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노래 4. 빨래터 치웠어

 


빨래터 치웠어.
빗자루 수세미
다슬기 물이끼
셋이 함께 가서
물장구 튀기고
흠뻑 젖었어요.
새옷 갈아입고
밥도 먹으면서
글도 곱게 써요.

 


2013.12.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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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09] 표절

 


  사랑이 있어 나누고
  꿈이 있어 베풀지만
  힘이 있어 빼앗는다.

 


  힘이 있는 이가 빼앗습니다. 다만, 힘은 있되 사랑은 없어 쓸쓸한 이들이 빼앗습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힘이 있어도 빼앗지 않습니다. 사랑과 힘이 함께 있는 이들은 즐겁게 나눕니다. 사랑과 힘에다가 꿈이 있는 사람은 스스럼없이 베풉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한테는 힘은 있을는지 몰라도 사랑이 없습니다. 남을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짓밟는 이들도 힘은 있되 사랑이나 꿈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애써 지은 작품을 표절하는 쪽은 언제나 ‘권력자’입니다. 힘이 여린 쪽은 표절을 하지 않아요. 아니, 할 까닭도 없고 할 힘조차 없어요. 남을 얕보니까 표절을 해요. 남을 나처럼 아끼지 않으니 표절을 하지요. 얼마나 슬픈 넋일까 싶어요. 4347.2.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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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75) SF적 1 : 너무 SF적이다

 

정해진 시간밖에 아기를 못 보니 아기가 불편해 하든 말든 간호사가 통유리 앞에 들고 있었던 겁니다. 막상 경험해 보니까 ‘이건 너무 SF적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동섭-아빠가 되었습니다》(나무수,2011) 29쪽 

 

 이건 너무 SF적이다
→ 이건 너무 공상과학소설 같다


  병원에서 아기를 다루는 모습이 “공상과학소설 같다”는 말은 무슨 뜻이 될까 궁금합니다. 사전에 나오는 말풀이로 보면, ‘공상과학소설’이란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벗어난 일을 과학적으로 가상하여 그린 소설”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환상(幻想)’이나 ‘판타지(fantasy)’쯤 될까요? 우리 삶에서 일어날 만하지 않은 모습을 꾸며서 보여주는 모습 같다고 할까요?


  이런 모습을 가리켜 “이건 너무 거짓말 같다”라든지 “이건 너무 지나치다”라고 하겠지요. 또는 “이건 너무 터무니없다”라든지 “이건 너무 뚱딴지 같다”라든지 “이건 너무 뜬금없다”라고도 할 만합니다. “이건 너무 말이 안 된다”라든지 “이건 너무 바보스럽다”라 할 수도 있어요. 4347.2.1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주어진 시간밖에 아기를 못 보니 아기가 괴로워 하든 말든 간호사가 통유리 앞에 들고 보여줍니다. 막상 겪어 보니까 ‘이건 너무 공상과학소설 같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定)해진’은 ‘주어진’으로 다듬고, ‘불편(不便)해’는 ‘괴로워’나 ‘힘들어’로 다듬습니다. “들고 있었던 겁니다”는 간호사가 아기를 들고 보여주는 모습을 가리키니, “들고 보여줍니다”로 손질합니다. ‘경험(經驗)해’는 ‘겪어’로 손봅니다.


‘SF’는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그러나 ‘에스에프’처럼 한글로 적어서 살피면 한국말사전에 나옵니다. 이 영어는 “공상과학소설”을 뜻하고, ‘science fiction’을 줄인 낱말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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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누하동 헌책방 대오서점

 


