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 이야기
가브리엘 뱅상 지음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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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2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
― 떠돌이 개 (어느 개 이야기)
 가브리엘 벵상 그림
 열린책들 펴냄, 2003.4.20. (별천지 다시 펴냄, 2009.10.30.)

 


  2014년 2월 첫머리에 우리 집에 개 한 마리가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처음부터 우리 집에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개 한 마리 나타났습니다. 마을 이곳저곳을 빙빙 돌다가 마을 할매가 지나가면 꼬리를 살랑살랑 치면서 잰걸음으로 좇습니다. 이러다가 나를 보면 나를 좇고, 우리 집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을 좇습니다. 마을에 개를 키우는 집은 딱 한 곳 있지만, 아주 덩치 큰 시베리안 허스키인데, 그 집 빼고 개를 아무도 안 키워요. 그 집에서도 토실토실 북슬북슬 개를 키우지 않습니다.


  마을을 이틀째 떠돌던 개는 아이들을 따라 우리 집으로 들어옵니다. 큰아이는 네 살이던 해에 음성 할아버지 댁에 있는 개한테 크게 놀라면서 여러 해 동안 개를 멀리했어요. 아주 조그마한 개만 보아도 울먹이면서 멀리 내빼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일곱 살이 된 뒤 마을을 떠도는 개를 보고는 내빼지 않습니다. “멍멍아, 이리 와 봐.” 하고 부릅니다. 틀림없이 누군가 키우다가 시골마을에 팽개친 ‘집개’로 보이는 떠돌이는 큰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와락 안깁니다. 떠돌이가 되어 배를 한참 곯았구나 싶은 개는 혀를 내밀고 꼬리를 살랑입니다. 마을에 있는 숱한 고양이는 누가 밥을 챙기지 않더라도 이래저래 먹이를 찾습니다. 때로는 마을 할매가 따로 밥을 챙겨서 내밀기도 합니다. 이 개는 어떨까요. 이 개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밥이나마 제대로 먹었을까요.


  국을 끓이고 밥을 말고는 소시지를 몇 점 얹어서 개한테 내밉니다. 개는 밥그릇을 보자마자 덮칠듯이 달려듭니다. “쉿, 쉿, 기다려.” 하고 말한 뒤 마당 한쪽에 내려놓습니다. 떠돌이 개는 곧장 밥그릇을 비웁니다. 그렇다고 한 그릇을 더 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허둥지둥 먹는다면 한참 곯았을 테니 갑자기 많이 먹으면 안 좋아요. 더 달라는 눈빛을 모르는 척합니다. 저녁에 아이들 밥을 차린 뒤에 슬그머니 개밥을 한 그릇 덜어서 내놓습니다. 떠돌이 개는 이틀 동안 밥그릇을 내려놓기 무섭게 비웠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떠돌이 개는 이제 배가 좀 부른지, 밥에 얹은 소시지만 훑어먹습니다. “너, 배부르구나? 어쩜 요렇게 먹니?” 하고 볼따구를 두 손으로 잡고 살살 흔듭니다. “골고루 다 먹으라고 주었잖니.” 물끄러미 지켜보니 개는 한 시간쯤 뒤에 밥을 비웁니다. 저녁에도 이렇게 먹습니다. 이튿날에도, 또 이튿날에도, 밥에 얹은 다른 것만 날름 집어먹은 뒤, 한 시간이 지나서야 밥을 삭삭 비웁니다.


  이러구러 보름이 지나니, 떠돌이 개는 아침에 밥그릇 비우고 우리 집에서 나갑니다. 낮에 살짝 들어와서 밥그릇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그러고는 해가 떨어진 저녁에 들어와서 섬돌에 올라앉아 웅크리고 잡니다. 늦은 저녁에 들어온 모습을 보고는 밥을 마당에 내려놓으면 자다가 일어나서 밥을 먹습니다. 이렇게 열흘을 지냅니다.


