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이 33. 호미돌이 되어 (2013.11.23.)

 


  호미를 들고 널판 콕콕 찍던 작은아이가 아버지 눈에 뜨인다. 어라, 아버지가 나를 지켜보았네? 멋쩍게 웃고는 호미를 어깨 위로 올리며 가만히 섰다가 슬금슬금 흙땅으로 걸음을 옮긴다. 늘 파며 노는 마당 한쪽을 호미로 콕콕 찍는다. 그래그래, 호미로 나무를 찍지는 말자. 호미로 널판이나 평상을 찍지는 말자. 호미는 풀을 콕콕 쪼아서 잘게 부수는 연장이란다. 흙을 파야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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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25 11:23   좋아요 0 | URL
아유~^^ 순하고 예쁜 호미돌이 보라!
치마돌이 보라! ㅎㅎㅎ

파란놀 2013-11-25 11:47   좋아요 0 | URL
누나 옷을 물려받으니 치마돌이가 됩니다 ^^;;
 

책아이 73. 2013.11.16.ㄴ

 


  하루에도 옷을 너덧 차례 갈아입으면서 노는 큰아이는 단추를 잘 꿰고 이것저것 혼자 잘 할 뿐 아니라, 옷도 곱게 잘 갠다. 이와 달리 갈아입히지 않으면 그대로 며칠 내처 입는 작은아이는 단추를 못 꿰고 이것저것 혼자 못할 뿐 아니라, 옷도 곱게 못 갠다. 두 아이가 반반씩 한다고 예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마다 다른 삶빛이니까. 큰아이가 문득 치마저고리로 갈아입은 다음 마룻바닥에 엎드려 책을 펼치면, 이 옷빛과 눈깇이 참 곱구나 싶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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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바라보는 눈길

 


  책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윽하다. 삶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윽하니까. 책을 바라보는 눈길이 사랑스럽다. 삶을 바라보는 눈길이 사랑스러우니까. 누군가 마음에 품으며 좋아하는 꿈을 꾸는 사람은 책을 마주할 적에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흐르는 따사로운 꿈’과 같은 눈길이 된다. 어딘가 아프거나 힘들거나 슬픈 사람은 책을 마주할 적에도 아프거나 힘들거나 슬픈 빛이 시나브로 나타난다.


  느긋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은 바쁘게 책을 읽거나 책하고 등진다.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넉넉하게 책을 읽는다. 빠듯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빠듯하게 책을 읽거나 책하고 등돌린다.


  삶을 가꾸는 몸짓에 따라 책을 돌보는 몸짓이 흐른다. 삶을 다스리는 손길에 따라 책을 보듬는 손길이 흐른다. 어떤 마음으로 책을 만나는 우리들일까. 어떤 사랑으로 책을 읽으려는 우리들인가. 어떤 꿈을 키우며 책을 사귀는 우리들이려나.


  마음이 맞는 사람과 책방마실을 하며 같은 책을 나란히 들여다보면 어떤 느낌일까. 아이와 함께 책방마실을 하며 서로 같은 책을 오순도순 들여다보면 어떤 느낌일까.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한테 물려줄 책을 생각하는 어버이는 어떤 느낌일까. 고향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아이를 떠올리며 선물로 책 하나 띄우고 싶은 어버이는 어떤 느낌일까.


  주머니를 털어 책을 장만한다 하더라도 마음에 담을 때에 책이 된다. 튼튼하고 좋은 나무로 짠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하더라도 가슴으로 읽고 새길 때에 책이 된다. 고운 종이로 싸서 동무한테 선물한다 하더라도 사랑을 담뿍 실어 건넬 때에 책이 된다. 봄이 한껏 무르익을 무렵 실컷 누릴 수 있는 들딸기를 살살 훑듯이 책을 만진다. 찔레꽃 잎사귀를 살살 쓰다듬듯이 책을 만진다. 가을바람에 톡톡 떨어진 가랑잎을 사며시 주워 살살 어루만지듯이 책을 만진다. 배고픈 아이를 불러 밥상맡에 앉히고는 김 모락모락 나는 밥그릇 내밀고는 머리카락 살살 쓸어넘기듯이 책을 만진다. 복복 비벼서 빨래한 옷가지를 죽죽 물기를 짜고는 탁탁 털어서 옷걸이에 살살 꿰어 널듯이 책을 만진다. 삶으로 스며드는 책이 어여쁘다. 4346.11.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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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으로 빛 한 줄기

 


