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달

 


  이틀째 햇살을 내주지 않던 하늘이 비로소 열린다. 장마 끝나고 햇살 드리울 때에 이런 느낌일까. 새벽동이 트면서 하늘빛 파르스름하게 바뀌고 구름마다 볼그스름한 빛으로 물들 무렵, 마당에 내려와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아침달을 본다. 그래, 해가 높이 솟아도 달은 아침에도 낮에도 잘 보이지. 아침달이로구나. 곱다시 지구별 바라보는 아침달이로구나.


  나는 멧새 노랫소리만 듣고 싶지만, 마을 어르신들 경운기를 몰아 들판으로 나간다. 멧새 노랫소리를 잠재우는 경운기 소리를 들으면서도, 경운기 소리에 묻히는 멧새 노랫소리를 더 귀를 기울여서 듣는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자가용하고 사귀지 않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자가용을 몰면 찻길만 바라보느라 들도 숲도 멧자락도 하늘도 바라볼 겨를이 없다. 더군다나, 자가용을 몰면 바퀴 구르고 엔진 움직이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들바람도 숲바람도 멧바람도 하늘바람도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내가 자가용을 몰아야 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뚜껑 없는 자가용을 몰고 싶다. 적어도 머리 위로 하늘빛 느낄 수 있는 자가용을 몰아야 마음을 살포시 열 만하리라 느낀다. 아이들을 수레에 앉혀 자전거를 몰 적에는 온몸으로 바람이 감기면서 시원하고 상큼하다. 내 다리와 허리와 팔로 버티는 자전거는, 나 스스로 갈 만한 곳까지 갈 수 있고, 내 둘레 모든 소리를 살가이 맞아들인다.


  아침달은 지구별 어떤 모습을 바라볼까. 아침달은 지구별 어떤 빛깔을 좋아할까. 아침달은 지구별에서 어떤 이야기를 느낄까. 4346.5.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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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는 사람

 

 

  읍내에서 아는 분들을 뵙는 술자리에 느즈막하게 낀다. 나는 오늘 순천에 볼일 보러 다녀오다가 전화를 받고 술자리에 함께 낀다. 술자리에 낀 때는 다섯 시 사십오 분 즈음. 시계를 본다. 나는 여섯 시 반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들 밥 먹일 생각을 한다. 여섯 시 이십오 분이 되어 둘레 분들한테 집에 가서 밥하고 아이들 먹여야 한다고 말한다. 둘레 분들은 '남자가 왜 일어서야 하느냐'고 말씀한다. 그래서 '나는 집안일을 도맡아서 하니까 아이들 먹여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남자 아닌 여자일 때에도 나한테 '집에 가지 말고 술자리에 더 있으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붙잡을 수 있을까. 아마, 술 좋아하는 분들은 누구이든 붙잡으리라. 집에서 아이들이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배를 굶든 말든 그리 깊이 헤아리지 못하리라 느낀다.

 

  나는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여섯 시 반 군내버스는 못 탔지만, 술자리에 있던 술 안 마신 분이 여섯 시 사십오 분에 우리 마을까지 태워 주신다. 우리 마을까지 태워 주신 분한테 내 책 몇 권 고맙다고 선물로 드린다. 집으로 오자마자 밥을 안치고 먹을거리를 바삐 장만해서 두 아이 먹인다. 4346.5.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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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05-29 20:41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기억할 아버지의 모습이
다른 아이들과는 사뭇 다르겠어요^^

파란놀 2013-05-30 06:11   좋아요 0 | URL
우리 둘레 사내들이
좀... 생각을 깨칠 수 있기를 빌며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어쩌면 저도
집살림 도맡으면서
천천히 생각을 깨치는지 몰라요...
 


 책꽂이에 사진 붙이기 (도서관일기 2013.5.2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우체국에 들러 책을 붙이고 나서 도서관으로 온다. 어제 하루 내내 내린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나니, 딸기밭 둘레도 물기 제법 말랐으리라 생각한다. 그끄제 잔뜩 딴 들딸기를 냉장고에 두었다가 그제 먹기는 했지만, 어제는 식구들 모두 딸기맛 못 보았으니, 비 그친 이듬날이지만 오늘 들딸기 따기로 한다.


  한 통 가득 딴 들딸기는 두 아이 손에 어느덧 사라진다. 아이들 손이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 먹새를 살피면, 한겨울에 비닐집에서 키우는 딸기는 이렇게까지 손을 뻗어 먹지 않는다. 들에서 스스로 나는 들딸기는 배가 빵빵해지도록 먹고도 더 먹으려 한다.


