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기다리는 자동차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걷는 사람을 못 기다린다. 나는 아이들 데리고 다니면서 자동차가 앞에 있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사람)가 먼저 자동차(기계)보다 앞에서 가야겠다’고 몸짓으로 말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힘드니까, 아이들을 자동차물결 멈출 때까지 세워 둘 수 없고, 아이들이 자동차한테 치여 시달리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자동차가 달리는 쪽을 아예 안 쳐다본다. 너희(자동차,기계)가 내(사람,아이들) 앞에서 멈추지 않으면 어쩌겠느냐고 생각한다. 사람이 먼저이지, 기계가 먼저 아니라고 몸짓으로 외친다.


  문득 내 어릴 적에 숱하게 본 온갖 모습이 떠오른다. 내 어머니도, 이웃 아주머니도, 아이들 이끌고 다닐 때에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걸어다니’셨다. 아이 손을 잡고 씩씩하게. 다들 혼잣말처럼 읊으셨다. “사람이 지나가는데 차가 뭐야. 아이들보고 비키라는 거야. 넓은 데로 다녀야지, 왜 사람들 다니는 좁은 길로 들어와서 저래.” 하면서 가야 할 길을 다 가도록 여느 걸음걸이 그대로 지키곤 했다. 또, 어떤 아주머니들은 한손에 아이 하나씩 단단히 붙잡으면서 건널목을 야무지게 건너곤 했다. 이 아주머니들 볼 적마다 ‘그래, 그렇지. 아이들이 건너야지. 자동차가 기다려야지.’ 하고 느꼈다.


  두 아이와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지난날 일들이 하나둘 스쳐 지나간다. 자동차들이 사람을 못 기다리겠다고? 그러면 사람을 치고 지나가겠다고? 못 기다리겠으면 자동차에서 내리셔요. 자동차에서 내려 두 다리로 걸으셔요. 걸어갈 때가 가장 빠르답니다. 사람더러 비키라고 빵빵거리지 말아요. 사람더러 비키라고 빵빵거리는 자동차는 벼락을 맞기 마련이랍니다. 4346.6.18.불.ㅎㄳㄱ

 

(최종규 . 2013 - 책 헌책방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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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들

 


  작은 책들을 눈여겨봅니다. 책시렁에 번듯하게 꽂히더라도 커다란 책들 틈바구니에서 책등조차 거의 드러나지 못하는 작은 책들을 눈여겨봅니다.


  작은 책들을 살펴봅니다. 큰 책들 꽂히고 나서야 큰 책들 위쪽에 덩그러니 놓이기 마련인 작은 책들을 살펴봅니다.


  이 작은 책들은 어떤 사랑을 받아 태어났을까요. 이 작은 책들은 왜 다른 커다란 책들처럼 커다란 판으로 태어나지 못했을까요.


  작은 책은 값이 쌉니다. 큰 책하고 똑같은 줄거리 담았어도, 종이를 적게 쓰고 잉크를 적게 먹어 값이 쌉니다. 작은 책은 값이 싸니까, 작은 책을 만들어 파는 책마을 일꾼은 돈을 적게 법니다. 사람들이 어차피 사서 읽는 책이 똑같다면, 큰 판짜임으로 엮어 내놓으면 돈을 제법 벌 만하겠지요. 그렇지만, 어느 책마을 일꾼은 굳이 작은 책으로 엮어서 내놓습니다.


  파묻히기 쉽고 사라지기 쉽다 할 작은 책들인데, 외려 이 작은 책들이 더 크게 보이곤 합니다. 큰 책들 사이에 낑기거나 찡기거나 눌리기 쉽다 할 만큼 작은 책들이지만, 되레 이 작은 책은 한 번 더 쓰다듬거나 어루만지고 싶습니다.