  그러고 나서 그제부터 떠돌이 개는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레쯤 앞서 새로운 떠돌이 개를 보았습니다. 우리 집에 눌러앉은 떠돌이 개도 예전에는 집개였다고 느꼈는데, 새로운 떠돌이 개도 집개인 티가 물씬 나는 한편 목줄까지 있습니다. 새로운 떠돌이 개는 우리 집에 먼저 자리를 잡은 떠돌이 개하고 밥을 나누어 먹습니다. 그러고 닷새가 지난 그제, 우리 집 떠돌이 개는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안 보입니다. 사나흘 앞서부터 밤바다 새로운 떠돌이 개가 우리 집 마당으로 와서 자꾸 얼쩡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눌러앉은 떠돌이 개 곁에서 함께 자지는 않고 마당을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무슨 뜻이었을까요. 저하고 다른 곳으로 가서 살자는 뜻이었을까요. 저하고 함께 나그네 되어 새로운 마을로 돌아다니자는 뜻이었을까요. 집개로 지내면서 실컷 뛰지도 못하고 달리지도 못하던 아쉬움을 풀자는 뜻이었을까요.


  우리 집에 눌러앉으며 한 달을 함께 지낸 떠돌이 개는 처음에는 달리지 못했습니다. 걸음도 되게 느렸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를 태운 자전거를 몰고 논둑길을 달릴라치면 어정어정거리면서 가까스로 따라오다가 저 뒤로 한참 처졌어요. 그런데, 스무 날쯤 될 무렵부터 달리더군요. 우리 마을에 깃든 지 스무 날쯤부터 이장님네 짐차 꽁무니를 좇아 제법 잘 달립니다. 아하, 네가 아침에 밥을 먹고 이렇게 하루 내내 이곳저곳 뛰고 달리면서 돌아다니는구나.


  우리 집 아이들은 떠돌이 개가 우리 집에 그대로 눌러앉지 않아서 못내 서운합니다. 그렇지만 아쉽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개는 왜 밖에서 살아?” “개는 처음부터 밖에서 사는 짐승이야. 고양이도 밖에서 살지. 제비도 딱새도 까치도 밖에서 살아.” “사람은?” “사람도 처음에는 숲에서 살았어. 그러다가 이렇게 집을 지어서 집에서 살지만, 집보다 들과 바깥에서 움직이며 일하지.”

 


  지난 한 달은 떠돌이 개가 홀로서기를 하는 기운을 모으는 때였으리라 느낍니다. 한 달 동안 알맞게 밥을 먹으면서 기운을 되찾는 한편, 시골을 두루 누빌 다리힘을 찬찬히 붙이는 때였으리라 느낍니다. 이 개가 십일월이나 십이월이 아닌 이월에 우리 마을에 와서 그나마 낫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겨울이 끝나는 달에 와서 새봄이 막 열리는 달에 홀로서기를 하는 셈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들마다 풀이 돋고 딸기꽃이 피면 떠돌이 개도 한결 느긋하게 이 땅을 누빌 수 있겠지요. 퍽 늙은 개였는데, 봄과 여름과 가을까지 즐겁게 지낼 수 있겠지요. 다시 겨울이 찾아오고 힘들면, 그때에 또 우리 집으로 찾아오기를 빌어요. 겨울에는 따순 밥과 잠자리를 누린 뒤, 또다시 찾아올 봄에 홀가분하게 골골샅샅 누빌 수 있기를 빌어요. 들개가 되고 숲개가 되며 시골새가 되어 온몸에 푸른 숨결 새록새록 받아들일 수 있기를 빌어요. 떠돌이 개 두 마리는 서로 아끼며 잘 지내리라 믿습니다.


  가브리엘 벵상 님이 빚은 그림책 《떠돌이 개》를 새삼스레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떠돌이 개는 처음부터 떠돌이 개는 아니었습니다. 사랑받는 개였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던 개였습니다. 어여쁜 개였으며, 착한 개였습니다. 이 개는 왜 버림받아야 했을까요. 이 개를 버린 사람은 어떤 마음이요 어떤 삶일까요.


