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잘 겨를



  곁님이 오늘부터 미국으로 람타공부를 하러 떠난다. 고흥에서 인천공항까지 가자면 많이 멀기에, 지난주부터 일산집에 가서 지냈다. 나는 월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고흥으로 돌아왔고, 아이들과 닷새째 보낸다. 지난해에는 곁님이 미국에서 공부하는 석 달 동안 아이들과 지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한결 즐겁게 잘 지내겠다고 느끼기는 하는데, 곁님이 집에 없는 터라, 낮잠 잘 겨를이 없다. 집에서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곁님이라 하더라도 집에 있기만 하더라도 여러모로 숨을 돌릴 겨를이 있었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작은아이는 놀다가 지치면 스스로 자리에 눕는다. 큰아이는 놀다가 고단해도 스스로 자리에 안 눕는다. 밥하고 청소하고 도서관 갈무리하고 글을 쓰고 우체국에 다녀오고 아이들과 나들이를 다니고, 글씨놀이와 그림놀이를 조금 하다가 드러눕는다.


  꾸물꾸물한 날씨가 얼른 지나가기를 빈다. 햇볕이 쨍쨍 나면서 골짜기나 바다로 나들이를 갈 수 있기를 빈다. 아이들이 실컷 물놀이를 하고 나서 새근새근 곯아떨어질 수 있기를 빈다. 오늘은 멧새도 우리 집에 몇 마리 안 찾아온다. 조용한 하루이다.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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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책길 걷기
7. 책은 어떻게 만날까


  책은 늘 마음으로 만납니다. 마음으로 만나는 책이기에 마음으로 읽습니다. 마음으로 만나지 않는다면? 마음으로 만나지 않거나 못하면, 책을 마음으로 못 읽거나 안 읽습니다.

  동무는 늘 마음으로 사귑니다. 마음으로 사귀는 동무이기에 마음으로 어깨를 겯습니다. 마음으로 사귀지 않는다면? 마음으로 사귀지 않거나 못하면, 동무와 나는 서로 어떤 사이가 될까요?

  학교는 배우는 곳입니다. 학교를 다니는 우리들은 무엇인가 배우려고 학교를 다닙니다. 그래서, 학교는 한국말로 쉽게 풀이해서 ‘배움터’라고 일컫습니다. 배우는 터이기에 배움터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학교는 놀이터가 아니고 삶터가 아니며 이야기터가 아닙니다. 오직 배우는 터이기에,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들은 우리한테 여러 가지 지식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학교는 배우는 곳이기에 교과서를 씁니다. 교과서를 바탕으로 지식을 가르칩니다. 교과서에 안 나오는 지식은 학교에서 안 다룹니다. 학교에서는 오직 교과서 지식을 학생이 잘 알아서 시험을 잘 치르도록 이끕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안 하는(교과서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 아이를 몽둥이로 두들겨패거나 손찌검을 했습니다. 벌을 세우고 갖가지 거친 말도 일삼았습니다. 요즈음은 아이를 함부로 때리거나 패는 교사는 거의 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몽둥이질은 사라졌어도, 교과서 지식 가르치기는 그치지 않습니다. 예나 이제나 학교는 ‘더 위에 있는 다른 학교’에 갈 때에 쓸 시험지식을 외우는 구실을 합니다.

  학교에는 어떤 마음이 있을까요. 우리는 학교에서 어떤 마음을 느끼거나 만날까요. 우리는 마음을 기울여서 배우는가요. 어른들은 우리한테 마음을 쏟으면서 가르칠까요. 서로 마음을 기울이거나 쏟기는 하지만, 학교 울타리에서만 마음을 기울이거나 쏟을 뿐, 우리가 살아갈 마을과 집과 나라를 넓게 아우르는 눈썰미하고는 동떨어지지 않을까요.

  학교라는 곳에서 우리가 서로를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면, 학교라는 곳은 크게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이때에는 ‘학교’라는 이름조차 안 쓰리라 생각해요.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라는 틀을 넘어, 사랑을 나누고 꿈을 키우는 곳을 ‘학교’로 삼을 수 있으면, 학교는 더는 ‘학교’가 아닌 ‘마을’이 되고 ‘보금자리’가 되며 ‘숲’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가르치거나 배울 적에 서로 마음을 살뜰히 주고받을 수 있을 때에 새로운 빛이 태어납니다.

  쿄우 마치코 님이 그린 물빛내음이 감도는 만화책 《미카코》(미우 펴냄)가 있습니다. 이 만화책에는 ‘말(대사)’이 얼마 안 나옵니다. 물빛과 같이 찬찬히 흐르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물빛처럼 보드라우면서 맑고 해사한 이야기만 조물조물 나옵니다.

