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밤, 술

 


  고흥에서 길을 나선다. 순천버스역에서 시외버스를 갈아타서 진주로 온다. 진주에서 다시 대구로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대구 삼덕동에서 사진벗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는 잠잘 곳을 찾아 골목을 걷는다. 이때 갑자기 와장창 깨지는 소리 들린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자동차 한 대 전봇대를 들이받으며 50센티미터 즈음 하늘로 붕 떴다가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진다. 저 자동차, 틀림없이 술을 마신 뒤 몰았구나. 술도 조금 아닌 많이 퍼마신 뒤 몰았구나. 그런데 몇 초쯤 뒤 이 자동차가 다시 길을 간다. 엄청나게 전봇대를 들이받았는데 멀쩡하게 제 갈 길을 간다.


  시골이었으면 저 자동차는 틀림없이 논바닥에 처박았거나 못에 풍덩 뛰어들었거나 벼랑에서 굴렀으리라. 도시이니, 처박을 논바닥도 빠질 못도 떨어질 벼랑도 없다. 그런데, 전봇대 아닌 가게를 들이받았다면, 길을 가던 사람을 들이받았다면, 참으로 끔찍하다.


  왜 술을 마시고 자동차를 몰까. 왜 술을 마셨으면 택시를 안 탈까. 자동차를 집으로 가져가고 싶다면 요즈음 아주 많은 대리운전을 불러야 할 노릇 아닌가. 술을 퍼마신 뒤 자동차 모는 이들은 여느 때에 자동차를 어떻게 몰까. 도시에서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인가. 그리고, 시골에서 막걸리와 소주 아무렇지 않게 들이부은 뒤 경운기며 짐차며 모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인가.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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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아침마다 빛이 달라
동트는 쪽으로 한참
구름과 하늘과 해
바라본다.

 

햇살 퍼지는 기운
온몸으로 받아
오늘 날씨 헤아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일월 사월 칠월 시월
보름 사리 조금 그믐
언제나 새롭게 맞이하는
이 하루는
밝은 빛이 숨쉬는
이야기밭.

 


4346.11.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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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247
박형준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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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장난
[시를 말하는 시 40] 박형준, 《춤》

 


― 춤
 박형준 글
 창비 펴냄, 2005.5.20.

 


  시골길 달리는 군내버스는 거침없습니다. 시골길에서 군내버스 앞을 막는 자동차는 없습니다. 신호등 없고 자동차 없어 군내버스는 쉬잖고 달립니다. 한낮이나 저녁이면 군내버스에 타는 시골사람조차 없어 군내버스는 손님 하나 없이 빈털털이로 싱싱 달리기도 합니다.


  시골마을 벗어나 도시로 달리는 시외버스는 고속도로에서 거침없습니다. 그러나 도시 어귀부터 차츰 느리게 달리고, 도시 한복판으로 접어들면 기어갑니다. 수많은 신호등에 걸립니다. 다른 자동차에 밀립니다. 고속도로에서 펄펄 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 밥 짓는 연기여 / 살 타는 냄새가 난다 ..  (저녁 꽃밭)


  시골에는 신호등이 있을 일이 없습니다. 시골에는 건널목이 있을 일이 없습니다. 시골에도 자동차 흐르지만, 신호등을 놓아 자동차를 세워야 할 일이 없습니다. 시골에도 자동차 오가지만, 자동차가 멈추기를 기다려 길을 가로질러야 하지 않습니다.


  두 줄로 난 찻길로도 넉넉한 시골입니다. 두 줄 아닌 한 줄만 있어도 한갓진 시골입니다. 이와 달리, 도시에서는 넉 줄로도 모자라고 여덟 줄로도 빠듯합니다. 열두 줄이 되거나 열여섯 줄이 되더라도 밀리고 또 밀립니다.


  이 많은 자동차는 모두 어디에서 터져나왔을까요. 이 많은 자동차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자동차는 사람들 삶에 얼마나 이바지를 할까요. 자동차가 없는 삶은 생각해 볼 수조차 없는가요.


  자동차가 달리지 않는 조용한 시골길에서 들내음을 맡습니다. 들풀을 바라봅니다. 들꽃을 쓰다듬습니다. 들바람을 마시고 들빛을 품에 안습니다.


  자동차가 달리는 시끄러운 도시 찻길에서 배기가스를 맡습니다. 부웅부웅 갑자기 내 앞과 뒤를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넋을 잃습니다.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자전거가 뒤따릅니다. 이내 뒤에서 다른 자동차가 빵빵거립니다. 사람들은 자동차 얼른 지나가라고 길 한쪽에 붙습니다. 사람들은 자동차 먼저 지나가라며 걸음을 멈춥니다.


  자동차는 사람들 지나가라고 스스로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 자동차는 사람들이 길 한복판을 걷도록 하지 않습니다. 자동차에 탄 사람들은 앞만 바라봅니다. 자동차에서는 옆도 뒤도 바라볼 수 없으며, 자동차에서는 하늘도 땅도 쳐다보지 못합니다.