  개는 떠돌이가 되었지만, 천천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집개도 떠돌이도 아닌 들개라는 숨결을 깨닫습니다. 들에서 살고 들바람을 마시면서 들빛으로 고운 숨결인 줄 느낍니다. 그림책 《떠돌이 개》에서는, 개와 똑같이 떠돌이로 지내는 아이를 만나요.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은 다른 손님을 만납니다. 마음으로 아끼고 마음을 읽으며 마음을 나누는 벗이 있기에 삶이 맑게 빛나는구나 싶습니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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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3-09 22:49   좋아요 0 | URL
새로운 이름 지어주며 알콩달콩 살줄알았는데, 또 다른 친구 사귀며 다른곳으로 떠났군요.
부디 함께살기님 말씀대로 큰 어려움없이 둘이 친구가 되어 상처받지 말고 자유롭게 살면 좋겠어요.

파란놀 2014-03-10 05:56   좋아요 0 | URL
이렇게 마음을 써 주시는 보슬비 님 같은 분이 있으니,
그 개 두 마리는 서로 아끼면서
새로운 삶 가꾸면서 하뤃루
즐겁게 뛰놀고 노래하리라 믿습니다..

hnine 2014-03-10 07:30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떠돌이개는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울리고 가는 말이네요. '떠'돌이라는 우리 말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요.

이분 원작의 영화가 얼마전에 극장에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깜박 잊고 있다가 생각났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알아봐야겠어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인가? 아마 제목이 그랬던것 같아요.

파란놀 2014-03-11 01:34   좋아요 0 | URL
셀레스틴느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어린이'와 '인형'과 '개'를 놓고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두루 빚은 분인데,
한국에서는 아직 널리 사랑받지 못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알뜰히 사랑받지 싶어요.

그림책 <떠돌이 개>뿐 아니라 <작은 인형>이든 <곰인형의 행복>이든
모두 '외톨이가 된 숨결'이 스스로 삶을 찾거나 사랑스러운 빛을 찾는
줄거리를 보여주어요. 다른 이가 보기에는 '떠돌이'일는지 모르지만,
저마다 스스로 아름다운 넋이라고 밝혀 준다고 할까요.

참으로 예쁜 그림책들이에요.
 

말넋 23. 쉽게 쓰는 우리 말글
―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거운 말

 


  이상권 님이 쓴 《이승모 할아버지의 남녘북녘 나비 이야기》(청년사,2003)라는 책을 읽다가 80쪽에서 “북쪽에서는 ‘나비’와 ‘나방’을 ‘낮나비’와 ‘불나비’라고 부른단다. 낮에 날아다니는 나비, 밤에 불을 보고 찾아오는 나비라는 뜻이야.” 하고 이야기하는 대목을 봅니다. 조금 더 읽으면 “‘호랑나비’는 북쪽에서는 ‘범나비’라고 불러. 많은 사람들이 ‘범’이 한자고, ‘호랑이’는 한글인 줄 알더구나. 하지만 범이 한글이란다.” 하고 나와요. ‘호랑(虎狼)’은 “범과 늑대”를 뜻해요. 두 가지 숲짐승을 아우르는 한자말이에요. 그러니, ‘호랑이’라는 낱말로 범을 가리키는 일은 그르지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호돌이’를 상징물로 썼는데, 이때에 잘못된 말을 아주 널리 퍼뜨렸어요. ‘호돌이’는 ‘호랑돌이’를 줄인 이름이니까요. 한겨레는 한국말로 ‘범돌이’와 ‘범순이’라 해야 올바릅니다. 나비를 가리키는 이름을 남녘에서는 ‘호랑나비’로 쓴다고 하지만 올바른 이름이 아니니, 하루 빨리 ‘범나비’로 바로잡아야 올발라요.


  그나저나, 북녘에서 ‘낮나비’와 ‘불나비’, 이렇게 두 갈래로 나누는 이름이 참으로 알맞아요. 남녘에서 ‘나방’이라 가리키는 벌레는 낮에는 꼼짝않거든요. 밤이 되어 불이 있는 곳에 모여들어요. 아이들한테 벌레를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자리에서도 ‘낮나비·불나비’라 말할 적에 한결 쉽고 알맞게 알아들으리라 느껴요.


