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38] 사름빛


  우리 집 큰아이 이름은 ‘사름벼리’입니다. ‘사름’과 ‘벼리’를 더한 이름이고, 둘로 나눈 이름은 저마다 ‘사름빛’과 ‘벼리빛’으로 쓸 수 있어요. ‘사름’은 “옮겨서 심은 모가 뿌리를 내려 푸르게 맑은 기운”을 가리켜요. 갓 심은 모에서 퍼지는 푸르면서 맑은 빛이라는 뜻으로 ‘사름빛’을 쓸 만해요. “물고기를 잡을 때에 쓰는 그물에서 위쪽 코를 꿰어 놓은 줄”을 가리키는 ‘벼리’이기에, 이 낱말은 그물이 바닷빛을 머금으면서 환한 결이나 무늬를 나타내려는 뜻으로 ‘벼리빛’을 쓸 수 있습니다.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내 마음속에서 어떤 숨결이 곱게 빛난다고 느낍니다. 그래, 그렇지요. 아이들은 ‘아이빛’이요, 어른들은 ‘어른빛’입니다. 사람은 ‘사람빛’이고, 모든 목숨은 ‘목숨빛’이 있어요. 지구별은 ‘지구빛’이 있을 테지요. 햇빛과 달빛처럼 말예요. 내 넋은 어떤 빛일까 헤아려 봅니다. 내 얼은 또 어떤 빛일까 곱씹어 봅니다.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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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49. 유월에 대문을 열면 2014.6.11.



  유월에 대문을 열면 물이 찰랑이는 논이 있다. 사름빛이 고운 논이다. 대문 앞에 있는 논은 제법 깊다. 우리 집 앞에서 보면 조그맣구나 싶지만, 마을 안쪽까지 깊숙히 닿는다. 옛날에는 이 논에 손으로 모를 심고 손으로 낫을 쥐어 나락을 베었으리라. 이제는 기계로 모를 심고 기계로 나락을 거둔다. 쟁기를 얹은 소가 땅을 갈지 않고 기계가 땅을 간다. 옛날이라면 땅을 갈고 모를 심으며 풀을 뽑고 나락을 베는 노래가 마을에 가득 넘쳤을 텐데, 이제는 온통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뿐이다. 그래도, 기계가 한 차례 훑고 지나가면 조용하다. 기계소리 아닌 개구리소리가 퍼진다. 개구리를 잡으려고 왜가리와 해오라기가 찾아온다. 개구리는 모기와 풀벌레를 잡으려고 우리 집으로 폴딱폴딱 들어오곤 한다. 밤에는 우리 집 마당에까지 와서 노래를 들려준다. 대문을 열면 푸른 빛이 왈칵 몰려들고, 대문을 열지 않아도 온 집안에 푸른 내음이 물씬 감돈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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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어서 샘터에 가고 싶어


  샘터를 치우러 가자는 소리에 큰아이보다 작은아이가 먼저 “누나, 빨래터 간대! 어서 가자!” 하고 소리치면서 후다닥 마당으로 뛰쳐나온다. 그러고는 아침에 갖고 놀다가 마당 아무 데나 던져 놓은 막대수세미를 하나 집어서 어깨에 걸친다. 아이들한테 ‘샘터 치우기’는 ‘= 물놀이’이다. 샘터를 치우는 사람은 아버지이고, 아이들은 살짝 치우는 시늉을 하다가 힘들다고 그만둔 뒤 신나게 물놀이를 한다. 그래, 아직 너희가 어리고 힘이 여리니 샘터 치우기는 나중에 해도 돼. 너희 나이에는 신나게 뛰놀고 물장구를 치면 되지.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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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74.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2014.6.11.)


  샘터를 치우려고 가는 길에 재활용쓰레기를 들고 가기로 한다. 빈 페트병 담은 봉지는 가벼우니 아이들이 서로 들겠다고 한다. 이쯤 되는 심부름은 아주 즐거운 듯하다. 작은아이가 먼저 콩콩 앞서 달리고, 큰아이가 수세미 담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머리에 얹고는 천천히 뒤따른다. 막 모를 심은 논을 따라 걷는다. 바람은 상큼하고 풀내음과 물빛이 맑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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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미야자키 하야오 (Hayao Miyazaki) 감독 / 대원DVD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바람골짜기 나우시카
風の谷のナウシカ, 1984


  작은 아이가 지구별을 살린다. 작은 아이가 지구별을 살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작은 벌레가 알아차린다. 작은 풀씨가 작은 아이 곁으로 다가와서 돕는다. 작은 사람들이 작은 마을을 이루어 작은 사랑으로 지구별을 살찌운다.

  커다란 어른이 지구별을 망가뜨린다. 커다란 어른은 커다란 전쟁무기를 만든다. 커다란 어른은 더 커다란 싸움을 벌이고, 더 커다란 잇속을 헤아린다. 커다란 어른은 커다란 사랑이 없이, 커다란 미움과 커다란 꿍꿍이와 커다란 돈줄을 거머쥘 생각뿐이다.

  사랑은 사랑을 아끼면서 살찌운다. 꿈은 꿈을 돌보면서 키운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길어올려 해맑다.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 적에 아름다운지 누구나 스스로 알리라 느낀다. 다만, 학교를 다니면서 교과서를 외우는 동안 마음소리를 스스로 닫고 만다. 학교를 다니고 사회에 길들면서 자본주의 틀에 길드는 동안 마음빛을 스스로 끄고 만다.

  바람골짜기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바람골짜기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고 자란다. 바람골짜기 아이들은 어른과 함께 흙을 일구고 숲을 돌보며 나무랑 어깨동무한다. 바람골짜기 아이들은 바람을 읽고 하늘을 읽으며 새와 벌레를 살가이 읽는다.

  삶은 어디에 있을까? 삶은 어디에서 태어날까? 삶은 어디에서 자랄까? 삶은 어디에서 환하게 빛날까? 전쟁무기로는 전쟁무기만 만들 뿐이다. 사랑이 있어야 사랑스러운 삶이 되어 지구별을 살린다.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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