  작기에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합니다. 작으니 잠자리에서도 버스에서도 길에서도 자전거에서도 손쉽게 들고 다닐 만합니다. 작은 마음으로 작은 사랑 담아 작은 이야기 꾸리는 작은 책을 작은 사람이 작은 손으로 만지작거립니다. 4346.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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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6-18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일본 책 보면 다 하나같이 귀엽고 자그마하잖아요,
우리나라에는 문고본들이 워낙 음, 시리즈물이 대부분이고 문고본이라 치기엔 너무 삐까번쩍해서;;;; 부담스러운데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중고딩 시절) 삼중당 문고본 맨날 읽었는데- 축약본이어서 좀 그렇긴 했지만 (당시에는 축약본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읽었고)

자그마한 책들이 한국에도 좀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파란놀 2013-06-18 14:04   좋아요 0 | URL
돈만 있대서는 자그마한 책을 못 만들고,
아름다운 뜻과
그야말로 책읽기 좋아하는 사장과 편집자 있어야
비로소 손바닥책 예쁘게 태어나리라 느껴요......
 
나츠코의 술 애장판 11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47

 


맛·삶·사랑을 느끼는 사람
― 나츠코의 술 11
 오제 아키라 글·그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2.2.25./9000원

 


  밤노래 저무는 시골마을에 밤별이 나란히 저뭅니다. 밤별이 저물면서 하얗게 동이 틉니다. 빛이 달라집니다. 어제와 같은 아침이 찾아오지만, 오늘 아침은 어제와 다릅니다. 그제와 같은 아침을 열지만, 오늘 아침은 그제와 다릅니다. 언제나 다른 아침이고 날마다 다른 아침입니다.


  어제 저녁을 먹다가, 여섯 살 큰아이가 묻습니다. “내가 이제 자고 일어나면 일곱 살 돼요?” “아니야, 일곱 살이 되려면 아직 멀었어. 하룻밤 잔다고 일곱 살이 되지 않아.” “에휴.” “너한테 하루가 아주 길는지 모르지만, 그만큼 자라도록 길지도 짧지도 않게 지나가는 하루야. 한 살도 두 살도 길지 않아.” 내가 여섯 살이었을 적에도, 일곱 살이나 여덟 살이었을 적에도, 우리 큰아이처럼 물은 적 있으리라 느낍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짠 하고 스무 살이나 서른 살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도 한 주도 한 달도 한 해도 무척 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기쓰기 숙제가 며칠 밀리고 보면, ‘무슨 날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가’ 하고도 생각합니다.


  저녁 밥상을 치우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아이들한테는 하루와 한 해가 똑같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아이들한테는 하루도 한 해도 한 사람 삶도 모두 같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아이들이 날마다 새롭고 아름다운 하루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새삼스레 느낍니다. 하루가 새롭게 언제나 아름답다면, 아이들은 나이를 세는 일을 굳이 안 하리라 느낍니다.


- “난 재배회 문 닫을 생각 없어! (헬리콥터 농약) ‘공중 살포’ 따위 절대 부활하게 놔두지 않을 거야!” (16쪽)
- “나츠코. 타츠니시키로 빚은 술을, 꼭 일본 최고의 술로 만들어 다오. 타츠니시키로 빚은 술이 호평을 받으면, 그건 이곳 카와시마초의 유일한 자랑거리가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타츠니시키를 재평가할 것이고, 재배회가 하는 일도 이해하겠지. 그것이야말로 공중 살포를 막는 최고의 힘이 될 거다.” (18쪽)

 

 

 

 


  어제 낮, 두 아이와 함께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마실 다녀옵니다. 시골 읍내라 하더라도 찻길이 있고 자동차가 다닙니다. 작은 시골 읍내이니 자동차도 그닥 안 많다 할 만하지만, 작은 시골 읍내인 터라 자동차가 몇 대만 지나다녀도 ‘차가 참 많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 이 자동차들 지나갈 적마다 뜨거운 기운과 매캐한 바람이 날립니다. 냄새도 느낌도 빛깔도 안 좋습니다. 큰아이는 군내버스 탈 적부터 ‘에어컨 바람’을 느끼며 “아이, 냄새.” 하고 말했습니다. 풀바람과 나무바람 흐르던 집에서만 지내다가 에어컨 돌아가는 버스를 타니 냄새부터 못마땅하구나 싶어요.