  ‘푸르다·파랗다·누렇다·빨갛다’ 같은 빛이름은 모두 시골에서 태어났어요. 우리가 예부터 익히 쓴 한국말 가운데 시골에서 안 태어난 말이란 없지만, 푸르다이건 누렇다이건 시골에서 마주하는 숲과 들에서 얻은 낱말이에요. 풀을 느끼는 빛이라 푸르다요, 하늘과 바다에서 느끼는 빛이라 파랗다이며, 잘 익은 나락에서 느끼는 빛이라 누렇다이면서, 무르익은 열매에서 느끼는 빛이라 빨갛다예요.


  이런 말밑을 살필 줄 안다면, 섣불리 영어로 ‘그린·블루·옐로우·레드’처럼 쓸 때에는 아무런 빛느낌도 삶느낌도 이야기도 담기 어려운 줄 깨달아요. 영어라서 쓰지 말아야 하지 않아요. 우리 삶을 담지 못하니까 우리 말글이 아닙니다. 이런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이들 빛이름에 그 나라 빛과 삶과 이야기를 담겠지만, 우리들 살아가는 한국에서는 영어에 아무런 이야기나 느낌이 없어요.


  어떤 지식인은 ‘똘레랑스’라는 프랑스말을 들여와서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마음씨를 말해요. 다른 지식인은 한자말로 ‘관용’을 빌어 이녁 느낌을 말해요. 그러면, 지식인 아닌 여느 한국사람은, 시골사람은, 어린이는, 여느 할매와 할배는, 이 프랑스말과 한자말을 얼마나 잘 헤아릴 만할까요. 왜 지식인들은 ‘너그럽다’나 ‘넉넉하다’라는 한국말을 안 쓸까요.


  영국에서는 ‘영어 쉽게 쓰기’를 한다고 해요. 우리도 ‘한국말 쉽게 쓰기’를 하자는 움직임이 있어요. 그렇지만, 막상 한국말을 쉽게 쓰려는 사람은 드물어요. 어려운 말과 딱딱한 말을 함부로 써요. 신문도 방송도 교과서도 쉬운 말로 엮지 않아요. 초·중·고등학생이 보는 교과서에도 여느 어른들이 보는 신문에서 쓰는 말이 그대로 나와요. 초·중·고등학생 눈높이를 헤아리지 않아요.


  김남일 님이 쓴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사계절,2002)이라는 책 70쪽을 보면, “다른 많은 학생들과 함께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숭실중학교를 자퇴한 문익환과 윤동주는”이라는 대목이 있어요. 한쪽에서는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라 적지만, 다른 곳에서는 ‘자퇴’라 적어요. 한쪽은 한국말이고 다른 한쪽은 한자말이에요.


  이와 비슷한 얼거리로, ‘쉬다·휴식’을 섞어 쓰는 어른이에요. ‘밥·식사’를 섞어 쓰고, ‘학교 가다·등교하다’를 섞어 쓰며, ‘가르치다·교육하다’를 섞어 써요. ‘어버이’라는 한국말 있지만 으레 ‘부모’라는 한자말을 써 버릇하는 어른이요, ‘생일잔치’ 아닌 ‘생일파티’라는 말을 쉬 쓰는 어른입니다.


  어른들부터 말버릇이 올바르지 않다면 아이들도 말버릇이 올바를 수 없어요.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말을 듣고 배우니까요. 어른들부터 말버릇을 슬기롭게 가다듬어야 비로소 아이들이 슬기로운 말을 들으면서 아름답게 말을 하고 글을 써요.


  우리 말글을 쉽게 쓰는 길은 따로 없어요. 쉽거나 어려운 말이란 따로 없어요. 나라마다 다른 말이 있고, 겨레마다 다른 말이 있어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안 쓰니까 어렵고, 한국사람이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이나 미국 영어를 아무렇게나 아무 곳에 쓰니까 까다롭습니다. 곧, 한국사람이 한국에서 이웃과 동무를 사랑스레 사귀면서 즐겁게 나누는 말이 되어야 비로소 쉬운 말이 되고, 고운 말이 되며, 착하며 참된 말이 돼요.


  눈높이를 살필 노릇입니다. 내 말을 듣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살필 노릇입니다. 일곱 살 어린이 앞에서 어떤 낱말을 고르고 어떤 말투와 말씨로 이야기를 들려줄는지 살필 노릇입니다. 열일곱 살 푸름이 앞에서 어떤 낱말을 가리고 어떤 말투와 말씨로 삶을 노래할 때에 서로 아름답고 즐거운가 하고 생각할 노릇입니다.