  나는 헌책방 한 곳을 찾으려고 서너 시간은 가볍게 걸어다니면서 살았다. 어느 날에는 예닐곱 시간을 터덜터덜 걸어다니기도 했다. 언제나 온갖 골목과 동네를 두 다리에 기대어 걸어다니면서 가게를 살피면서 지냈다. 거닐지 않은 골목이 없다 할 만큼 온갖 골목을 다녔으니, 헌책방을 찾으러 골목마실을 하면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찍었으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자료가 모였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가 ‘헌책방’이라는 데를 찾아다니면서 오직 ‘헌책방’만 사진으로 찍던 무렵에, 김기찬 님이 한창 바지런히 골목 사진을 찍으셨다. 김기찬 님이 골목 사진을 살가이 잘 찍으신다고 여겨, 나까지 굳이 골목을 사진으로 찍을 일은 없으리라 여겼다. 그도 그럴 까닭이, 나는 내 사진감인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느라 들이는 필름값으로도 살림이 쪼들려 허덕였다.


  헌책방 한 곳을 찾으려고 온갖 골목을 걷다 보면, 그야말로 아주 아름답고 멋스러운 모습을 자주 본다. 그렇지만,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지 않았다. 누군가 ‘골목’을 사진으로 찍으려는 이가 이 골목을 걸어가면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입이 쩍 벌어지면서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헌책방에서 필름 아까운 줄 잊고 수없이 단추를 찰칵찰칵 눌러야 하니, 제아무리 멋스럽고 아름다운 골목을 만나더라도 필름 한 장 쓰지 않았다.


  이렇게 날이면 날마다 몇 시간씩 골목을 쏘다니면서 ‘아직 사람들한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헌책방’을 찾아 다리품을 팔던 어느 날, 서울 종로구 누하동 한쪽에서 〈대오서점〉을 만났다.


  헌책방 〈대오서점〉은 내가 만나기 앞서도 오랫동안 헌책방으로 있었다. 이곳을 처음 알아보고 나서 둘레에 여쭈니, 독립문 〈골목책방〉 아저씨도 알고, 홍제동 〈대양서점〉 아저씨도 알았다. 그러나, 그뿐이다. 〈대오서점〉은 서울 시내 소매 헌책방에 책을 대주는 도매 헌책방 노릇을 했다는데, 책을 캐내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 혼자 집살림을 도맡느라 책을 캐낼 수 없어, 소매 헌책방 발길이 뚝 끊어지고, 책을 새로 장만하는 길이 없다 보니, 소매 손님조차 거의 찾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대오서점〉 할머니는 이녁 곁님과 함께 오랫동안 가꾸던 헌책방을 없앨 수 없고, 책시렁도 치울 수 없다고 했다. 새로 갖추어 꽂는 책은 없어도, 이 모습 그대로 건사한다고 했다.


  조그마한 기와집에 깃든 헌책방 〈대오서점〉은 한창 때에는 이웃 ‘옷수선’ 집도 책방이었다고 했다. 책이 그득그득 넘쳐서 어디에도 다 책이라, 그 옛날, 이를테면 1990년대 첫무렵이나 1980년대에만 왔어도 ‘엄청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척 보기에도 그렇겠다고 느꼈다. 그런데, 나는 예전 엄청난 모습이 아니어도 좋다. 할아버지가 가시고 난 자리에서도 이렇게 정갈하게 기와집을 보듬고 큰할머님(내가 대오서점을 처음 찾아간 2002년에 아흔여섯이던 큰할머님)을 돌보던 ‘작은’할머님은 빙글빙글 웃음 띤 얼굴로 책손을 맞이해 주었다. ‘큰’할머님은 조그마한 기와집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방에 앉아서 창문을 살짝 열고,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책손’이 이녁 며느리와 주고받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으셨다. 이때, 한 가지 깨달았다. ‘작은’할머님이 헌책방 간판을 내리지 않고, 그저 햇볕에 바래기만 하는 책을 치우지 않은 까닭을.


  나는 이곳 〈대오서점〉 이야기를 2003년에 어느 누리신문에 기사로 올렸다. 어느 누리신문에 기사로 올리고 난 뒤, 이곳으로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사람이 무척 많이 생겼다고 한다. 내가 쓴 글 때문에 일본에서까지 이곳을 취재하러 왔다. 얼마 앞서는 〈대오서점〉을 ‘서울 서촌’에서 몹시 손꼽히는 명소로 다루어 준다고 한다.