  거꾸로, 늘 에어컨 바람 쐬며 여름을 나는 사람들은 풀바람이나 나무바람이 시원하거나 즐거운 줄 못 느끼리라 생각해요. 나무그늘에서 쐬는 산들바람이 얼마나 온몸을 포근하게 씻어 주는지 못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시골 읍내도 도시하고 똑같습니다. 시골 면소재지도 도시하고 닮습니다. 읍내도 면소재지도 도시입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 달동네라 하는 곳은 시골과 닮습니다. 텃밭을 일구고 꽃그릇으로 꽃잔치 이루는 달동네 골목집은 그예 시골집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숲이 없습니다. 국립공원에는 숲이 조금 있지만, 시골에도 도시에도 숲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는 논밭으로 짓는 땅을 넓히려고 숲을 밀었고, 도시에서는 아파트와 찻길 늘리려고 숲을 밀었습니다. 시골에서는 값싼 땅에 공장과 골프장 짓는다며 다시 숲을 밉니다. 도시에서는 놀이공원과 쇼핑센터 세운다며 새삼스레 숲을 밉니다.


  숲이 없어 숲바람 누리기 힘든 이 나라인데, 시골 읍내 작은 가게 한켠에 제비집 있습니다. 어느 가게는 제비집 다치지 말라고 해가리개를 펴 둔 채 있습니다. 해가리개 기둥에 지은 제비집 밑으로 종이상자를 대어 똥받침을 삼습니다. 읍내 곳곳에 있는 제비집마다 새끼 제비들 씩씩하게 자라 둥지 밖으로 터져나올 듯합니다. 이 새끼 제비들 곧 날갯짓 배우면서 저마다 하늘 신나게 날아다니겠지요. 여름이 무르익을 무렵 새끼 제비들 마음껏 하늘 노닐면서 어미 제비와 함께 먹이찾기와 하늘놀이 누리겠지요.


- “아버지, 난 마츠오 님(술의 신령)을 모시는 무녀예요. 그러니 틀리지 않아요.” (22쪽)
- “전무님, 누룩한테 키스할 정도면 우리한테도 좀 나눠 달라고.” (31쪽)
- “긴조 N은 날 해방시켜 줬어요.” “그럼 그 술을 이해하지 못한 건 나라는. 틀린 건 나라는 건가요?” “그래요. 하지만 쿠사카베 씨라면 곧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믿어요.” (34쪽)

 

 

 

 


  안개 짙게 낀 하늘은 하얗습니다. 구름 두껍게 낀 하늘은 하얗기도 하지만 잿빛일 때도 있습니다. 안개하늘은 오롯이 하얗고, 구름하늘은 우중충합니다. 안개도 구름도 걷힌 하늘은 새파랗습니다. 파랗디파란 하늘빛은 무엇으로도 물들일 수 없습니다. 저 하늘빛에 아무런 티끌 깃들 수 없어요.


  하늘이 파랗게 빛날 적에는 모두들 파란 숨결 마십니다. 하늘이 하얗게 환할 적에는 다 함께 하얀 숨결 마십니다. 하늘에 배기가스 넘치고 공장 매연 흩날리면, 사람과 나무와 짐승과 벌레 모두 배기가스와 매연을 마셔요.


  지하상가에 일터를 둔 이들은 지하상가 바람에 익숙합니다. 아파트와 회사 건물을 오가는 이들은 시멘트집에 익숙합니다. 도시에서 전철과 버스나 자가용이나 택시로 움직이는 이들은 에어컨 바람에 익숙합니다.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익숙한 대로 꾸리는 삶입니다. 사람들마다 익숙한 대로 흐르는 삶입니다. 아이들과 놀고 집일 맡으면, 따로 ‘운동 다닐’ 일이 없습니다. 온몸 하루 내내 움직이니, 해가 기울며 포근히 잠들고, 한밤 내내 개운하게 자고 나면, 아침에 기지개 켜고 시원하게 새날 맞이합니다. ‘운동’이란 ‘움직임’이거든요. 즐겁게 온몸을 써서 움직일 때에 ‘운동’이에요. 몸매나 힘살이나 얼굴을 이쁘장하게 꾸미는 일은 ‘운동’이 아니에요. ‘몸만들기’라 하든지 ‘몸꾸미기’라 해야겠지요.