  이것저것 많이 배운 내 눈높이가 아니라,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 눈높이를 돌아보면서 말을 할 때에 가장 쉬우면서 바르고 예쁜 말이 태어납니다. 책에서 읽어 얻은 글이 아니라,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일하는 이웃들 삶을 헤아리면서 글을 쓸 적에 가장 고우면서 즐겁고 사랑스러운 글이 자랍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거운 말입니다. 서로 마음을 맞추고, 서로 마음을 아끼면서 사랑스러운 말입니다. 서로 보듬는 넋이 될 때에 고운 말입니다.


  해를 바라보기에 ‘해바라기’이듯, 하늘을 바라보기에 ‘하늘바라기’이고, 별을 바라보며 ‘별바라기’, 달을 바라보며 ‘달바라기’ 돼요. 대학교를 바라본다면 ‘대학바라기’ 될 텐데, 예쁘며 맑은 빛 감도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는 푸름이들 누구나 꿈바라기·사랑바라기·빛바라기·꽃바라기·나무바라기·바다바라기 같은 마음 일구기를 빌어요. 서울바라기나 도시바라기 말고 시골바라기와 숲바라기를 할 수 있으면 아주 반갑습니다. 4346.12.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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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생 님 책들을 (도서관일기 2014.3.2.)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권정생 님이 남긴 책을 돌아본다. 나는 권정생 님을 1998년에 처음 알았다. 1997년 12월 31일에 강원도 양구 멧골짜기 비무장지대에서 벗어나 고향집으로 돌아온 뒤 《몽실 언니》라는 책을 만났다. 군대에서 벗어나 마음과 몸을 쉬다가 읽은 《몽실 언니》는 내 마음을 크게 울렸다. 이렇게 놀라운 동화책을 왜 1984년이 아닌 1998년이 되어서야 읽을 수 있었나 하고 돌아보았다. 내 어린 날 국민학교에서는 왜 이런 엄청난 동화책을 읽히지 않았을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왜 권정생이라고 하는 분 작품을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내 둘레에도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아는 벗이 없었다. 다섯 학기를 다니고 그만둔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아는 벗을 처음으로 만났다.


  1998년 1월 8일 아침에 《몽실 언니》를 손에 쥔 뒤 낮에 눈물을 글썽이며 다 읽었다. 그러고 나서 권정생 님이 쓴 책을 하나씩 찾아나섰고 오래지 않아 모든 책을 다 찾아서 읽을 수 있었다. 헌책방을 다니며 판 끊어진 예전 책을 찾아내기도 했다.


  문학이란 무엇일까. 어린이문학과 어른문학이란 무엇일까. 권정생 님이 쓴 글은 어린이문학에 넣곤 하는데, 어린이문학 테두리로만 바라보아도 될까. 삶을 밝힐 뿐 아니라 사랑을 빛내는 이 글이야말로 노벨문학상을 줄 만하지 않은가. 셀마 라게를뢰프 님에 이어 어린이문학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분이 권정생 님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런 대목까지 헤아리는 평론가라든지 다른 작가는 얼마나 될까.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두루 읽고 즐길 수 있는 글을 쓴 권정생 님인데, 이러한 그릇과 넋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헤아려 줄까.


  서재도서관에서 권정생 님 예전 책을 찬찬히 돌아보다가 강경옥 님 만화책을 쓰다듬어 본다. 어느 연속극이 강경옥 님 만화책에서 소재를 가져다 썼다는 말이 많다. 마지막에는 《별빛속에》를 떠올리게 했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별빛속에》이지. 우리 만화밭 흐름을 바꾸었다고 할 만한 작품 《별빛속에》이지. 옛날 대여점 판은 짝을 다 맞추지 못했으나 나중에 나온 애장판으로 갖추어 놓았다.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나 《별빛속에》는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다고 느낀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책일 때에 아이들한테 물려준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작품일 때에 오늘 이러한 책을 즐긴다. 강경옥 님 만화에서 소재를 가져다가 쓴 연속극은? 그런 연속극은 디브이디로 건사해서 물려줄 만할까? 글쎄, 고개를 갸우뚱한다. 스스로 아름답게 창작하지 못한 작품은 건사할 까닭도 없고, 물려줄 일도 없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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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73) 시대착오적 1 : 시대착오적인 생활