  그래, 참 고마운 노릇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저런 뭔가를 이곳 〈대오서점〉에 하는 일이 다 좋은데, 2004년이었던가, 서울시에서 무슨무슨 공사를 한다면서, ‘책방을 하는 이곳’ 마당과 문간 모두를 파헤친 채 두어 달 즈음 엉터리로 팽개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일을 잊지 못한다. 할매 두 분이 계신 집인데, 집 안팎을 드나들기 어렵도록 땅바닥을 파헤치고는 어지러이 흙투성이를 만들고, 책시렁에 곱게 꽂힌 책들에 흙을 묻힌 그때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대오서점〉 할매가 마당에서 김치를 담그고 나물을 다듬으며 고추를 말리던 모습을 아련하게 되새긴다. 이곳에 책손이 없을 적에는 두 할매 속옷을 거리낌없이 척척 마당에 너셨지만, 이제는 속옷 빨래를 마당에 못 너시겠지. 4347.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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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코레 - 박로랑 사진집
박로랑 지음 / 눈빛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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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58

 


어떤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가
― 봉주르 코레
 박로랑 사진
 눈빛 펴냄, 2013.4.17.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로랑 님이 담은 사진으로 엮은 《봉주르 코레》(눈빛,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박로랑 님은 이녁이 내놓은 세 번째 사진책인 《봉주르 코레》에서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사라질 것으로 보여지는 것을 집중적으로 사진 찍었다. 하지만 내가 찍은 사진들은 한국의 새로운 이미지만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래서 부상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찍기 위해 대한항공과 현대 그룹의 후원을 받아 1986년에 다시 한국에 왔다(192쪽).”고 밝힙니다.


  박로랑 님 말마따나, 사진책 《봉주르 코레》를 살피면, 이제 사라지고 없는 모습을 애틋하게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 사진책에서만 피어나는 모습이 물씬 흐릅니다.


  박로랑 님은 한국에서 곧 사라질 모습을 어떻게 알아챘을까요. 박로랑 님 눈길에는 한국사람이 무엇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보였을까요. 한국에서 곧 사라질 모습이란, 한국사람이 아끼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는 모습이라 하겠지요? 한국에서 한국사람이 아끼거나 사랑하는 모습이라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박로랑 님이 사진으로 담은 모습이란, 한국에서 한국사람이 사랑하지 않고 아끼지 않는 모습입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등지거나 멀리하고 싶은 모습을 찍어서 남긴 사진이 모여 《봉주르 코레》가 태어난 셈입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즐겁게 찍지 않은 모습이요, 한국사람 스스로 기쁘게 누리지 않은 모습이며, 한국사람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지 않은 모습입니다.


  박로랑 님은 “나의 태권도 사범이자 나중에 나의 의형제가 된 이관영의 카리스마 덕분에, 나는 아주 빨리 그 당시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던 300여 명의 한국인들을 만났다. 유학생, 예술가, 외교관, 체육계, 종교계, 상공인, 요식업계 사람들. 나는 그들의 모임에서 유일한 프랑스인이었고,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곧바로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191쪽).”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와서 살아가는 이웃들하고 살가이 사귀고 싶어 한국말을 배웠다고 합니다.