.. 창호지에 바른 국화, / 그늘과 빛이 드나드는 종이 속에 / 덧댄 작은 유리, 말없이 바스러지는 生, / 마당의 해당화와 길과 윗집 / 대나무 꼭대기에서 기우는 햇살 ..  (생일)


  어른들은 자동차 모양을 한 장난감을 만듭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합니다. 아이들은 장난감 자동차를 갖고 놉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모는 자동차에 타며 신나게 뛰고 까르르 웃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자동차를 보여주고, 자동차를 물려줍니다.


  아이들은 어릴 적에는 자동차에 얻어타면서 웃고 떠들고 놀았지만,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자동차 손잡이를 손에 쥐는 나이에 이르면, 얼굴에 웃음이 가시고 입에서 노래가 사라집니다. 자동차 손잡이를 손에 쥔 어른 가운데 맑게 웃으며 느긋하게 길을 달리는 사람 드뭅니다. 자동차 손잡이를 꽉 움켜쥔 어른 가운데 환하게 노래하며 즐겁게 천천히 길을 달리는 사람 적습니다.


.. 홍은동 295번지와 연희동의 교차로 한 귀퉁이의 연희지하차도 위는 풀밭으로 되어 있다 풀밭 다리를 건너면 아파트가 보이고, 다리 아래 굴로 차들이 빠르게 빠져나가지만, 여기서는 시간이 방아깨비 발처럼 끄덕끄덕 제자리를 맴돌 뿐 흘러가지 않는다 ..  (구관조)


  박형준 님 시집 《춤》(창비,2005)을 읽습니다. 춤을 추는 삶이기에 춤을 노래하는 시를 쓰셨나 하고 고개를 갸웃해 봅니다. 춤을 추고픈 삶이기에 춤을 이야기하려는 시를 썼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춤은 어디에서 출 수 있을까요. 술병이 뒹구는 어두운 무대에서 춤을 추는가요. 커다랗게 지은 공연장이나 경기장 무대에서 춤을 추는가요. 텔레비전에 내보내려고 촬영기 그득 세운 방송국 무대에서 춤을 추는가요.


  춤은 왜 추는가요. 남한테 보여주려고 춤을 추는가요. 돈을 벌려고 춤을 추는가요. 예술이 되거나 문화가 되려고 춤을 추는가요.


  춤이란 무엇인가요. 춤은 누가 만들었는가요. 춤은 언제 추는가요. 춤은 누가 어디에서 누구하고 추는가요.


.. 한밤에 쌀 씻으러 / 포대를 열자 / 나방이 날아오른다 ..  (나방)


  먼먼 옛날부터 밥을 짓던 사람들이 노래하던 사람들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아기한테 젖을 물리던 사람들이 춤추던 사람들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흙을 만지며 씨앗을 심던 사람들이 노래를 짓고 춤을 빚던 사람들입니다.


  흙을 노래하고 춤으로 기쁨을 나타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을 노래하고 춤으로 사랑을 그렸습니다. 비와 바람과 꽃과 나무를 노래하고 춤으로 삶을 기렸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춤은 그저 무대에서만 춤이 됩니다. 아이들한테 춤을 보여주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춤을 물려주는 어른은 없습니다. 몇몇 인간문화재가 추는 춤은 있으나, 몇몇 전수자가 배우는 춤은 있으나, 고장마다 다르고 고을마다 다르며 마을마다 다른 춤은 없습니다. 집집마다 다르며, 어른마다 달리 추던 춤은 없습니다.


.. 어머니는 이제 팔순이 되셨다 / 어느날 새벽에 소녀처럼 들떠서 전화를 하셨다 / 사흘이 지나 활짝 핀 해당화 옆에서 / 웃고 있는 어머니 사진이 도착했다 ..  (멍)


  춤이 없는 삶이란 장난스러운 삶입니다. 노래가 없는 삶이란 장난스러운 사랑입니다. 이야기가 없는 삶이란 장난스러운 빛입니다.


  스스로 우러나와 춤을 추고, 스스로 샘솟아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피어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춤꾼한테서 배우는 춤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면서 흐르는 춤입니다. 노래꾼한테서 배우는 노래가 아니라, 스스로 사랑하면서 흐르는 노래입니다. 이야기꾼한테서 배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꿈꾸면서 흐르는 이야기입니다.


  이 나라에는 어떤 춤이 있을까요. 이 나라에는 어떤 노래가, 어떤 이야기가, 어떤 시가, 어떤 문학이, 어떤 책이 있을까요.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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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해만에 읽는 책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책 《사라진 나라》를 열 해만에 읽는다. 이 책을 처음 장만한 열 해 앞서는 두근두근 설렜다. 이야 이런 책을 쓰셨네, 이런 책이 한국말로 나오는구나,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쪽 읽다가 덮었다. 어쩐지 내 ‘오늘 넋’으로는 이 이야기를 가슴으로 포옥 안기 어렵겠다고 느꼈다. 이리하여 열 해 동안 묵힌다. 지난 열 해 동안 책상맡에 늘 이 책을 두면서 ‘이야기 읽어낼 만한 넋’으로 거듭날 때까지 기다린다.