 

이런 시대착오적인 생활 고집하지 말고, 좀 제대로 된 일을 해 보렴
《츠루타 겐지/오주원-모험 에레키테 섬》(세미콜론,2013) 107쪽

 

 시대착오적인 생활 고집하지 말고
→ 시대에 뒤떨어진 삶 붙잡지 말고
→ 낡은 삶 붙잡지 말고
→ 바보스러운 삶 버티지 말고
→ 시대를 거스르는 삶 버티지 말고
 …

 


  한자말 ‘착오(錯誤)’는 “착각을 하여 잘못함”을 뜻합니다. 한자말 ‘착각(錯覺)’은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함”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시대착오’라고 할 적에는 시대를 잘못 알거나 생각한다는 소리예요. 보기글을 살핀다면, 이렇게 시대를 잘못 생각하는 삶 붙잡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시대를 등진다든지 시대와 동떨어진 삶을 더 버티지 말라는 뜻입니다.


  ‘시대’라는 낱말은 ‘일제 시대’라든지 ‘조선 시대’처럼 쓰곤 합니다. 이 낱말을 꼭 다듬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시대’ 뒤에 붙은 ‘착오’라는 낱말은 어떠할까요. ‘착오’라는 낱말이나 ‘착각’이라는 낱말을 얼마나 써야 할까요. 이 같은 낱말은 한국사람이 쓸 만할까요. 이러한 낱말을 아이들한테 들려주거나 가르칠 만할까요.


  시대를 잘 살피거나 헤아리는 말씨를 생각해 봅니다. 시대에 잘 맞는 말투란 무엇일까 헤아려 봅니다. 시대를 잘 알면서 슬기로운 말마디를 곱씹어 봅니다. 4347.3.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런 낡은 삶 붙잡지 말고, 좀 제대로 된 일을 해 보렴


‘생활(生活)’은 ‘삶’으로 다듬고, ‘고집(固執)하지’는 ‘버티지’나 ‘붙잡지’로 다듬습니다. ‘시대착오적(時代錯誤的)’은 “낡은 생각이나 생활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에 대처하지 못하는 성질을 띤”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낡은’을 가리키는 셈이고, ‘시대에 뒤처진’이나 ‘시대에 뒤떨어진’이나 ‘시대를 잘못 읽는’이나 ‘시대를 거스르는’을 가리킨다고 할 만합니다. 뜻을 살려서 풀면 ‘어리석은’이나 ‘멍청한’이나 ‘바보스러운’을 가리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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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5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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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22

 


마음을 살리는 밥
― 은빛 숟가락 5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2.20.

 


  밥 한 그릇은 언제나 아늑합니다. 밥 한 그릇을 차려서 이웃한테 건넬 적이든, 이웃이 밥 한 그릇을 차려서 내밀 적이든, 밥 한 그릇은 늘 따사롭습니다. 밥을 차리는 내 손에 아름다움이 감돌고, 밥 한 그릇을 베푸는 이웃 손에 사랑스러움이 깃듭니다.


  라면 한 그릇을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고기 한 점을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집 둘레 풀밭에서 풀잎을 뜯어서 한 점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고구마를 쪄서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감자를 삶아서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안 먹는데 배가 부릅니다. 봄바람에 묻어나는 꽃내음을 마시는데 배가 부릅니다. 여름볕을 식히는 소낙비를 입을 헤 벌려 마시는데 배가 불러요. 무지개를 바라보며 배가 부르고, 밤별잔치를 누리며 배가 부릅니다.