  책방마실을 하다가 가끔 책을 덮곤 한다. 책방으로 햇살 한 줄기 들어오는 모습을 느끼면 으레 빛줄기 바라보느라 한참 책에서 눈을 뗀다. 왜 그럴까. 처음 헌책방으로 마실을 가던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책방으로 스며드는 햇살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책방이든 도서관이든 햇빛과 책 사이를 떨어뜨리려고 애쓴다. 책꽂이에 멀쩡히 두는 책이라 하더라도 햇빛에 곧 바랜다. 햇빛뿐 아니라 형광등 불빛에도 책이 이내 바랜다. 책은 빛을 그리 안 좋아한다. 책은 그늘진 자리를 좋아하고, 책을 읽기에도 그늘진 자리가 알맞다. 누런 만화종이라 하더라도 햇빛이 밝게 비추는 곳에서는 그만 눈이 부셔서 책종이 넘기기 수월하지 않다. 그런데 나는 햇살을 좋아하고 햇빛이 눈부신 데에서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책을 읽는다. 시골집에서도 햇볕 따사롭게 비추는 평상에 앉거나 모로 누워서 책을 펼치곤 한다.


  햇살이 나를 부르는 셈일까. 내가 햇살을 부르는 셈일까. 한참 읽던 책을 덮고는 한참 햇살을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나는 참 햇볕을 좋아하고, 햇살을 즐기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햇볕이 들어오고 햇살이 비추는 자리를 즐기며, 이렇게 햇빛을 느끼는 곳에서 내 마음빛이 부푼다고 느끼는구나 싶다.


  빛이 있어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일까. 빛이 있어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일까. 마음속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샘솟더라도 아이들 재우는 잠자리에서는 글을 못 쓴다. 불을 다 끄고 누웠는데 어찌 글을 쓰는가. 이튿날 일어나서 써야지 하고 생각하면, 이튿날 아침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무언가 쓰자’고 품은 생각마저 잊기 일쑤이다. 깜깜한 밤이라 하더라도 불을 밝히고 빈 종이에 끄적여 두어야 한다. 재미있다면, 불을 켜고 빈 종이에 끄적인 이야기는, 이튿날 아침에 굳이 종이를 들추지 않더라도 어떤 이야기가 마음속에서 샘솟았는지 환하게 떠오른다. 종이에 적바림하지 않은 이야기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다시 떠오르지 않는데.


  빛이 있어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면, 빛이 있어 빨래도 하고 밥도 짓는다. 빛이 있어 온누리에 푸른 숨결 감돌고, 빛이 있기에 풀을 뜯고 나무를 안으며 꽃을 노래한다. 빛이 있으니 사랑이 있다. 빛이 있기에 꿈이 있다. 빛이 있어 춤노래 흐드러지고, 빛이 있는 터라 품앗이와 두레로 마을잔치 이룬다.


  책방으로 빛 한 줄기 흐른다. 아침빛일까 저녁빛일까. 이 빛은 어떤 바람을 이끌고 책방으로 깃들까. 이 빛은 책방으로 찾아온 사람들한테 어떤 책내음 알려줄까. 이 빛은 책방지기 가슴에 어떤 무늬로 스며들까. 4346.11.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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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11-25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일요일 아침에 햇빛 쏟아지는 도서관 창가에서 책을 읽다가 새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그 때가 자꾸 떠오릅니다. 이 글을 읽으니 또 생각나네요^^

파란놀 2013-11-26 04:31   좋아요 0 | URL
햇빛 쏟아지는 새들 노랫소리란
아주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느껴요~
 

오늘 하루 갈무리한 여러 풀이글과 보탬글 가운데 "즐겁다·기쁘다·흐뭇하다" 이 세 가지 낱말 이야기를 맨 처음으로 올립니다. 이웃님들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실는지 궁금합니다.

 

..

 

즐겁다
  “마음이 가벼우면서 밝고 좋다”를 뜻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좋은 느낌이 바깥으로 안 드러나기도 합니다.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거나 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을 줄 알기에, 이러한 때에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기쁘다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거나 되기에, 또는 어떤 일이 생기거나 어떤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좋다”를 뜻해요. 마음이 좋은 느낌이 바깥으로 잘 드러나 다른 사람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흐뭇하다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거나 되기도 하고, 마음이 가벼우면서 밝기도 해서, 그저 마음이 느긋하면서 꽉 차도록 좋고, 모자라거나 아쉽지 않다”를 뜻합니다. 좋게 바라보는 마음이요 몸가짐입니다. 때로는 “자랑스럽다고 느낀다”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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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25 11:37   좋아요 0 | URL
다 알맞고 좋은 풀이글 같습니다~
저는 '기쁘다'를 어떤 상태가 스스로 마음에 빛으로 꽉 차올라 환해지는 경우에 그렇고
'흐믓하다'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흐믓한 경우는, 자신의 경우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일에서 일어나는 경우에
더욱 넉넉하고 마음이 참 좋아져서 그런가 봅니다~^^;;

파란놀 2013-11-25 11:48   좋아요 0 | URL
기쁘다는 스스로 마음에서 올라오고
흐뭇하다는 다른 사람과 맺는 삶에서 올라오는 느낌이라 할 만해요.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