  첫째 권을 읽으면서 ‘난 처음으로 토끼를 쓰다듬었다(60쪽).’와 같은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나는 만화책을 읽으면서도 밑줄을 긋습니다.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밑줄을 그어요. 내 마음을 살포시 건드리는 아름다운 대목이라고 느끼면 서슴지 않습니다. 즐겁게 밑줄을 긋고는 여러 차례 되읽습니다. 기쁜 가락을 새롭게 느껴 봅니다.

  둘째 권을 읽으면서 ‘어서 여기를 뜨지 않으면 발톱이 초록으로 물들 것 같다(16쪽).’와 같은 대목에서 밑줄을 그었어요. 풀밭에 맨발로 서니 발톱이 풀빛으로 물들 듯하다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대목이에요.

  참말 그렇습니다. 바닷물에 두 발을 담그면 어느새 내 발은 바닷빛으로 바뀝니다. 두 팔을 하늘로 뻗어 구름을 잡으려 하면, 내 팔은 어느새 하늘빛과 구름빛으로 물듭니다.

  한두 살짜리 어린 동생이 있나요? 어린 동생이 있으면 어린 동생 볼살을 살살 쓰다듬어 보셔요. 내 볼을 어린 동생 볼에 대어 보셔요. 갓난쟁이 아기들 살결이 얼마나 보드라우면서 어여쁜가를 느껴 보셔요. 아기들 손을 쥐면 어느새 나도 아기와 같은 숨결이 됩니다. 아기들 눈망울을 바라보면 어느새 나도 아기와 같은 눈빛이 됩니다.

  셋째 권을 읽으면서 “따뜻해졌어(18쪽)?”와 같은 대목에서 밑줄을 긋습니다. 한겨울인데, 동무가 장갑 한 짝을 잃었습니다. 장갑을 안 낀 손이 빨갛게 업니다. 이를 뒤늦게 알아챈 다른 동무가 얼른 ‘장갑 안 낀 손을 호호 불고 비비면서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어 줍니다. 한참 이러고서 한 마디 묻는 말이 “따뜻해졌어?”예요.

  넷째 권을 읽으면서 ‘빨간 구두를 신으면 어디론가 데려가 줄 줄 알았다. 돈도 있고 탈것도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어야 하는데, 나의 빨간 구두는 땅에 붙어 있었다(72∼74쪽).’와 같은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새어머니한테서 학원비를 받은 미카코라는 아이는 학원에 안 갑니다. 드넓게 펼쳐진 강둑에 섭니다. 강바람을 맞으며 한참 섭니다. 아이는 전철이나 기차를 타고 어디 멀리 떠날까 하고 생각하지만,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어디로 갈 때에 즐거울까요. 어디로 갈 적에 마음속에서 샘솟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책은 언제나 마음으로 만납니다. 마음으로 만나지 못하는 책은 ‘유명세’나 ‘추천’이나 여러 가지 이름으로 만나겠지요. ‘독후감 숙제’ 때문에 만나는 책이 있을 테고, ‘선물받’아서 만나는 책이 있어요. 한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독후감 숙제’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한다면, ‘대학입시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면, 책이란 무엇일까요.

  영화를 왜 볼까요? 마음이 맞는 동무하고 왜 사귈까요? 사랑을 왜 하고 싶을까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왜 나를 낳았을까요? 나는 책하고 어떻게 만날 때에 즐겁게 웃을 수 있나요? 동무하고 둘이서 무엇을 하며 놀 적에 기쁘면서 신날까요?

