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3.5.21. 큰아이―물고기와 새

 


  큰아이가 새를 그린다고 말한다. 무슨 새를 그리는가 하고 가만히 지켜본다. 만화영화에서 본 물고기를 새 비슷하게 그리는구나 싶다. 쳇. 재미없잖아. 큰아이가 그림놀이 하다 만 종이에 옆지기가 그림 몇 점 그린 구깃구깃한 종이를 찾아낸다. 구겨진 데를 편다. 그러고는 나도 새를 한 마리 그린다. “아버지 뭐 그려요?” “새. 응, ‘벼리새’야.” “벼리새? 그게 뭐야?” 네가 새를 재미나게 그리지 않으니까 아버지가 이렇게 그리지롱. 벼리야, 때로는 네가 본 어떤 그림이 재미나다 여겨 따라서 그릴 수도 있지만, 참으로 재미나거나 더없이 재미난 그림이란, 누구 그림을 흉내내는 그림이 아니라, 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그리는 그림이란다. 네 마음을 그리렴. 네가 본 들새와 멧새를 그리렴. 네가 날마다 만나는 제비와 마을 새들을 그리렴. 4346.5.2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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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22] 방송읽기
― 무엇을 보고 들어야 즐거울까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갈 때에 곧잘 버스 일꾼이 라디오를 켭니다. 군내버스 20분을 조용히 시골길 누비며 다닐 때가 있지만, 시골길 누비면서도 라디오 소리에 두 귀가 멍멍할 때가 꽤 됩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읍에서 순천을 오갈 적에는 거의 언제나 버스 일꾼이 라디오를 틉니다. 시외버스로 고흥과 순천을 오가는 한 시간 길에는 거의 언제나 두 귀 멍멍한 채 있어야 합니다.


  시외버스 일꾼은 시외버스에 어른이 타건 아이가 타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타건 푸름이가 타건 어르신이 타건 대수로이 살피지 않습니다. 그저 버스 일꾼 스스로 들으려 하는 라디오를 켭니다.


  가끔 도시로 가서 시내버스를 탈 적에는 좀 다르다고 느끼곤 합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자동차 너무 많고, 사람들 지나치게 많아서, 도시 시내버스 일꾼으로서는 라디오라도 켜지 않으면 골이 아프겠구나 싶어요.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와 손전화 소리와 수다 떠는 소리에서 홀가분하면서 도시 시내버스를 몰자면, 라디오란 더할 나위 없는 길벗이 되리라 느껴요.


  시골 군내버스는 퍽 달라요. 호젓한 시골길을 달리는 군내버스는 앞에서나 옆에서나 뒤에서나 숲을 보고 들을 봅니다. 때로는 냇물을 보고 바닷물을 봅니다. 눈을 맑게 틔우고 생각을 환하게 여는 푸른 빛깔을 한 가득 바라보면서 버스를 몰 수 있어요. 그러니, 시골 군내버스 일꾼은 굳이 라디오를 안 켜도 됩니다. 게다가, 시골 할매나 할배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가 있고, 갓 태어난 아기들 무럭무럭 자라 어린이 되고 푸름이 되며 어른 되는 흐름을 죽 지켜보기도 하기에,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새록새록 누립니다. 따로 라디오를 헤아릴 틈이 없다 할 만해요.


  도시에서 택시를 모는 일꾼이 손님들 기다리면서 텔레비전을 볼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루 내내 찻길에서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에 시달리면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맡을 뿐 아니라, 열 몇 시간 좁은 자동차에 갇히다시피 들어앉아 일을 해야 하니, 택시 일꾼 또한 버스 일꾼처럼 라디오가 길벗이요 텔레비전이 삶벗 되리라 느껴요.


  그러면,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버스와 택시 일꾼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채우는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이 빚을까요. 사람들 마음을 따사롭게 보듬는 이야기가 새벽부터 밤까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흐르나요. 치거나 박거나 싸우거나 하는 이야기가 흐르는 방송은 아닌가요.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이야기는 뒤로 밀린 채, 갖가지 정치 다툼·경제 다툼·외교 다툼 따위만 다루다가는, 차별 문제·반민주 문제·막개발 문제조차 제대로 못 다루는 방송이지 않나요.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는 사람들 마음을 어떻게 건드리는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영화나 연속극이나 운동경기나 새소식이나 정보나 토론이나 연설 들은 사람들 생각을 어떻게 움직이려는지 궁금합니다.

  고흥읍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이웃도시 순천으로 마실을 가서 한나절 지내고는 다시 고흥읍으로 와서 군내버스로 갈아타고는 시골마을 우리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합니다. 시외버스 타고 오가는 동안 내내 라디오 소리에 귀가 멍멍했고, 군내버스에 내리자마자 마을 어귀부터 훅 끼치는 고소하고 시원한 들바람에 개구리 노랫소리 가득 울려퍼집니다. 개구리 노랫소리 사이사이 아직 나즈막하다 싶은 풀벌레 노랫소리 섞입니다. 멧새 노랫소리는 개구리 노랫소리에 그예 파묻힙니다. 머잖아 이 밤에 개똥벌레 불꽃춤잔치 벌어지리라 생각합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밤노래잔치 즐겁고, 해마다 다시 마주하는 개똥벌레 불꽃춤잔치 반갑습니다. 하늘 올려다보면 별이 쏟아지고, 멀리 내다보면 까만 밤하늘 가로지르는 멧자락 얼핏설핏 보입니다.


