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38. 이 예쁜 빨래터에서 2014.2.25.

 


  이 예쁜 빨래터에서 빨래를 할 젊은 일손이 시골에 없다. 이 멋진 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할 어린이가 시골에 없다. 마을마다 빨래터가 있으나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은 이제 찾아볼 길이 없다. 빨래터는 논에 물 댈 적에 호스를 길게 이을 적만 더러 쓸 뿐, 빨래터 몫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마을 어귀에 빨래터가 있는 우리 마을에서는 빨래터를 틈틈이 치운다. 마을 안쪽에 있다면 아마 아무도 안 치운 채 물이끼범벅이 된 채 버려졌을 테지만, 마을 어귀에 있으니 길손과 나그네 눈치가 보여 곧잘 치우곤 한다. 우리 식구는 우리 마을에서 빨래터를 홀로 차지하듯이 치우면서 논다. 가까이에서 누리는 물놀이터가 된다. 겨울에는 물이끼만 걷지만, 봄볕이 따끈따끈 내리쬘 때부터 첫가을까지는 찰방찰방 빨래터를 가로지르면서 온몸을 적시고 논다. 젖은 옷은 물로 헹구고, 아이들은 새옷으로 갈아입는다. 마을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은 없으나, 우리 아이들은 물놀이를 마친 뒤 저희 옷가지를 저희가 이곳에서 설렁설렁 비비고 헹구는 시늉을 하면서 빨래놀이까지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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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 책읽기

 


  어떤 분이 있다. 나는 이 어떤 분을 잘 모른다. 이 어떤 분도 나를 잘 모른다. 그런데 꽤 예전에 예닐곱 해쯤 앞서인가 어떤 분이 나한테 연락을 했다. 이녁이 쓴 책에 사진을 넣고 싶다면서, 내가 찍은 헌책방 사진을 줄 수 있느냐고 여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분한테 두 가지를 물었다. 첫째, 헌책방 사진을 넣고 싶은 그 책이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지 원고를 보여주십사 묻고는, 둘째, 사진을 쓰려면 사진값을 치러야 할 텐데 사진 인세를 어떻게 하시겠느냐 하고 물었다. 첫째 물음에 어떤 분은 책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고만 했고, 원고는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둘째 물음은 출판사에 물어 보겠노라 했다. 그래서, 어떤 원고로 나오는 책인지 알 수 없는데 헌책방 사진을 함부로 줄 수 없다고 했다. 헌책방을 노래하는 원고인지, 헌책방은 오래된 낡은 뒤처진 곳이라고 깎아내리는 원고인지 모르는 채 헌책방 사진을 함부로 줄 수 없는 노릇이라 했다. 나중에 출판사 일꾼하고 이야기를 나눈 뒤 연락하기를 사진값을 주기 어렵다 했다. 그러면 인세 몫에서 잘라 사진값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다른 사람이 애써 찍은 사진을 거저로 가져가려 하면 안 된다고, 정 사진을 쓰고 싶으면 내가 찍은 사진은 인터넷에 많이 떠도니 그 사진을 잘 살펴보고 비슷하게든 똑같이든 찍어서 그 책에 쓰시라 했다.


  그 뒤로 어떤 분한테서 아무 연락이 없다. 그러고 몇 해 지나 지난해 첫겨울에 어떤 분한테서 다시 연락이 온다. 이번에도 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그 어떤 분이 쓰는데, 전국에 있는 수집가를 인터뷰하는 책이라고 하면서, 나더러 ‘사진책 수집가’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여쭌다. 그래, 나를 얼마나 알아보고 살펴보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사진책 도서관’을 혼자서 열어 꾸리는 사람이지, ‘사진책 수집가’가 아니라고 어떤 분한테 말한다. 그러니 어떤 분이 하는 말, ‘내가 하는 일을 내가 글로 정리해서 보내 줄 수 있느냐’ 한다. 인터뷰를 해서 책으로 내겠다면, 인터뷰를 할 사람이 고흥에 살건 서울에 살건 그이한테 찾아가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노릇이 아닐까. 인터넷에서 누리편지 한두 번 보내면서, 게다가 ‘내 삶을 나 스스로 정리해서 글로 써서 보내 달라’는 부탁은 뭔가. 인터뷰를 하시겠다면서 인터뷰를 받는 사람이 자기소개와 스스로 하는 일을 손수 정리해서 글로 쓰는 법도 있는지 궁금하다고, 이녁이 내 네이버블로그이든 알라딘서재이든 들어와서 도서관일기라도 좀 읽으시라고 말한다. 그러니 어떤 분은 내가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을 이녁이 정리해서 그 글을 이녁 책에 소개글로 넣으면 되겠느냐고 묻는다.