  시골집에서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리는 틈틈이 몇 쪽씩 읽는다. 밥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몇 줄 읽는다. 볶음을 하다가 두어 줄 읽는다. 국을 끓이고 무와 오이를 썬 뒤 손에 물기가 가시면 서너 줄 읽는다. 문득 깨닫는다. 린드그렌 님이 《사라진 나라》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롯이 ‘시골빛’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누린 아름다운 시골빛이 이녁 가슴으로 촉촉히 젖어들었다는 이야기가 그득 흐른다.


  조금씩 읽고 읽었더니 어느새 끝이 보인다. 몇 줄씩 읽고 읽다가 드디어 막바지에 이른다. 책을 새삼스레 덮고 한참 생각에 잠긴다. 책이름을 왜 “사라진 나라”로 붙였을까. 스웨덴에서 처음 낸 책에 붙은 이름이었을까, 한국말로 옮기며 붙은 이름이었을까. 스웨덴에서도 린드그렌 님이 어릴 적 누리던 아름다운 시골빛은 그예 사라지고 없는 모습이 되었을까. 지구별은 이제 온통 문명과 물질이 넘쳐흐르면서 시골빛은 몽땅 쫓겨나고 말았을까.


  사라진 나라, 사라진 숲, 사라진 별, 사라진 해, 사라진 바람, 사라진 풀, 사라진 나무, 사라진 사랑, 사라진 사람, …… 하나하나 되씹는다. 윤동주 님이 읊은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이름들을 곰곰이 되짚는다. 사라진 것만큼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오늘날이라 할 텐데, 오늘날 이 땅 이 나라에서 넘치는 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얼마나 사랑스러운 것들이 곳곳에 있을까. 얼마나 즐거운 노래가 이 나라에 흐를까.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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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빛

 


  도시는 나무를 밀어 없앤다. 도시는 시멘트집을 짓고 아스팔트길을 닦는다. 쇠붙이와 시멘트를 써서 전봇대를 세우고, 전깃줄이 길고 어지러이 늘어지며, 쇳덩이로 만든 자동차가 구른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건이 그득하며, 청소 일꾼이 쉴새없이 돌아다녀도 쓰레기를 미처 치우지 못한다. 군데군데 나무를 심기는 하지만, 도시에서 나무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몹시 드물다. 아니,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나무를 볼 겨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높다란 건물에 가리고, 자동차에 치인다. 자가용을 몰거나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는 동안 나무를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없다 할 만하다.


  시골에서는 흙집을 시멘트집으로 바꾼다. 흙과 짚으로 얹던 지붕을 슬레트(석면)로 갈아치우지 않으면 독재정권과 읍·면 공무원과 이장들이 닦달했으며, 이제는 양철조각이나 시멘트기와로 바꾸라고 새삼스레 들볶는다. 나무가 거추장스러워 뽑거나 베어 찻길을 닦고, 흙바닥 고샅길에 시멘트를 덮는다. 흙바닥 마당도 시멘트로 덮고, 도시에서 놀러올 관광객을 기다리며 숲과 멧골에 새 찻길 낸다며 나무를 잔뜩 베어 넘긴다. 탱자나무와 찔레나무로 이루어지던, 또 싸리나무로 이루어지던 울타리는 시멘트블록담에 밀린다. 텃밭도 무논도 모두 농약투성이 된다. 논둑도 밭둑도 농약바람을 맞으며 모조리 타죽는다. 개구리도 풀벌레도 멧새도 농약을 마시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춘다.


  나무가 있기에 종이를 쓰지만, 종이를 쓰는 어느 누구도 나무를 떠올리지 않는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기에 광고종이도 책도 참고서도 교과서도 태어나지만, 종이로 된 광고전단이나 책을 손에 쥔 이들 가운데 나무를 헤아리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한국에서 자라던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었을까? 이웃나라 숲사람 삶터를 밀며 나무를 베었기에 한국사람이 종이를 쓰고 책을 펴낼 수 있는 줄 얼마나 깨달을까? 도시사람이 숨을 쉴 수 있는 까닭은 도시에 공기정화기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도시가 커지고 늘어나더라도, 아직 도시를 크게 품고 껴안으며 어루만질 만큼 드넓은 숲과 들과 멧자락과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일자리 찾고 대학교 다니며 돈을 벌더라도, 시골이 있어야 밥을 먹고 물을 들이켜며 바람을 마신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뒤 다시 도시에서 아이를 낳더라도, 시골이 있어야 삶과 사랑과 꿈을 일굴 수 있다. 그런데, 시골은 시골스러움을 잃는다. 시골에서 풀과 나무와 꽃을 힘을 잃는다. 빛은 어디에 있을까. 빛은 어디로 갔을까. 빛은 어떤 모습과 무늬일까.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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