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이 32. 마을길에서 (2013.11.7.)

 


  마을길 거닐면서 논다. 시골아이는 시골마을 천천히 걸어 한 바퀴 돌면서 놀이가 된다. 빈들에서 흐르는 바람을 마신다. 논둑과 밭둑에서 자라는 억새가 흩날리는 노래를 듣는다. 고즈넉하게 내리쬐는 늦가을 햇살을 먹는다. 아이들더러 비키라며 빵빵거리는 얄궂은 어른들 자동차한테 안 시달릴 수 있는 호젓한 시골마을 조그마한 고샅길은 아주 즐거운 놀이터가 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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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쌀 씻고 설거지

 


  한밤에 보일러를 돌린다. 우리 집 보일러는 땅밑에서 흐르는 물을 끌어올려 돌아가기에, 보일러를 돌리면서 지난저녁 남긴 그릇들을 설거지한다. 물이 잘 돌도록 틀어서 쓴다.


  저녁을 먹고 나서 모든 그릇을 설거지할 수 있지만, 일부러 얼마쯤 남긴다. 왜냐하면 밤에 아이들 쉬를 누이면서, 또는 한밤이나 새벽에 보일러 돌릴 무렵, 물이 잘 흐르도록 하려면 물꼭지를 틀어 땅밑에서 물을 뽑아올려 주어야 하니까. 이렇게 하자면 조금 번거롭기는 한데, 어차피 밤에 일어나서 아이들 쉬를 누여야 하고, 나도 내 일을 밤이나 새벽에 하니까, 다 괜찮다. 아이들 아침에 먹일 밥도 한밤이나 새벽에 미리 씻어서 불려야 하니까, 어차피 이렇게 해야 한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까지 안 깨고 잔다면 한결 개운할까? 아마 그러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밤에 잠을 깨어 아이들 쉬를 누인 뒤, 오줌그릇 들고 마당으로 내려와서 한밤에 눈부시도록 밝은 별빛과 달빛 올려다보기를 즐긴다. 아이들이 밤오줌을 누어 주기 때문에, 나로서는 아주 스스럼없이 밤빛을 실컷 누린다.


  실컷 누린 밤빛을 마음으로 담아 부엌으로 가서 쌀을 씻는다. 설거지를 마무리짓는다. 새로 뜬 물을 유리병에 담는다. 유리병에 담아 이틀쯤 묵힌 물을 달콤하게 마신다.


  예부터 한집 살림 맡은 어머니는 새벽 세 시 반 즈음 조용히 일어나 맑은 물 한 그릇 길어서 부엌님한테 올렸다고 한다. 내 밤설거지도 이와 같다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시골집조차 부엌님이나 뒷간님이나 집님이나 모두 사라졌다고 할 만하지만, 그래도 우리 보금자리 돌보는 넋이 가까이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음을 담아 물 한 그릇 올리고, 나도 이 물을 함께 마신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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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18] 전기읽기
― 아파트와 청와대 옆에 발전소를

 


  전기란, 도시사람 도시살이를 지키도록 하는 물질문명 밑바탕입니다. 도시에 몰려들어 살아가는 사람이 워낙 많기에, 이 도시를 지키도록 하려면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써야 합니다. 아파트와 건물에서 전기를 쓰고, 지하철에서 전기를 쓰며, 지하상가에서 전기를 씁니다. 그리고, 도시사람 쓰는 물건을 공장에서 척척 찍어낼 뿐 아니라, 도시 물질문명 지키도록 물건을 이웃나라와 사고팔려면 또 전기를 끝없이 만들어서 써야 합니다.


  도시가 서기 때문에 커다란 발전소를 지어야 합니다. 도시를 자꾸 늘리려 하기 때문에 커다란 발전소는 자꾸 늘어야 합니다. 아파트를 더 세우고 고속도로를 더 닦으며 공장을 더 돌려야 하니까 발전소를 끝없이 늘려야 합니다.


  발전소는 도시 언저리에 안 짓습니다. 발전소 매연과 공해와 전자파가 워낙 사람한테 안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애써 도시로 끌어모았는데, ‘도시 주거 환경’이 나쁘다면 사람들이 떼로 일어나서 손가락질을 할 테지요. 그러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달래거나 다독일 뜻으로 도시에 발전소를 안 지어요. 도시에 있던 공장도 도시 바깥으로 내보내며, 도시사람이 버리는 쓰레기를 치울 곳이랑 도시사람 쓰는 석유를 다루는 공장도 몽땅 도시하고는 아주 먼 시골에 짓습니다.