  곧, 어느 새도 운동을 따로 안 합니다. 어느 짐승도, 벌레도, 풀과 나무와 꽃도, 따로 운동을 안 합니다. 삶이 운동입니다. 삶이 움직임입니다. 삶이 고스란히 이야기입니다.


- “쿠사카베, 이 향기를 기억해 둬라. 좋은 누룩에는 반드시 군침 도는 향기가 난다. 누룩의 상태를 냄새가 가르쳐 주는 거야.” (47쪽)
- “일전에 조합장님이 그러더라. 우리 카와시마초에는 유기농업은커녕 벼농사를 지을 여유도 없다고. 왠지 열심히 노력하는 농사꾼은 전국에서 오로지 사에코 씨뿐이란, 생각이 들더라.” (54쪽)

 

 

 

 


  도시는 어디에서나 수도물 마십니다. 수도물을 정수기로 걸러서 마십니다. 어느 집이나 가게는 시골에서 퍼올린 먹는샘물 마시겠지요. 시골은 어디에서나 냇물이나 샘물 마십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시골마을에까지 수도물 놓으려고 돈을 퍼붓습니다. 시골길 파헤쳐서 시멘트관 파묻습니다. 시골마을 여러 곳 물에 잠기게 하는 큰 댐을 짓고는, 시멘트 물관으로 잇고 이어 도시에 수도물 보내기만 하지 않고, 시골에까지 수도물 잇도록 꾀합니다. 왜냐하면, 댐을 짓고 수도물 팔아야 장사가 되어 돈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싱그러운 물맛을 누리지 못할 때에, 사람들은 바보가 되기 때문이에요.


  도시에 보금자리 있는 이들은 싱그러운 물을 더러 맛보더라도 이내 수도물로 돌아갑니다. 어쩔 수 없이 도시로 돌아가서 살고 일해야 하니까요. 정부가 제대로 돈을 쓴다면 도시에서도 냇물과 샘물 마시도록 할 수 있지만, 정부는 이러한 데에는 돈을 들이지 않아요. 왜냐하면, 냇물과 샘물 마시도록 하면 세금을 못 걷거든요. 더욱이, 도시사람이 참물이 무엇인가 알아채면, 애써 도시에 안 남으려 할 테니, 사람들을 도시에 붙잡아 제도권 톱니바퀴에 얽매이도록 하자면 수도물에 길들도록 몰아세워야 해요.


  물장사를 하려고 시골마을 여러 곳을 자꾸 물에 잠기게 합니다. 물장사를 하려고 댐을 짓습니다. 큰물이나 태풍을 걱정해서 댐을 짓지 않아요. 물장사를 하려고 댐을 지어요. 덧붙여, 댐을 지으면 토목공사를 크게 벌이니, 공사비로 돈을 많이 벌어요. 수도물 사업도 돈장사입니다. 그리고, 시골사람조차 참다운 물맛을 느끼지 못하게 꾀하려는 짓이에요. 시골마을까지 매캐한 바람이 흐르게 하고, 시골마을마저 안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하려는 짓이지요.


  흐르는 물이 깨끗합니다. 흐르는 물에 고기가 삽니다. 흐르는 물이 목숨을 살립니다. 흐르는 물에 수많은 목숨이 깃듭니다.


  흐르는 바람이 정갈합니다. 흐르는 바람에 풀도 사람도 벌레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람이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셔요. 바람이 안 흐르면 도시사람은 10분도 안 되어 모두 죽어요. 바람이 안 흘러 자동차 배기가스와 공장 매연이 도시에 그대로 갇히면, 도시사람은 숨을 쉴 수 없어요. 도시에 배기가스와 매연이 그토록 쏟아져도 도시사람이 아직 안 죽은 까닭은 바람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에어컨을 튼다 하더라도 틈틈이 에어컨 끄고 바람갈이를 하지 않으면 골이 아프면서 숨이 멎을 수 있어요. 너무 마땅하지요. 흐르지 않는 바람을 마시면 ‘산 목숨’은 ‘죽은 목숨’이 되는걸요.


