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질

 


후끈후끈 무더운 여름날
아침 낮 저녁
밤 새벽
하루 내내
아이들 땀 식히려고
부채질을 한다.

 

아이가
여섯 살
세 살
둘이니
한손에 부채 하나씩 쥐고
두 아이한테 부채질 한다.

 

아이가 셋이면 어쩌지?
생각한 적 있는데,
그때에는
큰아이가 씩씩하게 자라
혼자서 부채질을 할 테지.

 

큰아이한테 여섯 해째,
작은아이한테 세 해째,
여름마다 부채질 하며 사는데,
올여름에
작은아이 큰아이 모두
장난이자 놀이 삼아
아버지한테 부채질
되돌려준다.

 

아이들은 1분이 채 안 될 만큼
부채질 해 주고
깔깔 웃으며
어느새 저쪽으로 달려가서 노는데,
나는
아이들한테서 1분 부채질 받으면
1시간만큼 돌려준다.

 


4346.8.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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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26 21:08   좋아요 0 | URL
벼리와 보라가 아버지한테 1분이 채 안되더라도
부채질 해주는 모습이 떠올라 아주 이쁘고 귀여워요~! ㅎㅎ

파란놀 2013-08-27 07:10   좋아요 0 | URL
이제는 부채질을 안 해도 되는 날씨가 되어
몸이 좀 쉴 수 있습니다~
 

제비떼

 


  제비떼를 본다. 너른들 펼쳐진 곳에서 늦여름 제비떼를 본다. 문득 깨닫는다. 이 제비떼는 곧 한국을 떠나 태평양 가로질러 중국 강남으로 가려는구나. 이렇게 모여서 다 함께 움직이는 나들이길을 살피려는구나.


  요즈음 사람들은 제비떼는커녕 제비 구경조차 못 한다. 아니, 안 한다. 요즈음 하나같이 먹고살기 바쁘거나 힘들다 하면서 ‘제비 보러’ 다니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먼 옛날 놀부는 동생 흥부 흉내를 내면서 제비를 붙잡아 다리를 똑 부러뜨리려 했는데, 요사이는 흥부 같은 사람도 놀부 같은 사람도 없다. 제비가 사람과 얼마나 오랫동안 사귀며 함께 살아왔는지 하나도 헤아리지 않는다.


  제비가 도시에서 사라진 줄 안 느끼는 사람이 아주 많다. 제비가 시골에서조차 사라지려는 줄 안 깨닫는 사람이 매우 많다. 고속철도를 놓거나 4대강사업을 꾀할 적에 ‘제비 걱정’을 한 공무원이나 개발업자나 교수님이나 지식인이나 기자가 있었을까? 유기농업이나 친환경농업이나 자연농업을 한다고 밝히면서 정작 ‘제비 생각’을 하는 흙일꾼이나 농협 일꾼이 있을까?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본다. 아름답게 생각하고 슬기롭게 헤아리는 이웃은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디, 몇몇 이웃만 아름답거나 슬기롭지 않기를 빈다. 모든 이웃이 저마다 아름답고 슬기롭기를 빈다. 제비가 찾아오는 도시가 될 때에 비로소 살아갈 만한 아름다운 터전이 된다. 제비가 날아드는 들판이 될 적에 누구도 맛나거나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알차게 맺는 마을이 된다.


  제비가 찾아오는 시골은 제비를 아낄 노릇이다. 제비가 안 찾아오는 마을은 제비가 다시 찾아오도록 삶터를 정갈하고 깨끗하며 맑게 고칠 노릇이다. 4346.8.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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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책으로 보는 눈’을 끝내며

 