  마음을 담지 않으면서 짓는 밥은 마음을 살찌우지 못합니다. 마음을 담지 않으면서 태어난 책은 마음을 북돋우지 못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기울여서 읽지 않는 책이라면, 아주 마땅히 우리 마음에 스며들지 못합니다. 꽃을 바라보듯이, 푸른 바람을 마시듯이, 따순 햇볕을 맞아들이듯이, 마음을 활짝 열고 책을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 책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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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찍은 사진을 엮은 《안녕, 제시카》를 읽는다. 날마다 애틋하게 바라보던 눈길 그대로 사진을 찍었구나 하고 느낀다. 이 아이는 얼마나 넉넉하고 포근하게 사랑을 받으면서 하루를 누릴까 하고 돌아본다. 날마다 저(아이)를 바라보는 어버이 눈길을 느낄 아이는 어떤 마음일는지 생각해 본다. 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곳 언저리에서 뛰논다. 텃밭에도 가고, 놀이터에도 가며, 서울 홍대 둘레에도 간다. 함께 여행을 하고 함께 일본도 밟으며 함께 숲길을 거닐기도 한다. 어버이가 가는 데라면 어디이든 아이도 있다. 아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면서 보낼까. 아이는 하루 내내 어떤 눈높이로 삶을 바라보고 보금자리를 느낄까. 포근하면서 너그러운 눈빛이 그윽한 사진책 《안녕, 제시카》로구나 싶은데, 사진을 보는 내내 꼭 한 가지가 아쉽다. 무엇이 아쉬울까. 무엇이 이 사진책에는 없을까. 한참 사진책을 보는데, 일곱 살짜리 큰아이가 내 곁에 달라붙는다. “어, 사진 보네?” 하고 한마디 거들더니, 나더러 발로 비행기를 태워 달라고 부른다. 책은 읽지 말란다. 아이 말대로 책을 옆으로 치운다. 아이를 담은 사진이 깃든 책을 보기 앞서, 바로 우리 집 아이를 볼 노릇이니까. 귀여운 모습이 가득한 사진을 읽기 앞서, 바로 우리 집 아이들하고 어울려 놀 노릇이니까. 그러고 보니, 예쁜 사진책 《안녕, 제시카》인데, 예쁜 빛과 어울려 ‘수수한 이야기’가 좀처럼 못 드러나지 싶다. 아주 가까이에서 아이 눈망울을 또롱또롱 살뜰히 바라보는 사진으로도 넉넉하다고 느끼지만, 아이들이 날마다 얼마나 활개를 치면서 뛰놀고 개구쟁이가 되며 하늘을 훨훨 나는가 하는 이야기는 제대로 깃들지 못했지 싶다. 그래도, 그래도, 반갑다. 아버지가 집에서 오래오래 머물며 아이를 지켜보는 사진으로도 아름답다.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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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제시카 : 하루하루 신기하고 분주한 꼬마 아가씨의 반짝반짝 성장기- 태어나서 다섯 살까지 여행작가 아빠 엄마가 담아낸 사랑스런 일상들
안영숙 글, 최갑수 사진 / 예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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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18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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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꽃 책읽기



  봉숭아꽃은 어디에서나 본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아주 쉽게 본다. 도시에서는 흙이 거의 없지만, 봉숭아씨는 조그마한 틈바구니를 찾아서 깃들고는 어른 손가락보다 굵은 줄기를 올려 예쁘게 꽃송이를 피우곤 한다.


  일산 할머니 할아버지 밭자락에서 피어나는 온갖 봉숭아꽃을 바라본다. 울긋불긋 봉숭아꽃이 곱다. 봉숭아잎을 따서 잘 빻은 뒤 아이들 손가락에 얹어도 고운 물이 들고, 그저 물끄러미 봉숭아꽃을 바라보면서 눈망울에 꽃빛을 담아도 고운 숨결이 흐른다.


  마음에 꽃빛을 담는 사람들은 꽃과 같은 넋으로 하루를 일군다. 마음에 잎빛을 담는 사람들은 잎과 같은 얼로 하루를 짓는다. 마음에 나무빛을 담는 사람들은 나무와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가꾼다.


  내 마음에는 어떤 빛이 스며들면 즐거울까. 나는 어떤 빛을 가슴에 담으면서 오늘 하루를 누리려 하는가. 오늘은 비가 멎을까. 오늘은 아이들과 자전거 나들이를 떠날 수 있을까.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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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꽃은 옅은 가지빛


  모과꽃을 보면서 모과알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지꽃을 보면 가지알을 떠올리기 쉽다. 오이꽃을 볼 적에도 오이는 쉬 떠오른다. 감꽃을 보면? 감꽃을 보아도 감알을 쉬 떠올릴 수 있다.

  가지꽃을 바라본다. 굵다랗게 맺는 가지알 곁에서 새롭게 피는 가지꽃을 본다. 다른 남새도 이와 비슷한데, 남새꽃은 한꺼번에 피어나지 않는다. 차근차근 피어난다. 한쪽에서 굵게 열매를 맺으면 비로소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하고, 열매를 한참 따고 난 뒤에야 천천히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한다. 남새를 심어서 돌보는 사람들 사랑을 받으면서 차근차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나누어 준다. 두고두고 즐겁게 먹으라는 뜻으로 소담스러운 알을 꾸준히 내놓는다.

  가지꽃빛은 옅은 보라빛이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보라빛을 가리켜 가지빛이라 할 수 있겠지. 어느 쪽이든 즐겁다. 가지를 먹으며 가지내음을 맡고, 가지꽃을 바라보며 가지빛을 누린다.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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