  대단한 일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하나도 안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박로랑 님은 사이좋은 이웃이 되고 싶었습니다. 살가운 동무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이웃이 하는 말을 배우고, 동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고 싶어요.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이들 가운데 이웃 고장에서 쓰는 말을 애틋하게 아끼거나 즐겁게 배우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며 전라도말을 배우는 사람은 무척 드뭅니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라며 경상도말을 배우는 사람도 아주 드뭅니다. 그저 남남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살아간다는 골목동네나 판자촌을 찾아가서 사진을 찍은 사람은 꽤 많습니다. 골목동네나 판자촌에서 학술조사를 하거나 건출연구를 하는 사람도 제법 많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골목동네 사람들 삶을 배운다거나, 가난한 이웃들 사랑을 배운다거나, 판자촌 동무를 사귀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박로랑 님은 어느 날 겪은 이야기를 《봉주르 코레》에서 들려줍니다. “1988년에 나는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만났다. 원래는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내 책 두 권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부인인 마르틴 프랑크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자리였다. 그는 내 책은 펼쳐 보지도 않고, 내게 오이겐 헤르겔의 책에 대해서만 오랫동안 이야기했다(193쪽).”고 합니다. ‘오이겐 헤르겔’이라는 이름이 낯익은 분이 있을 테고, 낯선 사람이 있을 텐데, 눈빛 출판사에서 나온 《봉주르 코레》에서, 이녁 이름을 잘못 적었습니다. ‘Eugen Herrigel’은 ‘헤리겔’로 적어야지요. 이녁 책은 2012년 3월에 《마음을 쏘다, 활》(포토넷 펴냄)이라는 이름을 붙어 새롭게 나오기도 했어요. 이 책은 2004년 3월에 《활쏘기의 선》(삼우반 펴냄)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적 있습니다.


  활쏘기를 배우는 동안 무엇을 깨닫느냐 하는 대목을 밝히는 ‘오이겐 헤리겔’ 님 책은, 마음닦기뿐 아니라 사진찍기와 글쓰기가 모두 하나로 이어지는 빛을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박로랑 님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싶은 사진이란, 마음으로 사귀고 꿈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웃음과 눈물로 노래하고픈 삶입니다. 이 땅 한국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아닌,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랜 나날에 걸쳐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꿈꾸고 노래한 빛을 찍은 사진입니다.


  어떤 모습을 찍어서 사진으로 남길까요? 기록이 될 만한 무언가를 캐내어 사진으로 남길까요? 어쩌면,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러면, 무엇이 기록이 될 만한가요? 대통령 모습? 정치꾼 모습? 의사나 박사나 예술가나 유명인이나 연예인 모습?


  때로는 대통령이나 연예인 모습이 기록이 될는지 몰라요. 그러나, 우리가 애틋하게 돌아보며 환하게 웃음짓도록 이끄는 사진은 ‘사진에 깃든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따사롭게 사랑하는 삶이 흐르는 사진입니다. 수수하고 투박하게 삶을 가꾸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오래오래 ‘기록’ 노릇을 합니다. 여느 삶터 여느 마을에서 만난 모스을 수수하고 투박하게 찍은 사진이 두고두고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되며 ‘예술’이 됩니다.


  박로랑 님은 한국에서 곧 사라질 만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고 고개숙여 이야기하지만, 《봉주르 코레》에 흐르는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면, 어느 사진이든 애틋하고 사랑스러우면서 곱습니다. 웃음이 흐르고 눈물이 돋습니다. 이야기가 샘솟고 노래가 퍼져요.


  사진은 늘 오늘을 찍습니다. 곧 사라진다고 해도, 바로 오늘 이곳에 이 모습이 있으니 찍습니다. 내가 찍고 나서 몇 초 뒤에 사라지고 말지라도, 사진은 늘 오늘 이곳을 찍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이웃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낄 빛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알아보는 사람은 사진기를 들어 사진을 찍습니다. 알아채는 사람은 연필을 들어 글을 씁니다. 알아내어 사랑하려는 사람은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립니다. 4347.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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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2-1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으로 사귀고 꿈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웃음과 눈물로 노래하고픈 삶입니다."
- 저도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웃음과 눈물로 노래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

파란놀 2014-02-10 23:59   좋아요 0 | URL
언제나 그처럼 잘 하신다고 생각해요.
즐겁게 웃으면서 글로 노래를 나누어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