  두 아이한테 딸기 제법 먹이고 나서 도서관 일을 한다. 옆지기가 아직 아이를 안 낳던 때 모습 사진도 몇 장 붙이고, 골목동네 모습 찍은 사진도 곳곳에 붙인다. 나무로 된 책꽂이 한쪽 벽은 사진틀 노릇을 한다. 작은 사진을 작은 못으로 박으면, 퍽 보기 좋다. 하나씩 둘씩 붙이면서, 사이사이 흰종이에 손글씨로 몇 가지 말을 곁들인다. 곤약 빈 봉지도 슬쩍 붙인다. 고흥에서 난 김을 담은 봉투도 살짝 붙인다.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가져온 고흥군 홍보자료도 몇 가지 붙인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적바림한 작은 쪽종이도 붙인다. 골목동네 길그림 반듯하게 그리기 앞서 연필로 슥슥삭삭 그린 밑그림도 붙인다. 읍내 중국집 나무젓가락 담은 빈 종이껍데기도 붙인다.


  책꽂이가 많으니 사진이나 여러 가지 붙이려면 품과 겨를이 많이 든다. 날마다 조금씩 붙이기로 한다. 고흥 군내버스 종이버스표도 곧 붙여야지. 어디에 어떻게 붙이면 좋으려나.


  배부른 아이들이 아버지 세발이를 가지고 사진놀이를 한다. 아버지가 너희 앞에서 그 세발이로 사진 찍는 모습 보여준 적은 없을 텐데, 어떻게 그 세발이로 사진놀이 할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책꽂이 벽에 사진 붙이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아이들이 장기알이랑 몽당분필 갖고 놀며 남긴 모습을 본다. 참 가지런히 늘어놓았구나. 장기랑이랑 몽당분필을 인형 삼아 줄줄이 늘어놓았구나.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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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9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정말, 참 좋아요~*^^*
벼리와 보라가 줄줄이 차례차례 늘어놓은 장기알이랑 몽당분필도
너무나 예쁜 빛깔의 들딸기도, 붙여 놓으신 사진들이랑 손글씨 흰종이도요.~
저 이렇게 조곤조곤하고 아기자기 예쁜 것들 진짜...느무느무~좋아해용.^^
아이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작은 공룡들을 벽에다 본드로 붙여놓고 히히..했던 추억도
^^;;; 한때 초록 소주병뚜껑들을 빼꼭히 붙여 어떤 또 하나의 작품(?)들을 만들어 볼까,
궁리했었던...웃겼던 기억도 납니다. ㅋㅋ

파란놀 2013-05-29 11:07   좋아요 0 | URL
아무것 아닌 것 같은 데에도
아이들은 즐겁게 생각을 빛내면서
참 잘 노는구나 싶어서
대견하고 아름답습니다~

낭만인생 2013-05-30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저도 시골에 이런 도서관 하나 만들고 싶네요. 자연과 책이 어우러진 곳!

파란놀 2013-05-30 10:26   좋아요 0 | URL
만들어 주셔요.
서로서로 즐겁게 마실 다닐 수 있도록~

즐겁게 꿈을 꾸면서 천천히 기다리시면
머잖아 사랑스레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아이 그림 읽기
2013.5.27. 큰아이―꽃 곁들이기

 


  아버지가 여러 날 걸쳐서 천천히 그리는 그림에 큰아이가 꽃 한 송이 곁들여 준다. 아버지가 올 한 해 내놓고 싶은 책을 하나하나 그린 뒤, 이 둘레에 무지개도 그리고 꽃이랑 풀도 그리는데, 문득 떠올라 들딸기 한 송이를 슬그머니 그려서 “벼리야, 무슨 그림일까?” 하고 물어 보니, 큰아이가 못 알아본다. “너 들딸기 맛있게 먹잖아.” “응.” “그런데 몰라?” 답을 다 말해 주고 물어 보지만 못 알아챈다. 한참 뒤, “아, 딸기야?” “응, 딸기야. 딸기는 줄기에 이렇게 가시도 있고, 딸기풀 잎은 톱니가 자잘하게 있어. 딸기풀에는 가시가 많아서 아버지 손등이며 팔뚝에 가시 찔린 자국 많고 피도 났지.” 이렇게 이야기하며 딸기알과 딸기줄기와 딸기잎 그려서 보여주고는, “벼리가 나중에 딸기 따면서 들여다보면 더 잘 그릴 수 있어.” 하고 덧붙인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2분쯤 뒤, 큰아이가 아버지 그림 한쪽에 딸기풀을 곱게 그려 준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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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며 노는 어린이

 


  공책을 펼치고 한창 글을 쓰던 아이가 문득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까르르 웃는다. 왜? 그냥 너 하던 일 해. 아버지 쳐다보지 말고. 그러나, 아이가 문득 아버지 쳐다보며 웃어 주기에 한결 재미난 사진을 얻기도 한다. 참 재미나게 노는 우리 아이로구나 하고 또 생각한다. 그래, 넌 그렇게 놀면서 살아야지. 글을 쓰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언제나 다시 놀고 새롭게 놀아야지. 노는 아이가 예쁘구나. 4346.5.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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