪽

 

  ‘하지만’은 ‘그렇지만’으로 바로잡습니다. “어른한테 배운 말”은 “어른한테서 배운 말”로 다듬고, “엉터리라는 것을”은 “엉터리인 줄”로 다듬으며, “알게 됩니다”는 “알 수 있습니다”나 “압니다”나 “깨닫습니다”로 다듬어 줍니다. ‘금시(今時)에’를 줄여서 쓰는 ‘금세’는 즐겁게 쓸 만하지만, ‘곧’이나 ‘이내’나 ‘바로’로 손보면 한결 나아요.


  한자말 ‘주의(注意)’ 말뜻을 살펴봅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1) 마음에 새겨 두고 조심함 (2) 어떤 한 곳이나 일에 관심을 집중하여 기울임 (3) 경고나 훈계의 뜻으로 일깨움” 이렇게 세 가지 쓰임새가 있습니다. 그런데 소리값 같은 다른 한자말 ‘주의’로 ‘朱衣’는 “붉은 옷”을 뜻한다 하고, ‘周衣’는 “두루마기”를 뜻한다 하며, ‘酒蟻’는 “술구더기”를 뜻한다 하고, ‘紬衣’는 “명주옷”을 뜻한다 하는군요. 그런데, 이런 한자말 ‘주의’를 쓸 일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런 한자말을 국어사전에 실을 까닭이 없겠지요. ‘籌議’라는 한자말은 “모여서 서로 상담함”을 뜻한다고 하는데, 이런 한자말을 쓸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참말 이런 한자말은 국어사전에서 마땅히 덜어야 하고, 사람들이 슬기롭고 아름답게 살려서 쓰는 한국말을 알뜰살뜰 실어야지 싶어요.

 

 주의 깊게 들어 보면
→ 찬찬히 들어 보면
→ 가만히 들어 보면
→ 곰곰이 들어 보면
→ 마음 기울여 들어 보면
 …

 

  국어사전을 살피면, ‘주의’ 첫째 뜻 보기글로 “주의 사항”이나 “맹견 주의”나 “칠 주의”나 “주의를 시켜야겠소”가 있습니다. 둘째 뜻 보기글로 “주의가 산만하다”나 “주의를 기울이다”나 “주의를 끌다”나 “주의를 집중하다”나 “주의를 환기하다”가 있어요. 셋째 뜻 보기글로는 “주의를 받다”나 “주의를 주다”가 있어요.


  한자말 ‘주의’를 쓰는 동안 이렇게 보기글이 늘어납니다. 한자말 ‘주의’를 안 쓰던 지난날을 돌이켜봅니다. 어떤 낱말과 말투로 우리 생각 나타냈을까 차근차근 되새깁니다.

 

 살필 대목 . 살피시오 ← 주의사항
 사나운 개 있음 . 개 있음 ← 맹견 주의
 칠했음 . 페인트 발랐음 ← 칠 주의
 다짐을 시켜야겠소 . 잘 살피라 해야겠소 ← 주의를 시켜야겠소

 

  “주의가 산만한” 모습이라면, “마음이 어수선하”거나 “마음이 어지러운” 모습입니다. “주의를 기울인”다고 할 적에는 “마음을 기울인”다는 뜻이에요. “주의를 끌다” 같은 말을 쓰기 앞서 “눈길을 끌다”나 “마음을 끌다” 같은 말을 썼어요. “주의를 집중하다” 같은 말에 앞서 “마음을 모으다”나 “마음을 그러모으다” 같은 말을 썼고요.


  곰곰이 생각하면, “주의를 받다”나 “주의를 주다” 같은 말을 안 쓴 지난날에 “꾸지람을 받다”나 “꾸중을 듣다” 같은 말을 썼어요. 한자말 ‘주의’를 사람들이 차츰차츰 쓰면서 ‘꾸지람’이나 ‘꾸중’ 같은 낱말 쓰임새가 거의 사라져요. 더 생각하면, “말을 듣다”라고도 했는데, 이런 말 쓰는 어른은 요즈음 좀처럼 만날 길 없습니다.


  마음을 기울여 말을 아끼는 사람이 아주 많이 줄었어요. 마음을 가다듬어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꾸 줄어요. 그러나, 앞으로는 마음을 그러모아 말을 북돋우는 사람이 차츰 태어나리라 믿어요. 어른들이 슬기롭게 말하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이 슬기롭고 착하게 말길 트리라 믿어요. 아이들이 아름답고 참답게 말삶 가꾸리라 믿어요. 4346.5.7.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렇지만 가만히 들어 보면 어른한테서 배운 말은 순 엉터리인 줄 곧 알 수 있습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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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5-08 01:33   좋아요 0 | URL
아, 배우고 갑니다
저도 걱정이네요

파란놀 2013-05-08 07:05   좋아요 0 | URL
좋은 마음 품으면서 좋은 말 즐겁게 익혀 보셔요~
 

풀맛 책읽기

 


  도시로 오면 먹을 수 있는 풀이 거의 없다. 도시에서는 풀이 자랄 틈이 거의 없으니, 도시사람은 즐겁게 뜯어서 먹을 만한 풀을 만나기 어렵다. 시골에서 비닐집을 세우고는 철없이 아무 때나 잔뜩 심어 잔뜩 거두어들이는 푸성귀만 만날 수 있다. 서울 도봉구에서 ‘도봉구 맛 나는 풀’을 만날 수 없다. 서울 은평구에서 ‘은평구 맛 나는 풀’을 만날 수 없다. 서울 강남구에서 ‘강남구 맛 나는 풀’을 만날 수 있을까?


  풀맛을 볼 수 없는 도시에서는 물맛 또한 볼 수 없다. 신림동 물맛이란 없다. 교남동 물맛이란 없다. 종로 물맛이라든지 흑석동 물맛이란 없다. 두멧시골에 댐을 지어 길디긴 물관을 이어 수도물 마시는 도시에서는 모두 똑같은 화학처리를 한 물맛이 있을 뿐, 사람들 스스로 물맛을 헤아리거나 느끼거나 살피는 가슴까지 잃는다. 이리하여, 서울 물맛도 부산 물맛도 없다. 인천 물맛도 순천 물맛도 없다.


  풀도 물도 싱그럽게 자라지 못하는 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삶맛 누릴까.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맛 일구지 못하는 이 도시에서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품을 수 있을까. 4346.5.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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