  도시사람이건 시골사람이건 밥을 먹습니다. 밥은 시골에서 얻습니다. 쌀과 다른 곡식을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미국에서 사다 먹는다 하더라도, 그 나라 시골이 있어야 흙을 일구어 쌀과 여러 곡식을 얻어요. 시골이 없다면 능금도 복숭아도 배도 포도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도시를 키우려고 시골을 죽입니다. 도시를 살린다며 시골을 망가뜨리거나 더럽힙니다. 도시 물질문명을 지킨다면서 도시에 발전소를 안 짓고 도시에 있던 공장을 시골로 보내는 일이란, 도시사람 스스로 나쁜 밥이랑 농약·비료·항생제·화학첨가물 그득한 가공식품만 먹겠다는 뜻이 되고 맙니다. 도시사람 쓸 전기를 시골에 발전소 지어서 얻으면 얻을수록, 시골에 우람한 송전탑 서면 설수록, 시골을 망가뜨리는 꼴이 되고, 시골 숲과 들과 보금자리를 어지럽히는 짓이 되어, 시골과 함께 도시가 흔들리거나 무너질밖에 없습니다.


  핵발전소뿐 아니라 화력발전소 모두 도시 한복판에 서야 옳습니다. 공장과 쓰레기매립지나 하수처리장 모두 도시 한복판에 놓아야 옳습니다. 식품공장과 맥주공장과 자동차공장과 석유화학공장과 유리공장과 제지공장과 반도체공장 모두 도시 한복판에 올려야 옳습니다. 도시사람은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과 폐수와 방사능과 전자파가 어떠한가를 제대로 모릅니다. 제대로 모르니, 스스로 삶으로 안 겪으니, 하나도 깨닫지 못합니다. 물꼭지 틀면 물 콸콸 쓸 수 있는데, 수도물 이으려고 시골 여러 마을 물에 잠기도록 하고 너른 숲 망가뜨리는 짓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수도물이란 문명이 아니라 ‘문명 파괴’요 ‘환경 재난’입니다. 전기란 문화가 아니라 ‘문명 몰살’이자 ‘환경 재앙’입니다.


  전기를 쓴다 하더라도, 왜 집집마다 집열판 두어 매연도 공해도 없이 전기를 스스로 만들어 쓰도록 하지 않을까요? 전기를 쓰려면 가장 깨끗하고 가장 올바르며 가장 아름다운 전기를 저마다 스스로 만들어서 써야 하지 않나요?


  발전소 짓는 돈, 한국전력이라는 커다란 회사를 꾸리는 돈, 전봇대와 송전탑 세우는 돈, 전깃줄 끝없이 잇는 돈, 이런 돈 저런 돈 모두 따져 보셔요. 도시사람이 ‘발전소를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에 짓느라 들이는 돈’을 헤아려 보셔요. 커다란 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뽑은 뒤에 우람한 송전탑과 전깃줄을 잇고 잇느라 드는 돈을 가누어 보셔요.


  온 나라 모든 살림집에 집열판 붙여서 전기 스스로 빚어서 쓰도록 하는 데에 드는 돈이 오히려 아주 적게 듭니다. 값조차 쌉니다. 게다가 공해도 매연도 없습니다. 전깃줄이나 전봇대 어지러이 서지 않을 뿐 아니라, 송전탑 걱정조차 없습니다. 발전소를 돌린다며 우라늄을 만지거나 석유나 석탄을 땔 걱정마저 없습니다. 발전소 폐기물조차 하나 없지요. 그러나, 공공기관이라 일컫는 정부 조직이나 재벌회사는 돈벌이(세금)를 하고자, 사람들 여느 살림집에 집열판 붙이는 길을 걷지 않습니다. 사람들 또한 전기를 어떻게 써야 즐겁고 아름다우며 올바를까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면 아파트 옆에 지어야 합니다. 청와대 옆에도 발전소를 지어야 합니다. 안전과 환경에 걱정이 없다면 마땅히 아파트와 청와대 옆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나란히 지을 노릇입니다. 핵폐기물처리장은 미대사관 옆에 지으면 됩니다. 안전하고 환경을 더럽히지 않는다 하니까요.