  살아도 산 목숨 아닌 죽은 목숨과 같이 지낸다면, 참삶을 깨닫지 못합니다. 참빛을 느끼지 못하고, 참넋을 읽지 못합니다. 죽은 목숨과 같이 지내기에, 참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죽은 목숨과 같이 지내기에, 사랑이나 꿈을 마음에 담지 못합니다. 산 목숨으로 살아가야, 비로소 이웃을 생각하고 동무를 살피며 한식구를 떠올려요.


- “아니, 아마 그 준마이를 그대로 출하한다 해도 소비자 중 누구 하나 눈치채는 사람은 없을 거야. 난 지금도 그 술 정도면 합격이라고 생각하네. 황당한 노릇이구만! 할아범, 우리가 실격인 게 아니야. 나츠코의 능력이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선 거야. 난 비센 사장이 한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네. 나츠코는 지금 어떤 술에도 만족할 수 없을 거다, 그러니 본인이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다, 고. 가능하겠나, 할아범?” (91쪽)
- “나츠코 씨는 어째서 인간과 신을 나누어 생각하는 거지? 그런 식이면 엄격함은 맛볼 수 있어도, 술을 빚는 기쁨은 맛볼 수 없어. 힘내시게, 전무. 인간미 넘치는 무녀가 돼 보라고.” (175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 열한째 권을 읽습니다. 열한째 권에서 양조장 맏딸 나츠코는 드디어 ‘나츠코다운 술’을 빚으려는 마음을 품습니다. 다른 어느 맛에도 기울어지지 않고, 오직 나츠코 스스로 이녁 꿈과 사랑을 헤아리는 ‘나츠코 술’을 생각합니다.


  1등상 받는 술을 빚을 까닭 없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술맛을 따를 까닭 없습니다. 굳이 어떤 옛날 전통을 따라야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새로운 기술과 문명과 과학으로 양조장을 꾸려야 하지 않습니다. 나츠코는 나츠코대로 나츠코가 품는 꿈과 사랑을 이룰 술을 빚으면 됩니다.


  나츠코가 빚으려 하는 술을 알아차린 이웃들은 시나브로 나츠코하고 한마음이 됩니다. 술쌀이 될 벼농사 지으면서 농약 한 모금도 안 쓰겠다 다짐합니다. 되도록 기계를 안 써서 논을 갈고, 되도록 손으로 벼를 베며, 되도록 햇볕에 벼를 말린 다음, 되도록 손으로 벼를 털어 가장 싱그럽고 아름다운 벼알 거두려고 땀을 흘립니다.


  흙일꾼 스스로 잘 알리라 생각해요. 기계로 벤 벼와 손으로 벤 벼는 밥맛이 달라요. 햇볕에 말린 벼와 기계로 말린 벼는 밥맛이 다르지요. 어느 시골에서 어떤 물을 마시며 자란 벼인가에 따라 밥맛이 다릅니다.


  흙일꾼 사랑을 어떻게 받고 자란 벼인가에 따라 맛이 다릅니다. 해와 비와 달과 하늘과 흙과 물이 어떻게 어우러진 채 자란 벼인가에 따라 맛이 달라요. 아주 마땅해요. 더없이 마땅해요. 사랑받은 대로 사랑스럽지요. 아낌받은 대로 빛나지요.


- “좋지 않은 맛과 향을 나조차 찾아낼 수 없는 술, 만일 그런 술이 완성된다면, 그게 바로 나츠코의 술이에요.” (95쪽)
- “난 잠자코 그 녀석이 하는 대로 놔둘 생각이네. 나와 같은 방식을 쓴다면 그 녀석에게 맡길 게 뭐 있나. 그냥 내가 하지.” (221쪽)


  직업으로 맛을 보는 요리사는 사랑으로 맛을 보는 살림꾼한테 못 이깁니다. 직업으로 글을 쓰는 작가는 사랑으로 글을 쓰는 어린이한테 못 이깁니다. 직업으로 운동을 하는 선수는 사랑으로 놀이를 즐기는 어린이한테 못 이깁니다.


  술맛은 술꾼이 볼 수 없습니다. 술맛은 흙을 사랑하며 아끼고 돌보는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술맛은 전문가들이 알아채지 않습니다. 술맛은 햇살을 쬐고 비바람을 마시며 두 발로 흙땅을 밟는 시골사람이 알아챌 수 있습니다.