 


- “유코. 우에노 쪽에 최근에 엄청 맛있는 민스 커틀릿 집이 생겼대. 알고 있었어?” “몰라. 정육점이야?” “응. 만일 괜찮다면, 이번 일요일에 같이 가지 않을래?” “가, 갈래.” (12∼14쪽)
- “대체 이 여주(여주인공)는 왜 자신이 먼저 움직이지는 않는 거야? 자신으로 바꿔 놓고 일반적으로 생각해 봐. 3년 가까이 그냥 계속 좋아하기만 하고 마음은 못 전한다니. 현실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죄송해요.’ (42∼43쪽)


  우리 집 곁님은 늘 아픈 사람입니다. 앞으로는 안 아픈 사람으로 지낼 수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곁님이 안 아픈 사람이라면, 안 아프기에 집살림이나 밥하기를 곁님이 도맡았을까 궁금합니다. 아마 안 아픈 사람이라 하더라도 집살림과 밥하기를 한 사람이 도맡도록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집살림은 살림하는 즐거움이 있고, 밥하기는 밥하는 기쁨이 있어요.


  남이 차린 밥을 먹을 때에 더없이 고맙습니다. 밥상맡에 앉아서 수저만 들어도 되는 일이란 큰 선물입니다. 그리고, 내가 차린 밥을 먹일 때에 그지없이 고맙습니다. 밥상맡에 차곡차곡 접시와 그릇을 올리는 일이란 큰 선물이에요. 내가 베푸는 선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차린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 눈빛과 낯빛을 보면서 고맙습니다.

 


- ‘그때는 가다랑어포밥 만드는 법도 몰라서 그 애한테 전화를 걸어 물었지. 그로부터 항상 난 그 애가 했던 그 말에 위안을 얻었던 것 같아.’ (24∼25쪽)
- “미안해. 전에도 얘기했지만, 나,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좋아하던 사람이 있어. 네 마음은 기쁘지만 사귈 수는 없어.” (37쪽)


  밥 한 그릇은 언제나 마음을 살립니다. 밥을 먹으면 몸이 배가 부를 테지만, 몸이 배가 부르기 앞서 마음이 먼저 따사롭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그릇을 바라보면서 온몸이 사르르 녹아요. 마음속으로 깊은 사랑이 샘솟습니다. 가슴속으로 너른 꿈이 자랍니다.


  이 밥 한 그릇을 먹으며 얻는 기운으로 어떤 일을 하면 즐거울까요. 이 밥 한 그릇을 받으며 누린 빛으로 어떤 삶을 지으면 아름다울까요.


  통통통 도마질 소리가 곱습니다. 내가 칼을 쥐어 도마질을 하든, 곁님이나 이웃이 칼을 쥐어 도마질을 하든, 도마질 소리가 집안에서 울리면 마당에서 멧새가 까르르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도마질 소리를 들으면서 재잘재잘 노래합니다. 서로 아끼고 보듬습니다. 아이들은 도마질 소리에 국 끓는 소리를 들으며 침을 꿀꺽 삼킵니다. 군침을 다십니다. 밥이 언제 되는지 자꾸 기웃거립니다. 방과 마루와 부엌 사이를 쉬잖고 오갑니다. 아이들 마음속에는 ‘밥이야!’ 하는 생각이 피어나면서 가벼운 몸짓 가붓한 발걸음이 됩니다.

 


- “유코, 지금 어디야?” “지금? 지금은 고등학교 옥상. 아직 열쇠가 그대로 있더라구.” “지금 갈 테니까 기다려.” (54∼55쪽)
- ‘꿈일까? 줄곧 동경하던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지금 교정을 가로지르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60∼61쪽)
- “아무렇지도 않아. 오늘 바람이 꽤 부는걸. 나야말로 설마 와 줄지는 몰랐어.” “나도 전철 안에서 왜 전철을 타고 있는지 잠깐 생각했어.” “왜 왔는데?” “오고 싶었으니까. 내일 만난다는 걸 알면서도, 만나고 싶었어.” (96쪽)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4) 다섯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은 ‘밥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머스마’가 주인공입니다. 머스마는 처음부터 밥하기를 즐기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저승사람이 되었고,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하고 함께 살아가는데, 어머니마저 그만 몸이 아파 드러누웠어요. 맏이로서 두 동생을 돌보고 살림을 꾸리자니 하나하나 새로 배웁니다. 고등학생이 되도록 ‘밥하기’와 ‘집살림’을 하나도 살피지 않고 살았구나 하고 깨달아요. 그러고는, 학교에서 동무한테 도움을 바랍니다. 어떻게 밥을 하고 어떻게 찬거리를 마련하는가를 묻습니다.