  도무지 이야기가 안 되어 더는 대꾸를 하지 않는다. 설마 어떤 분은 내가 쓴 글을 나도 모르게 편집해서 ‘마치 나를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얘기를 듣기라도 한 듯이’ 꾸며서 책을 내지는 않겠지? 알라딘서재에 있는 어떤 분도 내 얘기를 엉뚱하게 편집질을 해서 ‘마치 나를 잘 아는 이웃이라도 되는 듯이’ 꾸며서 책을 내어 놀래킨 적이 있는데, 부디 뒷통수 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남 이야기를 하자면, 남이 쓴 책이라도 좀 제대로 읽거나, 남이 일하는 사진책 도서관으로 찾아와서 이야기를 듣기라도 하기를 바란다. 4347.3.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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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13) 통하다通 60 : 통하는 데

 

둘은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통하는 데가 있었다
《캐롤린 베일리/김영욱 옮김-미스 히코리》(한림출판사,2013) 91쪽

 

 통하는 데가 있었다
→ 마음이 맞는 데가 있었다
→ 마음이 맞기도 했다
→ 잘 맞는 데가 있었다
→ 잘 맞기도 했다
 …


  다투다가도 사이좋게 지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어느 때에는 서로 잡아먹을듯이 다투지만, 어느새 활짝 웃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아무래도 서로 마음이 맞는 데가 있으니 다툴 수도 있고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하나도 안 맞는다면 아예 다툴 일조차 없으리라 느껴요. 마음이 안 맞으면 서로 모르는 채 스쳐 지나가는 사이였겠지요.


  때로는 어긋나지만 때로는 잘 맞습니다. 때로는 티격태격 툭탁툭탁 삐걱거리지만 때로는 빙글빙글 웃습니다. 마음이 맞는다고 할 적에는 뜻이 맞습니다. 뜻이 맞을 적에는 생각이 맞습니다. 한마음이 됩니다. 한뜻이 됩니다. 한솥밥을 먹는 사이처럼 살가이 지냅니다. 4347.3.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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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잘 맞는 데가 있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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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43 : 냉동 포도, 꽁꽁 언 얼음


그곳에는 히코리가 후식으로 먹을 냉동 포도송이들이 많이 있었다 … 첫 번째 개울을 따라 스케이트를 지쳤다. 꽁꽁 언 얼음 밑으로 졸졸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캐롤린 베일리/김영욱 옮김-미스 히코리》(한림출판사,2013) 91쪽 

 

 후식으로 먹을 냉동 포도송이 (x)
 꽁꽁 언 얼음 (o)

 


  겹말이 나타나는 까닭은 깊이 살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월을 잘 살피면, “꽁꽁 언 얼음”이라는 대목이 있어요. 얼음이니까 꽁꽁 ‘언다’고 할 테지요. 그러면, ‘냉동(冷凍)’이란 무엇일까요. ‘얼림’이나 ‘얼리게 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겨울이 되어 들판에 있던 포도송이가 꽁꽁 ‘얼’기에, 이 포도송이는 ‘언’ 포도송이입니다.


  감을 얼리면 ‘언 감’입니다. 딸기를 얼리면 ‘언 딸기’입니다. 얼리니 ‘언’이라고 붙입니다. 4347.3.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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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히코리가 입가심으로 먹을 언 포도송이들이 많이 있었다 … 첫째 개울을 따라 스케이트를 지쳤다. 꽁꽁 언 얼음 밑으로 졸졸 개울물이 흐른다

 

‘후식(後食)’은 ‘입가심’이나 ‘주전부리’로 다듬습니다. ‘번(番)째’도 ‘일요일날’이라는 말투처럼 으레 쓰는 말입니다.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어린이책에 나오는 만큼, ‘番’과 ‘째’가 같은 말이니, “첫 번째 개울”은 “첫 개울”이나 “첫째 개울”로 손봅니다.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개울물이 흐른다”나 “개울물이 흘렀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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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을 내놓는 마음이 궁금하다. 두 권째 세 권째 시집을 내놓는 마음도 궁금하지만, 첫 시집을 이웃 앞에 내놓아 ‘나 이제 시인이라오.’ 하고 넌지시 웃는 마음이 궁금하다. 시집을 내놓아야 시인이 되지는 않고, 시집이 있어야 시인답지는 않다. 이름 높은 출판사에서 시집이 나온들 혼자 쌈지돈 꾸려 비매품 시집을 낸들 모두 같다. 백만 사람이 읽어 주어야 아름다운 시가 되지 않는다. 혼자 숲에 깃들어 나무한테 읽어 주고 풀꽃한테 읊어 주는 시 또한 더없이 아름답다. 수많은 시인들 이야기를 책으로 돌아보면, 어느 시인이든 첫 시집이 그이 걸음걸이가 되는구나 싶다. 첫 시집 틀에서 못 벗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첫 시집에서 선보이는 고운 사랑이 한결같이 흐른다는 뜻이다. 마음으로 스며드는 이야기가 감도는 시를 쓴 님이 있으면 으레 이녁 첫 시집이 궁금하다. 애틋하게 선보이는 첫 시집에서 어떤 사랑과 꿈을 푸른 숨결로 들려주는지 만나고 싶다. 4347.3.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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