  2007년 4월부터 ‘책으로 보는 눈’이라는 이름을 붙여 원고지 다섯 장쯤 되는 글을 썼습니다. 2007년 4월은 제가 고향 인천으로 돌아가던 때입니다. 이때부터 인천 배다리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열었습니다. 이때까지 충청북도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님 책과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했고, 이 일을 끝내고는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돌이켜보면, 나는 1994년에 대학교에 처음 발을 들이면서 고향을 떠났습니다. 모두들 서울바라기만 하는 모습이 못마땅하고 달갑지 않아, 대학교에 가더라도 고향 인천을 떠날 생각이 없었지만, 나도 ‘서울로 가는 흐름’에 함께 휩쓸렸습니다. 군대에 갔다 오고 나서 대학교를 그만둔 1998년 가을에도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그대로 서울에 남아 일자리와 삶자리를 알아보았어요. 이러다가 2003년 가을에 서울을 벗어나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충청북도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돌아가신 이오덕’ 님 발자취를 헤아리면서 삶과 책을 돌아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얼마나 될까요. 한 사람은 얼마나 되는 책을 읽어야 아름다울까요. 집에 건사한 종이책 숫자가 ‘읽은 책’을 말할까요. 죽을 때까지 써서 남긴 책 숫자가 ‘읽은 책’을 말할까요.


  나는 내 어머니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 ‘틀린 말’이 있은 적은 없다고 느낍니다.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오면서 우리 아이들이 어버이인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 ‘틀린 말’이 있은 적은 없구나 하고 느낍니다.


  봄에 찾아와서 가을에 떠나는 제비가 사람들한테 ‘틀린 말’을 하는 적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잠자리가, 나비가, 메뚜기가, 들꽃이, 나무가, 숲이, 바다가, 들이, …… 사람들한테 ‘틀린 말’을 하는 적이 없어요. 하늘도 구름도 흙도 바람도 언제나 ‘옳은 말’을 합니다.


  종이책만 책일까 궁금합니다. 전자책도 종이책 언저리에 들어가니까,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이렇게 ‘사람이 글로 써서 남긴 이야기’만 책일까 궁금합니다.


  예부터 “날씨를 읽는다”고 말했습니다. 뱃사람은 “바람을 읽는다”고 말했고, “물살을 읽는다”고 말했습니다. 시골사람은 누구나 “풀을 읽는다”고 하는 한편 “나무를 읽는다”고 했으며 “흙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차근차근 살피면 그래요. 오늘날이건 옛날이건, 시골에서 흙이나 물이나 풀을 만지는 사람은 종이책을 들여다볼 틈이 없기도 하지만, 애써 종이책을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읽다’라는 낱말은 우리 한겨레한테 아주 오래된 낱말이에요. 국어사전 뜻풀이를 살피면 글이나 책에 적힌 글씨를 ‘읽는’ 뜻만 나오지만, ‘읽다’라는 낱말은 사람들이 글도 책도 모르던 때부터 썼어요.


  더 생각해 봅니다. “책을 읽는다”라고도 하지만 “책을 본다”라고도 합니다. 한겨레는 책을 “읽으”며 책을 “봅”니다. 곧, 종이에 앉힌 글을 살피는 일만 ‘읽기’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오래디오랜 옛날 옛적부터 우리 겨레는 누구나 삶을 읽고 사람을 읽으며 마음을 읽었어요. 사랑을 읽고 숲을 읽으며 하늘을 읽었어요. 뜻을 읽고 꿈을 읽으며 이야기를 읽었지요. 다시 말하자면, 삶을 보고 사람을 보며 마음을 보았어요. 사랑을 보고 숲을 보며 하늘을 보았어요. 뜻을 보고 꿈을 보며 이야기를 보았지요.