  다른 거의 모든 동무들은 집에서 집살림이나 밥하기를 안 합니다. 도움이 안 됩니다. 이 가운데 집살림이나 밥하기를 제법 거드는 동무가 있습니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 나오는 머스마는 안경잽이 가시내한테서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한 꾸러미 받지요. ‘가다랑어포’를 선물로 받아요.


  머스마는 꽃다발도 돈도 아닌 ‘가다랑어포’ 선물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이제껏 집살림과 밥하기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손수 해 본 적도 없다가, 비로소 집살림과 밥하기를 처음 치르고 겪는 동안 ‘밥 한 그릇’이 한솥밥 먹는 식구 사이에서 얼마나 빛나는 사랑인가를 깨달았거든요.

 


- ‘엄청 조용한 영화라, 침 넘기는 소리도 들릴 것만 같아 괜히 긴장 돼,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고도 2시간 가까이 옆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무척 기뻤다.’ (109쪽)
- ‘아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작은 변화를 알아차렸다.’ (117쪽)


  밥 한 그릇은 언제나 마음밥입니다. 몸을 따뜻하게 살찌우는 밥이란 늘 마음밥입니다. 밥 한 그릇에서 평화가 괜히 찾아오지 않습니다. 밥 한 그릇 나누는 이들이 괜히 ‘평화를 부르는 님’이 아닙니다.


  머리띠를 둘러야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논밭을 가꿀 적에 평화가 옵니다. 글이나 책을 쓰거나 국회의원이 되어 법을 만들어야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즐겁게 밥을 지어서 식구들과 도란도란 밥 한 그릇 나눌 적에 평화가 옵니다.


  생각해 봐요. 전쟁무기가 평화를 불러오지 않아요. 전투기와 탱크는 평화하고 동떨어집니다. 군인과 장군과 훈장은 평화를 바라지 않아요. 국방부가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주한미군이나 비무장지대가 평화를 심지 않지요.


  무와 배추를 뽑는 투박한 손길이 평화를 부릅니다. 나락을 베고 말리는 손길이 평화와 사귑니다. 군불을 때고 밥물을 안치느라 물에 젖은 손이 평화를 지킵니다. 기저귀를 빨고 아기를 안으며 자장자장 노래를 부르는 손길이 평화 씨앗을 심어요.

 


- “리츠 오빠는 정말 요리를 좋아하는구나.” “갑자기 왜?” “간 볼 때 표정이 참 좋았거든.” “2프로 정도 부족할 때 뭘 넣으면 좀더 맛있어질지 생각하는 게 참 좋아. 하지만 그보다 좋은 건, 음. OK.” …… “그보다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 봐. 리츠 오빠가 간 보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게 뭐야?” “아, 응. 모두가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거야.” (144∼145쪽)


  아이들은 꼭 학교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입시공부에만 얽매인다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삶을 배우고 사랑을 나누고자 학교에 갈 뿐입니다. 집과 마을에서도 삶과 사랑과 꿈을 키우는 한편, 학교에서도 삶과 사랑과 꿈을 키우도록 하고자 학교를 세워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뿐입니다.


  영어를 가르친다든지 한자를 가르칠 학교가 아닙니다. 삶을 밝히고 사랑을 보여주면서 꿈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에 학교입니다. 집살림을 꾸리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밥하기를 빛내는 기쁨을 속삭일 때에 학교입니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어린 동생을 어버이와 함께 돌보면서 기저귀도 빨고 말리고 개고 채울 줄 아는 삶을 도란도란 주고받을 적에 바야흐로 학교요 평화이며 마을이자 공동체입니다.


  밥 한 그릇 손수 일구도록 가르치고 보여주는 이가 어른입니다. 밥 한 그릇 손수 지어서 함께 먹도록 이끄는 이가 어른입니다. 밥 한 그릇 즐겁게 먹고 신나게 설거지를 하면서 하루를 꽃노래와 하늘춤으로 빚는 이가 어른입니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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