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함께 그린다

 


  세 살 산들보라가 크레파스로 죽죽 금긋기를 하다가 내팽개친 종이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종이는 이대로 두면 틀림없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리라. 그렇다고 여섯 살 사름벼리가 이 종이에 그림을 그릴 듯하지는 않다. 깨끗한 종이에 그림을 그리려 할 테지.


  큰아이가 그림 그리는 곁에 ‘작은아이가 죽죽 금을 그은 종이’를 펼치고는 우리 집 후박나무를 그려 본다. 잎사귀를 어떻게 그릴까 생각하다가, 모두 동글동글 하나씩 그려 넣는다. 생각보다 느낌이 좋다 싶어 바지런히 동글동글 잎사귀 넣는다.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여기는 왜 다 안 그려?” 음, 그게 다 그린 그림인데?


  후박나무 위쪽을 그린 다음 하늘빛을 입히는데, 노랑나비 네 마리 그리고, 고추잠자리 세 마리 그린다. 노랗게 맑은 해님을 그린다. 작은아이가 크레파스를 쥐더니 해님 둘레를 죽죽 긋는다. 작은아이 딴에는 그림을 함께 그리겠다는 뜻이다. 좋아. 네 마음대로 죽죽 그어 주렴.


  이윽고 후박나무 아래쪽 그릴 때. 무얼 그릴까 하고 1초쯤 생각하다가 나무뿌리를 그리기로 한다. 나무뿌리를 죽죽 잇다가는, 몇 가지 글씨를 넣는다. 맨 먼저 나무. 작은아이가 곁에서 자꾸 ‘나무’라고 말하기에 나무를 적는다. 그러고서 뿌리를 쓴다. 그러고서 잎을 쓰고 꽃을 쓰고 열매를 쓴다. 마지막으로 씨앗을 쓴다. 가만히 생각하니, 나무는 뿌리와 잎과 꽃과 열매에 씨앗, 이렇게 다섯 가지로 이루어진다고 할 만하네.


  아래쪽 빛깔을 입힌다. 이야, 여러 날 걸려 그림 한 장 다 그렸네. 큰아이도 제 그림을 다 그리고는 아버지 그림을 바라본다. 아까와는 달리 “어, 아버지 그림 잘 그리네.” 하고 말한다. 그래? 그러면 아버지가 그림을 왜 잘 그린다고 생각하니? 알겠니? 아버지는 아버지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니까 잘 그려. 아버지가 언제나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에 담으니까 잘 그린단다. 사름벼리 너도 말이야, 네가 좋아하는 마음속 이야기를 늘 그리니까, 너도 그림을 잘 그리지. 그래서 네 그림을 온 집안에 잘 보이도록 붙인단다. 4346.6.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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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7 08:42   좋아요 0 | URL
그림이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너무 좋습니다.
나무 나비 잠자리 해님 뿌리
땅 위의 푸르름과 땅 아래의 따뜻한 흙 색감이 어우러져 이야기를 하는군요..
이 그림 한 장 벽에 붙여 놓으면 매일 우주와 함께 있는 느낌일 것 같아요. ^^
그림이 무척 탐이 납니다. ㅎㅎ

파란놀 2013-06-27 08:58   좋아요 0 | URL
이번 그림은 나뭇잎 동글동글 하느라 좀 오래 걸렸는데,
아이들과 또 다른 그림을 하나 그리면
선물할게요.

어떤 그림 그리면 좋을는지
3초 생각하니 떠올랐습니다 ^^;;;
 

꽃밥 먹자 11. 2013.6.23.

 


  아침에 밥을 먹자 부르니 인형을 한아름 가져와서 늘어놓는다. 저녁에 밥을 먹자 부르고 보니 밥상에 연필통이 있다. 너희들 밥 먹자는 뜻이니, 그냥 놀겠다는 뜻이니. 밥상을 다 차려서 불렀으면 즐겁게 밥을 먹자. 그러고 나서 마음껏 놀면 되잖니. 인형놀이는 밥 먹은 뒤 하고, 밥상을 책상 삼아 그림놀이 했으면 연필통은 치워 주셔요.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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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3.6.25. 큰아이―누나와 동생

 