  2007년 4월에 인천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열었습니다. 내가 이제껏 읽은 종이책을 그러모아 서재도서관을 꾸렸습니다. 2010년에 이 도서관을 충북 충주로 옮겼고, 2011년에 이 도서관을 전남 고흥으로 옮겼습니다. ‘책으로 보는 눈’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동안 쓴 글은 내 서재도서관이자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면서 ‘책과 삶’을 나란히 읽은 이야기를 적바림한 사랑 한 마디라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책을 읽으면서, 책으로 삶을 읽습니다. 삶에서 책을 깨닫고, 삶에서 사람과 사랑과 꿈이 이어진 실타래를 느낍니다. 이렇게 깨닫고 느낀 이야기를 2007년 5월에 새롭게 태어난 〈시민사회신문〉에 썼습니다. 〈시민사회신문〉은 처음에는 주마다 나왔지만, 신문사 살림살이가 힘들어 시나브로 달에 한 번 나오더니, 두 달에 한 번 나오기도 했고, 2013년 들어서는 두어 차례 나오고 더는 못 나옵니다. 나는 글을 200꼭지 썼지만, 〈시민사회신문〉은 152호까지 나왔습니다. 내 글 가운데 48꼭지는 아예 신문에 못 실렸습니다. 이 신문이 잘되기를 바라며 주마다 글을 쓰려 했지만, 한 달 두 달 신문이 안 나오고 보니, 나도 주마다 글 한 꼭지씩 쓰려던 몸가짐이 흐트러졌어요. 이 신문이 153호를 낼 수 있는지, 앞으로 꾸준히 나올 수 있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다시 새힘 얻어 씩씩하게 나온다면 반가울 텐데, 이제 나는 ‘책으로 보는 눈’이라는 이야기는 내려놓으려 해요. 오늘까지 걸어온 200걸음에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아름답게 일굴 삶을 생각합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꿈을 생각합니다. 즐겁게 만날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책으로 보는 눈’이라는 글을 쓰면서 “책은 빛이요, 빛은 책”이라고 깨닫습니다. “삶은 책이요, 책은 삶”이라고 느낍니다. 이 땅에 평화와 민주와 통일이 흐르면서, 누구나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곱게 돌볼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4346.8.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으로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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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200 : 책으로 보는 빛

 


  빛을 읽는 책입니다. 우리가 이제껏 살아온 빛을 읽고, 저마다 앞으로 살아갈 빛을 읽는 책입니다. 책에는 수많은 빛이 서립니다. 책을 쓴 사람이 누린 빛이 서리고, 책을 엮고 만든 사람 빛이 서리며, 책을 다루는 사람들(책방지기) 빛이 서려요. 여기에, 책을 읽는 사람 빛이 어우러집니다. 책 하나는 책을 쓰거나 만들거나 다루는 사람들 손길과 빛만으로는 환하지 않아요. 이 책을 알아보고 사랑하며 아끼는 책손이 새삼스럽게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질 때에 환하게 거듭납니다.


  책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이웃과 동무와 아이한테 물려주는 선물입니다.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와 짐승과 물고기는 책을 쓰지 않고 책을 읽지 않습니다. 풀과 나무는 씨앗에 온 삶과 이야기를 담습니다. 벌레와 새와 짐승과 물고기는 새끼한테 온몸으로 삶과 이야기를 물려줍니다. 곰곰이 따지면, 사람들도 얼마 앞서까지 책을 쓰지 않고 읽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책을 쓰거나 읽은 발자국을 살펴도 천 해나 이천 해, 또는 삼천 해쯤 헤아린다 하지만, 이무렵에도 책을 안 쓰고 안 읽은 사람이 훨씬 많았어요. 곧, 누구나 어버이가 되면 삶과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물려주었어요. 눈빛과 말빛과 마음빛과 몸빛으로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슬기와 꿈과 사랑을 물려주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버이나 어른이 되어도 아이들한테 슬기와 꿈과 사랑을 좀처럼 물려주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뿐입니다.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고 어떤 강의를 듣게 할 뿐입니다. 어버이나 어른 스스로 이녁 아이를 똑똑히 가르치지 못하고, 어버이나 어른 스스로 나서서 둘레 아이를 슬기롭게 이끌지 못해요.


  디팩 초프라 님이 쓴 《우주 리듬을 타라》(샨티,2013)를 펼쳐 “눈이 거룩해질 때 당신은 치유된다(148쪽).”와 같은 대목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둘레를 바라보는 내 눈이 거룩해진다면, 집일을 건사하는 내 손이 거룩해진다면, 살붙이와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내 몸이 거룩해진다면, 참말 내 삶은 아름답겠지요. 아픔이나 미움이나 괴로움이란 하나도 없겠지요.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스스로 사랑스레 다시 태어나며 스스로 사랑을 누립니다.