  더 곰곰이 살피면, 사람들 스스로 흙을 잊기에 전기를 아무렇게나 씁니다. 스스로 흙하고 동떨어진 채 살면서, 밥과 옷과 집이 모두 흙에서 비롯하는 줄 잊었으니, 자꾸 쓰레기를 낳는 물질문명에 기댑니다. 물질문명을 누릴 적에도 아름답게 즐기며 깨끗하게 돌보는 길하고는 멀어집니다. 흙에서 나온 것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석유와 석탄도 흙에서 나온 그대로 온갖 공해와 매연을 이 땅에 드리웁니다. 흙에서 얻은 쌀과 곡식과 열매는 사람들 몸을 거쳐 똥오줌 되어 다시 흙을 살리는 거름 구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를 몽땅 생활쓰레기로 다룹니다.


  흙에서 나온 그대로 흙으로 갑니다. 흙에서 뽑아낸 쇠붙이로 전쟁무기 만들면, 이 땅에는 전쟁이 판칩니다. 흙에서 얻은 나무로 종이를 만들어 책을 엮으면, 이 책에는 나무내음이 감돌면서 사람들한테 아름다운 빛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들려줍니다. 흙에서 우라늄 캐내면 엄청난 방사능이 지구별 곳곳에 퍼지지요. 흙에서 다이아몬드를 캐내거나 금을 캐내니, 사람들 눈알이 빙빙 돌아 버렸습니다. 흙에서 무엇을 캐내렵니까. 흙에서 캐낸 것을 어떻게 쓰며 흙에 무엇을 돌려주렵니까. ‘밀양 송전탑’을 말하기 앞서 ‘우리 집 전기’부터 생각할 수 있어야, 무엇보다 ‘내 손으로 만질 흙’을 살필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입니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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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들어온 책

 


  모든 책은 마음으로 들어옵니다.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은 책은 삶으로 들어오지 못한 책입니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일 때에 사랑씨앗 한 톨 두 톨 드리우면서 내 마음밭에서 사랑나무가 자라요. 사랑나무가 자랄 적에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사랑말 되고, 내 손으로 쓰는 글은 사랑글 되며, 내 목청으로 부르는 노래는 사랑노래 됩니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 하나 곱게 건사할 수 있다면, 밥을 지으며 사랑밥 나눕니다. 집을 돌보며 사랑집 가꿉니다. 옷을 기우며 사랑옷 입습니다. 일은 사랑일 되고, 놀이는 사랑놀이 될 테지요. 마실은 사랑마실이 될 테며, 이야기는 언제나 사랑이야기 되겠지요.


  책을 마음으로 담지 않는다면, 마음밭에 사랑씨앗 못 뿌립니다. 사랑씨앗 못 뿌렸으니 마음밭에서 사랑나무 자랄 수 없고, 다른 나무도 자랄 수 없어요.


  책을 읽는다고 한다면, 스스로 마음밭에 씨앗을 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은 길이 아닙니다. 책은 나 스스로 내 삶길 열도록 북돋우는 길동무입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밭에 스스로 뿌릴 씨앗이 무엇인가 하고 알아차립니다. 책을 읽는 사이 내 삶길을 어떻게 다스릴 적에 아름다운가 하고 깯다습니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을 차근차근 아끼고 사랑하면 그 책이 누구 손으로 돌아가든 아름답게 읽힐 수 있으리라 느껴요. 곧, 내가 읽은 책은 내 삶을 살찌우는 밑거름 되고, 내가 읽은 책으로 내 삶을 아름답게 다스리면, 이 삶에서 흐르는 빛이 둘레로 찬찬히 퍼져 이웃들이 저마다 이녁 삶을 아름답게 다스리도록 돕습니다.