  삶을 느끼는 사람이 사랑을 느낍니다. 삶을 느끼며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맛을 느낍니다. 맛을 느끼고 싶다면, 먼저 삶을 느껴야 합니다. 맛을 느끼려면, 삶을 느끼면서 찾아드는 사랑이 어떤 맛인 줄 느껴야 합니다. 4346.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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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8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그렇네요..
어느 짐승도, 벌레도, 풀과 나무와 꽃도, 따로 운동을 안 합니다.
삶이 운동입니다.-
저희 집은 다행히 산과 가까운 곳에 살아, 새벽에 눈을 떠서 창을 열으면 싱그러운 흙냄새, 풀냄새가 코끝에 닿아 참 좋습니다. ^^ 정말 그 냄새는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향기로움이지요.~
오늘도 함께살기님의 풀냄새, 숲냄새, 비냄새 가득한 글...감사히 읽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

파란놀 2013-06-18 14:02   좋아요 0 | URL
아마 먼먼 옛날 사람들은 '풀내음'과 '꽃가루'만 마시면서도
하루하루 살아갈 숨결을
다 받아들였구나 싶기도 해요
 

두 손 부채질

 


  여름이 되며 아이들을 가끔 찬물로 땀을 씻겨 본다. 마당에 놓은 큰 고무통에 곧 물을 받아 아이들 물놀이를 시킬 만하리라 생각한다. 밤에 아이들 재우면서 두 아이한테 부채질을 해 준다. 하루에 두 차례쯤 물로 씻겨도 곧바로 뛰놀며 땀을 내는 아이들은 머리카락이며 얼굴이며 등판이며 촉촉하다. 자장노래 다섯 가락 부르면서 부채질을 한다. 왼손과 오른손에 부채를 하나씩 쥐고 부채질을 한다. 지난해 여름에도 이렇게 부채질을 했고, 그러께 여름에도 이렇게 부채질을 했구나. 아이가 셋이라면 혼자서 세 아이한테 부채질 해 주기는 어렵겠네 싶다.


  누워서 ‘두 손 부채질’을 하자면 팔을 엇갈린다. 왼손으로는 오른쪽에 누운 아이한테 부채질을 하고, 오른손으로는 왼쪽에 누운 아이한테 부채질을 한다. 아이들이 깊이 잠들 무렵, 한 아이씩 머리카락 쓸어넘기며 부채질을 한다. 머리카락 안쪽까지 스민 땀내를 살살 말린다. 날마다 땀 푸지게 쏟으며 무럭무럭 자라겠구나. 놀아야 아이답고, 놀 때에 구리빛 해말갛다. 4346.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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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51] 두 손 모아

 


  꿈을 빌면서 두 손을 모읍니다. 두 손을 모아 살포시 가슴에 댑니다. 가슴은 두 손 숨결을 느끼면서 콩닥콩닥 뜁니다. 한 손을 대어도 따순 기운이 가슴으로 스미고, 두 손을 대면 한결 따사로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집니다. 내 손으로 내 가슴을 댈 적에도 스스로 포근해진다고 느낍니다. 두 손을 모으는 비손이란 스스로 따뜻해지려는 몸짓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남이 나를 가만히 안아 따뜻한 기운 감돌도록 하기도 하지만, 내가 나를 살뜰히 어루만지면서 따사로운 숨결 스미도록 합니다. 손을 모읍니다. 두 손을 모읍니다. 마음을 모읍니다. 모든 마음을 모읍니다. 몸에 있는 기운을 온통 쏟기에 ‘온몸’을 바칩니다. 곧, ‘온마음’을 들여 삶을 짓습니다. 손을 모으기에 ‘손모아’ 꿈을 빌고, ‘두손모아’ 사랑을 바랍니다. 여럿이 함께 손을 모으면서 ‘꿈모아’ 이루려는 뜻을 세우고, 서로서로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사랑모아’ 보금자리 일굽니다. 생각을 모으고, 힘을 모읍니다. 책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읍니다. 4346.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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