  이오덕 님이 남긴 일기를 갈무리한 《이오덕 일기》(양철북,2013) 다섯 권 가운데 셋째 권에서 “그러나 나는, 아무리 기계가 발달해도 인간의 정신을 그 기계가 높여 주지 못할 것이고, 편리한 생활을 한다고 문화의 질이 높아진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편리한 생활을 한다고 인간이 행복해진다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인간 정신이 타락하는 것 아닐까? 농경시대보다 지금은 확실히 편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행복하지는 않다. 정신은 황폐해지고 한층 더 불행해졌다(59쪽/1986년 10월 11일).”와 같은 대목을 읽습니다. 차근차근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넉넉한 웃음을 보여줄까요? 돈을 못 버는 사람은 홀가분한 웃음을 보여주나요? 돈을 잘 벌거나 못 벌거나 똑같이 어두운 얼굴은 아닐까요?


  책은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삶도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밥 한 그릇, 물 한 모금, 바람 한 숨,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모두모두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빛을 먹으며 빛으로 삽니다. 빛을 나누고 빛을 가꾸며 빛을 돌봅니다. 동이 트며 날이 밝을 때에 온누리 눈부시게 무지개빛 되면서 즐겁습니다. 새 하루 깨우고, 새 마음 이끌어, 새 사랑 샘솟도록 하는 빛입니다. 빛이 되는 책을 읽습니다. 4346.8.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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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자전거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우면 아주 홀가분하게 어디로든 달릴 수 있다. 달리다가 마음대로 자전거를 멈추어 바다이든 숲이든 들이든 한껏 누릴 수 있다. 아마 자전거 아닌 자가용을 몬다 하더라도 이렇게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자가용과 자전거는 아주 크게 다르다. 자가용은 찻길만 다니지만, 자전거는 찻길 아닌 데도 간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모래밭도 지나가고 논둑도 지나간다. 자가용으로는 이렇게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자전거에 아이들 태우고 함께 달리면, 바람과 햇볕과 소리와 냄새를 나란히 누린다. 구름과 햇살과 새와 벌레와 풀과 나무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낀다.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워 사십 분 즈음 달리기만 해도 땀을 엄청나게 쏟는다. 아이들과 함께 두어 시간 자전거를 달리면 이동안 흘린 땀으로도 살이 쪽 빠졌구나 하고 느낀다. 그러니까, 자전거를 몰아 아이들과 다니면 참으로 즐겁고 흐뭇한데, 몸은 기운이 죄 빠져나가 다리가 후들거린다. 뒷목이 당기고 뒤꿈치가 저리다. 그러나, 아이들 밥을 해서 먹여야 하고, 아이들 씻기고 나서 옷 갈아입혀야 한다. 없는 힘을 뽑아내어 저녁을 차리고 먹이고 치운 뒤 아이들보다 먼저 자리에 눕는다.


  작은아이가 먼저 아버지 곁으로 온다. 자장노래를 몇 가락 부르다가 스르르 눈을 감는다. 이윽고 큰아이가 아버지 곁으로 온다. 자장노래 한두 가락 더 부르다가 입을 달싹이지 못하고 한숨 포옥 쉬고는 조용히 잠든다. 아이들도 고단했으리라. 달게 깊이 잘 잔다. 새벽에 깨어 곰곰이 생각한다. 아이도 어버이도 하루를 힘껏 누리고 몸이 느긋하게 쉴 때에 가장 즐거운 나날 아니랴 싶다. 몸에 힘을 남길 까닭 없이 모조리 쓰고 나서, 아이도 어버이도 홀가분하게 드러누워 잠들면 참말 즐거운 하루 아닌가 싶다.


  씩씩하게 뛰어놀다가 사르르 곯아떨어지는 아이들처럼, 어버이도 씩씩하게 일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다가 저녁에 아이와 똑같이 스르르 곯아떨어지면 될 노릇이라고, 내 나름대로 생각한다. 4346.8.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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