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도시락



  일산 할머니한테서 받은 도시락을 고흥집에 와서 비로소 끌른다. 시외버스에서 먹일까 하다가 그만둔다. 시외버스에서는 고속도로 쉼터에서 장만한 마실거리와 호두과자만 먹인다. 과자 몇 점 집어먹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시외버스에서 그동안 많이 시달려 본 탓인지 좀처럼 이것저것 먹을 생각을 않는다. 처음에는 큰아이가 아버지 어깨와 무릎에 기대어 잠들고, 나중에는 작은아이가 아버지 어깨와 무릎에 기대어 잠든다.


  순천에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고흥으로 들어올 적에는 둘 모두 기운이 났는지, 한 시간 내내 웃고 떠드느라 법석을 떤다. 군내버스를 타고 마을 어귀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오니, 큰아이는 맨 먼저 만화책을 찾는다. 작은아이는 맨 먼저 ‘집에 있는 장난감 자동차’를 찾는다. 나는 맨 먼저 마당 후박나무한테 인사하고 빨랫대를 닦은 뒤 집안 바닥을 마른걸레로 훔친다. 일산에서 빨았으나 덜 마른 아이들 옷가지를 마당에 널고, 나부터 씻은 뒤 내 옷가지를 빨래해서 넌다. 아이들은 씻을 생각이 없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은 시외버스에서 내내 ‘춥다’고만 했고, 아이들을 챙기고 짐을 짊어지느라 땀을 흘린 사람은 나 혼자이다.


  집에 닿은 뒤 ‘시골물’을 한 잔씩 마시도록 한다. 나는 석 잔 마신다. 아이들이 저마다 놀면서 한 시간쯤 지나니, 작은아이가 먼저 “배고파요.” 하고 말한다. 큰아이한테 묻는다. “벼리야, 너도 배고프니?” “응.” “그러면, 먹자.”


  일산 할머니가 마련해 준 도시락을 꺼낸다. 나도 끼어서 먹을까 하다가, 나까지 먹으면 밥이 모자라니, 아이들만 먹인다. 4347.7.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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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있는 곳



  고흥에도 짐승우리와 비닐집이 있다. 그러나 다른 시골과 견주면 아주 적다. 높다란 멧골은 없으나 조물조물 숲이 이루어져 푸른 바람이 흐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마음은 사랑을 먹고, 몸은 밥을 먹는다. 마음은 따사로운 기운을 마시고, 몸은 풀바람과 나무바람을 마신다.

  두 아이 이를 고치려고 두 차례째 나선 나들이를 끝낸다. 시외버스는 곧 고흥읍에 닿는다. 푸른 시골빛이 그득한 우리 집에 곧 돌아간다. 아이들아, 우리 집에 가서 시원하게 씻고 신나게 놀자. 4347.7.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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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버스길 책읽기


  시외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린다. 아직 정안까지 멀다. 고단한 큰아이는 곯아떨어지고, 아침 늦게까지 잔 작은아이는 기운이 넘친다. 시외버스는 버스길로잘 달리다가 어느 때부터 버스길로 안 달린다. 왜 이렇게 갈까? 버스길을 보니 버스 아닌 자가용이 줄줄이 달린다. 왜 이렇게 달릴까?

  나라 곳곳에 자전거길이 있으나 웬만한 자전거길은 자가용이나 짐차가 낮잠 자는 곳 구실을 한다. 더 헤아리면, 여느 거님길에 선 자가용과 오토바이가 참 많다. 사람이 걷거나 쉴 자리가 없이 자동차가 늘어난다. 늘어난 자동차는 어디이든 덥석 물어 버린다.

  고운 넋으로 삶길을 밝히는 책이 있다. 책방은 언제나 고운 책으로 넉넉할 때에 빛나지 싶다. 그런데 오늘날 책방을 보면, 책방에 책 아닌 수험서와 참고서가 훨씬 많다. 오늘날 책방에서 책이란, 수험서와 참고서 옆에서 모양으로만 꾸미는 듯하다. 꼴을 갖춘 책도 책이라기보다 베스트셀러를 노리거나 자기계발로 기울어진다. 겉모습은 책이지만 막상 책이 아니기 일쑤이다.

  책다운 책을 읽으면 공무원시험에 붙기 어려우리라 느낀다. 책다운 책으로 마음을 닦으면 경쟁사회에서 늘 처지리라 느낀다. 책다운 책을 가까이하노라면 으레 자동차와 멀어질 테고 몸을 움직여 흙을 만지면서 숲을 껴안겠지. 권력자도 책과 등을 돌리지만 여느 사람들도 수수한 빛을 멀리한다.

  숲이 사라지는 곳에서 책이 사라지고, 숲과 책이 사라지는 곳에서는 푸른 바람과 노래가 사라진다. 4347.7.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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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자리


  고흥으로 돌아가려고 고양시 백석버스역에서 표를 끊는다. 이곳에서 순천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에 넉 대 있다. 안산을 거쳐 가는데, 아무래도 오래 걸리지 싶다. 전철로 서울 강남으로 가서 고흥으로 바로 가는 길이 가장 낫구나 싶다. 큰아이는 창가에 앉히다가 내 무릎에 누이다가 다시 창가에 앉혀 재운다. 작은아이는 오른쪽에 앉힌다. 나는 가운데에 앉는다. 큰아이가 더 크고 작은아이도 훌쩍 자라면 세 자리를 얻어야겠지. 앞으로 언제까지 두 자리를 끊고 세 식구 나들이를 할 수 있을까. 4347.7.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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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놀이



흙바닥에 작은 돌과

작은 조개 껍데기와

작은 나뭇가지 놓아

소꿉놀이.


너랑 나랑

오래오래

오순도순

삶을 지어 살아갈

마음으로

논다.


바람 한 줄기 불어

머리카락 달라붙은

땀내 나는 이마를

간질인다.


햇볕이 포근하다.



4347.7.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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