  한창 글씨쓰기를 하다가 글씨를 더는 안 쓰고 그림을 그린다. 얘, 얘, 뭐 하니? “응, 누나하고 산들보라야.” 큼지막하게 그린 아이는 저(사름벼리)고, 조그맣게 그린 아이는 동생(산들보라)이란다. 그래, 네가 동생보다 키나 몸집이 아직 크지. 그나저나 동생한테도 치마를 입히네. 동생은 머리카락 아직 많이 짧은데 동생한테도 긴머리카락 그려 주네. 그렇게 그려야 예쁘니까 그렇게 그렸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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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미국에서 옆지기가 전화를 건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할 말은 앞으로 다다음달까지 즐겁게 지내고 돌아오라는 말뿐. 전화기에 줄을 이어 두 아이한테 하나씩 작은 소리통을 내준다. 아이들은 귀에 소리통을 꽂고는 어머니 목소리를 듣는다. 어머니 목소리 들으니 좋니? 어머니가 먼 데 계시니 이렇게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단다. 그런데, 너희가 꿈속에서 어머니를 그리면서 즐겁게 만나 하늘 훨훨 날아다니는 이야기 빚으면, 참말 너희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개운하고 싱그러운 하루 맞이할 수 있지. 찬찬히 기다리자. 두 달은 길면서 짧은 나날이란다. 4346.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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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희네 집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1
권윤덕 글 그림 / 길벗어린이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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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80

 


이야기가 숨쉬는 집
― 만희네 집
 권윤덕 글·그림
 길벗어린이 펴냄,1995.11.15./8500원

 


  옛날부터 사람들은 집을 지어서 살았습니다. 살붙이가 함께 지낼 집을 조그맣게 지어서 살았습니다. 집은 흙집이기도 하고 돌집이기도 하며 나무집이나 풀집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집이든 날씨와 터전에 맞추어 지었어요. 옛날에 살던 사람들이 지은 집은 숲과 들에서 얻은 흙과 돌과 나무와 풀로 지었기에, 오래도록 손질하고 고치면서 터를 지켰습니다. 이 집을 허물어 새로 지을 적에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숲에서 얻은 흙은 숲으로 돌아갑니다. 들에서 얻은 돌 또한 들로 돌아갑니다. 멧골에서 얻은 나무는 멧골로 돌아갑니다.


  옛날 옛적 사람들은 ‘새집 증후군’을 앓지 않습니다. 오래된 집이라서 나쁘지 않습니다. 숨을 쉬는 집이었고, 포근한 보금자리였으며, 아늑한 쉼터였습니다.


  옛날보다 아스라히 먼 옛날에는 사람들이 따로 집을 짓지 않고 살았으리라 느낍니다. 하늘이 지붕이 되고 땅이 이부자리가 됩니다. 풀이나 짚이나 잎이 이불이 되겠지요. 이무렵에는 숲에서 자라는 모든 풀이 밥이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숲이 집이자 일터이고 놀이터 되면서, 모든 삶을 숲에서 이루었으리라 느껴요.


.. 만희네 집은 동네에서 나무와 꽃이 가장 많은 집입니다. 만희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개들은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만희를 알아봅니다 ..  (6쪽)

 


  집은 삶터입니다. 삶터인 집은 이야기터입니다. 숲이 집이었던 옛날 사람들은 숲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숲바람 마시면서 숲노래를 부릅니다. 숲내음 맡으면서 숲춤을 춥니다.


  예나 이제나 집은 삶터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집은 삶터보다는 부동산이나 재산이 됩니다. 부동산이나 재산이 되는 오늘날 집은 백 해나 이백 해나 오백 해나 천 해를 잇지 못합니다. 쉰 해조차 안 되었어도 헐어서 새로 짓습니다. 삶터 아닌 부동산이나 재산이 되면서, 오늘날 사람들 머무는 집에서는 이야기를 길어올리지 못합니다. 뚝딱 지었다가 와지끈 허무는데, 이런 데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리지 못해요. 집값을 따지고 부동산정책 쏟아지지만, 막상 집에서 식구들과 이야기를 누리지 못해요. 무슨무슨 아파트라는 이름이 붙고 어찌저찌 온갖 편의시설과 문화시설 갖춘다고 하지만, 정작 집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즐기지 못해요.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편의시설도 문화시설도 돈을 써야 누립니다. 돈을 써서 누리는 편의시설과 문화시설에서는 편의와 문화는 있을 테지만, 이야기는 깃들지 않아요. 돈벌이가 되거나 돈굴리기 되는 재산이나 부동산이 된다면, 이러한 건물에서 애틋하거나 살갑거나 구수한 이야기 한 자락 길어올리지 못해요.