  라디오 방송 가운데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즈음 개구리 노랫소리나 제비 노랫소리 들려주는 적은 아직 없습니다. 텔레비전 방송 가운데 세 시간이나 네 시간 즈음 바람소리와 햇살내음이랑 풀노래랑 바다물결 골고루 보여주는 적은 아직 없습니다. 바람 따라 풀이 눕고 나뭇잎 살랑거리는 소리를 오래오래 들려주는 라디오 방송이 있을까요. 고래가 노니는 춤사위를 오래도록 보여주는 텔레비전 방송이 있을까요.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밭이 될까요.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지구별 사람들한테 어떤 사랑이나 꿈이 될 만할까요. 우리들은 꿈과 사랑을 헤아리면서 방송을 마주하는 삶인가요 아닌가요. 4346.5.2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당신은 어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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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놀이 2

 


  빨래터 물이끼 치우자고 하면서 빨래터놀이 간다. 아이들은 첫 3분 즈음만 청소하는 시늉을 한다. 그러나 한창 놀다가도 아버지 곁에 붙어서 물 퍼내는 시늉을 한다. 그래, 너희들 마음대로 놀아라. 며칠 앞서 빨래터에 와서 들여다보니, 빨래하는 네모난 자리 말고, 물을 긷는 동그란 자리에는 다슬기 여럿 있더라. 오늘은 다슬기 숫자 더 늘어난다. 다슬기는 물이끼 뜯으며 살아가려나. 다슬기 있으니 곧 개똥벌레도 태어나겠지. 서로서로 잘 어울려 살아가기를 빌며, 다슬기 쓸려 가지 않도록 옆으로 옮기며 물이끼를 걷는다. 물 빠져 나가는 골은 부러 물이끼를 걷지 않는다. 아이들은 빨래터 바닥에 드러눕기도 하고, 엎드리기도 한다. 4346.5.2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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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2 09:53   좋아요 0 | URL
ㅎㅎ 귀여운 산들보라 궁둥이..^^
정말 아이들이 맘껏 춤같이 노는군요.~
그런데 저는 개똥벌레를 본 적이 없는 듯 해요. ^^;;

파란놀 2013-05-22 10:43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가 개똥벌레인데
이제 서울에서는 볼 수 없어요.
왜냐하면,
개똥벌레는 다슬기를 먹고 살아가거든요.
그러니까 다슬기가 먼저 있어야 하고,
다슬기가 있자면
1급수 물이 흘러야 해요 @>@

후애(厚愛) 2013-05-22 11:01   좋아요 0 | URL
산들보라 궁둥이 너무 깜찍하고 귀엽습니다.^^
빨래터가 크네요...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저도 저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부럽습니다.^^

파란놀 2013-05-22 12:04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아니 20년이나 30년 앞서만 해도, 이 빨래터에서 스무 집 넘게 빨래를 했을 테니, 그때에는 무척 비좁았으리라 느껴요. 이제 빨래터는 우리 아이들 놀이터가 되었지만요~~~ ^^
 

감잎 책읽기

 


  감잎은 봄내 노르스름한 빛이다. 감꽃이 피고 지며 감알 찬찬히 굵을 무렵 비로소 푸르스름한 빛으로 바뀐다. 사람들은 나뭇잎이라 하면 으레 푸른 빛깔만 생각하지만, 꽃이 피어 한창 흐드러질 때에는 맑고 여린 노르스름한 빛이 환하다. 이무렵에는 나뭇잎 톡톡 뜯어서 먹으면 나무마다 다른 나무내음과 나무맛 느낄 수 있다.


  큰아이가 감잎을 만지며 “감꽃은 어디 있어?” 하고 묻는다. “감꽃 저기 있지. 아직 여물지 않았어. 곧 감꽃도 피겠네.” 이제 봄이 저물며 여름 다가오겠구나. 폭폭 찌는 햇살과 상큼하며 시원한 바람 감도는 여름 되겠구나. 4346.5.2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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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찾아내는 책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쓴 책이기에 안 읽을 수 있다. 이제껏 이름마저 모르는 사람이 있기에, 왜 나는 이녁 이름마저 몰랐나 하고 여기며 더 마음을 기울여 읽을 수 있다.


  마음을 열지 않고 책을 열지 않을 수 있다. 마음을 열며 책을 열 수 있다. 언제나 스스로 한다. 책을 찾아내어 읽고픈 사람도 스스로 책을 찾아내어 읽는다. 책을 찾아내지 않고 책을 읽지도 않는 사람 또한 스스로 책을 안 찾아내어 안 읽는다.


  사랑하려는 마음을 품어야 사랑한다. 미워하려는 마음을 품어야 미워한다. 좋아하려는 마음을 품기에 좋아한다. 싫어하려는 마음을 품기에 싫어한다. 늘 스스로 한다. 스스로 즐기고, 스스로 누리며, 스스로 찾는다. 스스로 나누고, 스스로 어깨동무하며, 스스로 베푼다.


  사 놓고 몇 해째 안 들추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여러 해만에 펼친다. 《코끼리를 쏘다》를 비롯해 1980년대와 1970년대에 한국말로 나온 조지 오웰 님 산문책을 떠올린다. 얼추 열 해에 한 차례쯤 한국말로 나오는 조지 오웰 님 산문책인데,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그닥 사랑받지 못하다가 2010년대에 들어 비로소 퍽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기에 사랑받지 못했을까.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잘 알아보려 하니까 사랑받을 만할까.


  조지 오웰 님은 스스로 ‘이야기 느끼고 싶은 곳’으로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귀로만 스쳐 듣는 이야기 아닌, 몸으로 겪고 만나면서 이녁 눈길로 바라보려는 이야기로 하나둘 부대꼈다. 스스로 삶을 찾아내며 살았기에 스스로 쓸 글을 스스로 찾아내어 책을 묶었다. 이녁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이녁 스스로 일구어 글을 빚었다. 어디에서나 아름다움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고, 언제라도 사랑스러움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꾸준히 글을 써서 책 하나로 여미었다고 느낀다. 4346.5.2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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