  내가 읽은 아름다운 책을 이웃한테 건네주어도 됩니다. 헌책방이라는 곳 있어, 내가 읽은 책 가만히 내놓으면, 누군가 이 헌책방으로 찾아와서 내가 내놓은 책을 기쁘게 장만하겠지요. 또는, 내가 읽은 책에서 얻은 아름다운 빛으로 내 삶을 가꿀 수 있으면, 이 삶빛은 언제라도 둘레에 환하게 드리울 테니, 내 이웃과 동무는 내 빛을 나누어 받으면서 즐겁게 삶읽기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은 마음에서 빛나 따사로운 바람이 됩니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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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을 읽으면서

 


  밤에 잠들며 맞이하는 꿈이란 무엇인가 하고 며칠 앞서부터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오늘 꾼 꿈을 새삼스레 돌아보면서 더 생각해 본다. 오늘 꿈에서 나는 어느 전쟁터에서 전쟁 손길이 안 닿는 곳으로 떠나려 하는 어느 다섯 식구 집안에서 막내로 나왔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나, 아니 나쁜 일을 안 하고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나, 평화로운 나라에 전쟁을 몰고 온 다른 나라에서는 ‘평화를 외치고 전쟁을 꾸짖는 내 어버이’ 같은 사람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갈기갈기 찢어죽인다. 게다가 우리 식구들 미처 집을 떠나지 못했는데 다른 나라 군인들이 우리 마을로 들어오고 말았다.


  내 꿈은 여기에서 끝났다. 작은아이가 쉬 마렵다며 끙끙대는 소리에 잠을 깨어 쉬를 누인다. 다시 누워 보았으나 이 꿈이 이어지지 않는다. 이 꿈은 어디에서 왔을까. 내가 앞으로 맞이할 삶이 나타난 꿈인가, 아니면 나와 같은 삶을 잇는 지구별 다른 어느 곳에서 곧 벌어지거나 이제 막 벌어지는 모습인가, 아니면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나 살기 앞서 다른 어느 나라에서 다른 목숨으로 살다가 겪은 모습인가.


  어느 모로 헤아린다면, 나는 ‘꿈속에 나온 내 어버이와 형과 누나’와 함께 다른 나라 군인한테 붙잡혀 나란히 죽은 뒤에 이 나라에 다시 태어났는지 모른다. 이렇게 죽고 나서 다른 어느 곳에서 다른 삶으로 태어났다가,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났을 수 있다. 이리하여 내 꿈에 내 앞삶이 나타나고 내 뒷삶도 나타날 수 있으리라 느낀다.


  잠이 깰 무렵, “희망이 없으니 전쟁을 생각한다”라는 말이 내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꿈에 나온 우리 다섯 식구를 붙잡아 죽인 군인’들은 누가 시키는 대로 우리 다섯 식구를 붙잡아 죽인다고 말했다. 어디쯤이었을까. 폴란드쯤이었을까. 또는 칠레쯤이었을까. 내가 꿈속에서 죽은 그 나라 그곳은.

  꿈을 깬 뒤, 꿈속에서 나한테 찾아온 “희망이 없으니 전쟁을 생각한다”라는 말을 더 돌아본다. 전쟁을 생각하더라도 나아질 일이 없다. 누군가를 잡아서 죽인다 한들 어둠이 더 커지지 않고, 빛을 잠재우지 못한다. 그러니까, 전쟁을 일으킨대서 나아지는 삶이란 없다. 스스로 희망을 싹둑 잘라서 버리려 하더라도 희망은 없어지지 않는다. ‘꿈속에서 함께 죽은 우리 다섯 식구’는 가슴에 빛을 안고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나는 이곳으로 왔다면, 다른 네 식구는 어디로 갔을까. 저마다 어느 곳으로 가서 어떤 새 삶, 새 빛, 새 이야기를 일굴까. ‘내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과 누나’로 함께 살던 꿈속 식구들은 오늘 이곳에서 내 동무로 함께 태어났을 수 있고, 내 동생으로, 어쩌면 내 아이로 함께 태어나 살아갈 수 있다. 모르는 일이리라. ‘꿈속에서 우리 식구를 죽인 군인들’도 곧 전쟁터에서 죽고 말아, 내 동무나 이웃으로, 어쩌면 내 아이로 함께 테어나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일은 하나도 모른다 할 만하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군인과 정치꾼은 무언가 깨달을까. 죽으면서 몸을 잃고 넋이 빠져나가는 그즈음 무언가 알아차릴까. 전쟁으로는 오직 전쟁만 찾아올 뿐이며, 평화로는 늘 평화를 누리는 줄 느낄까.


  어둠을 읽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어둠을 맞이한다. 빛을 읽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빛을 마주한다. 살아가고 싶은 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사랑을 하고 싶으면 삶과 넋과 말 모두 사랑이요,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면 삶과 넋과 말 모두 사랑하고 동떨어진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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