  부엌이 어떻고 툇마루가 어떠하며 화장실이 몇 칸 있고 하는 겉모습을 따진대서 집이 살기 좋지 않아요. 이런 시설이 있다 해서 집에서 오순도순 사랑을 속삭이지 않아요. 서로 얼굴 마주볼 때에 이야기를 나누어요. 함께 밥을 먹을 때에 이야기를 나누지요.


.. 앞뜰 화단에는 접시꽃, 도라지, 해바라기, 나리, 분꽃, 홍초, 옥잠화가 모여 삽니다. 봄에는 하얀 목련과 붉은 모란과 라일락도 핍니다 ..  (18쪽)

 

 


  한칸짜리 달삯방이라 하더라도, 이불 나누어 덮으면서 알콩달콩 어울리는 데에서는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조그마한 방 한 칸이라 하지만, 아이들이 복닥거리며 뛰노는 데에서는 이야기가 솟구칩니다. 지글지글 반찬 하는 냄새를 나누고, 보글보글 국 끓이는 소리를 나눕니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나누는 한편, 시골집에서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마다 다 다른 빛과 소리를 누려요.


  백 평쯤 되는 아파트라 하더라도, 열 평 마당이나 꽃밭 있는 시골집처럼 살가우며 따사로운 소리와 빛과 내음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백 평쯤 되는 고급빌라라 하더라도, 스무 평 마당이나 텃밭 있는 시골집처럼 햇볕 듬뿍 누리면서 싱그러운 나무그늘과 바람을 즐기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쿵쿵 뛰지 못하는 아파트에서 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즐길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쿵쿵 뛰지 못하는 아파트에서는 어른들도 목청 곱게 뽑아 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피아노를 마음 놓고 못 치기도 하지만, 북이나 장구 또한 신나게 두들기지 못하지요. 무엇 하나 홀가분하게 누리지 못해요. 왜냐하면, 집이 아닌 재산이 되거나 부동산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집이라 할 때에는, 같이 일하고 같이 놀며 같이 쉽니다. 집이라 할 때에는, 언제나 조촐하게 잔치를 벌이고, 놀이판 이루며,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 밤노래를 들으면서 밤잠에 빠져들어요.


  이야기는 하늘에서 똑 하고 떨어지지 않아요. 이야기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에서 뻥 하고 튀어나오지 않아요.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 가슴에서 샘솟아요. 이야기는 늘 우리들 마음에서 자라요.


.. 옥상 한쪽엔 빨랫줄이 있습니다. 햇볕이 좋은 날엔 엄마가 이불을 내다 넙니다. 만희는 부드러운 이불 속으로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닙니다 ..  (28쪽)

 


  권윤덕 님이 빚은 그림책 《만희네 집》(길벗어린이,1995)을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만희네 집뿐 아니라, 골목동네 작은 집에는 꽃도 풀도 나무도 싱그러이 자랍니다. 흙땅 한 뼘조차 없어도 헌 그릇과 통에 흙을 옮겨담아 꽃을 키우고 풀을 기르며 나무를 돌봅니다. 게다가 옥상에서는 옥상텃밭을 이루면서 빨래 너는 터를 마련하지요. 조그마한 집 한 채가 드넓은 운동장 못지않게 재미난 놀이터 됩니다. 자그마한 집 한 곳이 우람한 건물과 아파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쉼터 됩니다.


  만희네 집은 골골샅샅 어디에나 있습니다. 도시에도 있고 시골에도 있습니다. 만희네 집은 아직 서울에도 제법 남았고, 인천이나 부산이나 대전이나 춘천에도 꽤 있어요. 시골에는 훨씬 살갑고 아름다운 ‘꽃집·풀집·나무집’이 있어요. 숲 곁에 깃든 넉넉하고 푸른 숲집도 있습니다.


  이들 꽃집에서는 언제나 웃음소리 퍼집니다. 이들 풀집에서는 늘 노랫소리 번집니다. 이들 나무집에서는 노상 사랑소리 울려요. 이들 숲집에서는 한결같이 꿈소리 흐르겠지요.


  재산이나 부동산을 사들일 마음 아닌,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가꾸는 손길 되면 좋겠어요. 목돈을 모아 큰도시 한복판 떵떵거리는 재산이나 부동산이 아닌, 푼돈이어도 좋으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숲터를 일구어 조그마한 살림집 돌보는 어른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줄 ‘집’이라면,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이야기집’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4346.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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